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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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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1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영국 프리메이슨 문양(United Grand Lodge of England)&프리메이슨의 중세 효시 템플기사단 문양




하루는 클린턴 대통령의 딸 첼시가 신랑감을 데리고 아버지에게 왔다. 클린턴이 신랑감을 보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첼시에게 이 애는 숨겨놓았던 내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첼시는 아버지의 고백에 깜짝 놀라 울면서 힐러리에게 달려갔다. 이에 힐러리가 웃으며 말한다. '괜챦아, 이제 밝히는 얘기지만 사실 넌 클린턴 딸이 아니란다.' 이 죠크는 르빈스키와의 염문과 스타검사와의 공방전이 한창일 무렵 외지에 회자된 유명한 죠크다.  

그런데 이번 프리메이슨 편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은 본 죠크의 주인공인 클린턴과 J.F. 케네디의 암살사건과 프리메이슨 사이에 얼키고 설킨 비하인드 스토리 내용처럼 역사 이면의 주체들에 대한 프리메이슨의 역사 만들기 편으로 독자 여러분이 관심을 기울여 볼 만한 분야다. 아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꼭 숙지해야만 할 내용임이 틀림없다.
The 2012 NWO Agenda 1/14


프리메이슨의 대표적 문양&뉴욕의 메이슨 집회장 롯찌에 모인 서양사를 실질적으로 요리하는 주체 프리메이슨 임원.이들 손아귀에 세계 군산 복합체, 유대인 거대 다국적 금융, 펀드, 통신사 및 유수 언론, 각종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최대의 다국적 기업 월드컵과 올림픽조직위원회, IMF를 비롯 미국 상류사회 WASP(White,Anglosaxon,Protestant)와 또 이와 관련되는 수많은 단체를 거느리고 있어 심지어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려는 자도 이들 소속의 유대인 자본의 정치헌금과 언론의 힘을 얻어야 대통령으로 가는 지름길을 얻을 수 있다.

각종 세계적인 혁명과 전쟁은 왜 일어났으며 왜 일어나는가? 오늘날 세계를 둘러싼 많은 소동 뒤에는 누가 버티고 있는가? 정치가들은 왜 특정 정책들을 만드는가? 누가 왜 이러한 사건을 조작하고 있는가?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 정부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프리메이슨의 실체와 역사를 통해 부수적으로 동양과 서양이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와 국제연맹과 국제연합 등 세계 정치행보(世運)의 핵심과 정신사적 의미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필자는 먼저 이에 대해 현재 국내에 나온 책은 아주 미미하지만 이리유카바 최의 『그림자 정부』 (해냄. 刊)와 『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대원출판. 刊) 를 기본 텍스트로 소개 추천하고 싶다.


『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지은이:이리유카바 최 대원출판. 刊),그림자 정부(지은이:이리유카바 최 해냄 刊),세계 경제를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지은이 : 이리유카바 최 해냄 刊)


이 책은 서양사의 본질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할 정도로 정리를 잘 해 놓은 책으로  '아와 비아의 투쟁'을 민족사 전개의 핵심으로 제시한 단재 신채호의 사관을 새삼 되새기게 하며 자신이 소속된 민족을 새롭게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해 주는 서양사의 교과서 같은 책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이에 부가하여 프리메이슨의 600여 종의 책 가운데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50여 종의 핵심 원서 중에서 핵심사항 만 간단히 추려 번역한 뒤 이를 필자의 논리로 버무려 소개하려 한다. 우선 필자는 이 쪽 계통의 번역서가 국내에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고 참고서적도 없어서 일단 핵심에 대한 내용은 후일 시간이 나면 별도로 정리해 책을 내기로 하고 일단 엉성한 체계나마 독자들로 하여금 대국을 알 수 있게 엮어 소개하는 정도로 그치려 한다. 더욱 깊은 내용을 원하는 사람은 원서로 접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필자의 견해로는 서양사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프리메이슨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해야 만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한 쌍의 유전자 구조가 있듯이 서양사에도 서양사를 구성하는 두 개의 축, 두개의 유전자 구조가 있다. 하나의 축은 기독교요 또 하나의 축은 프리메이슨이다. 만일 프리메이슨을 모른다면 이미 앙꼬없는 찐빵인 반쪼가리 서양사를 보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 따라서 프리메이슨 역사에 대해 불모지 상태에 불과한 국내 독자들에게 그 방대한 체계를 모두 소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단지 향후 설명할 세계정치 판도(세운)를 설명하기 위한 밑그림(총론)으로 프리메이슨 1, 각론으로 프리메이슨 2로 나누어 설명할까 한다.  
필자는 대학에도 프리메이슨 학과를 두어 이에 대한 방대한 관련서적을 공부하게 해야 서양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동양사에 대한 균형 있는 인식 및 올바른 민족관이 정립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좀 심한 말 같지만 필자가 프리메이슨의 역사를 일별해 보니 일반인이 학교 교과과정에서 접해 온 서양사는 겉으로 드러난 죽은 연대기적 사건 나열에 불과할 뿐임을 느끼고 몹시 당혹스러워했다.
필자는 필자가 알고 있는 그 동안의 서양사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빈 날탱이였나 하는 생각으로 왜곡된 민족사 뿐 만 아니라 국내에서 접하는 서양사도 무척 유사하게 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무척 씁쓰레하게 생각했다.  프리메이슨의 역사는 역사 이면에 잠복해 있으면서 역사를 실질적으로 만들어나간 주체사다. 서양사의 판밖에 남모르는 진리라고나 해야 할까. 오히려 그러한 생리 때문에 민족사를 들어가기에 앞서 따로 파트를 만들었다.
동양은 진리의 칼자루를 쥐고 서양은 물질문명의 칼날을 쥐었다는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측면에서도 서양사의 실체는 중요하다. 무릇 판 안에 드는 법으로 일을 꾸미면 세상에 들켜서 저해를 받으므로 완벽을 기하기 위해 판 밖에서 남모르는 법으로 일을 둘러 꾸미는 것이 안전하다는 증산도 천지공사의 내용 이념과도 성격이 다르지 않고, 서양사가 창조적 소수자인 소수 프리메이슨의 역사로 일관되어 왔기 때문에 이들의 역사를 재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민족 1만년사가 대도적 차원에서 소도신앙인 신교(神敎)정신의 내림과정이었다면 서양사 역시 프리메이슨의 내림과정의 역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리메이슨의 역사를 알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동양과 서양이 하나로 만나게 되었으며 왜 하필 수없이 명멸한 프리메이슨 교단 중의 하나인 제수이트 교단의 이마두(마테오릿치) 수사가 동양으로 건너와 동서양의 신명계를 다리놓고 동양의 모든 문명신과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 현대문명을 건설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등의 드러나지 않은 실체와 케네디 암살과 같은 밝혀지지 않은 갖가지 사건은 물론 광서제에게 붙어있던 황극신이 아동방으로 넘어오면서 프리메이슨들이 개입해 발발된 1,2 차 세계대전의 내막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프리메이슨 조직을 묘사하는 작업과 그들이 주도한 역사를 그려내는 작업은 방대하다. 프리메이슨 회원은 미국에만 3백만이 있으며, 영국에는 70만, 전 세계에는 약 1백만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17년 수면 위로 윤곽을 드러낸 이래 프리메이슨을 주제로 쓰여진 책자, 팜플렛, 논문의 수는 전 세계에 걸쳐 5만 권이 넘는다. 프리메이슨 조직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서양문화의 기저에 흐르는 각종 중세적 신화, 낭만적 전설, 제의, 오칼트적인 각종 비전(秘傳)을 이해할 수 없으며 심지어 이를 재미있게 풀어놓은 문화인류학이나 문학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가령 프리메이슨과 관련된 각종 역사적 전승을 풀어놓은 대표적 이야기 보따리가 바로 움베르또 에코의 「푸코의 진자」다. 비록 이 책은 역시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기에 앞서 소설의 형식을 빌어 각종 프리메이슨 조직들로 비벼진 중세문화의 본질- 인문학을 선보이는 책이다. 본 파트를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이 책의 양면성을 평가할 눈이 생긴다. 관심 있는 사람은 「푸코의 진자」역시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미국혁명 뿐 아니라 모든 혁명의 뒤에는 프리메이슨이 개입해 있는데 우선 미국만 보더라도 죠지 워싱턴(Click!), 벤자민 프랭클린, 제임스 몬로, 알렉산더 해밀턴, 폴 리비어, 쟌 폴 죤스, 마르끼(후작) 드 라파예트, 베네딕트 아놀드, 베니토 후아레스, 시몬 볼리바르, 기우세페 가리발디, 샘 휴스톤 등이 있었으며, 문학세계에는 월터 스코트, 로버트 번즈, 루디아드 키플링, 죠나단 스위프트, 오스커 와일드, 올리버 골드스미드, 마크 트웨인, 아서 코난 도일 경(샤일록 홈즈는 그의 메이슨 형제) 등이 있었으며 음악계에서는 "성인 루이스 블루스(St. Louis Blues)"를 작곡한 윌리엄 C. 핸디로부터 죤 필립 소우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시벨리우스와 하이든을 통해 길버트와 설리반으로부터 작곡가이자 시인이며 철학자이자 혁명가인 바그너와 천재중의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모차르트는 자신의 오페라 <마법의 플룻(The Magic Flute)(Click here!)에서 메이슨 조직의 비밀을 누설했기 때문에 비밀리에 살해된 것으로 전해진다.이에 대해서는 한 음악가의 글을 참조해 본다.


  
모차르트(글. 황순조)

-그는 결코 그의 후세 음악가들이 했던 것과 같이 지나친 효과와 흥분을 위해서 음악적, 형식적 균형을 깨뜨리는 법이 없었으며 결코 음악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저급하거나 조야하지도 않았으니 예술가로서 진정한 엘리트, 귀족주의자였으며 예술의 사명에 대한 과중한 압박감이 없었던 모차르트로서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즉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은 음악사적으로도 극히 독특한 위치에 있으며 모차르트의 진정한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이러한 측면도 한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오페라 쟝르에서의 첫번째 위대한 승리라고 할 만한 `피가로의 결혼'은 역시 빈 궁정에서의 상연을 목표로 하여 작곡되었으나 그 오리지날은 궁정에서 선택한 것이 아니며 100편이 넘는 대본을 읽은 후 모차르트 스스로가 작곡하기를 강력하게 원했던 작품으로서 이것이 당대의 가장 민감하고 센세이셔널한 희곡이었다는 사실조차 극도로 비정치적인 - 일상 생활에서는 쾌락주의자였다 - 그였지만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이었다. 프리메이슨은 확실히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은 계몽 단체였으나 유럽 각국의 왕실이 프리메이슨을 금지한 것은 그 계몽적인 성격 때문이라기보다 비밀 결사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즉 그 유사 종교적, 혹은 카톨릭 국가에 반하는 사이비 종교적 성격이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미 프리드리히 2세, 에카테리나 여제 등이 볼테르와의 교제를 자랑스러워하던 시대에 비록 가장 카톨릭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빈 왕실이라고 하더라도 계몽적 성격 때문에 프리메이슨을 탄압했다고는 보기 어려우며 사실 모차르트의 빈 시대 - 1781~1791 - 와 그의 통치 시대가 일치하는 즉, 모차르트가 궁정 작곡가로서 직접 섬겼던 요제프 2세야말로 가장 진보적인 개혁을 단행한 계몽군주였던 것이다. (일부 역사가들은 중용을 지킨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 달리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급진적이었던 요제프 2세의 정책이 제국에 파멸을 가져왔다고 보기도 한다)
프리메이슨의 진보적 성격은 물론 부정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초 국인종적, 초 국가적, 초 계급적 상애주의와 평화적 인도주의'를 그 목표로 하는 이 단체는 18세기 귀족 계급에 유행한 `계몽주의 놀이'의 성격을 벗어나기 힘들고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개혁과는 그다지 무관할 수밖에 없는 존재적인 한계 - 대부분의 단원들은 오스트리아 최고의 귀족들이었다 - 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 자체가 중세 성당 건축에 고용된 석공들의 준 길드적 조합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에서도 기인한다. 18세기 후반 유럽 귀족들은 그것이 결국 자신들의 파멸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금지한 왕실에 대항하고자 하는 반항심에서, 또한 이제 의미가 완성되고 제도가 완전한 무료하고 심심한 사회에서 하나의 자기 파괴적인 자극과 재미를 즐긴다는 의미에서 볼테르를, 루소를 읽고 보마르셰를 상연했던 것이다. -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야말로 혁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 오스트리아의 프리메이슨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그보다 저급한 프리메이슨 단체들 역시 있었으니 이들은 비슷한 중류 계급끼리 모여 세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교제를 즐겼던 영국적 의미의 `클럽'의 기능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엠마누엘 쉬카네더는 바로 이러한 보다 저급한 메이슨 단체에 속해 있었다)
모차르트는 예술가였으므로 반드시 실천적 개혁과 관계된 단체에 속해있어야 하는 당위성은 없었고 프리메이슨의 이상주의적, 계몽주의적 성격이 그의 작품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만 모차르트의 메이슨 단원으로서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의 대본을 택한 것은 텍스트의 극히 높은 완성도, 음악화의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음악적 표현을 위해 이만큼 적합한 대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러한 일에 이처럼 성공한 작곡가는 모차르트 이전, 이후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의 우리가 모차르트의 사상성에 대해 판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는 수많은 편지들을 주고받았지만 정치적인 언급은 전혀 없으며 정치적인 행동 역시 전혀 해 본적이 없다. (극히 정치적이었으며 자신의 예술 작품 역시 정치적인 의도로 거리낌없이 사용했던 - 에로이카 심퍼니와 연관된 에피소드를 상기해 보라 - 베에토벤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피가로의 결혼'과 같은 극히 급진적이며 혁명적인 대본을 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그의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치 성향을 암시하는 것일 가능성도 있으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록 모차르트가 거의 음악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자유로운 예술가였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궁정과 귀족을 위해서 봉사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미완성의 `레퀴엠'은 한 귀족 - 발제크 백작 - 의 주문으로 작곡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그의 작곡가로서의 위대함을 판단하는데 결코 문제되지는 않는 것이 분명하다. 모차르트는 주문을 위한 작품에 있어서도 항상 최고의 완성도를 보였고 흔히는 그 최초의 주문 의도를 벗어나는 작품을 썼던 것이다.(`마술 피리'와 `레퀴엠'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을 우리는 심지어 베에토벤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베에토벤은 흔히 혁명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개념의 예술가의 첫 세대로 평가받지만 그러나 그의 후기 작품들인 `미사 솔렘니스', 현악 4중주곡들은 실은 귀족의 주문으로부터 출발한 작품들인 것이다. -



프리메이슨 집회장소인 롯찌정문의 앤타시스 기둥

메이슨 멤버로 입회식에서 서약을 한 왕과 황제만 해도 영국의 에드워드 7세와 8세 및 죠지 6세가 있고,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대제(大帝), 그리스의 죠지 1세, 노르웨이의 하콘 7세, 폴란드의 스타니슬라우스 2세, 심지어 하와이의 왕 카메하메하 5세가 있으며 미국의 역대 대통령으로 국부(國父)인 죠지 워싱톤을 비롯해 몬로, 앤드류 잭슨, 제임스 K. 폴크, 제임스 뷰캐넌, 앤드류 존슨, 제임스 A. 가휠드, 씨어도어 루즈벨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父 알폰소 태프트 국무장관이 프리메이슨), 와렌 G. 하딩, 프랭클린 D. 루즈벨트, 해리 S. 투르먼, 린든 죤슨, 제랄드 포드, 명예직 회원 로날드 레이건, 부시(祖父, 父), 클린턴 대통령 등이 있다.
   후술하겠지만 케네디 아버지가 프리메이슨과의 커넥션으로 아들 케네디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케네디가 아버지가 대통령 선거 당시의 막후협상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자 프리메이슨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미 CIA 등 막강한 세력이 개입해 제거한 사건이 케네디 암살사건이다. 이를 파헤친 책이 『마지막 심판-증발된 JFK 암살음모의 고리(Final Judgement-The Missing Link in The JFK Assassination Conspiracy) by Michael Collins Piper』와 『진리가 그댈 자유케 하리라(The Truth Shall Set You Free) by David Icke』라는 책이다.  
뿐 만 아니라 2차 대전의 영국 지도자 윈스턴 처칠은 프리메이슨이었으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맥아더 장군은 물론 맥아더 이상의 지위를 가진 수많은 장군들이 마치 부시 대통령이 2차 대전 당시 프리메이슨 출신 공군 비행사였던 것처럼 프리메이슨 출신들이었다. 가령 처칠 휘하의 원수 튀니스의 마샬 얼 알렉산더, 원수 클로드 오친레치 경, 왕실 공군 원수 뉴홀, 프란시스 윈게이트 대장, 미국 출신 장군들로는 마크 클라크 대장, 오마르 브래들리 대장, 죠지 원수, 죠셉 스틸웰, 더글라스 맥아더 등이 있다.
심지어 나폴레옹 마저 프리메이슨 출신으로 러시아의 프리메이슨 회원 쿠투조프(Kutuzove) 장군과 프러시아의 블루쳬 장군, 웰링턴 장군에 맞서 자신의 프리메이슨 장군 메세나, 무라트, 소울트, 맥도날드, 네이 장군을 보냈을 정도였다. 나폴레옹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 당초 프랑스의 프리메이슨 조직은 과도한 테러로 너무 성급히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호전시킬 방법이 없게 되자, 그들은 사회단체들에 대해 허울좋은 박애주의와 존경심 어린 자세로 태도를 다시 취했다. 이러한 상황이 프리메이슨이었던 나폴레옹을 떠받쳐 주었다.


템플기사단의 각종 문양로고


더욱이 그는 유럽 전역에 혁명적인 정신을 펼치는 것으로 박애, 존경심 등을 봉사했다. 나폴레옹이 선포한 말이 있다. "나는 혁명을 봉헌한 바 있다. 나는 혁명을 법전 속에 주입시켰다. 나는 시민법을 심은 곳은 어디든지 자유의 씨를 뿌려 선전했다." 한마디로, 유럽에 대한 그의 입장은 프랑스를 위해 일으킨 혁명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정치적 야망 속에서 자신만의 세습적, 안정적, 보수적 독재정치 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보이자 비밀사회들은 그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에 대한 첫 번째 파문이 1809년에 이루어졌다. 제국이 몰락하자 장막 뒤의 권력은 전체 국가의 염원을 반대할 수 없었으며, 부르봉왕가의 복귀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이슨 조직이 원한 것은 혁명정신을 유지하는 것과 가능하면 혁명으로 정복한 많은 것을 지키는 것으로 혁명을 수호하는 거였다.
이를 위해 중요한 두 개의 사항이 있었는데 하나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였으며, 둘은 절대군주의 억압이었다. 따라서 조직의 본질을 망각하고 자신의 절대군주 체제, 독재 체제를 구축하려했던 나폴레옹이 끝내 몰락한 것은 그를 파문한 프리메이슨 조직으로 볼 때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리하여 입헌군주제가 프랑스에 씨뿌려졌으며 이 체제 아래에서 프리메이슨 조직이 기회를 잡았다.
나폴레옹은 유태인에게 무엇인가? 이에 대해 세계사에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그는 프리메이슨의 역사에서 확연한 족적을 남겼다. 나폴레옹이 유태인들에게 베푼 공덕을 설명하려면 우선 유태인의 수난사와 해방사를 간략히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이를 간단히 스케치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원래 스가랴(Zechariah)의 네 목수들은 쇠를 다루는 조각가, 대장장이 등 장인이었다. 신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모든 권력을 파괴하는 기구가 있음을 명백히 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신은 그들 권력을 말끔히 소탕하기로 결정해 이들 장인들로 하여금 장차 유다국과 이스라엘을 박살낸 세계 권력을 박멸시킬 예정이었다. 바빌론의 신비사제단은 음모를 꾸며 4 번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들의 신비교단은 일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교의를 가진 목수종교였다. 그래서 전능한 신은 스가랴에게 영감을 주어 그러한 음모를 특징화하는 목수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했다. 사실상, 목수에 대한 고대 히브리어의 뿌리 단어는 비유적으로 나쁜 의미인 "to devise(궁리하다, 고안하다, 발명하다)를 의미하므로, 비밀엄수의 개념으로부터 조용히 하고, 혼자 내 버려 두고, 감추고, 비밀리에 일하고, 침묵을 지키고, 말 한마디 안하고, 혀 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목수(Carpenter)의 주요 어근의 파생어는 또한 "침묵, 교활한, 비밀의 마법의 장인"을 의미하는데, 조용하고 교활한 "마법의 장인"은 분명히 신비교단을 의미한다. 바빌로니안 사제들이 바빌론을 없애기 위해 죠로아스터교 내통자들과 음모를 기획했을 때, 목수들의 첫 번째 음모가 B.C. 539년에 처음 일어났다. 3 년 뒤인 B.C. 536년 유태인 해방에 대한 스가랴의 예언은 성취되었다. 에즈라(Ezra)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 해 싸이러스(Cyrus:페르시아 제국 건설자) 왕은 그들의 성전을 짓기 위해 유태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식민지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태인 집단 거주지 다이에스퍼러(Diaspora)에 남아있기를 원했다. 겨우 그 나머지만 겨우 되돌아 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유태인들은 페르시아 군대가 강력한 이웃으로부터 유대(Judaea)를 지켜주고 있어서 온화한 페르시아의 품 속에서 많은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페르시아의 따뜻한 보호는 2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마침내 아르탁세르세스(Artaxerxes) 3세가 B.C. 359년 제위에 오르자 유태인에게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시리아에 바고세스(Bagoses)라 하는 총독을 파견했다. 20년 뒤인 B.C. 338년에 바고세스(Bagoses)는 아르탁세르세스(Artaxerxes)를 독살하려고 페르시안 사제단과 공모했다. 그 뒤, 바고세스(Bagoses)는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등극시켰다. 그로부터 잠시 뒤, 페르시아 제국은 정복왕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제의 승리와 함께 붕괴되었다.  
유태인의 2 번째 해방은 B.C. 335년에 왔다. 그 해 알렉산더 대왕은 예루살렘으로 진군해 고위 사제들에게 도시를 안전하게 지키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리스 법률 아래에서, 유태인 고위 사제들은 유대(Judaea)의 정치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의도는 유태인을 더 오래 흩어놓는 거였다. 지중해 세계는 그리스 문화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국제적무역어인 코이네(Koine) 그리스어(일상 그리스어)는 모든 문화를 손쉽게 혼합시켰다.
당시 가장 많은 유태인 인구는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알렉산더가 정복한 뒤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이집트로 도망간 유태인 후예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헬레니즘(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하등의 명분이 없었다. 헬레니즘에 물드는 것을 반대하는 "하시딤" 유태주의는 아주 유명하다. 결과적으로 그리스 문화의 편한 생활은 유태인들로 하여금 더 오랫동안 흩어져 살게 하는데 공헌했다. 알렉산더의 치세는 단명했다. 그가 B.C. 323년에 매독으로 죽었을 때, 그리스 제국은 그의 네 명의 장군에 의해 분할되었다.


템플기사단의 각종 문양로고

팔레스타인은 그들 중 두 장군인 시리아의 셀레우쿠스(Seleucus)와 이집트의 프톨레미(Ptolemy)사이에 끼어 있었다. 왕이 번갈아 바뀌고 시리아와 이집트는 거의 매일 싸웠다. 그러나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팔레스타인은 언제고 상처투성이었다. 마침내 B.C. 175년, 시리아의 통치자, 사악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hiphanes)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해 3 일간 4 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그는 언약의 궤를 모신 유태인의 지성소로 난입해 들어가 제단 위에 희생의 씨를 뿌렸다. 다니엘서에 예언된 그러한 신성모독은 유태인의 일상적 희생제의를 중단시켰으며, 유태인들을 더욱 흩어지게 했다. 예루살렘은 버림받은 도시가 되었으며, 광야와 같이 텅 비었다. 성전은 짓밟혔으며, 이교도 외국인들은 시온산 위의 성채를 점령했다.
나머지 유태인들은 주위의 산으로 도망쳤으며, 마침내 유태인 매커비즈(Maccabees:外經에 <마카베書>가 있음) 형제 가문 아래로 뭉치게 되었다. 지속적인 전쟁을 통해, 매커비즈(Maccabees)는 예루살렘을 회복했으며 성전을 깨끗이 청소했다. B.C. 162년 로마제국이 섰다. 그 해 이태리가 로마제국에 종속되었으며, 스페인과 마케도니아가 정복되었고, 시리아가 위협을 받았으며, 카르타고가 이윽고 무너졌다. 당시 로마는 공화국으로 장군이나 선동정치가들에 의해서가 아니고 상원에 의해 통치되었다.
유태인의 세 번째 해방은 로마 상원이 유태인 대사들의 호의를 받으면서 그들에게 팔레스타인의 보호를 약속하면서이다. 그러나 유태인 독립은 로마 아래서 100여 년 가까이 질질 끌었다. B.C. 63년에 유명한 로마 장군 폼페이(Pompey)가 예루살렘을 손에 넣었다. 그는 유태인들의 절망적인 저항을 물리치고 성전으로 들어갔으나 믿음직스럽게도 지성소에서 신성모독을 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폼페이(Pompey)는 도시의 성벽을 허물고 공물(稅)을 부과했다. 유대(Judaea)는 사실상, 로마의 지배 하에 놓였다. A.D. 70년에, 유대(Judaea)는 로마에 의해 파괴되어 전 세계로 흩어졌다.
유태인 네 번째 해방은 바로 나폴레옹에 의해서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1791년 9월 유태인들은 해방되었다. 카발리스트로 프리메이슨이었던 나폴레옹이 들이닥치는 나라마다 유태인 강제 집단 거주지 게토의 육중한 문은 활짝 열렸다. 1848년에 프러시아, 1851년에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태리, 독일로 해방의 물결이 계속 확산되었다.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한 이후 1800년 만에 해방군 사령관 나폴레옹을 만난 유태인은 환호했다.

해골종단 그랜드 롯찌(총본부) 문양 로고  

당시 프랑스에는 4만 여명의 유태인이 있었는데, 나폴레옹은 !806년 파리에서 112명의 유태인 원로들에게 12개의 질의서를 보내 이 답변을 근거로 바빌로니아 시대 이후 한 번도 연 적이 없는 최고 의결기구 산헤드린을 소집, 이 답변에 대한 지지결정을 끌어내고 프랑스 내 유태 커뮤니티의 자치권을 박탈하는 대신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공식조치를 내린 바 있다.          
나폴레옹의 전철을 밟은 대표적인 프리메이슨은 바로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성공시키고 대권에 눈멀어 공포의 기요틴(단두대) 정치를 통해 정적을 무차별 학살했던 쟈코뱅당의 거두 로베스삐에르이다. <프랑스 그랜드 오리엔트>의 서기, 바조(Bazot)는 루이 18세가 입헌정부체제라는 특권을 주어 그 원리가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공화당 부시 후보와 현직 부통령인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클린턴 이후의 백악관을 점령하기 위해 목하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민주당 전당대회전 부시는 17%이상 앞서나가는 것으로 밝혀져 선거전이 부시로 고정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앨 고어가 사상 최초로 부통령 후보로 유태인 조지프 리버만을 내세워 전당대회를 치루면서 단 하루만에 전세는 역전되었다. 상황이 완전히 반대로 돌아간 것이다.
불과 20 명 유대인이 참여한 2000년 8월 24일 워싱턴 DC의 르네상스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가진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조지프 리버만 주최의 만찬회에 100만 불이 모금된 데 비해 앨 고어 후보는 50명의 후원자로부터에서는 고작 25만 불이 걷힘으로써 리버만 효과(Lieberman Effect)와 함께 유대인의 힘이 대중의 힘보다 강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몇 푼 안되어 보이는 100만 불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르나 더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 거의 독식해 장악하다시피 한 언론계와 모든 금융계가 공화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1940년대 Farouk국왕 초상 밑에서 회합을 가진 프리메이슨 집회Click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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