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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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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3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루터(Click 1!Click 2!) 동양의 음양오행의 우주원리로 보면 서양은 성인이 안나오는 곳으로 종교가 없다. 기독교는 동양종교이고 서양으로 건너가 바울교로 변질된 것이 아니던가? 92년에 이어 95년, 97년 10월 가이드 역할을 겸해 바티칸을 찾아 본 필자는 아! 이 정도 차원이었으므로 영적인 세계마저 전무한 서양이 以技藝로 與西人하여 以服聖人之役함으로써 동양종교인 기독교를 수입가공 해 이렇게 선천역사를 멋지게 한바탕 해원한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재삼 받은 것이지만 오죽하면 루터는 "예수는 걸어다니셨는데 교황은 가마를 타고,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데 교황은 자기 발에 입 맞추라 하고,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는데 교황은 예수의 종들을 이단이라고 화형에 처한다. 그는 가증한 적 그리스도이다. 또 교황이 나를 이단자라 파문한다면 나는 교황을 신의 진리로 파문하리라. 교황은 그리스도의 목자가 아니다. 악마의 사도이다."라고 선언하고 75개조 반박문을 내놓았겠는가. 각각 페루지노와 보티첼로 작&바티칸시국 시스티나성당 천장의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천지창조" 그리고 보티첼리의 "복음서의 율법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유혹" 시스틴 대성당에는 이런 대형 명작이 수수 만점 도배를 했으니 가히 以技藝로 與西人하여 以服聖人之役한 것이다. 위대한 동양정신의 핵을 아는 사람은 기독교가 없었다면 서양인이 무척 허망해 해 그 가슴을 어떻게 달랬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시스틴 대성당을 보면 서양화된 기독교의 위대함 속에 그저 무릎을 꿇고 숙연해 하며 더욱 동양인의 열등의식을 잠재적으로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동양인 중동의 예수를 수입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서양인의 영적 세계는 로마시절의 사막종교 미트라신으로 흥행을 계속 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20000리라씩 내고 바티칸 박물관을 보기 위해 뺑글뺑글 돌아 올라가며 깊은 생각에 잠긴 바 있다. 프랑스 도서관의 한국 고문서 반환문제와 결부해 생각하면 대부분 유럽의 박물관의 각종 전시품은 좋게 말해 전리품이요 노획품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각종 전쟁 정벌 등으로 노략질, 도적질한 장물들이다. 프랑스 루불박물관 측과 러시아 아르미타쥬 박물관, 대영 박물관과 바티칸 박물관, 동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그리고 아테네 국립박물관 사이에 물고 물리는 끈질긴 장물반환 요구와 묵살은 일종의 페이소스(Pathos:연민)에 가깝다. 이들 5대 박물관을 모두 가 본 사람으로 필자는 체감 장물 1 순위를 꼽으라면 슈메르 문화 박물관의 특성상 단연 100% 장물인 독일의 구 동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을 꼽는데 주저치 않을 것이다. 2위는 제국주의의 우두머리답게 대영 박물관 정도 되지 않을까. 3위는 프랑스 루불 박물관 4위는 아르미타쥬 박물관과 바티칸 박물관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필자가 느끼기로는 아테네 국립박물관에는 타국을 무력 행사하지 않은 한국의 박물관과 같이 장물이 거의 없었다. 결론적으로 여타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교황이 세계 각국의 장물들을 모아놓고 장사를 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일종의 선천역사의 희극이자 일종의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이탈리아 바티칸 시스티나성당(박물관) 모습과 그 내부 모습. 1508∼1512년 미켈란젤로가 성당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화이다. 성당의 천장과 벽을 온통 이런 당대 최고의 명화로 도배를 했다. --------- 참고)건축가 조반니 데 도르티의 설계로 1473년 착공, 1481년에 완성하였다. 건물 자체는 깊이 40.5m, 너비 13.2m의 장당(長堂)을 높이 약 30m의 요면(凹面) 궁륭천장(穹天障)으로 덮고, 좌우에 고창(高窓)을 배열한 평범한 것에 불과하나, 내부의 벽화와 천장화(天障畵)는 르네상스 회화의 보고(寶庫)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본당(本堂)의 완성에 이어 교황 식스투스 4세는 피렌체와 움브리아의 대표적 화가를 불러 좌우 벽면에 《모세의 생애》와 《예수의 생애》 등 도합 12점의 벽화를 제작하도록 명령하였다. 보티첼리를 중심으로 D.기를란다요, P.디코시모, L.시뇨렐리, 페루지노, 핀트리코 등이 3개년에 걸쳐 그린 이들 그림에는 성기(盛期) 르네상스의 도래가 가까운 젊은 이탈리아 회화의 싱싱한 감각이 넘치고 있다. 그 뒤 얼마간의 시기를 두었다가 미켈란젤로에 의한 유명한 천장 그림의 제작이 시작된다. 1508년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이 대역(大役)을 명령받은 그는, 먼저 화필로 넓은 천장에 기둥과 인방(引枋) 등의 건축적인 구조부분을 그리고,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틀 안에 여러 장면을 그려 넣는 수법을 썼다. 이런 식으로 1512년까지는 천장 중앙부에 《창세기》를, 그 주위에 《12명의 무녀(巫女)와 예언자》를, 삼각형 모양의 요면벽(凹面壁)과 반월형 벽면에 《그리스도의 조상》을, 그리고 네 모퉁이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각각 그렸다. 1534년 그는 다시 바울로 3세의 위촉으로 정면의 제단화(祭壇畵)를 그렸다. 벽면전체를 상하 4층으로 나누어 7년에 걸쳐 위에서부터 천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심판의 장면, 묵시록의 7천사, 그리고 맨 아래층에는 지옥을, 지난번의 고전적 작풍과는 다른 격렬한 터치로 표현하였다. 이 회화의 완성으로 최초의 12점의 측벽화(側壁畵)와, 미켈란젤로의 고전적 화경(畵境)을 말하는 천장화, 그리고 앞으로 닥칠 바로크 회화의 선구적 역할을 하는 제단화, 바꾸어 말하면 성기(盛期) 르네상스를 중간 시기로 하는 전후 세 시기에 속한 작품이 이 성당 안에 모이게 되었다.(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http://xbible.com.ne.kr/에 실린 이상훈의 다음 글을 보자. 조찬선목사의 기독교 죄악사와 대동소이한 내용이지만 간결하게 핵심이 간추려 있어 이해하기가 더욱 편하다. -사나운 종교, 피의 종교 - 기독교; 왜 성경에는 그렇게 살인, 저주, 복수 등의 얘기가 그렇게 많이 나올까? 그 해답은 간단하다. "수렵민은 죽이는 민족이다. 왜냐? 이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만나는 문화는 모조리 정복해 버리는 유목민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침략적인 민족에서 제우스나 야훼같이 벼락을 주무기로 쓰는 호전적인 신들이 나오는 것이다." [조셉 캠벨, 빌 모이어스<신화의 힘> 중에서 ] 기독교는 죽이는 민족, 즉 수렵민족, 유목민족의 신화로부터 비롯되었기에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사람을 많이 죽여 온 것이다. 여호와신이 죽인 인간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여호와신을 자신을 믿는 이스라엘 민족을 제외하고 다른 신을 믿는 모든 이방인들은 모조리 죽여 없애라고 명령하였다. 구약에 수없이 나오는 "죽이라'는 명령들이 그것이다. 따라서 그의 신봉자, 기독교도들이 세계 도처에서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무차별 살상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참으로 피비린내 진동하는 역사이다. 그들끼리 구교니 신교니 하면서 싸워 죽이고 또 회교와 싸워 죽이고, 다른 대륙에 가서는 원주민들을 또 그렇게 많이 죽여 온 것이다. 라즈니쉬는 이 점을 너무도 잘 간파했다. "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세계를 문명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예수그리스도 이전의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중국은 이미 문명화된 나라였다. 인도 역시 예수 이전에 벌써 수 천년 동안 찬란한 문명을 누려온 나라였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선전기구를 버려야 한다. 도대체 그들이 문명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이 있는가? 자이나교나 불교는 최고의 고등종교들이다. 그들은 타인을 개종시키기 위해 단 한 사람도 죽인 적이 없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그 자신을 군병이라고 부른다. 군병들과 교회....? 확실히 기독교인들은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사람을 많이 죽여 왔다. 기독교는 군대집단이다. 기독교인들이 한 일이라곤 세계를 문명화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착취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는가? 그들은 사냥꾼들이 동물을 죽이듯이 원주민들을 죽이곤 했다. 그들은 게임을 즐기듯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거의 전멸시켰다. 오스트레일리아로 간 사람들은 다름아닌 영국에서 쫓겨난 범죄자들이었다. 그들은 살인, 강간 등 온갖 극악한 범죄들을 저질렀다. 그들이야말로 바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할 사람들이었는데, 영국은 그들을 국외로 추방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통령, 수상, 부자, 그리고 가장 근사한 문명인이 되었다. 바로 그들이 동물들을 대하듯 인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일들이 미국에서도 벌어졌다. 그렇게 큰 규모로는 아니지만 그 행태는 여전히 똑같다. 영국에서 쫓겨난 범죄자들이 미국으로 갔다. 그들은 두 개의 주를 발견했고, 그 주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들도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그리고 다른 유럽국가들에서 온 사람들은 미국의 원주민인 홍인종 인디언들을 전멸시켰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깊은 숲으로 쫓겨났다. 그곳을 보호거주지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단지 말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그곳은 히틀러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독한 포로수용소이다. 히틀러는 포로수용소 둘레에 전기가 흐르는 가시철조망을 설치했었다. 그런데 미국에 온 사람들은 더 한층 아름다운 방법을 동원했다. 먼저 그들은 대부분의 원주민을 살해했다. 그런 다음 소수의 원주민에게 연금을 지급했다. 원주민들은 삶의 조류에 뛰어들지 못하고 보호거주지에만 머물렀다. 그들은 교육의 문턱에조차 얼씬거릴 수 없었다. 그들은 땅을 빼앗긴 대신에, 많은 연금을 받았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것은 매우 문명화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원주민들은 연금은 받지만 일자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돈을 가지고 도박하고 술마시면서 그들의 삶을 탕진하는 일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더 많은 연금을 타내기 위해 더 많은 아이들을 생산하고 있다. 원주민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미국사회에 뛰어들지 못하게 한 것은 아주 교묘한 전략이다. 원주민들이 도박하고 술마시며 그들의 삶을 탕진하는 사이에, 그들은 미대륙이 그들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할 의식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미국은 전기가시철조망을 두르는 것보다 더욱 악랄한 수법으로 원주민의 삶을 박탈하였다. 원주민들은 자유를 위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다. 자유란 곧 연금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입다물고 술이나 먹고 간음하고 도박하는 생활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그들 삶의 전부이다. 이주민들은 살인을 저지르며 많은 땅을 갈취했다. 그러나 세상에 알릴 요량으로 소수의 땅만을 구매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땅의 소유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땅을 구매했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뉴욕전체를 90달러에 샀다. 겨우 3백년 전에 90달러에 뉴욕전체를 사다니?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땅들도 뉴욕과 같은 방식으로 구매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땅에 대한 댓가를 지불했다고 만족하고 있다." " 기독교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죽여왔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성전,십자군 전쟁으로 부르고 있다. 이슬람교도들도 신을 위해 싸우는 그들의 성전을 <지하드>라고 부른다. 기독교는 구도자들이 아닌 군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예수교의 수도사들은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7세의 소년을 우리에게 달라. 우리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충실한 군병으로 개조시킬 것이다." 세계 도처의 수백만의 사람들이 겨우 7세의 정신연령에 머물러 왔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7세쯤에서 그들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힌두교와 같은 신념으로 채워지고 그들의 지성을 모조리 상실해 버린다. <그리스도의 군병>이란 말은 너무나 추한 말이다. 군병이 되려면 그대의 마음을 7세에 고정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오직 뒤떨어진 사람들만이 충실한 군병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의문도 던지지 않고 다만 명령에만 복종할 뿐이다. 바로 모든 종교인들은 기발한 질문, 그 종교에서 대답할 수 없는 곤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 사람들을 원한다." [라즈니쉬 <기독교와 선> 중에서 ] 기독교는 발생에서부터 전도에 이르기까지 죽음에서 죽음으로 일관되어 전도된 사나운 신앙교였다. 기독교(바이블)가 가는 곳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나 순교라는 거룩한(?) 죽음이 항상 따라 다녔다. 기독교가 발생하여 순교한 것은 그 당시 신에 대한 인식 이전에 로마제국의 박해와 탄압에 괴로움을 당하는 유대민족으로서 노예처럼 비참하고 처절하게 사는 것보다는 신의이름을 빙자하여 로마제국을 사탄(마귀)으로 몰아 부치고 투쟁을 신앙의 의식으로 승화시켜 순교라는 이름으로 죽음에 이른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독교는 순리적 적응이나 설득보다는 순교나 광신적 행위로서 전도되었든지 아니면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로서 전도된 사나운 신앙교인 것이다.- ※출처: [바이블의 진실] http://xbib 17세기 그리스를 침공한 오스만 터키는 이집트를 침공해 유적지들을 훼손했고,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화약고로 썼으며, 베네치아 연합군은 터키군과 싸우느라 신전을 폭격했다. 1, 2차 세계대전 때는 서로 물고 물리는 문화재 약탈전을 벌렸다. 우리가 프랑스로부터 규장각 고문서 반환문제로 입씨름 벌이고 있는 것도 바로 식민지 제국주의의 문화재 약탈, 파괴의반달리즘(Vandalism) 속에서 벌어졌던 문화재 약탈의 일부였던 것이다. 잠시 이곳에서 필자는 2권이나 3권쯤에서 자세히 언급될 우주원리와 한민족 고대사의 조명에서 설명될 문제제기를 기독교 성직자가 던지는 의문으로 대신해 하나 던지고 지나가고자 한다. 조찬선 목사는 「기독교 죄악사」(평단문화사 刊)에서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멀쩡한 인간을 속죄기도를 통해 죄인으로 만드는 곳이 교회이며 십일조, 순종, 충성, 전도라는 미명 하에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없는 맹신도, 즉, 일종의 정신적 노예를 만들어내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천주교의 속박은 이보다 더해 부부생활의 침실까지 지배하여 산아제한, 피임약 및 피임기구 사용금지 등 이불 속까지 철저히 감시한다고 말하고 이는 지배나 통솔이 아니고 구속 감시이며 평생 사는 동안 매월 고해성사를 의무화하는 생활보고가 도대체 어디로부터 근거하느냐고 반문하고 이는 교회가 성도라는 미명하에 신도들을 보이지 않는 쇠사슬로 꽁꽁 묶어놓고 통제하는 정신적 노예제도임을 밝히고 있다. 즉 교회는 신앙이라는 미명 하에 제도화된 정신적 노예양성소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세계선교는 일방 통행식 이었으며 세계도처에서 벽에 부딪치고 있다. 만일 정복을 선교로 알고 있다면 시대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착오요 실수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기독교만이 유일한 참 구원의 종교이고 타종교는 모두 가짜요 허위요, 구원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종교라고 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전지전능하신 기독교의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많은 거짓 종교를 성행하게 해 놓고 세계인구의 절대다수가 그 거짓종교에 걸려들어 평생을 불행 속에서 살다가 멸망 받게 하셨는가?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만일 끝까지 기독교만이 유일한 참 구원의 종교라고 고집한다면, 이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불공평하고 인종을 차별하며 세계인구의 절대다수를 계획적으로 멸망시키려는 악신으로 전락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왜 우리 한 민족을 5000년 동안이나 내버려두셨다가 겨우 백년 전에야 복음을 주셨을까? 좀더 넓게 생각해 보자. 인류의 역사는 300-400만 년이나 되는데 왜 겨우 2000년 전에야 독생자를 보내주셨는가? 300-400만 년이란 길고 긴 세월 동안에 생존하였던 수많은 영혼들을 어디에 내동댕이쳤다가 2000년 전부터 비로소 구원사업을 전개하셨는가? 여호와가 그처럼 사랑하시고 택하신 유태인 선민들은 아직도 예수를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그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사실 기독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독교는 타종교를 무시하고 정복한 대표적인 종교였다. 예를 들면 천주교가 '선교 복음화'라는 미명 하에 중남미 대륙으로 들어가서 원주민들에게 범한 침략, 약탈, 살인, 파괴, 그리고 정복의 죄과는 무엇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가? 또 원주민들이 쌓아올린 그 찬란했던 잉카(Inca) 문명, 타이노(Taino)문명, 아즈텍(Aztec)문명 등을 말살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모든 죄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그곳을 복음화 시켰다고 자화차찬하지 않는가. 그들은 총칼과 폭력으로 원주민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정복하고서도 오히려 복음화 하였다고 감사미사를 드렸던 것이다. 도대체 그러한 선교는 누구를 위한 선교였는가? 자기들의 영토확장을 위한 선교였을까? 아니면 진실로 원주민을 위한 선교였을까? 어떤 이유의 선교였든지 간에 분명한 것은 상대방을 위한 선교는 절대로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온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죄악은 무엇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가? 청교도들은 자기들의 신앙의 자유는 존중할 줄 알면서도 타인, 즉 원주민들의 신앙의 자유는 부정하고 개종을 강요하였다. 청교도들이 얼마나 잔인했는가는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의 말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그는 "자유와 문명과 종교의 축복을 받은 우리들이 서진(西進)하는 찬란한 길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숲 속에 사는 야만인들에게 그들의 숲과 강과 땅을 빼앗는 것은 당연지사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주장했다. 선교사가 타종교를 무너뜨리고 뿌리를 뽑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말살행위이며 마귀사탄의 역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캘빈의 예정론은 불교의 인과설과 같은 것으로 신의 축복을 받아 현세에서 구원받을 사람은 미리 다 정해져 있다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지상에서 누리고 있는 복록을 보면 그것을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 즉, 지상에서 현재 누리고 있는 돈과 권력, 명예가 바로 신에 의해 선택되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척도라는 것이며 구원의 여부는 이미 태어나면서 모두 정해졌기 때문에 구원받기 위해 쓸데없이 아둥바둥하지 말고 각자 맡은 직업을 천명으로 여겨 성실히 봉사하라는 것이 바로 그의 '직업 소명설'과 '예정론'의 본령이다. 캘비니즘이 장로교에 한 축을 대고 있다면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또 다른 축은 카발리즘에 뿌리를 두고 있는 프리메이슨이다. 프리메이슨을 간단히 요약정리하면 그들이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메타피직스의 세계는 논외로 하고 서구 기독교 및 유대교에 대한 서양 엘리트들의 한계를 물질적 세계지배화 의지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이 동양의 미륵사상의 요체 및 천지공사 내용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 동양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느끼고 모종의 프로젝트를 벌였을 수도 있었을 것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서양사를 세계사로 매개하는 입장에서 천지공사의 세운을 주도하는 일꾼들이었다. 뭔 말인지 모르는 초보는 그냥 넘어가라. 읽다보면 차차 이해가 간다. 프리메이슨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유태주의의 근원을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잔소리 같지만 현대인이라면 기독교를 신앙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구약정도야 한두번 정도 접해본 적이 다들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실은 구약을 많이 읽은 기독교인은 물론 민족주의자임을 저처하는 사람 조차도 빈번했던 한민족사 수탈과 잦은 대내외적 민족사 왜곡의 비극으로 인해 정작 한민족의 역사가 구약의 유태족 역사보다 웅혼장려했음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서경에 등장하는 요순시절의 치적조차 47대 2096년간 단군조선의 방계사였음을 알지 못한다. 또 가공의 신무천황으로 시작되는 2600년 만세일계의 일본서기가 얼기설기 조작되었듯이 사마천이 중국역사를 처음 지을 때 왜 하필 황제 헌원으로 그 역사의 첫 단추를 삼았으며 정작 그 뿌리가 되는 동방 동이족의 역사를 제외시킨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모세로부터 시작하는 유태족의 역사가 서경에 등장하는 요순시절의 정치이데올로기 평장백성, 협화만방주의와 역사적으로 어떻게 접합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한민족의 삼신상제가 유대족의 야훼신보다 훨씬 강력하고 권능있음을 알지못한다. 단재 신 채호 선생이 한민족의 민족정사는 "신교(神敎)-역대 단군들이 제천단을 쌓고 상제를 신앙한 신앙체계로 열국시대때 10월 상달을 정해 삼신상제 제천신앙을 했다."의 베일을 밝혀내야 비로소 그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지적한 바 있듯이 시오니즘 프로젝트는 성서적으로 이해는 해도 그것이 일련의 프리메이슨 프로젝트 중의 하나였음은 간과하고 있으며 그보다 훨씬 위대했던 한민족의 "다물주의"가 영토회복주의에서 우주변혁과 영적차원을 매개로 한 "의통(醫統)"의 삼계통일, 우주통일로 변모한 사실은 감도 못 잡고 있다. 한국의 내로라 하는 지성이 그만큼 외국역사와 신앙체계에는 능해도 한민족 고유의 신앙체계, 영적 세계와 한민족사에는 무지한 것이다. 이는 김치냄새 나고 된장냄새 나는 한국의 지성이 정작 유목민의 치즈 냄새나는 외래신앙에 붙잡혀 우리민족사를 기독교 사관으로 꿰어맞추어 바라보다 보니 생긴 불치의 병폐이다. 필자는 기독교인을 포함해 비록 비기독교인 일지라도 바울교로 왜곡, 전락된 오늘날의 기독교가 아닌 훌가스펠(순수복음)을 담고있는 본래의 기독교 복음을 알기 위해서라도 조찬선 목사가 저술한 「기독교 죄악사 상,하」(평단문화사)와 「탈무드 임마누엘」(대원 刊), 「보병궁의 성약」(대원 刊), 「아담과 이브의 생애」(해누리 刊) 정도를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여기에 「환단고기」, 「단기고사」, 「규원사화」또는 필자의 한배달 시리즈 중의 한 권인 「통곡하는 민족혼」을 읽어주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사서삼경 그 중에서도 특히 기독교사와 접맥되는 서경의 시대적 배경에 귀를 기울여 조용히 탐구해 보라. 그리고 대원간행의 「우주변화의 원리」(한동석)나 「이것이 개벽이다」(안 경전)「동양학 이렇게 한다」(안원전)를 한번 탐독해 보라. 그러면 분명히 새로운 우주와 새로운 영적인 세계가 홀연히 열릴 것이다. 본래 야훼신보다 더욱 자비로우면서도 강력한 절대자 하느님(한울님, 천주님, 상제님, 미륵님) 신앙(神敎)이 과거 우리 민족에게 있었는데 모진 역사의 비바람에 모두 유실되고 잊혀졌다. 지정학적인 차원에서 간방(艮方)의 열매를 맺는 사명 때문에 한민족사는 할퀴고 빼앗기고 왜곡된 모진 비바람을 맞 받아치는 사명으로 대속하다 보니 모두 분실되고 망각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령을 보지는 못했어도 본질을 예리하게 찌른 단재 신채호 사관의 핵심이다. 필자는 단재의 저서들을 꼼꼼히 분석해 보면서 망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로서 분실되고 왜곡된 사료 가운데에서도 방향성을 정확히 짚고 있는 학문적 업적에 그저 숙연해 했다. 단지 단재 선생 당시의 망국적 상황하에 사료의 한계로 말미암아 신교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한민족사의 핵심이 신교의 정체 여부에 달려있다는 말은 이 얼마나 촌철살인의 폐부를 찌른 말이 아닐 것인가. 어찌되었건 분멸되고 왜곡 망각된 우리 고유의 영적 신비세계가 복구되기 시작한 첫 걸음은 바로 구한말 수운재 최제우의 동학에서부터이다. 한국의 지식인이라는게 해방이후 일제식민지 교육의 연장선 위에서 받은 왜곡 분멸된 교육이 전부여서 하나같이 동학하면 탐관오리에 대해 죽창들고 일어난 갑오년 동학 농민혁명으로 이해하는게 전부다. 그 안에 들은 한민족의 위대한 신앙사적인 대도적 메시지는 못 잡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강 준만 같은 올곧은 지식인은 사관정립 하나 못한 채 헛소리만 해대는 한국의 지식인들을 향해 모두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오물들이라 자조어린 비판을 했겠는가. 야훼신 뿐 만 아니라 저 일본의 창조신인 아마데라쓰오오미까미(천조대신)와 중화족의 창조신인 반고신과 우리의 개국신인 단군을 거느리고 있는 절대자 신앙이 바로 우리의 전통 신교 신앙의 본령으로 중화 독, 왜 독, 서양사대 독 등에 의한 역사왜곡과 더불어 망각된 것이다. 이 위에 한 술 더 떠 신위(神位)마저 왜곡한 성서번역자들에 의해 잘못 받아들여진 것이 오늘날의 한글판 성서이다. 필자가 볼 때 가장 큰 실수는 야훼를 신으로 번역하지 않고 초기 성서번역자들이 우리 고유의 절대자 개념인 하느님, 한울님 개념과 혼돈 되어 뇌리 속에 심기 위해 야훼 하나님으로 번역해 놓은 점이다. 아프리카의 한 골목대장 격 신을 하느님이라 번역하면서 문화제국주의의 태풍을 기회로 잡아 국내에 들어온다면 한국인의 대다수는 과연 아프리카 검둥이 신을 절대자 하느님으로 믿을 것인가? 만일 믿는다면 바로 그런 류의 서양판이 바로 기독교가 아니었던가? 소위 7 성령인 엘로힘(Seven spirit of God)이 세상을 창조한 것을 두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엉터리 번역한 것은 물론이고 반고나 천조대신과 같이 일개 지방 신에 불과한 야훼신을 절대자 신위(神位)로 승격시킨 것은 치졸한 번역의 극치를 이룬다. 예수도 야훼 신이 황량한 광야의 일개 유목민 신으로 편협하고 옹졸한 호전적인 군신이었음을 알았기에 신약에서 아바 신을 외친 것이 아닌가? 참고로 「탈무드 임마누엘」의 주요 메시지를 비교해 보자. -* 나의 가르침은 변조되어 한 사악한 종파가 될 것이니, 그로 말미암아 많은 피가 흐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는 내 가르침을 이해하고 진리를 깨달을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가르침이 진리임을 인정하고 커다란 용기를 내어 이를 전파할 사람, 사람들에게는 별로 대단하지도 않게 보일 그 사람은 이천 년이 지나서야만 나타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창조의 법칙들에 충실치 않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서 결코 평화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피를 뿌리게 될 것이니, 이는 그들이 끊임없이 창조의 법칙들을 거역하여 불법을 자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선택된 민족이며 또한 별개의 종족으로서 다른 모든 인류의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사악한 잘못이며 사악한 생각입니까? 왜냐하면 원래 이스라엘이란 결코 한 나라나 한 인종이 아니었으므로, 따라서 결코 선택된 인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법칙에 충실하지 않은 이 이스라엘은, 살인과 방화로 규정지을 수 있는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가진 인간들의 집단일 뿐입니다. 이 불충실한 집단 가운데 불과 몇 사람들만이 명예로운 과거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계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저 독사들의 세대에 속하지 않나니, 저들은 그릇된 유대의 믿음과, 모세로부터 취한 그릇된 믿음과 가르침에 자기들 스스로를 저당 잡힌 사람들입니다. 이 그릇된 믿음과 가르침 또한 모세가 이집트인들에게서 도용한 것입니다. 이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진리와 참된 지식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오직 창조의 법칙들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땅에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다섯 손가락으로도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 인류가 지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율법학자들이나 성서를 왜곡한 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에 의해 노예가 되어 있는 한, 나의 이 말은 영원히 사실임이 증명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천 년 이내로 사람들이 알고 생각하기 시작하게 될 때가 되면, 내가 실제로 행한 가르침이 변조되지 않은 채 새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사실로 입증될 것입니다. *그는 나보다 지식이 더 뛰어날 것이며, 진정한 나의 가르침에 대한 그의 계시는 전 세계의 뼈대를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전 세계에 성서를 왜곡한 자들에 의해 변조된 나의 가르침들이 범람하고 있을 것이며, 또 죽음을 초래하게 될 그릇된 종파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또한 우주로부터의 전쟁들이 지구를 위협하기 시작할 것이며, 많은 새로운 신들이 이 지구를 지배하기 위해 힘을 모색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천 년 말까지는 그 새 예언자가 변조되지 않은 내 가르침들을 작은 모임들을 통해 밝힐 것이니, 이는 내가 또한 신뢰하는 벗들과 제자들의 작은 모임들에서 영혼과 창조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법칙들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의 길은 매우 힘들 것이며, 장애물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북쪽에 자리잡은 평화를 사랑하는 한 나라에서 그의 사명을 시작할 것이지만, 그 나라는 내 가르침을 왜곡된 성서에 근거를 둔 완고하고 그릇된 종파에 의해 지배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나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영적 스승들이 계십니다. 그들은 (창조에 가까운 정신층에 있는) 프탈레 영역에 계신 우리들의 아주 먼 조상들이십니다. 또한 우주로부터 왔던 존재들 또한 위대하며, 그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 신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세 인종의 영적 지배자이십니다. 그러나 창조는 신의 위에 존재하시니, 신 또한 창조의 법칙들을 충실하게 따르며 존중하십니다. 따라서 창조가 전능한 만큼 신께서 전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신으로 불리는 것을 자신에게 허용하고 또한 문자 그대로 모든 황제들과 왕들 위에 군림하시는 신에게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신을 창조라고 믿고 있으며, 또한 성서를 왜곡한 자들이 섞음질을 한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을 전능한 창조라고 믿을 때, 사람들은 창조의 진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과 우리 인간과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으니, 그것은 신은 그의 의식과 지혜, 그리고 논리와 사랑에 있어서 우리보다도, 또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보다도 수천 배나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이 곧 창조는 아닙니다. 창조는 무한하며 형태가 없습니다. 따라서 신 또한 창조의 피조물이니, 창조야말로 논리적이지 못한 인간들의 판단에 따르면 시작도 끝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대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예언된 메시아이며, 세 인종의 영적 지배자이신 살아 있는 신의 아들이십니다." 임마누엘이 크게 노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오, 이 불행한 자여. 나는 그대들에게 진실만을 가르쳤으니, 그대들에게 그런 것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또한 그대에게 말합니다. 그대가 분명히 충실한 제자이기는 하나, 그대의 이해는 어린아이의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대 베드로여. 나는 그대의 반석 위에 나의 가르침을 펼 수가 없습니다. 그대는 무지의 문을 열 것이니, 그로 인해 나의 가르침을 그대가 잘못 해석한 것에 사람들이 압도되어 그릇된 해석과 변조된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영혼의 왕국의 열쇠를 그대에게 줄 수 없습니다. 그대가 그것으로 그릇된 자물쇠를 열고 잘못된 문을 열고자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 인종의 영적인 지배자의 아들이 아니니, 따라서 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또 오직 창조만이 영혼을 다스리실 뿐, 결코 인간이 다스리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 틀린 가르침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서 진리를 배우도록 하시오. 나의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그녀는 외계에서 온 우리 조상들의 자손인 수호 천사로 말미암아 나를 가졌으며, 또한 내 지상의 아버지는 요셉이니 그는 오직 나의 양아버지로서 행동합니다." 임마누엘은 제자들에게 결코 베드로와 같은 말을 하거나 그릇된 생각을 하지 말라 하시고 베드로의 헛된 말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엄명하셨습니다. *이생에서 영적 지식의 힘을 맛보지 못할 사람들이 여기에 몇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다음 생에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생각과 탐구를 통하여 지식을 얻을 때까지는 무지합니다. 사람들의 영혼이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주어진 창조의 일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깨달아 영혼을 완전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의 영혼은 창조와 일체가 되기 위하여 발전하는 것이니, 이는 창조 또한 끊임없는 성장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영원불멸하며, 인간의 영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이 저지른 잘못들을 통해서 영혼을 완전하게 하고 통찰력과 지식을 습득해야만 하는 사명을 깨닫고 살게 된다면, 그들은 법칙들에 의해 예정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 "창조의 법칙들에 의해 지배되는 영혼의 위대성에 따라서 끊임없이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배우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직면해야 할 상황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니, 그들이 함정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의식과 생각, 감정, 행동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나서는 스스로 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들의 영향력이 파고들 수 있도록 자기의 영혼을 열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영적인 힘은 좋게든 나쁘게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만일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생각하고 이해하기를 시작하려 하면, 그들에게는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아들들은 예언자들을 보내어 인류에게 창조의 진정한 법칙과 삶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무지하다는 것이 판명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새 가르침이 진정한 진리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사제들과 성서를 왜곡하는 자들의 그릇된 율법을 추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예언자들을 박해했던 것과 똑같이, 지금 나의 생명을 뒤쫓고 있습니다. 나는 비록 결백하지만 유죄가 선고될 것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예언이 내게 적용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임사(臨死) 상태에 빠져서 죽은 것으로 간주된 채 사흘 밤과 낮 동안을 지낼 것입니다. 나는 무덤에 안치될 것이니 이는 요나의 징표를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멀리 인도에서 온 의술에 매우 뛰어난 내 친구들이 나를 돌볼 것이며, 내가 셋째 날에 무덤에서 탈출하는 것을 도울 것이니, 그럼으로써 인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어떤 통찰을 얻고 지식을 늘리며, 영혼과 의식 속에서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 "만일 그대가 아끼는 사람이 실수로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거든, 그를 찾아 가서 남들이 없는 곳에서 은밀히 대면하시오. 그가 만일 당신의 말을 따르면, 그대는 벗을 얻은 것입니다. 만일 그가 그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잘못을 계속하거든 그를 내버려 두시오. 일단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그에게 다 베푼 이상은, 그 사람은 가르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남자가 아내와 이혼하는 것이 옳습니까?" "진실로 내가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이혼이 허락되기를 바라느니, 하늘에 있는 별들이 떨어지기를 바라시오. 진실로, 남자는 결혼을 함으로써 부모를 떠납니다. 그리고 배우자와 하나가 되니, 그들은 피와 살이 섞인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둘이 아닌 피와 살을 나눈 한 몸이며 한 개체인 것입니다. 한 혈육으로서 그들이 자식을 낳게 되니, 자식들은 다시 그 부모와 같은 혈육으로 이루어진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가 된 것은 아무도 떼어 놓을 수 없나니, 이는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이혼 증서를 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모세는 그대들의 마음이 완악한 것을 보고, 또한 그대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이혼을 허락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이혼이 허락된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모세는 이 경우에 법칙을 위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배우자가 간음이나 규정되어 있는 다른 잘못을 저질러 이혼한 경우가 아니면, 이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결혼을 파기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그것이 남녀 간의 도리라면 결혼이란 것이 별로 좋은 것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 말이 주어진 경우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지는 못할 것이오.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결혼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사람이 맞지 않게 만들었기에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또 영적인 힘을 위해 결혼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시오." *그대들이 뻔뻔스럽게도 나를 신의 아들 또는 창조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심지어는 선과 악의 지배자라고 일컬음으로써 나를 모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을 따를 것이며, 그 때문에 진리를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나를 신으로, 또는 신의 아들로, 심지어는 창조의 아들로까지 잘못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큰 소리를 칠 것이며, 오직 그들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들은 커다란 잘못의 희생물이 되어 버린 까닭에 사악하고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들 사이에서 두드러질 것입니다. 그들은 그릇된 가르침들 때문에 인간적으로만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지식 면에서는 가장 부족하게 될 것이며 지혜 또한 가장 모자라게 될 것입니다. 지혜는 오로지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열매를 맺고, 창조의 법칙이 준수되고 존중되는 데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 모든 사람들의 영혼은 스스로를 완전하게 하며, 지혜에 도달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하나씩 따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창조의 법칙들의 운명에 의해 사람들마다의 영혼이 창조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창조 자체도 성장하고 확장하며 스스로를 완전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가진 영혼이 하나뿐이듯이 창조 또한 그 스스로 하나이니, 그밖에 다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창조는 그 자체가 순수한 영혼이며, 따라서 그 자체가 무한한 힘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한 개체이며 그밖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나타날 그릇되고 날조된 가르침들을 경계하시오. 그것들은 나를 창조의 아들, 그리고 신의 아들이라고 부름으로써 나를 욕되게 할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들은 결국에는 다 거짓이니, 그것들로 인해 이 세상은 많은 궁핍과 비탄을 겪게 될 것입니다. 미래의 이러한 그릇된 가르침들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오. 그것들은 영혼과 창조와 나를 삼위일체라고 말할 것이며, 이 세 개체가 구분되는 동시에 하나라고 말할 것입니다. 미래의 이러한 그릇되고 왜곡된 가르침들을 경계하시오. 왜냐하면 창조의 논리적인 법칙에 따르면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날, 환생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임마누엘에게 왔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스승이시여, 모세는 '남자가 죽을 때 그에게 자식이 없으면, 그의 형제가 형수를 아내로 맞아 죽은 형제를 위해 자식을 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언젠가 우리 가운데에 일곱 형제가 살았습니다. 그 중 첫째가 결혼을 한 뒤에 죽었는데, 그에게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아내를 바로 밑의 동생에게 부탁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둘째와 셋째 또한 같은 식으로 죽었고, 결국에는 일곱째까지도 죽었습니다. 마침내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지금 스승은 새로운 생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내생에서 그 여인은 일곱 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만 하겠습니까? 그들 모두는 그 여자를 이생에서 아내로 맞았었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이 대답하셨습니다. "그대들은 잘못 알고 있으며 장로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되지 않은 성서들에 대해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창조의 법칙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있소이다. 진실로 나는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모세는 결코 그러한 계명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죽은 사람의 형제 되는 이가 죽은 형제에게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부인을 자신이 부양함으로써, 의지할 데 없는 과부를 돌보아 주어야만 한다는 계명을 준 것입니다. 어떻게 동생이 자기의 형을 위해 후손을 낳아주는 것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모든 사람들마다 그 씨가 다르지 않습니까? 또한 다음 생에서는 그들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남남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내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에게 속해야 한다는 법이 없습니다. 각기 새로운 생에서 사람들이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하고 싶어 할지 안 할지 는 확실치 않지만, 결혼하고 싶은 상대를 자기들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생명과 진리를 유린하면서, 사람들이 흘린 피 위에 이 예루살렘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시온의 아들딸이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인들과, 그릇된 자기네 종파에 의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인 유다 사람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나와 무관하며 또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지만, 유다 사람들에게는 내가 다른 인류들에게와 마찬가지로 내가 진리의 가르침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탐욕과 살인을 통해서 이 땅을 강탈했습니다. 그들은 같이 술잔을 나누던 친구들을 죽였으며, 또한 똑같은 민족이면서 단지 종파가 다를 뿐인 유대 종파의 동료 신자들을 기만하고 오도해 왔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친구들을 배신하였고, 자기들의 욕심 때문에 그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장차 벌어질 것이니, 고대로부터 그들이 권리를 빼앗고 정복해 버린 이 땅의 정당한 소유자들에게 의해 그대로 당하게 될 것입니다. "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임마누엘이 대답하셨습니다. "이천 년에서 몇 년이 더 지나서일 것이오. 그러나 그 때까지 이스라엘은 결코 평화를 찾지 못할 것이니, 이는 많은 전쟁과 무수한 사악함들이 이 땅의 불법 소유자들인 그들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대들을 타락시키지 못하도록 주의하시오. 수많은 사기꾼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말할 것입니다. '내가 임마누엘이며, 또한 시대의 징조이니라.' 그리고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잘못 인도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전쟁과 전쟁의 외침 소리들을 수없이 듣게 될 것이며, 또 눈으로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나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비록 반드시 겪어야만 할 일이기는 하지만, 이 자체가 아직 지구의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그 정부에 대항하여 일어날 것이며, 이 나라가 저 나라와 대항하고, 또 한 왕국이 다른 왕국에 대항하여 싸울 것이며, 무서운 기근과 지진들, 그리고 엄청난 홍수들이 도처에서 발생할 것입니다. 이 모들 것들은 거대한 재난들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머지않아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노출되어 고난을 당하고 살해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가르침과 지혜가 내포하는 진리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종파들이 각기 서로를 적대하여 일어나겠고 엄청난 피가 흐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격에 굴복하는 사람들과, 서로가 서로를 배반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으로 왜소한 채로 머물러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사랑이 점점 식게 될 것이니, 이는 서로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증오가 전 세계를 다스리며 사악함이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교훈으로서, 이 다음에 올 새로운 시대에 전 세계에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증거로서 전파될 것이니, 그때에 비로소 종말이 올 것입니다. 예언자들이 이미 전했듯이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잔혹상을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때 이 지구의 종말이 올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된 땅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산 속으로 피해야만 합니다. 그때 지붕 위에 있던 사람들은 집에서 무엇을 꺼내 오려고 지붕에서 내려와서는 안 됩니다. 들판에 있던 사람들은 겉옷을 위해 집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화 있을진저, 그때에 아이를 뱄거나 아기들에게 젖을 먹일 여인들이여.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애통함을 겪고 죽음을 겪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여인들의 숫자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있은 적이 없었으며, 또한 이후에도 결코 없을 만큼 처절한 애통함이 곧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날들이 단축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간은 영혼과 생명의 존속을 위해 단축될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와 법칙들을 섬기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이때가 되면 온 세상이 통곡과 이를 가는 소리들로 가득 찰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의 이해 부족과 탐욕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하여 하늘과 땅과 물에서 사용하기 위한 쇠로 만든 기계를 제작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 철제 기계들을 사용하여 땅과 도시들을 가로 질러 무거운 발사체들을 던질 것입니다. 이 발사체들에서는 불이 나와서 온 세계를 태울 것이니, 남아 있는 것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발사체들의 치명적인 불을 자극하기 위해 그 속에 생명의 초석을 집어넣을 것입니다. 진실로 나는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만일 그때에 예전에 하늘의 아들들이 그랬던 것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 나타나서 망상에 사로잡힌 독재자들의 거침없는 미친 짓을 한 순간에 멈추게 하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에 인류는 오억의 열 배를 훨씬 더 넘을 것이므로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멸망하고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법칙이 정해 놓은 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법칙을 어겨 왔으므로 먼 미래에 이르기까지도 계속 그 법칙들을 어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될 날짜와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수호 천사는 물론 신 자신도 모르시며, 나 임마누엘 또한 모릅니다. 오직 가장 위대한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 창조의 법칙과 명령들 속에 있는 섭리와 운명만이 알고 있을 뿐입니다." "창조만이 모든 인류들의 까마득한 위에 홀로 우뚝 솟아계시며, 또 그 혼자만이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이는 창조가 또한 자신의 위에 있는 절대적인 힘에 게 영광과 찬양을 돌리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신을 받들고 영접하며 또한 창조만을 가장 높고 유일한 힘으로서 인식을 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진리에 따라서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운명이 작용하기를 기다리는 바보는, 물은 담겨 있지만 불에 올려놓지 않아서 물을 끓일 수 없는 주전자와 같습니다. 암소를 키우는 자는 항상 우유를 얻습니다. 또한 지혜를 양육하고 영혼의 능력을 통해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창조의 법칙을 하나씩 하나씩 이해하시오. 그리고 일단 이해했으면 그것을 꼭 붙들고 거기에 따라서 살도록 하시오. 이는 그 법칙들이 가장 위대한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만큼 밝은 눈이 없고 무지만큼 어두운 암흑이 없으며, 영혼의 힘만큼 큰 능력이 없고 의식의 가난만큼 무서운 두려움이 없습니다. 지혜보다 더 고귀한 행복이 없고, 지식보다 더 나은 친구가 없으며, 또한 영혼의 힘 이외에는 달리 구원자가 없습니다. 지성을 가진 사람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니, 이로 인해 그들이 지혜로워지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내가 그대에게 말하노라. 그대는 사울이라 하는 자이며 내 가르침 때문에 나와 제자들을 박해할 것이나, 나중에는 마음을 바꿀 것이니라. 이제부터 그대는 바울이라 불리게 될 것이며, 온 사방으로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니, 내 가르침을 그릇되었다 하고 내 영혼이 혼란되었다고 한 것으로 인해 고난을 겪어야만 할 것이니라. 그대는 양 어깨에 큰 죄를 쌓아 올릴 것이니, 그대가 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고 내 가르침을 그릇되게 전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대의 말은 혼란될 것이니, 따라서 온 세상 사람들은 그릇된 교리를 경배하게 됨으로써 노예로 전락할 것이니라. 그대가 그릇된 그대의 가르침을 가지고 악한 종파의 노예가 되어 그리이스 땅에 들어갈 때, 나를 그들의 말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부를 것이니라. 그리이스 사람들은 나를 예수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모두 그대의 무지함에 기인하는 것이로다. 이 이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통을 가지고도 담지 못할 정도로 흐르게 될 것이니, 이는 그대가 무지한 탓이니라. 그대는 아직도 내 가르침으로 인해 나와 내 제자들을 핍박하고 있으나, 그대가 마음을 바꾸게 될 때가 올 것이니라. 나를 다시 대하게 될 때에는 그대는 나를 유령이라고 생각할 것이니라. 진실로 내가 그대에 게 이르노라.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대는 앞으로 내 가르침을 왜곡하고, 사람들에게 그릇된 종파들을 만들 기초를 제공한 데에 대해 크게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니라. 그대는 나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도록 하고 그릇된 종파의 구세주로 불리도록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주체가 될 것이니라."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사를 결정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시오. 그들은 오직 그들이 살고자 원하는 삶의 종류를 결정할 권리를 가질 뿐, 생사를 결정할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법은 어떠한 사건이나 상황도 자살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살인 청부업자나 안락사와 같은 다른 사람들에 의한 자살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또는 인생의 짐이 아무리 무겁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자기들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는 없습니다. 유다 이하리옷이 아무리 큰 죄를 지더라도, 자기의 생사를 결정할 권리는 없습니다. 어떠한 죄나 실수도 영혼을 이해와 완전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자살함으로써 그들의 죄와 실수로부터 도피한다면, 이것은 그들이 이해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생에서 똑같은 것을 다시 배워야만 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완전을 향한 의식과 영혼의 진보가 늦추어지게 되므로, 그것은 창조가 뜻하는 바가 아닙니다. 하여튼 자살은 통탄할 만큼 비겁한 행위이며, 창조의 법칙들과 계명을 아무 생각 없이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빌라도는 말했습니다. "그대의 가르침이 내게는 새로우니, 어디 그대의 지혜를 들어보자." 임마누엘이 말씀하셨습니다. "잘 들으시오. 영겁 전에 나는 한 가지 어려운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더 높은 영역으로부터 환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생에서 예언자가 되기 위해 하늘의 아들로부터 태어났소이다. 그것은 운명과, 또한 이 지구상에 인류를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존재인 신의 요청에 의해 행해진 것입니다. 이생을 통해 얻은 지식에 더하여, 나는 신의 배려 덕분으로 커다란 통찰과 올바른 지식을 배웠으니, 나는 그것을 신과 같이 거주하는 선생들로부터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배웠습니다. 더욱이 나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들을 많이 여행하였고, 인도에서는 여러 해 동안 살았습니다. 그 곳에서 나는 위대한 구루들과 현자들인 스승들로부터 많은 지식과 수많은 비밀들을 배웠습니다. 내가 이 곳에서의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나는 신실한 제자이기도 한 동생 토마와 함께 그 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진실로 내가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그대들이 나를 때리고 조롱하면 그대들 역시, 옛날부터 그대들이 노예로 삼았고 그대들과 그대의 조상들이 그들로부터 땅을 약탈해 온 바로 그 사람들에게 맞고 조롱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오백 년 내로 그대들이 이를 보상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니, 그 때에는 그대들에게 예속되었던 이 땅의 정당한 소유자들이 그대들에게 항거하여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며, 먼 뒷날까지 싸우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이 땅에 예언자로 나타나 정의에 입각하여 그대들을 저주하고 핍박할 것이니, 그대들은 그대들의 피로써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진정한 가르침을 보존하기 위하여 특별히 강력하고 새로운 종파를 창시할 것이며, 자기 스스로를 예언자로서 인식시킬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가운데 모든 시대를 통해 그대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그대들은 그를 거짓 예언자라고 할 것이며 그를 모욕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된 예언자이며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또한 그는 장래의 모든 시대에 걸쳐 이 종족을 박해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무하메드일 것이니, 그의 이름은 그대들의 종족에게 당하여 마땅한 공포와 비참과 죽음을 가져올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그의 이름은 그대들을 위해 피로 씌어질 것이며, 그대들을 향한 그의 노여움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대들은 거짓이라고 주장할 것이지만 그는 진정한 예언자인 까닭에, 그대들의 눈에는 혼란되고 비지성적인 것으로 비칠 새로운 교리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일으킨 종파도 결국에는 그들과 그대들의 추종자들이 피비린내 나는 종말을 위한 기초를 함께 다지게 될 때에 끝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그의 가르침이 왜곡되고 날조되어, 그릇된 종파로서 끝을 맺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원래 아라하트 아테르사타 [매우 높이 진화된 영적인 수호자들의 그룹]의 영역에 있다가 이 세상으로 환생하였습니다. 나는 신의 의지에 따라 예언자로서 이 곳으로 보내졌으니, 이는 내가 이 세 인종에게 새로운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라하트 아테르사타에 의해 예정되었고 신에 의해 요구된 길을 가야만 하나니, 이는 신이 창조의 법칙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신의 뜻과 법칙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처 음에는 불과 몇몇 사람들만이 사람이 지구상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끝없는 심연들 속에도 살고 있다는 것과, 사람들이 물질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감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다른 세계에까지 그들의 영혼들이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훌륭하게 짜여져 있는 다른 세계야말로 영혼의 진정한 고향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쉬지 말고 지식과 사랑, 진실과 논리, 진정한 자유 및 참된 평화와 조화와 지혜를 더 넓히고 깊게 하는 노력을 계속하여야만 합니다.- 굳이 환국의 광명사상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신지학의 비조 러시아 출신의 블라바트스키(Blavatsky)는 「비밀교의(The Secret Doctrine)」에서 모든 종족을 관통해 흐르고 있는 태양신의 하나인 카발라적인 원(圓)이 바로 엘로힘이라 한다. 그리하여 엘로힘을 구성하는 글자를 숫자로 읽으면 13514가 나오며 위치를 바꾸면 31415로 천문학적인 파이(∏)이며, 디야니 붓다들, 게베르(Geber)들이나, 기보림(Gibborim)이나, 카비리(Kabiri)나, 엘로힘에 대한 숨겨진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이들 모두는 거인이나 타이탄이나 천상인간을 의미하며 지상에서의 거인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녀는 엘로힘은 하나이며 원으로, 원은 미지의 상징임과 동시에 미지시간의 무한한 원이다. 이는 또한 원 속에서 나오는 찬란한 빛인 우주적 태양 오르마즈드이며, 곧 크로노스와 동일하다. 우리는 소아시아 북서부 아이올리안(Aeolian)의 상징도 원이라 말하는 그녀의 주장에서 우리민족이 지니고 있는 무극의 바탕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대륙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었던 당시 고대의 역사적 실체와 비견해 알아야 한다. 제임스 디어도르프(James W. Deardorff)가 지은 「천상의 가르침(Celetial Teachings)」을 보면 예수의 오리지날 기록 -탈무드 임마누엘(TJ)에 나오는 엘로힘의 개념과 왜곡된 신약성서의 엘로힘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바울의 편지들과 <요한의 복음서>가 신인 동형설(神人同形說, anthro pomorphism)을 어느 정도까지 발전시켰는지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끊임없이 논쟁들을 벌여 왔기 때문에, 에 이러한 교리들의 흔적이 빠져 있다는 것은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또한 에는 천당이나 지옥의 개념이 들어 있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또한 실제로 들어 맞고 있다. 지난 반 세기 동안에 지옥이라는 개념은 성직자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쇄퇴되었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지옥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를 발견하거나_3 불신자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고 하는 영원한 지옥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마태오의 복음서>를 인용하여 교세를 자랑하는 교회들에서 성직자들이 설교하고 있는 경우를 거의 보는 일이 없게 되었다. 비록 지옥설보다는 훨씬 천천히 빛을 잃어 가고 있지만, 천국 역시 점점 더 그 실질적 개념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다. 이는 '선'과 '악'의 완전한 분리 상정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있는 모든 것은 선하다고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부록 3 참조). 따라서 천국은 아주 지내기 답답한 곳으로 보이게 되는데, 선을 위해 일하고 악을 뿌리뽑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에는 전생(轉生)의 개념이 들어 있기 때문에, 장차의 삶(來生)에서 경험하도록 되어 있는 '악업(惡業,bad karma)'을 지옥으로 간주하지 않는 한, 천국과 지옥이 등장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는 또한 신약성서에 나타나 있는 "맨 나중이 맨 먼저가 되고 첫 번째가 마지막이 되리라."라든지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자는 그것을 찾게 되리라."라는 구절에 해당하는 언급이 없다. 복음서들에 있는 이러한 구절들은 충분히 비논리적인 것이라고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기꾼이 를 조작할 때, 마땅히 이 내용들을 개선하거나 삭제했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와 <마태오의 복음서>를 비교·분석할 때에는 어떤 경우에도, 이런 것들보다도 더 난해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차이점들에 대해서는, 점검해 볼 만한 특별한 중요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런 차이점들이야말로 조작자가 만들어 낼 것 같지 않은 대표적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작자가 이곳 저곳에서 과오를 저질렀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예기되어 있는 차이들을 추적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인자(Son of man)"라는 말이 들어 있는 구절들 역시, 어떤 종류의 <마태오 원전>에도 등장할 수 없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학자들이나 조작자가 공통으로 동의할 수 있는 또 다른 예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들은 오랜 동안 학자들의 골머리를 썩혀 왔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 속의 일인칭 "나(I)"는 항상 예수 또는 임마누엘(J)을 가리키는가?에 관해 말이다. 에서 J가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일인칭 "나"들 가운데에서, 이에 대응하는 <마태오의 복음서> 구절 가운데에는 "나"로 나타나 있지 않은 경우가, 일곱 번이 있다. <마태오의 복음서>에는 이 가운데 여섯 번이 "인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일곱 번째에는 "아들(the son)"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는 "인자"라는 표현이 단순히 "나"를 의미한다고 하는 보편적인 믿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비록 그 복음서의 편집자가 어째서 '인자'라는 표현을 "나" 대신에 집어 넣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양쪽을 비교해 보면, "나"라는 표현이 에는 있는데 <마태오의 복음서>에는 들어 있지 않거나, 이와 반대로 <마태오의 복음서>에는 들어 있지만 에는 들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다. 에서 J를 지칭하고 있는 말들이 <마태오의 복음서>에서는 달리 표현되고 있는 것들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마태오의 복음서> son of Gabriel Son of God king of wisdom King of the Jews king of wisdom(두 번 이상) Christ(두 번) master of the spirit Son of God son of a celestial son(두 번) Son of David(두 번) descendant of David(두 번) Son of David(두 번 이상) son of a celestial son(반복) Son of God 위에서 왼쪽 줄의 내용은, 우리가 그것들을 한 조작자의 머리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다양성은 몇몇 구절들 속에 "인자(Son of man)"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암시하고 있다. J를 가브리엘 또는 인간과 유사한 '천상의 아들'의 아들로서 표현하고 있는 <마태오 원전>의 어떠한 기록도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명백히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가 그 내용을 복음서 안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말로 대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다. 이그나티우스(Ignatius)같은 초기 교회의 교부들은 천상의 존재들이 우리 인간들의 일에 간섭한다고 하는 생각을, 오늘날의 우리 만큼이나, 용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J가 일개 천사의 아들에 불과했었다는 암시를 조금도 주지 않고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인자'였던 것이다! 이 단어는 구약성서들을 통해 이미 알려져 있는 표현이었다. 그들은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밖의 문장들 속에 있는 'I(나)'라는 몇몇 표현 역시 '인자'로 바꾸었다. 뒷날 몇 차례 더 있은 편집 과정에서, 이 '인자'라는 표현들의 일부는 기독교의 교리인 삼위일체설과 동정녀잉태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신의 아들(神子-Son of God)'이라는 표현으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해석과 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에스겔서>와 구약성서의 다른 부분들에 나타나고 있는 "인자"-주(The LORD) 또는 야훼가 언급하고 있는-라는 표현 역시 바로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에 야훼는, 예를 들어, 에스겔(Ezekiel)로 하여금 그가 단지 인간의 후손에 불과할 뿐, <창세기> 6장 4절에 등장하는 존재와 같은 '신의 아들(son of God)'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고자 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한 히브리어판 구약성서의 여러 군데에 등장하고 있는 '엘로힘(Elohim)'이라는 단어의 원뜻이 "신들(gods, 여기에서는 외계인들)"을 뜻하는 원래의 의미대로 회복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엘로힘'란 단어는 아직도 세간에서는 "엘로하(하늘로부터 온 사람 또는 신)"라는 단어의 복수 형태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기독교의 성서 안에서만 '유일신(God)'이라고 하는 단수적인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유대교 교리는 기원전 첫 1천년 동안 진보해 오면서, 이 복수-여럿임을 나타내는- 형태의 단어가 이방인의 신들(Gentile gods)을 의미하지 않는 한, 유일신 즉 하나님(God)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위와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이것으로 구약성서 안에서 유일신에 대해 두 가지 이상의 용어(엘로힘, 야훼 또는 주님 등)가 사용되고 있는 이유가 설명이 될 것이다. <마태오의 복음서>와 사이에는 그밖에도 크고 작은 차이점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 만일 가 가지고 있는 커다란 차이점들이 신약성서에 들어 있는 큰 문제점들, 즉 최고의 성서학자들조차도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한편으로, 사소한 차이점들은 그들 나름대로 성서상의 작은 문제들-조작자가 주목했을 리 없을 것 같은-까지도 해결하고 있다면, 우리는 , 그리고 의 존재와 관계된 외계인 접촉 사례들을 틀림없는 사실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캐어 보기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한글판 성서의 번역상 문제점 1) 용어 선택의 문제 대표적인 예로서, 'LORD'와 'God'를 들어 보자. 영어 'lord'로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유대인이 자기에게 필요한 능력 또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부를 때 사용했던 단어이다. 이를테면, 종이 주인에게, 백성이 관리에게, 배우는 사람이 스승에게, 가난한 자가 구걸을 할 때 상대방에게 향해 'lord!' 하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우리의 고어(古語)에 있는 '나으리'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를 애초에 한글로 번역할 때 '주님'이라는 전혀 한글에 없고 우리의 머리 속에 들어 있지도 않은 새로운 개념의 단어를 만들어 내어 차별화한 것이 현재의 기독교 맹신의 기초적 문제가 되고 있다. 또 'Eloha(하늘에서 온 사람)'의 복수인 'Elohim'을 일반적인 문장에서는 현재에 있어서도 영어로는 'gods'로 한글로는 '신들'로 표시하고 있으면서, 유독 기독교 성서상에서만 영어로는 'God'로 단수화하여 '유일신'을 의미하고 있으며, 더욱이 한글로는 '유일신'도 아닌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고유명사를 부여하여 나타내고 있다. 이 '하나님'은 애초에 겨레 전래의 '하느님'과 차별화하느라고 '유일함'을 뜻하는 '하나'에다가 존칭인 '님'을 붙여 '하느님'과 유사하면서도 '유일신'이라는 개념을 살린 새로운 아이디어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공격적인 기독교가 이 땅에서 기반을 굳힌 이래로, 1977년에 발행한 공동번역 성서에는 '하느님'으로 개역해 놓고 있어 전래의 '하느님' 자리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영어로는 그리스나 이집트 신화 등처럼 일반적인 신이 언급될 때에는 'god'으로 표현하고, 기독교의 유일신을 나타내는 데에는 대문자 'G'를 사용한 'God'으로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한편으로 기독교인들이 믿는 최고신의 존재를 'God'이라고 하여 '유일신'임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 한글에서처럼 '하나님'과 '신'이라는 전혀 이질적인 표현과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천상의 가르침(Celetial Teachings)」의 번역자 김 경진)- 블라바트스키(Blavatsky)는 빛이나 태양과 같이 우주만물의 형이상학적 바탕을 나타내는 상징이 카발라적 개념과 고대의 비교(秘敎)와 모두 일치하는데(카발라의 본질은 죠로아스터교의 불, 태양, 빛에서 나왔다), 이는 인류 공동의 재산일 뿐 제 5의 아리아 인종의 전매특허도 아니고 그에 속한 여타 인종의 것이 아니라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당시 고대에 전 인류를 관통해 흐르던 무극(원)의 수많은 변용적 이름일 뿐 우랄 알타이족, 이집트인, 중국인, 칼데아인 들이나 제 5 근본인종의 일곱 아인종 누구도 자신들의 고유 작품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말은 엘로힘의 본질적 창조 이야기를 황량한 광야의 군신이자 중동의 지방신인 야훼신에게 덮어씌워 절대신으로 가공했다는 뜻이다. 역으로 반추해 생각하면 10000년 전 유일한 통일제국 환국의 광명사상이 당시 전 세계의 보편적인 원의 개념과 맞닿아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아전인수적? 필자식 해설을 약간 가미하면 우리의 광명사상과 무극에 대한 개념이 전 세계로 영향을 주어 배화교의 성립에 모종의 신학적 실마리를 제공하고 주변의 히크소스 기마족을 통해 콥트족으로 들어가 태동한 아톤신 등의 태양신을 기독교가 흉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필자의 단순한 주장이 아니고 바로 블라바트스키가 주장하는 핵심내용이다. 다음을 보자. 그녀는 모세5경과 심지어 신약성서의 상징조차 힌두교의 상징과 같은 근원에서 온 것이 확실하다고 못박고, 피아지 스미스(Piazzy Smithe) 교수의 말을 인용해 비록 체옵스(Cheops)의 대 피라밋의 치수들이 솔로몬 사원의 치수와 동일하지만 이는 체옵스 피라밋이 솔로몬 사원을 본 뜬 것이 아니라 반대로 솔로몬 사원이 체옵스 피라밋을 독창성 없이 모방한 것이라 단정하고 있다. 그녀는 대 피라밋이 모세 5경 이후에 건설된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심지어, 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도 독창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차용한 것이라 말한다. 뿐만 아니라 모세도 그의 지혜를 이집트인에게 얻었거나 옛 페니키아인의 부모는 아니지만 아마 친척인 콥트인(Coptic:이집트인)으로부터 그리고 히크소스인으로부터 빌어온 것이라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9000 여 년 전, 대륙의 중앙에 12 환국을 거느린 광명제국 환국과 배달국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히크소스인은 동양종족으로 그 변두리 종족이 아니었던가? 뿐만 아니라 그녀는 분센(Bunsen)의 말을 인용해 카미즘(Khamism) 혹은 옛 콥트어(古 이집트어)는 아시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셈족어의 특성을 포함하고 있어 아리아 인종과 셈족이 본래 같은 혈족임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이 사실에 대한 결론으로 그녀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인용한다. 이에 대한 대 사건이 기원전 9000년 전에 이집트에서 일어났다. 사실상 고대의 비교(秘敎)나 아리아인들의 사상에서는 위대한 철학을 볼 수 있지만, 이와 반대로 히브리어의 기록에서는 단지 성적인 신통계보와 남근숭배를 위해 신격화를 만들어낸 교활한 천재적 재간을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는 이러한 교활한 천재적 재간으로 성립된 것이며 지방신에 불과한 야훼의 신위(神位)가 망국적 성경번역자에 의해 국내에 하나님으로 오역(誤譯)되어 소개되면서 본질을 훼손한 것이다. 블라바트스키(Blabatsky)는 신성수 4 방위 수를 언급하면서 7수에 대한 언급을 한다. 보병궁의 성약(『Aquarian Gospel of The Jesus the Christ』대원 刊, 안 원전 역)에도 기독교는 극대 분열수 7수(동양 상수철학에서는 午 君火라 한다) 종교이며 10 수인 쟈드(Jod:10)는 God의 수라 말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원초의 7을 불의 회오리 바람으로 표현하여 동양의 午 君火와 같은 의미로 새기고 있다. 또한 오칼트(신비주의)의 수에서 사각형으로 표현되는 4는 모든 나라와 인종에 있어 신성한 수이며 브라만교, 불교, 카발라와 이집트와 칼데아 그리고 다른 수의 체계에서 같은 뜻이라 말한다. 그녀는 『마누법전』을 인용하면서 히란가르바(Hirangarbha)는 인식 불가능한 원인 없는 원인에 의하여 "태양처럼 찬란한 황금의 알-광휘를 발하는 자궁" 속에서 형성된 최초의 남성 브라흐만이라 말한다. 그녀는 이것이 『리그베다』에서 언급되는 "신들과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유일한 원리는 태초에 황금의 자궁인 히란가르바 속에 나타난다"는 귀절을 상기시킨다. 그녀는 동양의 상수철학 3,8목 2,7화 5,10토 4,9금 1,6수와 같이 황금알 속에서 태어난 최초의 존재인 남성 브라흐만과 여성 프라자파티의 수 값이 10과 6과 5이며 이들의 합은 7의 3배수 21이며, 그 안에 빛과 생명이 있으므로 헤르메스가 말하듯이 "10은 영혼의 어머니"이며(동양에서는 완전수 10무극이라 한다) 수 1은 영(靈)에서 태어나고(풀이하면 화엄경의 말이기도 하다) 10은 혼돈, 여성인 물질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1은 10을 낳고 10은 1을 낳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는 "十便是 太極一/ 一無十無體(1은 10이 없이 순수질료가 되지 못하고)/ 十無一無用(10은 1이 없이 순수형상이 못되는지라)/ 合土居中 五皇極"이라 한 『정역』 十五一言을 꿰뚫은 말이다. 또한 그녀 역시 1과 9의 합은 완전수 10인 유일 창조주라 말하고, 이 창조주는 일신론자가 모든 창조주를 하나의 신으로 합쳐버린 바로 그 창조주에 붙여진 명칭으로 "엘로힘", "아담 카드몬" 혹은 "세피라(왕관)"는 10개의 세피로트의 양성적 총체라 말한다. 그녀는 프리메이슨 리뷰 "히브리인의 도량형"을 인용해 카발리스트들이 7의 배수 3,1,4,1,5의 수 값을 엘로힘에서 발견했으며 본래 칼데아에서 전해 받은 것이라 말한다. 31415는 원주율 파이(∏)수이며 스와스티카의 수로 「측정의 기원」의 저자 랄스톤 스키너(Ralston Skinner)에 의하면 히브리어 Alhim(엘로힘)에서 0을 빼버리고 숫자의 위치를 바꾸어 같은 값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원은 미지의 상징이자 시간인 무한한 원으로 찬란한 태양 오르마즈드(Ormazd) 곧 로고스이며 처음 태어난 자이다. 그녀는 오컬트적인 차원에서 에소테릭(비의적) 부디즘, 베단타 학파, 타라카 라자 요가들이 공히 칠중 우주를 말한다고 결론 내리고 물질우주와 마찬가지로 초 물질우주(형이상학 세계 역시 칠중 우주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모든 천체, 혹성은 다른 여섯 개의 동료 구체와 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7라운드 즉 7주기 동안 제 1 부터 7까지의 일곱 개의 구체 위에서 생명의 진화가 행해진다고 말한다. 지구인류는 2, 3라운드에서 인간의 모든 형태를 경험하고 제 4라운드인 현재에 이르렀는데(공자 플라톤은 5라운드 존재며, 부처, 샹카라차리아는 6라운드 존재) 지상의 모든 생명 주기는 모두 7개의 근본인종으로 구성되어 영적인 인간으로 열매맺는 것으로 끝맺는다. 가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일곱 성령이 만물을 창조했다고 한다. 그런데 블라바트스키(Blabatsky)는 창세기에서 7성령으로 묘사되는 엘로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창세기는 BC1450년-BC1250년에 생존한 모세에 의해 처음 공개된 문서고 디사이플 주석 성경 연대고증에 의하면 모세는 우리 역사로 하면 18대 동엄단군(BC1484-BC1436), 19대 종년단군(BC1435-BC1381), 20대 고흘단군(BC1380-BC1338), 21대 소태단군(BC1337-BC1286) 때 사람이니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라) 수 자체가 없는 무한함, 암흑은 '아디-니다나(Adi-Nidana) 스바바바트(Svabhavat)'인 원(동양적인 무극)이다. 여기서 원초적 고대의 존재인 1수- '아디 사나트(Adi-sanat)'가 나온다. 이는 카발리스트의 세피라와 아담 카드몬과 같으며, 창조주 브라흐마와 같다. 다음에 말씀의 목소리인 1에서 9까지의 모든 수인 질료의 통일체 상태 '스바바바트(Svabhavat)'가 나왔다. 소리(음성)와 영(靈)이 합해져 말씀인 로고스가 현시화 된 9 개의 숫자를 나타내고 비로소 0과 함께 전 우주(무한우주인 아루파 우주)를 포함하는 10 수를 형성한다. 여기에서 7자식과 생명의 숨(Breath)이 나왔으며 이 숨이 비로소 빛을 만들었다. 첫 번째 7 다음에 두 번째 7이 있는데 이는 인과응보라는 카르마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모든 것을 아스트랄광으로 된 「생명의 서」에 기록하는 연대기록관 '리피카(Lipika)'로 '별들의 영들', '혹성의 영들' 또는 7성령들과 나란히 서는 존재들이다. 인간은 지상 유일의 위대한 하나 짜리 단위(Unit)의 7重의 상징이다. 첫 7의 숨들, 원초의 7은 두루 돌아다니며 불의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아카샤의 7 원질에 상응한다. 여기에 맞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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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한 역사는 악연으로 돌고 도는것인지... 道不遠人 [7]

안원전
2006/01/07 15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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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하남 박물원에 소개된 “동이” 송준희 [463]

안원전
2005/12/24 17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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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서) 민족사 되찾기 운동본부 결성 선언문 송준희 [7]

안원전
2005/12/24 13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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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소문) 정부는 상고사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하라 (송준희) [415]

안원전
2005/09/25 14296
*
 *왜(倭), 한국인들의 이름 [5]

안원전
2005/08/03 17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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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준희 중국내 동이계 민족 및 인구 현황 [10]

안원전
2005/06/02 1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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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가 우리 땅이었음을 밝히는 고증사료 모음

안원전
2005/03/19 14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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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의 잔소리 한마디

안원전
2005/01/18 15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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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년간 '조중동' 행태는 망국적, 60년 누린 '반공' 기득권 포기 만무" 소설가 조정래의 시국진단 [1]

안원전
2004/11/22 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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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조선 인정않는 사학계가 중국의 역사침략 불렀다”(단군&고구려 파일 첨부) [6083]

안원전
2004/08/19 19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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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 한민족사가 반도내 한민족사로 왜곡된 배경 道不遠人 [2]

안원전
2004/08/19 1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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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천년역사를 찾아서(환타지 코리아 동영상 포함) [22]

안원전
2003/10/07 9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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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 상고대륙사를 바로본다! 우리 역사를 반도사관의 국통이 아닌 상고대륙사의 국통으로 다시한번 바라본다!-안원전 [8]

안원전
2002/04/12 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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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 상고 대륙사의 대국적인 틀-안원전의 21세기 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연재의 변- [1]

안원전
2002/03/18 1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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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고고학,문화인류학의 동이족 상고대륙사&프리메이슨 서양사&증산도 후천개벽진리) 사이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원전
2002/03/25 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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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세계 유력지 및 국내 일간지, 방송, 잡지 종합 모아보기&검색 사이트 [363]

안원전
2002/03/09 17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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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SD [10]

안원전
2002/03/09 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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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 상고사 사이트 [4]

안원전
2002/01/30 16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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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1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5]

안원전
2002/07/12 18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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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2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6]

안원전
2002/07/12 3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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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3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3/07/23 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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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4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2]

안원전
2002/07/12 1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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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5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2/07/12 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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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6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2]

안원전
2002/07/12 9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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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7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2/07/12 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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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8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2/07/12 8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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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9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2/07/12 8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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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10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1]

안원전
2002/07/12 9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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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11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4]

안원전
2002/07/12 8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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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 12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13부이하 아래에 계속.. [2]

안원전
2002/07/12 26384
383
 시진핑, 건국절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시정부 활동 강조

안원전
2016/09/07 743
382
 역사학계 "건국절 주장, 친일파 위한 '역사 세탁'이 본질"

안원전
2016/08/23 620
381
 [칼럼] 북한 붕괴 임박설, 이명박근혜 정권 망쳤다.

안원전
2016/08/15 726
380
 나라 망신의 주범 박근혜와 한심한 언론들

안원전
2016/07/03 865
379
 이승만이 국부라는 사람들...영화 '레드툼'을 꼭 보라

안원전
2016/04/14 1058
378
 중국의 백제마을 -월주백제,백제허,백제향,요서백제

안원전
2016/03/20 1082
377
 '도요도미 히데요시'(백제계) - '도쿠가와 이에야스'(신라계)

안원전
2016/03/20 1093
376
 상고사 나는 이렇게 밝혀 냈습니다 (최태영 박사)

안원전
2016/03/20 690
375
 (프랑스)민족 반역자~ 친일파들은.. 이렇게 처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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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4 683
374
 총선시민네트워크 등 "김무성·황우여·김을동·이정현·나경원, 총선서 심판해야

안원전
2016/03/03 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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