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 11 1
  View Articles
Name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Link #1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hXxaPkxa7kAxW5pB+T/wznqDCvZZ90tt&qb=uPDC97ijxq6/zSDHwbiuuN7AzL28
Subject  
   프리메이슨 서양사 8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카발리스트는 그들의 믿음을 대표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바 있는 많은 상징들을 사용한다. 상징학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그들의 종교이다. 그들은 그들의 신 루시퍼를 나타내기 위해 빛, 불, 영원한 불꽃, 태양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또한 카발리스트는 모든 것을 내려다 보는 루시퍼의 눈을 나타내기 위해 눈(외눈:1달러 지폐)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그들은 카발라를 추종하는 그들의 형제신도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기를 원한다.
   카발리스트 사원과 집회장소 롯찌(Lodge)내부에서 추종자들은 루시퍼 신앙을 교육받는다. 사원과 롯찌 밖에서 그들은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어찌 보면 상당히 불교적이며 뉴 에이지적인 이념을 전파하려 노력한다. 그들은 이것을 휴매니즘이라 부른다. 카발리스트는 비 카발리스트들의 유일신 신앙을 파괴하기 위해 휴매니즘 이념을 전파하려 노력한다. 유일신 신앙이 한번 파괴되면, 非카발리스트은 루시페리아니즘을 받아들이는데 개방적으로 될 것이므로.  
카발리스트들은 휴매니즘을 나타내기 위해 종종 성적인 상징을 사용하는데 남근은 그들 신의 음경이며, 오시리우스의 남근상인 오벨리스크는 밀교(密敎)와 접맥된 것으로 그들 조직의 생식력과 번식력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곤 한다. 여성 생식기는  카발리스트들이 통제할 필요가 있는 수정(복제)가능한 지역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곤 하는데 때때로 "어머니 지구"로 언급된다. 이들 심볼들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빠리 콩코드 광장,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아주 명확히 보인다.
미국 워싱턴의 대표적 기념물은 그들 신의 남근상을 보여주는 오벨리스크이다. 이 남근상 오벨리스크는 타원형의 백악관을 내려다보고 있다. 타원형 백악관은 카발리스트의 통제를 염두에 두고 풍수적으로 다산(多産)지역을 나타내는 여성 생식기관 뒤에 설계되었다. 실제로 백악관을 통제하는 자는 엄청난 힘을 생산한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 세운 오벨리스크 역시 교황청의 배후에 프리메이슨이 개입해 힘의 재생산을 통해 종국적으로 세계를 장악하겠다는 뱃심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역대 교황의 젊은 시절을 보면 미국의 역대 대통령처럼 프리메이슨였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역사에서 간과하기 쉬운 수면아래의 비하인드 커넥션인 것이다. 알고보면 카톨릭과 프리메이슨은 탄생의 배경이나 역사 그리고 애증관계가 서로 복잡하게 뒤얽힌 메두사의 두 얼굴이며 한 몸의 두 형제인 샴 쌍둥이와 같다. 프리메이슨과 카톨릭의 대치구도는 적어도 외형상 헤롯의 구약 파(HFC)와 신약의 12사도 파의 대결 내지 구약 파의 후신인 템플기사단과 바울 파의 후신들과의 대결  또는 유태인 카발리스트 파와 신약 신봉자들과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카발리스트들은 또한 트라이앵글(삼각형)과 그들의 계급구조를 나타내는 피라밋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소수 엘리트 카발리스트들은 피라밋 정상에 위치해 대중들을 통치한다. 피라밋 하부의 대중은 피라밋 정상 엘리트들을 지탱하기 위해 단지 봉사할 뿐이다. 하부 대중은 카발리스트 운동의 졸병 내지 보병들로 구성한다. 아주 많이 그들은 피라밋 정상에 루시퍼의눈을 배치시키고 있는데,  이는 1 달러 짜리 지폐의 뒷 면을 보면 아주 명백하다.
카발리스들은 또한 두 개의 삼각형을 서로 엎어놓은 6각 별(다윗의 별)을 사용한다. 또한 카발리스트들은 전도된 5각별 또는 정상위의 5각별을 사용한다. 본래 카발리스트의 5각별은 두 개의 포인트가 위로 가고 한 개의 포인트가 아래로 가는 상하 전도된 별인데, 이는 멘데스(Mendes)의 염소의 머리를 나타낸다. 멘데스의 염소는 루시퍼를 나타낸다. 위로 향한 두 개의 포인트는 두 개의 뿔을 나타내고 양 옆의 두 포인트는 귀를 그리고 아래로 향한 하나의 포인트는 턱을 나타낸다.
   카발리스트 종단은 세계 전역에 걸쳐 사회의 모든 관점에 있어 크기와 힘에 있어 다양한 형태로 성장해 왔다. 역사를 통틀어 카발리스트 종단은 서로 다른 이름 아래 아주 다양한 운동으로 새끼쳐 왔다. 그러나 모든 봉사가 카발라에 명기된 목표들을 더럽혔다. 비밀운동과 조직은 그들의 정치적인 중요성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순서표에 기록될 것이다.
  고대 페르시안 카발리스트 종단 중에는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도 있는데 조로아스터는 희브리系 카발리스트로 팔레스타인의 바빌론 포로 뒤 페르시아에 정착한 사람이었다. 이 종단은 희브리 카발리스트 제단을 페르시안 판으로 버전업시킨 것으로 페르시안 루시퍼인 빛의 왕 오로마제스(Oromazes)를 믿는다. 이들 카발리스트 사제는 마기(Magi)라 부르고 최고위 마기는 왕으로 봉사했으며 마술을 뜻하는 매직이란 단어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속사정이 있기에 그들의 주문 중엔 희브리어로 야훼 또는 예호바를 뜻하는 4자음 문자인 YHWH, YHVH 등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종교는 AD 615년에 페르시아에서 중심자리를 내주고 마침내 AD 651년에 아담 1위신과 만물 창조자를 믿는 회교에게 자리를 내주고 현재 이란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예수 당시 신약시대 들어 프리메이슨 조직이 기독교조직(예수 초기 조직)과 갈등을 가져오게 된 것은 예루살렘의 로마총독 헤롯 2세 때이다.
헤롯 2세는 2명의 공모자 아히람 아비유드(Ahiram Abiyud)와 모아브 리바이(Moav Levi)와 함께 솔로몬 성전을 재건축하고 예수와 그의 사도들의 선교행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AD 43년 8월 10일 HFC(Hidden Force Council) 9인 위원회를 열고 모임을 극비로 하고 회의 결정사항은 모두 실행하고 배신자는 죽인다는 맹서를 한다. 헤롯은 많은 유혈사태를 주도했고 방탕한 짓을 했다.
조카인 누이의 딸과 결혼하려 무리를 범했고 예수와 그 사도들 및 설교자들을 탄압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스가랴를 병사들로 하여금 목수용 톱으로 절단해 잔인하게 죽이도록 명했으며, 세례요한을 야만적으로 죽이도록 명해 그 머리를 접시에 담아 가지고 나오도록 했다. 신성모독 죄를 범한 예수에 대해 사형명령을 내리기 위해 그는 자신의 권력과 부를 배경으로 유태 율법주의의 최고기구 산헤드린 대법정과 균등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려고 로마총독으로서의 권력을 십분 발휘했으며, 또한 예수의 사도중의 한 사람인 베드로를 죽이려 공모해 HFC(Hidden Force Council)의 대리인 네로(Nero)를 통해 죽였다. 후일 이 조직은 팔레스타인 전 지역에 40여 개의 신전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뒤에 이름을 "대 동방별(Grand East Star)"로 고쳤다. 얼마 뒤, 이 카발리스트 조직은 로마제국 전역으로 퍼져갔으며 이어 유럽에 뿌리를 박기 시작했다.
템플 기사단은 바로 이 HFC(Hidden Force Council) 조직의 추종자들이 세운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솔로몬 성전을 재 건립하고 팔레스타인에 그들의 팔레스타인 종단을 재건하는 것이다. 템플 기사단의 신전은 "롯찌(Lodge)"라 부르며 지도자를 "그랜드 마스터"라 부른다. 템플 기사단은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려는 회교도에 대해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전쟁을 수행하도록 납득시키려 해왔다. 카발리스트들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이라 보면 된다. AD 7세기 뒤에 팔레스타인은 회교도의 법 치하에 놓여졌다. 크리스챤과 마찬가지로 회교도 역시 유일신을 믿음으로 해서 템플 기사단은 자연히 전 세계에 걸쳐 카발리스트 조직확대에 장애가 되는 회교도를 자신의 적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템플 기사단은 회교도와 싸우기 위해 유럽의 감옥에 있는 범죄자로 구성된 군대를 조직하기로 했다. 유럽의 왕들은 그들의 죄수들이 항상 짐이 되고 있었으므로 죄수들을 방면하는 것이 쉬운 해결책임을 알고 모두 동의했다. 템플 기사단은 카발리스트가 뒷조종하는 이 프로젝트의 극비동기를 모르는 유럽의 일반 기독교인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회교도와 전쟁을 수행할 이 군대를 "십자군"이라 명명했다. 물론 이 부분은 기존의 학교에서 배운 교과과정의 세계사 지식과는 좀 차이가 나는 대목이 될 것이다. 로마가 기독교의 본산이 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A.D. 313) 이전 페르시아의 미트라교가 B.C. 1세기 경 부터 로마로 들어와 이미 안방마님 행세를 한 적이 있으며 유대교의 뿌리가 페르시아산인 배화교에서 기원해서 카발라가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다 융통성 있는 안목이 생길 것이다.
유럽의 왕들을 후원자로 얻은 십자군은 1099년에 팔레스타인을 점령했는데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을 포함한 많은 원주민을 강간, 살육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학살하고 약탈했다. 결론적으로 십자군은 당시 수감되어 있었던 범죄자, 살인마들이었음을 그곳에서 재확인해 준 격이 되었다.
이들 카발리스트 템플 기사단의 첫 번째 지도자는 후일 1099년, 첫 번째 예루살렘 십자군 왕이 된 코데이 후루와 드 부일라(Codei Froi de Bouillar)였다. 그 뒤, 20년 뒤인 1119년, 템플 기사단은 팔레스타인에서 훔친 부를 배경으로 왕실에게 자금대출을 해주는 등 국제금융가 내지 국제 기업가로 성장하여 왕과 왕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집단의 하나로 자리잡는다.
그리하여 12 세기, 13 세기 내내 템플 기사단은 그들의 카발리스트 종단을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집단 곳곳에 침투시킴으로써 유럽 전역에 세(勢) 확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앨버트 맥키(Albert Mackey)'가 쓴 「프리메이슨 조직의 역사(The History of Freemasonry)」라는 책을 보면 프리메이슨 조직이 이집트에서 곧바로 영국으로 들어간 증거를 제시하는가 하면, 디오클레시우스(Diocletian) 로마황제 시절 4명의 프리메이슨 왕이 박해받아 순교한 이야기라든가(83쪽) 바빌론과 앗시리아로 부터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유대로, 유대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고 한다.(84쪽)
그래서 얻은 이름이 '여행하는 프리메이슨'이라는 것이다. 프랑스로 들어간 기원에 대해 그는 '나무스 그레쿠스(Namus Grecus)'라는 기이한 프리메이슨 한 사람이 솔로몬 궁전을 짓다가 프랑스로 들어가 프랑스 왕족 중의 한 사람인 '샤를르 마르뗄(Charles Martell)'을 만나 씨를 뿌리게 된 것이라 한다. 샤를르 마르뗄은 나무스 그레쿠스의 프리메이슨 과학에 심취한 나머지 그를 고용해 많은 급료와 깍듯한 예절로 후대하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후일 샤를르는 프랑스 왕이 되어 프리메이슨 조직이 없던 프랑스에 많은 사람을 교육시켜 프리메이슨으로 인도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프리메이슨사를 보면 유럽의 교회와 국가는 시대마다 국가마다 프리메이슨 조직을 압제하고 파괴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벌여왔다. 그러한 박멸운동은 크게 6번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The Story of Freemasonry」by W.G. Sibley) 프리메이슨 조직의 최고 숙적 로만 카톨릭 교회에 앞서 왕실이 나서 공개적으로 탄압한 예까지 있다. 1429년 영국 법령은 집회에 참석한 모든 메이슨 회원을 중범죄인으로 만들어 구속과 무거운 벌금 등 엄벌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것이 집행된 적은 결코 없었다. 1561년,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의 프리메이슨 종단의 총 본산인 그랜드 롯찌(Grand lodge)를 해산하라 명했으며 메이슨 회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집회장소인 롯찌(Lodge)에서 회합하는 것을 금했다.
그러나 우습게도 적지 않은 그녀의 왕실 관리들이 메이슨 조직의 신입회원으로 가입했으며 이어 그들은 여왕으로 하여금 문제의 불쾌한 명령을 철회하도록 끈질기게 졸라 권유했다. 프랑스의 경우 1637년에 프리메이슨 조직을 없애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메이슨이 정부에 위험할지 모른다는 혐의가 있었지만 여론에 의해 묻혀버렸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쇤부르 궁전에서 엄청난 미녀로 그려지고 있는 독일의 마리아 테레사(Maria Theresa) 여제(女帝)는 1747년 프리메이슨을 남편으로 둔 궁정 부인들로부터 반 메이슨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메이슨인 그들 궁정부인들의 남편들이 아내들을 구워삶아 비밀을 강요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여제(女帝)는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메이슨을 현장 구속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메이슨 회원이었던 황제 요셉 1세는 궁정부인들로서는 아주 실망스럽고 분하게도, 방향을 잘못 잡은 그 궁정여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어리석은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했는데, 그녀의 남편들은 아마도 "비밀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 보다 더 가혹한 것은 없으며, 여성들은 하나를 지키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는  라뽕뗀(La Fontain)의 슬기로운 비평을 읽은 적이 있었다.
1745년, 스위스 베른 개신교 법원 대 회의에서는 메이슨 조직을 탄핵해 프리메이슨으로 실제 밝혀진 사람은 즉시 가입되어 있는 해당 메이슨 단체를 탈퇴하겠다는 공개선언을 해야 하며, 공개탈퇴를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자는 무거운 벌금과 어떠한 고용도 금한다고 규정하는 법령을 포고했다.  1745년 스털링(Stirling:영국 에딘버러 인근 도시) 종교회의의 적대적인 조치와 1755년 에딘버러 종교회의에 따라, 1757년 스코틀랜드 조합원은 메이슨들에게 그들이 가입에 즈음해 인간에 대한 모든 본성을 포기하도록 요구받았는지 여부와 그들의 반성서적인 의식에 성서가 사용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열왕기1 7장 21절이 읽혀졌는지의 여부에 대해 심문 받도록 명했다.
심문을 거부하는 모든 자는 스캔들 속의 인물로 낙인찍고 견진성사(堅振聖事)에 참여하지 못함을 선언했다. 대답에 순순히 응한 자에 대해서는 힐책과 훈계로 죄를 일소하고 프리메이슨 조직의 올가미에 타인을 끌어들이지 않도록 엄격히 조치했다. 스웨덴의 프레데릭(Frederick) 1세는 1740년 국내에서 프리메이슨이 발견되면 사형에 처하도록 했는데 이는 바로 전 해에 조치를 취한 폴란드 프레데릭 아우구스투스 3세(Frederick Augustus 3)의 전례에 따른 것이었다.
1751년에 스페인의 챠알스 3세(Charles)는 나폴리에서 메이슨 의식을 금지시켰다. 베니스의 프리메이슨 지부 롯찌(Lodge)는 단원들을 모두 추방하는 바람에 없어졌다. 1818년에 요한 6세(John 6)는 브라질로부터 프리메이슨 금지 포고령을 내렸다. 18세기 후반 동안 영국에서는 프리메이슨 조직이 남의 손가락을 받음과 동시에 성직자들의 매도로 공격을 받았다. 당시 프리메이슨 단원의 품위와 진지한 인격은 예외없이 술이나 마시고 떠들기 좋아하는 수많은 여타 사회단체와 비교해 두드러져 보였으므로 일반적으로 메이슨 조직을 부러워했다.
연회를 좋아하는 이들 조직원은 술마시고 노래하고 잡담을 하는게 주요 일과로 프리메이슨 조직을 풍자하고 조소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이 시대에 각종 프리메이슨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1793년 이전의 100년 동안은 프랑스, 영국 작가가 쓴 이러한 책들이 봇물을 이루어 메이슨 도서관에 45권의 책이 희귀본으로 소장되어 있을 정도이다.    
로만 카톨릭 교회는 그들 스스로 명백히 자신이 속한 비밀조직에 반드시 맹서, 서약하게 되어 있음을 자인한 바와 같이, 전 유럽에 걸쳐 확산하기 시작하자 깊은 혐의을 두고 프리메이슨 조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메이슨은 고해성사를 하면서 그들의 비밀까지 누설하지 않음과 단원들이 양심의 자유 및 관용과 자유의 원리를 교육받는 것을 알게된 후부터 그들은 뿌리깊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한 증오는 프랑스, 이태리 롯찌(Lodge)가 교황의 세속적 권력과 배치되는 정치적 모험에 참여하는 것에 의해 종종 도를 더해갔다.
로만 카톨릭 교회는 1735년 홀랜드(네덜란드)의 프리메이슨 조직을 박멸하는 정부 포고령을 선포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암스테르담 롯찌(Lodge)는 그 명령을 무시하고 비밀리에 모임을 계속했다. 결국 그들은 현장인 롯찌에서 적발, 체포되어 자신들이 메이슨 단원임을 시인했으며, 그들 조직이 신과 인간의 법에 혐오스러운 어떠한 것도 가르친 적이 없음을 맹세하고, 그들이 법정에 나아가 몇 몇 특정인을 선정해 입문식에 대한 함축적인 비밀을 토로하면 그들이 내리는 법적인 판단을 따르겠다는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 제안은 성사되었다. 결과적으로 사태가 역전되어 오히려 마을서기가 메이슨 단원이 되었으며 그들의 가르침은 아주 좋은 것으로 인정되어 행정장관이 몸소 입회를 지원해 허락되자 몹시 만족스러워했다. 교황 클레멘트 12세는 1738년 일련의 교황의 맹렬한 비난을 담은 첫 번째 교황교서를 발(發)했다. 그 안에서 그는 프리메이슨 조직이 자신들의 제단에 모든 종교인을 받아들이고 의무적으로 부과된 고해성사에서 비밀을 토해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했다.
이듬해 그는 그들의 모임장소인 롯찌(Lodge)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1000크라운의 금화를 벌금으로 부과하고 고문에 처한다는 위협적인 포고령을 발포했다. 이 포고령으로 인해 스페인, 포루투갈의 몇 몇 메이슨 단원이 투옥되고 종교재판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 종교재판은 메이슨 단원에게 비인간적인 고문을 가해 조직의 비밀을 강요했지만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당초 노예선으로 보낼 그들의 의도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교황체제는 혹심할 정도의 다양한 각종 포고령, 서간문, 유시,  교황 회칙 등으로 프리메이슨 조직을 탄압했다. 이러한 각종 포고령을 발한 역대교황은 대략 1738년 클레멘트 12세, 1751년 베네딕투스 14세, 1814년 비오 7세, 1825년 레오 12세, 1829년 비오 8세, 1832년 그레고리 16세, 1846, 1865, 1869, 1873년 비오 9세, 1884, 1890, 1892년 레오 13세 등이다. 1873년 비오 9세의 격렬한 비난은 메이슨에게 유리하게 된 독특한 케이스가 되었다.
이탈리아 그랜드 롯찌의 기록은 그가 프리메이슨 단원 신분으로 교황으로 선출된 뒤에 프리메이슨 조직에서 추방된 적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리발디 장군의 협조로 교황체제를 타도하고 이태리에 종교적, 헌법적 자유 체제를 수립한 최고위직 33급 프리메이슨 빅토르 엠마누엘(Victor Emanuel)은 교황이 젊은 시절 프리메이슨 입문식을 통과해 롯찌(Lodge)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고 전한다. 비오 9세는 유죄로 밝혀져 출교되었으며, 빅토르 임마누엘이 그의 제명 선언서에 날인했다. 그때 이태리 왕과 그 나라에 있던 그랜드 마스터는 메이슨 세계 전역을 순방했다.
카톨릭이 이같이 프리메이슨을 비열하고(Vile), 해로우며(Pestilential) 지옥에나 갈 정도이며(Deadliest), 악마적이라고(Diabolical) 매도하고 박해하는 과정에서 프리메이슨은 거의 예외없이 로마 교회에 대해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메이슨 단원이 카톨릭 신도가 되면 메이슨 조직을 그만 두었고, 카톨릭 신도가 메이슨 조직 단원이 되면 교회에서 파문되었다. 오점으로 얼룩져 차마 말로 담기 어려운 종교재판 이후 두 조직간의 불꽃튀기는 내홍(內訌)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경험론을 주장한 영국의 근세 철학의 비조 정도로 우리가 알고 있었던 프란시스 베이컨이라 는 인물이 수많은 역사자료에서 미국을 영국의 식민지로 만드는 프리메이슨 조직의 최고 책임자였다는 사실은 실로 처음 듣는 이야기로 의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는 인간에 의한 자연의 합리적 지배를 목표로 삼은 "〈영국 유물론〉과 모든 〈근대실험〉과학의 진정한 선조(先祖)"로 추앙 받는다. 더욱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옥새 책임자인 국새상서이자 궁정법률가였던  니콜라스 베이컨의 둘째 아들답게 그 역시 런던의 그레이스 인(Grace Inn)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여왕의 법률 고문 직과  절대왕정의 붕괴조짐에 대한 반동정책으로 왕권신수설을 부르짖은 바 있는 제임스 1세의 충실한 대변인으로 왕실변호사, 검찰총장, 국새상서(옥새책임자), 대법관을 지내면서 영국 왕실의 이익을 대변했다.
비록 그는 정치생활의 마지막을 수뢰혐의로 마감했지만 유토피아 상을 제시한 그의 저서「신 아틀란티스」에서 기초연구와 기술과학을 관장하고 그 성과들을 생산부문에 응용하는 통일적 관리조직을 '솔로몬의 집'이라 한 것에서 프리메이슨의 비조 히람 아비프와의 연계성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는 과학의 발전이 인간생활을 향상시키는 결정적 수단이라고 생각하여 자칫 신학이 그릇 해석되어 자유로운 철학과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신학을 철학과 과학으로부터 엄격히 분리하고자 했던 유물론적 현실주의자였다. 그러한 그가 영국왕실의 미국식민지화 책임자인 프리메이슨 종단 책임자로 있었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잘 알다시피 유대주의의 핵심적인 두 축이 아래로는 사회주의자와 볼셰비키(bolshevist)이고 위로는 거대 금융, 펀드가 아니던가? 이들 두 축은 첫째, 지상의 신의 왕국이라 할 현세를 중시하면서 이를 배경으로 내세로의 희망을 견인해 나아가는 기본 칸셉과 둘째, 그와는 정 반대의 입장인 지상천국에 근거한 크리스챤적 도그마를 그 배경으로 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좋든 싫든 사회주의와 무신론, 보편적인 무정부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세상이 유태전략과 프리메이슨 전략의 한 축을 지렛대로 삼아 돌아가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프리메이슨의 입단예식은 일종의 종교의식이지만 해괴할 정도로 괴기스럽고 으스스한 것이 특징이다. 언제 템플라(Templar)들이 기괴한 입문의식을 채택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프리메이슨 조직이 드루즈 교단, 어재신 교단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입문식 마저 그들 교단에서 차용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오래 전에 팔레스타인을 떠난 연고로 다른 비밀 조직에서 차용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과의 빈번한 교류로부터 입문의식을 변경, 변형했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아무튼 이 의식은 고대 페르시안 비밀 제단인 마기(Magi) 입회식하고 여러모로 상당히 비슷하다. 카발라 사상이 마기제단(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되었음은 이미 밝힌 바다. 고대 페르시안 마기 입회식을 보면 입회자의 성실성과 적합성을 가려내기 위해 수개월간에 걸친 일종의 시험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속에는 비밀리에 마련된 지하동굴의 적막함과 어두움 속에 무려 50일간이나 갇혀 지내야 하는 시련도 들어 있다.
가령 눈을 가린 채 기괴한 형상을 한 정체불명의 자에게 인도되어 먼저 절벽으로 인도된 다음, 음침한 동굴 내부로 인도되어 그곳에서 굶주린 야수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그에게 달려나오는 소름끼치는 물체와 맞딱뜨려야 한다. 또 갑자기 보이지 않는 손에 나꾸어 채져 어두운 동물우리로 떠밀려 사자, 호랑이, 늑대 등으로 보이는 야수들에 의해 공격을 받는다. 그는 탈출은 염두도 못 낸 채 던져지고 짓밟히는 등 온갖 상처를 받으며 시달린다. 그들 야수들은 물론 변장한 그들 조직 회원들이다.
또 다른 동굴로 들어가면 그 곳에서는 뇌성같은 소리가 메아리쳐 오고 끔찍할만한 불길이 끊임없이 옥죄 온다. 만일 이 과정에서 너무 지치고 공포스러워서 졸도하게 되면 멋진 음악과 향기로 가득 찬 안락한 방으로 보내져 흥분된 감각을 안정할 수 있도록 배려된다. 그런 다음에는 세 명의 존경할 만한 사제가 다가와 그 중 한 사람이 꿈틀거리는 뱀을 가슴에 던진다. 그러면 파충류의 혐오스러운 냉기를 피부로 느끼며 문으로 안내되어 비탄과 절망의 무서운 소리를 지른다. 그 곳에서 그는 사람들이 지옥의 고통을 감내하는 무서운 장면들을 보게 된다.
이것들은 각기 많은 무시무시한 장면들을 연출하는 7가지의 지하여행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인데 그들 각 코스는 아무리 강심장일지라도 교란되지 않을 수 없고 극도로 견딜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벤트로 준비되어 있다. 만일 그의 힘이 끝까지 버티어내면 아파트로 꾸며진 가장 성스러운 방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아파트는 호화롭게 치장되어 있어 아주 매혹적인 음악이 흐르는 동안 휘황찬란한 태양과 아름다운 별들이 미니어쳐로 만들어진 하늘에 떠다닌다. 동쪽에 홀연히 황금색 옥좌에 앉은 존재가 나타나 입회자는 그 앞에서 절을 하고 비밀제단의 서약을 맹서한다.
이러한 의식은 고대 이집트 이시스(Isis), 페니키아의 카비리(Cabiri), 로마의 사바지안(Sabazian), 그리스의 엘레우시니언(Eleusinian:엘레우시스는 고대 그리스 Attica국의 도시로 엘레우시니언 祭典은 곡식의 여신 Demeter를 받드는 엘레우시스 제전을 말한다)의 입회의식과도 비슷하다. 그 가운데 프리메이슨 조직 하나만이 살아남아 현대 문명사회에 살아있는 영향력으로 등장해 가장 풍부한 전설, 전통 그리고 역사적 사실들을 남기고 있다.http://www.cheramia.net/board/view.php?id=bbs6&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00
   프리메이슨 입단식 역시 앞서 소개한 마기 입단식과 비슷한 기괴한 의식을 치룬다. 가령 프리메이슨의 지파인 미국 예일대학(클린턴, 부시 부자가 동문으로 1701년 10월 프리메이슨 관여 코네티컷주 종교제단 설립. 2000년이 개교 300주년)의 해골종단(The Skull and Bones Society:부시 전 대통령이 대학시절 회원)의 경우 입회자는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체로 해골과 뼈 그림으로 장식된 검은 관속에 들어가 눕는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붉은 리본을 묶은 남근을 잡고 자위행위를 하는데 사정을 할 때는 그 느낌을 고함치듯이 큰 소리로 묘사해야 한다.
  또 다른 프리메이슨 입단식을 보면 편안한 흰색 셔츠와 바지를 입되 바지 한 쪽은 무릎위로 걷어올린다. 셔츠는 앞을 잠그지 않고 가슴을 드러내며 검은색 수건으로  두 눈을 가리되 목에는 사형수처럼 밧줄을 건다. 목에 걸린 밧줄을 끌고 제단에 나아가면 많은 간부들 앞에서 칼을 왼 쪽 가슴에 겨눈 채 조직원으로서 프리메이슨 조직에 목숨까지 걸고 충성할 수 있는지 필요한 문답을 한다. 충성의 맹세를 하면 심장을 겨눈 칼이 치워지고 기도로 예식을 끝내고 안대를 푼 후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직각자와 컴퍼스, 광선, 코란, 성경 등을 준다.        
  영국인 작가들과 상고학을 연구하는 학생들 사이에 이상의 페르시안 마기들의 비밀입문 의식에 대한 묘사와 솔로몬 신전 건축의 마스터 건축가이자 기술자였던 히람 아비프(Hiram Abif)에 대한 호기심 강한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히람 아비프는 구전에 의하면 메이슨 제단을 설립하는데 솔로몬을 도운 것으로 전해진다. 시바(스바)의 여왕이 부와 영광의 왕자인 솔로몬을 방문했을 때 그의 건축물에 대한 안목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그는 그녀의 유혹적인 매력의 희생자로 넘어갔으며 결혼으로 그녀를 잡아두려 했다. 심사숙고 끝에 그녀는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
뒤에 거듭된 요청으로 솔로몬은 신전에서 일하는 히람 아비프를 그녀에게 소개하기로 되었는데, 아비프가 신전에서 하는 일은 그녀에게 아주 특출한 재능으로 보였고 이는 뜻밖의 사실이었다. 이 납달리 족의 아들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그녀의 그윽한 눈 속으로 시선을 던졌으며 그녀의 눈은 의미 있는 빛으로 반짝였다. 여성을 다루는데 능수 능란한 솔로몬 왕은 그 위대한 조각가를 만나자마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변한 여왕의 눈빛을 즉각 알아챘다. 그리고는 질투심으로 동요되었다. 분함에 못 이겨 그는 자신의 친구를 처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여왕은 시녀들만 몇 명 거느리고 예루살렘 근처의 숲 속에서 비밀리에 히람을 만났다. 그는 침묵을 지켰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사랑을 고백했다. 그녀는 그의 팔에 자신의 몸을 내어 맡겼으며 그들의 입술은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그가 내뱉는 사랑의 고백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적으로 응답했다. 솔로몬이 그들의 연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을 깨달은 그들은 각기 다른 시간에 예루살렘을 떠나 아라비아에서 만나기로 계획했다. 그러는 사이 솔로몬은 신전에서 일하는 8만 명의 프리메이슨(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는 신전 석공) 중 신전건축 지성소 출입이 허용되는 15인 중 몇 몇 프리메이슨에게 히람이 죽으면 기쁠 것이라 힌트를 줌과 동시에 그와 싸울 변명거리를 주었다. 그 결과 히람은 신전에서 탈출을 모색하는 동안 살해되었다. 그 변명거리는 마스터 메이슨인 히람만이 알고 있는 건축설계 및 건축비법을 알아내면서 시비를 걸어 살해하는 것이었다. 신이 되는 생명원리와 건축비법을 히람이 가르쳐주지 않고 지성소에서 기도를 끝낸 뒤 퇴근하자 솔로몬의 명을 받든 동료들이 수직자와 수평자 및 쇠망치로 살해했다. 이로써 그는 프리메이슨의 원조로 추앙받게 되었다.
  1770년 제임스 브루스는 고대 아비시니아 왕국이었던 에티오피아 북부 고원지대의 이타나 호(湖) 호반에 위치한 고도(古都) 곤다르의 한 수도원에서 말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에녹서」와 에티오피아인들이 신성시하는 「케브라 나가스트」를 발견했다. 「케브라 나가스트」에는 히람을 죽인 솔로몬과 시바 여왕 사이에 아들 메넬리크가 태어나 시바 여왕과 공모해 솔로몬사원에 비장된 전설적인 율법 궤를 훔쳐 아비시니아 왕국에 숨겨놓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히람의 비법은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앙과 궤를 같이한다. 오시리스는 지혜의 신인 토트왕의 장남으로 왕위계승을 질투한 동생 셑(Seth)에 의해 죽은 비운의 존재. 아내 이시스는 셑에 의해 토막내어 전역에 뿌려진 시신을 거두어 발견한 곳마다 사당을 만들고 신앙을 보급하지만 나일강의 물고기가 먹어버린 남근만은 구할 수 없어 서럽게 운다. 태양신 라는 이를 대신해 다른 것을 붙여놓도록 했고 그것이 오벨리스크다.
프랑스 빠리 콩꼬드 광장 중앙에 보면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 자리에는 본래 루이 15세 기마상이 있었으나 프랑스 혁명 때 없어지고 대신 로베스 삐에르가 만든 기요틴(단두대)을 설치했던 곳이다. 우습게도 프리메이슨 단원이자 프랑스혁명의 얼굴마담인 마라, 당통, 로베스삐에르가 마치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프리메이슨 본연의 목적과 다르게 정적들을 끝간데 없이 제거하고, 혁명을 계기로 정권욕에 눈멀자, 프랑스 혁명을 기획 조종하던 실세 프리메이슨 지도자들은 이에 크게 실망하고 얼굴마담 로베스삐에르를 그 자신이 설치한 기요틴(Guillotine)에 매달아 제거시키고 말았다. 그 뒤 샹폴리옹이 로제타 스톤을 발견했을 때 바로 이 오시리스 남근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가 이집트로부터 반입되어 샹젤리제가의 입구인 콩꼬드 광장에 프랑스인의 정기의 상징으로 세워진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3대 이념인 리버티(자유), 이퀄리티(평등), 후레이터니티(박애)는 본래 프랑스 혁명을 준비, 계획한 프리메이슨의 이념가들이 만든 말이다. 특히  우리가 흔히 박애라 말하는 Fraternity라는 말이 본래가 프리메이슨 종단 단원들의 형제애, 프리메이슨쉽을 의미하는 단어로 쓴말임을 기억하면 프랑스 혁명이 프리메이슨에 의해 기획, 조종되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로스챠일드와 관련해 자세히 후술하고자 한다.
  정기가 가득찬 채 발기된 오시리스 남근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는 본래 이집트 신전 앞에 세워져 있던 것으로 밑바닥이 사각형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꼭대기는 피라밋으로 만들어진 암석 조각품이다. 미국의 상류사회를 지배하는 와스프(WASP:백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를 지배하는 세력은 유태인 프리메이슨 세력이고 이들을 지배하는 세력은 이스라엘 본토 프리메이슨 세력이며 이스라엘을 통째로 지휘명령하는 세력은 영국내 프리메이슨 총 본산 그랜드 롯지이다.
후술하겠지만 미국은 베이컨을 비롯한 영국 프리메이슨들이 만든 나라이며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신대륙 프리메이슨 지부장(마스터 메이슨)에 불과했다. 1884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세워진 169m의 워싱턴 기념비가 바로 프리메이슨의 상징으로 세운 오벨리스크인 것이다. 음양의 태극이념이자 밀교의 섹스심볼 표시가 다윗의 별인 6각별(삼각형 두 개를 음양으로 포갠 것)임을 안다면 프리메이슨 조직과 오벨리스크의 개념과 연관성도 쉬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프리메이슨 권위자 애디슨(Addison)은 메이슨 조직의 기원연대를 성지순례자를 보호하고 안내하기 위한 목적으로 9 명의 기사들이 신성한 전우애로 참전한 예루살렘 전투에서 명예 제대한  A.D. 1113년으로 잡는다. 프리메이슨 조직의 권위자 앨버트 맥키(Albert Mackey)는 그 보다 5년 뒤인 1118년, 위그 드 뻬이양(Hugh de Payens), 고드후레이 드 생 알드마(Godfrey de Aldmar)와 역사에 이름이 전하지 않는 7명의 다른 기사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너무 가난해서 말 한 마리에 두 명의 기사가 탔으며, 예루살렘 왕 볼드윈(Baldwin) 2세에 의해 신전의 사유지 일부를 영지로 받을 때까지 고정된 안주처 마저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의 단체명이 "그리스도의 불쌍한 병사들과 솔로몬 신전(The Poor Knights of Christ and the Temple of Solomon)"이었으며 간단히 "템플라스(Templars)"로 약칭되었던 것이다. 병사들은 무소유를 원칙으로 했으며 모든 소유는 조직 의 소유를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무소유의 청빈한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이 일반인과 왕족에게 신뢰를 주었고 왕들은 이들에게 영지를 하사하고 값진 금은보화로 포상했다. 그들의 재산은 눈부시게 늘어났으며 조직도 눈부시게 팽창했다. 12 세기 말까지 그들의 수는 3만 명에 달했으며, 예루살렘, 트리폴리, 안티옥, 싸이프러스, 포루투갈, 카스티유와 레온(스페인),아라곤(스페인),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독일, 시칠리 및 이탈리아에 영지를 소유했다. 그러나 교단의 우두머리 그랜드 마스터는 늘 팔레스타인에 머물렀다.
수 백 년 뒤에 그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그것은 유럽 각국의 왕과 교회 지도자의 탐욕을 불러일으켰다. 혹자는 전 유럽에 산재한 풋나기 집단이 어찌 그리 짧은 기간에 대중의 인기와 왕실의 인기를 얻었는지 의문이 갈 것이다.  종교권력이 가장 강했던 이 시기에 가장 높은 종교권력을 배후에 업지 않고는 전 유럽에 걸친 왕실의 지원을 받는 것을 포함, 모든 것이 불가능한 것임은 불문가지.
물론 이는 당시에 두번째 교황으로 언급되곤 했던 시토 수도회(Cistercian) 대 수도원장(Abbot)인  베르나르 끌레르보(Bernard of Clairvaux)의 강력한 힘을 얻어서였다. 당시 그는 뒤에 생 베르나르(성인 베르나르)로 시성(諡聖)된 유럽의 가장 막강한 인물로 보수를 받는 기존의 세속 기사들을 혹평하고 그보다 오랜 지명도를 지닌 『하스퍼털러 기사단(Knights of Hospitallers)』조차 『템플기사단』 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함으로써 템플기사단에 대한 호의적인 지도노선을 다졌다.
베르나르 끌레르보(Bernard of Clairvaux)는 1127 년에 템플기사단의 종규(宗規)를 만드는트로이 종교회의를 지지함으로써 템플기사단의 지지를 유지했다. 그 때 만든 종규는 자신이 이끌던 시토 수도회의 행위규정을 본 딴 것이었다. 이때 만든 종규로 인해 템플기사단은 교황에게 대답할 필요나 책임질 필요가 없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변모했다.
당시 교회는 고리대금을 금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독자적인 조직운영은 템플기사단으로 하여금 폭리를 취하는 금융 대출업을 가능하게 해 부의 신속한 증식과 그로 인한 조직의 신속한 확산을 가능하게 했다. 템플기사단은 이제 일반 대중과 유럽 왕실에게 가장 존경을 받으면서도 가장 두려운 존재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균형을 취하는 역사는 역시 그들의 신속한 부흥과 몰락을 연이어 가져왔다. 역사가들과 언론인들은 다같이 그들이 전쟁과 선박조종술, 상업적 통찰력, 심지어 금융업에 마저 뛰어난 재주가 있었음을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그들이 몰락을 향해 다가간 과정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의 성지지배 1 세기가 거의 다될 무렵인 1187년, 성지는 또다시 회교도의 손에 떨어져 사라센의 지도자 살라딘(Saladin)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료들은 많은 십자군과 템플기사단이 생명을 잃은 하틴(Hattin) 전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운명의 그 전투에서 그들은 오랫동안 열심히 싸웠지만 이득은 없었다. 살라딘의 병사들은 아주 잘 훈련된 베테랑들이었으며 수적인 면에서도 훨씬 앞서 있었다. 마침내 기독교군은 회교군에게 포위되어 모두 사로잡힌다.  
십자군들이 마치 노예처럼 줄줄이 묶여 있는 동안, 템플기사단은 살라딘에게 잔뜩 겁먹었으며 강제로 무릎꿇리어 즉시 목이 베어졌다. 이교도의 노예로 전락한 많은 십자군들이 템플기사단을 자청해 자비롭고도 신속한 죽음을 선택했다는 기록들이 많다. 하틴 전투의 손실과 그보다 1세기 뒤인 1291년에 있었던 경지의 소유권 이전 이후, 유럽인의 마음과 가슴속에서 템플기사단의 인기가 폭락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수도사 전사의 선두주자인 템플기사단은 성지를 빼앗긴 것에 대해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그들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 전 유럽에 산재해 있는 자신들의 영지, 성, 교회로 돌아가 한때 전쟁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처럼 원거리 무역을 폭넓게 전개하고 금융 대출업을 전개했다.  수년이 지나자 심지어 유럽의 전제군주들도 그들로부터 금융지원을 받는 막강한 힘을 소유하게 되었다.
세 개의 교단 중 『하스퍼털러 기사단(Knights of Hospitallers)』은 팔레스타인을 떠나자 로데스(Rhodes) 섬에 곧장 모여서 200년을 지낸다. 그리고 나서 다시 말타(몰타:Malta) 섬으로 옮겨 마지막 세기의 끝 무렵 교단이 쇠락할 때까지 머물게 된다. 『튜튼 기사단』은 독일의 문명화되지 않은 곳으로 밀고 들어가 그 지방의 이교도에 대해 십자군이라는 본연의 호전적인 성향을 십분 발휘하는 것으로 그 존재의미를  새롭게 한다.
한편 전 유럽으로 흩어진 템플기사단은 역사가들로부터 중세유럽의 건축술에 열정적으로 공을 쏟았다는 평가를 받아 기독교인들이 마치 사라센의 작품 세계 속에 있었던 착각을 들게 할 정도의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그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교회나 건축, 성을 짓는데 이들 사라센의 건축술을 기본으로 해서 응용하고 심화시킨 것이다. 독일의 퓨센 성이 되었든 남불의 지중해변에 있는 작고 예쁜 까르까손느 성이 되었든 아니면 에딘버러의 고성이나 이태리 시에나의 고성이나 프라하의 고성이 되었든 그 근본은 국가별로 스타일만 달리 한 것일 뿐 이래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같이 유럽 건축술의 기원이 되는 모델을 보려면 터어키 이스탄불만 가도 이들이 본 뜬 건축미의 백미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1836년 영국 왕실 아카데미에서 "예술부흥의 원인"에 대해 강의한 영국의 저명한 아티스트 웨스트마코트(Westmacott)였다. 그는 영국과 유럽에서 문예부흥을 물질적으로 지원하게 된 두 요인이 십자군과 북서 유럽에서 프리메이슨 제도의 수립, 확대였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성지에서 돌아온 이들 모험가들은 사라센의 다양한 앞선 개념들을 가지고 들어와 자신들의 입맛대로 성이나 교회, 궁전 등을 짓고 싶어했다는 것이며, 이에 따라 1차 십자군으로부터 100년 안에 남서 유럽에 600여 개의 대표적인 각종 성, 교회궁전 등의 건축물이 서게 된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중세적인 템플기사단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고 좀더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구약에 등장하는 장막성전 자체가 동양의 모델에서 본을 뜬것임을 알 수 있다. 신지학의 조종(祖宗) 블라바트스키는 『비밀교의(Secret Doctrin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에는 오컬트적인(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있다. 에스겔은 신의 영광은 동쪽에서 온다고 말하며, 예레미야, 이사야와 시편의 작가는 태양아래 있는 모든 악은 북쪽과 서쪽에서 온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성 앰브로스(St. Ambrose)는 "우리들은 북풍을 저주하고, 세례식 때 먼저 서쪽으로 향하는 것은, 그 방향에 살고 있는 자를 더 잘 거부하기 위해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동쪽을 향해 돌아선다.(빛, 진리는 동방으로부터가 아니던가) '마하라자' 즉 동서남북 기본방위를 지배하는 왕에 대한 신앙은 보편적이었고 지금의 기독교에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용어를 우리 우주의 4대 지역을 감독하기 위해 각 지역에 놓여있는 무형의 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클레멘스 알렉산드리누스(Clemens Alexandrinus)에 의하면 이집트의 사원에서는, 성소와 회중이 모이는 장소 사이에 커다란 커텐이 쳐져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유태인들도 마찬가지다. 양쪽 커텐(장막)은 모두 5개의 기둥(5각별) 위로 드리워져 있었으며, 그 기둥들은 우리의 5 감과 5 개의 근본 인종을 상징했다. 커텐의 네 가지 색은 4 방위와 지상의 4 대 요소를 나타내고 있다. 그 전부가 비유적 상징이었다.


프리메이슨 비전은 유럽의 중세 성전이 회교성전에서 비롯되었음을 전한다

이집트인들의 상징은 영적인 것이었지만, 유태인들의 상징은 순전히 물질적인 것이었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4 대 원소와 가상적으로 생각한 4 방위를 숭배했던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 세웠던 정방형의 장막성전은, 오늘날 중국과 티벳의ㅡ현교적 신앙에서 의미하는 것과 완전히 같다. 4 방위는 피라밋과 오벨리스크 그리고 그 외 사각형의 건조물의 4 면이 의미하는 것을 뜻한다.
죠세푸스(Josephus)는 '성소의 네 기둥은 4대 요소에게 바치기 위해 티레(Tyre)에 세웠던 기둥들과 같다고 그는 단언한다. 티레의 기둥들은, 네 모서리가 4 방위를 향해 있는 받침대들 위에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받침대 네 모서리에는 12궁도의 그림 중 같은 방향을 나타내는 궁도가 넷이 그려져 있었다.'
이러한 점은 고대의 모든 신성한 사각형의 건축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조로아스터교인들의 동굴 속에서, 바위를 잘라내 만든 인도의 성전에서도 동일하게 확인 할 수 있다.-  



 no 
 subject 
 name 
 date 
hit
*
 불행한 역사는 악연으로 돌고 도는것인지... 道不遠人 [7]

안원전
2006/01/07 15239
*
 중국하남 박물원에 소개된 “동이” 송준희 [463]

안원전
2005/12/24 17675
*
  (성명서) 민족사 되찾기 운동본부 결성 선언문 송준희 [7]

안원전
2005/12/24 14029
*
 (호소문) 정부는 상고사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하라 (송준희) [415]

안원전
2005/09/25 14449
*
 *왜(倭), 한국인들의 이름 [5]

안원전
2005/08/03 17802
*
  송준희 중국내 동이계 민족 및 인구 현황 [10]

안원전
2005/06/02 14195
*
 대마도가 우리 땅이었음을 밝히는 고증사료 모음

안원전
2005/03/19 14218
*
  안원전의 잔소리 한마디

안원전
2005/01/18 15833
*
 지난 2년간 '조중동' 행태는 망국적, 60년 누린 '반공' 기득권 포기 만무" 소설가 조정래의 시국진단 [1]

안원전
2004/11/22 4948
*
 “단군조선 인정않는 사학계가 중국의 역사침략 불렀다”(단군&고구려 파일 첨부) [6083]

안원전
2004/08/19 19864
*
 대륙 한민족사가 반도내 한민족사로 왜곡된 배경 道不遠人 [2]

안원전
2004/08/19 15534
*
 9천년역사를 찾아서(환타지 코리아 동영상 포함) [22]

안원전
2003/10/07 9729
*
 한민족 상고대륙사를 바로본다! 우리 역사를 반도사관의 국통이 아닌 상고대륙사의 국통으로 다시한번 바라본다!-안원전 [8]

안원전
2002/04/12 50466
*
 한민족 상고 대륙사의 대국적인 틀-안원전의 21세기 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연재의 변- [1]

안원전
2002/03/18 11760
*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고고학,문화인류학의 동이족 상고대륙사&프리메이슨 서양사&증산도 후천개벽진리) 사이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원전
2002/03/25 11181
*
 주요 세계 유력지 및 국내 일간지, 방송, 잡지 종합 모아보기&검색 사이트 [363]

안원전
2002/03/09 17449
*
 JSD [10]

안원전
2002/03/09 10299
*
 한민족 상고사 사이트 [4]

안원전
2002/01/30 17919
*
 프리메이슨 서양사 1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5]

안원전
2002/07/12 18969
*
 프리메이슨 서양사 2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6]

안원전
2002/07/12 32156
*
 프리메이슨 서양사 3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3/07/23 8363
*
 프리메이슨 서양사 4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2]

안원전
2002/07/12 12787
*
 프리메이슨 서양사 5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2/07/12 10851
*
 프리메이슨 서양사 6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2]

안원전
2002/07/12 9982
*
 프리메이슨 서양사 7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2/07/12 8634
*
 프리메이슨 서양사 8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2/07/12 8639
*
 프리메이슨 서양사 9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2/07/12 8667
*
 프리메이슨 서양사 10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1]

안원전
2002/07/12 9421
*
 프리메이슨 서양사 11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4]

안원전
2002/07/12 8951
*
 프리메이슨 서양사 12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13부이하 아래에 계속.. [2]

안원전
2002/07/12 26565
391
 2004년도에 있었던일! -이병도 제자들이 모의를 한다.

안원전
2017/09/02 110
390
 안동 _ 임청각 '그 역사를 기억해야한다!'

안원전
2017/09/02 97
389
  “서재필은 일제 밀정, 안중근은 고종 밀명 받고 거사”

안원전
2017/08/13 175
388
 MB정부서 특수채 380조 발행..4대강 등 자금조달

안원전
2017/07/02 265
387
 국조 단군왕검의 탄신일을 잊고 사는 대한민국 (1부)

안원전
2017/06/26 318
386
 노론·친일파 세상과 박노자, 한겨레

안원전
2017/06/25 264
385
 『한겨레21』길윤형 편집장에게 묻는다

안원전
2017/06/25 257
384
 단군 말살에 앞장 선 「한겨레 21」

안원전
2017/06/25 243
383
 시진핑, 건국절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시정부 활동 강조

안원전
2016/09/07 992
382
 역사학계 "건국절 주장, 친일파 위한 '역사 세탁'이 본질"

안원전
2016/08/23 863
1 [2][3][4][5][6][7][8][9][10]..[11]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Styx

?/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