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11 10
  View Articles
Name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File #1  
   동의수세보원_발간사.hwp (71.0 KB)   Download : 521
Subject  
   치우천자의 환웅국

*지나의 사학자들은 진, 한 시대 이전에는 한(漢)족의 빛깔도 없었으며 그 뿌리가 한겨레 동이족 문화였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심지어 발해는 물론 고구려도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다.
현대 中國 語學者 朱星도 "漢族의 명칭이 시작된 것은 매우 늦어서 漢 武帝, 宣帝 이후에 비로소 '漢族'이라고 칭하게 되었다.(漢族的名稱起的紿●晩到漢武帝, 宣帝以後才開始稱漢族)"(古漢語槪論)고 하였고, 傅波는 '漢族'의 形成에 대하여 "秦의 통일이 漢族 형성의 기초를 정하였으나. 漢族의 형성 또는 漢族의 명칭이 시작된 것은 마땅히 漢나라가 건국된 이후에 있었던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民族 앞에 붙은 '漢'字가 무엇에서 유래되었는지를 풀이할 수가 없으며, 실제상으로 秦漢 이전에 결코 통일된 민족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秦的統一爲漢民族的形成奠定了基礎, 但漢族的形成或說漢族之稱伊始, 應在漢朝建之後, 否則將無法解釋民族前冠以'漢'字由何而來, 而在實際上秦漢以前也幷沒有形成一個統一民族.)"(漢民族形成前的東北與中原)라고 認證한 바와 같이 秦의 統一이 漢民族 形成의 基礎는 되었으나, '漢族'이라는 명칭의 시작은 漢朝의 建立後라고 밝혔다.<漢字와 東夷族의 淵源:陳 泰 夏>
**남만에 대해:가시마 노보루의 일본판 <환단고기 서문>의 「태백일사(太白逸史)·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삼국지에 제갈공명이 칠종칠금했다는 남만의 맹주 맹획이야기도 상기해 보고 읽을것)-남만(南蠻)은 구려(九黎)의 후손(遺種)들로, 산월(山越)에서 온 자들이다. 비자목은 변진(弁辰) 비사벌(比斯伐) 사람들의 취락이다. 환하(晥夏)는 고구려에 속한 노예들이다. 때때로 왜인들이 나뉘어 산과 섬에 분거(分據)하여 각기 백 여국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구야한국(狗邪韓國)이 가장 컸는데, 원래 구야(狗邪) 본국인이 다스리는 곳이다. 바다의 상선 선박이 모두 종도(種島)에 모여 교역했는데,  오(吳)·위(魏)·만(蠻)·월(越)에 속한 자들이 모두 통교했다.-

*백이(伯夷)는 요, 순 시기의 사악(四岳)으로, 곧 사방 제후를 통괄하는 우두머리였으니, 그는 아국의 고대 형법과 "삼례(三禮)"의 창립자였다. 봉백릉(逢伯陵)은 상(商)나라 시대 제(齊) 나라 땅의 제후였다. 그들은 모두 강태공의 선조로 동이 제지(齊地)의 토착민으로 동이(東夷)문화 혹 제(齊)문화의 창조자였다. 곧바로 춘추시기로 넘어가 강(姜)씨 성 제국을 제외한 이외에도 래국(萊國), 순우국(淳于國), 향국(向國), 기국(己+其國), 기국(紀國) 등 강(姜) 씨 성 나라는 모두는 염제의 후예이니, 이는 거듭 동이 제지(齊地)의 주요 거주민이다.

태호복희씨와 염제 신농씨는 동이 제지(齊地)를 서로 계승해 일어났는데, 그들은 세세 대대 문화를 창조 발전했다. 고사(古史)에 "희농문화(羲農文化)" 혹 "희염문화(羲炎文化)"라 글을 써 칭하니 이는 제문화(齊文化) 혹 동이문화를 칭해 적은 것으로 이를 다시 "사령문화(四靈文化)"라고 적어 칭했다. 「한서」에 "희농(羲農)에서 융성한 기초가 닦이고, 황제와 당요(唐堯) 에서 규모가 광대해졌다"는 뜻은 복희와 신농이 화하문화의 넓은 기틀을 정했으며, 황제와 당요(唐堯)가 복희 신농의 기업(基業)을 계승발전한 것을 의미한다.

<온국(溫國)문정공집(文正公集) 직하부(稷河賦)>에 "아래로는 공자 묵자를 논하고 위로는 희염(羲炎)을 술(述)한다(下論孔墨 上述羲炎)"는 의미는, 아래로는 공자와 묵자의 학설을 토론하고, 위로는 복희, 염제가 개기창업(開基創業)한 본원을 추구해 글로 짓는다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모두 한가지로 희염(羲炎)의 문화와 공묵의 학이 그 원류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확실히 하고 있으며, 제(齊) 나라 문화와 화하(華夏) 문화의 원류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확실히 한다.- 임치구(臨淄區) 문화 여유국(旅遊局) 소속 유빈(劉斌)이 발행한 향토사료 「제(齊)문화 100제(題) 지식」안원전 역

*「죽서기년」<의증(義證)>에 통주 뇌학기(雷學淇)가 서술해 전하는 황제와 신농에 대한 대국적인 이야기를 말해 보자. 「죽서기년」은 춘추외전 진어(晋語)를 인용해 소전(少典)이 유교(有蟜)의 여자를 취해 황제, 염제를 낳았으며, 황제는 희수(姬水)에서 흥기했으며, 염제는 강수(姜水)에서 흥기하여, 서로 이덕(異德:정치이데올로기와 문화가 다른 것)하여 황제는 희(姬)국의 제가 되고, 염제는 강(姜)국의 제가 되어, 두 임금이 군대를 일으켜 서로 제도(濟)했다고 말한다. 가규(賈逵)는 주(注)에 이르기를 소전, 황제, 염제의 선조가 유교(有蟜) 제후인 염제 신농이라 했다.

그런데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웅(熊)씨에서 나뉜 한 무리를 소전(少典)이라 했는데 9세 안부연(安夫連) 환웅 말년에 소전이 명을 받아 군사를 강수(姜水)에서 감시했으며,  소전의 아들 신농이 의약의 시조가 되고 열산으로 가 낮 동안 교역하게 했으며, 소전의 별파인 공손이 짐승을 제대로 못길러 헌구(軒丘)로 유배갔으며 헌원의 종족들이 그 후예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각종 사료를 보면 이보다 한참 뒤인 14세 치우 천왕과  황제와의 판천 전투가 있었을 때 염제와 황제가 쟁패했음을 보이고 있어 이들이 결코 같은 인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가령 「환단고기」<삼성기전>에 보면 신인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하고 조선국을 열어 복희(羲)에게는 괘서(卦筮:점괘)를 맡게하고 치우(尤)에게는 병마를 맡게 했다고 나온다. 단군성조때의 복희와 치우 역시 본래의 복희와 치우가 결코 아니다.

따라서 가규가 앞서 말한 소전, 황제, 염제는 의약과 경농의 시조인 신농씨와 그의 부친인 소전 그리고 헌구로 유배간 공손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알고있는 의약 경농의 시조인 신농씨는 9세 안부연 환웅 때의 인물이고 그 배다른 소전 별파의 헌원은 14세 치우천왕 때 판천 전투를 벌인 황제의 첫 조상이 되는 셈이다.    

위소(韋昭) 주(注)에 이르기를 신농은 3황이라 황제 전부터 있어 황제가 염제를 멸하고  그 자손을 멸했을 뿐이니 신농이 아님을 가히 명백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정 강성(鄭康成:정현)이 5경을 논박해 이의를 제기해 말하기를 황제의 희(姬) 씨 성은 염제가 하사한 것이라 했다. 황보밀(皇甫謐)이 「제왕세기」에서 말하기를 황제는 유웅(有熊)씨인 소전(少典)의 아들 희(姬)씨 성이라(헌원의 후예로 황제헌원이다), 그 선조는 곧 염제의 어머니 집안인 유교(有喬)씨의 장녀로 소전의 가문과 혼인한 고로 「국어(國語)」에서 병칭했다. 이에 신농씨 말기에 유웅씨로부터 나라를 받아 헌원의 땅에 살았다.

「죽서기년」의 황제헌원 파트를 서술한 뇌학기는 이를 근거로 하여 황제는 신농의 모제(母弟)의 후예 소전의 임금 자손이며, 후일 염제(炎帝)대에 유웅(有熊)에 봉해져 희(姬) 씨를 사성 받았다고 말한다. 이위(耳韋)의 주(注)에 이르기를 제(帝)가 염제와 그 자손을 멸했다 하고, 시자(尸子)는 신농씨의 역대가 천하에 70 세를 이어 군림했다(神農氏七十世有天下)고 말한다. 사마천이 지나족의 시조로 삼은 황제는 70세의 역대를 이어 천하에 군림한 우리 조상 신농씨의 혈통을 이어받아 이에 기대어 살았으며 그나마 신농씨의 국가는 배달 환웅국의 번(藩:울타리)국에 불과했다.

「여씨춘추」는 신농씨의 역대가 천하에 17세 동안 군림했다고 말하고, 「사기」<5제본기>는 헌원의 때에 신농의 역대가 쇠약해져 색은(索隱:사기의 주석)에 이르기를 치세가 쇠함은 신농씨 자손의 도덕이 쇠진하고 박덕해진 것을 이르는 것이니 곧 반고(班固)가 이른 삼로(參盧)와 황보밀(皇甫謐)이 이른 유망(楡罔)이 바로 그 증거라 했다.(삼로는 참려라고도 하여 병칭해 참려유망, 삼로유망이라고 함) 신농씨의 나라 말왕(末王)인 유망(楡罔)때에  필자의 기억에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비롯 어떠한 사료에도 배달 환웅국의 성씨에 대해 언급한 것은 없다. (옛날 여상도 역시 치우씨의 후손이다. 때문에 역시 성은 강이다. 대저 치우는 강수에 살았다. 아들들을 모두 강씨라고 한 것이 아닐런지?(임승국 환단고기))

그러나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神農亦世及之君末帝楡罔時同姓黎君蚩尤作亂’이라 해서 14세 환웅인 치우천왕이 신농씨의 나라와 성씨(姜)가 같음을 말하고 있다.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신농의 도를 추종하는 무리가 있음은 「맹자」에도 보이고 있거니와, 「환단고기」에 5세 태우의 환웅의 12째 계자로부터 풍씨 성이 시작되었고, 또한 9세 안부연 환웅때 소전으로부터 그 아들 신농에 이르러 비로소 강수의 강(姜) 성이 시작되었으니, 유망은 비록 강씨 성의 적장자이자 신농의 후예였지만 배달 환웅국에서 가지치고 나아간 일개 제후국으로 모국이자 형제국인 배달국을 쳤다가 다시 황제와 싸워 패망하니 동족인 치우천왕이 복수전을 치른 것이 바로 유명한 탁록과 판천전투이다.  

성(姓)이 같은 구려의 임금(黎君) 치우(蚩尤)가 난을 지었다. 여기까지의 「죽서기년」 기록은 우리의 사관과 대체로 일치한다.

*상고대륙을 석권한 동이 제 족


이는 그들이 55개 복합민족이며 한(漢)족마저 하이브리드 튀기민족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심지어 임혜상은 동이족에 속하는 형오, 백월,동호,숙신,흉노, 묘요,저강,(돌궐,몽고) 등을 각개격파하여 별도의 종족으로 처리한 다음 화하계와 동이계를 한(漢)족을 구성성분으로 하는 일개 종족으로 본다.

우리 한겨레마저 한(漢)족의 일부라는 것- 바로 이것이 지나족이 우리를 바라보는 냉정한 시각이다. 대국으로 보면 혼혈족의 역사 즉, 동이-서이-서하-화하-한(漢)족의 변천과정을 지닌 지나족의 입장에서는 일견 당연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아이러니한 사관을 극복하려면 민족구성원을 바라보는 입장을 우리가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혜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이계를 구성성분으로 하는 민족을 한(漢)족과 만주족이라 말하고 있다. 즉 동이계를 포함 현재 중국대륙내의 모든 소수민족이 한(漢)족의 구성성분이면서도 정작 동이족은 그들 전부를 아우르는 한(漢)족과 만주족이라는 이 기막힌 종족 포함관계는 역설적으로 우리 동이 피붙이 선조가 지나족의 뿌리라는 사관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관정립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소수민족 탐사Click here!



가시마 노보루가 분서갱유로 유가의 사서삼경이 깡그리 인멸된 후 중동의 문서를 가져다가 얼기설기 만든 가짜라 말하고 미국은 자신들의 모국 영국을 자랑스러이 대했는데 일본은 자신들의 모국을 원수시하여 역사를 부정하다보니 역사인멸을 하게되고 갖가지 수없는 도덕적 패악을 범하고 불행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일러전쟁이 끝난 후, 일본이 한 편이었던 한국의 국토를 약탈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일본이 러시아의 남하에 대해 싸운 것은 2회의 대전(大戰)에서 독일과 싸운 미합중국의 입장과 닮아있지만, 미국은 동맹국 영국으로부터 국토를 뺏기지 않았다고 말하고 미국인에 대해 영국이 모국인 것처럼 일본인에 있어서도 한반도는 모국(母國)였으나 미국인은 이주의 역사를 자각하고,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일본인은 그 역사를 말살하고, 반도인을 경멸하여 서로다른 명암 2 양상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일한(日韓)의 불행한 역사는 실로 역사의 진실을 버린 때에 시작됐다고 말한다. 이제 상고 대륙사는 바르게 밝혀져야 한다. 교육개혁이 일어나 해방 후 강단사학계를 점거하고 있는 식민사학자를 마땅히 모두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 못 다한 친일잔재청산은 사학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새 시대 새 천년 역사정립의 계기를 맞이해 신교 사혼의 민족정기확립의 계기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상고사 재정립의 신호탄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가시마 노보루가 쏘아올린 것은 실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본서기(日本書紀)」와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의해 일본사가 위조된 것의 원점은 중국에 있었다. 이른바 (秦)의 분서갱유이다. 도대체 중국사란 무엇인가.

백조고길(白鳥庫吉)은, '중국고대사는 목성 주기에 따른 12차 28수(宿)에 관한 천문지식을 경(經)으로 하고, 유교사상을 위(緯)로 하여, 주(周) 전국시대에 창조되었다'고 썼다. 즉, '역사적 사실로서의 은사(殷史)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도충부(飯島忠夫)는, '은허(殷墟)에서 발견된 구갑(龜甲)에 새겨진 은(殷) 왕의 이름, 태갑(太甲), 태무(太武), 무정(武丁), 반경(盤庚) 등은, 10간(干)에 근거하여 지어진 왕명이지만, 대저 10간(干), 12지(支)와 5행설이란 "카르데아 지식"으로 불린 오리엔트 점성술에 시작된 것으로 전(前) 4세기를 못 지난 시대에 최초로 중국에 도달했다.

따라서 은(殷) 왕의 이름은 주(周) 전국시대의 위(魏)에서 만들어졌다.…은허(殷墟)는 전(前) 6세기 이후의 스키타이계 백도(白陶)를 수반하여, 금일까지 은대(殷代) 문화로 여겨지는 출토품 중에는, 멀리 후대의 것이 섞여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전에 졸저 「반첸·왜의 뿌리」에서, 은허의 구갑(龜甲) 중에 말레이 반도밖에 생식하지 않는 대구(大龜) 등을 들어, 은인(殷人)의 실체는 반첸 문화를 만든 아라비아해(海)의 해인(海人)이, 후에 말레이 반도에서 북상한 것으로, 그 뿌리는 바빌론 남방의 바하렌 도(島)를 본거(本據)로 하는 카르데아 수군(水軍)으로 솔로몬왕의 타루시시 배나 페니키아 계의 아르와도인(人)인 것을 고증했다.

전에 서술했듯이, 낙양(洛陽) 금촌(金村)에서 출토된 한(韓)의 필(匹) 씨의 종(鐘)의 명문(銘文)은, 3진(三晋)의 한(韓)이 카르데아 인(人)였던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실제 「사기(史記)」에 쓰여있는 중국사는, 3진(晋)의 조(趙), 위(魏), 한(韓) 이외는 모두 오리엔트 사(史)의 번역으로, 대부분이 위사(僞史) 체계(體系)였다. 그 이유는, 진(秦)의 철저한 분서(焚書)에 의해, 고래의 사서가 모두 유실되어, 한왕조(漢王朝)가 사서를 만들려 해도, "모토겐(원서)"이 하나도 없어, 우선 오리엔트 사(史)를 한역(漢譯)하여 중국대륙의 지명에 맞추는 이외에 방법이 없었던 게 아닌가.

이와 같이 생각하면, 극심한 정치적 탄압에 대항하여,  "모토겐(원서)"으로서 남은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초래하는 역할은 극히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역사의 허구를 바로잡고,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일한(日韓) 양 민족의 창세기(創世記)라고 할 수 있는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여기 공개되는 것의 의의는 실로 크다.-




---------------------------------------------------------------------------------------


이내용은 기존 역사학자들은 물론 중국, 일본학자들까지 입에 거품(?)을 물면서 환단고기에 나오는 치우천자의 구리국의 역사는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우리역사상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우리역사의 일부이다 (송준희)-제목난이 길어 원제-고조선 이전, 정사에 나오는 치우천자의 "구리국"의 충격적인 역사-를 임의로 줄였으며 한단고기로 표기한 것은 일관성을 위해 환단고기로 고쳤음.

-----------------------------------------------------

▣ 구리(九黎)국 시대


# (주) 黎 : 사서에 의하면 국호로 사용할 때는 "나라이름 리"로 발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

우리의 역사서(환단고기)에는 "환웅(桓雄)"시대 라고도 한다

16대 천자 1,565년 존속 (BC 3898년 ~ BC 2333년 까지 존속)


▣ 현존 기록

단기고사 (삼성기, 태백일사)

규원사화

중국 25사중 하나인 사기권 1(한 무제때 사마천 저 : 중국 최초의 정사)

인터넷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은 "대만의 故宮【寒泉】古典文獻全文檢索資料庫"을 접속하여 확인 가능
http://210.69.170.100/s25/ (故宮【寒泉】古典文獻全文檢索資料庫)에 가서 '史記'를 선택한 다음에 제일아래 항목선택 버튼을 누르고 다시 사기본기를 선택하고 아래 검색항목에서 '蚩尤'를 검색

▣ 치우천자는 누구인가 ? 九黎국 14대 천자 = 한단(환단)고기 : 신시역대기에 나오는 14대 천자


< 역 대 기 >

- 1세 (B.C3898) : 거발한 한웅, 재위 94년, 120세
- 2세 (B.C3804) : 거불리 한웅, 재위 86년, 102세
- 3세 (B.C3718) : 우야고 한웅, 재위 99년, 135세
- 4세 (B.C3619) : 모사라 한웅, 재위 107년, 129세
- 5세 (B.C3512) : 태우의 한웅, 재위 93년, 115세
- 6세 (B.C3419) : 다의발 한웅, 재위 98년, 110세
- 7세 (B.C3321) : 거 련 한웅, 재위 81년, 140세
- 8세 (B.C3240) : 안부련 한웅, 재위 73년, 94세
- 9세 (B.C3167) : 양 운 한웅, 재위 93년, 139세
-10세 (B.C3071) : 갈 고 한웅, 또는 독로한 한웅 재위 100년, 125세
-11세 (B.C2971) : 거야발 한웅, 재위 92년, 149세
-12세 (B.C2897) : 주무신 한웅, 재위 105년, 123세
-13세 (B.C2774) : 사와라 한웅, 재위 67년, 100세
-14세 (B.C2707) : 자오지 한웅, 일명 치우천왕이라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 151세
-15세 (B.C2598) : 치액특 한웅, 재위 89년, 118세
-16세 (B.C2509) : 축다리 한웅, 재위 56년, 99세
-17세 (B.C2453) : 혁다세 한웅, 재위 72년, 97세
-18세 (B.C2381) : 거불단 한웅, 혹은 단웅, 재위 48년, 82세


▣ 치우천자 실존증빙 - 중국정사 사마천 사기본기 원문해석


중국최고의 정사인 사기본기가 있는 한 구리국 치우천자의 역사는 영원히 존재하며 아무리 환단고기의 위서을
논한다 해도 이사실을 지울수 없다

< 사마천의 사기 본기 권1-1 >




# 보는 방법

<1번 큰글자>
한무제의 명을 받들어 사마천이 기술한 중국최고의 정사로 한무제 말기에 완성
(한나라 무제 : 기원전 141 - 87 존재, 사마천 : 기원전 145 - 86 존재)

<2번 "집해">
사마천의 원서에 송나라때(420 - 479) 배인이 추가한 내용 (일종의 설명)

<3번 "색은">
당나라때(618 - 907) 사마정이 추가한 내용이고 동시대 장수절이 정의를 함

< 사마천의 사기 본기 권1-2 >






# 해 설

<5 번>
제후들이 모두와서 복종하는데 치우는 가장 포악하여 능히 벌할자가 없었다
(諸侯咸來賓從而蚩尤最爲暴莫能伐)

<6 번>
치우는 고천자 이다
(蚩尤古天子)

<7 번>
용어하도에서 황제가 섭정시 치우의 형제 81인이 있었는데 짐승의 몸으로 사람의 말을 썼으며 머리는 동이고
이마는 철이며 모래를 먹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오병을 양성하고 무기를 만들어 천하를 진동케하고 무도하게
만민을 살해하였다.
(龍魚河圖云黃帝攝政有蚩尤兄弟八十人 獸身人語銅頭鐵額 食沙造五兵仗刀戟大弩威振天下誅殺無道萬民)

<8 번>
구리의 통치자(君號:직위)는 치우다
(孔安國曰九黎君號蚩尤是也)

< 사마천의 사기 본기 권1-4 >


# 해설

<9 번>
황람의 말을 인용하여 치우의 묘는 동평군수장현함향성안에 있으며 높이는 7길이고 10월에 백성들이 제사지내는데
붉은 기운이 비단같이 솟아 올라사람들이 치우기라고 부른다.
(皇覽曰蚩尤 吊平郡壽張縣함향성 高七丈民常十月祀之 有赤旗出如匹縫帛民名爲蚩尤旗)
또한 그 부인의 묘가 산양군 거야현에 있다
(견비 在山陽郡鉅野縣)

<10 번>
蚩尤가 난을 일으켜 황제의 명령을 듣지 않으므로 탁록의 들에서 치우와 싸웠다.
(蚩尤作亂不用帝命於是黃帝乃徵師諸侯與蚩尤戰於 탁鹿之野)

▣ 지도 해설


- 동평 : 치우천자의 묘의 위치

- 거야 : 치우천자의 부인 견비의 묘의 위치
- 탁록 : 치우천자와 제후의 아들인 헌원과의 최초의 전쟁지역
- 수구 : 헌원 출생지
- 황릉 : 헌원의 묘가 있는 위치

곰곰히 생각해 본다. 황제는 왜 자기가 태어난곳에서 묻히지 못하고 그 머나먼 장안북쪽 황릉에 가서 묻혔을까 ?

환단고기의 기록을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 제후의 아들인 헌원이 치우천자에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징벌, 황제는 태행산맥 북쪽으로 쫒겨나 지나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 아닌가 ?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해도 풀리는 부분 아닌가 ?

이것이 왜 신화인가 ? 동평군 수장현에 치우천자의 무덤과 그 유적지가 중국민족에 의해 파괴 된지가 얼마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서 내눈으로 확인하지 못함이 안타까우나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이다
그토록 자랑스런 우리 역사를 죽어도 아니라고 부정하는 저위정자들의 오만과 가식에 가득찬
허구를 깨우쳐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 구리국 치우천자의 기록이 아직도 허구라 믿는 가 ?


중국 정사 기록의 원칙은 "나의 것은 과장하여 쓰되" "남의 것은 축소하여 기록한다" 이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두려움의 존재로 여기어 졌으면 중국 최고의 정사 제일 앞부분에 이렇게 많은 부분을
기록하였을까 ?

사기에는 헌원이 이긴 것으로 되어있으나 환단고기에는 분명 70여회의 전쟁에서 헌원이 단한번도 이긴적이 없는
것으로 기록 되어있다

더구나 뒤편에서는 헌원은 제후의 아들이라고 자기들이 스스로 밝히고 있다

누구것을 따를 것인가 ? 중국정사에 있고 우리 기록에도 있다
그것이 야사라 하여 보지도 않고 부정하는 이민족 사학자들은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 환단고기의 기록

자오지(정사에서는 치우천자로 표현)환웅이 나셨는데, 귀신같은 용맹이 뛰어났으니 동두철액을 하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듯 온천하를 다스릴 수 있었고,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크게 그를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그를 치우천왕이라고 불렀으니 치우란 속된 말로 우뢰와 비가 크게 와서 산과 강을 바꾼다는 뜻을 가진다

치우천왕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쇠함을 보고 마침내 큰 뜻을 세워 여러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켰다.
또 색도로부터 병사를 진격시켜 회대사이에 웅거하였다.

황제헌원이 일어나자 즉시 탁록의 벌판으로 나아가서 황제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고, 뒤에 오장군을 보내
서쪽으로 제곡고신을 쳐 공을 세우게 하더라.

한 때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서로 대치하고 있었으니 탁의 북쪽에 대효가 있었고 동쪽엔 창힐이 있었으며
서쪽엔 황제헌원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군대를 가지고 승리를 차지해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하였다.

처음 황제헌원은 치우보다 일어남이 조금 늦더니 싸움마다 이로움이 없자, 대효에 의존하려고 했으나 이룰수 없었고
또 창힐에 의존코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안되 었으니 이는 두 나라가 모두 치우의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효는 일찍이 간지의 술을 배웠고 창힐은 부도의 글을 배웠다.

당시의 제후들이 신하로서 섬기지 않는 자가 없음이 이 때문이다.


▣ 정리를 해보면

B.C 2700년대에 중국민족의 시조가 황제헌원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동시대 유명인이었던 구리국의 치우천자를 비교론법으로 기술하고 있다.

우리의 사서에도 있고 중국의 사서에도 있는 공통부분이다. 왜 믿지도 않고 연구도 않고 거짓이라고만 하는 걸까 ?

치우천자와 황제헌원의 사연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륙을 지배하고 있던 천손민족 구리국의 치우천자께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제후국의 아들이었던 황제헌원이 반란을 일으키자 치우천자가 징벌을 하였다

이에 황제헌원은 매일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소를 옮겨다녔으며 수십번의 전쟁에서 한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결국 태행산맥 서쪽으로 도망을 가 중화민족의 시조가 되었다


< 치우천자의 구리국 >








 no 
 subject 
 name 
 date 
hit
65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서희건)

안원전
2003/01/23 7377
64
 통곡하는 민족혼(1만년역사-한배달시리즈3부작)

안원전
2002/01/13 7947
63
 추천,담론126.남송의 이순신 장군 국풍파 악비장군을 제거한 금의 노예 진회의 주화파와 국풍파 묘청을 제거한 유가 사대주의파 김부식&대륙사를 증발, 왜곡한 김부식을 문화인물로 선정한 썩어빠진 조국의 문화부 장관과 그 담당자들

안원전
2002/02/28 7689
62
 일제하 친일지 조선, 동아의 민족최대 독립운동 자금원 민족종교 보천교(증산도) 죽이기 보도 [1]

안원전
2002/03/05 11464
61
   김성수, 방응모 등 사주가 포함된 친일파 명단발표에 대한 동아조선의 편파보도

안원전
2002/03/04 6723
60
 당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글

안원전
2002/02/28 7282
59
 도표로 보는 민족사 뿌리채 말살 왜곡한 일제만행,국조 단군- 신화인가 사실인가

안원전
2002/02/28 6158
58
 이병도 학맥 계승자 이기백의 제자 이종욱교수 식민사학 예속의 한국사학계 비판

안원전
2002/01/24 6743
57
  최근채널소식, 북극너머 지구속비행일지(미펜타곤극비문서)-2

안원전
2002/01/12 7672
56
 포톤벨트(Photon Belt:광자띠)<원제:당신도 은하인간이 되고있는 중이다> [3]

안원전
2002/01/12 7370
55
 증산도 사상(증산도 사상연구소 논문) [1]

안원전
2002/01/13 6604
54
 탈무드 임마누엘 최초 완전공개! 최종 교정본을 올려놓았으니 다운로드 요!(클릭후 맨위 파일명을 클릭!) [2]

안원전
2002/01/13 9248
53
 플레이아데스의 비망록 보도기사

안원전
2002/01/13 6856
52
 빛의 시대 빛의 인간

안원전
2002/01/12 6573
51
 플레이아데스의 사명

안원전
2002/01/12 7606
50
 환단고기 원문 및 자료실 안내 [2]

안원전
2002/01/10 8443
49
 jeungsando.com,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 이야기

안원전
2002/01/29 7070
48
 동양학 이렇게한다(안원전 한배달 시리즈 1권)

안원전
2002/01/13 8036
47
비밀글입니다  보병궁의 성약-Aquarian Gospel of Jesus the Christ [2]

안원전
2002/01/13 12884
46
 대륙삼국의 모습

안원전
2002/03/08 7855
45
 대륙을 점령한 신라-조선상고사

안원전
2002/03/08 7337
44
 <중국 25사 원문>의 동이족 개념

안원전
2002/03/08 6928
43
 단군조선 실증사료

안원전
2002/03/08 6359
42
 동이고문 東夷古文)서글(書契 )-한문 [1]

안원전
2002/03/08 9819
41
 구당서 신당서 의거 동이의 위치지도

안원전
2002/03/08 6344
40
 중국사서를 종합한 대륙내 한의 지도상 위치

안원전
2002/03/08 6702
39
 요조숙녀의 상징 여 탤런트 황**의 히로뽕 사건과 문화인류학사

안원전
2002/02/28 7014
38
 최신 화성 사진 거대한 발렌타인 하트모양의 조각물-화성의 미스테리 서클&초정밀 디지털 화성지도 완성

안원전
2002/02/26 7440

비밀글입니다 치우천자의 환웅국

안원전
2002/02/26 7365
36
비밀글입니다 여백(빈공간>

안원전
2002/02/08 6049
35
비밀글입니다 여백(빈공간)

안원전
2002/01/25 5429
34
비밀글입니다 안원전 21세기 담론 왕조의 비밀편 원본

안원전
2002/01/17 6705
33
비밀글입니다 화성 금성 말데크로의 기억여행 [1]

안원전
2002/01/14 8286
32
비밀글입니다 담론원고 여백(빈공간)

안원전
2002/01/13 5223
31
비밀글입니다 여백 예정

안원전
2002/01/13 5663
30
비밀글입니다 빈공간(여백)2_3,2_4.

안원전
2002/01/13 5257
29
비밀글입니다 여백(빈공간)

안원전
2002/01/13 5227
28
비밀글입니다 여백(빈공간)

안원전
2002/01/13 5347
27
비밀글입니다 여백2-1,2-2

안원전
2002/01/13 5871
26
비밀글입니다 원고 최태영 박사 대담

안원전
2002/01/13 5693
[1][2][3][4][5][6][7][8][9] 10 ..[11]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Styx

?/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