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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족과 황제 헌원
서방족과 황제 헌원  




1. 동방족과 서방족의 기원


인류의 최초 마고성에서 나온 후예중의 일부는 돈황을 거쳐 타림 분지로 들어가 서장족의 뿌리가 되어 후일 한(漢)족의 뿌리가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한족은 상고사의 과정 중 3,000여년 간에 걸친 동방족과 서장 족 간의 끓임 없는 투쟁과 융화과정 중에 잡종화된 민족이다.

B.C 3,512년 배달국 제 5세 태우의 환웅천황의 12번째 아들인 태호 복희씨가, 중화족인 수인씨의 나라에서 조공을 잘 바치지를 않아 수인씨의 나라의 기산(崎山)서쪽의 강수(姜水) 지역을 빼았아 천황의 영지로 편입시켰다.
그후 복희씨는 우사로 임명되었고 서토(西土) 들어가, 산동에서 신용의 변화를 보고 괘도를 그리고 신시의 계해를 바꾸어 갑자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후일 복희씨의 여동생 여와가 수인씨의 나라 왕위를 이었다.
(여와씨: 고대사료에 보면 '여와가 7일만에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웬지 창세기를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여호와와 여와의 유사성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B.C 3,240년 제 8세 안부련 환웅은 강수지역의 신국(新國)을 화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소전(少典)장군을 강수에 파견했다. (식민지 통치를 위한 총독의 파견이었다)
그 후 소전 장군의 아들 신농씨(神農氏 : 의약과 경농의 시조)가 종화족이 대부분인 강수 지역을 배달국의 영지로 계속 존속시키기 위해 부득이 여와의 왕위를 빼앗았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첫 번째 군사 혁명이다.

신농씨는 왕위에 오른 후 의약과 농경기술을 발달시킴으로써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 후 배달의 제 10세 갈고환웅이 염제 신농씨를 중화족의 최고 통치자(왕 : 제후)로 정식 임명하여 제후국으로 삼아 공상을 포함한 동쪽 배달의 영토와의 국경을 정하는 국경 협약을 맺었다.


2. 황제 헌원


특히 배달국 14대 치우천황과 중원의 패권을 놓고 탁록전투를 벌린 황제 헌원은 누구인가?
중국인들은 한족의 역사 시조로 황제 헌원(제위기간 : B.C 2692∼BC 2593)을 내세운다.

황제 헌원은 배달국의 8세 안부련 환웅천황 때 강수의 군병 감독관이었던 소전장군의 별파(別派)인 공손씨(公孫氏)의 후손인데 후일 서방족인 서릉 지방의 누저에게 장가를 들어 대릴사위로 들어간 뒤로부터는 서방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헌원은 신농씨의 나라 유웅부족 제후로 있다가 천왕의 뜻을 품고, 치우천황과 73회의 전투를 벌렸으나 매번 패하고 포로로 잡혔으나 충성맹세를 하고 용서를 받고, 치우천황으로부터 중화족의 황제로 임명된 사람이다.

중국인들이 동이족인 황제 헌원을 자기들의 시조로 내세우는 이유는, 중화족에 가담하여 끝내는 한족이 형성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기 때문이고, 황제 헌원으로 부터 유사이래 약 3,000년 이상 계속돼 온 동이족의 중화족에 대한 일방적인 지배는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3. 나침판을 발명한 연유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자석으로써, 방위를 알아볼 수 있는 나침반은 헌원에게서 처음 발명되었다. 치우천황에게 황제 헌원이 중원의 패권을 찾이하기 위해 73회의 도전을 했으나 한번도 이겨보지를 못했다.
치우천황이 안개를 일의 키며 헌원의 군대를 번번이 물리치자, 황제의 군대가 안개 속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도망가는 방향을 잡기 위해서 만든 것이 나침반 이였다.

실로 밝은 날에도 중국 천지와 같이 넓고 넓은 땅에서는, 나침반이 없으면 방향감각을 잘 알 수가 없으므로, 군사들이 도망을 갈 때에도 마치 개미 때가 흩어지듯이 뿔뿔이 흩어저 아마도 나침반이 필수적 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처음 발명된 나침반은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전쟁터에서나 풍수지리설에서나 사용을 했을 뿐 이였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에게 전파된 나침반은 바다의 배에 항해술에 응용되어, 세계의 바다를 정복을 했고 과학을 발전시켜 세계의 각 국가들을 식민지와 했다.
그러므로 생각의 차이와 응용하는 차이가 이렇게 크게 세상을 바꾼다.중국인들이 치우천황을 동이족의 대표요 동두칠액의 괴수로 인정했었다.


4. 동두철액


중국이 1995년대 이전까지만해도 중국 사람들은 그들의 역사서에 치우를, ‘포악 무도한 구려족의 군장’으로 기록하고 동두철액이니, 돌과 모래와 쇠 가루를 먹으면서 인간의 말을 하고, 머리에 두개의 뿔, 귀 옆에 칼날 같은 빳빳한 털, 소의 발, 눈이 네 개, 손이 여덟 개, 발이 여덟 개, 입으로는 안개를 뿜는 재주를 가졌다는 등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도깨비 형상으로 기록하면서 ‘중국인의 적’으로 생각하며 대체로 부정적인 기록을 하였다.

그러나 1995년대 이후 동북공정이라는 엉뚱한 도적질을 모의하면서부터, 중국역사학자들은 치우를 오히려 그들의 조상이라 주장한다. 자신들은 한결같이 유일 조상 ‘황제의 자손’이라고 해왔는데, 이제와서야 엉뚱하게 치우를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포함시키는 이유는 무었이겠는가?


5. 도덕경의 원조


치우천황의 신하된 황제 헌원은 어느날 동방 배달국의 청구의 풍산을 지나가다 치우천황의 국사(國師)인 자부(紫府)선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신선음부경」이라 불리우는 「삼황내문」을 전수 받아 갔다. 이처럼 전쟁에 미쳐있던 헌원이 신교의 대도를 전수 받아 헌원은 ‘황노학(黃老學)’이라 불리는 도교의 시조가되었다.

당시에 헌원뿐 아니라 공공, 창힐(한문의 창시자), 대요 등이 모두 동방 배달에 와서 자부선사로 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선생은 항상 삼청궁에 계시니 그 궁은 청구국 대풍산의 양지에 있다고 하였다.
이는 청구국(배달국의 이칭) 자부선생이 도교의 기본경전인 삼황내문을 중국의 황제 헌원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양문화의 뿌리는 중국이라고만 철석같이 믿어온 것이 얼마나 잘못된 허구였는가 하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서기 4세기경 중국의 갈홍 <포박자> 내편에 "옛적에 황제가 있었는데 동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뵈옵고, 삼황내문을 받아 갔다"하였다. 여기에서 보면 중구인이 기록한 포박자의 기록과 우리 민족의 기록인 태백일사의 기록이 서로 일치되고 있다.

그리고 도덕경이 발생한 지역이 대풍산이 있는 지역?이 아닌가 싶다. 그 부근에서 노자의 도덕경이 쓰여졌다는 사실은 왜 우리의 감수성이 옥이나 장지, 분청 등에서 원형을 찾는지 극명하게 설명해 준다. 또한 도덕경의 곡신이 왜 한국인 우상기의 그림에서 원형적인 것으로 해명되는지 미루어 짐작이 갈 일이다.


6. 위서의 원조 공자(孔子)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인문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은 “치우가 제후(諸侯)인 헌원을 벌(伐)했다.”고 명쾌하게 써놓았다. 그리고 『주서(周書)』 『열자(列子)』 『시자(尸子)』 『신서(新書)』,『태일산어람(太一産御覽)』『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귀장(歸藏)』 『제왕세기(帝王世紀)』 『춘추석례(春秋釋例)』 『고금주(古今注)』 등에 나타난 선진시대(先秦時代)의 기록들도 모두 “황제(黃帝), 염제(炎帝), 치우(蚩尤)가 탁록(?鹿)에서 서로 전쟁을 한 후 이곳에서 동맹(同盟)을 맺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치우천황이 중화족을 대표한 헌원의 항복을 받고, 그에게 배달국의 황제(黃帝) 벼슬을 내려주어 회유한 것을, 중국측에서는 동맹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므로 이 기록들이 아마도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사마천은 홀로 “황제가 치우를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위에 열거한 모든 책들과는 확연히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 사마천은 어떤 근거로 이와 같은 기록을 남겨놓은 것일까? 만약 사마천이 역사를 꾸미지 않았다면 분명히 저본(底本)으로 사용한 또 다른 역사서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혼란을 야기한 주범은 누구였을까?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하며 참고한 것은 공자(孔子)의 『상서(尙書)』였다. 동이족(東夷族)인 은(殷)나라 출신인 공자(孔子)는 『상서(尙書)』에서 돌연 “황제가 치우를 죽였다.”고 역으로 쓰며 중국인들에게 아첨하였고, 이를 후세의 사마천이 공자의 왜곡한  곡필을 기쁘게 받아 적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들이 그토록 존경하였던 공자는 한발 더 나아가, 큰활(大弓)을 뜻하는 ‘이(夷)’(큰 활을 잘쏘는 사람들)자의 본 뜻을 왜곡시켜, 본래의 글자와는 아무 연관도 없이 제멋대로 ‘오랑캐나 도적’을 뜻하는 글로 풀이하여 놓았다.

옛 한국에 속담중에 첩이 첩꼴 못본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면 공자의 아버지는 분명히 동이족 출신이었으면서도 무슨 이유로 동이족을 폄하하고, 또 치우천황의 위대한 전승기록(戰勝記錄)을 뒤집어 놓았을까?
아마도 그 자신이 중국인의 정부에서 벼슬자리를 구걸하기 위해 한평생 노력했던 사실로 보아, 본래의 출신성분을 감추고 중국인 행세를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문제의 『상서』는 과연 어떤 책이었을까?
『상서(尙書)』는 약 4000년 전 하(夏)나라, 은(殷)나라의 왕실(王室) 비사(秘史)를 모은 책이다.
고대부터 내려오던 이 중요한 왕실 기록들의 일부를 공자가 100편으로 추려서 묶었는데,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때 대부분의 경서가 불타 없어졌다가, 한(漢)나라 때 이르러 유학자 복생(伏生)이 다시 29편으로 재편집하여 놓았다.

문제는 공자와 복생이라는 두 유학자에 의하여 유교적인 입맛에 맞도록 상당 부분이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본래 『서(書)』라고만 불렸는데 ‘고대의 기록’이라는 뜻이 더하여 『상서』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후 유교인(儒敎人)들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서경』이라고도 불렀다.

그동안 세상은 공자와 복생의 의도대로 책의 내용을 그대로 믿어 왔다. 그러나 1899년에 이르러 무려 3,500년 이상 땅속에 묻혀 있던 갑골문이 발견되었고, 또 1천여자의 난해한 금문이 해득됨으로써 비로소 베일 속에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은(殷)나라의 실존 모습이 드러났다.

고대의 중국 땅이 바로 동이족의 땅 이였음이 밝혀지게 되면서, 공자와 복생의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그동안 사마천의 『사기(史記)』만을 중국의 정사(正史)로 인정한 수많은 중국의 학자들이, 치우천황의 역사적 사실을 모조리 전설로 돌리고 황제의 최종 승리만을 역사적인 사실인 양 정리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남겨진 중국측 사서들은 존화사상에 찌들은 한국의 유학자들에게 정론으로 받아들여졌고, 이것이 기존의 강단 사학자들로 하여금 『사기(史記)』 기록과 정반대의 역사를 기록한 우리 역사서 『한단고기』 『규원사화』 등을 모조리 위서(僞書)로 몰아붙이는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완전범죄란 없다. 제 아무리 『상서(尙書)』가 진실을 왜곡시켜 놓았다 해도 옛 기록들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사건기록들을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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