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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벳은 단군의 후손, 간도와 같은 운명 토곡혼(티베트)은 단군왕검의 후예인 선비족들이 세운 나라
  



    
  

ㆍ글쓴이  :   조강래 (2008.03.19 - 09:00)

    티벳은 단군의 후손, 간도와 같은 운명  



티벳은 단군의 후손, 간도와 같은 운명


토곡혼(티베트)은 단군왕검의 후예인 선비족들이 세운 나라
  
성훈 칼럼니스트  
  
현 중국의 서남쪽 서장자치구(티베트)에서 독립 쟁취를 위한 유혈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금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독립을 알리기 위함이리라.

그런데 티베트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지역적으로 인도와 매우 가까우면서도 전혀 인도인의 냄새가 나지 않고 마치 우리와 얼굴이 많이 닮아 보인다.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도 남방 계통의 얼굴이 아니다. 왜 그럴까?


▲ 한국을 형제국이라 말한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

현 티베트는 역사적으로 배달국의 치우천자와도 관련이 있다.

티베트어로 ‘챠우타라’란 말은 치우를 섬기면 좋은 운이 온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경상도 발음과 꼭같은 단어가 꽤 있다. 할배, 할매, 정지(부엌), 밥무운나, 밥무우라 등이 있다.

서경보스님의 설에 따르면, 치우천황은 황제(黃帝)의 사후에도 80년이나 생존하였고,

이후 티베트의 장당경에 도읍하여 장장 8백년 동안 왕국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장당경이  티베트(서장)을 가리킨다는 설이다.

삼국유사에서 “단군왕검이 최초 평양(대동강 평양이 아님)에 도읍을 정했다가 백악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기고, 이후 (생략)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로 돌아와 산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치우천황시대부터 장당경에 무언가 우리와 관련이 있는 국가가 있었다고 봄이 이치에 맞는 듯하다.

티베트는 마한.변한.진한 이라는 삼한 이후 생긴 후삼한의 일부가 중원의 서남쪽으로 흘러들어가 터전을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또 일부는 월지와 함께 파미르고원을 넘어 서쪽으로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 마한이 초기에만 등장하고 뒤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  대부분 동이족의 후예일 것이다. 청나라 때  신장, 티베트, 내몽고, 만주가 중국 영토로 편입된다. 조선족이 빠져 있다.


월지족은 파미르고원을 넘어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일대에서 대월지국으로 발전하며, 대월지국은 나중에 쿠샨왕조로 발전하여 남으로 인도의 북부에까지 그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인도 서북부 구자라트 지방에서 사용하는 문자가 가림토 문자와 비슷한 것도 월지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티베트는 토곡혼(吐谷渾)의 후예들이 사는 나라이다. 토곡혼이란 4세기 초 중국의 청해(菁海) 지방에 있던 나라이름으로 왕족은 선비(鮮卑)족으로, 5호16국 시대부터 세력을 떨쳤으나 뒤에 북위(北魏)ㆍ수(隋)ㆍ당(唐)의 침략을 받고 663년에 토번에게 멸망당한 나라였다.

원래 선비족은 고구려와 종족이라, 토곡혼은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세운 나라일지도 모르나 중국은 선비족의 나라라 하고 있다.

즉 토곡혼(티베트)은 단군왕검의 후예인 선비족들이 세운 나라였다. 선비는 조선비왕(朝鮮卑王)의 준말로 단군왕검을 가르키는 말로 즉 단군족이다.

배달국 18대 거불환환웅의 아들인 단군왕검이 14세 때 비왕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 후 단군조선에서도 우현왕(右賢王) 좌현왕(左賢王)이라 하여 계속해서 비왕제도를 두었는데 이 제도를 단군의 후예인 흉노도 그대로 답습하였다.

선비족은 동이족 즉 단군왕검의 후예로 중국역사에 많이 등장한다. 선비족의 모용씨는 전연·후연·서연·남연·토곡혼(吐谷渾), 걸복씨는 서진, 탁발씨는 대국(북위의 전신), 독발씨는 남량을 세웠다.

그 뒤의 북조(北朝)인 북위.동위.서위.북제.북주 및 수·당나라 왕조는 선비계이다. 특히 통일왕조로는 고구려와 전쟁을 일으킨 수나라와 당나라가 가장 유명하다. 중원이 분열되었을 때에는 송나라와 남북조를 이루었던 북위가 가장 강성했다.

수양제와 당태종이 중원통일 후 천하의 패권을 놓고 고구려와 한 판 승부를 벌인 이유는 같은 계통의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수.당이 한족의 나라였다면 그런 무모한 명분싸움인 패권다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양제와 당태종은 하늘아래 두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로, 단군조선의 적장자(嫡長子)인 고구려에게 방계혈통이 도전하여 천하의 주인이 과연 누군지를 밝히고자 했으나, 둘 다 무참히 패해 결국 수나라는 멸망하고 당태종은 장안에서 연개소문에게 항복한다. 그리고 당태종은 죽으면서 다시는 고구려를 정벌치 말라는 유언을 남기게 된다.  

북방기마민족에게는 형수수취제로 부친/형님이 죽으면 아들/동생이 서모(庶母)/형수를 취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은 한족에게는 없었던 풍습으로 수많은 한족 신하들이 그 부당함을 아뢰었을 것이나, 황실 혈통의 풍습은 어찌할 수 없었던 것으로 당시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래의 형수수취제는 한족의 왕조에서는 볼 수 없었다.


▲ 중국드라마 대청풍운의 포스터. 상단 왼쪽이 청태종, 가운데가 형제간인 두 남자와 결혼하는 순치제의 모친 효장황태후, 오른쪽이 옛 애인인 형수와 결혼해 순치제의 의부가 되는 섭정왕 도르곤. 청나라 때까지 북방기마민족에게는 형수수취제라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민족의 풍습으로 도덕적인 큰 문제가 아니었다.  

1) 수양제 양광은 아버지 수문제를 살해한 후 가장 먼저 선황의 후궁이었던 선화부인을 취해, 중국 사서에 “그날 밤 태자는 윗사람을 범했다(其夜太子蒸) ”는 기록을 남겼다.

2) 당태종 이세민은 정부인인 문덕황후가 죽은 뒤, 동생의 정처였던 양씨(楊氏)를 황후로 세우고 싶었으나 대신(한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단념하고 말았다.  

3) 당고종은 아버지인 당태종 이세민이 총애했던 궁녀인 무미랑(武媚娘: 나중에 측천무후)을 거두어 결국 황후로 만드는 과정에서 대신들이 반대하자, 고구려를 망하게 한 이적장군이 나서  “이 문제는 폐하의 집안일이므로 굳이 대신들에게 하문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4) 당현종은 며느리인 수왕비(壽王妃) 태진을 불러들여 자신의 애첩으로 삼고, 귀비란 첩지를 내린다. 이 수왕비가 그 유명한 양귀비이다.

5) 조선에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청태종이 죽자, 이복동생인 예친왕 도르곤은 태종의 왕비였던 형수(옛 애인)와 결혼해 순치제의 부황(父皇)이 된다.

그리고 광개토태왕 비문에 적혀있기를, “영락8년(398) 무술년에 일부 군대를 토곡에 보내 관찰 순시토록 하였다. 그 기회에 막사라성과 가태라곡의 남녀 3백여명을 습격하여 잡아왔으며, 이때부터 식신은 조공하고 정사를 보고하게 되었다.

” (八年戊戌 敎遣偏師觀帛愼土谷因便抄得莫斯羅城加太羅谷 男女三百餘人 自此以來朝貢論事) 이 내용은 광개토태왕 시절 고구려의 영토가 티베트까지 미쳤다는 말이다. 당시 백제(산동성 일대).신라(안휘성,절강성 일대).왜(복건성,광동성 일대)를 정벌한 태왕은 대륙의 서남쪽인 티베트까지 순시하게 한다.

신강성에 인접한 감숙성의 돈황(敦湟)은 석굴사원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곳에 있는 벽화는 고구려 벽화와 닮은 점이 너무나 많아 오랫동안 고구려와의 연관성이 제기되어 왔다. 이 고구려 풍의 벽화들은 고구려인들이 와서 직접 그렸거나, 고구려와 같은 계열인 후삼한(後三韓)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연방대제국 고구려는 종족(宗族)으로서 이들과 분명 뭔가 밀접한 교류를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광개토태왕 때 감숙성과 토곡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벽화는 광개토태왕 때 그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돈황석굴 벽화. 상투가 보이고 오우관이 보이고, 성벽이 고구려 양식인 치양식이다. 광개토태왕 시 그린게 아닐까?


이렇듯 티베트의 조상은 우리 민족의 조상과 같다. 즉 다같이 단군의 후손인 것이다. 그래서 티베트 국민들의 모습이 우리와 아주 유사해 보이고,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라마도 “한국은 티베트와 형제국이다.”라고 말한 것은 다 역사적으로 이유가 있어서임을 알아야 한다.


▲  중국과 티베트가 서로 주장하는 영역. 간도도 서로 주장이 다르다

게다가 티베트는 우리와 비슷한 때에 중국에게 영토를 빼앗긴 아픈 역사가 있는 것도 동일하다. 청나라 강건성세(康乾盛世: 강희제~건륭제) 때 현 중국의 영토가 확정되었는데, 현 영토는 명나라(한족) 영토의 2배가 넘는 큰 땅이었다. 만주와 신강, 티베트, 내몽고, 대만이 전부 청나라의 영토로 들어간다.

조선 조정은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을 미개한 여진족으로만 생각하여, 임진왜란 때 모국에 기병 3만을 보내겠다는 누루하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명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결국 병자호란 때 인조는 동족(同族)인 청태종에게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조선은 말갈.거란.여진족이 오랑캐란 이유로 요.금.청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편입을 안 시켰고, 대진국(발해)까지 우리 역사의 울타리 밖에 놓는 우를 범한다. 그러나 사실 청나라는 엄밀히 말해 배달국-->고조선-->대부여-->북부여-->고구려-->대진국-->요나라-->금나라-->청나라로 이어지는 계보가 단군조선의 적장자인 것이다.  

여하튼 청나라 건륭제 때 요녕성(청나라 발원지)이 청의 영토로 편입되고, 티베트도 영토를 청나라에게 빼앗기게 된다.

우리는 나머지 북방 땅에서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와 러시아간에 맺어진 북경조약에 의해 연해주를 잃게 되며,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강제적으로 박탈한 일제는 1909년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청에게 간도의 영유권을 넘기는 대신 다른 경제적 이득을 챙기게 된다.


▲  잃어버린 땅 간도는 한반도 크기의 3배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성립되자 모택동은 인민해방군을 보내 간도를 무력으로 점령해 버린다. 당시 남북한은 각각의 정부수립 후 정신이 없을 때였다.

그리고는 세월이 지나 을사늑약이 무력을 동원한 불법이라는 것이 밝혀져 무효화되었고, 일본도 간도협약을 무효로 인정했는데도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상의 문제로 아직까지 간도협약 무효화 신청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안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티베트는 1913년 달라이 라마 13세가 티베트에 남아있던 청나라 군대를 내쫓고 티베트의 독립을 선언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독립을 재확인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세계의 이목이 온통 한반도로 집중되어 있을 때 중국은 인민해방군을 보내 티베트를 무력으로 점령해 버린다.

1959년 중국군대가 티베트 민중을 무력으로 진압해 유혈사태가 발생한다. 결국 티베트인이 대학살되는 독립의거가 일어나고,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1987년 승려들이 주동이 되어 59년 독립의거 이후 최대 규모의 독립 시위가 발생하였는데 당시 티베트 당서기였던 후진타오주석이 주동이 되어 군경이 동원되어 유혈사태가 또 벌어진다. (참고로 1989년 달라이 라마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  중국의 소수민족 중 묘족, 몽고족, 장족(티벳), 조선족과 만주족이 우리와 핏줄이 같다. 이 중 묘족은 동아시아의 금융과 상권을 잡고 있고, 치우천자를 시조로 모시는 민족이다.  

이후 20년 만에 금년 북경올림픽을 계기로 티베트의 독립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티베트 인들은 다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 의거는 반드시 성공을 해야 한다. 물론 다수 인명의 희생이 생기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티베트의 독립을 호소할 좋은 타이밍을 잃어버리게 된다. 언젠가는 중국에게 돌려받아야 할 티베트의 독립과 영토가 아니겠는가!  

티베트 독립의거의 성공으로 지금까지 중국이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불법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는 이번 티베트의 거룩한 의거가 성공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소련 연방의 붕괴로 세계 참피온 미국의 유일한 맞상대인 중국이 자꾸 비대해지는 것을 미국도 좌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의 대선이 변수이기는 하다.

어차피 자국의 변변한 역사도 없던 중국인지라 남(우리)의 역사를 빼앗아 자기네 역사로 만들고, 힘없는 작은 나라의 영토를 무력으로 빼앗아 자기네 영토로 만드는 파렴치한이 바로 중국인 것이다.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억지로 타 민족을 중화라는 하나의 울타리로 싸고있는 듯한 모습이다. 티베트와 같은 자치구의 독립시위는 항시 중국의 시한폭탄인 것이다.

이번에 시작한 티베트의 독립시위는 반드시 성공하여 무력으로 약자를 짓밟는 중국에게 반드시 본 때를 보여주어야 한다. 티베트와 같은 종족(宗族)인 우리는 중국에게 간도 땅을 비슷한 시기에 빼앗겼으나 아직 정부 차원에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있다.

티베트의 의거가 성공해야 우리 정부도 뭔가를 느끼고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내년(2009)이 간도협약이 체결된 지 100주년이 되기 때문에, 국제법상 관례로 내년까지 간도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자동 중국 땅으로 확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새 정부는 엉뚱한 영어몰입 교육과 쓸데없는 대운하 공사에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어 국가의 근간을 망가뜨리려 하지 말고, 우리의 조상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영어 몰입교육보다는 참 역사교육이 더 시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대운하보다는 민족정신 함양이 먼저 임을 알아야 한다.

민족정신 없는 학생들에게 영어를 몰입교육하면 앞으로 이 나라에는 애국자도 나오지 않을 것이며, 안중근장군과 같이 살신성인하여 겨레를 구하려는 우국지사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다들 앞으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빠지면 친미파가 되어 힘없는 백성들을 억압하든가, 미국으로 도망가 미국의 광대로 미국에서 생활할 인간들을 양성하지 말기를 바란다.

티베트는 비록 나라와 땅은 잃었으나 아직 민족정신이 살아있어 지금 독립투쟁에 목숨을 바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만일 티베트와 같은 상황이라면 앞으로 누가 있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영어 몰입교육이 중요한가? 민족정신 함양을 위한 참 역사 교육이 중요한가? 정부는 이 점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국민들에게 교육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는 이 티베트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  미국에 있는 중국영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티베트인. 과연 우리나라가 같은 상황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위를 할까? 영어 몰입교육으로 주체성을 상실한 학생들이 앞으로 미국 땅에서 이렇게 시위를 할까? 아니면 성조기를 흔들며 America! Please come to Korea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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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나국에 대한 티벳의 독립요구는 정당








조강래  :  .
고급언어 인도 산스크리트어는 한국어


고급문장에만 사용되는 인도 범어(산스크리트어)는 한국어와 동일

안창범 교수

인도·유럽 어족 가운데 인도 어파에 속한 인도·아리아 어 계통으로 고대 인도의 표준 문장어. 전 인도의 고급 문장어로 오늘날까지 지속되는데, 불경이나 고대 인도 문학을 기록한 문자 산스크리트어(संस्कृता saṃskṛtā)는 인도의 옛 언어로,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의 경전이 이 언어로 되어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범어(梵語, 브라만에서 왔음)라고도 한다. 사어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아직도 학교에서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일부 브라만은 산스크리트어를 모국어라고 하고 있다.


▲ 신시 배달국 시대 신지가 사슴의 발자국 모양을 본 따서 만들었다는 녹도문자-단군시대 가림토와 한글의 원형이 된다


1. 범어는 어떤 언어인가?

운허용하의 󰡔불교사전󰡕을 보면 범어는 B.C. 800년 경에 인도로 전래된 셈계통의 외래어라 하여 간략히 소개되고 있으나, 컬러판 󰡔교육세계백과대사전󰡕을 보면 󰡔대영백과사전󰡕의 기록을 인용하여 자세히 밝혀주고 있는데,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범어》범어는 산스크리트어(語)라고도 하는데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인도에 쓰이는 고급 문장어이다. 산스크리트는 <완성된 언어>라는 뜻으로 속어에 대한 아어(雅語)를 의미한다. 범어라고 한 까닭은 이 언어를 범천소설(梵天所說)의 언어라고 믿는 데에 있다.

《특질》범어는 명사․대명사 및 형용사의 성․수․격(性․數․格)의 어미변화로 주어․목적어 등을 나타내며, 또한 인칭․수․시상․법․태(人稱․數․時相․法․態)를 주로 동사의 어미변화로 나타낸다.

《문자》범어의 서사 인쇄에 쓰이는 문자를 데바나가리(Devanӑgarỉ)라 부른다. 이 문자는 47자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지며, 자음은 33자로서 언제나 모음(a)를 동반한다.

이 문자의 기원은 멀리 북셈계(Sham系) 문자로서 가장 오래된 페니키아 문자에 있다.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쓰는 셈문자의 특징을 보존하고 있다. 둘 이상의 연속자음을 나타내려면 그 자음문자를 연합하여 하나의 결합문자를 만드는 따위가 이 문자의 특징이다.

《문법》문의 구조에 있어서 주어가 선두에 오고 동사가 끝에 오며, 수식어는 피수식어에 선행한다.

2. 범어는 인도어도 북셈계어도 아니다.

이상의 설명을 보면 산스크리트나 범어라는 어의에 인도나 그 민족을 나타내는 의미가 전혀 없다. 고급 문장어라 함은 고급문장에만 쓰이는 언어로서 생활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수억이 되는 인도인 가운데 오늘날 범어를 쓰는 인구수는 겨우 1,000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범어는 인도의 고유어가 아니라 외래어라는 사전의 기록이 틀림없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범어를 데바나가리라 하는데, ‘데바’는 천신(天神)이란 뜻이며, ‘나가’는 용(龍)이란 뜻으로서 데바나가리에도 인도를 상징하는 뜻이 전혀 없다.

더욱이 인도에는 천신이란 개념과 용이란 개념이 없으므로 천신 대신 제사를 뜻하는 브라흐만(Brahman), 또는 진아(眞我)를 뜻하는 아트만(Atman)을 종교적 최고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용 대신 뱀의 일종인 코브라 또는 물고기를 등장시킨다. 이를 보아도 범어는 원래 인도어가 아니라 외래어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범자는 북셈계의 페니키아 문자인가?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페니키아 문자의 자음이 22자인데” 범자는 자모가 47자, 자음이 33자로서 오히려 선대문자(先代文字)라고 하는 페니키아 문자보다 그 자모가 더 많다. 문자는 후대에 제작된 것일 수록 간소화되어 자모가 적은데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는 것도 북셈계 페니키아 문자만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고대 필순(筆順)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기 때문이다. 󰡔사전󰡕에 대승경의 범자를 북셈계 페니키아 문자에서 기원되었다고 함은 서구인에 의한 서구중심적 발상을 그대로 기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범서가 있었다.

다음은 우리민족에게도 범서가 있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현재에도 원시사회가 있고 문명사회가 있듯이 상고시대에도 원시사회가 있는 반면, 문명사회가 있을 수 있다. 더욱이 그러한 사회에 합리적 성립종교가 있었고 경전이 있었다면, 당연히 문자가 있어야 한다. 󰡔태백일사󰡕를 보면 “신시에 녹서(鹿書)가 있었고, 자부에 우서(雨書)가 있었으며, 치우에 화서(花書)가 있었다.

투전문속(鬪佃文束)은 그 남은 흔적이다. 복희에도 용서(龍書)가 있었고, 단군에 신전(神篆)이 있었다. 이런 종류의 글자와 글이 백산․흑수․청구 등 구려(九黎)에 널리 쓰여졌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문자와 글이 있었으며, 여기에 보이는 복희의 용서가 곧 범서인 것이다. 왜냐하면 범서는 이를 데바나가리라 하는데, 데바나가리는 용서(龍書)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복희의 용서는 곧 범서라 추정할 수 있고, 범서는 곧 복희의 용서라 추정할 수 있다.

󰡔삼국유사󰡕 요동성육왕탑기에도 고구려 동명성왕이 요동을 순례하던 중에 삼중토탑(三重土塔)을 발견하였는데, 그 밑에 묻혀 있던 명(銘)에도 범서가 쓰여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명에 쓰인 범서를 일연 승은 그 해설에서 서역문자라 함으로써 그 범서가 상고시대의 우리나라 문자인가, 아니면 인도에서 전래된 문자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시켰다. 삼중토탑을 발견한 때는 고구려 동명성왕 때로서 B.C.1세기 후반이다.

그때는 인도와 가까운 중국에도 석가불교가 전래되기 전이며, 우리나라에도 전래되기 전이다. 더욱이 그때는 대승불교마저 성립되기 전이다. 그러므로 삼중토탑을 석가불교의 불탑이라 할 수 없고, 명에 쓰인 범서도 인도에서 전래된 문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외에도 󰡔단기고사󰡕 제12세 단제 편에 “지금 황해도 구월산의 마한촌에 고대의 국문비 (國文碑) 한 개가 존재하니 범문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이는 범어를 모르는 사람이 범서를 보고 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범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원시 대승경이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서 인도로 전승되었다고 할 경우, 원시 대승경에 쓰여진 범서는 당연히 우리민족의 범서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범어는 인도의 고유어가 아니라 외래어이고, 북셈계 문자도 아님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4. 범어는 우리민족의 언어와 동일하다.

그러나 실제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어의(語義)․어법(語法)․문자의 동일성 등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첫째, 범어의 어의가 우리말의 어의와 동일한 경우가 많다.

대승불교가 성립된 이래 대승경이 수차에 걸쳐 결집되면서 대승경에 쓰여진 범어의 용어가 인도어로 바뀌어 질 수도 있고, 우리민족의 어의도 2천여년 전부터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한문를 일상어에 병용하면서 변질에 변질을 거듭하였다. 그러므로 대승경 범서의 어의와 우리말의 동일성을 증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단어의 동일성을 몇 개 지적하면

① 석가세존의 열반지인 구시국(拘尸國)을 구시나라(拘尸那羅)라 하는데, ‘나라(那羅)’는 곧 국가를 의미한다. 우리말에서도 국가를 ‘나라’라고 한다.

② ‘차마(叉摩)’는 ‘참다(忍)’는 뜻인데 우리말의 ‘참다’와 같다.

③ 파라사화(波羅奢華)는 ‘파란 잎’을, 파라니밀(波羅尼蜜)은 ‘파란 하늘’을 의미한다. 이를 보면 ‘파라’는 우리말의 ‘파랗다(靑)’와 같은 의미이다.

이와 같이 범어의 어의와 우리말의 어의가 동일하다. 이것 하나만을 보아도 대승경의 범어는 우리민족의 범어임을 추정할 수 있다.

둘째, 범어의 어법이 우리말의 어법과 동일하다.

① 범서는 그 문장구조에 있어서 감탄문을 제외하면 어떤 경우에도 주어가 선두에 오고 동사가 끝에 오며 수식어는 피수식어에 선행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우리말의 어법과 그대로 일치된다.

② 범서는 명사․대명사․형용사의 성․수․격이 그 어미 변화로 주어․목적어 등을 나타내며, 또한 인칭․수․시상․법․태를 주로 동사의 어미변화로 나타낸다.

우리의 언어도 범어와 같이 명사․대명사․형용사의 어미변화 즉 조사의 변화에 의해 주어․목적어 등을 나타내며(예컨대, 명사 또는 대명사에 “는․은․가․이”를 붙이면 주어가 되고, “을․를”를 붙이면 목적어가 된다), 또한 동사의 어미변화로 인칭․수․시상․법․태를 나타낸다(예컨대, 하였다․하다․할 것이다․하겠다․하라․하겠습니다․하자․합시다․하시오․되었다․되다․될 것이다․되겠다․되라․되겠습니다․되자․됩시다․되시오 등으로 변해서 인칭․수․시상․법․태를 나타낸다).

이 문제는 하나의 상식으로서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③ 범서는 자음마다 언제나 모음과 주로 (a)를 동반하는데, 우리의 언어를 표기하는 한글도 자음마다 언제나 모음을 동반한다. 그러나 모음 (ㅏ)를 특별히 동반하지는 않는다. 이는 역사의 변천에 따른 음운의 변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④ 고대의 범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는데, 우리민족의 고대 필순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다.

이상과 같이 범서의 어법도 우리민족의 어법과 그대로 일치한다. 여기에서 더욱 대승경의 범서는 우리민족의 범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셋째, 대승경 범자의 자형이 우리민족의 범자와 유사하다고 추정된다.

일연 승은 우리민족의 범자를 서역문자라 하였다. 이는 우리민족의 범자의 자형이 대승경의 범자와 동일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범자를 용서라 하여 그 글자 모형이 용 같음을 추정할 수 있는데,

대승경의 범자가 일률적으로 용의 형상을 띠고 있다. 또한 “범자와 한글이 그 자형이나 자음에 있어서 서로 유사한 점이 많아 한글이 범자에서 기원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지금까지의 소론을 간략히 정리하면

① 대승경의 범어(범서)는 인도의 고유어가 아니라 외래어였다.

② 대승경 범자의 기원이 북셈계 페니키아 문자와 무관하였다.

③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범서가 있었다.

④ 대승경 범어의 어의가 우리말의 어의와 같은 경우가 많았다.

⑤ 대승경 범어의 어법이 우리말의 어법과 그대로 일치되었다.

⑥ 대승경 범자의 자형이 우리민족의 범자와 동일하다고 추정되었다.

이상과 같으므로 원시 대승경의 범서는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범서라고 결론을 내려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더욱이 범어는 이를 천축어(天竺語)라고도 한다. 그런데 석가세존 이전의 천축은 우리나라 고조선인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범어는 당연히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언어라 할 수 있다.

5. 인도에 우리민족의 한글이 있다.

그런데 남인도 구자라트주(州)의 간판에서 한글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신왕오천축국전(新往五天竺國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구자라트주의 간판에서 기이하게도 한글과 비슷한 글자를 발견하고 놀랐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글과 너무나 비슷하여 한글식대로 읽어나갈 수가 있었다.

독일의 어느 학자가 옛날에 한글이 인도의 드라비디안어와 닮은 데가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드라비디안어(語)가 아니라 구자라트어(語)를 잘못 알고 쓴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구자라트어에 한글의 모양과 많이 닮은 것은 자음 가운데 ㄱ ㄴ ㄷ ㄹ ㅁ ㅅ ㅇ 등이고, 모음은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의 열자가 꼭 같았다.

종자음(終子音) 즉 받침까지도 비슷하게 쓰고 있다. 우리들은 구자라트에 있는 동안 소리를 내어 간판을 한글식으로 읽으며 다녔다.

이상과 같이 고조선 시대에 이미 한글이 있었고, 남인도 구자라트주에 한글과 비슷한 문자를 쓰고 있다니, 그 문자는 고조선 시대의 한글이라 할 수 밖에 없으며, 신선도의 경전이 남인도에 전해짐으로써 고대 한글도 전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도 외에 일본에도 가림토문자가 전해져 신대문자(神代文字)인 아히루(阿比留) 문자가 되었는데, 이는 지금 일본 대마도(對馬島) 이즈하라(嚴原) 대마역사 민속자료관과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이세신궁(伊勢神宮) 등에 아직도 보관되어있다.

그 밖에도 2300년 전에 지은 스리랑카의 캔디시(市) 부근 패엽경사(貝葉經寺) 바위에도 사찰건립 당시에 쓴 것으로 보이는 가림토문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으며, 남미의 볼리비아 글자도 가림토와 비슷하다고 한다.

6. 남인도에 우리민족의 언어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전이 남인도에 전하여졌다면, 경전은 곧 문자화된 언어로서 우리민족의 언어도 남인도에 전해질 수 있다.

프랑스의 선교사 달레(1874년, 조선교회사:朝鮮敎會史)와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1906년, 한국어와 드라비다 제어의 비교문법)는 한국어와 드라비다어가 동계임을 주장하면서 지금도 드라비다어 가운데 우리말과 같은 말이 1300여개나 된다고 하였다.

예컨대, 우리말의 아버지는 드라비다어로 아바지(appacchi), 엄마는 암마(amma), 도령은 도렌(toren), 얼(정신)은 얼(ul), 꽁지는 꼰티(konti), 눈은 눈이(nuni), 목은 막(mak), 남(他人)은 남(nam), 님은 님(nim), 골(谷)은 골리(kolli), 도랑은 두라이(turai), 나라는 날(nar), 바람은 발리(vali), 그물은 굼(kum), 풀은 풀(pul) 등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클리핀저(Clippinger)도 인도 고대어인 드라비다어종(語種) 속에서 한국어의 수 많은 단어들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예컨대, 우리말의 쌀(米)은 드라비다어의 ‘살’, 벼(禾)는 ‘비야’, 풀(草)은 ‘풀’, 알(粒)은 ‘아리’ 등이다. 이런 유사한 단어들을 이 미국학자는 100개나 찾아내었다.

*글/ 제주대 안창범 교수

[자료]한반도와 남방

1.한반도어와 인도의 드라비다어.아리안어

놀랍게도 우리말과 유사한 어휘는 드라비다어와 아리안어계의 말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드라비다어에서는 약 1,200개, 힌디어・우루두어・다리어・희랍어・영어 등의 아리안어계에서는 400개 이상의 유사 어휘가 발견되었다. 알타이어에서 발견되는 유사 어휘는 불확실한 음운 대응 방법을 사용해도 우리말과 유사한 어휘가 상대적으로 적다.

<우리말 어휘와 아리안・드라비다어 유사 어휘 비교의 예:수사>



한국어

아리안어

알타이어


다리어

희랍어

몽고어

터키어


하나



에나

니키

베르


둘(두)



두오

하여르

이키


셋(세)



트리아

오릅

웃취

* 우리말 ‘애’는 하나(1)의 뜻이 있음.

논 애벌매기 → 첫 매기, 애벌 빨래 → 첫 빨래

〈동작어〉

가요 → 자요(힌디어, 네팔어)

와요 → 와요(힌디어, 네팔어)

〈천체 기상어〉

라(太陽) → 라(중동, 남부 유럽, 이집트)

수리(太陽) → 수리(다리어, 우루두어, 힌디어)

해 또는 새 → 하(산스크리트어)

별 → 빌(드라비다어)

구름 → 쿠룬(다리어)

달 → 탈(다리어)

〈인칭어〉

나 → 나(드라비다어)

너 → 니(드라비다어)

어머니 → 엄마(드라비다어)

아버지 → 아뻐지(싱할리어)

〈장소어〉

골(邑, 村) → 골(다리어)

…데 → …데(희랍어)

부리 또는 벌 → 푸라(힌디어), 부리(태국어), 풀(영어)

바다 → 바하르(다리어, 아랍어)

내(川) → 나하르(다리어, 아랍어)

〈곡식 및 음식어〉

보리 → 바어리(영어)

밀 → 밀(제분소; 영어)

쌀 → 살 또는 할(힌디어, 드라비다어)

벼 → 비아(힌디어, 드라비다어)

밥 → 밧(힌디어, 드라비다어)

〈긍정 및 부정〉

예 → 예스(영어 등 아리안어계)

않 → 안, 안티(영어 등 아리안어계)

〈고대어〉

어라가(백제의 왕) → 라자(힌디어, 우루두어, 다리어)

어륙(백제의 왕비) → 렉(다리어)

* ‘어’는 경칭임. 어머니, 어버이 등

〈기타〉

불(火) → 풀(고대 영어), 퓔(희랍어)

아침(고대어 ‘아시’) 또는 새벽 → 아시(희랍어), 아룬(태국어), 아사(일본어), 사바흐(아랍어), 수바하(힌디어)

2. 한반도 문화와 인도.동남아 문화의 유사성

우리 문화의 대부분은 동남 아시아와 서남 아시아의 것과 대단히 유사하다. 이것은 고대 한반도 문화와 한반도 사람들의 인도.동남아 유입과 상호 문화교류 및 고대 해상제국 백제의 식민지 개척과 연결되는 사항이라 할 수 있다.

⑴ 신앙 및 무속

-태양 숭배: 태양을 향해 절을 하고, 태양을 수레바퀴 문양으로 나타내는 등 인도의 것과 가장 유사하다.

-솟대 및 소도: 솟대에 새(鳥)를 올려놓거나, 소도를 신성 지역으로 하는 등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의 것과 유사하다.

-남성 성기 숭배: 인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한국으로 이어지는 이동 경로가 확인된다.

-무속: 우리의 무속은 북방의 엑스타시(탈혼)보다는 동남아의 포재션(빙의)에 더 가깝다.

-띠배: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지에서 오늘날에도 대대적으로 행하고 있다.

⑵ 탄생 설화 : 한반도는 천손설화와 난생설화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천손 설화: 인도, 라오스, 태국 동북부 지역의 것과 일치한다.

-난생 설화: 베트남,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의 용의 알, 박, 오이 등의 설화와 유사하다.

* 알타이어족의 주된 탄생 설화는 이리(투르크족), 흰사슴(몽고) 등 동물 설화이다.

⑶ 농경 문화

쌀, 호미, 낫, 도리깨 등 남방의 것과 같다. 또한 가축으로는 돼지, 닭, 과하마 등 모두 남방 혹은 서방의 것이 대부분이다.

⑷ 음식 문화

김치(인도,독일), 젓갈(태국, 라오스, 인도네시아), 장아찌(태국, 베트남), 묵(태국, 베트남), 막걸리(라오스, 베트남), 된장・고추장(태국) 등 우리의 주요한 음식은 대부분 동남아의 것과 유사하다.

⑸ 장사법

-지석묘(고인돌): 세계적으로 고인돌의 분포를 보면 우리 나라로부터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아프가니스탄, 요르단, 독일, 프랑스 등 모두 남방 또는 서방의 선상에 있다.

-옹관묘: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지에서 무수히 많은 옹관묘가 발견된다. 중국의 섬서성 부근에도 옹관묘가 출토된다.

-풍장: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것과 유사하다.

-적석묘: 북방에서 발견되는 적석묘를 만든 사람들인 스키타이족들은 알타이어족이 아닌 아리안어족이었다.

-석관묘: 북방, 남방, 서방 각처에서 발견된다.

⑹ 음악과 춤

우리 음악의 특징인 무장단,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과 3박자의 형식이 모두 태국, 인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음악적인 특징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더욱 뚜렷하다. 특히 와공후, 수공후, 생황, 거문고, 장고 등 우리 나라 전통 악기가 동남아 및 인도에서 많이 발견된다.

춤은 인도의 것과 가장 비슷하다. 특히 사자 탈춤(베트남, 라오스)이 전래된 장소는 동남아시아임이 확실해 보인다.

⑺ 놀이 문화

비석치기(동남아 일대), 자치기(베트남, 라오스), 꼬누(베트남), 구슬치기(캄보디아), 와양(인도네시아), 닭싸움(동남아 일대), 소싸움(중국 서남부, 인도네시아), 대젓갈 놀이(베트남) 등 우리 놀이 문화의 대부분이 동남아의 것과 같다.

⑻ 기타

애기 업기(태국, 미얀마), 빨래 방망이질(미얀마, 인도), 머리에 물건 이기(인도네시아, 인도), 성황당(오끼나와, 인도) 등 우리 민족 고유의 풍속 대부분이 남방의 것과 일치한다. 또《삼국 유사》에 나오는 김 수로 왕비 허 황후(인도), 신라 경문왕의 당나귀 귀(그리스), 나무꾼과 선녀(인도네시아)의 전설 등도 우리 민족의 남방과 서방의 관련설을 뒷받침해 준다.

3. 면역 유전자 및 체형

⑴ 면역 유전자(HLA)

우리 민족의 특징적 조직적 합성 항원 HLA-B-59는 인도의 수라스트란인, 미국 서북부의 백인계 인디언 혼혈족 등 아리안어족의 것과 같다.

⑵ 체형

우리 민족이 아시아인 중 키가 크고, 콧날이 오똑하고, 얼굴뼈가 수직으로 되어 있고, 신‧구석기 시대 만달인, 북한 검은모류 유적지의 승리산인 등의 머리 형태가 장두형(長頭形) 등 신체적으로 아리안어족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다.

[자료]유전자 분석으로 보는 한민족

한국인은 대부분 남방의 농경문화 민족에서 그리고 일부는 북방의 유목·기마 민족에서 비롯돼 ‘이중의 민족기원’을 지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한국인과 몽골인이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최근 다른 연구결과와 달리,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중국 베이징 한족과 만주족, 일본인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이 연구결과는 지금까지 한국인의 민족기원과 관련한 연구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가장 많은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다.

김욱 단국대 교수(인류유전학) 연구팀은 “한국인을 비롯한 중국·일본·베트남·몽골 등 동아시아 11개 민족집단에서 1949명의 유전자를 조사·분석한 결과 한국인은 북방계보다는 주로 남방계에서 비롯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러나 북방계도 뚜렷해 ‘이중의 민족기원’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는 저명한 국제학술지 〈휴먼 지네틱스〉에 발표됐다.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위해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유전되는 두가지 염색체의 디엔에이(DNA)를 이용해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추적했다. 하나는 아버지에서 아들한테만 전수되는 ‘와이(Y) 성염색체’의 디엔에이이며, 다른 하나는 난자 세포에만 존재해 모계로 전수되는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다. 김 교수 연구팀은2001~2003년 한국과학재단 지원으로 11개 민족 738명의 와이염색체를, 2002~2003년엔 8개 민족 1211명의 미토콘드리아 염색체를 비교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어냈다.먼저, 와이염색체를 분석한 결과는 ‘한국인의 원류는 북방 민족’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른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김 교수는 “16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현대인(호모 사피엔스)은 6만~8만년 전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이주 집단의 한 갈래가 2만~3만년 전 아시아 남쪽으로 가는 과정에서 와이염색체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엠(M)175’라는 유전자형을 지니게 됐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번에 Y염색체를 비교해보니 한국인 75%에서 이런 유전자형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한국인10명 가운데 7, 8명이 아시아 남쪽으로 이동하던 2만~3만년 전의 집단과 동일한 와이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몽골인을 뺀 동아시아인 대부분에서 엠175 유전자형은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이런 사실은 엠175 유전자형 집단이 중국 중북부인 황허·양쯔강 유역에서 농경문화를 이룩해 인구의 대팽창을 일으키면서 5천년 전쯤 한반도와 다른 아시아 남부로 퍼져나갔다는 유전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선 중국 중북부 농경민족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남방계와 별개로, 한국인에선 몽골·시베리아 북방계 와이염색체의 유전자형(20%)도 발견됐는데, 이는 남방계가 대규모로 옮아오기 이전에 알타이산맥이나 시베리아 바이칼 주변에서 빙하기를 피해 남하한 집단이 먼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풀이된다.


결국 “지금의 한국인은 한반도에 먼저 들어온 일부 북방계와, 대규모로 이동해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이 섞여 이뤄졌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이와 함께 연구팀은 이번 11개 민족집단의 비교분석을 통해, 2300년 전쯤 농경문화를 전한 야요이족이 한반도를 통해 일본 본토로 이주했다는 유전적 증거도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인이 주로 중국 중북부 농경문화에서 비롯했다는 와이염색체의 분석결과는 이 연구팀이 따로 벌인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의 분석결과와도 대체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김 교수 연구팀의 결론은 ‘한국인과 몽골인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최근 다른 연구팀의 연구결과와 달라 논란을 일으킨다.

김종일 한림대 교수(생화학교실)는 ‘한국인 66명과 몽골인 72명의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를 분석한 결과 두 민족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는 중간 연구결과를 밝힌 바 있다.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우리는 한국·몽골인 사이의 유전적 관련성만을 연구한 것이며 연구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며 “이런 점에서 다른 결론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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