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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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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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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 35년(B.C2049) 모든 한(汗)들을 상춘(常春)에 모이게 하여 삼신을 구월산(九月山)에 제사지내고 신지인 발리로 하여금 서효사(誓效詞)를 짓도록 하였다. 그 사에 가로대“(전략) 아침 해를 먼저 받는 동녘의 땅에 삼신께서 밝은 세상에 임하셨네. 환인께서 먼저 모습을 드러내시고 덕을 심으시니 넓고 깊게 하시니라. 뭇신들이 환웅을 보내고자 의논하니 조서를 받으사 처음으로 개천하셨네. 치우는 청구(靑邱)에 우뚝 서 만고에 무용으로 명성을 떨치니, 회대(淮岱) 지방이 치우천왕에게 돌아오더라. 이에 천하는 능히 넘볼 수 없었더라. 왕검은 대명을 받아 그의 환성은 구환(九桓)을 움직이더라. 어수(魚水)의 백성은 이에 되살아나고 바람결에 풀잎이 한결같이 나부끼듯 덕화(德化)는 새롭기만 하더라. (중략)

진한(眞韓)은 나라 가운데 자리잡고 길을 다스리니 모든 것이 유신되더라. 모한(慕韓)은 왼쪽을 보필하고, 번한(番韓)은 그 남쪽에 대비하여 험준한 바윗돌이 사방의 벽을 에워쌈과 같으니라. 성스러운 단군님께서 새로운 도읍에 나아가심은 마치 저울추와 저울그릇과 같음이라. 저울그릇은 백아강(白牙岡)이요, 저울대는 소밀랑(蘇密郞)이라. 저울추는 안덕향(安德鄕)이니 앞뒤가 균형이 잡혀 평형을 이루어 나란히 있고, 덕을 신뢰하고 신정을 지키며 나라를 일으켜 태평을 유지하리라. 정사를 하매 70국을 항복시키고 길이 삼한의 뜻을 간직하리라. 왕업은 일어났다가도 망하는 법. 흥망성세를 함부로 말하지 말지어다. 정성으로 오로지 천신을 섬기는 일에 있나니라.”  

먼저 겨레가 소중함을 가르치고는 죄인들을 용서하고 아울러 사형과 남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화를 입는 일을 없앴다. 국경을 지키고 화백(和白)회의의 결과를 공개하며, 서로 위하고 다 화합하는 마음으로써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것으로 스스로의 힘을 길렀으니 바로 어진 정치의 비롯됨이 여기에서 시작한 듯하였다. 때에 동맹을 맺어 공물을 바쳤던 곳은 대국이 둘이요 소국이 스물이요 부락이 3,624 곳이었다.

본 해설은 장문이라 2부로 나뉘어 연재됩니다. 
편의상 치우천왕에 관련된 내용 이외의 것을 먼저 해설합니다.  

어수(魚水)는 어디인가?  

먼저 위에 언급된 어수를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찾으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오는데, 어수가 지금의 하북성 만성현 서남이라는 것은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으로 보인다. 
(번역) 어수 : <수경주> 북평현 서남에 있는 어산 아래에서 나와 동류해 포수로 흐른다. (鱼水 : 在河北省满城县西南,《水经注》鱼水出北平县西南鱼山,水发其下,东流注于蒲水)  

다시 포수(蒲水)를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찾으면, 하북성 완현으로 나오는데 역시 지명이동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아래 포수의 흐름에서 언급된 영화현, 습현, 대녕현과 포현(蒲縣) 등은 산서성 남부 임분시의 서쪽 황하변에 있는 현재의 지명들이다.
(번역) 포수 : <한서지리지> 포양산은 포수가 나오는 곳이다. 동쪽으로 흘러 유수로 들어간다. 원래 산서성 영화현 길북산에서 나오는데 포천이라고도 하며 습천하가 만들어진다. 동남류해 습현 서남쪽 자천하와 포곡하에 합쳐진다. 또 서남류해 대녕현 경계에 있는 명흔천으로 흘러갔다가 서류해 황하로 흘러 들어간다. (이하 생략) 
(원문) 蒲水 : 在河北省完县北,《汉书地理志》蒲阳山,蒲水所出,东入濡。源出山西永和县佶北山,亦名蒲川,又作隰川河,东南流至隰县西南合紫川河及蒲峪河,又西南流入大宁县界名昕川,又名曰斤川,西流入黄河,《清一统志》、《水经注》及《元和志》,皆以川北者为蒲水,而县志则以自隰州来者为紫川河,自蒲县来者为蒲河,盖以州南有紫川入蒲水,遂并上流亦称紫川,而蒲县之蒲峪河,独擅蒲水之名矣。

그러나 사서에 등장하는 고대 포(蒲) 지역은 포판(蒲板)으로 백이.숙제가 굶어죽은 수양산(首陽山)이 있던 곳으로 고대 유주(幽州)에 속한 요서군(遼西郡)의 땅이다. 수양산이 어디인지 가장 확실하게 밝힌 사서는 <사기 집해>로 “마융이 말하길: 수양산은 하동지방의 포판에 있는 화산의 북쪽에 있고, 그곳은 황하가 꺾여 흐르는 곳이다. (集解馬融曰:首陽山在河東蒲阪華山之北,河曲之中)”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의 하동(河東)은 황하의 동쪽으로 지금의 산서성을 말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황하가 꺾이는 곳이란 설명이다. 아래 고지도에 포판과 백이.숙제의 묘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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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서성 서남단 황하 굴곡지점에 백이.숙제의 묘와 포판과 포주가 그려져 있다.  이곳이 요서군의 땅이여, 여기서 멀지않은 산서성 남단에 있는 영락현이 북평군의 치소였다.  지도의 윗 부분에 영화, 대녕, 습주, 포현 등이 그려져 있다.  



거기서 멀지않은 곳에 요서군에 속했다가 분리되었다는 북평현(=영락현=창려)이 있었던 것이다. <수경주>에서 말하는 북평현(北平縣)은 바로 영락현(永樂縣)을 말하는 것으로 산서성 최서남단 황하변에 있는 지금의 영락진이라는 지명이다. 영락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싸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제목) 중국대륙 한복판에 있는 광개토태왕의 지명 '영락진' 
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747§ion=sc7§ion2=

참고로 아래의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의 북평현에 대한 설명은 별로 중요치 않고, 북평현이 후위 때 영락현으로 설치되었다는 것만 아시면 된다.
北平县(북평현) : 1) 汉置,后汉世祖追铜马五幡贼于北平,破之,即此,故城在今北京市满城县北,后魏于此置永乐县,唐改为满城。
2) 后魏置北平郡,北齐郡废,省蒲阴置北平县,隋唐因之,故城在今北京市完县东北,五代唐改曰燕平,宋复矿,置北平军,金改曰永平,即今完县治。
3) 后魏置,隋改真昌,唐初省,故城在今河南方城县东南。

따라서 어수는 산서성 서남단 북평군(=영락현)을 흐르다가 황하로 들어가는 강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곳이 배달국과 조선의 영토로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환웅과 단군의 백성이었기 때문에 “왕검은 대명을 받아 그의 환성은 구환(九桓)을 움직이더라.어수(魚水)의 백성은 이에 되살아나고”라는 기록이 남게 된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상춘(常春), 구월산(九月山), 저울그릇인 백아강(白牙岡), 저울대인 소밀랑(蘇密郞)이 어디인지는 현재 알 수가 없고, 저울추인 안덕향(安德鄕)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이 찾을 수 있는데 그 내용을 인증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 “탕지(湯池)는 옛날의 안덕향이다.”라는 설명이 있으며, “저울의 추가 오덕지(五德地)라 함은 번한의 옛 서울을 말함이니 지금 개평부 동북 70리에 있는 탕지보가 그것이다.”라고 했는데 그곳은 바로 태조대왕이 쌓은 안시성이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려사>를 인용하여 백아강이 마한의 옛 도읍지로 지금의 대동강이라는 이맥선생의 설명은 잘못 비정된 것이거나, 옛 대동강이 산서성 남부를 흐르는 강이었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번역) 안덕현 : 1) 한. 후위 때 안덕군을 설치. 수나라 때 폐지. 지금의 산동성 능현
2) 남제 때 설치. 지금의 궐. 당시 호북성 북쪽 경내에 있었다.
3) 후위 때 설치. 지금의 궐. 당시 산동성 구청주부 경내에 있다.
4) 요나라 때 설치. 지금의 요녕성 금현 서북. 일설에는 하북성 조양현 동남쪽.
(원문) 安德县 : 1) 汉置,后魏置安德郡于此,隋郡废,明初县废,今山东陵县治。
2) 南齐置,今阙,当在湖北境。
3) 后魏置,今阙,当在山东旧青州府境。
4) 辽置,寻置安德州化平军于此,金废州,改县曰永德,元废,故治在今辽宁省锦县西北,一说在今河北省朝阳县东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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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덕향 = 탕지보는 개평 동북 70리로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 10성의 하나인 안시성이다.  <태백일사 고구리국본기>에 그 위치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사형제도와 보증제도를 없앤 조선은 정말로 살기 좋은 나라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금까지 화백(和白)회의는 신라에서 처음 시행했던 제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조선에서 최초 시행한 제도라니 그저 놀랄 뿐이다. 아마 신라의 화백제도는 단군신화를 조작해 조선이라는 나라까지 없애버린 일제식민시학에 의해 날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탁록과 공상과 유웅은 과연 어디일까?

<삼성기전 상>에 “후에 환웅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에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최초 배달국이 신시(神市)에 개천한 곳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곳은 바로 산서성 태원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근거는 아래 싸이트를 참조바랍니다. 
(제목) 우리 민족의 백두산과 천지는 원래 어디일까? 
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160§ion=sc6§ion2=  

배달국이 개천된 지 약 1,200년이 지나 14대 자오지환웅이 등극하게 되는데, 이가 바로 동방의 군신(軍神)이며 무신(武神)인 치우천왕이다. 치우천왕은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 재위기간이 109년이며 151세까지 살았다고 <삼성기전 하>에 기록되어 있다. 치우천왕이 도읍을 옮긴 청구국 일명 구리(九黎)국은 과연 어디일까? 그 단서는 치우천왕의 행적과 무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치우천왕의 행적을 추적해 보기로 한다.

다음은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기록된 치우천왕의 행적이다. 
“치우천왕은 안으로 용감한 병사를 기르고 밖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였다. 유망의 정권이 쇠약해지니 군대를 보내 정벌하였다. 탁록(涿鹿)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구혼(九渾)에 올랐다. 다시 군사를 정돈하여 몸소 이들을 이끌고 양수(洋水)를 건너 출전하여 재빨리 공상(空桑)에 이르렀다. 공상은 지금의 진류(陣留)이며 유망이 도읍했던 곳이다. 유망은 소호(少戶)로 하여금 마주 싸우게 하였으나 대패하여 변방으로 도망치더니 공상으로 들어가 유망과 함께 도망쳐 버렸다. 치우천왕은 다시 군대를 진격시켜 탁록을 에워싸고 일거에 이를 멸망시켰다. 
공손헌원(公孫軒轅)이라는 자가 있었으니 토착민들의 우두머리였다. 감히 저 혼자 즉위하여 천자가 되려하기에 탁록으로 쳐들어가 이를 전멸시켰다. 그래도 굴복치 않고 싸움을 걸어오는지라 탁록과 유웅(有熊)의 벌판에서 사방에서 포위해 압박해 들어가 참살하니 그 숫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

1) 탁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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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성시정부에서 발표한 탁록 유적지 


중국에서는 북경 서북쪽에 탁록현이라는 지명을 만들어놓고 이곳이 황제헌원이 치우를 잡아 죽인 탁록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일 뿐이다. 원래 탁록은 유주(幽州)에 속한 상곡군(上谷郡)에 속한 일개 현으로, 유주가 산서성 남부와 황하변 하남성 일대의 지역이므로 이 부근을 벗어날 수 없다. 
(上谷郡 상곡군) 秦置。莽曰朔调。属幽州(유주에 속한다)。户三万六千八,口十一万七千七百六十二。县十五:沮阳,莽曰沮阴。泉上,莽曰塞泉。潘,莽曰树武。军都,温馀水东至路,南入沽。居庸,有关。雊瞀,夷舆,莽曰朔调亭。宁,西部都尉治。莽曰博康。昌平,莽曰长昌。广宁,莽曰广康。涿鹿(탁록현),莽曰抪陆。且居,阳乐水出东,南入沽。莽曰久居。茹,莽曰穀武。女祁,东部都尉治。莽曰祁。下落。莽曰下忠。

또한 중국 운성시 정부에서는 탁록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발표했다. 중요 부분만 번역을 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역사상 처음이자 대규모 전투인 “탁록의 전쟁”은 중화민족의 발생지라 일컬어지는 황하 중류의 산서성 운성(運城)시 일대에서 발생했다. 그 전장에서 황제헌원과 전쟁했던 치우는 중국 최초의 병기 발명인이었다. <공자삼조기> <태평환우기> <위토지지> <해현지>와 당나라 때 저명한 시인인 왕유의 해주 <염지요망> 등 사료로 인증된다. 산서성 최남부에 있는 지금의 운성시 해주(解州)는 고대의 탁록(涿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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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서성 남부 운성시정부에서 "탁록은 운성시에 있다"라는 공식 공지창     ©역사복원신문



2) 공상과 유웅은 어디인가?
고대 공상과 유웅이 어디인지는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찾을 수 있다. 
* 공상 : 하남성 진류현 남쪽에 있다. <환우기>에 이윤이 태어난 곳이다. 
(空桑 : 在河南陈留县南,《寰宇记》伊尹于空桑,即此。)
* 유웅 : 황제헌원의 도읍으로 하남성 신정현이다. <통전> 신정은 축융의 옛터이다. 
황제가 유웅에서 도읍했기에 황제를 유웅씨라고도 한다.
有熊 : 黄帝之都,即今河南新郑县,《通典》“新郑祝融之墟,黄帝都于有熊,亦在此也,” 故黄帝亦曰有熊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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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국 14대 자오지환웅인 치우천왕의 전쟁지명은 하남성 황하변 정주와 개봉 근처에 있다.  이 안에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이 있다. 과연 어디일까? 



3) 양수는 어디인가?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설명하는 양수(洋水)는 다음과 같다. 
(번역) 양수 : 양천이라고도 한다. 섬서성 서향현 남쪽 경계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파현이 다스리는 요진으로 흐른다. 동북쪽으로 꺾이고 세로방향으로 돌아 서향에서 목마하와 만나고 한수로 들어간다. <수경주> 양수는 원래 파산에서 인도되어 동북류해 평양성을 경유한다. 양천이라고도 하는데 한나라 척부인이 태어난 곳이라 한 고조(유방)가 옛 현의 이름을 바꾼 것이다. 
(원문) 洋水 : 亦曰洋川,源出陕西西乡县南境,西南流绕镇巴县治,折而东北,复经西乡会牧马河,入于汉,《水经注》洋水导源巴山,东北流迳平阳城,洋川者,汉戚夫人所生之处也,高祖更名曰县,又目其地为洋川,洋水又东北流入汉。

요임금과 관련 있는 요진과 평양성이란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산서성 남부 임분시를 흐르는 물길로 보이는데, 위 설명에 섬서성을 흐르다 한수로 들어간다고 하니 확실치는 않다. 여하튼 두 군데 다 하남성 진류에 있는 공상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전쟁을 치룬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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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치우천왕의 가짜 무덤과 탁록을 찾아간 많은 한국인들




치우천왕의 청구국(구리국)은 어디에 있었을까? 

(1부)에서 언급했듯이 치우천왕이 유망과 황제헌원과 전쟁을 치루었던 탁록, 공상, 유웅이라는 지명은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 황하변 일대에 있었다. 따라서 치우천왕의 청구국(구리국) 역시 이 부근을 크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환단고기> 기록에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은 10년간 73회의 전쟁을 했다고 하는데, 만일 치우천왕이 백두산 일대의 만주에 있었다면 이런 기록이 절대로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추운 지방인 만주에 있던 배달국이 치우천왕 때 따뜻한 남쪽 산동성 일대로 이전한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억지로 만들어낸 말로 어불성설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배달국 5대 태우의환웅의 막내아들인 태호복희의 행적을 추적해보면, 이 역시 산서성 중남부와 황하변 하남성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래부터 배달국은 산서성 중부 태원 일대에서 개천했고, 치우천왕 때 산서성 동남부 장치(長治)시 일대로 이전한 것이 틀림없다 하겠다. 

치우천왕이 어디로 이전했는지는 아래 중국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추정컨대 치우천왕의 나라인 구리의 성(九黎之城)이라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려성(黎城)을 도읍으로 하고, 산서성 동남부와 산동,하북,하남성이 만나는 대야택(=발해) 일대를 주 강역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이 대야택 근처인 산동성 유성시 양곡현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있던 비석이 큰 홍수 때 황하가 범람하면서 쓸려가 동남쪽에 있는 문상현 남왕진에서 발견된 것이 아닌가 한다.

(번역) 제목 : 탁록은 산서성 운성시에 있다.
<상서 여형> <여씨춘추탕병> <전국책> 등 고대의 문헌기록에 의하면 “치우는 구리의 군장”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학자의 설(說)이다. 춘추시대 여국(黎國)이 있었는데 구리의 후예일 가능성이 있다. 그 땅은 지금의 산서성 동남부인 여성, 로성, 장치, 호소현 일대이다. 치우의 고대 활동지역은 지금의 노서(魯西)이다. 치우의 영역인 구리국의 옛 땅은 산서성 동남부와 하북성, 하남성, 산동성의 3개 성이 만나는 경계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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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우천왕의 구리국(청구국) 강역을 설명하고 있는 중국 자료     © 역사복원신문




치우천왕이 차지한 회.대 지방은 어디일까?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회주(淮州)는 회안군으로 하남성 심양현이며, 회주군(淮州郡)은 하남성 정양현으로 둘 다 가까운 곳으로 모두 하남성 남부에 있는 지역이다.
(淮安郡(회안군) : 后魏东荆州,西魏更名淮州 (서위 때 회주로 바꾼다) ,隋改显州,又改淮安郡,唐复曰显州,又曰康州,后复曰淮安郡,又改唐州,今河南泌阳县治。- 하남심양현)
(淮州郡(회주군) : 南朝梁置,北齐废,故治在今河南正阳县东南 -하남정양현 동남) 

대(岱)는 대종(岱宗) 즉 태산을 말하는 것으로 산동성에 있는 태산이 아니라 산서성 임분시 동쪽에 있는 태악 즉 곽태산(霍太山)을 말하는 것이다. <주례직방>에 ‘其山镇曰xx’이라는 같은 문구가 있어 泰山 = 太岳(곽산)으로 볼 수 있다.
(번역) 태산: 대종이라고도 한다. <순전>이라는 책에 동쪽 순방을 대종까지 했다. <주례직방> 하동(산서성)을 충주라 했고, 기산진을 대산이라 했다.
(泰山:是为东,亦曰岱宗《书舜典》东巡狩至于岱宗《周礼职方》河东曰充州,其山镇曰岱山,)
태악: 지금의 산서성 곽산 <주례직방>에 기주 기산진을 곽산이라 했는데 태악이다. <장정석 상서지리지 주해> 태악 일명 곽태산, 산서 평양부(임분) 곽주 동쪽 30리, 산 둘레는 이백여리, 남으로 악양현과 월성현과 접하고, 북으로 영석현, 동으로 심원현 경계와 접한다.
(太岳: 即今山西之霍山《正义》地理志,河东彘县东有霍太山,周礼职方氏,冀州,其山镇曰霍山,即此太岳是也,《蒋廷锡尚书地理今释》太岳,一名霍太山,今为中镇,在山西平阳府霍州东三十里,山周二百余里,南接岳阳赵城二县,北接灵石县,东接沁源县界,)

즉 치우천왕이 새롭게 차지한 회.대 지방이란 북쪽으로는 산서성 임분에 있는 태산과 남쪽으로는 회수 이북 하남성 남부까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산서성 동남부 장치시 여성(黎城)에 있는 청구국으로 천도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결정적인 유물적 근거가 바로 치우천왕이 묻힌 진짜 무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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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대의 땅은 북쪽은 산서성 임분에 있는 대종, 남쪽은 회수까지를 이르는 말로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을 말하는 것이다. 고대 회주는 하남성 남부 신양시 일대이다.  이 부근이 치우천앙의 활동무대였다. 장치시 일대가 청구국의 도읍으로 보이며 치우천왕의 무덤은 양곡현에 있다.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치우천왕의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 가운데 있다. 높이가 7척이다. 진나라와 한나라 때 주민들은 10월에 늘 여기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반드시 붉은 깃발이 있어 마치 한줄기 붉은 띠 모양의 연기 같은 것이 뻗는데 이를 치우의 깃발이라고 한다. (其陵在山東東平郡壽張縣關鄕城中 高七丈 秦漢之際住民猶常以十月祭之必有赤氣出如疋絳謂之蚩尤旗)”고 기록되어 있다.   

먼저 키포인트인 수장현(壽張縣)에 대한 <중국백과사전>에 기록된 역사연혁을 보기로 한다.
(번역) 수장현 : 한나라 때 동군에 속한 수량현을 설치했다. 지금의 동평현 내에 있다. 동한의 광무제가 수량현에서 수장현으로 개명했다. 동평국에 속했다. 남조 송나라 때 수창현으로 개명했다. 동평군에 속했다. 북위 때 수장현으로 다시 환원되었으며 치소가 지금의 양산현 수장집으로 옮겨졌다. 수나라 때 제북군에 속했으며, 당나라 때 운주에 속했다. 송, 금 때는 동평부에 속했다. 금나라 대정 7년(1167)에 황하 범람으로 성이 망가져 치소를 지금의 양곡현 이태진 죽구촌으로 옮겼다. 1179년 옛 치소를 복원해 천도했다. 원나라 때 동평로에 속했으며, 1368년 황화가 범람해 치소를 동평부에 속한 남쪽 양산현 설둔현으로 옮겼다. 1380년 치소를 오릉점에서 동평군에 속한 양곡현 수장진으로 옮겼다. (이하는 별로 중요치 않으므로 생략한다.)  

(원문) 寿张县 : 汉置寿良县,属东郡,故城在今东平县内。东汉光武帝刘秀讳叔名良字遂改名寿张县,属东平国。南朝宋改名寿昌县,属东平郡。北魏复称寿张县,迁治所至今梁山县寿张集。隋属济北郡;唐属郓州;宋、金属东平府。金大定七年(1167),河决城坏,遂迁治所至今阳谷县李台镇竹口村,十九年(1179)复迁旧址。元属东平路。明洪武元年(1368),黄河决口,县治所南迁到今梁山县薛屯,属东平府;十三年(1380)迁治所于五陵店即今阳谷县寿张镇,属东平府;十八年(1385)改属兖州府。清雍正八年(1730)属东平州;十三年(1735)复属兖州府。1912年属山东省东临道;1937年属山东省第六行政督察专员公署;1945年属冀鲁豫边区第八专署。1949年9月改属平原省聊城专区;1952年属山东省聊城专区。1958年12月,阳谷县并入寿张县;1961年7月,从寿张县中析出原阳谷县境域恢复阳谷县建制。1964年11月寿张县建制撤销,金堤以南地区划归河南省,金堤以北地区划归山东省阳谷县。

위 백과사전 자료에서 보듯이 수장현도 이리저리 옮겨 다녔기에 현재 치우천왕의 무덤도 여러 곳에 있는데, 모두 하남성과 산동성의 경계에 있었던 큰 내륙호수인 대야택이 있던 부근에 있는 지명들이다. 대야택은 고대 발해(渤海)로 불렸다. 그 중 가능성이 가장 많은 곳을 압축하면 아래와 같이 5군데가 된다. 
1) 산동성 제녕시 문상현(濟寧汶上) : 큰 홍수 후 남왕진에서 '치우사(蚩尤祠)'와 '치우총(蚩尤塚)'이라는 비석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문상현지방정부에서 무덤을 조성했는데 가묘로 보인다. 그런데도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 무덤을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으로 여기고 있다.
2) 하남성 복양시 태전현(濮陽台前) : 구두 전설에서 기록된 치우의 무덤 
3) 산동성 하택시 거야현(菏澤巨野) : 일명 견비총. 치우의 어깨무덤으로 여기고 있다.
4) 산서성 운성시 염호(運城鹽湖) : 치우촌이라는 마을에 치우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5) 산동성 료성시 양곡현(聊城陽谷) :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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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동성 문상현 남왕진에서 '치우총'이라는 비석이 발견되어 조성된 치우천왕의 무덤은 시신이 없는 가묘이다.   



아래는 중국신문에 보도된 내용이다. 
(번역) 2006년 10월, 문화부, 중국사회과학원, 북경대학, 귀주성묘족학회, 귀주성 사회과학원, 광서장족자치구 사회과학원, 호남성 사회과학원, 산동대학, 난주대학 등 20개 단위가 넘는 전문역사학자들이 산동성 양곡현에 모여 치우문화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했다. 두 차례의 연구 토의가 있었는데, 전문 학자들 모두 문헌기재와 고고학발굴과 민속유풍 등 다방면의 실증을 거쳐 치우의 머리 무덤은 현재 양곡현 십오리원진 협가촌 동쪽에 있는 황고총으로 결론지었다. 
(원문) 2006年10月,来自文化部、中国社科院、北京大学、贵州省苗学会、贵州省社科院、广西壮族自治区社科院、湖南省社科院、山东大学、兰州大学等单位的20多名文史界专家学者汇聚山东阳谷,对蚩尤文化进行深入研讨。也就是在这次研讨会上,一个尘封几千年的谜团被抽丝剥茧层层揭开。与会专家学者一致认为,文献记载、考古发掘、民俗遗风等方面均证实,蚩尤首级冢就是位于今天阳谷县十五里园镇叶街村东的皇姑冢!  

그러면서 북경 서쪽에 있는 하북성 탁록현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가졌다. 이는 지명이동을 위한 역사왜곡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번역) 치우가 하북성 탁록에서 전사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천리 밖에 떨어진 산동성 양곡현에 장사지낼 수 있느냐? 
양곡현이 치우가 활동하던 중심구역이며 이곳이 그의 도읍이다. 1990년대 고고학자들이 황고총 주위에서 용산문화 고성유적지를 발견했다. 고고학적 발굴 자료에 명시됐듯이, 고성의 축성년대와 황고총의 조성년대의 시기 모두 용산문화와 대한구문화가 주고받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치우가 활동하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지리 방위와 무덤의 조성년대와 규격 등 여러 가지 자료를 검토해 보건데, 양곡현 십오리원진에 있는 황고총이 <황람>에 기록된 ‘수장현 관향성 중의 치우총’이 아무 하자가 없는 치우의 무덤인 것으로 인증되었다. 

(원문) 那么,既然蚩尤在河北涿鹿战死,又为何又被葬在千里之外的山东阳谷呢?
既然阳谷是蚩尤的活动中心区域,那么这里就应该有他的“都城”。而非常巧合的是,上世纪九十年代,考古人员在皇姑冢周围发现一座龙山文化古城址。考古发掘资料显示,古城建成年代和皇姑冢成冢时间都在龙山文化与大汶口文化交汇的时期,而这个时期正是蚩尤生活的年代。
地理方位、成冢年代、墓冢规格等诸多方面,几乎天衣无缝地印证了阳谷县十五里园镇的“皇姑冢”就是《皇览》中所说的“寿张县阚乡城中”之“蚩尤冢”这一论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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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색은 현재지명.  검은 색은 치우 무덤들이 있는 곳. 그 중 남왕진을 지금까지 치우천왕 무덤으로 알았으나, 료성시 양곡현 십오리원진에 있는 황고총이 바로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이었던 것이다.  동평호는 대야택(발해)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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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동성 양곡현에 있는 황고총이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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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인 양곡현 황고총     © 역사복원신문


 
이렇듯 중국에서 이방인인 치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치우를 중국인의 조상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정작 치우천왕의 후손인 대한민국 식민사학계에서는 치우천왕을 조상으로 보고 있지 않으며, 그나마 재야사학계에서는 치우천왕을 위대한 우리 조상으로 섬기고는 있으나, 그에 대한 연구가 잘 되지 않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산동성 문상현 남왕진에 있는 가짜 치우무덤과 하북성 북경 서쪽에 있는 가짜 탁록을 방문하고는 그곳에 있는 삼조당(三祖堂)의 치우상에 절을 하곤 한다. 한국인 모두 중국의 역사왜곡에 속아 넘어갔다는 말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황제헌원이 치우를 잡아 죽여 신체를 잘라 여러 곳에 분산 매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기록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따르면, <사기>의 오기를 지적하면서 “우리 장수 가운데 치우비(蚩尤飛)라는 자가 있었는데 불행히도 공을 서두르다가 진중에서 죽게 되었다”고 역사적 사실을 말하고 있다.   

<사기>가 오기인 이유는 한왕 유방(劉邦)이 전쟁에 나갈 때마다 풍패(豊沛)의 풍속에 따라 군신이며 무신인 치우에게 제를 올리고, 한나라를 세운 후 동황태일(東皇太一)을 받들어 공경하고 치우를 공경하여 제사를 지냈으며 축관에게 명하여 치우의 사당을 장안에 세우게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족(漢族)인 유방이 자기네 조상인 황제헌원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고 이민족인 치우에게 제사를 올린 것을 보면 마지막 탁록전투에서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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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북성 북경 서쪽 탁록현에 있는 삼조당에 모셔져 있는 치우천왕의 모습    © 역사복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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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을 위해 산서성 남단에 있는 탁록을 북경 근처로 이동시켰는데, 문제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그곳을 진짜 탁록으로 알고 거기에 모셔져 있는 치우천왕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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