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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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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원류고』에 나오는 신라의 위치에 대한 고찰
  




▩『만주원류고』에 나오는 신라의 위치에 대한 고찰▩





조약돌 2008.04.21


22:24:58 6950신라사http://www.histopia.net/zbxe/16959





『만주원류고』는 서기 1777년 '애신각라 홍력'(청나라 건륭제)의 명령을 받은 청나라의 한림원이 서기 1783년에 완성한 역사책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부여, 발해, 삼한, 백제, 신라의 역사가 들어있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 중에서 내가 주목하는 구절은 신라의 강역이 한/조선반도와 만주의 길림성이라고 주장하는 구절이다.『만주원류고』권9「강역」2에는 "신라의 동남쪽은 지금(서기 18세기 - 조약돌) 조선의 경상도/강원도이며, 서북쪽으로는 지금의 길림성 오랍(烏拉)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개원과 철령에 가깝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이다. 또 같은 책에는 "당나라 용삭(龍朔) 3년(서기 663년)에 신라를 '계림주 대 도독부'로 삼았는데, '계림'은 지금의 '길림'이다."라는 구절도 나오며, 신라의 도읍이 길림성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나는『만주원류고』가 만들어진 동기(그러니까 청나라의 지배자인 애신각라 홍력 - 만주족 - 이 '동이'족의 역사도 명나라의 유민인 한족의 그것 못지않게 길며 찬란하다고 주장하기 위해『만주원류고』의 편찬을 명령한 사실) 때문에 (그리고 역사서에 나오는 여러 '이夷'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민족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므로) 이 책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지만, 적어도 신라와 길림성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이 세 구절에 주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신라가 경상북도 경주에서 세워져 서쪽과 북쪽으로 땅을 넓혔다고 생각하는 역사관 때문에,『만주원류고』에 왜 신라가 길림성까지 차지했다고 나오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내지는 논박)하지 못했지만, 만약 신라가 경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세워져 나중에 경주로 내려왔다는 가설(김성호, 김상, 천관우의 학설임)을 받아들인다면, 이런 기록이 나온 까닭도 보다 합리적으로 풀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서나벌을 세운 박씨족(오환족)이 몽골초원에서 살다가 흉노족을 피해 동남쪽으로 달아났고(이 게시판의 글인「▩[고침]서나벌 왕족의 뿌리 : 2. 오환족이 내려온 까닭」과 일도안사(김상) 님의 글인「신라의 건국 4. 오환족의 남하시기」,「4세기 이전 신라의 천도」를 참고할 것), 그 뒤 길림성에 머무른 적이 있었기 때문에『만주원류고』가 길림성을 신라의 땅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http://www.histopia.net/zbxe/neo/14669


그러니까 훗날 '박(朴)씨족'이라고 불리게 되는 오환의 한 씨족이 남(南)몽골의 동쪽(대흥안령 산맥 ~ '장가구張家口'까지의 초원지대)에서 살다가, 북(北) 몽골에서 살던 흉노족에게 깨진 뒤 흑룡강성으로 달아났고, 그곳에서 다시 길림성으로 내려와 뿌리내렸기 때문에 길림성과 신라가 관련이 있다는 기록이 남은 것이다(물론 박씨족은 나중에 길림성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내려와 경기도에서 다시 나라를 세운다).



만주족은『만주원류고』를 쓰려고 옛 기록들을 정리할 때 서나벌이 길림성에 있었다는 기록을 '신라가 길림성을 차지했다'고 풀이해서『만주원류고』에 집어넣었을 것이고, 서나벌의 건국과 이동을 알지 못한 조선과 청나라의 학자들은『만주원류고』의 '정리된 문장'만 읽고 '신라가 경상북도에서 비롯하여 길림성까지 차지했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이 기록은 완전한 거짓이니,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럼『만주원류고』의 기록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적은 것인지를 살펴보자. 그러나 그 전에, 이 사이트에 들르시는 독자 여러분에게 내가 예전에 저지른 오류 하나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5년 전(서기 2004년) 이 게시판에 올린「▩[고침]서나벌 왕족의 뿌리 : 2. 오환족이 내려온 까닭」이라는 글(카테고리는 '신라사')에서 오환족이 몽골초원을 떠난 해를 "서기전 87년에서 서기전 69년 사이", 더 구체적으로는 "서기전 78년"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렇게 주장한 까닭은 반고의『한서』에 서기전 78년 산동성의 태산에 '흰 까마귀'로 불린 족속들이 모였다는 기사가 나오기 때문이었다.『한서』에 나오는 흰 까마귀들을 오환족으로 풀이하고, 그들이 흉노족을 피해 한나라로 달아났다고 본 것이다(보다 자세한 것은 글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람).




그런데 일도안사(김상) 님의 가설을 읽어보니, 오환족이 흉노족을 피해 달아난 해는 서기전 87년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일도안사 님이 주장하신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내가 4년 전(서기 2005년)에 쓴「▩진한 소사(小史)」라는 글(카테고리는 '기타')을 다시 읽어보니, 내 가설은 틀리고 일도안사 님의 가설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동사연표(東史年表)』와 『용성지(龍城誌)』가 “마한의 임금”이 “진변(辰弁)의 난리(『용성지』에는 “진한의 난”으로 적혀있음)”를 피해 달아난 해를 서기전 84년(전한 소제 3년)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신 분은 이 게시판에서 글을 직접 찾아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만약 오환족이 서기전 87년에 흉노족에게 깨지고 한나라에게 약탈당해 몽골초원의 동남쪽으로 내려갔다는 일도안사님의 가설이 옳다면, 그로부터 4년 뒤인 서기전 84년에 '갑자기' 진한과 변한(진변)이 마한을 친 것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길이 트이는 것이다.



내가 진(진한의 전신)이 동남쪽으로 옮겨갔다는 가설을 처음 주장할 때에는 '설령 진이 요동반도를 버리고 동쪽으로 달아났다 하더라도, 요동반도 동쪽에는 길림성이 있는데, 어째서 그곳에 정착하지 않고 경기도까지 내려와 마한과 싸우느냐?'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는데,『만주원류고』의 기록을 읽고, 김상님의 가설을 다시 검토하고, 박씨족의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보니 이제는 대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이야기다.




내 '대답'을 듣기 전에, 먼저 지도를 펼쳐보자. 남몽골의 동쪽에서 경기도로 내려오려면 먼저 흑룡강성의 동북(東北) 평원과 길림성을 거치고, 그 다음 평안도와 황해도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만주원류고』에는 신라(박씨족)가 흑룡강성을 차지(거주)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단지 길림성과 한/조선 반도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만 나올 뿐이다. 이 사실은 오환족이 흑룡강성을 차지하거나 거기에 나라를 세우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흑룡강성은 오환족이나 흉노족 못지않은 강한 힘을 지닌 종족이 나라를 세워 살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이곳은 추모왕(동명성왕)이 태어나서 자란 동부여(東夫餘)가 있던 곳이다(윤내현 교수의 가설. 이하 존칭 생략. 그리고 동부여가 흑룡강성에 있었다는 주장을 부정하는 다른 학자들도 이른바 '북부여'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음).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따르면 동부여는 원(原) 고구려인인 추모왕(동명성왕)과 유류명왕(유리왕)이 굽혀야 할 정도로 강대국이었으므로, 오환족 '침입자'(물론 동부여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들과 싸워 그들을 몰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때문에『만주원류고』가 (박씨족이 지나간 땅임이 분명한) 흑룡강성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환족은 자기들보다 훨씬 전에 흑룡강성으로 쳐들어와서 예족을 동남쪽으로 밀어내고 나라를 세운 부여인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나는 윤내현과 마찬가지로 동부여가 흑룡강성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윤내현의 가설과 내 가설이 다른 점은, 윤내현은 동부여가 세워진 해를 신작(神爵. 神雀이라고도 함) 3년인 서기전 59년이라고 보지만, 나는 훨씬 전인 서기전 3세기 - 그러니까 서기전 200년 - 로 본다는 점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나중에 다른 글에서 자세히 밝히고자 한다)




내가 오환족이 동부여 땅에서 떠돌다가 길림성으로 내려왔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원래 같으면 길림성에 있어야 할 진이 서기전 84년에 갑자기(!) 남쪽인 경기도로 내려와 마한과 싸우기 때문이다. 만약 길림성이 안정되어 있었다면, 그리고 진보다 더 강한 상대방에게 공격받지 않았다면 진이 길림성을 버리고 달아날 리가 없다. 그런데 기록과 유물을 보면 흉노족은 길림성에 쳐들어 온 적이 없고, 서한(전한)의 기록을 보아도 서기전 84년에 한나라가 "동쪽의 진(辰. 또는 秦)국"과 싸운 기록은 없다. 그리고「동이전」의〈부여〉조(條)를 읽어보아도 진과 부여가 싸웠다는 것을 암시하는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3~4년 전에 몽골초원에서 쫓겨난 오환족(박씨족)이 가장 의심스럽다. 박씨족은 길림성으로 내려올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또 진과 싸울 만한 힘도 있었다. 그리고『동사연표』와『용성지』를 보면 남쪽으로 달아난 나라는 진과 변한이지, 오환족의 서나벌이 아니다. 오환족은 부여족에게는 졌지만 진과 변한에게는 이겼고, 그들을 남쪽으로 몰아낸 뒤 길림성에 '임시로' 중심지를 정했던 것이다.




길림성은 흑룡강성과는 달리 탁 트인 벌판이 아니라 숲이 우거지고 산골짜기가 많은 땅이었고, 피난처를 찾아야 했던 오환족은 그 때문에 길림성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게 아닌가 한다. 내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까닭은 오환족이 경기도로 내려온 해가 서기전 69년이기 때문이다(『삼국사기』「신라본기」혁거세거서간 조). 오환족이 길림성에 터를 잡은 해가 서기전 84년이고, 그들이 경기도로 내려온 해는 서기전 69년이므로, 계산하면




84 - 69 = 15




16년(만으로는 15년)이 된다. 그러니까 그들은 16년 동안 길림성에 머무르다가 마한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들이 내려온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초원이 고향이었던 오환족이 숲 속에 숨어 사는 데에 지쳤거나, 아니면 '따뜻하고 살기 좋은 남쪽 나라'이자, 길림성보다 흉노족이 살고 있는 몽골초원에서 더 멀리 떨어져 그만큼 안전한 땅인 마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길림성을 버리는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닌가 한다(단, 나는 그들이 또다시 동부여의 압력을 받고 달아났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서기전 87년, 오환족은 흉노족에게 깨지고 한나라에게 공격당한 뒤 갈 곳이 없어졌다. 그들은 살 길을 찾아 몽골초원의 동남쪽으로 달아났는데, 처음에는 기름진 평야지대인 흑룡강성으로 쳐들어가 3년 동안 싸웠으나, 이미 그곳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던 동부여의 저항에 부딪쳐 쫓겨났고, 차선책으로 길림성으로 쳐들어가 그곳에 있던 진(辰)과 변한을 몰아냈다(이 두 나라는 낙랑국이 있던 평안도에 뿌리내리려 했으나 실패했고 - 이 게시판의 글인「▩변한의 이동과 백제에 투항한 시기」를 읽어볼 것. 이 글의 카테고리는 <백제사> 임 - , 결국 더 남쪽으로 내려와 마한과 충돌한다). 그들은 16년 동안 길림성에 머물렀으나, 그곳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남쪽으로 내려와 마한의 신하(속국)가 되었으며, 서기전 57년에야 자립한다. 이상이 내가 보는『만주원류고』에 실린 신라 관련기사의 진상이다.




『만주원류고』의 기록과『동사연표』,『용성지』의 기록은『삼국사기』「신라본기」혁거세 거서간 조가 기록되기 전, 박씨족에게 일어난 일을 가르쳐 주는 중요한 자료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며, 따라서 나는 역사학계가『만주원류고』의 기사들을 무조건 '후대에 꾸민 기사들'로 몰아세우지 말고, 새로운 가설로 다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새롭게 되살린 박씨족의 이동로 : 몽골초원 동남부 → 흑룡강성 : 동부여 → 길림성 → 평안도 → 황해도 → 경기도(이곳에서 나라를 세움)



*참고자료 :



-『한국열국사연구』(윤내현, 지식산업사, 서기 1998년)



*이 글을 읽는 분들을 위한 보충설명 :



남몽골 : (중국 이름 '내몽고內蒙古. 내몽고라는 이름은 중국 한족이 보았을 때 자기들과 가까운 곳, 그러니까 '안쪽'에 있는 '몽고'초원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고, '몽고'라는 말 자체가 '무지몽매하고 어리석은'이라는 뜻이므로, 몽골인들이 쓰는 이름인 '남쪽의 몽골초원', 즉 '남몽골'이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



북몽골 : (중국 이름 '외몽고外蒙古'. 몽골인들은 외몽고를 '북쪽의 몽골초원'이라는 뜻으로 '북몽골'이라고 부른다)



장가구(張家口) : 중국 하북성의 북쪽이자, 만리장성 바로 남쪽에 있는 지역.



※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인 상관은 없는 '사족' :



(내가 '이夷'로 불리는 민족들이 오늘날의 한국/조선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그 이름이 그들 스스로가 붙인 이름이 아니라 중국 왕조가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신 분은 이 게시판의 글인「▩「퍼온 글」동이족은 커다란 활을 쏘던 민족이었나?」와「[re]▩이 글에 대한 나의 짧은 생각」, 그리고「[re]▩夷의 뜻이 바뀐 까닭」을 찾아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사족' 2 :


몇 해 전에 읽은 책에 따르면, 길림성에는 "신라新羅의 귀족이 북쪽인 길림성으로 달아나 살았다."는 야사(野史)가 내려온다고 한다. 전에는 그 야사가 왜 전해졌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저절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귀족의 성은 박朴씨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왕위 다툼이나 내전에서 진 나머지 - 또는 골품제에 불만을 품고 - '선조의 고향'이자 '안전한 땅'인 길림성으로 달아났다고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야사는 발해에 신라의 성씨인 '박朴'씨가 나오는 까닭을 설명해주는 '단서'인지도 모른다(아니면 신라가 망하자 고려에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여진족의 땅으로 달아난 귀족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은지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자세히 따져볼 생각이다). 그는 거칠부의『국사』가 싣지 않은 '가문의 전승'을 간직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길림성을 '고향'으로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네티즌 고대사』를 보면, 김유신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금관가야가 아니라 임나가야라는 전승을 몰래 간직하고 있다가 신라 말 정부의 권위가 약해지가 이를 비문에 새겼다. 길림성 야사에 나오는 귀족의 집안도 이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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