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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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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을파소, 케인즈와 피라미드 경제학



소(小) 을파소(乙巴素)였던 ‘케인즈’와 피라미드-[F]

1. 피라미드 문명및 거석(巨石) 문명에 대한 사학계(史學界)의 외면(外面) -
   을파소(乙巴素)와 ‘케인즈’의 관련성

  부도지(符都誌)가 지니는 고전(古典)으로써의 ‘가치’는 인류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보되, 그것을 두 가지의 피라미드(Pyramid)문명의 ‘상관관계’로 해석하였다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즉 ‘실달성(實達城)-피라미드’와 ‘허달성(虛達城)-피라미드’가 바로 그것이지요.

신기하게도 ‘우리’의 고대사(古代史)는 이 피라미드(pyramid)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라미드(pyramid) 자체에 대한 연구, 더 크게 보자면 거석(巨石) 문명 자체에 대한 연구가 몹시도 적은 특징이 있습니다.

이처럼 연구가 적은 것은 ‘심증(心證)적인 정보’는 있으나 - 이는 ‘충분한 객관적인 정보’가 흔하지 않음을  누뜻함 -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한 영역에서의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여, 부도지(符都誌)에서 실달성(實達城)과 허달성(虛達城)을 나누고, 인류의 역사를 신화시대에서 부터 역사시대까지 일이관지(一以貫之)하게 논(論) 한다든가, 또는 한단고기(桓檀古記)에서 서안(西安)의 피라미드(pyramid)를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표현한 것과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안(集安)의 피라미드 즉 적석총(赤石冢)이 ‘고구리(高句麗)의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모든 사학자(史學者)들이 인정되고 있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리(高句麗)의 피라미드(Pyramid)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라미드(Pyramid)를 언급한 논술(論述) 가운데, 매우 놀랍게도 거시경제학(巨視經濟學, macroeconomics)을  정립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있습니다.

그것도 이 케인즈가 ‘거시 경제학’을 주창한 명저(名著)인 ‘고용(雇用), 이자(利子)및 화폐(貨幣)의 일반이론’이라는 책에서 피라미드(pyramid)에 대한 언급이 2군데나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케인즈가 개척한 거시경제학(巨視經濟學)은 ‘세계공황(世界恐慌)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 경제학 이론(theory)로써 그 원인을 지적하고, 대처방법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바탕’을 제시한 ‘경제학적인 이론체계’는  얼마 안 되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이론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케인즈’가 거시경제학(巨視經濟學)을 제창한 저술이 바로 ‘고용(雇傭), 이자(利子)및 화폐(貨幣)의 일반이론’이라는 명저(名著)입니다.

(*)참고 : 다행히 이 책은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좌계가 본 책은 ‘고용(雇傭),이자(利子)및 화폐(貨幣)의 일반이론, J.M.케인즈, 조순(趙淳)역, 비봉(比峰)출판사, 1997.2.28’입니다. 이 책은 비봉(比峰)출판사에서 경제학(經濟學) 고전(古典) 선집(選集)[12]로 기획 씨리즈(series)가운데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전게서(前揭書)에 소개된 내용을 ‘말씀드리 전’에 왜 좌계가 이번 쓰는 [F]의 글 제목인 <소(小) 을파소(乙巴素)였던 ‘케인즈’와 , 피라미드-[F]>라고, ‘케인즈’의 명칭 앞에 ‘소(小) 을파소(乙巴素)’라는 수식어(修飾語)를 썼는지를 말씀드려야할 듯 합니다.

케인즈가 주장한 내용은 이 글에서 전게서(前揭書)의 원문(原文)을 그대로 소개하게 되겠지만, 결국은 이집트(Egypt)에서 ① 피라미드(pyramid)의 건조(建造)와 ② 귀금속(貴金屬)의 탐색(探索) -이는 귀금속(貴金屬)을 탄광에서 ‘캐내는 것’을 뜻함 - 이라는 두 가지 ‘거국적(擧國的) 행위’ 때문에, 유효수요(有效需要)가 부족(不足)하지 않게 되었고, 그 결과 ‘비자발적(非自發的)실업자(失業者)’가 없는 완전고용(完全雇用) 상태에 있게 되어,  ‘시장경제(市場經濟)’를 채택하면 필연적으로 오게 되는 공황(恐慌)을 겪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케인즈의 이론은 한마디로 잘라서 말하면,  “사회의 저축(貯蓄)의 총합(總合)은 소비(消費)와 투자(投資)의 총합(總合)보다 크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시중(市中)의 돈(money)이 돌아야 - 이는 시중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실물적 거래가 왕성함을 뜻함 - 경제가 활성화가 되는데, 이것은 곧 소비(消費)와 투자(投資)라는 것입니다.  투자(投資)라는 것은 ‘재화(財貨)를 - 이는 상품(商品)과 용역(用役)을 합쳐서 칭하는 말입니다. - 사서 자본재(資本財)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러자면 돈(money)이 나가게 되는 것이지요.
사업(事業)에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연히 투자를 꺼리게 되고, 그 결과 ‘사회의 저축의 총합(總合)’은 커진다는 것입니다.

공황이란 것은 은행(銀行)에 돈(Money)이 가득하고, 또 공장(工場)이 생산(生産)능력으 가득하며, 일하고 싶어하는 노동자(勞動者)들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시중(市中)에서 돈(money)이 전혀 안도는 사태가 옴을 뜻합니다.

따라서 “소비(消費)와 투자(投資)인 유효수요(有效需要)를  국가(國家)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주어야 만이 이것이 초과된 저축(貯蓄)을 활성화시키게 되고, 공황은 발생하지 않게 된다.”라는 논리를 편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국가(國家)가 직접 나서서 이런 유효수요(有效需要)를 ‘일으킬 수 있는 항상적인 아이템(Item)’이 근대국가에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케인즈(Keynes)는 이집트(Egypt)문명에서는 바로 피라미드(pyramid)건조와 귀금속(貴金屬) 탐광(探鑛)활동을  통해서 이 일을 늘 상 해냈다는 것을  자신의  저술인 ‘고용.이자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바람직한 모델(model)로써 그 예(例)를 든 것입니다.

문제는 늘 상 이런 피라미드(=적석총(赤石冢))을 짓고 있는 고구리(高句麗)에서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께서는 “진대법(賑貸法)을 실시하였다.”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내용을 읽고, “아...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께서 ‘케인즈 이론’을 앞서서 실천하셨고, 그 실질적인 내용은 케인즈를 뛰어넘었구나!!” 하는 생각을 품는 학자(學者)들이 드물다는데 있습니다.


가. 진대법(賑貸法)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진대법(賑貸法)을 ‘춘궁기(春窮期)에 곡식을 백성(百姓)들에게 빌려주고, 가을의 수확기(收穫期)에 갚는 제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賑)은 ‘구휼(救恤)하다.’는 뜻이어서 오늘날 말로 하자면, 무상원조(無償援助)에 가까운 개념이고, 대(貸)는 대출(貸出)의 개념입니다.  

대출(貸出)은 ‘빌려줄 때’ 담보(擔保)를 잡과, 또 이자(利子)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진대법(賑貸法)의 실시가 기록되어 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국천왕(故國川王) 16년 (194년) 조(條)를 보면, 더욱 진대법(賑貸法)의 실상(實狀)이 “과연 봄에 빌려주고, 가을에 되받는 것을 고구리가 백성들에게 실시했는가?” 하는 것이 ‘아리송’해 진다는데 있습니다.

(*) 이하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국천왕(故國川王) 16년 (194년) 조(條) 옮김. (*)

十六年 秋七月 墮霜殺穀(墮 恐是隕之訛刻) 民飢 開倉賑給
16년 7월에 서리가 와서 곡식을 상하여, 백성이 굶주리므로 창고(倉庫)를 열어 ‘구휼 곡식’을 공급하였다.

冬十月 王畋于質陽 路見坐而哭者 問何以哭爲 對曰 臣貧窮 常以傭力養母 今歲不登 無所傭作 不能得升斗之食 是以哭耳

10월에 왕이 질양(質陽)으로 사냥나갔다가 갈에 앉아 통곡하는 사람을 보고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대답하기를, “신(臣)은 빈궁하와 항상 품을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올해는 흉년이 들어 일할 곳이 없고, 한 말과 아니 한 되의 양식(糧食)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울고 있었습니다.

(*) 주의(注意) 말씀 - 1 :
이 대목이 중요한 것이 곡식(穀食)은 고대사회의 ‘실물화폐’입니다. 다시 말하여 시장(市場: market)에서 거래되는 것이 ‘곡식(穀食)’이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임금 앞에서 통곡(痛哭)하신 분이 오늘날 말로 하자면, 노동자(勞動者) 즉 ‘풀팔이’인데, 지금이나 그때나 경기(景氣)가 나빠지면, 품을 팔수가 없고, 따라서 노모(老母)를 굶어죽게 하는 현실 때문에, 통곡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이 16년 조의 ‘백성의 눈물’은 불경기(不景氣)때 소득(所得)이 없어서 ‘처창한 상황’에 돌입해야하는 경제적 문제가 정면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王曰 嗟乎 孤爲民父母 使民至於此極 孤之罪也 給衣食 以存撫之
왕(王)이 말하기를 “슬프다!! 내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백성이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는 나의 죄악(罪惡)이로다!”고 하며 (현장(現場)에서 즉시) 의식(衣食)을 공급하고,  (노모(老母)를 비롯한 주위 상황을)에 대한 안부(安否)를 물으시고, 위로하시었다.

(*) 주의(注意) 말씀-1
참으로 감격스러운 장면입니다.  불경기(不景氣)에 노동(勞動)의욕은 있으나, 실업(失業)의 고통으로 통곡하는 백성 앞에서 “내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백성이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는 나의 죄악(罪惡)이다.”라고 슬퍼하신 임금이 바로 고국천왕(故國川王)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즉각적으로 의식(衣食)을 공급하였다.”는 <급의식(給衣食)>이란 구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이존무지(以存撫之)의 해석을 현 삼국사기 해석자들이 대충 슬쩍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존(存)의 뜻은 일반적으로 ‘존재하다.’ ‘있다.’라는 의미이지만, “안부(安否)를 묻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①존재(存在)와 ②‘안부(安否)를 묻다’는 것이 같은 개념(槪念)으로 있었다는 것 자체가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즉 ‘남의 안부(安否)를 물을수 없는 형편’에 있는 것은 빈부(貧富)를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 인간’으로 생각한 흔적을 느끼게 하는 대목인 것입니다.
아무튼, 이존무지(以存撫之)는 고국천왕 (故國川王)께서 “그래..어머님은 연세(年歲)가 어찌되시는가? 병환(病患)은 없으시고, 자제(子弟)분은? ”등등으로 아주 상세(詳細)하게 안부(安否)를 물으시면서, “그러시면...이렇게 처리할터이니 부족하나마 서러움을 참으시게나...”고 위로한  것을 뜻합니다.
(좌계는 이 이존무지(以存撫之)라는 글귀를 읽는 순간, 눈물이 서림을 금치 못했읍니다.  아...고구리(高句麗)여! 나의 진정한 조국이여! 임금 앞에서 실업의 고통으로 울 수 있었던 나라여! 그리고, 이런 백성의 실업자의 고통을 보고 나의 죄(罪)라 여기시고, 일일이 안부를 물으시던 고국천왕(故國川王)이시여!)  

仍命內外所司 博問鰥寡孤獨老病 貧乏不能自存者 救恤之
곧 (궁궐(宮闕)로 들어오자 마자), 내외(內外)의 유사(有司: 담당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가정(家庭)이 결손된 홀아비, 과부, 고아(孤兒)들과 늙은 사람 및 병약자(病弱者) 등 ‘가난하고 결손(缺損)가정’이어서 서로 ‘안부를 물어 돕고 살수 없는 자’를 - 이것이 부능자존자(不能自存者)의 뜻임 - 구휼(救恤)하도록 하였다.

命有司 每年自春三月至秋七月 出官穀 以百姓家口多小 賑貸有差 至冬十月 還納以爲恒式 內外大悅

또한 유사(有司: 담당 관료)에게 명령(命令)하시어, 매년(每年)마다 춘삼월(春三月)부터 추칠월(秋七月)에 이르기 까지 궁궐(宮闕)의 곡식(穀食)을 내어서 백성의 가구(家口) 다소(多少)에 따라 그냥 주는 진(賑)과 빌려주는 대(貸)에 (각기) 차등(差等)을 두게 하였고, 겨울 시월에 이르러 환납(還納)하게 함을 “법제화(法制化)” -이것이 항식(恒式)임 -하였다. 내외(內外)가 크게 기뻐하였다.

(*) 주의(注意) 말씀 -(2) :
바로 이 대목이 진대법(賑貸法)의 문헌적 근거가 되는 곳입니다.
즉 원문(原文)의 진대유차(賑貸有差) - “그냥 주는 진(賑)과 빌려주는 대(貸)에 (각기) 차등(差等)을 두게 하였다.”는 것이 항식(恒式) 다시 말하면 법제화(法制化)가 되었기 때문에, 진대법(賑貸法)이라고 후세(後世)에 칭하게 된 것은 타당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위 문장에서 궁곡(宮穀)이라함은 고구리(高句麗)에서 세곡(稅穀)으로 거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세곡(稅穀)을 내었다.”는 출궁곡(出宮穀)은 오늘날로 말하면 공공지출(公共支出)의 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이런 고국천왕(故國川王)의 정책은 ‘케인즈(Keynes)이론’과 관련이 깊음은 당연하다 할것입니다.
그런데 출궁곡(出宮穀)의 의미가 “세곡(稅穀)으로 받은 것을 푸는 것을 항식(恒式)으로 했다.”라고 그 원(原)의미를 파악하고 나면, 진대유차(賑貸有差)에서 대(貸)의 의미가 ‘매우’ 미묘해집니다.
왜냐하면, “세곡(稅穀)으로 거둔 것을 백성(百姓)들에게 <담보를 ‘받고’ 빌려주는 것>을 법제화(法制化)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기 백성이 ‘가난할 때’에 고구리(高句麗)가 세금으로 ‘공짜로’ 거둔 것을 ‘담보’를 잡고 빌려주면서, 동십월(冬十月)에 못 갚으면, 잡힌 담보까지 몰수(沒收)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는 문맥(文脈)상 성립할 수 없는 가정(假定)입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고국원왕(故國原王)께서 질양(質陽)에서 ‘품팔이’로 살아가는 백성의 - 따라서 담보로 잡힐 땅이 없는 백성이다. - 처참한 상황에 ”이는 나의 죄악(罪惡)이로다!“라고 이런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代案)으로 진대법(賑貸法)이 나왔기 때문에, 앞 뒤의 논리가 맞지 않게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원문(原文)에는 항상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내외(內外)의 유사(有司: 담당관료)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내(內)는 고구리(高句麗)의 직할지(直轄地)로 볼수 있고, 외(外)는 관경삼국(管境三國)이 관장하는 소도(蘇塗)에 참여한 제국(諸國)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貸)의 의미는 ‘고구리(高句麗)’가 소도(蘇塗)에 참여하거나, 우호적(友好的)으로 대하는 나라에 대해 ‘어떤 담보’를 잡히고, 곡식(穀食)을 빌려서 오고, 나중에 동십월(冬十月)에 거두어진 세곡(稅穀)으로 갚는 것을 뜻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국천왕(故國川王) 16년(194년) 조(條)에 있는 진대법(賑貸法)의 실질적 내용은 원문(原文)을 면밀히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 - “춘궁기(春窮期)에 빌려주고 가을 수확기(收穫期)에 되갚게 하는 제도”가 분명히 아님을 알수가 있습니다.
진대법(賑貸法)은 진법(賑法)과 대법(貸法)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법(貸法)에서 ‘담보를 잡히고 빌려 오는 대상은 고구리(高句麗)의 정부(政府)가 - ’고구리사초‘ 표현으로 하자면 정원(政院)임 - 아니라, 어디까지나 외국(外國)이었고, 변제(辨濟) 의무를 지닌 측이 바로 < 구리 정원(政院)>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규명(糾明)은 진대법(賑貸法)의 창안자(創案者)로 알려진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더욱더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진대법(賑貸法)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국천왕(故國川王) 16년 기록은 춘궁기(春窮期)에 나누어지는 그 곡식이 궁곡(宮穀)이 원천이기 때문에, 이는 공공지출(公共支出) 정책임이 분명히 드러나고, 바로 이점 때문에 좌계는 거시경제학(巨視經濟學)을 일으킨 케인즈(keynes)에 대해서 감히 - 소(小) 을파소(乙巴素)라고 붙이게 된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 이하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국천왕(故國川王) 16년 (194년) 조(條) 옮김. 마침. (*)

- 각설(却說)

위에서 보다시피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의 ①진법(賑法)은 구휼(救恤) 곡식(穀食)을 그냥 주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② 대법(貸法)은 고구리 정부가 즉 정원(政院)이 외국에게 ‘어떤 담보’를 잡히고, 곡식(穀食)을 빌려와서 동십월(冬十月)에 거둔 세곡(稅穀)으로 다시 갚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일반 백성은 그냥 구휼(救恤)-곡식(穀食)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문제는 고대의 곡식(穀食)이 실물화폐로써 시장(市場: Market)에서 물건을 사고 팔수 있는 돈(money)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궁곡(宮穀)을 풀어서 구휼하였다.”는 진대법(賑貸法)의 핵심은 오늘날 말로 하자면 “불황기(不況期)에 돈(money)을 풀어 주었다.”라는 말과 동의어(同義語)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나. 피라미드(pyramid) 건축에 공급되었던 두둑한 임금(賃金)

그런데, “그냥 돈(money - 여기서는 곡식(穀食)을 뜻함)을 주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바로 피라미드(Pyramid)의 건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집트(Egypt) 피라미드(Pyramid)를 쌓을 때에는 ‘피라미드(pyramid)를 쌓음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임금(賃金)을 아주 두둑하게 주었음’이 피라미드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상식(常識)’이란 점부터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요시무라 사쿠지 지음, 김이경 옮김, 서해문집’ 이란 책의 p127에 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습니다.

(*)이하 전게서(前揭書) p127옮김 (*)
현재 쿠푸는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걸출한 파라오 중 한명으로 꼽힌다.  피라미드 건설도 농사일을 할수 없는 범람기에 사람들을 작업에 종사하게 하게 해서 의류와 식량을 배급한, 일종의 실업대책 갈은 것이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아스완의 채석장에는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이 쓴 듯한 낙서가 많이 남아있다.
내용은 “국왕만세” “집에 돌아가면 배불리 먹어야지” 같은 밝은 어조 일색이다.  이것만 봐도 당시 사람들이 노예처럼 채찍을 맢으며 일한 것이 아니라, 고달프긴 해도 오히려 매일 매일 즐겁게 공동작업을 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하 전게서(前揭書) p127옮김 마침 (*)

바로 이점입니다.
피라미드(pyramid)건설에는 ‘작업하는 사람의 의류와 식사(食事)’는 기본적으로 제공되었고, 분명히 ‘두둑한 임금(賃金)’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집어 돌아가면 배불리 먹어야지...”하는 낙서(落書)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구리의 피라미드를 - 최소한 집안(集安)의 피라미드(pyramid)와 어쩌면 서안(西安) 피라미드 까지도 - 쌓을 때도 역시 이 적석총(積石塚)의 건조(建造)작업에 들어가는 의복(衣服),공구(工具), 그리고 식사(食事)는 무상(無償)으로 공급이 되고, 임금(賃金)은 ‘따로 두둑히 제공’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케인즈(Keynes)의 거시경제학’에서 하나의 사례(事例)로써 든 이집트(Egypet)의 피라미드 건설이 ‘유효수요’가 부족한 시장(市場)에 대량의 유효수요를 공급하는 수혈(輸血) 작업이라는 설을 바로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께서 실시하였음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케인즈(Keynes)가 자신의 저술에서 주장한 내용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서 공급한 임금(賃金)이 바로 <화폐(貨幣)의 창조>라는 사실입니다.
즉 “궁곡(宮穀)을 풀어 주었다.”는 것은 바로 피라미드(pyramid)를 -최소한 집안(集安)의 피라밋, 어쩌면 서안(西安)의 피라밋 까지도 - 쌓는데 임금(賃金)으로써 내어 주었음을 뜻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의 진대법(賑貸法)은 ‘케인즈(keynes)의 거시경제학’의 실질적 맥락을 맞닿아 있음을 이해하면서 알 수 있습니다.

2.  ‘고용(雇用), 이자(利子)및 화폐(貨幣)의 일반이론’이란 저술(著述) 속에 인용된 피라미드(pyramid)언급 관련 부분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케인즈(J.M.keynes)가 자신의 저술 ‘고용, 이자및 화폐의 일반이론’이란 저술 속에 인용된 피라미드(pyramid)언급 부분을 뜯어보아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
실제 고구리(高句麗)의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께서 실시한 진대법(賑貸法)을 집안(集安)의 피라미드를 지으면서, ‘거시경제학적인 처방’을 실시하였음이 분명한데, “이런 을파소(乙巴素)의 정책이 케인즈(J.M. Keynes)의 경제학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하는 것이 오늘날 미국의 ‘금융위기’ - 앞에 새로운 활로(活路)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케인즈는 자신의 저술인 전게서(前揭書)에서 놀랍게도 - 좌계가 내용을 압축해서 미리 설명하자면, - 정부가 “땅을 팠다가 되묻는 행위와 같은 것을 하면서 - 따라서 이는 경제적으로 아무것도 생산(生産)함이 없는 것을 뜻합니다.  -  임금(賃金)을 지불할수록 유효수요(有效需要) 부족에 허덕이는 불황국면은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원문을 그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신성(神聖)함은 재화(財貨)가 공급되어도 수요(需要)가 만족(滿足)으로 인해 줄어들지 않는다.

(*) 전게서(前揭書) p128~p129 옮김 (*)

만약 재무성(財務省)이 낡은 몇 개의 병(甁)에 은행권(銀行券)을 채워서 그것을 폐광(廢鑛)된 탄광(炭鑛)의 적당한 깊이에 묻고, 그 다음에 탄광(炭鑛)을 도시(都市)의 쓰레기로 지면(地面)까지 채워놓고, 허다한 시련(試鍊)을 잘 이겨낸 자유방임(自由放任)의 원리(原理)에 입각하여 개인기업(個人企業)에 다시 파내게 한다면, (물론, 이것을 할 수 있는 권리(權利)는 은행권(銀行券)이 묻혀있는 지역(地域)의 임차(賃借)에 대한 입찰(入札)에서 얻어진다.)

더 이상 실업(失業)이 존재할 필요도 없어지고, 그 반작용(反作用)의 도움에 의하여, 사회(社會)의 실질소득(實質所得)이, 또 나아가서는 그 자본적(資本的) 부(富)도 또한, 그것이 현재(現在) 존재하는 것보다도 훨씬 크게 될 것이다.  물론 가옥(家屋)이나 또는 이와 비슷한 것을 건조(建造)하는 것이 보다 현명(賢明)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을 하는데 있어 정치적 또는 실제적(實際的)인 곤란(困難)이 있다고 한다면, 상기(上記)의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 방편(方便)과 현실세계의 금광(金鑛)과의 유사성(類似性)은 완전하다.  금(金)이 적당한 깊이에서 채광(採鑛)되던 시대(時代)에는 세계의 현실적인 부(富)는 빠른 속도로 증진(增進)하였고, 그것이 그렇게는 [적당한 깊이에서는] 조금밖에 채취(採取)되지 못하게 되는 바이다.  그리하여 금광(金鑛)은 문명에 대하여 가장 큰 가치(價値)와 또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다.  마치 전쟁이 대규모 차입지출(借入支出)의 유일(唯一)의 형태로써 정치가들이 이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과 같이, 금(金)의 채굴(採掘)은 지중(地中)에 구멍을 파는 유일(唯一)의 구실(口實)로서, 은행가들은 이것을 건전한 금융(金融)으로 환영하였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활동은 각각, 그 밖에 더 좋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진보(進步)에 대해 나름대로의 역할(役割)을 수행했던 것이다.  상술(詳述)하자면 , 불황기(不況期)에 노동(勞動) 및 물자(物資)로 측정된 금(金)의 가격이 등귀(騰貴)하는 경향은 궁극적인 경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금(金)의 채굴(採掘)이 경제성(經濟性)있게 행하여질수 있는 깊이를 증가시킴과 동시에, 수지(收支)가 맞는 광질(鑛質)의 최저급(最低級)을 내리는 까닭이다.
(*) 전게서(前揭書) p128~p129 옮김 마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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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케인즈(Keynes)의 이야기는 금광(金鑛)에서 ‘금(金)을 캐는 행위’가 경제학적(經濟學的)으로 보면 ‘재화(財貨)의 공급(供給)을 일으키는 생산(生産) 활동’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까다롭기는 하지만, 이는 ‘케인즈 경제학’의 가장 핵심된 사항이기 때문에, 우리가 철저히 이해할 필요가 있는 대목입니다.

재화(財貨)란 시장(市場: market)에서 - 이는 돈(money)으로써 사고 팔수 있는 대상 즉 상품(商品)과 용역(用役)을 뜻합니다. - 수요(需要)도 일으키고 공급(供給)도 일으키는 대상(對象: object)인데, 금(金)을 비롯한 귀금속(貴金屬)이 - “고대(古代)에는”- 재화(財貨)로써 공급이 되는 상품(商品)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금(金)과 은(銀) 따위의 귀금속(貴金屬)이 상품 즉 재화(財貨)라면 시장(市場)에 경쟁적으로 공급(供給)되어서 ‘그 값’이 하락(下落)될 동안,  경쟁적으로 그 차익(差益)에 해당하는 저축(貯蓄)의 상승이 일어나고, 이는 즉각 사회 전체의 저축(貯蓄)이 소비(消費)와 투자(投資)의 총합 보다 “커지게 되어서” - 불황(不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금속(貴金屬)은 효용(效用)가치에 - 이는 사용(使用)할 때의 만족(滿足)을 뜻하는 말임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금은(金銀)은 효용가치와는 무관하게 ‘무조건 귀(貴)하다.’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어서, 오히려 화폐(貨幣)의 기준(基準) - 다시 말하면 태환 화폐(貨幣)의 중심을 차지 할 수 있었다.”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금은(金銀)이란 귀금속(貴金屬)이 화폐의 기준 - 즉 금화(金貨)와 은화(銀貨)로써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은  ‘돈(money)의 흐름’에서 볼 때, 금광(金鑛)을 ‘캘려고 할 때의 반대급부로 준 임금(賃金)’이 돌고 도는 것 때문에, 유효하다는 것을 ‘케인즈(keynes)’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금은(金銀)이란 귀금속(貴金屬)이 ‘화폐’로써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재화(財貨)로써 시장에 공급(供給)되어 그 값이 하락(下落)할 위험이 없이 ‘캐낼 때’ 돈(money)이 돌고 돌게 한 바로 그 ‘힘’ 때문에, - 다시 말하면, 상품(商品)으로써 공급(供給)됨을 이겨내는 ‘순수(純粹) 수요(需要)’를 창출(創出)하는 그 원인(原因)이 되었기 때문에 화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케인즈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케인즈(keynes)의 첫번 째 피라미드 언급

아무튼 케인즈(Keynes)의 ‘화폐(貨幣)의 본질’에 대한 개념은 그가 자신의 저술인 전게서(前揭書)에서 ‘첫번 째 피라미드(pyramid)를 언급하는 장면’에서 또한번 강조됩니다.

(*)이하 전게서(前揭書) p130 관련부분 옮김 (*)

고대 이집트는 <두 가지>의 - 활동, 즉 피라밋의 건조(建造)와 귀금속(貴金屬)에 대한 탐색을 행(行)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이중(二重)으로 호운(好運)이었고, 그 신화적(神話的)인 부(富)도 의심의 여지없이 이들 활동의 덕택이었다.  이들 활동의 과실(果實)들은 소비(消費)를 통하여 인류(人類)의 필요를 통하여 인류의 필요(必要)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풍족(豊足)하다고 해서 값어치가 떨어지지는 않는 것들이다.
중세(中世)는 사원(寺院)을 세우고, 만가(輓歌)를 노래하였다.  두 개의 피라밋, 사자(死者)를 위한 두 개의 미사곡은 하나에 비하여 2배(倍)의 효과가 있다.  
그러나 런던에서 요크까지의 두 개의 철도(鐵道)는 그렇지가 않다.  

그리하여 우리는 매우 분별(分別)이 많고, 견실(堅實)한 재정관리자(財政管理者)를 닮도록 훈련(訓練)되어 있어서, 자손(子孫)들이 살아갈 집을 지음으로써 혹시나 그들에게 [금융적(金融的)] 부담(負擔)을 끼치지나 않을까 신중(愼重)한 배려(配慮)를 할 정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실업(失業)의 고통(苦痛)으로부터 그렇게 쉽게 탈출(脫出)할 수가 없는 것이다.

(*) 주의(注意)말씀 1 - 이는 ‘케인즈’가 “무조건(無條件) 귀하다.”라고 생각하는 피라미드나 중세의 사원(寺院) 같은 것을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관념이 근대(近代)에 사라졌기 때문에, ‘돈(money)’을 만들면서도 실업(失業)을 면할수 있는 토대(土臺)를 단절(斷絶)시켰음을 뜻합니다. 오히려 저축(貯蓄)을 후손에게 물려줄 생각 때문에, 유효수요(有效需要)의 부족때문에, 정작 사회에 실업(失業)이란 현상이 발생함을 지적한 것입니다. - 좌계 주(註)1 (*)

우리는 이와 같은 실업(失業)의 고통을, 개인으로 하여금 장래의 어떤 특정한 시기(時期)에 그 권리(權利)를 행사(行使)하겠다는 의도(意圖)가 없이 향락(享樂)에 대한 청구권(請求權)을 축적(蓄積)할수 있도록 함으로써, 개인(個人)을 [부유(富裕)하게] 만드는데 가장 잘 꾸며져 있는 원리(原理)들을 국가(國家)의 행동(行動)에 적용한 불가피(不可避)한 결과(結果)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 주의(注意)말씀 2 - 여기서 케인즈(keynes)가 ‘향락(享樂)에 대한 청구권(請求權)을 축적(蓄積)’한다는 것은 ‘소비할 수 있는 권리’ 즉 구매력(購買力)인 돈(money)을 저축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장래의 어떤 특정한 시기(時期)에 그 권리(權利)를 행사(行使)하겠다”는 의도(意圖)는 ‘교환될 수 없는 신성한 권리(權利)에의 예약(豫約)’을 뜻합니다.  즉 이집트(Egypt)의 피라미드 와 중세의 사원(寺院)에서 모든 사람이 믿었던  ‘내세(來世)에서 영혼이 구제받았다는 권리’를 마련하는 의도(意圖)를 뜻합니다.

특이하게도 케인즈(keynes)는 “ ‘교환(交換)되지 않는 미래의 권리’에 대한 예약(豫約)에 대한 ‘믿음’이 현실(現實)에서 인간이 ‘화폐’를 만들 수 있는 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이를 근대(近代)에서 포기하였기 때문에, 실업을 비롯한 경제적 고통이 ‘불가피(不可避)하다.’라는 관념이 싹트게 되었다.”라고 기술(記述)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개, 어떤 학술(學術)의 대가(大家)의 글 들은 ‘그 글 내용을 형성하는 진지한 탐구과정’이 있기 때문에, 그가 결론적으로 규명(糾明)안 ‘내용’ 뿐만이 아니라, 서술(敍述)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내용 자체가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오묘(奧妙)한 돌파구(突破口)’가 되는 내용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케인즈가 피라미드(pyramid)와 관련해서 언급한 ‘화폐(貨幣)의 본질’에 대한 위에 인용한 구절(句節)도 그런 부분이라고 좌계는 봅니다.

즉 이집트(Egypt)-피라미드(pyramid) 문명에서 ‘피라미드’ 속(內)에서 행해지는 ‘의사(擬似) 내세(來世) 체험(體驗)’과 이로써 획득된 ‘교환될수 없는 성(聖)스런 권리’ - 이 권리(權利)는 무조건(無條件) 귀(貴)한 것이고, 아무리 양산(量産)된다고 할지라도, 만족(滿足)이 체감(遞減)되어 그 가격(價格) 하락하는 것 - 즉 상품화(商品化)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신성한 노동의 댓가가 오히려 ‘화폐’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케인즈(keynes)의 논리(論理)는  고구리(高句麗)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께서 진대법(賑貸法)을 실시한 것이 흔히들 원문(原文)을 엄격하게 검토 안하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느낌 - 즉 “봄에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다.”는 금융업(金融業)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구리(高句麗)에서 ’의사내세공간(擬似來世空間)인  피라미드(pyramid) 속에서 체득한 내세(來世)에서의 권리‘를 위해 노동하고 받은 임금(賃金) 자체가 화폐(Money)가 되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나.  케인즈(keynes)의 논리와 진대법(賑貸法)의 치유(治癒) - 진대유차(賑貸有差)!

즉 ‘케인즈(Keynes)의 논리’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고구리(高句麗)가 의사내세공간(擬似來世空間)’이란 ‘미래의 성(聖)스런 권리’를 위해서 집안(集安)의 피라미드(pyramid)를 만들기 위해서 노동(勞動)을 하고, 받은 임금(賃金)자체가 바로 화폐의 창조인 세노리지(seiniorage)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께서 베푼 진대법(賑貸法)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시각(視覺)은 정당한 것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즉 진대법(賑貸法)은 진법(賑法)과 - 이는 구휼(救恤)을 위해 ‘그냥 돈(money)를 피라미드(pyramid)건설의 임금(賃金)으로써 주는 것’을 뜻합니다. 대법(貸法)으로 - 이는 고구리(高句麗) 정부(政府=정원(政院))이 외국(外國)에 담보(擔保)를 잡히고, 곡식(穀食)을 -이는 화폐와 동의어(同義語)이다. - 빌려오고, 동십월(冬十月)에 세금을 거두어서 그 원금(元金)과 과 이자(利子)를 갚는 것을 뜻합니다. - 가져온 것 까지 임금(賃金)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법(賑法)이나 대법(貸法)이나 결국 ‘고구리(高句麗) 백성’은 불경기(不景氣)에 먹고사는 돈(money)을 실물화폐인 곡식(穀食)으로 받는 대신, 집안(集安)의 피라미드를 비롯한 피라미드를 쌓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피라미드(pyramid)를 쌓는 것은 불경기(不景氣)나 공황 속에서 유효수요(有效需要)를 수혈(輸血)키 위해 임금(賃金)을 지불하는 것이기 때문에,  병자(病者)나 노약자(老弱者)일수록 ‘노동하였고’, 그 임금(賃金)을 받았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여야합니다.

“병자(病者)가 무슨 집안(集安) 피라미드를 지어?? 불구자(不具者)가 무슨 적석총(赤石冢)을 지어?” - 이는 오늘날의 개념 ‘상품화(商品化)된 노동(勞動)의 댓가’로 ‘질(質) 좋은 노동’일수록 많은 댓가를 받고 ‘질(質)나쁜 노동’일수록 적은 댓가를 받는 개념에 불과한 것입니다.

케인즈(keynes)가 이야기한 내용(內容)의 본질적인 측면은 ‘성(聖)스런 내용의 노동’은 품질(品質)으로 구분할 수 없는 ‘신성함’과 귀(貴)함이 있고, 이를 노동(勞動)을 한 댓가로 주어지는 것은 그것이 그대로 화폐가 된다는 것입니다.

굳이 예(例)를 들자면, “늙어서 눈(眼)이 침침해지는 노인(老人)과, 맹인(盲人)에게 집안(集安)의 피라미드 내부의 사신도(四神圖)를 그리게 한다던가, 혹은 ‘거의 기동(機動)할 수 있는 사람’에게 피라미드의 마지막 청소를 맡긴다.”든가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신성(神聖)하다는 것은 ‘노동의 생산성’에 따라서 분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處)한 현실에서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전(挑戰)’에 따른 댓가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국천왕(故國川王) 16년 조(條)에서 언급한 <진대유차(賑貸有差)>의 개념인 것이지요.  

한자(漢字) <차(差)>의 개념은 ‘다르다’는 차이(差異)를 나타나기도 하지만, 특이하게도 <치유(治癒)>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로 쓰는 용례(用例)가 <감차(減差)>라는 것인데, 이는 환자(患者)의 상태가 점점좋아져서 ‘치유(治癒)하는 것’을 ‘줄여도 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상태가 호전(好轉)된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차(差)의 뜻을 ‘치유(治癒)’로 놓고 진대유차(賑貸有差)를 해석하자면 “진대법(賑貸法)에서는 치유(治癒)를 찾았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有)에는 ‘찾다.’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러나 차(差)의 뜻을 일반적인 의미 - 차등(差等)으로 해석해도, 진대유차(賑貸有差)는 집안(集安)등의 ‘피라미드(pyramid)’를 쌓음에 있어, 노동(勞動)의 생산성에 따라서 차등(差等)적으로 임금(賃金)을 준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문(原文)에 “출궁곡(出宮穀) 이백성가구다소(以百姓家口多少) 진대유차(賑貸有差)”로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부양할 가구(家口)가 많으면 많이 받고, 적으면 적게 받았음을 보여주는데,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사람 - 즉 해당 가구의 가장(家長)에게 ‘최대한 자신의 영혼의 거듭남’을 걸고 ‘최대한 도전’을 한 댓가로 주어졌던 것입니다.

한 발자국 옮기기도 힘든 병자(病者)에게 피라미드(pyramid)의 청소(淸掃)를 맡기고, 이를 해내면, 가구(家口)수(數)에 따른 임금(賃金)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본 다른 ‘피라미드 노동자’들이 절대로 “겨우 저런 일을 하고도 고액(高額)을 타먹는가?!”하고 불만(不滿)을 가지기는 커녕, 오히려 이런 노동에 큰 댓가를 받는 것에 대해서 감격(感激)했음은 물론입니다.
왜냐?
그것이 ‘생전(生前)에 영혼이 미리 사후(事後)세계에 간 ’하늘 사람‘의 인품(人品) - “하늘은 스스로의 한계(限界)의 벽에 도전하는 성실성(誠實性)에 넉넉하게 보답한다.”는 이런 현실에 대해서, “ 런 하늘이야말로 진정 가우리(Gauir)의 하늘이다.!!”라고 생각하였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표현으로 말하자면, 피라미드(pramid) 속의 노동(勞動)은 주어진 신체 조건 속에서 ‘최대한 노동력을 이끌어내는’ 인간승리(人間勝利)의 게임(game)을 하는 신성(神聖)한 장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대법(賑貸法)에서 대법(貸法)이 고구리(高句麗) 정부가 외국(外國)에 대해 담보를 잡히고, 곡물(穀物)을 빌려와서 이를 임금(賃金)으로 지불하면서 집안(集安)의 피라미드 등등의 신성(神聖)한 건축에 종사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  케인즈(Keynes)가 두번 째로 피라미드를 언급한 곳.

참으로 묘하게도 케인즈가 저술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란 전게서(前揭書) p219에 2번째로 언급되는 피라미드(pyramid)가 들어있는 문장은 이 대법(貸法)의 실상(實像)을 비추어 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 참고 : <아래>의 원문(原文)을 읽을 때에는 -----
그 첫머리 부분에서 <자본(資本)의 한계효율(限界效率)의 하락(下落)>하고 난 다음 하이픈(hyphen)이 <-  ->로 있고 문장이 깁니다.  따라서 읽으실 때에는 하이픈(hyphen)부분, 즉 <-  ->을 빼고 먼저 읽고, 그 다음에 “‘한계효율의 하락’이란 개념에 대해서 겅제학적으로 어떤 정의(定義)가 내려졌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 두번째로 다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좀 딱딱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 이상 참고의 말씀 끝 (*)

(*) 전게서(前揭書) p 219 옮김 (*)

만일, - 이유여하(理由如何)를 막론하고- 이자율(利子率)하락(下落)의 속도(速度)가 자본(資本)의 한계효율(限界效率)의 하락(下落)의 - 자본(資本)의 한계효율(限界效率)은 완전고용(完全雇用)상태에서의 자본의 한계효율과 균등(均等)한 이자율(利子率) 하(下)에서 사회가 저축(貯蓄)하고져 하는 축적율(蓄積律)에 따라서 하락(下落)한다. - 속도(速度)보다도 완만(緩慢)하다면, 그때에는 부(富)의 축적(蓄積)에 대한 요구가 실제로 하등의 경제적 과실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조차도 경제적(經濟的) 후생(厚生)을 증가 시킬 것이다.

백만장자(百萬長者)가 생전(生前)에는 그들의 육체(肉體)를 수용(收用)하기 위해서는 호화(豪華)로운 저택(邸宅)을 건조(建造)하고, 사후(死後)에는 시체(屍體)를 안치(安置)하기 위하여 피라밋을 건조하며, 혹은 죄악(罪惡)을 참회(懺悔)하여 대사원(大寺院)을 세우고, 수도원(修道院)이나 외국(外國)선교단(宣敎團)에 기부(寄附)하는데 만족을 구(求)하는 한에 있어서는, 자본(資本)의 풍요가 산출물의 풍요를 방해하는 시기(時期)는 연기(延期)될 수가 있다.

‘지면(地面)에 구멍을 파는 것’도 그것이 저축(貯蓄)으로부터 지불(支拂)된다면, 고용(雇傭)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유용(有用)한 재화(財貨)및 용역(用役)의 실질(實質) 국민소득(國民所得) 배분(配分)도 또한 증가시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유효수요(有效需要)를 규정(規定)하는 여러가지 영향력을 이해한다면, 분별(分別)있는 사회가 이와 같은 우발적(偶發的)이며, 또 혼히 낭비(浪費)가 심한 완화수단(緩和手段)에 계속 의지(依支)하는데 만족한다는 것은 합리적(合理的)이라 할 수 없다.
(*) 전게서(前揭書) p 219 옮김 마침 (*)

- 각설(却說)
위에 인용한 케인즈(keynes)의 글은 ‘마르크스’의 <이윤율(利潤率) 하락(下落)의 법칙>과 관련이 있는 언급이라고 보여집니다.

‘마르크스’는 ‘끊임없는 교환(交換)과정을 통해서 자본축적’을 하는 자본주의 시장체계를 장기적이고 동태적(動態的)으로 분석해서 “자본주의(資本主義)를 움직이게 하는 힘인 이윤(利潤)이 자본축적을 하면 할수록 적어진다.”는 것을 자본론(資本論)에서 피력합니다.
그의 공식으로는 이윤율(利潤率)이란 것이 <잉여가치(剩餘價値):S/불변자본(不變資本):C+가변자본(可變資本):V>라는 것입니다.

(참고: 여기서 불변자본(不變資本)은 공장의 기계(器械)와 감가상각비를 뺀 값을 뜻하고, 가변자본(可變資本)이라는 것은 ‘노동을 통한 총 임금비용’을 뜻합니다.
이는 쉽게 말씀드리면,  노동자(勞動者)의 노동은 공장(工場)시설에 ‘붙어서 일할수 밖에 없고’, 여기서 뽑아앤 이윤(利潤)이 잉여가치(剩餘價値)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마르크스는 이윤율(利潤率)이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수록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음을 밝혀냈었는데, 이를 케인즈(keynes)는 다른 말 - 즉 자본(資本)의 한계효율(限界效率)이란 개념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한계효율(限界效率)이란 ‘새로운 하나의 자본(資本)이 들어갔을 때, 이윤율(利潤率)이 더 늘어나는가? 줄어드는가?’를 뜻합니다.

그런데, 케인즈(keynes)는 이런 자본(資本)도 다른 사람의 돈을 끌어다 왔기 때문에, 이 금융비용을 이자율(利子率)로 감안해준다면, 이윤(利潤)이 생긴 것을 소비(消費)하거나 재투자(再投資) 하지 않고 저축(貯蓄)하면 할수록, 자본(資本)의 한계효율(限界效率)이 더 빨리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케인즈(keynes)는 이윤(利潤)을 올린 것을 계속 저축(貯蓄)으로 축적하는 것을 ‘끄집어 내서’ 유효수요(有效需要)를 높이는 곳에 과감히 지출(支出)할수록 ‘자본의 이윤율(利潤率)이 격감(激減)되는 스피드(speed)가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자(利子)와 같은 금융비용을 지불하고서 자본(資本)을 축적시키면서 생산(生産)을 늘려갈 때에, 이 생산의 결과로써 생긴 이윤(利潤)을 저축(貯蓄)으로 축적하지 않고, 피라미드(pyramid)의 건설 등에 씀으로써 ‘사회의 후생(厚生)복지’가 늘어날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이윤율(利潤率) 저하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구리(高句麗)의 경우를 대입(代入)해서 설명드리자면,---- 고구리 정원(政院)에서 금은(金銀)과 같은 담보를 외국(外國)에 주고 대량의 곡식(穀食)을 대출(貸出)받아서, 이를 태행산맥(太行山脈)에서 천진(天津) 쪽으로 흘러들어가는 수많은 강(江)들을 산록(山麓)에서 갑문(閘門)을 내고 ‘교역할수 있는 시장(市場)’을 내고, 여기서 고구리와 외국의 선박들로 부터 받는 통관비(通關費)를 받는 것은 자본(資本)을 들인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로 부터 생긴 이윤(利潤)을 가급적 재투자(再投資)하고, 또 집안(集安)의 피라미드 건설 등에 진대유차(賑貸有差) 하는 방법으로써 백성들에게 임금(賃金)으로써 지불하는 것이 시중(市中)에 돈(money)이 잘돌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세금(稅金)도 많이 내게 된다는 이야기를 케인즈(keynes)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케인즈가 유효수요(有效需要)를 거론하면서 피리미드(pyramid)를 언급하는 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환(交換)’하는 - 사고파는 행위 - 시장에서 돈(money)을 받는 대신 제공되는 모든 재화(財貨)는 그 성격이 대부분이 ‘사용(使用)하면’ 만족(滿足)되기 때문에, “더 이상 수요(需要)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라미드나 대사원(大寺院)의 경우에는 재화(財貨)와 이를 건축하는 용역(用役)이 아무리 공급되어도, 결코 수요(需要)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피라미드(pyramid)나 대사원(大寺院)이란 재화(財貨)와 용역(用役)이 신성(神聖)하기 때문에 계속 수요(需要)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독실(篤實)한 기독교인은 주기도문(主祈禱文)을 충분히 드렸으니깐, 이젠 “지겹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화(財貨)와 용역(用役) 가운데는 제공되면 될수록 ‘수요(需要)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는 부분이 있는데, 고대(古代)문명은 이런 본질적인 깨달음 아래서 문명(文明)을 세웠기 때문에, 불황(不況)과 공황(恐慌)을 사전 차단하고, 심지어는 이미 일어난 불황과 공황을 치유(治癒)할수 있었다는 상징적인 예를 들기 위해서 자신의 저술에서 2번이나 피라미드를 언급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국천왕(故國川王)께서 질양(質陽)으로 사냥나가는 길에서 ‘품팔이’로만 살아가는 고구리 백성을 만나서 진대법(賑貸法)을 실시한 것으로 고국원왕(故國原王) 16년 조(條)에 기록되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기록에 내외유사(內外有司)가 언급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 내외유사(內外有司)는 ‘고구리 직할지(直轄地)와 - 이것이 내(內)의 의미임- 소도(蘇塗)를 통한 관할지(管轄地)에 - 이것이 외(外)의 의미임 - “이미” 담당관리인 유사(有司)가 배치되어 있고, 진대법(賑貸法)을 실시할 모든 작업이 이미 완료된 상태에 있었음이 들어난다고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질양(質陽)의 통곡(痛哭)>사건 - 이는 고구리(高句麗) 노동자가 고국천왕(故國川王)의 질양 사냥길 앞에서 품팔아 먹고살기가 힘듬을 통곡한 사건을 칭합니다. - 때문에, 고국천왕(故國川王)께서 “이미 충분히 준비(準備)된 진대법(賑貸法)을 당장 시행(施行)하라!”고 한 것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놀라운 거시경제학(巨視經濟學)적인 처방(處方)을 내린 분이 누군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는 이미 답(答)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이신 것이지요.

그런데,  고국천왕(故國川王)과 을파소(乙巴素)의 만남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이 <질양(質陽)의 통곡(痛哭)> 사건이 일어난 고국원왕 16년(A.D. 194)보다 3년 전인 고국원왕 13년 (A.D. 191년)에 - 다시 말하여 3년에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을파소(乙巴素)와 허달성(虛達城) 피라미드(Pyramid) - 죽려지검(竹呂之劍)의 권위(權威)

고국천왕(故國川王)께서 을파소(乙巴素)를 등용(登用)하는 장면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재(記載)된 내용만 보더라도 매우 감동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천(史穿) 김성겸 선생께서 고구리 초.략을 번역(飜譯)한 내용을 보면, 더욱더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이 탁월(卓越)한 경륜(經綸)에 압도되는 것입니다.

일단 고국원왕(故國原王) 12년(190년)에 보면,  고구리(高句麗)가 심각한 내홍(內訌)에 빠지기 직전 사항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 고국원왕(故國原王) 12년 (A.D. 190년) 기록 옮김 (*)

9월에 서울에 눈이 6척이나 쌓였다. 중외대부 패자(沛者) ‘어비류(於畀留)’와 평자(評者) ‘좌가려(左可慮)’는 모두 왕후의 친척으로써 국가의 권세를 잡고, 그 자제들도 아울러 권세를 믿고 교만하고 사치하여 사람들의 자녀를 약탈하고, 사람들의 전택을 빼앗으므로, 나라 사람들은 통분해 하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이를 죽이려하였는데, ‘좌가려(左可慮)’ 등은 ‘사연나(四椽那)’와 더불어 모반하였다.

(*) 고국원왕(故國原王) 12년 (A.D. 190년) 기록 옮김. 마침. (*)

- 각설(却說)
이런 사실은 왕후(王后)의 친척들이 패자(沛者)와 평자(評者) 등 법관(法官)의 요직(要職)을 차지하면서, ‘남의 자녀를 약탈하고 전답(田畓)을 뺏는 등’ - 사회정의(社會正義)가 크게 흔들림은 물론 왕이 응징하려하자 ‘반란’을 일으킬 정도로 ‘뿌리 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남당유고(南堂遺稿)를 보면, 뚜렷이 나타나지만, 고구리(高句麗)의 왕후(王后)를 비롯한 후궁(後宮) 조직들은 ‘소도(蘇塗)’에서 교육(敎育)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패자(沛者)나 평자(評者)등의 법관(法官)들은 ‘배달화백’에서의 ‘경우 판정관’이기 때문에, 결국 배달화백을 끌고나가는 소도(蘇塗)의 지도급(指導級) 인물들이 ‘천독(天毒)들의 자녀(子女)’과 전답(田畓)을 뺏는 것은 <소도(蘇塗)를 타락시키는> 심각한 내홍(內訌) 사태가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국천왕(故國川王)은 고구리를 끌고나가는 정신적 지주들이 오히려 ‘소도(蘇塗)를 타락시키는 내홍(內訌)’의 문제에 대해서 단호한 척결(剔抉)을 결심하자, 좌가려(左可慮) 사연나(四椽那)등이 반란을 일으키기 까지 했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아무튼 고국천왕(故國川王)은 이런 내홍(內訌)과 반란(反亂)을 척결(剔抉) 한 후에, 놀라운 선언을 하게 됩니다.
“요즘에 관직을 은총으로써 주고, 직책을 덕으로써 주지 아니한 까닭으로, 그 해독이 백성에게 미치고 우리 왕실을 동요시켰으니 이는 과인이 밝지 못한 탓이었다.  너희들 사부(四部)에서는 현량한 사람을 추천하라.”고 마침내 하명(下命)을 내립니다. (원문(原文): 遂下令曰 近者官以寵授 位非德進 毒流百姓 動我王家 此寡人不明所致也 令汝四部 各擧賢良在下者)

이런 고국천왕(故國川王)의 말씀이 인상적인 것은 “요즘에 관직을 은총으로써 주고, 직책을 덕으로써 주지 아니한 까닭으로...”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최고통치권을 장악한 사람으로써는 정말 하기 힘든 말입니다.  최고통치권자는 왕(王)이 직접 요직(要職)을 담당하는 사람을 임명하거나 최소한 자신의 주변 사람 가령 왕후(王后)등의 추천을 통해 임명하는데, 이런 식의 임명방식을 고전에서는 “은총(恩寵)을 내련다.”고 합니다.  즉 은총(恩寵)을 내리는 것은 ‘직접적 임명권’을 뜻하는 것인데,  대대적인 ‘물갈이’를 할 때일수록 직접적 임명권을 발휘하는 것이 통례입니다.  
그런데 고국천왕(故國川王)께서는 놀랍게도  ‘내 스스로의 임명권을 포기하고’ 사부(四部)에서 추천하기를 바랍니다.“는 놀라운 선언을 하였음이 고국천왕(故國川王) 12년 조(條)의 기록인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어서 고구리의 사부(四部)는 동부(東部)의 안유(晏留)가 추천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안유(晏留)는 “을파소(乙巴素)라야만 합니다.”라고 다시 추천(追薦)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문제는 이 안유(晏留)가 을파소(乙巴素)를 소개하는 말 가운데 아주 특이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원문(原文): 晏留言於王曰 微臣庸愚 固不足以參大政 西鴨淥谷左勿村乙巴素者 琉璃王大臣乙素之孫也 性質剛毅 智慮淵深 不見用於世 力田自給 大王若欲理國 非此人則不可

“미신(微臣)은 용렬하고 어리석어 능히 대정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서쪽 압록곡의 좌물촌에 을파소란 사람이 있사온대, 그는 유리왕 때 대신 을소(乙素)의 손자로, 성질이 강건하고 ①지혜가 깊은 연못 같사오나, ②세상에 쓰여지길 살피지 않고, ③ 농사에 힘쓰며 스스로 흡족하게 살고 있사오니, 대왕께서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시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줄 믿습니다.”

- 각설(却說)

위 안유(晏留) 선생 - 나중에 고국천왕(故國川王)께서는 을파소(乙巴素)란 훌륭한 국상(國相)을 소개시켜준 공으로 준 대사자(大使者)라는 벼슬을 받게 됩니다. - 소개하는 말 가운데, “①지려연심(智慮淵深) ②불견용어세(不見用於世) ③역전자급(力田自給)” 즉 “①지혜가 깊은 연못 같사오나, ②세상에 쓰여지길 살피지 않고, ③농사에 힘쓰며 스스로 흡족하게 살고 있사오니...”하는 대목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문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특이한 말이 나옵니다.
첫째는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께서 <역전자급(力田自給)> - 즉 “힘써 농사(農事)를 지어 자급(自給)했다.”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이 “왜 특이한 기록인가?”하면,  중국의 모든 사서(史書)에 “고구리(高句麗)인들은 모두 토착(土著)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부분이 해운업(海運業)과 씰크(silk-load)를 통한 교역(交易)에 관련된 삶을 주(主)로 살았고, 실제 농사(農事)짓는 사람은 극히 적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태행산맥(太行山脈) 산록(山麓)에 갑문(閘門)이 설치된 거대 수고(水庫)를 내고, 여기에 선박(船舶)을 끌고 들어오게 하는 이유까지도 “저 고구리 사람들은 곡식(穀食)이 부족해서 저런 댐(dam,)을 쌓는거야...”하고 생각할 정도로 국토(國土)를 농토(農土)로써 개간(開墾)하는 일이 적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리 궁실(宮室)속에 거둔 세곡(稅穀)이란 것도 고구리 국민(國民)이 직접 가꾼 농토(農土)에서 생산된 것은 거의 없고, 오히려 교역(交易)을 하는 과정에서 받은 실물화폐인 곡식(穀食)들과 또 한(漢)나라 황제가 제후국(諸侯國)으로 부터 받은 ‘조공(朝貢) 공정(工程) 플로우(flow)’를 통해서 투자받은 곡식(穀食)이란 화폐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을파소(乙巴素)-국상(國相)께서는 이런 일반적인 고구리(高句麗) 사람의 라이프-스타일(life-style)과는 달리 오히려 한족(漢族)들의 라이프 스타일(life-style)에서 발견되는 대규모의 농업(農業)단지(團地)를 운영하였던 것입니다.

“왜 을파소(乙巴素)국상(國相)께서 고국천왕(故國川王)이 등용하시기 전에 농사(農事)를 지었을까?”하는 질문을 하는 것은 그것이 워낙 고구리 사람으로써는 이질(異質)적인 사업을 운영하였기 때문에 꼭 짚어보아야 할 사항인 것입니다.

이는 생각컨데,  고구리(高句麗)가 중국대륙 안(內)에서 중국 천자(天子)를 떠받치는 일반적인 백성들이 주로 농민(農民)이었기 때문에, 농업(農業)에 대한 이해(理解)없이는 ‘중국대륙의 경영’의 실질적인 내용을 모르게 된다는 깊은 안배(按配)였으리라고 추정을 하게 되는 대목인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대목은 많은 사람들이 오역(誤譯)하고 있는 부분 불견용어세(不見用於世)의 내용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를 해석하기를 “세상에서 쓰여지질 않아서...”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는 오역(誤譯)입니다.  세상(世上)에서 쓰여지질 않아서 농사(農事)를 지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발적(自發的)으로 “세상에 쓰여지길(=용어세(用於世)) 살피지 않았기에.(=불견(不見)” 농사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즉 불견용어세(不見用於世)라는 것은 ‘등용(登用)을 자발적으로 거부한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견용어세(不見用於世) 즉 자발적 등용거부를 한 것은 을파소(乙巴素) 선생께서 어떤 연구(硏究)과제(課題)가 있었기에 이 연구에 몰두(沒頭)하기 위해서 <번잡한 세상일을 끊은 것>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농사(農事)를 지으면서 을파소(乙巴素)선생은 ‘케인즈(keynes)’가 연구해낸 거시경제학(巨視經濟學)적인 내용을 파악해내서 이를 ‘피라미드 건설’과 연결해서 불황시와 공황시에 실업자(失業者)가 없게 하는 정책적 대안을 연구하고 계셨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구리(高句麗)는 2종류의 피라미드(pyramid)문명을 모두 구사(驅使)한 매우 특이한 문명체계였기 때문에,  이런 을파소(乙巴素) 선생의 연구과정을 뜻하는 불견용어세(不見用於世)라는 말은 중요한 것입니다.
즉 실달성(實達城) 피라미드로써는 최소한 집안(集安), 어쩌면 서안(西安) 피라미드의 건설 등등에 임금(賃金)을 두둑히 지불하고서도 공황이 나타나지 않게하는 방법 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허달성(虛達城) 피라미드 - 즉 호수(湖水)에 띄운 거대한 리쉬(Rishi)의 성(城)인 금성(金城)의 제작, 태(兌)의 제작 등등 ‘배달화백의 도구’들 역시 ‘실달성 피라미드’의 제작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공사인 것입니다.
이런 대공사를 위해서 임금(賃金)을 지불하고, 그렇게 되면 유효수요(有效需要)가 증가해서 불황과 공황의 발생 자체를 ‘일어나지 못하게’ 할수도 있다는 오늘날 말로 하자면 ‘거시경제학적인 처방’을 연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앞에 지려연심(智慮淵深) - ‘지려(智慮)가 연못과도 깊으나...’라는 수식어(修飾語)가 붙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고구리를 비롯한 관경삼국(管境三國)이 연못과 호수(湖水)를 소도(蘇塗)로써 활용하는 아주 오래된 정치문화(政治文化)가 있다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지려연심(智慮淵深)이란 것은 고구리(高句麗)의 왕(王) - 고국천왕(故國川王)께 말하는 것이 “호수(湖水)에서 배달화백을 할때 사회적 명상의 깊이만큼 을파소(乙巴素) 선생의 지려(智慮)가 깊사온데....”라는 소개라는 것입니다.

이는 안유(晏留)가 정확하게 을파소(乙巴素) 선생께서 위대한 경륜(經綸) - ,<질양(質陽)의 통곡(痛哭)>을 그치게 하는 경륜(經綸)이 있음을 정확히 알고 계셨고, 이를 정확히 고국천왕(故國川王)께 전달하였음을 뜻합니다.

아무튼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이런 안유(晏留) 선생의 소개를 받고, 고국천왕(故國川王)께서 중외대부(中畏大夫)라는 품계(品階)와 우태(于台)라는 직책(職責)을 제수(除授)하게 됩니다.

이 중외대부(中畏大夫)라는 품계(品階)는 ‘가운데 중(中)’에 ‘두려울 외(畏)’를 쓰기 때문에,  어감(語感)자체가 북극해(北極海)에서 저 자미원(紫微垣)까지를 지고 있는 ‘천지(天地)의 축(軸)’의 이미지(Image)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세계헌법의 유지 및 관리’를 맡는 품계(品階)라고 할 수 있고, 우태(于台)는 ‘소도(蘇塗)에 관한 모든 일을 총괄’하는 직책인 것입니다.

즉 고국천왕(故國川王)께서는 가장 을파소(乙巴素) 선생에 맡아야하는 품계(品階)와 직책을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을파소(乙巴素) 선생 자신은 ‘자신이 연구한 일을 펼치기에는 충분치 못한 품계(品階)와 직책(職責)’이란 생각이 들어서 출사(出仕)하시기를 사양하고, 이 뜻을 읽으신 고국천왕(故國川王)께서 드디어 국상(國相)이란 직책을- 이는 삼보(三輔) 즉 좌보(左輔), 우보(右輔), 태보(太輔)를 총괄하는 자리로써 아마도 부군(副君) 즉 ‘버금 임금’과 같은 최상(最上)의 직책임 - 제수(除授)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 고대사(古代史)를 통 털어서 - 어쩌면 인류역사 전체를 살펴보더라도 “가장 큰 파격적(破格的)인 인재등용”이라고 할 수가 있는 조치(措置)인 것입니다.

그런데,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 ‘만’보아도 이런 파격적인 등용 내용인데,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사천(史穿)선생께서 번역한 <고구리 초.략 >입니다.

여기에는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내용이 등장합니다.


<고구리 초.략> 제 9세 고국천제기(第九世<故國川帝>紀) 13년 조(條)에 보면 매우 특이한 이야기 죽려지검(竹呂之劍)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하 제 9세 고국천제기(第九世<故國川帝>紀) 13년 조(條) 옮김 (*)

◎ 十三年辛未, 二月, 上徵諸都畿兵于石, 親征<左可慮>·<箊界留>, 誅之. 命四部擧賢.
四月, 以<乙巴素>爲輔外之長, 名曰國相, 賜'竹呂之劒', 而誅不道.  時, 三輔, 皆以宗戚尸位素餐. 故有此, 新擧以匡政. 於是, 宗戚寵偉之, 震惧.  九月, <蚩尤旗>見於<角亢>.

○ 13년(단기2524년/AD191)신미, 2월, 상은 모든 도성과 도성 인근의 군사를 서도로 불러들여서 <좌가려>와 <어계류>을 친히 정벌하고 주살하였다.  4부에 현자들을 천거하라 명하였다.  
4월, <을파소>를 '국상(國相)이라 불리는 삼보의 우두머리로 삼고 '죽려지검(竹呂之劍)'을 주어, 부도한 자들을 주살하게 하였다.  이 시절에 삼보의 자리는 모두 종척들이 평소에 진치고 앉아서 놀고먹는 자리였었다.  이러한 까닭에, 새로운 인재를 발탁하여 국정을 바로잡게 된 것이다. 이리되니 종척들은 이들을 크게 보게 되었고, 두려워 떨게 되었다.  9월, <치우기>가 <각성>좌에 나타났다.
(*)이하 제 9세 고국천제기(第九世<故國川帝>紀) 13년 조(條) 옮김 마침.(*)

- 각설(却說)
즉 고국천제기(故國天帝紀)에는 고국천왕(故國川王)께서 삼보(三輔) ‘위’에 새로운 국상(國相)이란 명칭을 만들면서 죽려지검(竹呂之劍)을 하사(下賜)하시었는데, 이는 부도(不道)한 자(者)를 주살(誅殺)할 특권이 있는 ‘최상(最上)의 권위’를 상징하는 검(劍)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죽려지검(竹呂之劍)은 놀랍게도 고구리(高句麗) 왕가(王家)의 종실(宗室) 척족(戚族) 즉 성골(聖骨)까지도 주살(誅殺)할수 있는 절대의 검(劍)임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 위 문장에서
<於是, 宗戚寵偉之, 震惧.> -  "이리되니 종척들은 이들을 크게 보게 되었고, 두려워 떨게 되었다."에서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죽려지검(竹呂之劍)에 ‘주어진 권위’가 얼마나 높은가?”하는 것은 오히려 삼국사기에 잘 나타난다고 하겠습니다.

원문(原文)
十三年 ---(중략(中略))----
於是 朝臣國戚 謂素以新間舊 疾之 王有敎曰 無貴賤 苟不從國相者 滅族之

이때 조신(朝臣)과 국척(國戚)들이 을파소(乙巴素)가 신진(新進)으로써 구신(舊臣)을 이간(離間)시킨다고 모함하니 왕은 교지(敎旨)를 내려 말하기를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국상(國相)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이를 멸족(滅族)시킬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을파소(乙巴素) 선생을 삼보(三輔) ‘위’의 신설된 국상(國相)을 만들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대권(大權)을 주자 구신(舊臣)들이 반발하자, 고국천왕(故國川王)은 ‘죽려지검(竹呂之劍)’을 하사(下賜)하면서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멸족(滅族)시켜도 좋다.”라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물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이 죽려지검(竹呂之劍)이 빠져 있는데, 이를 <고구리 초.략 >에서 고구리(高句麗) 성골(聖骨)이라할지라도 멸족(滅族)시켜도 되는 죽려지검(竹呂之劍)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더 놀라운 것은 <고구리 초.략 >에서 이 죽려지검(竹呂之劍)의 이야기가 나온 다음에,  ‘九月, <蚩尤旗>見於<角亢>’이란 기록 -  “9월, <치우기>가 <각성>좌에 나타났다.”라는 말이 붙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항<角亢>이란 것은 ‘봄에 뜨는 별’인 청룡칠사(靑龍七舍)- 각항저방심미기(角亢氐房心尾箕)의 앞부분인데 이는 용(龍)의 ‘뿔’부분을 뜻합니다.

용(龍)의 뿔 ‘위’에 치우기<蚩尤旗> - 즉 ‘긴 꼬리를 지닌 혜성(彗星)’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치우(蚩尤)는 황제(黃帝)라는 신(神)을 처단한 군신(軍神)이기 때문에, 이는 천문(天文)에서 “그 어떤 용(龍)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존재(存在)가 나타났음”을 뜻합니다.
그럼 그것이 도대체 뭐냐?

바로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과 그가 쥔 죽려지검(竹呂之劍)인 것이고, “고국천왕(故國川王)이 을파소(乙巴素) 국상에게 준 권한을 하늘도 치우기(蚩尤旗)로써 인증(認證)하였다.”라는 것을 고대에는 “9월, <치우기>가 <각성>좌에 나타났다.”라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죽려지검(竹呂之劍)은 엑스칼리버(excalibur=성검(聖劍)) 중에 ‘엑스칼리버’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 이런 성검(聖劍)의 출현(出現)을 <고구리 초.략>은 “각항(角亢)인 청룡의 뿔 위에 치우기(蚩尤旗)가 나타났다.”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로서 우리는 “도대체 죽려지검(竹呂之劍)이 무엇이길래... 이다지도 강한 권위(權威)를 띠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지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긴 하나, 우리는 이 죽려지검(竹呂之劍)에 실린 파격적인 권위(權威)가 결국에는 불경기(不景氣)와 공황(恐惶)때문에, ‘품팔이’ 노동자들이 <질양(質陽)의 통곡>을 원천적(源泉的)으로 봉쇄하는 성검(聖劍)이라는 느낌은 충분히 예감할 수 있습니다.

케인즈(Keynes)는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피라미드(pyramid)를 언급한 것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불황(不況)에서 고용(雇用)되어 임금(賃金)을 못 받고 <질양(質陽)의 통곡>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리 취득해도 만족(滿足)되지 않는” 영원한 ‘유효수요(有效需要)’인 신성(神聖)한 권리(權利)를 취득하기 위해 노동(勞動)한 댓가로 받는 임금(賃金)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을파소(乙巴素)가 국상(國相)으로 있던 고구리(高句麗)는 이런 아무리 공급되어도 만족되지 않는 영원한 유효수요를 주는 피라미드(pyramid)가 실달성(實達城)과 허달성(虛達城)의 두 세계가 모두 있었던 ‘나라’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을파소(乙巴素)의 죽려지검(竹呂之劍)은 이 두 피라미드의 세계를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障碍)’를 차단하는 보검이라고 짐작할수 있습니다.

케인즈(Kenes)는 자신의 저술에서 이집트(Egypt) 피라미드에 대해서 그것이 유효수요(有效需要)의 창출을 위한 ‘이집트 파라오의 지혜’였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 경제학자 다운 예리한 경제학적 진단(診斷)에 의한 추정(推定)입니다.
‘피라미드 문서’ 그 어느 곳에서도 불황기와 공황 때 일어나는 <질양(質陽)에서의 통곡>을 없애는데 ‘피라미드 건립’이 유효했다라는 공식적인 문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이 질양(質陽)의 통곡(痛哭)을 원천적으로 없애는 것이 진대법(賑貸法)이고, 이를 법제화인 항식(恒式)으로 했음과 또 진대법의 내용이 ‘거시경제학인 처방’임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을파소(乙巴素)의 엑스칼리버(excaliver) - 죽려지검(竹呂之劍)은 ‘돈벌이’가 안 되어 노모(老母)를 못 모시는 경제의 흐름을 시원스럽게 잘라버린 것입니다.

질양(質陽)의 통곡이 지구촌(地球村)에 가득한 지금 - 실달성(實達城)과 허달성(虛達城)의 두 피라미드 앞에 죽려지검(竹呂之劍) 짚으시고....우뚝선 고구리의 대(大) 경제학자 을파소(乙巴素)가 한없이 그립습니다.

[출처] F ) 고구려 을파소, 케인즈와 피라미드 경제학 / 좌 계 (단군의땅) |작성자 소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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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공정은 한반도 흡수통합 위한 中의 공작”

안원전
2006/09/22 5721
304
 “베이징大선 고구려를 한국史로 가르쳐”

안원전
2006/09/16 6365
303
 “중국 金나라 시조는 안동 권씨일 것 ”‘금조사연구’ [5]

안원전
2008/08/22 5118
302
 “지중해”가 “발해”라!!!

안원전
2006/08/10 7028
301
 “毛澤東이 모택동이지 왜 마오쩌둥인가”“원음표기 되레 국어생활 혼란 야기 ‘옌볜’ 등은 중국말도 우리말도 아냐” [3]

안원전
2008/03/03 5389
300
 “漢族, 단일민족 아니다!” [1]

안원전
2007/03/26 5678
299
 《黃帝故里故都歷代文獻匯典》學術研討會紀要

안원전
2007/03/27 5260
298
 『만주원류고』에 나오는 신라의 위치에 대한 고찰 [1]

안원전
2008/08/22 5573
297
 『한겨레21』길윤형 편집장에게 묻는다

안원전
2017/06/25 4385
296
 【앵무새 죽이기】 환단고기에 나오는 우리 영토에 대한 이야기 세 번째...반론 [2] [1]

안원전
2009/04/25 5824
295
 【앵무새 죽이기】 환단고기에 나오는 우리나라 영토에 대한 이야기 두번째...반론 [2]

안원전
2009/04/25 5467
294
 【앵무새 죽이기】 환단고기에 나오는 우리나라 영토에 대한 이야기 첫번째...반론 [2]

안원전
2009/04/25 5648
293
 가락국기의 해모수, 대한국과 사마천/ 좌 계

안원전
2009/01/06 5123
292
 가슴 뭉클한 대한민국의 비밀

안원전
2010/07/01 4464
291
 각 국가와 각 민족, 그리고 외래종교는 본원적 제정신으로 돌아가라 ! 안창범 [2]

안원전
2008/03/09 4939
290
 강상원-박사인도유럽어족의-조상어가-되는-산스크리트어는-1만년을-간직한-한반도-사투리다

안원전
2014/09/24 3781
289
 강소성(江蘇省) 숙천(宿遷)의 연개소문 外(신완순)

안원전
2009/01/30 5283
288
비밀글입니다 고고학 다운로드

안원전
2002/01/13 6749
287
 고고학적 발굴과 중국 사료로 추적한 고조선의 비밀-“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안원전
2006/10/13 6513
286
 고구려 시조 주몽이 한고조 유방 건국 도왔다

안원전
2007/06/16 6594

 고구려 을파소, 케인즈와 피라미드 경제학

안원전
2009/01/06 5006
284
 고구려 최대영역은 동북아시아 전역

안원전
2005/01/21 8304
283
 고구려사가 중국사가 될 수 없는 7가지 이유

안원전
2006/11/04 5950
282
 고구려사가 중국사가 될 수 없는 7가지 이유

안원전
2007/04/14 5583
281
 고대 차이나의 왕들은 모두 동이족&

안원전
2006/03/29 9641
280
 고려산(高麗山)의 전설 -KaoLi Shan 1

안원전
2006/10/02 7350
279
비밀글입니다 공백

안원전
2002/01/13 7064
278
 공주사대 역사교육과 동문들 "이명희 교수는 학교를 떠나라"

안원전
2013/10/04 3994
277
 광동성(廣東省)에는 3세 가륵 단군의 현손 번우씨가 세운 번우국(番禺國)이 현존

안원전
2009/10/21 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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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군의 결의

안원전
2014/10/26 3319
275
 구당서 신당서 의거 동이의 위치지도

안원전
2002/03/08 6710
274
 국조 단군왕검의 탄신일을 잊고 사는 대한민국 (1부)

안원전
2017/06/26 3832
273
 김구선생 홍익 대한민국의 꿈

안원전
2010/04/25 3970
272
 김정란, "'여자 박정희' 박근혜에게 묻는다" "당신이야말로 대장 간첩의 딸 아닌가" "한나라 해체해야" [1]

안원전
2004/12/11 7134
271
 김정일 발언, 공룡 중국 핵분열 -소련 붕괴 주역 美, 대 중국 쪼개기 [1]

안원전
2006/08/25 6853
270
 나라 망신의 주범 박근혜와 한심한 언론들

안원전
2016/07/03 3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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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시로 천하를 낚은 강태공의 조상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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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입니다 내부로부터의 방문자

안원전
2002/01/12 8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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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론·친일파 세상과 박노자, 한겨레

안원전
2017/06/25 3736
266
 누가 한국사를 왜곡했나?

안원전
2009/04/24 4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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