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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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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한국사를 왜곡했나?
  

   누가 한국사를 왜곡했나?


   천하무림  
http://www.coo2.net/bbs/zboard.php?id=con_4&page=1&sn1=&divpage=4&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3119


  


고등학교시절에는 그저 막연히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괜히 원망스럽고 일연의 삼국유사가 있어 참 다행이다 싶기도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조상의 업적을 알리고, 조상의 땅이 중국대륙에 있었다면서 외치는 복애 노인의 처절함을 가슴속 깊이 새겨 보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아쉬웠으면 삼국유사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한단고기, 규원사화에 이렇게 과도하게 열광하거나 폄하하는지 한편으로는 서글프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있다 보니 이런 저런 역사 사이트나 글들을 읽다 순간 떠오르는 것이 과연 우리 나라 역사는 누가 왜곡했나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역사에 문외한이고 아마추어급도 못 되는 미천한 실력이지만 제 생각을 써보려 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를  왜곡하는 장본인으로  식민사학과 그것에 줄기를 대고 있는 역사학자들,그리고 최근의 중국 동북공정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관련 여러 글들을 읽다 깨달은 것은 식민사학, 중국 동북공정 등은 결과론적 외부의 장본인이지만 원인은 우리나라 내부,즉 현재는 물론 과거의 우리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나라 역사를 말할 때 주로 삼국사기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학교 다닐 적부터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대주의적 관점이라니 고구려보다 신라를 우선 했다느니 하는 것이 주요 문제시하는 요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왜곡의 원흉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삼국사기에 있어 사대주의는 조금은 아쉽지만 그 당시 세상 보는 눈이었으니 제껴 두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삼국사기를 비난하는 핵심은 아마 왜 고구려보다 신라를 중심에 두었나 일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보다 넓은 땅을 차지한 고구려보다 조그만 땅덩어리를 차지한 신라를 왜 중시했느냐 일 것입니다. 즉, 고구려와 신라라는 역사적인 사실 자체보다 단지  영토적인 문제라는 것 때문에 신라중심사관의 삼국사기가 괜히 미운 것입니다. 현재 통칭 만주라는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권리상실이 삼국사기 때문인  양 삼국사기와 김부식을 비난하고 매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뒤 안 가린 이런 마녀사냥으로 김부식은 우리 나라에서 역사상 가장 못된 사대주의자가 되 버렸습니다.

한반도 동남쪽 조그마한 신라를 바라 보면서 무력감을 넘어 자기모멸과 자학까지 횡횡하는 오늘날 우리 자신들을 돌아 보았을 때 삼국사기의 신라중심은 수 많은 자괘감을 안겨 주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것들이 사실은 초기신라 경주가 한반도 경주라는 잘못된 해석에서 오는 것이라면 이 얼마나 통탄스럽고 개탄스런 일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일전에 KBS의 역사추적 "문무대왕릉비의 비밀"에서 김씨 시조 김일제의 후손과 그 일행 3만-5만이 산동성 하택시에로 이주해 나라를 세우고 수도를 금성이라고 했다는 방송프로그램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4월 22일자 중앙일보에서 " 신라사 전공인 부산외대 권덕영 교수는 "최근 한국고대사와 관련된 당나라 금석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함통(咸通) 5년(864) 5월29일에 향년 32세로 사망한 재당 신라인의 묘지명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을 찾아냈다"고 22일 밝혔다.  (중략)

묘지명은 "태상천자(太上天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열어 드러냈으니, 이름하여 소호씨금천(少昊氏金天)이라 하니 이분이 곧 우리 집안이 성씨를 받게 된 세조(世祖)시다"라고 적고, 그에서 비롯된 "먼 조상 김일제(金日제<石+單>)가 흉노의 조정에 몸담고 있다가 서한에 투항하시어 (중략) 투정후라는 제후에 봉해졌다"라고 기록했다.

이어  김일제의 후손이 가문을 빛내다가 7대를 지나 한나라가 쇠망함을 보이자 "곡식을 싸 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은 멀리 떨어진 요동(遼東)에 숨어 살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는 기사를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요동이 현 요하의 요동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역사추적의 방송프로그램과 기사를 보면서 우리 나라 역사의 핵심고리 중 하나가 공식적으로 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엄청난 사실이 확인이 된 것입니다.  중앙일보 기사와 역사추적의 내용에 따르면  "김일제 후손들이 동쪽으로 이주했으며 이주해서 금성을 짖고 나라를 세운 곳은 산동성 하택시이고, 그 산동성 하택시가 그 당시의 요동이다"라는 가설이 성립될 것입니다. 유물과 유적으로 확인된 것이니 태클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그 동안 신라가 경북 경주에서 일어난 것이 사실이 아니라 중국 동부해안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주장들이 공허하고 허무맹랑하다며 무시했으나 이제 여러 유물과 유적으로서 입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많은 분들이 고조선,삼한,백제 및 신라,그리고 고려가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을 밑받침해 주는 핵심 연결고리를 확인한 것이라고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김일제 일행이 정착한 산동성 하택시가 바로 역사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마한의 동쪽 진한의 땅이며 당시 한의 요동이라면 말 그대로 우리 나라 역사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새로 심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의 우리 나라 주류역사논리가 완전 거짓이 되는 획기적인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주목해야할 또 하나의 역사서가 있습니다. 바로 만주원류고입니다.  1777년 청나라의 건륭제가 명하여 편찬했다는 만주 원류고는 누구나 알다시피 역사적으로 만주가 누구의 땅이었는지 밝히는 역사서입니다.  

만주 원류고는 인과법칙에 따라  당연히 청의 지배에 대한 한족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청의 명 정복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만주 원류고에 고구려가 빠졌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고구려가 빠진 이유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 있겠지만 저는 다른 각도에서 언급하고 싶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현재 만주하면 동북삼성을 떠올릴 것 입니다. 하지만 만주란 명칭이 현 동북지역 전체에 적용시킨 것은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만주국으로부터 기원한다는 것입니다. 이전 만주는 지금의 만주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냉정히 말하면 현 만주는 조선초기 영역이 분명한 조선의 땅이지 만족의 땅이 아닐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만주원류고에서 특이한 점은 고구려는 빠졌지만 백제,신라는 포함됐다는 점입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고구려는 절대 빠질 수가 없고 반면 백제와 신라는 절대 들어 갈 수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것입니다.

이는 분명 당시 청이 생각하는 만주와 우리가 생각하는 만주라는 지역을 바라 보는 관점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 청의 지배층이 생각한 만주는 어디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청이 생각한 만주는 현중국의 하북,하남,산동,산서지역에 동북지역 일부를 포함한 지역을 언급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만주원류고는  현 북경지역을 포함하여 대륙 동부해안지역을 역사적으로 지배하고 나라를 건국한 민족과 국가들을 열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이 지역은 너희들 한족과는 관계없는 땅이며 만주족이 명을 공격하여 이 지역을 차지한 것도 정당하다는 것을  역사서로서 입증하려 한 산물의 결과가 만주원류고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 요하,만주가 아닌 초기조선의 땅에서 발기한 고구려가 빠지고 백제,신라가 포함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명의 270여 년을 제외하고 이들 지역을 완벽히 오랜 기간 지배했던 중국왕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진,한,당,송 등의 지배강역은 당연히 현 중국대륙 전체를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점유했을 것이라는 인식은 오늘날 역사왜곡의 바로미터일 것입니다.  

김일제가 이주했다는 그 당시 요동의 산동성 하택시,청이 주장하는 만주원류는 바로 현하북,산동,하남,산서 등이며 이 땅은  그 옛날 오랜 옛적부터 자부선인이 등장하는 단교,선도,도교의 본고장이고 치우 천황이 황제 헌원과 다투던 곳이며, 은나라 등 요순의 시대를 말하는 곳이며 단군의 조선이 있던 곳이며,기자조선이 통치했던 곳으로 알려 진 지역입니다.

또한 조선의 여러 책에서 삼한의 전통,그리고 삼한,,,,,,등등이 언급되고,그리고 왜 즉,일본조차 삼한을 언급하는 그 마한,변한,진한 즉, 삼한의 얼, 즉 동이족의 역사가 서린 땅일 가능성이 높은 지역일 것입니다.

만주 원류고는 바로 이 땅에서 백제가 흥기했고 신라가 천년의 영화를 누렸고 그리고 바로 만주족도 그들의 고향을 이 곳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나 추측해봅니다. 270여 년 간 명의 한족에 의해 더럽 펴진 그 땅에 원래 땅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하기위해 만주원류고를 신라 김씨 후손인 청의 건륭제가 기록으로 남긴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은래가 김일성을 만났을 때 한족이 동이족을 동쪽으로 계속 밀어내어 공격했던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고백했었다는 설도 상기의 가설에 따르면 이해가 됩니다, 장개석이 김구,조소앙 등 임정간부 등을 만났을 때 중국남부가 전부 백제 땅이었다는 말에 김구 및 조소앙선생 등이 우리 역사를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말도 이해가 되고 중국의 역사는 동이족의 역사를 도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일부 양심적인 중국학자들의 고백도 알아 들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절강성 영파시에서는 통일신라의 금동불상이 발견되고,.강소성 남경시에서는 무녕왕릉과 똑 같은 백제왕릉이 발견되고, 산동성 봉래시에서 고려배가 발견되는 것,역시 이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정체성이 어디에서 비롯됐는 지 미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 역사가 위와 같이 거대하고 위대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 하고 현재 왜 이렇게 꼬여 있을까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됐는지,,식민지사관이나 동북공정만을 탓하기에는 우리 자신에게 뭔가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김구선생 등 임시정부 일행이 장개석을 만났을 때 우리 나라 역사를 제대로 몰라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이 식민사학이나 동북공정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정서라면 아무래도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조선초 개찬된 고려사일 것입니다. 삼국사기는 1145년 편찬됐습니다. 918년 고려가 개국한 이후 227년, 2차 거란과의 전쟁으로 서경(이전개경)이 함락되어 불타 없어 진지 135년,묘청의 난을 진압한 지 만 10년만 입니다. 김부식은 고려의 신라 정통성에 배치될 수 있는 모든 사서를 수거해 소각했습니다.

정사에 고려는  918년 황해도 개성에서 개국하여 망할 때까지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신라의 영역이였던  산동성 송악에서 개국하여 송,요 등에  밀려 현 요동 및 한반도로 이주 정착했다고 하고 또는 사천성 성도의 왕건묘가 고려 태조 왕건묘라고 주장하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993년부터 시작되어 1019년에 끝난 거란족 요나라와의 3차례 전쟁에서 서경 또는 개경 등이 공격당하고 1010년 2차 전쟁에서는 대패함으로 써 개경(이후 서경)이 함락 또는 소실되어 천도가능성이 높은 사태가 분명히 발생했으나  정사에는 개경의 함락이나 천도가능성에 대해 전혀 기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3차 거란과의 전쟁으로 서경(또는 이전개경?)을 되찾고 강함찬장군이 서경 서쪽에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평양에는 그 흔적이 없으나 현 요양,심양의 서쪽에는 긴 장성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최초의 개경이 어디있지 개인적으로 전혀 감이 없으나 분명   현 황해도 개성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듯 합니다.

이와 같이 고려 수도 개경의 천도가능성이 몇 차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함에도 조선초 개찬된 고려사에는 이에 대해 전혀 언급이 안되어 있습니다. 1454년 10월 완성된 고려사에 있어 의심쩍고 일부 왜곡됐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내용들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조선 세종조에 고려사 개찬을 주도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며 세종의 학우인 김문기가 가문의 유훈으로 남겼다는  "현 황해도 개성은 허도"라는 글에서 그 단초를 찾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고려사가 조선초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일부 사항들이 교묘하게 왜곡,개찬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것입니다.

세조 때  군권을 갖고 있고 공조판서로서 단종복위를 시도하다 처형당한 사육신 중 한 사람으로서 김문기는 세종의 학우였으며, 세종의 명에 의해  비밀리에 모든 비장의 사서를 전달받아 현지를 직접 답사하는 역사연구를 했으며 또한 전조의 왕실에서 비전된 모든 사서들을 세종의 밀명을 받아 함경도로 밀송하여 불태워 없앴던 것으로 알려 지고 있습니다.

김문기는 사육신중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활을 맡았으며 성삼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고문에 못 이겨 뜻을 함께 한 이들을 자백하고 죄를 인정하였는데 유일하게 불복하여 당당하게 견디어 냈으며  결국엔 두 마차에 의해 사지가 찢기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특히 고문당시 불에 새빨갛게 달군 쇠꼬챙이를 배에 쑤시자  "불이 식은 것 같은데 다시 달구어 오시오" 라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는 등의 이야기도 사실은 성삼문이 아니라 김문기가 했던 말이 와전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만큼 기개와 지조가 대단한  분이였기에 조선 말까지 매장당하다 겨우 신원회복이 되고 사육신에서도 한동안 빠져 있었던 것일 것입니다.

고려사는 태조 1년 1392년 정도전,조준 등이 맡아 1396년 완성된 고려국사를 시초로 합니다. 완성에 겨우 4년 걸렸습니다.  1398년 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제거되고, 1400년 10월 이방원이 등극하고 나서 정권이 안정되자 1414년 고려국사 개찬에 나섰다가 대표자인 하륜이 죽자 1416년 중단됩니다.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나고 세종이 왕위를 물러 받은 첫 해인  1419년 고려사를 다시 편찬하기 시작하여 1421,1423,1434,1442,1448,1449년까지 개찬에 개찬을 거듭하다가 1452년 단종 즉위 년에 완성됐으나 비판이 두려워 소량만 인쇄,내부 보관했다가 1454년에 이르러 서야 인쇄하여 널리 알렸습니다. 완성에 33년이 걸렸습니다.

태종 이방원과 세종은 무엇이 두려워 그토록 수많은 사서를 수거해 소각하고 고려사를 개찬하여 고려의 개경을 현 황해도 개경으로 왜곡하려 했는 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의 부마국으로 연명해도던 고려는 31대 공민왕이 1351년 재위에 오른 이후 꾸준히 고려의 재건을 위해 쌍성총관부를 폐지하고 요동(하북?)정벌에 성공하지만 고려국력의 약화로 인해 전반적으로 실패로 돌아 갑니다.

위화도 회군을 통해  건국된 조선은 요동(하북,산동?)정벌과 고려 고토 회복은 건국의 명분 중 하나이겠지만 또한 위화도 회군에 대한 합당성을 설파해야 하는 이중적 딜레마를 갖고 있었다고 봅니다. 명분론과 현실론의 딜레마는 고려말과 조선 초기  주요 정치테마이고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을 것입니다.

정도전 등 건국주도 세력은 정치와 행정체계의 틀을 잡으면서 당연 고려때의 요동정벌  및 고려의 고토회복의 명분과 당위성을 내세워 여러 정치세력들의 사병조직을 국가의 군사체계 내로 흡수하고자 시도하다 이방원 등에 의해 제거됩니다.

1.2차 왕자의 난을 통해 정권을 잡은 이방원은 조선의 종묘사직에 있어 가장 위험인물로 정도전 같은 인물로 보고 정도전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물론 추후 후대에 정도전 같은 야망을 품은 인재가 등장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이의 방지책에 골몰했을 것으로 보는 것은 불문가지일 것입니다.  정도전이 조선의 제 1역적이 되어 조선말기까지 완전히 사회,정치적으로 매장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태종 이방원 등 조선의 왕들은 가장 두려워 했던 정도전의 사상 중에 제일은 왕권을 위협하는 재상중심 정치일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명분론에 휩싸여, 고려 때의 요동(현 하북,산동?)정벌에 나서자는 주장일  것입니다.  5대 10국의 혼란기를 벗어난 대륙은 명에 의해 통일된 마당에 전조인 고려의 강역을 되찾겠다는 명분론 때문에 군사를 일으켜 조선의 종묘사직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은 무척 두려운 것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적인 원인들로 인해 정도전이 칭제건원과 대륙개경 그리고 천도사실을 기술하고 그의 사상을 이입시킨 고려국사는 개찬되고 금서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칭제건원과 요동정벌,고려수도의 대륙위치 등은 차후에 또 다른 정도전같은 야망가를 키울 개연성은 충분할 것입니다.

정도전 제거이후 태종이 문치를 할 것을 세종에 유언하고,세종조에 고려사를 개찬하여 고려의 고토회복의 정당성과 명분론을 애초부터 싹을 제거하고, 종묘사직은 영원하다는 찬양의 시인  용비어천가를 지으며, 혼재된 여러 민족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을 해소하여 국정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훈민정음을 발표하여 내치에 힘쓰는 등, 종묘사직의 안녕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렸는 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선초기 국정의 틀을 잡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음을 감안하면 아쉽지만 그저 단순히 고려사 왜곡 음모의 개연성이 높다고 비난만 할 수도 없으며 이는 선조의 현명한 처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향 후 50년간 미국에 도전하지 말라는 등소평의 당부가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태종 및 세종조에 수립된 이와 같은 국정의 이정표가 200여 년만에 부메랑이 되어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맞았으며,  조선조 후기는 물론 현재에 까지 역사를 상실한 민족, 정체성을 상실한 민족이 되어 자기모멸,자학이 횡횡하고 자주독립의 자신감을 상실케 하는 것을 보면 선조들의 배려가 무의미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종조 이후 역사 연구가 금기시 되고,단절됐다가 병자호란이후 국세가 기울자 조선의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부각되고 역사에 대한 자각이 이뤄지면서 발해나 고구려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지만 이미 왜곡된 역사에 기반한 연구는 또 다른 왜곡을 불러 올 뿐이고 왜곡이 또 다른 왜곡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내부에서 비롯된 왜곡이 또 다른 왜곡을 불러 들였고 이것은 식민사학과 동북공정 등  외부의 왜곡을 초래해 지금은 백약이 무효인 슬픈 현실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더욱 아쉬운 것은 조선초기 강역만이라도 제대로 연구하고 확인했더라도  지금과 같은 지나친 상실감과 패배감은 없었으리라 것입니다..개인적으로 조선초기 강역은 현교과서에서 주장하는 고구려강역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강역이 대동강 조금 위로 선을 그어 버렸으니 한심할 따름입니다. 말 그대로 식민사관과 우리 자신의 역량부족 때문입니다.

최근 중국이 1호 항공모함의 명칭을 공모했는데 평이(平夷)가 압도적으로 1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미 1368년 명이 요동과 이전만주를 차지하고 나서 만리장성을 쌓고 몽골,여진세력,고려(조선) 등을 장성밖으로 쫓아 냈을 때 동이를 평정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과 일본이 그들보다 더욱 번영하고 있고 그들 역시 힘이 생기기 시작하니 다시 동이족의 씨를 말리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일 수록 역사적인 사실들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들의 공격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우리는 잊어 버리거나 일면 소홀히 대하고 혹은 부정하고 있는 동이를 한족은 동이를 평정한다고 속으로 칼을 갈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잘못된 역사관에 패배감은 깊고,마음까지 꼭 닫혀 그들의 먹이감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분명히 앞으로 동북공정은 중국이 한반도를 침략할 때 명분이 될 것입니다. 무능한 사학자,식민사학자들의 죄를 무엇으로 다스려야 할 지 ,,,,,,

오늘날 동북아 정세에 격랑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경제와 패권이 무너지고 있고 세계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있는 이 와중에 북한은 배수진을 치고 핵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행태를 볼 때 그들의 요구가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공세는 멈추지 않을 것을 것 같습니다. 서로간의 지루한  학습효과로 인해 무디어진 자극과 반응들을 높히려면 공세의 시간은 더욱 짧아지고 강도는 더욱 높아 질 것입니다.  결국 북한 핵문제가 막바지에 이른 것입니다.

북한핵문제가 터지면 현 세계경제의 추락과  맞물려 어디로 튈 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高麗回家라는 중국의 예언시를 떠올려 봅니다. 고려가 돌아갈 옛 집은  어디입니까?







카오스 (2009-04-22 21:21:13)  

음....매우 의미심장한 글이며, 또한 상당부분에서 공감하며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그런데,...카오스가 ..../만주원류고에서 고구려(高句麗)가 빠진 이유/....를 굳이 추측해서 말씀드린다면....
.../그것은 아마 역사상 '고구려(高句麗)'라는 나라가 아예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건, 너무도 '황당'하나요?....그러나 이건 카오스가 그냥 해본 농담이 아니고 고심끝에 결론내린 '진담'이니 너무 타박은 하지 마시고...곰곰히 음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어쩌면, '고려가 돌아갈 집(高麗回家)'이란 표현이 그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참, 만주원류고에 '고구려(高句麗)라는 나라의 이름'이 간간히 언급이 되긴 하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만주원류고의 저자들도 어쩔 수 없었던 '또 다른 상황(?)에서 이해하여야 할 기록'일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솟대 (2009-04-23 01:34:21)  

만주원류고는 요사를 선별취사하였고 청나라가 편찬한 명사나 기타 사서들도 역시 요사를 지명이 많이 틀린 것이라 하였는데 이는 요사의 지리비정을 부정함으로서 몽골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역사를 동쪽으로 이동시켜 축소시키기 위한 것이라 사료됩니다.
결국, 편찬의도자체가 고구리가 아닌 백제와 신라를 주류로 하여 신라를 적계의 정통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현재는 만주원류고조차도 비난하여 강역을 더 동쪽으로 이동시켜 고구려역사강역을 만주지역으로 이동시켰고 식민학자의 후계들은 이를 남만주지역으로 더 축소하였습니다.
지나측 사서에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였음을 간단히 언급하는 기술도 있는데 우리측 문헌은 이 부분을 지나측보다 더 철저히 말살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삼국사기이후로의 사서의 편찬방향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천하무림 (2009-04-23 08:32:16)  

카오스님,솟대님, 반갑습니다. 가끔 지면상으로 눈팅하면서 익숙해졌는지 님들의 댓글이 반갑고 고맙기만 합니다.  



대제국고려의증거 (2009-04-23 11:56:00)  

고전을 읽어보면 조선과 명시대에 대규모로 지명이 난하동쪽으로 이동되었음을 알수있습니다. 고려사편찬은 태조때 행해진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태조이성계는 주원장과 전쟁을 벌여서 고토(산둥)을 회복하려 했기때문입니다. 태조는 전쟁준비를 모두 마쳤고 명분을 얻기위해 일부러 수백명의 첩자를 산둥에 보내 발해 무왕의 등주공격을 본떠서 준비하기도 하고 명나라 변경장수를 매수하기도 하고 변경에서 여진족들을 시켜 명나라 관리를 죽이고 분쟁을 일으킵니다. 주원장이 조선에 국서를 보내 한과 당보다 더많은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주원장은 결국 조선땅으로 오지 못합니다.
조선전기에 주원장이 조선을 두려워 한것을 대부분의 학자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우재라는 학자는 주원장이 조선이 조공하기전에 잠을 못잤다고 썻겠습니까 그러나 주원장은 선제공격하지 않았고 태조는 선제공격을 주저했습니다. 이미 40만에 달하는 조선군대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이후 태종과 세종은 고려사를 편찬하면서 태조에게 최대한 위로가 되도록 썼습니다. 고려보다 땅도 넓고 군사력도 더 강하다고 하였지요 조선의 거의 모든기록에는 고려가 수복하지 못한 고구려의 서북영토를 수복했다고 써있습니다.
오죽하면 조선말기 청에 거의 모든 땅을 빼앗긴 후에도 해동역사나 동사강목에는 고려보다 조선이 넓으니까 고려는 요동반도의 봉황성까지 였는데 조선은 그 서북쪽으로 땅이 있다고 썻겠습니까 조선은 국초에 분명히 고려보다 고구려보다 넓었으니 말기가 되어서도 그렇게 알고 오히려 고려와 고구려땅을 축소시켜 조선땅이 더넓다고 합리화 시켰습니다. 결국 자기역사를 자기손으로 조작한 셈이 됩니다. 지배층은 전왕조보다 영토가 적다는 것은 큰 수치요 백성을 다스리는데 명분이 없으니 학자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되고 결국 조선의 기록을 보면 흉노의 땅을 고구려가 차지했다는 기록이 있는 반면 요하동쪽일부만 차지했다는 상반된 기록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병도는 조선말기의 기록을 토대로 고려와 고구려를 축소시키면서 더 악랄하게 축소시켜 동사강목과 해동역사가 쓰여진 조선후기에도 고려땅이 동북으로 아무르강까지 서북으로 요동반도 남단까지로 나오는데 졸지에 한반도도 절반밖에 못차지한 초미니소국으로 둔갑시킵니다.그래놓고 제자들을 길러 자기손으로 조상의역사를 줄여 왜놈들에게 팔아먹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국사학계는 엄연히 기록에 나와있는 진실을 외면하고 왜놈앞잡이를 자처하니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일입니까!!! 요즘 경제가 어려워지니 다들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지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적습니다. COO2나 서프라이즈역사방에서 조회수를 보니 많이 줄었습디다. 이대로 진실이 묻히고 마는것인지 참으로 아쉽습니다. 내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책보다 짱개들 삼국지가 더잘팔리고 있는 현실에서 그나마 역사에대한 관심마저 줄어드니 정녕 이대로 묻히고 마는 것인가요....역사드라마라도 제대로 된게 나와야 되는데 고작 한다는 짓이 황해도가 낙랑군이고 우리가 한족의 혼혈이라는 것이나 방송하고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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