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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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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가 만주 지역의 지명을 이동(펌글) [1]





일제가 만주 지역의 지명을 이동(펌글)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한국인이라면,
단군조선의 왕험성과 고구려의 평양성이 북한 평양시 지역이라는
통설에 대하여
조그마한 의문이라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고려 시기 윤관이 되찾은 선춘령 아래 공험진,
원이 설치했다는 쌍성총관부,
또 간도나 백두산의 원래 위치에 대해서도 궁금해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은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

주) 1.
단군조선 개국 시기 제1 임검성은 태백산 아래 우수하 들로 모든 물길이 
         북쪽으로 흐르며, 요양에서 북쪽으로 600
리 떨어져 있다고 <규원사화>
          `단군기`에 기록되어 있음. 위 주황색 바깥 원 지역 위쪽.북쪽인 지금의

         적봉 부근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2. 제 1 세 왕검시기에 남쪽 왕험성(고구려
평양성)으로 천도.
---



조선의 서쪽 경계였던 요동군 번안현의 沛水와 왕험성 곁을 흐르던
浿水,
沛水와 浿水 사이에 있으며 요하보다도 더 나라를 방어하기 유리하여 <통전>을

저술한 당나라
두우까지도 하늘이 내린 천혜의 참호라는 列水 곧 압록수나 백산
대맥.백산 등 단군조선부터 후조선까지 서북쪽과 북쪽의 경계를 이룬
땅의 주름
들은 모두 지금의 발해 북쪽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리를 가장 상세히 기록한 것이 다산
정약용의 <아방강역고>의 `북로연혁고`
`서북로연혁고``백산보`입니다.

한편 서국 오랑캐의
25 번째 정사인 <청사고>의 `지리지`에는 다산의 `백산보`를
베끼다시피한 동서 1000 리에 이른다는
장백산맥.장령.분수령산맥(요산).용강산맥
이 봉천성 창도부.해룡부.흥경부.장백부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지리적 정황을 정확하게 표시한 지도로는 후조선 영조 시기에
제작된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가 있습니다.
한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사서와 고지도를 전혀 참조하지 않고
압록수나 백산을
한반도 북계에 밀어넣다시피 비정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반도사관이며, 더불어 천박한 왜구들이 사실을
두려워 하며 반도사관을
믿고 싶어 하여 만든 식민사관에 다름 아닙니다.

대체 무슨 돼먹지 못한 꽁생원의
아집이란 말입니까?

---
주) 1. 백제군은 晉 말 백제가 요서 지역에 진출하여 설치한
자치군으로,
          <요사/지리지> 중경에 `白( )故地`, <만주원류고/강역2>` 백제의 여러
성`에는
          `백제의 지경을 고증해 보았더니, 서북으로는 오늘날의
광녕.금주.의주로부터
           남으로 해주.개주에 걸쳐있으며...`의 광녕.금주.의주 지역임
  
        ( 위 주를 이해 못하는 혹은 제대로 된 반론을 하지 못하는 역사교수는 짐 싸라
)
---

1656 년 조선 효종의 동생인 인평대군이 조.청 사이에 문제가 생겨 진주사로 약 80 여
명을
이끌고 한양을 출발하여 연경까지, 또 연경에서 한양까지 전 행로를 일기식으로 기록하여

<연도기행>이라는 글이 전해져 오는데,

사신단의 행로는 <청사고/지리지> 직예성과
봉천성 부.주.현의 기록과 일치합니다.
바꿔말하면 현대 지도에 표기된 지명과 두 기록에 언급된 지명들의 위치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현대 지도에 표기된 지명은 <청사고/지리지>에 마지막으로 조치된 시기
즉 선통 3 년(1911)
신해혁명으로 멸망한 이후에 변동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음 8 월 3 일
한양을 떠난 인평대군을 위시한 80 여명의 사신단은 9 월 1 일 요하 즉 삼차하를
건너기 위하여 봉천성 해성현 우장방수위에
도착하였는데, 한양으로부터의 거리는 1680 리
였습니다.

과연 지금의 서울에서 지금의 요하를 건너기
직전 지점까지 거리가 1680 리 씩이나 할까요?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후조선 숙종 시기인
1675 년 경 저술된 <규원사화/단군기>`제 1세 왕검`에서 북애자는
고려가 신라의 뒤를 이었으나 국토가
압록강 이북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때문에 이로부터 북쪽 땅과의 관계는 끊이게 되었다.
또 요나라 금나라의
기세와 위엄이 국경 위를 누르니 압록강 남쪽 수천리 땅으로는 큰 나라에
비교되지 않아 백성들 사기가 옛날보다 더욱 멀어졌다.

이 때문에 김부식이 역사를 엮을 때 압록강 이북 일을 묻는 사람은 이미 없었다.

이라 했는데, 북애자가
본문에서 지목하는 신라와 고려의 압록강과 임지.병자 양란 후인 북애자
생존 당시의 압록강은 다릅니다.

통일신라.고려의 압록강은 고구려의 압록수이며 단군조선의 열수列水였지만 후조선 중기
이후의 압록강은 패수浿水였습니다. 기원전 108
년 한나라 유철이 설치한 낙랑군 지역의 가장
서쪽에 820 리 길이의 열수가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고, 낙랑군 동쪽 지역에는
浿水가
있었고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으며 그 북쪽에는 왕험.평양성이 있었습니다.


임진.병자 양란
즈음에 명.청국의 동북쪽 국경선은 지금의 란하 동쪽 지류 중 더 동쪽에 있는
청룡하에서 지금의 대릉하 하류로 옮겨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곧 한 시기 낙랑군 서쪽 지역
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열수 즉 압록수1에서 낙랑군 동쪽 지역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浿水

곧 압록수2로 옮겨졌으니 압록수란 이름을 그대로 습용하였다는 점이 혼선을 낳게한 원인이
였던
것입니다.

동쪽으로 옮겨진 국경선 압록수2를 앞에 둔 의주 용만관에 도착한 인평대군이 한양에서부터
걸어온
누적거리가 과연 1680 리였냐는 것입니다.
대군 일행은 한양을 떠난 지 17 일째인 8 월 19 일 1090 리를
걸어 도착한 곳이 압록강이였는데,
이 압록강에 대해 설명하기를, 이름이 셋이 있는데 청하.용만과 지금의 압록이라 하며 근원은

胡地와 백두산에서 나와서 서쪽으로 1000 여리를 흘러 장강이 되고 마이산 밑에 이르러 세 갈래
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 대총강으로 흘러 인산진 앞 바다로 들어가며 삼강.중강은 호지에 있고
이 압수는 우리나라에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대군이 대체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엉뚱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를
추정해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압록수1과 압록수2에 대한 정보가 합쳐진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국경선
변동이 일어난 시점이 오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의 청천강은 한양으로부터는 740 리
지점이였고 8 월 16 일 이미 지났으며 , 이후 19 일
에는 고진강.대총강을 건너고 태조가 거의하고 회군할 때 주차하던 곳이라는
태조봉 밑에서
쉬기도 하며 당일 저녁에 압록수2를 앞에 둔 의주에 도착하였습니다.

8 월 19 일
일정에 의문이 있지만 어쨋든 한양에서 지금의 압록강까지를 1090 리라 하면 또
지금의 요하까지를 1680 리라 하면 리수가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점이 있다 하더라도
서국 오랑캐인 청국 지리지에 문제가 없다면 국내 지리에 관한 100~200 리 차이
정도의
작은 의문은 더 정확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덮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1911년에 멸망한
청국의 정사인 <청사고/지리지>에는 요하가 지금의 란하 동쪽 지류인
폭하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즉 봉천성 치소인 성경
심양에서 경사인 지금의 북경까지는 1470 리
이고 요하.혼하.태자하가 만나 삼차하를 이루는 해성현은 심양 남쪽 240 리 떨어져
있다고 하여
삼차하 지점에서 지금의 북경까지는 1230 리 거리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북경에서 지금의
심양까지는 아무리 직선으로 달린다 하여도 2300 여리 안팎에 이릅니다.
1470 리나 1230 리라는 숫자는 터무니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청사고/지리지> 기록이 잘못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청국이
쇠퇴하는 19 세기 후반부터 20 세기 왜구들이 신분을 위장하고 상해와 지금의 적봉.
평천 등 동북지역에 더 집중하여 정보를
수집하였는데, 결과는 1860 대 이후 제작된 이 지역
의 측량 지도가 쏟아진다는 표현이 옳을 정도로 왜구 족속들이면 쥐나 개나 다
그렸나 봅니다.


이렇게 측량과 경위법이라는 당시로서는 과학적인 기법을 동원하여,
왜 남의 땅 지도를
그렸을까요?

지금의 승덕 부근에 있었던 심양을 현대 지도에 지금의 심양 위치로 옮긴 작업을 한
작자들은
바로 20 세기 왜구倭寇들이였습니다.
지금의 북진 북쪽에 있는 백산을 지금의 백두산으로 옮겨 표시한 놈들이
왜구들입니다.
지금 전해지는 <대동여지전도>를 그린 자는 어느 왜구일 것입니다.
고산 김정호가 지금 전해지는
<대동여지전도>를 그릴 리가 없습니다.

또한 지리지가 부실하고 애매하고 삼국의 역사만을 기록한
<삼국사기>만을 남겨놓았으며,
왕검조선 1100 년 또는 단군조선 2300 년 역사를 기록한
<규원사화>,<단군세기> 등을 숨겼으며,다산의 <아방강역고>를 장지연을 동원하여
훼손시키고,

<여지고>`산천` 등을 훼손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산경표>를
만들고, <대동여지전도>를 조작하여 한반도에 백산 남종을 배치시키고,
1913 년 최남선 등을 동원하여
[조선광문회]를 설립하여 이들 훼손.조작한 지리 사서들을 발간케 하였습니다. 

대체
왜구들은 무슨 속셈으로 이 짓을 죽자고 덤벼들었을까요??
1. 지금의 란하 동쪽에서 지금의 압록강.백두산까지의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2. 그곳이 터전인 단군조선 후예들의 역사를 한반도로 밀어내기
위해서.

서국 오랑캐들의 25 개 정사에 딸린 지리지를 읽어 보십시요. 과연 서쪽 오랑캐들이 저들의
동북쪽 경계가 어디라고 기록했는지를...

서국 오랑캐들의 25 개 정사와 사찬 지리지들은 대략
정확합니다.
<한서/지리지><후한서/군국지><수경주><요사/지리지><명사/지리지>
<만주원류고><청사고/지리지>
등등은 믿을 만한 사서들입니다.

저들의 동북쪽 경계는 지금으로부터 소급하여 대략 3000 년 동안
저들
스스로 지금의 란하 즉 산해관 부근이라고 하였고,
1911 년 망한 청국 정사인 <청사고/지리지>조차 요하를 지금의 란하
동쪽

지류인 폭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산의 <아방강역고>`백산보` 기록을 읽어
보십시요.
지금의 백두산을 설명했는가를...다만 `백산보``서북로연혁고``북로연혁고` 등을 제외한
`조선고``낙랑고`등등은
너무 심하게 훼손시켜 놓았습니다.
이렇게 옛 기록을 잘 살펴서 읽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안타깝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이고 잘 분별하여 읽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정신차립시다.


출처- http://blog.daum.net/elpaso57  삼국사기 바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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