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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정권이 총살한 ‘독립운동가 최능진’, 64년 만에 ‘무죄’

이승만 정권이 총살한 ‘독립운동가 최능진’, 64년 만에 ‘무죄’


등록 :2015-08-27 17:24수정 :2015-08-27 21:21


 






 



백범과 함께 친일파 청산·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등 활동
한국전쟁 때 정전운동 벌이다 ‘이적죄’ 몰려 군법회의서 사형
재판부 “허망하게 생명 빼앗긴 고인에게 안타까운 마음 표해”




최능진

최능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적으로 한국전쟁 와중에 부역자란 누명을 쓰고 총살당한 최능진씨가 6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로 공식 인정된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최창영)는 27일 국방경비법 위반죄로 1951년 2월 사형당한 최씨의 재심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899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최씨는 일제강점기에 안창호의 흥사단에서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해방 뒤 월남해 미군정청 경무부 수사국장이 됐으나 친일파 출신 경찰관들의 축출을 요구하다 자리를 잃었다. 김구와 함께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활동을 했고,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 때 서울 동대문에서 이승만에 맞서 출마했으나 입후보를 취소당했다.

 

그해 정부 수립 직후 반란을 꾀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한국전쟁 발발로 인민군이 서울에 진주한 직후 풀려나 정전·평화운동을 벌였고,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대대적 부역자 색출·처벌을 주도한 것은 일본 관동군 헌병 오장(하사) 출신으로 악명을 떨치던 합동수사본부장 김창룡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최씨가 사실관계가 잘못된 판결로 총살당했다”며 진실규명 결정과 함께 재심을 권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최씨가 주도한 ‘즉시 정전·평화통일 운동’은 김일성 등에게 전쟁을 즉시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민족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특히 북쪽이 ‘이승만 타도 대회’를 함께 개최하라고 강요하면서 시비가 붙었고, 그 과정에서 체포됐다가 풀려난 뒤 대한민국이 서울을 수복한 1950년 9월28일 무렵까지 숨어서 지낸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따라서 ‘적을 구원·보호’하는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반일이나 단독정부 수립 반대 등 최씨의 행적을 종합해 평가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선고를 마치며 “우리 사법체계가 미처 정착·성숙되지 못한 혼란기에 6·25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군사법원의 그릇된 공권력 행사로 허망하게 생명을 빼앗긴 고인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한다”고 밝혔다. “재심 판결이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불명예를 회복하고 과거사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최씨는 2013년 별세한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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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능진도 우리 손에서 보냈다”최능진Click here!

조웅 목사는 이승만의 정적들이 비명횡사한 또 다른 사례로서 최능진을 들었다. 이른바 CIC 삼총사가“최능진도 우리손에서 보냈다”라고 실토했다는 것이다. 일석 최능진. 평남 출신인 그는 부유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학할 때 안창호가 이끌던 흥사단에 참여했다. 해방후 건국준비위원회 평남지부 치안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곧 월남해 미군정 산하 경무국수사과장으로 경찰계에 입문한 후‘친일경찰청산’에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그의 경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경찰책임자인 조병옥,장택상 등과 친일경찰 청산문제로 대립한 후 옷을 벗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승만과 대립한 것은 이 때만이 아니다. 1948년 5·10 단독선거가 강행되자 최능진은 이승만의 정권 장악을 염려, 그가 출마한 동대문 갑구에 입후보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극우 친위대 노릇을 하던 서북청년단 소속의 괴한들에게 입후보 관련서류를 탈취 당해 좌절됐다. 결국 이승만이 무투표 당선되고 말았다.

이 때문이었을까. 정부수립 후 한 달 보름만에 그는 이른바‘인민해방군사건’에 연루돼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고 말았다. 그러나 1 9 5 0년 6·25 전쟁이 나자 극적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유엔군의 서울점령 후 서서히 정계인사들과 만나던 그는 그 해 1 1월 다시 구속됐다. 당시 최고의 권력 실세였던 군경검 합동수사본부장 김창룡의 지시에 따른 결과였다. 군사법정에서는 사형을 선고, 전쟁이 한창이던 1 9 5 1년 2월 운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조 목사에 따르면 이렇게 희생된 최능진이 바로 김창룡의 심복들이던 CIC 삼총사의‘손에서’나온 결과였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6·25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 9 5 3년 6월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사망한 이용문장군도 음모에 의한 암살사건이라는 게 조웅 목사의 주장이다. 이용문은 현 한나라당 이건개 의원의 부친이다. 6·25 당시 이종찬 육군참모총장 직속 작전국장이던 이용문은 1 9 5 2년 이승만을 몰아내기 위한 미국 주도의 쿠데타를 계획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 목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부산정치파동’당시 이승만이 이종찬에게 계엄선포를 위해 병력 동원을 요구했으나 전시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이 일로 이종찬은 무릎을 꿇은 채 이승만에게 사표를 내야 했어요. 이종찬 밑에 있던 정보국장 김종평 장군은 이 때의 일로 생식기를 못쓰게 될 정도로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용문도 작전참모부에서 강등당해 남원에 주둔하던 남쪽경비사령부(남경사)로 배치돼 공비토벌 사령관임무를 맡아 사지로 내몰렸죠. 이승만 정권은 이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회의를 소집해 놓고 삼총사를 동원해서 그가 탈헬리콥터기장을 매수해 휘발유를 적게 넣은 채 비행하다가 고의로 추락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 역시 삼총사에게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장면 암살 미수의 배후 최훈 = 삼총사 일원 최 0?

이 뿐만이 아니다. 이승만정권기 크고 작은 암살미수사건에 CIC 삼총사가 관여 돼 있다는 주장이다. 1952년 이승만 암살미수사건도 최 0 등 삼총사가 관련된 자체조작사건이라는 것이다. 6·25 2주년 기념식장에 참석한 이승만은 항일 독립운동단체의 열단 출신인 나재하의 권총 세례를 받았다. 이승만 등 뒤 2미터 거리에서 방아쇠를 당겼지만 무슨 일인지‘찰칵’하는 소리만 난 채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또 한번 방아쇠를 당겼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발이었다.

나재하는 현장에서 붙잡혔으며 이후 또 한명의 공범이 드러났는데 역시 독립운동가출신인 김시현 옹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 조사 결과 나이 일흔살을 넘긴 김시현옹이 권총을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조 목사에 따르면 최모 등 삼총사가 김시현 옹에게 권총과 총알을 건넸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왜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총알이 발사됐다면 큰일나는 것 아닙니까? 최 0이 이들과 접촉해서 한 달 동안 물에 담궈둔 권총알을 제공해 고의로 불발사건을 일으키고 이승만권력을 한층강화하는데 이용한것이죠.”

조목사는 최 0, 엄0 0이“그 사건은 쇼였으며, 우리 손에 한 번 들어오면 꼼짝 못한다”고 했다는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사건으로 삼총사의 직속 상관인 김창룡은 별은 하나더 달았다고 하면서 자기들끼리 논공행상을 하더라는 것이다. 1 9 5 6년 당시 부통령이던 운석 장면저격사건의 배후에도 삼총사가 있었다고 한다. 고령의 이승만이 유고시, 승계권을 갖고 있던 장면을 부담스럽게 여긴 이승만측근들이 삼총사를 움직여 암살을 기도한 사건이라는 얘기다.

“삼총사중 한 명인 엄0 0에 따르면 운석에게 시공관행사(민주당전당대회)에‘나가지말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운석이 우리말까지도 안 들었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 사건은 중부경찰서경위가 총지휘를 했다고 합니다. 또 자금은 임흥순이 댔다는 거예요. 이익흥 내무장관, 김종원 치안국장도 관련이 있답니다. 엄 0 0은‘총알이 손에 맞은 게 다행’이라는 얘기를 하더군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암살범김상붕이쏜총에맞은장면부통령

장면 저격사건(담당 검사 이홍규)의 범인은 이북출신의 김상붕이었다. 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 처음에는 단독범행을 주장하다가 경찰이 약속과는 달리 자신을 용공 혐의자로 몰고 가려하자 이기붕 부통령, 이익흥 내무장관, 김종원 치안국장, 이기붕의 최측근 임흥순으로 이어지는 배후세력을 털어 놓아 경악시켰다.

조목사가 전하는 엄0 0의 증언은 지난 1 9 9 8년 M B C의 8·15 특집물〈잃어버린 공화국 - 장면과 민주주의〉에서 인터뷰한 범인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1 5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그는“자유당 비밀당원 최훈을 통해 접선되었는데 최훈의 배후에 자유당 정책위원이며 자유당내 강경파의 일원으로 이기붕의 측근이던 임흥순이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따라서 그의 증언으로 볼 때‘자유당의 비밀당원 최훈’은 바로 조 목사가 주장하는 삼총사의 일원인 최모일 가능성이 짙다.

“독재자의 이용물이 된 딱한 청년”

이밖에 1 9 5 2년 4월 발생한 서민호의원 총격사건도 삼총사의 공작에 따른 결과라는 주장이다. 월파 서민호는 일제시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바 있는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사건당시 그는 제2대 국회의원이자 내무분과장으로 있으면서 전쟁기 발생한 국군에의한 거창 양민학살사건과 제2 국민병으로 조직된 수십만의 국민방위군을 기아와 동상으로 희생시킨사건을 집중성토함으로써 당시 이승만 정권의‘눈에 가시’와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위해 추진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앞장서서 반대한 인물로서 그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반감은 극에 달했다는 평가다.

그러던 차에 그가 우연히 말다툼 중에서 창선 대위를 권총으로 쏘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서대위가 먼저 쏘자 다급해진 서 의원이 피하면서 소지하고 있던 모젤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 사건으로 ‘정당방위’라는말이 널리유행하게 됐다. 월파는 훗날《이래서 되겠는가》(1970, 환문사)라는 책에서 그때의 사건을 소상히 회상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사고당일 부산에서 순천으로 내려갈 때부터 괴한들이 미행하기 시작했으며 순천에 도착한 후 급기야밤중에 군인복장을 한사람등이 찾아와 자신의 일행과 일부러 말다툼을 하면서“서민호나오라. 쏜다”고 악을쓰며 권총을 빼들고 설쳤다는 것.

바로 그 순간 월파는‘저들이야 말로 나를 여태껏 미행해 온 계획적인 공작대원일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한다. 그의 예감은 결국 사람이 죽는 커다란 사고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는 회고록에 서서 창선대위에 대해 언급하며“독재자의 이용물이 된 딱한 청년”으로 묘사했다. 사건 당시부터 배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조웅 목사는 이 사건이 바로“삼총사가 서창선을 배후에서 조종해 일으킨 사건”이라고 했다. 그러나 삼총사와 서창선이 어떤 관계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후조종을 한 것인지에 대한 더 이상의 구체적인 증언은 없었다.

아직까지 서민호총격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번 증언은 그 배후의 단초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묘한 정국 하에서 발생한 돌출 사건이라는 점에서 많은 의혹을 남긴 사건이지만 반세기가 지나서야 사건의 진상을 캘 실마리를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는 적지 않은 듯하다. 조 목사가 전하는 이승만정권의 암살 커넥션,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대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이승만의 핵심측근이던 이기붕과 김창룡의 사주에 따라 움직인 암살청부업자들이 야당대통령후보들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이승만의 정적들을 제거 했다니…과연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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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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