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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역사뿌리 중국으로 왜곡되어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뿌리 중국으로 왜곡되어있다.

전국을 통일한 진(秦 : BCE 221 전국통일 ~ BCE 207 멸망)나라가 15년 만에 망하고 난 후, 한 고조 유방(劉邦)과 초패왕 항우(項羽)가 6년 동안 아주 피가 터지도록 싸운다. 결국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漢 : 전한 BCE 206~CE 8)제국을 열게 되는데, 그 7대 임금이 무제(武帝 : BCE 141~ BCE 87)다.
 
 오늘의 사가들은 북쪽의 흉노를 굴복시킨 한 무제가 자신감을 얻어 동북방의 고조선을 쳐들어왔다, 그리하여 준왕(準王)을 몰아내고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그 자리에 식민지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한다. 마치 준왕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준왕은 고조선의 서쪽 날개였던 번조선(番朝鮮)의 부단군이었을 뿐이다. 또한 진조선(辰朝鮮)의 마지막 제왕인 고열가(古列加) 단군이 장수들의 거듭된 화란 속에 퇴위하여 고조선 본조시대가 마감(BCE 238년)된 것은, 찬적 위만(衛滿)이 번조선을 점거하여 스스로 왕위에 오르기(BCE 194년) 44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특히 고열가 단군 시절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춘추시대 BCE 722~ BCE 403, 전국시대 BCE 403~ BCE 221)의 혼란기에 처해 있었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당시 한족이 고조선을 위협한다거나 고조선을 찬탈할 여력이 어디 있었겠는가!
 




 - 위만조선의 진실
 

그러면 식민주의 사관에 물든 역사학계에서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위만조선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위만(재위 BCE 194~BCE 180?)은 본래 중국 한족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죽마고우였던 노관의 부하이다. 중원을 평정한 한 고조는 여태후와 더불어 개국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 이 때 연나라 왕 노관은 흉노로 달아나고, 위만은 조선인으로 변장한 뒤 부하 1천 명과 함께 왕검성에 와서 번조선의 준왕에게 거짓 투항을 했다. 이에 준왕은 덕으로써 그를 받아주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수비대 책임자로 임명까지 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 한족 망명 집단을 이끌고 몰래 세력을 기른 위만은 이듬해 준왕을 배반하고 왕검성을 쳤다. 그리고 나라 이름은 그대로 둔 채 스스로 왕이 되었다(BCE 194). 『삼국유사』에서 말한 위만조선은 바로 우리 민족의 서쪽 영토였던 번조선의 한 모퉁이를 잠깐 강탈하여 지배했던 위만정권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 역사학계에서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준왕을 잡아먹은 위만 같은 배은망덕한 자가 고조선의 정통을 계승하였다는 것이다.
 
 『사기』에도 분명히 위만을 연나라 사람[燕人]이라고 기록했을 뿐 아니라,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는 ‘위만은 나라를 찬탈한 도적’이라 했고,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용은 ‘위만은 한 명의 강도에 불과하다[乃一强盜]’고 하였다. 이처럼 위만은 중국 한족의 인물로서, 한마디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떠돌이 도적인 것이다.
 

위만정권은 손자 우거왕 때에 이르러 밖으로는 한 무제의 침입과 안으로는 지도층의 분열로 인해 결국 망하게 된다(BCE 194~BCE 108).
 




 - 조선 역사를 부활시킨 동명성왕, 고두막한
 

한 무제는 그 여세를 몰아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북부여로 쳐들어온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대 고우루(高于婁) 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맞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 조선 민족이 다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고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한 무제의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다.
 
 

고두막한은 기원전 108년, 졸본(卒本)에서 나라 이름을 ‘북부여’에서 동방의 대광명이라는 뜻의 ‘동명(東明 : 동명부여, 또는 졸본부여)’이라 바꾸고 동명왕으로 즉위한다. 그리고 기원전 87년에는 북부여를 계승하여 조선 역사 부활의 푯대를 다시 세우니, 이분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성왕(東明聖王)이다.
 
 

이 때 본래 북부여 4대 단군의 승계자인 해부루(解夫婁)가 동쪽으로 가서 가섭원(迦葉原) 땅에다 나라를 세우는데, 동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으로 동부여(東夫餘)라 했다. 해부루는 북부여 4대 단군의 동생이다.
 
 

그리하여 고두막한이 북부여의 5대 고두막 단군이 되는데, 그때부터 북부여의 후기시대[後北夫餘]라고 한다. 북부여는 시조 해모수(解慕漱) 단군으로부터 6대 만인 고무서(高無胥) 단군 때에 막을 내린다.
 
 

6대 고무서 단군은 딸만 셋이었다. 그 둘째딸이 소서노(召西弩)인데, 고주몽과 혼인을 시켜 사위로 삼아 주몽으로 하여금 북부여를 계승토록 한다. 그리하여 고주몽이 북부여의 7대 단군이 되었으며, 그 후 기원전 37년에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로 변경하여 고구려 700년 역사의 창업 시조가 된 것이다.
 


 이것이 고조선이 멸망한 후 열국시대로 들어서는 과정이다.
 
 - 왜 중국인들은 부여사를 말살했을까?


 

북부여가 단군조선을 계승하였다. 이것이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맥을 바로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역사에서는 북부여 역사라는 게 완전 말살됐다.
 
 그 역사의 원형이 『환단고기』 「삼성기」상, 하 두 편과 「단군세기」에 나온다. 「단군세기」에는 47대 단군 역사가 나오고 「북부여기」상, 하에는 북부여의 역사가 나온다.
 
 「북부여기」상에 해모수 단군서부터 역대 단군들이 나오는데, 5대 단군 고두막한이 바로 동명성왕이다. 고두막한은 중국 한족의 침략을 받아 완전히 멸망할 위기에 놓인 우리 동방 조선의 역사를 부활시킨 인물이다.
 
 그런데 중국 한 무제가 고두막한을 죽이려고 덤벼들었다가 참패를 당했다. 한 무제가 패퇴한 대사건, 이것은 중국 역사상 최대의 수치였다. 중국 5천년 역사에서 당태종이 안시성에 와서 양만춘 장군한테 화살을 맞아 눈 빠진 것보다 더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가들과 국내 사대주의자들이 이 북부여 역사를 완전히 뿌리 뽑아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민족 역사의 맥, 사통의 허리가 잘려버렸다. 그래서 국통 맥이 연결이 안 된다.
 
 

지금 역사학자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부여의 역사를 중국의 사료에 맞추어 꿰매고 있다. 그러니 너덜너덜하다. 이렇게 꿰매면 이런 작품이 나오고, 저렇게 꿰매면 저런 작품이 나오고, 전부 애꾸눈이처럼 찌그러져 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주몽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는 고주몽이 해모수의 아들로 나온다. 그게 다 중국 측 사료를 보고 만들어서 그렇다. 해모수와 주몽은 무려 120여년 이상 차이가 난다. 해모수는 북부여의 초대 단군이고 주몽은 6대 마지막 단군 고무서의 사위인데, 어떻게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이란 말인가!
 
 

북부여는 단군조선과 고구려를 이어주는 잃어버린 열국시대의 역사의 맥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부여사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 한민족을 제대로 알려면, 한민족 정신의 뿌리를 알려면 부여사를 알아야 한다.  




 - 부여사에 담긴 간(艮)도수의 비밀
 먼저 부여라는 나라 이름을 살펴보자.
 
 첫째, 초대 단군 할아버지의 막내아들이 부여(夫餘)다. 첫째인 태자가 부루(夫婁 : 2세 단군, 재위 BCE 2,240~BCE 2,182), 둘째가 부소(夫蘇 : 구려(원시 고구려, 고리국)에 봉해짐), 셋째가 부우(夫虞 : 진번국(요동의 제후국)에 봉해짐), 막내인 넷째가 부여(夫餘)이다.



단군성조는 막내왕자 부여를 도읍인 아사달의 서쪽인 녹산(鹿山 : 백악산 아사달, 지금의 길림성 장춘)의 제후로 봉한다. 이것이 원시부여, 부여라는 나라 이름의 기원이다.
 
 둘째, 그런데 그 부여의 문화, 부여의 정신, 부여의 역사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감동을 줬는지, 44대 구물 단군 때 우화충의 반역사건(BCE 426)을 진압하고 나서 국력이 급속도로 쇠약해지자 나라이름을 바꾸게 된다.



나라를 운영하다가 도저히 안 되면 극적으로 모든 걸 일신하기 위해서 나라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이번 조선의 고종임금이 그랬고, 그 때 조선도 그랬다. 그래서 조선을 대부여(大夫餘)로 바꾼다.
 
 셋째, 해모수(解慕漱)가 그 대부여의 중심지인 만주 땅에 세운 나라가 북부여(北夫餘)다. 즉 삼조선의 중앙 북쪽만 차지하여 국통을 계승을 했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대부여에서 대 자를 빼고 북부여라고 한 것이다.
 
 넷째, 고주몽이 어릴 때 자라던 나라, 동부여(가섭원부여)가 있다. 사실 북부여와 동부여의 역사는 4대 단군의 차이가 난다. 앞에서 말했듯이 북부여 4대 단군의 계승자였던 해부루가 피난을 가서 세운 나라가 동부여다. 그 역사만 해도 벌써 한 5, 60년 두세대 이상 차이가 난다.
 
 이 밖에도 고두막한이 졸본 땅에 세운 동명부여(졸본부여)가 있고, 또 동부여 멸망 후 마지막 3대 대소왕의 동생이 압록곡 부근에 건국한 갈사(曷思)부여, 대소왕의 종제(從弟)가 고구려에 투항한 후 왕으로 봉해진 연나부(椽那部)부여가 있다. 또 백제 26대 성왕(CE 253~554)이 538년에 도읍을 웅진(곰나루)에서 사비성으로 천도한 후 ‘남부여(南夫餘)’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간도수(艮度數)는 막내도수다. 4,300년 전에 단군성조의 막내아들 부여를 통해 이미 막내도수의 씨알이 떨어진 것이다. 이것이 부여사에 담긴 간도수의 비밀이다. 이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역사 인식이 전혀 안 되고 있다.  
 




 동,서양의 삼신관(三神觀)


다시 국통맥을 보면, 고조선은 나라를 삼한으로 다스렸다. 이것을 보는 것이 우리 한민족 역사의 뿌리와 진리의 근원, 깨달음의 근원, 우주론의 근본 문제다.
 


 
 
동방은 조물주를 삼신(三神)이라고 한다. 조물주의 창조의 덕성인 조화신造化神(父: 만물을 내시고), 교화신敎化神(師: 以神設敎), 치화신治化神(君: 다스리시고)의 창조의 본성을 가지고 삼신(三神)이라 하는 것이다.   
 
 

삼신(三神)의 본성은 첫째, 만물을 창조하는 조화신의 역할이 있고, 둘째, 깨달음을 열어주는, 가르쳐서 변화시켜주는 교화신의 역할, 셋째는 다스리는, 통치하는 치화신의 역할이 있다.
 
 동방의 이 삼신三神 의 문명을 열어서 제도화 시키는 과정이 바로 한민족의 뿌리 역사인 환국-배달-조선의 역사다. 즉 우리 민족의 시원 국가인 환국, 배달, 조선은 삼신의 삼수三數 법칙으로, 삼신의 세 가지 창조 덕성을 생활 문화로 뿌리내린 것이다.
 
조물주 삼신 상제의 첫 번째 본성인 조화신의 특성을 몸으로 체득한 것이 조화시대 환국이다. 그 때는 모든 백성이 광명으로 살았다(white shaman). 밝아서 아주 거짓없이 진실하게 살았다.
 
 그 다음, 교화신의 기운으로 문명을 열어 나간 나라가 배달국이다. 문자를 만들고 농경문화를 열고, 시장문화를 열어 교역을 하고, 약재를 만들어 병을 고치는 등 실제로 문명을 열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세 번째 치화시대가 조선이다. 조선을 창업한 단군성조는 훨씬 더 지존하신 분이다. 이분은 삼신 상제의 정신을 인간의 역사 통치 질서에 뿌리를 내려 나라를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다시 말해서 뿌리 문화를 종합하여 삼신 상제의 가르침을 통치 역사로 제도화시켰다. 이것이 중요하다.
 
 교화시대인 배달국을 연 거발환 환웅이 백두산 신시에 나라를 처음 건설할 때 환국으로부터 받아내린 가르침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제세이화(濟世理化), 광명이세(光明以世)다. 백성들을 다스려 진정한 하늘 백성으로 만드는 통치 이념을 배달국 환웅천황께서 처음으로 열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삼신의 질서, 삼신 상제의 창조 코드인 삼수(三數)를 통치원리로 하여 나라를 삼한으로 나눠 다스린 것이 조선, 정확히 말해서 단군조선이다. 이 조선을 후대의 한양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옛 조선, 고조선이라고 한다.
국통을 안다는 것은 우리 한민족사의 국통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상제가 오시는 방위가 동북방이고, 그것을 음양의 이치, 팔괘의 원리로 간방이라고 한다. ‘간(艮)은 지야(止也)라’ 간은 멈추는 곳이다. 즉 간(艮)에서 천지의 뜻이 이뤄지고 우주 변화의 한 계절이 끝난다. 그칠 지 자! 그것이 바로 상씨름이 넘어간다는 뜻이다.
 
고종은 나라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천자국의 종주로서 세계만방에 천자국임을 선포한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의 국호 ‘대한민국’의 뿌리다.
 
 그런데 그 ‘대한’은 어디서 왔느냐? 앞서도 말했듯이 ‘대한’은 삼신의 창조섭리, 삼신 상제의 광명정신에서 온 것이다. 하늘에서는 삼신으로 부르고, 땅에서는 삼한으로 부른다. 삼신 상제의 뜻을 계승하여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세 분의 왕이 다스렸던 웅혼한 삼한의 혼을 다시 통일한다고 해서 ‘대한’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국호 ‘대한’의 비밀 코드를 푸는 열쇠인데, 이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고조선이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는 것이 인식 안 되면 대한이라고 쓸 수도 없고 부를 수도 없지 않겠는가.
 
 더욱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고조선이라는 나라 시원역사 자체를 부정한다. 신화라고 가르친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은 고조선의 시원역사를 제대로 아는 게 밥 먹고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말한다.
 
 우리 역사의 국통을 아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아는 게 아니다. 우리 민족이 섬겨 왔던, 조물주의 창조 섭리, 인간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봄여름철을 살아왔느냐 하는 삶의 과정과 역사의 깊은 섭리를 아는 것이다.
 
 
 우리의 고대사는 간도수(艮度數) 실현을 준비하는 과정
 배달국의 시조는 지금으로부터 5,900년 전, 동방 땅에 처음 나라를 세운 거발환 환웅천황이다. 환국 말기에 천부인과 제세핵랑군 3,000명을 이끌고 와 백두산 아래 천평(天坪)에 신시(神市)를 열었다. 총 18세의 환웅천황이 다스리시며 1,565년 동안 번창한 배달 문명은 삼신 상제의 가르침을 한민족의 삶의 이념으로 뿌리내려 주었다.
 
 그 배달국을 계승한 것이 삼한이며, 그 나라를 전체 조선(朝鮮)이라고 하고, 구체적으로는 단군조선이라고 한다. 초대 단군성조가 배달국의 법통을 계승하여 아사달을 수도로 나라를 세워, 총 47대 단군이 2,096년간 통치하였다.
 
 단군조선이 건국한 지 1,048년이 지나, 정치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22대 색불루 단군에 이르러 도읍지를 백악산 아사달(현재의 길림성 장춘)로 천도를 한다. 그리고 그동안 병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번한과 마한에 병권을 일부 나누어 줌으로써 삼한 체제의 동요가 서서히 일기 시작하였다. 이에 삼한관경의 체제는 무너지고 대신 두 분조의 독립된 병권이 인정되는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의 삼조선 체제(分權管境)로 개편되었다.
 
 그 후 43대 물리 단군의 재위 말기인 기원전 426년에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화충이 반란을 일으켜 아사달이 점령되고 물리 단군이 피난길에 붕어하고 만다. 이 때 구물 장군이 군사를 일으켜 반란군을 토벌하고 44대 단군으로 즉위한다. 그리고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국호를 조선에서 대부여로 개칭하고 백악산에서 장당경(요령성 개원)으로 천도하였다.
 
 나라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서 다시 살려보려고 몸부림쳤으나 이미 진조선(진한)의 중앙정부 권력은 크게 약화되고 번조선(번한)과 마조선(마한)의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중앙정부인 진조선의 권한이 축소되고, ‘좌우의 두 조선’이 형식적으로 진조선을 받드는 형국이 되자 장군들의 반역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고조선은 점점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238년, 47세 고열가 단군에 이르러 마침내 고조선은 2,096년의 장구한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고조선이 망하면서 역사의 무대는 북삼한에서 한강 이남의 남삼한으로, 대륙에서 반도로 옮겨오게 되었다. 즉, 동방 문명의 원 핵 자리요 숨구멍인 동북 간방(艮方)으로 조여들어 온 것이다. 이로써 한민족은 본격적인 간(艮)도수 실현의 역사 시대를 준비하게 되었다.
 
 
 ‘구변지도’끝에 이루어지는 ‘대한’
 고조선이 어떻게 망하느냐,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가느냐는 것을 예언한 사람이 있다. 9천년 역사를 이어 온 우리 한민족의 국운을 예언한 위대한 인물, 그가 바로 고조선 6대 달문 단군 때의 신지(神誌) 발리(發理)이다.
 
 그는 대우주의 조화옹 삼신 상제을 예찬하고 한민족사의 뿌리 되는 역대 열성조의 성덕과 치적을 칭송하면서, 단군조의 앞날과 한민족의 국운에 관한 예언을 남겼다. 그것이 『신지비사(神誌秘詞)』이다.
 
 여기서 그는 ‘이 땅 동국의 역사는 아홉 번 바뀐다[구변지도(九變之道)]’고 했다. 즉, 삼신 상제의 섭리로 수도 셋을 두고 세 임금이 다스리는 삼경의 균형이 무너지면 고조선이 망한다. 그 후 나라 이름이 크게 아홉 번 바뀐 뒤에 새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발리의 예언처럼 실제로 우리나라는 ①환국 ②배달 ③조선 ④북부여(열국시대) ⑤고구려(4국시대) ⑥대진국(발해)·신라 ⑦고려 ⑧조선 ⑨상해임시정부 ⑩대한민국으로 아홉 번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신지 발리가 한민족 통사의 대강을 논하면서 전하고자 한 진정한 뜻은 과연 무엇일까?
 
 아홉 번 변한다는 것은 열 번째로 나라이름이 바뀌어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역사가 열린다는 뜻이다. 그것은 분열의 극단을 뜻하는 ‘9’수의 천지 상수 원리에 의해 나라이름이 아홉 번 변하면서 한민족이 선천 분열시대를 종결짓는다는 것이며, 나아가 10무극의 통일시대인 후천을 열고 완전한 통일국가로 거듭 태어나리라는 의미인 것이다.
 
 아홉 번은 3×3=9로, 생장성(生長成) 삼변성도(三變成道)의 원리를 의미한다.
 
 삼신 상제의 섭리에 의해 1단계 환국-배달-조선의 뿌리국가 시대, 2단계 북부여를 중심으로 하는 열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시대-대진국(발해)과 후신라의 남북국시대, 3단계 단일왕조 시대인 고려-조선을 거쳐 주권재민의 임시정부시대로 들어선다. 이 임시정부시대를 거쳐 오늘의 대한민국이 열렸는데 이 나라가 또 남북으로 분단이 되었다.
 
 이처럼 세 번 변화를 거쳐 온 한민족의 분열과 통일의 역사 과정은 장차 지구의 중심 땅이 될 간방艮方의 남조선에서 실현되는 인류문명 대통일 도수, 즉 간(艮) 도수에 의해 그 종지부를 찍는다.(출처: 개벽 실제상황)





우리나라의 국호는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대진국(발해),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국통이 이어져 왔으며 9번의 국호(九變之道)가 모두 다 광명(光明)을 상징하고 있다.




①환국(桓國)은 광명의 나라(桓은 하늘의 광명을 나타낸다)




②배달국(倍達國)은 광명이 비친 땅(밝땅→밝달→배달) 달(땅): 응달,양달.


③조선(朝鮮)은 조일선명(朝日鮮明):아침의 해가 선명하게 밝아온다는 의미






④부여(扶餘)는 아침에 먼동이 뿌옇게 밝아오는 나라,


⑤고구려(高句麗)는 고대광려(高大光麗) 즉 높고 크게 빛나는 나라,




⑥대진(大震)국은 동방 진(震)자를 썼으니 광명이 처음으로 올라오는 나라(발해는 외부에서 부르던 명칭이고, 발해인들은 스스로 대진이라고 불렀다. 광명의 바다라는 渤海도 역시 광명의 나라를 뜻한다),


⑦고려(高麗)는 고구려와 같다




⑧조선(朝鮮)은 밝은 아침의 나라,


⑨대한민국(大韓民國)의 韓은 인간의 광명을 나타낸다.



오호嗚呼라. 정유기政猶器하고 인유도人猶道하니 기가리도이존호器可離道而存乎며
 
 국유형國有形하고 사유혼史有魂하니 형가실혼이보호形可失魂而保乎아.
 
 병수도기자竝修道器者가 아야我也며 구연형혼자俱衍形魂者가 역아야亦我也니
 
 고故로 천하만사天下萬事가 선재지아야先在知我也니라.
 
 연즉기욕지아然則其欲知我면 자하이시호自何而始乎아.
 
 오호라! 정치는 그릇(器)과 같고 사람은 도(道)와 같으니, 그릇이 도를 떠나서 어찌 존재할 수 있으며,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그 혼을 잃고서 어찌 보존될 수 있으리요. 도와 그릇을 같이 닦는 자도 나요, 형체와 혼을 아울러 발전시키는 자도 나로다. 그러므로 천하만사 가운데 먼저 할 일은 나를 아는 것(天下萬事先在知我)이다. 그러한즉 나를 알려면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행촌 이암(1297∼1364) 선생이 저술한 <단군세기> 서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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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원전
2007/04/01 6425
175
 《黃帝故里故都歷代文獻匯典》學術研討會紀要

안원전
2007/03/27 4748
174
 愛新覺羅의 논리적 증명 By 소나무 [5]

안원전
2007/03/27 5895
173
 “漢族, 단일민족 아니다!” [1]

안원전
2007/03/26 5362
172
 東夷族(동이족)의 우월성

안원전
2007/03/16 6157
171
  서방족과 황제 헌원 [1]

안원전
2007/03/15 6389
170
 한단고기 기행문 (하 용철 방송인)

안원전
2007/03/15 6376
169
 동이족은 왜 우리 민족이 될 수 없는가 [2]

안원전
2007/03/15 5974
168
 `중국판 단군` 황제 헌원 제사 우리는 한 핏줄` 13억 동족애 과시 [중앙일보]

안원전
2007/03/15 5626

 대한민국의 역사뿌리 중국으로 왜곡되어있다.

안원전
2007/03/15 5456
166
 중국사람이 말하는 단군의실존

안원전
2007/03/15 5770
165
 <근대 한민족사 엑스파일> 대륙조선은 어떻게 한반도로 축소되었나 ?

안원전
2007/03/13 6749
164
 장개석이 이시영 임시정부 전부통령에게 한 질문

안원전
2007/03/12 6021
163
 한반도백제와 중원대륙백제 (1) : 조국 백제의 재인식을 향하여 임승국

안원전
2007/02/18 7004
162
 “대마도는 원래 우리 땅”

안원전
2007/02/14 5834
161
 제목 : (중화패권주의 기사)주은래마저 매국노로 몰린다 [1]

안원전
2007/02/14 6408
160
 동이족의 뿌리는 묘족, 조상은 환인 [한민족] 율곤 이중재 선생의 한민족 뿌리찾기

안원전
2007/02/10 6937
159
 홍사(鴻史) B.C267년 공자(孔子)의 7세 후손인 공자순(孔子順)이 서문을 쓰다 (송준희) [1]

안원전
2007/02/03 11411
158
 중국의 거대한 음모- 화샤일통(華夏一統:모든 소수민족역사를 화화권 역사 하나로 버무려 통일한다) [1]

안원전
2007/02/02 6415
157
 선도 문화와 한국 혼(박성수)

안원전
2007/01/26 6908
156
 신라의 뿌리는 초나라.

안원전
2006/12/31 7183
155
 최초 확인 “동방문화의 뿌리는 漢族이 아니라 韓族” [1]

안원전
2006/12/28 6344
154
 민족사의 맥을 찾아서

안원전
2006/12/19 7887
153
  켈트신화의 전쟁신이며 가장 높은 天神 치우에 대한 노르딕 전승-고대 독일방언으로는 '찌우', 전승켈트어로는 '티우'/Tiw Tuesday는 바로 Tiw's day에서 유래 [323]

안원전
2006/11/21 8120
152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한겨레21 [2]

안원전
2006/11/12 6977
151
 잊혀진 왕국 제(齊) (특집:齊나라)

안원전
2006/11/12 6101
150
 달마동은 치우동(coo2.net)

안원전
2006/11/12 5700
149
  정용석, 훈민정음 창제의 비밀

안원전
2006/11/12 6820
148
  이것이 적봉유역에서 발견된 <배달국, 고조선 유적>이다

안원전
2006/11/06 7259
147
 고구려사가 중국사가 될 수 없는 7가지 이유

안원전
2006/11/04 5688
146
 단군은 곰의 아들 아니다 -문헌상 기록들- [1]

안원전
2006/11/04 6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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