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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系譜學的 側面에서 接近한 伯夷,叔齊 故事 硏究
  


系譜學的 側面에서 接近한 伯夷,叔齊 故事 硏究

                                                              김민호(한림대 중국학과)

1. 들어가며  

  <史記.伯夷列傳>을 읽으면 항상 드는 의문점이 있었다. 아니 왜 伯夷,叔齊가 그렇게 칭송을 받아야 하는 거지? 폭군인 紂를 치러 가는데 한 임금만을 섬겨야 한다며 周武王을 막는다면 이는 오히려 비난받아야 하는 일 아니야? 그냥 그런식으로 이상하다고 생각만 하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 청초 艾衲居士가 쓴 <豆棚閑話>라는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이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한 특이한 작품이어서 재미있게 읽어 내려가던 중 일곱 번째 이야기인 <首陽山叔齊變節>이란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우선 제목부터가 자극적이었다. <백이열전>에서 그렇게 칭송 받던, 지금까지 충신과 절개의 상징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숙제가 변절을 하다니? 흥미를 갖고 읽어 내려갔다. 작품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숙제가 변절하게 된 상황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고 설득력이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알고 있는 백이 숙제는 과연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조작해 놓은 모습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주무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류였던 것 같다. 그러면 중국 역사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주무왕을 비난한 백이․숙제를 높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주무왕이 혹시 비난받을만한 사람은 아니었을까? 등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갔다.

  그러던 중 魯迅의 <故事新編>을 읽게 되었다. 제목 그대로 옛 이야기를 새로 펴낸 <고사신편>을 재미있게 읽어 내려가다 <采薇>편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또 한 번 백이.숙제를 만나게 되었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조롱 당하는 철없는 늙은이로 묘사되는 백이숙제를. 그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가졌던 의문점들에 대한 해답이 서서히 윤곽을 잡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충의와 절개로 대표되는 백이와 숙제라는 실체가 과연 있었을까? 백이와 숙제라는 아이콘만을 당시의 정치 상황과 작가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편리하게 이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글의 문제 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충의와 절개의 대명사로 알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리라 생각했었던 백이와 숙제가 왜 이렇게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인지? 이 글에서는 백이․숙제 고사의 계보학적 접근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려 한다.


2. <史記.伯夷列傳>과 <사기 이전 백이.숙제를 언급했던 자료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사기.백이열전>과 艾衲居士의 <豆棚閑話>, 그리고 魯迅의 <故事新編>을 기본 텍스트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인용되는 텍스트는 백이 숙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수록된 다양한 고전을 망라하게 될 것이다. 백이,숙제를 평가한 <論語>도 언급될 것이며, 周武王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 <사기.本紀>, 또 백이,숙제처럼 자신의 왕위까지 물려주려 했던 양보와 예의의 대가 宋 讓公 등 백이숙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다 이 논문의 범위에 들어가게 된다.
  우선 이 논문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사기 .백이열전>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백이와 숙제는 孤竹國 국왕의 두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아우 숙제를 다음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은 뒤 숙제는 왕위를 형 백이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백이는 “아버지의 명령이었다.”라고 말하면서 마침내 피해 가버렸고, 숙제도 왕위에 오르려 하지 않고 피해 가버렸다. 이에 나라 안의 사람들은 둘째 아들을 왕으로 옹립하였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西伯昌(文王)이 늙은이를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서 의지하고자 하였다. 가서 보니 서백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 武王이 시호를 文王이라고 추존한 뒤 아버지의 나무 위패를 수레에다 받들어 싣고 동쪽으로 은나라 紂王을 정벌하려 하고 있었다. 이에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간하기를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는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다니 이를 효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신하된 자로써 군주를 시해하려 하다니 이를 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무왕 좌우에 있던 시위자들이 그들의 목을 치려고 하였다. 이때 太公望이 “이들은 의인들이다”라고 하며, 그들을 보호하여 돌려보내주었다. 그후 무왕이 殷亂을 평정한 뒤, 천하는 周 왕실을 종주로 섬겼지만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지조를 지켜 주나라의 양식을 먹으려 하지 않고, 首陽山에 은거하여 고비를 꺾어 이것으로 배를 채웠다. 그들은 굶주려서 곧 죽으려고 하였을 때, 노래를 지었는데 그 가사는 이러하였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비나 꺾자꾸나.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바꾸었으니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神農, 虞, 夏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 버렸으니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아! 이제는 죽음뿐이로다.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마침내 이들은 수양산에서 굶어 죽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백이․숙제 고사는 바로 위에서 인용한 󰡔사기․백이열전󰡕을 그 기원으로 하고 있다. 사마천은 그의 <太史公自序>에서 열전을 지은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정의롭게 행동하고, 기개가 있어 남에게 억눌리지 않으며, 세상에 처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세운 사람들의 일들을 내용으로 70열전을 지었다.

  태사공은 각 방면에 걸쳐서 특출한 사람들과 그들의 사적을 생생히 묘사하여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후세에 전하려고 열전을 지은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과 의의를 갖는 70편 열전의 첫 편이 바로 「백이열전」인 것이다. 「백이열전」은 태사공의 감정과 세계관을 은유한 글인 동시에 70열전의 서문, 나아가 사기 130권 전체의 서문 격으로, 그가 다룬 수천 년간의 사적과 인물 중에서 좌절의 개인, 청렴한 성인 백이의 덕을 제시하며 태사공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한데 아우른 총화의 집약인 것이다.
  태사공은 「백이열전」을 지은 취지를 「태사공자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세상은 말세로 모두 이익을 다투던 그 때, 오로지 백이와 숙제만은 인의를 추구하여 서로 나라를 양보하고 나중에는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었으니, 천하가 이들의 미덕을 칭송하였다. 그래서 「백이열전」 제1을 지은 것이다.

  그리고 「백이열전」 끝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고 있다.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죽은 뒤에 자기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을까 걱정한다.”라고 하였고, 賈誼는 말하기를 “욕심 많은 사람은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烈士는 명분 때문에 목숨을 바치며, 권세를 과시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들은 자기의 생명에만 매달린다.”라고 하였다.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가 비추어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가 感應한다.” “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그것처럼 성인이 나타나면 이에 따라서 세상 만물의 모습이 모두 다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 백이와 숙제가 비록 현인이기는 하였지만 공자의 찬양을 얻고 나서부터 그들의 명성이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안연이 비록 학문에 독실하기는 하였지만, 공자의 명성으로 인해 그의 덕행이 더욱더 뚜렷해졌다. 巖穴에서 살아가는 은사들은 출세와 은퇴를 일정한 때를 보아서 한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명성이 파묻혀 버려서 칭양되지 않는다면 정말 비통하리라! 마을에 사는 평민으로 덕행을 연마하고 명성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공자와 같은) 靑雲之士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의 명성을 후세에 전할 수 있겠는가?“

  태사공은 성인이 나와서 선행을 쌓은 사람들의 이름이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고 하고, 마을에 사는 일반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려면 공자와 같은 성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백이․숙제는 비록 현인이긴 하였으나 공자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이름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사마천은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공자가 죽은지 500년이 지난 시기의 사마천이 다시 공자의 역할을 해서 이러한 인물들과 사건들에 생명을 주려는 것이다.
  文王은 유리(羑里)에 구속되어 󰡔周易󰡕을 썼고, 孔子는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五經을 정리하였으며, 굴원은 湘水에 추방되어 「離騷」를 지었다고 사마천은 자신의 글에서 밝히고 있다. 다시말해 司馬遷은 宮刑을 당하여 맺히고 쌓인 한을 󰡔사기󰡕에 붙이려 한 것이었다.
  「백이열전」은 위와 같은 뜻을 지니며 70 열전의 總序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19세기말 寧齋 李建昌(1852-1898)은 그의 「伯夷列傳批評」(󰡔明美堂集󰡕 卷4)이란 글에서 “제목에는 正提, 反題, 借題가 있는데, 이 「백이열전」이란 차제이고, 정제는 응당 「史記全部總序」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백이열전」은 사마천의 사상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문장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백이․숙제 고사는 바로 사마천의 사상이 짙게 배어 있는 「백이열전」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면 󰡔사기󰡕 이전의 백이․숙제 고사는 과연 어떠한 모습을 띠고 있었을까?
  우선 백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이는 곳은 󰡔書經󰡕이다. 「虞書․舜典」과 「周書․呂刑」에 보이며, 「순전」에서는 “天地人의 三禮를 관장하는 秩宗을 시키려 하였으나 夔와 龍에게 사양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여형」에는 “백이는 법을 펴 백성들을 법으로부터 보호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때의 백이는 禹임금, 그리고 稷과 함께 舜임금을 보좌한 사람이나, 左丘明의 󰡔國語․鄭語󰡕(권16)에는 “백이는 신에 대한 예에 능하여 堯임금을 보좌한 사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殷末周初를 대략 기원전 천백 년경으로 잡고, 순임금 시대는 이것보다 다시 천년을 더 올라가야 하는 시대이기에 요순 시대의 백이는 은말주초의 백이와는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
  이 외에 󰡔論語󰡕 「公冶長」, 「術而」, 「季氏」, 「微子」 등 네 편에도 백이․숙제에 관한 내용이 나오고 있다. 그 중 「술이」편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의 백이와 숙제는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공자 대답하기를 “옛날의 어진 사람들이었지.” 또 묻기를 “그 사람들이 나중에 가서 불평이라도 가졌습니까?” 공자 대답하기를 “그 사람들은 仁을 추구하여 인을 얻은 사람들인데 또 무슨 불평이 있었겠는가?”

  「백이열전」에서 밝힌 사마천의 말처럼 위의 문장을 보면 공자가 백이․숙제를 높이는 것을 알 수 있다.

  󰡔孟子󰡕에는 백이․숙제와 관련된 문장이 더 많이 나오는데, 「萬章」 하편 제1장에 “백이는 ...紂 때에 북해 해변에 살며 천하가 맑아지는 것을 기다렸다.”하며 명백히 “주왕 때”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맹자󰡕의 백이․숙제 관련 구절들 중 한 구절에서 약간 흥미로운 표현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맹자󰡕 「公孫丑」 장구 상 9에 나오는 문장이 그것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이는 제대로 된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아니하며, 제대로 된 벗이 아니면 벗삼지 아니하며, 나쁜 사람의 조정에는 서지 않으며, 나쁜 사람과는 말하지 아니하였다. 나쁜 사람의 조정에 서는 것과 나쁜 사람과 말하는 것을 마치 조정에서 입는 옷을 입고 조정에서 쓰는 갓을 쓰고서 진흙이나 숯에 앉아 있는 듯이 여겼으며,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마을 사람과 서 있을 때 그 갓이 바르지 못하면 휑하니 그 곳을 떠나서 마치 곧 더럽혀질 것처럼 생각하였다. 이 때문에 제후들 중에 비록 말을 잘 가다듬어서 찾아오는 자가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니, 받아들이지 아니한 것은 이 또한 (바르지 못한 제후의 조정에) 나아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이는 마음이 비좁고, 柳下惠는 공경스럽지 아니하니, 마음이 비좁거나 공경스럽지 아니한 것은 군자가 행하지 않는 것이다.”

  위의 문장 끝 부분을 보면 “백이는 마음이 비좁고”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여태껏 긍정적으로만 표현되던 백이 형상과는 약간 달라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는 󰡔맹자󰡕의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군주를 배에, 백성을 물에 비유하여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며 폭군에 대해서는 역성 혁명도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맹자󰡕이기에 폭군인 주를 치는데 반대한 백이를 꼭 높이려고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아직 가설단계로 󰡔맹자󰡕에 나오는 백이 관련 다른 문장들을 자세히 살펴 본 후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외에 󰡔韓詩外傳󰡕과 󰡔呂氏春秋󰡕, 󰡔莊子󰡕에도 백이․숙제에 대한 고사가 나오고 있다. 그 중 󰡔여씨춘추󰡕 권12 「季冬紀․誠廉」에 나온 내용을 일부 살펴보기로 하겠다.

  ... 이제 주나라는 은나라의 사악한 난리를 보고서 재빨리 이를 위하여 바로잡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시행하였지만, 權謀를 숭상하였고, 뇌물을 써서 회유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군대의 힘에 의지하여 위세를 유지하였다. 四內의 땅과 共頭山에 문서를 묻어두는 것에 근거하여 약속의 실행을 밝혔으며, 자신의 꿈 이야기를 널리 알려서 따르는 무리들을 신나게 만들었고, 죽이고 침으로써 이익을 구하였다. 이러한 일로써 은나라를 계승한다는 것은 어지러움으로써 포악함을 바꾸는 것이다. 내가 듣기로 옛날의 선비는 잘 다스려지는 세상을 만나서는 그가 맡을 수 있는 일을 피하지 않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서는 구차하게 생명을 부지하고 있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제 천하는 암울하여졌고 주나라의 덕은 쇠하였다. 주나라에 붙어서 내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이를 피하여 나의 행위를 깨끗하게 하는 편이 낫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북쪽으로 갔는데, 수양산 기슭에 이르러 그곳에서 굶어죽고 말았다. 사람의 실질에서 어떠한 것도 명분보다 더 중히 여길 것은 없고, 어떠한 것도 몸보다 더 가벼이 여길 것은 없다. 중히 여길 바가 있으면 이를 온전히 하고자 하고, 가벼이 여길 바가 있으면 이로써 중히 여기는 바를 기르는 데에 쓴다. 백이와 숙제, 이 두 사람은 모두 몸을 버리고 목숨을 버림으로써 그들의 의지를 세웠고, 가벼운 것과 중한 것이 먼저 결정된 사람들이다.
  
  󰡔여씨춘추󰡕에서도 백이․숙제에 대해 긍정적인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기․백이열전󰡕과는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여씨춘추󰡕에서는 “주나라가 은나라의 사악한 난리를 보고서 재빨리 이를 위하여 바로잡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시행하였지만, 權謀를 숭상하였고, 뇌물을 써서 회유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군대의 힘에 의지하여 위세를 유지하였기에” 백이․숙제가 주나라에 머무르지 않으려 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백이․숙제가 명분을 중시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은을 계승한 주나라가 제대로 정치를 못하는 것에 환멸을 느낀 백이․숙제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기․백이열전󰡕에서의 백이․숙제는 사악한 은나라를 치는 주무왕을 “신하가 군주를 친다”라는 명분에 어긋나기에 반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사악한 군주라도 신하된 입장에서는 역성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기󰡕 이전의 백이․숙제 고사는 기본적으로 백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는 있으나 그 관점이 약간씩 󰡔사기󰡕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한편 󰡔莊子․雜篇․讓王󰡕에도 󰡔여씨춘추󰡕에 나온 내용과 유사한 백이․숙제 고사가 실려있다. 󰡔장자󰡕라는 책의 성격상 백이․숙제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나올까 궁금하였는데, 의외로 백이․숙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를 진행시켜보아야 하겠지만 안동림 선생은 자신이 역주한 󰡔장자󰡕에서 절의와 청렴을 긍정하는 이 편이 위작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연구를 더 진행시키며 해결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또 晉나라 太康 2년(281)에 安釐王冢에서 나왔다는 竹書紀年에는 주왕 21년 백이․숙제가 주나라에 왔고, 그 다음 다음 해에 文王이 羑里에 감금되었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기󰡕 이전의 백이․숙제 고사는 대부분 그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사기󰡕와는 약간씩 다름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또 하나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까치사 간행 󰡔사기․열전󰡕하 「태사공자서」 부분 주 286)을 보면 백이에 대한 다른 견해가 나오고 있다.

  ... 일설에는 백이가 呂尙과 거의 같은 시대에 문왕 밑에서 벼슬을 하였는데, 두 사람은 은나라 정벌에 대해서 여상이 주전론자임에 반해서 백이는 자중론자로서 이를 반대하였다가, 무왕이 은나라에 대한 원정에서 성공을 거두자 백이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 수양산에 은둔하였다고도 한다.

  이 부분을 번역하신 정범진 선생이 어떤 텍스트에 근거해 이런 견해를 제시하였는지를 조사해 그 의미를 밝히는 것 역시 연구 과제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3. 󰡔豆棚閑話󰡕 제7칙 「首陽山叔齊變節」에 보이는 백이․숙제 고사
  이 논문의 두 번째 부분은 청초 艾衲居士가 지은 󰡔豆棚閑話󰡕에 수록된 「수양산숙제변절」이란 작품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두붕한화󰡕는 청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주로 1630년대와 1640년대의 혼란상을 다루고 있다. 󰡔두붕한화󰡕의 작가는 艾衲居士로 그가 누구인지 확실한 증거가 없어 단정하기 힘들긴 하지만, 명말에 태어나 청대에 활동한 문인 范希哲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두붕한화󰡕는 한 해의 봄과 가을 사이 콩 덩굴이 우거진 정자에서 더위를 식히는 한담으로 시작해 중간에 콩의 성장, 개화, 결실에서 콩이 시들기까지의 콩의 일생과 같이한다. 이러한 전체 구도하에 12개의 독립된 이야기가 펼쳐지는 특이한 구조로 인해 중국 소설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두붕한화󰡕의 경우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를 완전히 뒤집고 있다. 특히 일곱 번째 이야기인 「수양산숙제변절」의 경우 앞에서 살핀 것처럼 충의와 절개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는 숙제가 변절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독자들에게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숙제는 백이를 따라 수양산에 들어온다. 백이는 고사리를 뜯어먹고 지내도 배고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나 숙제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굶주림에 지쳐 백이를 따라 산 속에 들어온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숙제는 기회를 봐서 혼자 하산하기로 결심한다. 이 때 백이도 이미 몹시 굶주려있던 상태라 숙제를 막지 않았다.
    숙제가 산을 떠나려 할 때 동물들이 그를 가로막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숙제는 자신들을 믿고 따르던 산 속의 동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백이는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나는 나의 일을 하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산에서 얼마동안 머물렀던 것이 후회스럽다. 너희 동물들은 사람과는 다르며 또 우리하고도 관계가 없다. 하늘이 너희들을 내놓으셨으니, 너희들은 잔인하고 독하게 짐승의 피를 마시고, 짐승의 털도 뽑지 않고 잡아먹으며, 사람 잡아먹는 일도 거리낌없이 하여야 한다.
  이 왕조가 바뀌는 때 세상 사람들의 이전 묵은 원한을 깨끗이 없앨 수 없어 너희들 발톱과 이로 잡아먹는 위세를 빌려 이 천지를 놀라게 할 세력을 펼치려 한다. ... 말은 성현같으나 마음은 도적과 같으며, 반은 깨어나 있고, 반은 취해 있으며, 반은 꿈꾸는 듯하고, 반은 어리석은 듯하다. 어찌 모두 여기에서 배 곪는 소리를 참고 이 힘든 생활을 견디고 있느냐?”
  동물들은 백이․숙제 형제에 감동 받아 충직한 충신이 되었었고 살아있는 동물을 잡아먹는 일을 중단했었다. 숙제는 동물들에게 고매한 은둔자를 흉내내고 생물을 잡아먹는 본성까지 버린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설득한다. 周나라에 봉사하기로 결심한 숙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와 사람이 밀집한 곳에 이르렀다. 그곳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각 집 문 앞에는 香花燈燭이 걸려있었고, 집 문위에 ‘順民’이라는 두 글자를 쓴 쪽지가 붙여져 있었다. 길가는 행인은 낙타를 타고 가는 사람, 작은 가마를 타고 가는 사람,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 할 것 없이 다들 의기양양해 있었는데 그들은 새로운 천자를 알현하러 西京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추천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거리가 분주하였다.
  숙제도 주왕조에 관직을 구하기 위해 나섰지만 마음 한 편은 편치가 않았다. 그는 하룻밤 객점에서 머물면서 꿈속에서도 갈등으로 시달린다.
  여비를 위해 도성 부근의 옛 친구를 찾아가는 길에 먹구름이 일어나 잠시 뒤에 세상이 온통 어두워진다. 천둥이 치고 광풍이 몰려온다. 숙제는 피하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일단의 군인들의 위협을 받는다. 그들은 검은 무기와 검은 깃발을 들었다. 검은 얼굴에 검은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심하게 손발 등이 잘려 있었는데 숙제는 그들이 은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사들은 숙제를 충성심과 효심이 부족하다며 배신자라고 욕을 한다. 숙제의 설득으로 본성을 되찾은 동물들은 숙제를 옹호하면서 동물들과 은나라의 유령 병사들과의 말다툼이 시작된다.
  동물들은 숙제를 옹호하고 유령 병사들은 숙제를 비난하며 서로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齊物主가 나서 숙제를 옹호한다.
  “중생들이 보기에는 천하를 얻는데 은나라니 주나라니 하는 구분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 번 흥하고, 한 번 망하는 것으로 사람이 낳는 아들과 같아 무슨 구별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봄과 여름의 꽃이 시들면 가을, 겨울의 꽃이 피어야 하는 것이다. 절기를 따르기만 하면 하늘의 법률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만약 어리석은 백성들의 의견에 따른다면 새 세상을 열 때 꼭 은나라여야만 한단 말인가? 은나라의 뒤에 주나라가 있어서는 안된다면 은나라 이전에도 夏나라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인가? 너희들은 天時를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뜻을 품고 여기저기서 봉기하고 군대를 일으키는데 이는 오히려 나라와 임금에 도움이 안되고 생명만 해칠 뿐이다.”
  왕조의 흥망성쇠는 자연스런 과정이며, 생사나 계절 같은 시간의 기능일 뿐이며 ‘왕조는 꼭 은나라여야만 하는가?’ 라는 제물주의 설명에 유령 병사들은 수긍한다. 고함 소리가 나고 완고한 저항자들과 호랑이와 표범이 도망친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먹구름과 안개가 황금빛 구름으로 바뀌면서 멀리 사라지고 땅은 수천 송이의 푸른색 연꽃들로 뒤덮였고 활짝 피어나는 듯했다.
  숙제가 일어서는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숙제는 이제 자신이 산을 내려오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周나라에 봉사하여 공명을 얻은 뒤에 서산에 가서 형의 유골을 거두어도 늦지 않으리라 확신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수양산숙제변절」을 보면 우리는 작품 속에서 숙제의 변절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의 경우 대부분의 중국 학자들은 明末의 遺臣들이 청조에서 벼슬자리를 얻어 호의호식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내용에 보이듯이 이 작품은 명나라를 섬기던 遺臣들이 청조에 入仕를 해야될지 말아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다 결국 청조에 가담하는 것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주장을 펴는 중국 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고 그 주장을 실제 작품의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반박하게 될 것이다. 또 명말의 유신이 어떤 계기로 청조에 입사하게 되는 지도 당시 사회․정치적 상황의 고찰을 통하여 밝혀볼 생각이다. 이를 통해 「수양산숙제변절」이란 작품이 어떠한 맥락 하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보여줄 생각이다.
  

4. 󰡔故事新編․采薇󰡕에 나오는 백이․숙제 고사

  魯迅(1881-1936)의 󰡔故事新編󰡕은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옛 이야기(故事)’를 ‘다시 펴낸(新編)’ 것이다. 󰡔고사신편󰡕은 중국의 신화 속에 나오는 영웅들과 성현들에 대하여 새로운 관찰과 해석을 가한 작품이다. 그들을 신성한 높은 누대에서 우리들의 일상 생활 속으로 끌어내려 영웅중의와 낭만주의적인 신비로운 광채를 제거해 버리고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환원시켜 놓고 있다. 그들의 본래 모습이 안고 있는 모순, 성공과 실패, 환희와 고통을 파헤쳐 독자에게 드러내 보여줌과 동시에 노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깊은 절망을 암암리에 토로하고 있다.
  󰡔고사신편󰡕에는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그 중 5편은 노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던 최후에 쓰여진 것이다.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었고, 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었으며, 심신이 병들어 있는 그러한 가운데 쓰여진 작품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용하고 여유로우며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이 작품에서 노신은 위선과 가식에 찬 지식인, 학자, 관료, 배반자, 보수주의자들을 비꼬고 있다. 그 중 다섯 번째 이야기인 「채미(고사리 캐기)」가 바로 백이․숙제의 이야기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양로원에 들어가 있던 백이와 숙제는 구운 떡이 날로 작아지는 걸 보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 주무왕이 폭군 紂를 치러 가자 백이와 숙제는 “아비가 죽어 장사를 치르기도 전에 군사를 일으키면 이를 효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려 하면 이를 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며 막아선다. 이에 무장들이 그들을 치려 하자 강태공이 “의로운 사람이로다. 그들을 풀어주라.”고 한다. 이에 네 사람의 병사가 공손하게 백이와 숙제에게 예를 갖춘 후 두 사람이 한 명씩 겨드랑이를 끼고 그들을 길가로 데리고 나간다. 무사들은 다시 공손하게 차려 자세를 취하고는, 손을 뻗어 두 사람의 등을 힘껏 밀어버린다. 두 사람은 땅에 고꾸라지고, 그 와중에 백이는 머리를 돌에 부딪치는 바람에 그대로 기절을 한다. 그 뒤 주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이 둘은 주나라의 떡은 먹지도 않겠다며 양로원을 떠나게 된다. 이들은 華山으로 향하던 중 도적 小窮奇에게 몸 뒤짐을 당하는 등 곤욕을 치른 후 겁이 나 수양산으로 방향을 바꾼다.
  수양산은 그리 높지도 않고 큰 숲도 없어 호랑이나 도적 걱정도 없는 이상적인 은둔처였다. 그러나 수양산 바로 아래에 수양촌이 있어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면서 야생 열매를 다 따먹어 먹을만한 것이 전혀 눈에 뜨이지 않았다. 고생 끝에 고사리를 발견하게 되고 이를 주식으로 삼게 된다. 그러나 고사리도 둘이 먹다 보니 어느덧 다 바닥이 나 버렸다. 그러던 중 그곳에 동네 사람들이 놀러오게 되고, 주책 맞은 백이는 자기들이 고죽군의 아들이며, 자신이 큰아들, 다른 쪽이 셋째 아들이라는 사실을 말해버렸다. 그리고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 나라를 떠난 이야기며 주나라 음식을 안먹으려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까지 다하게 되었다.
  숙제가 이를 알게 되어 형의 수다를 괴이쩍게 여기고 원망하기 시작하였을 무렵에는 이미 소문이 쫙 퍼져 만회할 수가 없게 된 상태였다. 그러나 감히 형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만 마음속으로, ‘아버지가 왕위를 형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던 것은 확실히 아버지가 사람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로구나’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숙제의 걱정대로 그들을 구경하러 마을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심한 경우에는 그들이 고사리 캐는 것을 구경하는가 하면, 빙 에워싸고 먹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서 한 줌의 고사리를 찾아내는 데도 많은 힘을 들여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구운 고사리를 먹고 있는데 부잣집 하녀로 보이는 여자가 와서 왜 그렇게 변변찮은 걸 먹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때 백이가 “우리는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으니까....”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숙제는 급히 눈짓을 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매우 영리한 듯 벌써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냉소를 짓더니 이내 정의롭고도 늠름하게 잘라 말했다. “무릇 하늘 아래 임금의 땅 아닌 곳이 어디 있어요. 당신들이 먹고 있는 고사리는 우리 성상폐하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요?” 백이와 숙제는 똑똑히 들었다. 마지막 말에 가서는 청천벽력에 얻어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에 그들은 고사리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백이와 숙제는 바위 동굴 속에서 굶어 죽었다.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주려 하였지만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글을 아는 小丙君은 “그들은 내가 비문을 써줄 정도의 인물도 되지 못해.”하며 거부하였다.
  가끔 그들의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는 일이 있었는데, 어떤 자는 늙어서, 어떤 자는 병들어 죽었다고 하고, 또 다른 자는 양털 장옷을 노리고 강도들이 살해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얼마큼 시간이 흐르자 일부러 굶어죽었으리라고 말하는 자가 있었다. 그 사나이는 소병군의 집 하녀 阿金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열흘쯤 전 그녀가 산으로 올라가서 그들을 놀려주었는데 바보들은 화를 잘내기에 자신의 말을 듣고 역정을 내 먹는 걸 끊어버린 것일 게라는 이야기였다.
  아금의 말로는 백이와 숙제가 죽은 것은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산에 올라가 그들을 약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농담일 뿐이었다고 한다. 그 두 바보가 자신의 말을 듣고 화를 내고, 그래서 굶어죽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로 인해 하느님이 그들에게 암사슴을 내려 젖을 빨게 하였다고 말했다. 앉아서 매일 사슴 젖이 저절로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숙제가 사슴의 젖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잡아먹으면 맛있겠다.’고 생각하고 슬그머니 돌을 집으려고 팔을 뻗치자 사슴이 이를 알고 도망쳤고, 하느님도 그들의 탐욕에 화가 나셔서 다시는 암사슴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얘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가끔 백이와 숙제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마치 꿈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그들이 바위 밑에 쭈그리고 앉아 흰 수염이 난 입을 쩍 벌리고, 지금 막 사슴의 고기를 물어뜯으려 하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위에서 간단하게 내용을 언급하였는데,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백이와 숙제를 위의 내용보다 훨씬 더 조롱하고 있다. 그들을 조롱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우선 백이와 숙제가 양로원에 있는 노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2) 백이․숙제를 떡 크기가 작아지고, 밀가루가 거칠어진다고 투덜대는, 먹을 것에만 신경쓰며 불평하는 양로원 노인네들로 묘사하고 있다.
  3) 백이와 숙제가 앞으로 뛰어 나가 주왕의 행차를 막자, “길가의 사람들도, 행차를 모신 무장들도 모두 어리둥절해 할뿐이었다.”. 그리고 강태공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긴 하나 떠밀려 숙제는 얼굴을 흙투성이로 만들고, 백이는 머리를 돌에 부딪쳐 정신을 잃고 만다.
  4) 이렇게 정신을 잃은 백이를 구하러 오는 데도 시간이 무척 걸리고, 그나마 구하러 온 사람도 비틀거리는 노인네 둘이다. 판자 위에 짚이 깔려 있는데 이것은 옛날부터 문왕이 정한 경로의 격식이라고 하면서 아주 조롱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생강탕을 갖고 오는 여인 역시 자기네 집에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 마시라고 강권을 하는 등 온통 조롱 투성이다.
  5) 관청의 문건을 읽을 때 숙제는 “‘그 조상의 제사를 버리고, 그 집과 나라를 버리고...’하는 대목에서는 자신과 결부시켜 해석하며 감상에 젖는 것 같았다”라고 하며 백이․숙제란 노인네가 옛날 감상에만 빠져 있는 시대 착오적 늙은이란 것을 강조하고 있다.
  6) “다음날 두 사람은 여느 날보다도 일찍 일어났다. 옷을 입자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사실 지닐 만한 것도 없었지만- 지팡이와 먹다 남은 구운 떡을 들고 양털 장옷을 걸친 채 산책 나간다는 핑계로 양로원 바깥문을 훌쩍 빠져 나왔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 그들은 몇 번이고 뒤돌아보았다.”라고 하고 있다. 주나라 왕조의 것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것이지만 실은 그들은 가진 것도 없었고, 아쉬워 뒤를 몇 번이고 돌아보았지만 그들이 떠나는 것을 신경 쓰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7) 강도를 만나는 상황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백이 숙제를 조롱해대고 있다. 이로 인해 백이․숙제는 애초 가려고 마음먹었던 화산으로 가지 못하고 수양산으로 향하게 된다. 다시 말해 수양산으로 들어간 것도 애초에 자신들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들어간 것임을 드러내려는 것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8) 노신은 수양산에 들어온 뒤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하는 두 사람의 한심한 상황을 그리며 조롱해대고 있다.
  9) “백이는 숙제보다 두 번을 더 집어먹었다. 그가 형이기 때문이다.” 장유유서로 대표되는 중국의 전통에 대한 신랄한 조롱으로 여겨지는 부분이다. 「채미」에서는 숙제보다 백이가 훨씬 더 무능하고 한심하게 그려지고 있다.
  10) 이렇게 처음부터 계속 조롱해오다가 끝에 마지막 펀치를 날리게 되는데, 어느 부잣집 하녀인 듯한 여자가 그들이 고사리로 끼니를 때우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묻게 되고, 그들이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그 여자는 “이 천하의 땅 중 황제의 땅이 아닌 곳이 어디 있냐”는 반격을 하고, 이말을 들은 백이․숙제는 결국 충격을 받고 굶어죽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상황들을 보면서 왜 이렇게 백이와 숙제를 철저하게 조롱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아무래도 구시대의 악습을 타파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던 노신에게 있어 ‘不事二君’이라는 교조적인 말에 헌신하는 백이․숙제의 모습이 그야말로 꼴보기 싫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싶다. 이 논문에서는 노신 당시의 상황과 노신의 성향 등을 고찰하여 백이와 숙제의 형상이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 더 연구를 진행시킬 것이다.


5. 나오며
  이 논문의 제목은 「계보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백이․숙제 고사 연구」 이다. 계보학적 분석은 여러 가지 점에서 전통적인 역사의 분석틀과 다르다. 전통적 혹은 전체적 역사는 사건을 거대한 설명체계와 단선적인 과정 속에 해소시켜 큰 계기와 영웅을 찬양함과 아울러 시원점을 확립하고자 한다. 이에 비하여 계보학적 분석은 사건들의 단일성을 강조하고 중요시되어 왔던 사건에서 눈을 돌려 경시되어 오고 무시되어 왔으며, 일정 역사를 통해 부정되어 왔던 모든 현상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계보학은 얼마의 참된 인식의 이름으로 어떤 인식을 배척하고 인식들 사이를 위계 지우는 통일이론에 반대하고, 국소적이고 불연속적이며 부적격한 지식이라고 간주되어 왔던 것에 초점을 둔다. 그것은 어떤 사건과 역사 형식의 가변성 뒤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어떠한 불변적인 것도, 어떠한 본질도, 그리고 과거를 구성했으면서도 지금도 여전히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어떠한 연속적인 형식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계보학적 고찰 방식이다.
  이 논문은 바로 이러한 계보학적 측면에서 충의와 절개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백이와 숙제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다. 백이․숙제라는 코드는 이 코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다. 정권의 안정과 충성을 추구하는 쪽에서는 충의와 절개를 강조하고, 자신의 입장을 변명해야 할 경우에도 적당히 이용되며, 또 백이와 숙제로 상징되는 위선과 가식을 철저하게 조롱하는 도구로도 사용되어지는 것이다.
  자료의 양이 너무 많고, 또 이 자료들을 서로 비교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분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소논문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긴 하겠지만, 이러한 자료들의 비교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확고부동한 진실로 알고 있던 것들이 각자의 위치나 입장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가를 이 글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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