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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0년전 ‘지하궁전’ 열까 말까

2006년 8월 4일 (금)  14:46   한겨레


1300년전 ‘지하궁전’ 열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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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커버스토리/중국 측천무후 무덤 발굴  논란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인 무측천(측천무후. 625~705)은 그의 남편인 당 고종 이치와 함께 첸링(건릉)에 합장돼 있다. 중국 산서(섬서)성 시안에서 76㎞ 떨어진 첸현 량산에 자리잡고 있는 첸링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두 황제가 함께 잠들어 있는 무덤이자, 당나라 황릉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문헌 자료나 주변 정밀조사 결과 첸링은 지금까지 한번도 도굴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측천이 첸링에 묻힐 당시는 당나라 최고의 전성기였기 때문에 지하궁전 내부에는 당대의 수많은 진귀한 문물이 보존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고고학계에서 첸링은 일종의 성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 옛 무덤의 문이 열릴 경우 “당나라의 진면목”이 1300년의 시공을 가로질러 현대에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무덤의 주인이 문무를 겸비한 데다 합리적이고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 당대의 기틀을 잡았던 ‘철의 여제’ 무측천이기 때문에, 고고학계든 일반인이든 이 무덤을 발굴할 경우 그의 주검을 직접 볼 수 있다는 호기심 또한 팽배해 있다.










그럼에도 이 옛 무덤의 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50년이나 이어져왔다. 최근 <청두일보>가 “무측천릉 발굴 유망”이란 기사를 내보낸 뒤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선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이번 찬반 논쟁의 불씨는 지난달 2일 산시성 시안에서 열린 ‘무측천 건릉 매장 1300돌 기념 학술 좌담회’에서 지펴졌다. 산시성 고고연구소 명예회장 겸 당제왕릉연구실 주임인 스싱방은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첸링을 지금 발굴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첸링은 무측천·고종의 주검과 더불어 각종 금·은 기물과 도자기·목기·섬유 등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이 잠들어 있는 세계적 지하 박물관”이라며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발굴 이후 유물들을 충분히 잘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존 조처에 관한 대안으로 지하궁전과 환경이 완전히 같은 표본실을 만들어 문물을 충분히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첸링이 기대고 있는 량산이 카스트 지형에 속해 지표수가 쉽게 땅밑으로 스며들어 묘실 환경이 나빠지고 있고, 지진 등 자연재해를 만난다면 더욱 심각한 훼손을 당할 것”이라며 “보존을 위한 발굴”을 주장했다.


1970~1980년대에도 줄곧 첸링 발굴을 주장해온 원로 고고학자인 스싱방은 “발굴하지 않고 두는 게 문물의 보호와 같은 건 아니다”라며 “땅밑에서도 문물은 계속 훼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87년 파원쓰(법문사) 지하궁 발굴에도 참여했던 그는 “발굴 당시 지하궁 내부의 종이 문서와 서적은 모두 썩었고, 대부분의 비단 또한 이미 거의 썩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첸링을 발굴할 경우 전성기 당나라 때의 화려한 문물을 드러낼 수 있어 중화문화를 크게 떨칠 것이며 중국 국민의 자신감과 창조력을 고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을 간추리자면 △오늘날 과학기술은 발굴 문물을 원래 상태로 충분히 보존할 수 있고 △땅밑에서도 훼손이 진행되므로 빨리 발굴하는 게 보존에 더 나을 수 있으며 △문물 발굴을 통해 중화문화의 찬란함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중앙정부와 고고학계의 주류 의견은 여전히 발굴 반대론을 견지하고 있다. 스싱방의 주장을 근거로 현지 매체들이 “무측천릉 발굴 유망”이란 기사를 내보낸 뒤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의가 들끓자 량구이린 첸링박물관 부관장은 지난달 4일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이번에 나온 것은 일부 전문가의 건의일 뿐 현재로선 전혀 발굴계획이 없다”며 “첸링 발굴에 대해서는 중앙정부든 고고학계든 당장은 발굴하지 않는다는 게 주류 의견”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진시황 병마 검게 산화 침식


이날 좌담회에서 발굴 반대론자인 쑤바이 베이징대학 교수(고고학)는 “세계 고고학계의 보편적인 시각은 관련 과학기술이 아직 충분하지 않을 경우 발굴보다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1000년 이상 유지되어온 땅밑의 좁은 환경이 발굴 이후의 인공보존 환경보다 더 안정적”이라고 주장했다.


옌원밍 전 베이징대학 역사학계 주임이자 중국고고학회 부회장은 더욱 강경한 말투로 반대론을 폈다. “문물 보존을 위한 기술문제가 오늘날 해결됐는가? 진시황 병마용의 색채가 지금 도대체 어떻게 변했나! 파원쓰(법문사)의 지하궁에서 발굴한 비단은 지금 모두 어떻게 변했는지 한번 가서 보라!” 그는 또 “현재 중국은 싼샤댐 건설 난수이베이댜오(남수북조. 남쪽 양쯔강의 물을 북쪽으로 끌어 쓰는 계획) 공정 등 대규모 건설의 시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훼손당할 수 있는 문물에 대해 ‘구조를 위한 발굴’을 진행하는 게 급선무”라며 “당나라 시기는 남아 있는 문헌이 충분하기 때문에 반드시 첸링을 발굴해야만 역사 연구가 가능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150만 관광객이 주 오염원


지금까지 주요 발굴사업이 되레 적지 않은 고고학 정보를 손상시켰다는 게 첸링 발굴 반대론의 가장 중요한 논지다. 특히 비단, 서적, 그림 등은 외부 공기를 접하자마자 산화되거나 선명한 색채를 잃어버려 적지 않은 유물을 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1972~1974년 발굴된 후난성 창사 마왕뚜이 한나라 때 무덤과 진시황 병마용 발굴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창사 마왕뚜이 한나라 무덤 안에서는 3000여가지의 진귀한 문물과 비단에 쓰여진 <주역> <노자> <손빈병법> 등 지금까지의 판본과 다르거나 전해지지 않았던 많은 서적이 쏟아져 나와 고대 중국의 문화·사상 연구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비단과 종이 등 적지 않은 문물이 공기를 쬐면서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발굴된 칠기 안에 남아 있던 2100년 전 연뿌리 등 식물의 흔적은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의 세례를 받아 오늘날엔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버렸다.


진사황 병마용의 경우도 발굴 이후 심각한 훼손을 당했다. 발굴 당시 병마용은 선명한 색채를 자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산화해 검게 퇴색했다. 고고학 전문가들은 산화와 퇴색만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니라 세균에 의한 대규모 침식도 진행중이라고 우려한다. 가장 심각한 ‘오염원’은 매년 15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들이다. 차오쥔지 중국과학원 연구원은 “만약 지금 당장 확고한 보호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100년 뒤 병마용은 심각하게 부식해 탄광과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첸링 발굴을 둘러싼 논쟁은 멀리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겨울 농민들이 우연히 첸링의 석실 입구를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1960년 2월 산시성에는 ‘첸링 발굴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해 5월 첸링 석실 입구의 통로 섬돌이 모두 드러났다. 발굴팀이 첸링에 막 들어가려 할 때 저우언라이 총리는 “우리 시대에 좋은 일을 모두 완성할 수는 없다”며 “이 일은 후대인들이 완성하도록 남겨두기로 하자”며 발굴 계획을 부결시켰다.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3년에는 당시 고고·역사학계 최고의 권위자이던 궈모뤄(곽말약)가 다시 첸링 발굴을 건의했다. 당시 발굴 계획이 구체화하는 듯했으나, 저우 총리는 “적어도 10년 동안은 이 무덤을 열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발굴계획을 뒤집어 원점으로 되돌리고 말았다. 궈는 “지하궁 다시 여는 날 기대했더니/ 계획 뒤집고 늦추기가 꼬리를 무네”라는 시를 지어 실망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홍위병이 유뮬 파괴할까 미뤄둬


저우 총리가 왜 이렇게 첸링 발굴에 신중을 거듭했는지는 그가 스스로 고백한 바 없기 때문에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저우가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의 ‘만행’을 보며 문물 보호에 더 신중을 기했다고 추측한다. 1957년 무덤의 문이 열린 명나라 만력황제의 정릉이 대표적이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터졌을 때 홍위병들은 “지주계급의 우두머리 만력을 타도하자”는 황당한 구호 아래 문물 창고에 보존돼 있던 만력황제와 황후의 유골을 꺼내어 정릉박물관 앞 광장에서 ‘비판투쟁’을 벌인 뒤 10여명의 홍위병 대장들이 큰 바위로 쳐서 유골을 부수고 불을 질렀다. 저우 총리는 산둥성 취푸 공자의 사당에 ‘비판투쟁’을 하러 내려간 탄허우란의 홍위병 부대에게도 문물을 파괴하지 말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로 미뤄볼 때 저우 총리의 신중론은 극좌노선이 주도하던 당시 사회에서 ‘봉건시대’의 문물을 ‘비판투쟁’에서 보호하기 위한 고심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저우 총리의 시대에 비하면 오늘날 ‘유물에 대한 비판투쟁’의 우려는 사라졌지만, 그의 신중론은 여전히 당국과 고고학계에 영향을 드리우고 있다. 오랜 논쟁을 겪은 첸링은 중국 고고학계에서 최선의 유물 보존방식을 모색하는 시금석으로 떠오르고 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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