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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산(高麗山)의 전설 -KaoLi Shan 1






요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듯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우리의 사극 열풍을 보며...특히 연개소문을 보면 15년전 본  20부작 비디오시리즈 <대운하>가 생각난다.

장삼랑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규염객 연개소문 주연 연개소문을 사랑하는 난능공주 조연 그리고 규염객을 연모하는 순정의 상아(아마 드라마 연개소문의 꽃분이인 보희 역할정도라 생각된다), 대운하를 건설하는 양광 수양제의 즉위과정의 긴박감과 궁중의 권력암투 여기에 연개소문 규염객과 당대 최고의 무인집단 와강채의 무인들의 활약 그리고 수양제를 두려워한 당태종 이세민의 아버지 이연(산서성 태원성주) 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책을 써서 수양제를 무서워하는 아버지 이연으로 하여금 혁명에 발을 담그도록 치밀하게 거사시키게 하는 대담함.



한편 태자인 형 양용을 목졸라 죽인뒤 자살한듯이 꾸미고(우리의 드라마 연개소문은 양광의 계책으로 태자 스스로 무너지게 처리했지만 이게 진실이다) 아버지마저 목졸라 죽이고 제위에 오른 동생 수양제 양광의 가렴주구. 그리고 수양제의  여동생 난능공주의 사랑을 받는 연개소문 규염객과-장삼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울러 밝혀지고 있다- 수양제 시절 최고의 무인집단이었던 와강채에서 성장한 무인집단중에서 당태종 이세민에 의해 병조판서를 지낸 이정 그리고 야사에서 전하는 이정가문과 연개소문 규염객과의 밀접한 관계.....규염객과 당태종 이세민의 제위를 둘러싼 각축전이 긴박하게 그려진 무협드라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환경 작가는 드라마 <연개소문>을 진천의 김서현공 즉, 김유신 집안에서 노비로 자란 것으로 그려 화랑신분으로 신분전환을 한 뒤 김유신 여동생 보희와 사랑에 빠진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이는 사료의 한토막을 설정해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극화한 픽션이다.(일본 고바야시 주장)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연개소문이 중원 대륙으로 건너가 수양제 치하에 당태종 이세민과 수양제의 여동생 난능공주와의 러브스토리가 그려졌을 개연성이 있다.

규염객 연개소문을 둘러싼 역사... 원래 규는 용뿔 없을 규로 잠룡을 의미하고 염은 터럭 염 수염염자로 규염객 장삼랑은 털보로 그려내고 있다. 대하 드라마 "대운하" 시리즈는 당태종이 한발 앞서 장안성을 접수하자 규염객 장삼랑은 난능공주와 함께 대륙을 포기하는 것이 천운임을 알고 서역으로 가는 것으로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서역이 고구려임을 암시하는 화면을 처리하여 연개소문이 고구려에서 당태종과 재회할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백암 박은식은 실재 이 부분에 대해 다음 안원전의 21세기 담론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안원전)

".....고바야시에 의하면 일본의 제 40대 왕인 천무와(673-686 재위) 제42대 문무(697-707)는 <일본서기>,<속 일본기> 등엔 할아버지와 손자사이로 나오지만 실은 부자간이라 한다. 천무의 젊은 시절과 함께 연개소문의 젊은 시절 역시 전혀 알려진 바 없다.

수양제의 대운하 건설과 당태종의 혁명을 배경으로 깔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수양제의 여동생 난능 공주와 당대 최고의 영웅 규염객( 髥客) 장 삼랑(연개소문의 젊은 시절)의 사랑과 야망을 그린 "대운하"라는 20 여 개 비디오 시리즈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연개소문의 실체는 베일에 가려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중부지방의 고전소설 <갓쉰동전>의 주인공을 연개소문이라 보았는데 연개소문의 별명은 개금이며 개금은 갓쉰이란 우리말을 이두 체로 표기한 것으로 연개소문은 '김해'로도 불렸다고 한다.

또한 그는 뛰어난 병법가로 그가 지은 '김해병서'라는 책자는 고려 때까지 역대 왕이 절도사에게 하사한 유명한 병법서라 한다.

역시 전략에 탁월한 천무의 즉위 전 이름은 대해인이었는데 그의 아내 지통 천황은 가야 계 도래인 김 정흥의 후손으로 천무 자신도 가야 김씨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고바야시는 연개소문이 일찍이 부모의 슬하를 떠나 고생할 때 김유신의 누이동생 보희와 관계를 맺어 낳은 첫 아이가 법민이고 보희가 밴 아이를 문희의 아이처럼 꾸며 김춘추의 아들로 입적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국내의 민족사학자들과 견해는 다르지만 실로 흥미 있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단재는 <독사신론(讀史新論)>에서 규염객과 관련한 연개소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배경부터 간단히 설명하고 이에 대한 본론을 설명하기로 한다.

즉, 김부식의 <삼국사>를 보자매 연개소문(泉蓋蘇文)은 사대주의 유가 사학자 김부식에 의해 구구절절 흉인이니 역적이니 하면서 저주하고 욕하는 글귀뿐인데, 이는 본시 당 태종 이 세민이 고구려를 치자매 원수인 연개소문을 매도(罵倒)하고자 티끌 하나라도 씻어내 흉허물을 찾아내기 위해 돋보기를 들이대고 눈을 흘금거리며, 전혀 있지도 않는 사실을 취하여 가공의 사건을 짓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백암 박 은식 선생은 "천개소문은 또한 연개소문이니 구레나룻의 길이가 3척인 고로 당나라 사람이 일러 구레나룻 털보 규염객( 髥客)이라 하였다.*용뿔없을 규

중국인이 만든 비디오 "대운하"에서는 규염객이 난능공주와 함께 장안성을 이 세민에게 양보하고 서역으로 가는 것으로 처리되어 나오는데 백암의 「천개소문전」<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刊 21∼24쪽>에서는 다음과 같이 역사 사실 그대로 고구려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는 이 둘의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목하 수나라 왕실이 크게 어지러워 수륙 백 만 대병이 우리 선민 을지문덕에게 대패하여 돌아간 이후 사방에 원성이 높고 반란이 일어나니 만민이 도탄에 허덕인다. 초야에 여러 영웅이 때를 타서 각축하여 중국대륙의 주인자리가 아직 비어있는 오늘이다.

개소문은 해동천지에 제 2의 항우라. 개소문이 중원대륙에 이르러 대 당나라 3백년 황통의 창업주 될 이세민(李世民)을 접견하니 그를 과연 어떻게 보았는가. 용과 봉황의 모습과 태양의 표(表)로 제세안민(濟世安民)의 재(才)가 있다 함은 이인의 예언이 참으로 거짓이 아니요, 하늘이 내린 것이다. 사람의 힘이 아닌 것은 과연 상제의 간명(簡命)이 스스로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아래의 문무막료를 보니 이정(李靖:당태종의 병조판서), 방현령(房玄齡:당태종의 명재상) 등이 모두 한 때 장상의 재(才)인 즉 인심이 돌아갔음을 가히 볼 수 있다.

이는 곧 초패왕 시대에 한(漢) 태조가 때를 타고 나타난 것이다.  천명과 인심을 살피는 게 사람 힘으로 불가한 즉 부득불 중원 땅을 그 사람(이세민)에게 양여할 뿐이다.

또 조국을 떠나 여기에 온 것은 중원대륙의 주권자 한 자리를 희망한 바이거니와 "이를 얻지 못할 경우 다른 나라의 신하나 되어 조국을 배반하는 것이 또 어찌 남자의 할 일이리오," 하고 돌아갈 뜻을 정하자,

이 세민은 개소문의 사람됨을 보아 큰 일을 함께 하고 큰복을 함께 누리자고 권유하여 머무르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개소문은 발을 돌려 동쪽으로 돌아가니 이 세민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이르기를 "그 사람이 만약 나라 밖에 있으면, 우리 중국인이 안전을 얻지 못하리라." 하고 급히 기마병 수 십 명을 보내었다. 이들이 밤새 달려 황하안(黃河岸)에서 따라잡아 소리쳐 이르기를

"고구려 대인 천개소문 공은 잠깐 와서 우리의 얘기를 들으시오." 라 하거늘 개소문이 긴칼을 뽑아들고 노한 눈빛으로 크게 꾸짖으니 뒤쫓아 온 기병들이 간담이 서늘하여 얼른 말에서 내려 엎드려 절하거늘 개소문이 크게 웃으며 "너희 주인이 나를 다시 보려 하는가? 30년 뒤 요동성 아래에서 서로 만날 날이 있을테니 하필 오늘이리오. 너희들은 돌아가 그렇게 아뢰어라."

백암은 김유신과 설인귀 그리고 개소문에 대한 인물평과 개소문에 대한 시속의 악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잘라 말한다.

즉, 김유신은 국가주의를 견지한 자이고 설인귀는 동족을 버리고 당에 들어가 관록을 먹은 개인주의자라는 것이다.

김유신은 우리나라 땅이 좁고 군사가 적어 마땅히 큰 나라의 원조를 얻으리라 했으며, 설인귀는 구구한 조그마한 나라에서 나고 죽는 것 보다 혁혁한 대국에서 공명을 세우리라 하였으니 비록 둘 다 목적은 이루었으나 독립자주의 자격은 잃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 유신이 남긴 폐해는 일종의 의뢰성을 전수하여 큰 나라를 섬겨 구차하게 안녕을 구하여 자강을 꾀하지 않는 국민의 선조가 되었고, 설인귀는 자기의 공명을 탐하여 조국을 배반하였으니 이는 매국노의 괴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천개소문은 개인주의에도 독립자주자요, 국가주의에도 독립자주자이니 이는 개(個) 자격으로 논하면 비할 자 없다고 말한다.

백암은 만일 혹자가 있어 천개소문이 그 덕과 힘을 헤아리지 않고 큰 나라와 원수를 맺어 멸망한 것을 두고 지략이 뛰어난 영웅이 아니라 한다면 자신은 그게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고구려는 토지와 인민으로 말하면 당을 대적하지 못하지만, 그 나라의 정신으로 말하면 대무신왕(大武神王:고구려 3대 국왕 A.D. 18∼44) 이래로 역대 군신이 모두 독립정신으로 항상 대국의 땅을 쳐서 빼앗고, 대국의 병사를 맞아 싸우던 나라이다.

국운의 불행으로 말엽에 이르러 천남생(泉男生), 남건(男建) 등이 형제끼리 다투어 골육상잔으로 적병을 끌어들여 700여년 종사(宗社)를 무너지게 하였다.

만일 남생, 남건 등이 같은 마음으로 힘을 합했으면 당태종이 천하병력으로도 이겨내지 못한 고구려를 80살 먹은 늙은 이 세적이 어찌 멸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고구려는 대국에 저항함으로써 망한게 아니라 형제다툼으로 망한 것이다.

또한 적음이 많음을 대적하지 못함은 당연하나, 월왕 구천은 5000명 남은 병졸로 10년 살아 버티고 10년 교육훈련시켜 강한 오(吳)에 원수를 갚았고 금 태조 아골타는 백두산 아래 조그만 한 마을로 일어나서 일거에 요(遼)를 멸하고, 다시 북송을 빼앗았으니 이로보면 나라의 승패존망이 땅의 크고작음과 인민의 많고적음에 있지 않고 그 나라 인재여하에 달린 것이니, 천개소문의 대담한 웅략으로 어찌 대소, 중과를 비교하여 헤아릴 수 있으리오."- (이상 안원전 담론 Click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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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근년에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찮게 흥미로운 지도를 하나 발견 했다.

텍사스 대학교의 온라인 도서관인데 제목이

[Taiyuan] T'ai-yuan Fu 1912

From Madrolle's Guide Books: Northern China, The Valley of the Blue River, Korea. Hachette & Company, 1912. 라는 출처를 밝혀 놓았다.






제목대로 이지도는 19세기말~20세기초의 북중국 지도의 한 부분인데 이곳은 지금의 산서성 [태원부太源府]의 지도이다.

태원을 황하의 한 지류인 汾河(FenHo)가 지나고 동남에 燕山(YenShan) 남으로는 태원 舊都(TaiYuan H)가 있고 서남의 해발 4250M 의 [KaoLi Shan-카오리 산], 즉 고려산(高麗山)이 있다.

문제의 흥미거리는 바로 이것이었다.

필자는 前考 [기자후손인 주 영왕 태자 晉]과 태원, 낭사(낙랑)왕씨의 개연성에 대해서 언급한바 있거니와, 나아가서 기자(마한의 청주 한씨)와 고구려, 백제의 관계를 재조명하고저 태원에 관한 실제 사료와 근거를 찾아내려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런 지도에서 우연찮게 그 흔적을 찾게 될줄 이야..

물론 이전, 이후의 이 지역의 지도를 자세히 살펴 보았지만 더 이상 [Kaoli Shan]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 제현들께서 다른 곳의 이 [카오리산]을 보았다면 찾아가서 꼭 보고싶다.



이 [카오리산]이 이후 어떤 명칭으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영문 지도인걸로 봐서 아마도 지명 명칭은 현지인의 언음을 기준으로 표기 한 것임이 자명하다. 즉 中音의 한치 오차없는 [고려산]인것이다.

이제는 고려산에 얽힌 내용들인데, 필자도 생소해서 중어 일어 야후사이트에서 무작정 키워드를 넣고 검색 해보는 수 밖에 없었다. 객관성을 두고 본다면 1차적인 것이 금사 지리지 이다.



신교본금사 /지/권25/지 제육 /지리/(산동동로)중에 보면

/新校本金史/志/卷二十五 志第六/地理中/山東東路





萊州,上,定海軍節度。宋軍萊郡。戶八萬六千六百一十五。縣五、鎮一:

  掖倚。有三山、夜居山、掖水。

  萊陽有高麗山、七子山。鎮一衡村。舊有海倉、西由、移風三鎮。

  即墨有牢山、不其山、天室山、沽水、曲裡鹽場。

  膠水

  招遠



래주萊州의 래양에 고려산이 있다고했는데 萊陽有高麗山  

멀리 요수가 보인다 膠水 招遠

고 했지만  이곳은 산서가 아니라 황해와  연한 산동이다.

게다가 달랑  <고려산이 산동의 래주 래양에 또 하나있다...> 정도만 알수 있었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강화도의 고려산이다.

그런데, 강화도 고려산에 얽힌 전설중에 내 이목을 끈 두  구절이 있다.



하나는  고려산이 고구려의 영웅 연개소문의 출생지라는것,

다른 하나는  마니산,혈구산,진강산, 고려산, 능주산의 다섯 형제가 중국에서 떠내려 왔는데, 마니산이 맏이 이므로 가장 높고,...라는 이야기.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유적총람에는 연개소문이 고려산에서 탄생하였다고 전한다. 그 산위에는 군마를 달려 훈련을 하던 '치마대'가 있는가하면 말에 물을 마시게 하였다는 5정(井)이 있으며, 살던 집터가 중봉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곳 혈구산 남쪽 언덕 '시리미'라는 곳은 옛날 연개소문이 고구려의 군사를 훈련시키던 곳이라고도 전한다.ㅡ



고려산에 관한 것을 찾다 보니 왼통 [연개소문]의 이야기 이다.

하지만 상세한 내용이 없을 뿐 아니라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도 없다.

그러나 한결 같이 고려산은 '연개소문'의 탄생으로 유명한 곳 이었다.



필자가 조심스레 주목하는 부분이다.

연개소문의 탄생설화가 깃든 고려산...



당나라 때 소설인 <규염객 전>은 당나라 사람 장열 또는 두광정이 저자라는 두가지 설이 있다.

장열은 7세기 후반 사람이며 두광정은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초반에 살았던 사람이다.

소설의 내용을 요약한다.



[규염객은 부여국 사람이다. 수 양제 시절 중국 태원에 와서 이정과 교분을 맺고

이정의 아내인 홍불지와 의남매가 되었다.

규염객은 중원의 제왕이 되고자 도모하였으나 당국공인 이연의 아들 세민을 보고

그 영명한 기운에 눌려 이정에게 중원의 제왕이 되기를 포기하였음을 알리고

부여국으로 돌아와 난을 일으켜 부여국왕이 되었다.]



이 소설에는 실존인물인 이세민, 이정, 유문정, 양소 등이 등장하는데 단재 선생은

이 규염객을 연개소문이라고 보았다.





규염객전에서는 규염객-연개소문이 처음 등장했던 곳이 다름아닌 바로 <고려산> 아래의

  [태원] 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고려산이 강화도까지 떠내려 올리가 없다.



연개소문의 탄생설화가 깃든 태원의 고려산을 강화도로 옮긴것이다.



어떻게 옮겨 졌을까?



<계속..>
      
      


규염객 연개소문Click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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