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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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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서양사14(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상의 정보만 가지고도 독자 여러분은 세계사를 보는 안목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을 거라 믿는다. 새로운 안목을 틔워나가는 것은 이제부터가 본론이니 끝까지 탐독해 보자. 끙끙거리며 암기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프리메이슨 조직이 어느 정도로 서양사에 깊숙이 개입했는지 대국만 파악하면 된다. 그럼 이제, 함께 포루투갈, 스페인, 이태리, 터어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미국의 혁명과정으로 잠시 여행해 보자. 만약 읽기가 힘들면 미국 편과 러시아 편은 반드시 읽었으면 한다.

자유사상가, 공화주의자, 프리메이슨 조직이 포루투갈에 손에 손을 잡고 들어갔다. 그러나 혁명의 방침을 제시한 것은 이들 셋 중 프리메이슨 조직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고 자유사고의 가르침을 확산시킨 사람들은 프리메이슨 조직이다. 포루투갈 메이슨 조직의 정점에는 언론가, 변호사, 정치가, 자유 사상가, 공화주의자이자 혁명론자인 그랜드 마스터 “마갈라에스 리마(Magalhaes Lima)”가 있었다. 그는 만국의 메이슨 조직의 지도적 명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1907년 12월, 그는 빠리로 돌아와 롯찌(Lodge:메이슨 집회)에서 ‘포루투갈, 군주정치를 타도하고 공화주의 정부를 세울 필요성’이라는 제하의 강의를 했다. 몇 주일 후에 카를로스(Carlos) 왕과 그의 장남이 암살되었다. 뒤를 이어 마누엘(Manuel)이 왕이 되었는데, 그가 악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자 그의 추방은 충분한 것으로 여겨졌다. 프리메이슨은 자신들이 포루투갈 혁명의 입안자였다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벨기에(Belgium)의 『그랜드 오리엔트(The Grand Orient)』의 대 연설가, 메이슨 회원 후르네몬트(Furnemont)는 1911년 2월 12일, 다음과 같은 요지의 강연을 했다.

“당신은 포루투갈 혁명의 간단한 발표를 보고 우리 모두가 가슴 깊이 느꼈던 자부심을 기억합니까? 몇 시간 안에 왕위는 떨어졌고, 사람들은 승리했으며, 공화국이 선포되었습니다. 프리메이슨 단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그것은 마치 마른하늘의 전광석화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의 형제 단원들, 우리는 우리의 포루투갈 형제단원들의 경이적인 조직력과 그들의 끊임없는 열성과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그들의 업무추진력을 이해하고 있고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영광스러운 사건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위치틀(Wichtl) 박사는 여기에 더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확실한 하나는 더 많은 증거를 필요로 합니까? 프러시아의 그랜드 롯찌 <쥬덴 드레이 웰트쿠겔른(Zu den drei Weltkugeln>의 공식적인 기관지 ‘분데스블라트(Bundesblatt)'를 볼 것 같으면, 이 신문은 1733년~1912년 사이 포루투갈의 프리메이슨의 역사에 대해 죠르쥬 그라인하(George Grainha) 교수가 집필한 책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의 서문의 서두를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2세기 동안 포루투갈의 종교적, 정치적, 문학적 대 변동기 동안에 뛰어난 인물들 중 대다수는 프리메이슨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910년 10월 5일 일어난 혁명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들은 메이슨이었습니다.?

당시 군주정치의 타도를 위해 일한 사람은 카스트로스(Castros) 가문과 코스타스(Costas) 가문, 코헨(Cohen) 가문, 페레이로스(Pereiros) 가문, 훼레이라스(Fereiras) 가문, 텍세이라스(Texeiras) 가문, 폰세코스(Fonsecos) 가문 등에 속했으며, 그들은 스페인, 홀랜드, 영국, 미국에서 중요한 지위를 점하던 사람들로 메이슨 조직과 “알리앙스 이스라엘리뜨 유니베르셀르(l'Alliance Israelite Universelle)”라 칭하는 만국 이스라엘 엘리트 연합이란 조직에 제휴협력했다.  

여타의 나라에서와 같이 스페인에서 프리메이슨 조직의 첫 번째 목표는 군주조직과 종교의 파괴였다. 그랜드 마스터 모라이타(Morayta)는 1891년 마드리드의 국제 메이슨 의회에서 아주 명료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백성들은 왕의 정책을 항상 따라왔다. 이제 그 시대는 다 지나갔으며, 스페인에서의 공화제는 필요한 전진이며 멀리 있지 않다.”

스페인에서는 프리메이슨 조직의 세계적 조직력을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유명한 "훼레(Ferrer) 사건“이었다. 쓸데없는 핑계를 구실 삼아 바로셀로나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방화와 대량학살이 스페인 정부로 하여금 그 마을을 계엄령 치하로 만들도록 했다. 반란의 선동자 "훼레(Ferrer)”는 체포되었으며, 그는 군사법정으로 송치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판결은 비준되었다. 한편, "훼레(Ferrer)”가 법률에 따라 재판 받지 않았으며, 그의 변호사가 체포되었고, 심지어 성직자와 교황까지 이 사건에 관여되어 있음을 선언하는 거짓말 전보가 모든 나라의 신문사로 송고(送稿)되었다.

이에 대해 란테르네(Lanterne)지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재판의 주 당사자인 교회의 피묻은 손이 모든 일을 처리했으며, 스페인 왕의 잔인한 군인들만이 그의 뜻을 수행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살인적이고 피묻은 종교에 대해 봉기해야 한다.” 이 글 다음에는 손에 단검을 든 성직자를 보여주는 커리커쳐가 게재되었다. 왕과 교황에 대한 보복협박과 암살 협박이 마드리드와 로마에 쇄도했다.

그 판결에 저항하는 청원서가 빠리, 로마, 브뤼셀, 런던과 베를린에 나돌았다. "훼레(Ferrer)”는 처형되었으며, 즉시, 유혈사태를 몰고 오는 소요사태가 프랑스의 주요 도시와 몇 몇 유럽국가에서 벌어졌다. 빠리의 거리거리에서 『앵떼르나쇼날르(Internationalle:국제 노동자 동맹)의 노래를 부르고, 그를 영예시하며 미쳐 날뛰는 것으로 사태는 절정에 다달았다. 각기 다른 의회에서 각 정부에게 의문을 제기했으며, 최소 행정조직인 현(縣)과 꼬뮌(Commune)의 의회가 주도해 저항할 것을 의결했다. 프랑스의 57개 마을이 자신들의 거리 중 하나를 "훼레(Ferrer)가(街)”로 이름지어 부르기로 결정했다.  

전 유럽의 다양한 국가들의 이익에 서로 맞지 않는 주장을 하며 벌인 소요사태의 경이적인 자발성과 획일성은 모든 국가 심지어 아주 작은 지방에까지 촉수를 뻗치고 있는 정교한 조직력을 보여준다. 빠리의 그랜드 오리엔트(Grand Orient) 교단 의회는 세계의 모든 메이슨 권력자들에게 훼레(Ferrer)의 처형을 항거하는 성명서를 보냈다. 그 성명서는 그가 자기들 회원 신도중의 하나라 주장했다.

<훼레(Ferrer)>는 우리 회원 신도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메이슨의 과업을 추진하는 속에서 인간이 깨달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이상이 표현되었다고 느꼈다. 그는 끝까지 우리의 원리를 확언했다. 정작 그들이 그를 겨냥해 치고자 했던 것은 메이슨의 이상이었다.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향한 전진 과정에서, 무단체포의 무력이 우리를 세월을 거슬러 중세의 암흑 속으로 던져 넣기 위한 목적의 원리와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프리메이슨 조직은 훼레(Ferrer)를 자신들의 이상으로 간주하고 그를 지키는 말과 행위를 선언했다. 우리는 훼레(Ferrer)를 통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알 수 있다.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요약 중 이를 짐작할 만한 내용이 있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지 않기 위해 그리고 정부에게 내가 설립한 학교들을 폐쇄할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나는 그들을 현대적 학교라 부르지 무정부주의자를 위한 학교라 부르지 않는다. 내 선전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나는 솔직히 나의 학교들 안에서 신념 있는 무정부주의자를 만들어내는 것을 시인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난폭한 격변의 이념을 심어주는데 만족해야 한다. 경찰과 성직자에 대항하는 데에는 오직 행동-폭탄과 독(毒)-이라는 하나의 수단만이 있음을 그들은 배워야 한다.>

재판의 심문은 훼레(Ferrer)가 살았던 제르미날(Germinal)이라는 빌라의 지하 방에 숨겨 놓은 서류 뭉치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들 서류는 그가 1877년 스페인에서 일어난 각종 혁명운동의 영적 지도자였음을 증명해 준다. 메이슨 조직이 세상사람들에게 자기 고백적으로 자신들의 이상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그다. 훼레(Ferrer) 처형 몇 일 뒤, 마드리드에 있는 내각은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자유당과 민주당 수뇌들이 곧바로 이어진 롯찌의 영향력에 의해 수상인 쎄뇨르 마우라(Maura)에게 그가 제출하는 모든 조치, 모든 제안에 대해 절대적으로 반대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임이라는 후속조치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사임하자 유럽의 모든 자유사상가들은 기뻐했다. 『아카시아(The Acacia)』紙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전 세계를 통해 종교와 자유사상가, 독재정치와 민주정치, 전제정치와 혁명 사이에 엄청난 결투가 벌어지지 않았는가? 교회 개척자들과 바티칸이 고유의 나라를 가지고 있는가? 휴매니티의 드라마가 수도원와 학교의 국제적인 힘에 의해 상영되고 있지 않는가? 마우라(Maura) 내각의 몰락, 또한 훼레(Ferrer)의 처형은 단지 이 엄청나고 끊임없는 드라마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 이태리 혁명은?

1907년 빠리지앙(빠리인)들의 롯찌(Lodge:프리메이슨 집회)인 『솔리다리티(Solidarity:결속)』에서 열린 집회에서 메이슨 쇼아죤느(Choissone)는 <이태리에서 1821 년이래 발생한 혁명적인 시도는 프리메이슨 조직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마찌니(Mazzini)가 자유, 통일, 이태리의 공화국 化, 교황의 세속권력의 억압, 오스트리아의 파괴, 모든 곳에서의 공화국 수립이라는 주요 목적을 갖고 그의 혁명적인 운동을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는 세계 전역의 프리메이슨 혁명가들 가령, 코숫스(Kossuth), 폴란드 혁명가 스타니슬라스 보르셀(Stanislas Vorcell), 러시아 유태인 알렉산더 헤르젠(Alexander Herzen) 등과 친분을 나누었다. 마찌니는 가리발디와 마찬가지로 프리메이슨이었다. 그는 자신이 벌인 정치적 사업을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 창설한 비밀 사회 단체 “젊은 이태리(Young Italy)”와 카르보나리(Carbonari) 사회단체에 의존했다.

그는 살아 생전 일생동안 프리메이슨 조직의 우두머리로 가장 유명했던 출판인 아우렐리오 사피(Aurelio Saffi)와 이태리 메이슨 조직을 복구했으나 뒤에 마찌니의 요구로 정치적 집단으로 바꾼 바 있는 유태인 아드리아노 렘미(Adriano Lemmi)와 가장 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마찌니와 가리발디는 메이슨의 신문에 가장 높게 평가되어 다소 과장된 듯할 정도로 찬양된다. 롯찌들의 주요 기관지는 그들을 ‘이태리 메이슨 조직의 가장 위대한 별’이라고 부른다. 그가 1834년부터 1872년까지 『일루미나티』의 그랜드 마스터였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그가 죽은 뒤 이태리 프리메이슨 조직은 그의 충실한 후계자들이 책임을 맡았다. 이태리 프리메이슨 교단의 첫 의회가 33인의 회원을 임명한 것도 바로 그 때였다. 마찌니의 개인적인 친구 그랜드 마스터 아드리아노 렘미(Adriano Lemmi)의 지도력 아래에서, 이태리 메이슨 조직은 1872년 그 지위를 강화시켰다. 1872년에 이태리 프리메이슨 조직의 통일의 기초를 보았으며, 그 이후로 마찌니의 정신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태리 메이슨 조직은 혁명적이지 않은 적이 결코 없었는데, 이는 이태리 정부, 로마의 점령, 교황의 세속권력의 제거 등으로부터 강요된 것이었다. 실지 회복주의자 중에 많은 메이슨들이 또한 롯찌들과 메이슨 신문사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지원 받았다. 마찌니와 가리발디는 죽을 때까지 혁명가와 공화주의자로 남았다. 그들의 혁명적인 프로그램은 마지막 목표인 오스트리아 카톨릭 군주정치의 파괴를 실행할 적기(適期)를 기다리고 있는 이태리 프리메이슨들에 의해 가차없이 적용되어 왔다.
  
그럼 터키의 혁명은?

한편, 1900년에 프랑스의 『그랜드 오리엔트』는 터키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유태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으로 구성된 아직 어린 터키는 정치적 노력에 있어 어떠한 발전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메이슨 조직에서 도움을 찾았으며 그 뒤로 급속도의 발전이 있었다. 1908년 10월 『아카시아(Acacia)』紙에서 뽑은 다음의 기사는 당시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비밀적인 젊은 터키 의회가 구성되어 모든 운동이 살로니카(Salonica)로부터 지시되었다.  10만 인구에 7만이 유태인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유태인 마을인 살로니카(Salonica)는 그 목적을 위해 아주 적당했다. 이미 그 곳에는 혁명가들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몇 개 이상의 롯찌(Lodge)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 롯찌(Lodge)들은 유럽인의 외교적 수완 아래 놓여져 있었으며 술탄은 그들에 대항할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몰락은 불가피했다.>

그 당시 살로니카(Salonica)에는 『이태리 그랜드 오리엔트』와 관계를 맺고 있는 2개의 롯찌(Lodge)가 있었다. 이태리 유태인 엠마누엘 카라쏘(Emmanuel Carasso)가 존경할 만한 인물인 『마케도니아(Macedonia)』 롯찌(Lodge)와,『노동과 빛(Labor et Lux)』롯찌(Lodge)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외에도 이 마을에는『 프랑스 그랜드 오리엔트』와 연결되어 있는 『베리타스(Veritas:진리)』롯찌(Lodge)와 스페인 롯찌(Lodge)인『페르세베란자(Perseveranza)와 그리스 롯찌인(Lodge)인 『필립포스(Philippos)』가 있었는데 그리스 롯찌는 오직 민족주의 정책만을 추구하고 있었다.

젊은 터키인들은 혁명을 조직화하고 준비하기 위해  이들 롯찌에 입회해 서로 만났다. 이들 롯찌의 많은 수의 인원이 젊은 터키의 비밀적인 『연합과 진보의 의회』를 강화시켰는데 이 조직 안에서 그들은 가치 있는 과업을 수행했다. 오래지 않아 이 집요하고 신비한 과업을 알게 된 터키정부는 부랴부랴 비상을 걸게 되었으나 경찰은 그 계획의 밑바탕까지 알지는 못했다. 예방책으로 롯찌들은 『이태리 그랜드 오리엔트』로 눈을 돌려 그들로 하여금 필요하면 이태리 대사관의 보호를 받도록 조치했다.

이와 같이 점차 젊은 터키 당은 거의 전부 프리메이슨으로 가득 차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유태인이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혁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성공되었으며, 프리메이슨 조직은 승리를 어떻게 유용화 할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1909년 5 월 1일, 45개 터키 롯찌의 대표들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서 만나 『오토만(Ottoman) 그랜드 오리엔트』를 결성했다. 그랜드 마스터는 ‘마흐모우드 오르피 파샤(Mahmoud orphi Pasha)'가 지명되었다. 터키인 고위 성직자에는 데이비드 코헨(Savid Cohen), 라파엘로 리치(Raphaelo 꺛챠), 니콜라스 포르트(Nicolas Forte), 마르치온느(marchione), 쟈크 수하미(Jacques Souhami), 죠지 수르속(Georges Sursock) 등이 있다. 곧 이어 <고대와 스코티시 제단을 받아들인 최고의회>가 구성되어 프랑스인과 이태리인 프리메이슨 당국자에 의해 인가되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는?

세르비아, 독일, 그 밖의 곳에서 현대 혁명에 프리메이슨 조직이 개입한 부분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지라 간단히 설명하기 어렵다. “벨라 쿤(Bela Kun)"의 볼셰비키 혁명이라는 관점에서 아주 재미있는 나라인 헝가리만 간단히 설명하면, 헝가리 정부는 혁명운동에 많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노출시키고 있는 메이슨의 도서관들을 압류하고 이를 널리 공표했다. 1918년 4월 29일, 헝가리 메이슨 조직의 그랜드 마스터 아르파드 보카이(Arpad Bokay) 박사는 비엔나에서 아주 애국적인 연설을 했다.

<헝가리의 적들은 또한 오스트리아의 적들입니다.  오스트리아를 파괴하려고 연합한 사람들은 헝가리 역시 그렇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세계전쟁의 폭풍 속에서 가장 효과 있는 방법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사람들을 보호해 온 것은 바로 군주정치입니다.>

헝가리에 소비에트 공화국이 수립된 것은 1918년 3월 22일이었다. 그 우두머리는 당연히 프리메이슨이었다. 소비에트 정부는 유태인들로 구성되었는데 면면만 간단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정부 수상에 티보르 쟈무엘리(Tibor Szamuelly), 국방에 알렉산더 가르바이 죠세프 포가니(Alexander Garbai Joseph Pogany), 사법에 로나이(Ronai:Rosenstengel), 재무에 발가(Varga:Weichzelbaum), 수도 시장에 빈스(vince:Weinstein), 경찰에 모리츠 에르델리(Moritz Erdelyi:Eisenstein), 데즈소 비로(Dezso Biro:Bienstock N.2)로 가르바이만 제외하고 모두 유태인이었다.

그 해 11월, 제국정부는 전복되었다. 이제는 공보(公報)의 1권 첫 페이지에 그것을 고지하는 기사가 아무 방해 없이 실릴 수 있게 되었다. 비엔나의 메이슨 조직은 이 사건을 환호해 맞이했다.
<모든 것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우리는 우리의 스승인 공화주의자가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비판이나 저항을 할 줄 모르고 군국주의와 자기지배에 봉사하는 관료적인 정부의 노예나 순교자가 아니었다.>(1919년 5월 Wiener Freimaurer 신문)

헝가리 메이슨 조직의 그랜드 마스터 아르파드 보카이(Arpad Bokay) 박사는 1918년 11월 2일 의미심장한 연설을 했는데 카롤리(Karolyi) 혁명정부가 갓 세운 신문인 비엔네 후레이마우레(Wiener Freimaurer) 신문 요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가 막 묘사한) 메이슨의 프로그램은 또한 민족적 헝가리 의회의 프로그램이며 금방 구성된 대중적인 정부의 프로그램이다. 우리의 길은 이같이 우리에게 명료하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어깨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행진하고 있으며, 그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위대하고 무거운 그러나 한편으로 고마운 과업을 돕고 있는 중이며, 그렇기 때문에 묵은 헝가리는 아무 동요 없이 사랑스러운 새로운 헝가리로 진입할 것이다. 이것은 헝가리의 모든 선한 애국자들이 가장 열렬히 바라는 소원이다. 우리가 가장 경애하고 존경하는 형제 메이슨 단원은 오늘날 첫 번째 계급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안심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을 알고 있으며, 그들은 그들이 착수한 과업을 메이슨의 정신으로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벨라 쿤(Bela Kun)의 힘에 봉착하면서 프리메이슨 조직은 모종의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운명의 아이러니에 의해 그것은 그때 너무 부르죠와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신뢰를 얻지 못했다. 볼셰비키 정책의 실패 뒤에 정부는 롯찌들을 해산했으며 그들의 도서관들을 널리 공표했다. 고뇌 속에서 헝가리안 메이슨들은 전 세계에 있는 그들의 형제단원들을 방문했다. 1922년 3월 발행된 라이프찌(Leipzig) 라로미아(Lalomia) 메이슨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기사가 실려있다.

<우리는 뉘른베르그에 거주하는 우리 헝가리인 형제단원 중 한 사람이 제공한 정보로 헝가리에 있는 프리메이슨들의 슬픈 운명에 대해 다음의 자세한 내용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전쟁 중에 프란시스 죠셉 황제를 환영한다는 연설문을 또 다시 보낸 뒤, 프리메이슨들은 이제 메이슨의 이상을 성취할 시간이 다가 왔다는 고상한 설득과 함께 대 이변 뒤에 자신들을 사회주의 공화국 이념 속으로 던졌다. 그들이 쓴 글 속에서 그들은 활동적인 선전을 호의적인 차원에서 했는데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메이슨 단원이었다. 그 뒤, 헝가리가 볼셰비키의 파도에 의해 침몰했을 때, 권력을 쥔 자들은 곧 메이슨 조직을 부르죠와 제도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외국의 도움 덕분으로 곧 바로 권력계로 향한 반격이 성직자 지도노선에 의해 고취되었는데, 롯찌들 역시 금지되어 우리의 토지를 점거하고, 기부금과 그 곳에서 발견된 모든 것을 몰수했다. 비탄 속에서 우리의 헝가리안 형제 단원들은 『북아메리카 그랜드 롯찌』로 관심을 돌렸다. 결과로, 헝가리는 당시 미국으로부터 차관을 교섭 중이었는데 미국은 프리메이슨 금지에 대한 명쾌한 암시로 헝가리에 합법적인 기관들을 다시 설립하지 않는 한 장기 차용을 해 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그래서 헝가리 정부는 즉시 전(前) 그랜드 마스터와 관계복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비 메이슨 회원도 롯찌 집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조건아래 메이슨 과업의 자유로운 재개를 하도록 허락 받았으나 그랜드 마스터가 이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차관 계획은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프리메이슨 조직과 미국 정부가 헝가리 혁명에 다소 영향을 끼친 것을 보여주는 몇 줄의 기사 때문에 이 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여기에서 미국은 미국 메이슨 조직의 대리인 역할을 했다. 1922년 이태리의 그랜드 마스터 ‘토리지아니(Torrigiani)'는 다양한 메이슨 권력의 정부들과 함께 제네바 회의를 중재해 헝가리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는 같은 노선에서 정력적으로 행동했다. 헝가리 정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어려움에 잘 대처했다. 다음은 하원의원 쥴리우스 곰보스(Julius Gombos)가 헝가리 수상 바울 텔레키(Paul Teleki) 백작에게 이에 대한 주제를 언급한 공개편지 내용이다.  

<모든 사람이 알고있다시피, 헝가리 왕실정부는 헝가리 프리메이슨 조직의 몇 몇 단원이 10월 혁명을 준비하는 데 참여했으며, 헝가리 백성과 나라의 이익에 반하는 조직적인 파괴공작을 벌인 이유로 헝가리 프리메이슨 조직을 해체시켰습니다. 그 사건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 멤버들 중에는 유태인의 세계지배를 목표한 대표들과 대리인들이 우리 가운데 끼어있었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자기들에게는 친숙한 반민족적 독트린의 승리를 확보하기 위해 민족적인 감정을 잠재우려 지하에서 획책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기독교 이념의 힘과 기독교 조직이 그들의 목표를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소위 성직자의 부당한 세력에 대항해 투쟁을 전개한 것이 바로 프리메이슨 롯찌(Lodge)들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그와 함께 한 움직임을 보면서, 저는 헝가리 기독교 사회의 대부분이 프리메이슨 조직을 박해하는 정부의 법령을 기쁜 마음으로 환영했다고 믿고 있으며, 우리가 아주 신비롭게 꾸며진 『그랜드 심볼릭 롯찌』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는 것을 훨씬 더 즐거운 마음으로 환영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국가안보를 위해 현재 우리가 행하고 있는 과업을 파괴하는 그러한 유기(遺棄)를 반드시 알아차려야만 하기 때문에, 또다시 그들을 포기할 최소한의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헝가리 메이슨 기관들의 과거행위들과 그들의 휴매니티에 대한 다른 개념을 고려하면, 우리나 저는 정부가 금지명령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유지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비록 헝가리 프리메이슨 조직의 운명에 대한 결정이 내부적인 정치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제 개인적인 생각에, 귀하는 이 문제에 대해 외국에게 한 수 가르쳐 줌으로써 나라에 크게 봉사하게 될 것이며, 다른 나라들이 종교와 나라와 백성의 도덕적 건강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취해 온 가치척도에 대한 이념을 잘못 얻지 않도록 하기 위해, 프리메이슨 조직의 운명 문제와 결부된 또 다른 유태인 문제에 대해 외국을 깨우쳐 줌으로써 나라에 크게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은 부다페스트 롯찌(Lodge)에서 발견된 비밀문서의 요약이다.

- 헝가리 기독교 연합과 국민의회가 헝가리에서 막 출간한 헝가리 프리메이슨 조직에 대한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부분은 아도르잔 바륵세이(Adorjan Barcsay)가 쓴 ‘프리메이슨 조직의 범죄’란 글로, 이 글은 1920년 롯찌들이 해체되었을 때 압류된 상당한 양의 문서를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죠셉 팔라티누스(Joseph Palatinus)가 쓴 ‘지방 롯찌의 비밀들’이란 글로 첫 번째 글과 같이 헝가리를 1918년 10월 혁명과 1919년 공산주의로 몰고 간 프리메이슨의 비밀적인 파괴공작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헝가리의 메이슨 조직 회원 목록을 담고 있는데, 이 글은 헝가리 프리메이슨의 90%가 유태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 개의 첫 장은 메이슨 운동의 일반적인 역사를 간단히 요약해 놓고 있다. 4장에서 8장까지는 헝가리 프리메이슨의 근무방법을 분석했다: 교회와 학교에서 종교적인 가르침에 대한 그들의 투쟁, 보편적인 투표를 찬성하는 그들의 캠페인, 민족성과 그들의 국제적인 경향들에 대한 그들의 정책, 마지막으로 특별히 우리의 주의를 더 끄는 마지막 장은, 롯찌(Lodge)에서 무리를 지은 유태인들이 패배와 전쟁의 끝에 뒤이은 파괴를 어떻게 조직적으로 준비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11장에서는 많은 문서를 동원해 다음과 같은 예에서와 같이 헝가리에서 프리메이슨 조직은 저명한 유태인 직장임을 보여준다.;

유태인 기력(紀曆) 5885년이 새겨진 1905년에 부다페스트에서 인쇄된 그 책은 『그랜드 심볼릭 롯찌』의 골자를 포함하고 있다. 회원들에 의해 채택된 맹세의 교재는 유태인 수중에 있다. 비밀 암호는 같은 언어로 사용한다. 그 책의 말미에 인쇄된 목록은 우리에게 그 회원의 90%가 아벨(Abel), 블로흐(Bloch), 버거(Berger), 푸흐스(Fuches), 헤르쯔(Herz), 레비(Levy), 폴락(Pollack), 로젠탈(Rosenthal), 슈오엔(Schoen) 등과 같은 유태인 또는 훈(Fun)과 헤이버(Haber)의 경우와 같이 마자르인(헝가리인)화 한 유태인임을 보여준다.

그 책의 저자는 이 주제에 대해 삐에르 아고스톤(Pierre Agoston) 교수의-그는 벨라 쿤(Bella Kun)과 함께 권력을 공유한 인민위원의 한 사람으로 지난 12월 헝가리 법정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작품으로 드러난 아주 독특한 서문을 인용하고 있는데, 『유태인의 오솔길』이란 타이틀이 붙어 있다. 많은 것들 가운데 헝가리에서 유태인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헝가리 프리메이슨 조직의 역사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는 진술이 발견된다.

  10장은  헝가리 프리메이슨이 사람들에게 믿기를 바라고 있듯이 공공 자선이 결코 그들의 주요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그들이  정치에 대해 간여하지 않는다는 특별히 명시된 조건 하에 1886년 내무 장관에 의해 단지 그들의 롯찌가 승인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선은 그들에게 단지 간판에 불과했는데 그 뒤에는 모든 정치적 권력을 점진적으로 독점하기 위한 유태인 프리메이슨의 비밀스러운 의도가 감추어져 있었다.

1911년 2월 24일 폴 스젠데(Paul Szende)가 서명한 보고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실시하고 있는 자선이 우리의 이념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뜻 인정한다. 우리는 현실 사회에서 급진적인 변혁의 필요성에 온 힘을 경주해야 한다.>  

1916년 코메니우스(Comenius) 롯찌의 그랜드 마스터 챠알스 스잘레이(Charles Szalay)는 청중이 가득 찬 집회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모든 진짜 프리메이슨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정신은 지금까지 언제나 혁명적인 것이었다. 공공의 자선 업무는 그들의 주요 목표가 아니라 단지 최종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헝가리 공산혁명에 있어 그들의 역할에 대해, 프리메이슨들은 무엇보다 먼저 신문을 통해 일을 했음을 보여준다. 근면하고 끈기 있는 노동으로 그들은 마자르족(헝가리족) 민족감정을 파괴하는 것으로 대다수의 신문기관에 대한 영향력을 얻는데 성공했다. 일간신문 『빌라그(Vilag)』紙는 헝가리 군대의 기강을 약화시킨 데 특별한 책임이 있다. 이 신문 기사거리들은 수 천 개의 참호에 배부되었다. 전쟁 중 수치스런 투기로 헝가리의 경제생활을 황폐화시킨 갈리시아(Galicia) 출신의 유태인 이민자들을 항상 옹호해 준 것 또한 유태인 메이슨 신문들이었다. 그들은 또한 반 애국적 이론에 의해 학교의 젊은이를 독살하려 했다.

『빌라그(Vilag)』紙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헝가리어의 과장된 가르침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노래를 배우는 것으로 애국심을 고양하는 일은 오직 어린이들을 잔인하게 만드는 하나의 결과를 낳을 뿐이다.- 또한 헝가리 프리메이슨의 공식적인 신문 『켈렛(Kelet)』紙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어린 영혼을 통해 비 종교 교육을 위한 준비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선생과 학교스승을 이겨야 한다. 선생들은 모든 진보이념의 선구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신문과 학교 이외에도, 정치에 가장 가능성 있는 영향력을 얻기 위해 그리고 아직도 헝가리에서 실행 불가능한 보편적 선거를 앞당기기 위해 일하고 있다. 전쟁 중 프리메이슨의 태도에 대해 저자는 몇 몇 인용문으로 명확히 밝히고 있다. 1918년에 부다페스트의 『그랜드 심볼릭 롯찌』는 미카엘 카롤리(Michael Karolyi) 백작과 민족혁명 의회에 다음 사실을 선언하며 이를 환영하는 연설문을 만장일치로 보내기로 결정했다.-메이슨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호의적인 것으로 밝혀진 이래, 헝가리 프리메이슨 조직은 모든 힘을 다해 새 정부를 지지할 것이다. 1918년 11월 2일, 그들 롯찌들은 그들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정부는 사실상 우리와 동일한 이념을 실현코자 하는 목적을 가졌다. 우리 형제단원 중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일원이며, 우리를 위해 정부는 다음의 사실을 보장할 것이다. 즉, 혁명적인 헝가리는 급진적 개혁의 노선을 좇을 거란 것이다. 우리의 의무는 우리 수단껏 그것을 돕는 것이다.>

모든 헝가리 메이슨 롯찌들은 1920년에 흩어졌으며, 그들의 모든 소유물은 헝가리 법에 의해 나라의 이익을 위해 몰수되었다. 반 헌법적 행위에 어떤 메이슨 인물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지 가려내기 위해 내무부에서 심문회를 열었으나 정규재판으로 이송되기도 전에 심문회는 끝나버렸다. 헝가리의 여론은 전쟁 패배와 무엇보다 먼저 헝가리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혁명적인 사건들에 대해 그들에게 상당한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나고 결성된 기독교 사회단체들은 하나같이 프리메이슨에 대한 그들의 투쟁 계획을 서두에 명시했으며 그들을 기소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1920년에 롯찌의 해체가 헝가리에서 결정되었을 때, 무슈 베르뗄로(Berthelot)는 프랑스 프리메이슨 조직의 이름으로 헝가리 평화대표단의 수장 “앨버트 애포니(Albert Apponyi)에게 그가 나서서 정부로 하여금 그 결정을 재고해 줄 것을 설득해 주기를 바라는 편지를 보냈다. 부다페스트와 비엔나에 있던 영국 외교사절의 일원들은 유사한 탄원서들을 작성했으나, 정부는 그들에게 프리메이슨이 개입된 부분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 한, 그들이 누렸던 특권을 다시 돌려줄 수 없노라고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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