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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서양사13(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프리메이슨서양사13(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프리메이슨이 주도한 혁명

프랑스 혁명의 경우

카발리스들의 세계지배의 목표는 그들이 적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정부를 전복하는 계획을 고안하게 했다. 그러므로 카발리스트들의 통제 아래 있지 않은 어떠한 정부도 세계종주권을 쥐려는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잠재적인 장애물이 된다. 역사를 통해 카발리스들은 그들의 세계지배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대 격변, 반란,  혁명, 그리고 전쟁들을 계획해 왔다. 가장 고전적인 혁명의 어느 역사에도 프리메이슨이 일부 개입되어 일어났다는 기술은 없다. 이는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1800년 동안의 세계의 얼굴을 바꾸어 놓은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여기 있다. 역사의 이면에 힘을 구사해 엄청난 역할을 담당한 이 힘의 정체는 1세기 이상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오직 몇 사람만이 진실을 알고 있으며 두려움과 흥미가 침묵케 하고 있다. 그 수가 미미하지만 이를 말한 사람들은 몽상가로 치부되어 왔다. 많은 진지한 사람들은 1789년의 혁명적 징후가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음을 느낀 바 있다. 그들은 혁명의 진원지를 채 발견하지도 못한 채 비밀로 해야 한다는 예감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프리메이슨 조직은 프랑스 혁명에 개입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시인한다. 마르뀌 드 로장보(Marquis de Rosanbo)는 1904년 7월 1일 프리메이슨 조직이 비밀리에 일했지만 꾸준한 방식으로 혁명을 준비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당시 프리메이슨 조직이 프랑스 혁명의 유일한 입안자라는 점에 대해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으며, 좌파로부터 받은 찬사와 프리메이슨 조직이 프랑스 혁명을 만들었다는 것을 여러 신사들과 함께 증명하는데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프리메이슨 조직이 세계의 얼굴을 바꿀 대혁명을 고심해 준비한 것은 1772년부터 1789년 혁명 거사일 까지였다. 메이슨들은 이 준비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롯찌(Lodge)에서 채택한 이념들을 건네주었다. 1789년부터 프리메이슨 조직은 구 질서에 급진적으로 반대할 새로운 문명을 찾고자 했다. 구 질서는 뒤집어엎을 필요가 있었으며 그러한 전복은 군주정치와 카톨릭교라는 구질서의 힘을 대치했다. 이들 두 개의 기초는 파괴되었으며 사회질서는 방어력이 없어졌다.

이전의 기강과 사회 계급은 천천히 없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교회에 대항해 공개적 차원의 전쟁수행에 낄 수 없게 되자, 공생관계인 군주정치와 귀족정치를 공격했다. 이 전쟁수행의 내적 의미는 서양문명이 기독교 이념과 질서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며 종교적이었다. 천부의 권리에 의한 군주정치의 폐지는 전체 계획의 필수조건이었다. 군주제의 정부체제 아래에서는 사회에 대항하는 어떠한 시도도 불가능했다. (이하 「프리메이슨 조직과 유태주의(Freemasonry & Judaism) by 비꽁트 레옹 드 뽕셍(Vicomte Leon De Poncins) 참조)

우리가 들은 바, 국민을 위해 이루어진 혁명은 사실상 국민에 대항해서 이루어졌다.  군주정치와 귀족정치는 그들이 프랑스를 압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또 반면에 그 체제를 아주 잘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파괴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러한 계획은 결코 있음직 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보다 훨씬 전에 메이슨 종파인 『일루미나티(Illuminati:철인, 도사)』의 창시자 겸 최고 지도자인 바이샤우프트(Weishaupt)의 친필로 쓰여진 기록 속에 상세히 밝혀졌다.

바바리안(Bavarian) 주(州) 정부에 의해 『일루미나티(Illuminati)』를 지휘하던 바로 그 총사령부에서 압수된 이들 반박할 수 없는 문서들은 바바리아 주(州) 주도(州都)인 뮌헨 도서관에서 볼 수 있다. 1789년에서 1793년 사이에 만들어진 그 계획의 실제 원서는 더욱 그것의 출처가 확실하다는 것을 보증한다. 자, 그럼 여기에서 잠시 혁명의 뒤에서 이들을 조종한 일루미나티를 먼저 알아보면서 주요 혁명을 이해해 보자.

『일루미나티(Illuminati)』또는 『빛의 종단』은 18세기, 독일의 많은 작은 주(州) 중의 하나인 바바리아(Bavaria)에서 카발리스트 아담 바이샤우프트(Adam Weishaupt)가 창시한 단체이다. 아담 바이샤우프트(Adam Weishaupt)는 1748년에 태어나서 처음엔 성직자가 되었으나 뒤에 기독교를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다. 이때에 그는 또한 인골드스타트(Ingoldstadt) 대학에서 교회법 교수가 되었다.

1770년, 바이샤우푸트는 프리메이슨 카발리스트들에 의해 프리메이슨 종단에 입회하게 된다. 1773년, 카발리스트들의 주요 재정후원자 중 첫 째인 모세 멘델손(Moses Mendelsohn)과 메이어 로스챠일드(Meyer Rothschild)는 로스챠일드 25개 원안(原案)을 위한 성취계획을 이끌어내기 위해 바이샤우프트에게 그의 대학배경과 존경할 만한 것을 이용할 것을 당부했다.

로스챠일드와 멘델손은 카발리스트의 세계지배가 사회 권력구조의 침투수단과 매스 미디어의 선전을 통해 현대에 이르러서야 성취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바이샤우푸트는 이들 카발리스트들에 의해 부와 명예로 유혹받았다. 그는 동의했으며 카발리스트들을 위해 세계정복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을 충분히 발전시키기 위해 수 년 동안 일했다. 1776년, 바이샤우푸트는 라틴어로 ‘깨달은 자, 철인’을 의미하는 『일루미나티(Illuminati)』라 칭하는 "빛을 지닌 자(Light Bearers)를 위한 동방의 그랜드 롯찌"라 부르는 프리메이슨 롯찌를 창설했다. "빛을 지닌 자(Light Bearers)"라는 이름은 루시퍼 (Lucifer:빛)의 의미로부터 취해진 것이다.

바이샤우푸트는 그 때 로마 장군 폼페이의 치하에서 노예반란을 일으킨 트라키아인을 본받아 , 자신이 만든 단체 내에서 자신을 스파르타쿠스(Spartacus)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바이샤우푸트 아래의 다른 사람들 역시 롯찌 모임에서 비밀이름인 익명을 채택했으며  서로간에 비밀 통신을 주고받았다. 바이샤우푸트의 2명의 심복은 자신을 파일로(Philo)로 부르는 배론(Baron de Knigge)과 카토(Cato)로 부르는 법률가 폰(Von Zwack)이었다. 바이샤우푸트는 카발리스트 교단의 목표를 앞당기기 위해 하나의 세계정부를 외쳤다.

이 하나의 세계정부는 문학, 과학, 경제학, 정치학 예술계의 탁월한 지식인들과 바이샤우푸트와 같은 두드러진 대학교수에 의해 이끌어지는 탁월한 지식인들을 포함하여 ,재간 있는 사상가들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바이샤우푸트의 유일 세계정부는 모든 정부와 종교를 없애고자 했다. 세상에는 오직 카발리스트 유일 세계정부만이 있을 뿐이며 카발리즘은 모든 이에게 정교일치 시대를 열 것이었다.

바이샤우푸트는 비유태인을 나타내는 희브리 단어 “고임(Goyim)”이라는 말을 시종일관 사용했다. 고이(Goy)는 단수명사이고 고임(Goyim)은 복수명사이다. 바이샤우푸트가 이들 희브리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단어를 표준적으로 사용하는 누군가를 위해-로스챠일드와 멘델손- 일을 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바이샤우푸트가 카발리스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추천한 3가지 수단은 다음과 같다.

1. 영향력 있고 명망  있는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금전과 성적 대가를 제공하라. 그러면 그들은 빛의 교단인 『일루미나티』의 손아귀에서 『일루미나티』가 힘쓰고 있는 것을 실행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2. 인텔리겐챠(지식인 계층), 대학생, 교수 사이에 유일 세계정부 교단 개념을 확산시켜라. 대학 교수들에게 빛의 교단에 소속된 것을 옹호하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가족 출신으로 지적으로 우월한 학생들과 교제해야 함을 주장하라. 그러면 이 교제는 인류로 하여금  고임(Goyim)의 아래 놓인 전쟁의 재앙들로부터 피하도록 하는 유일한 도구로써, 부하들의 이익을 국제주의로 돌리는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샤우푸트는 고임(Goyim)들이 그들 자신의 물리적, 지적, 영적인 필수품을 알지 못하며 카발리스트들에 의해 계몽(Illuminated)될 필요성(그러므로 일루미나티)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학생 엘리트들이 카발리스트 원리들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들은 사설학교에서 훈련받을 수 있으며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서 사회로 배출되면, 그들은 자신들이 배운 모든 것을 실행하게 될 것이다.
3.카발리스트 선전을 확산하기 위해 정보매체인 신문과 연관된 분야로의 침투

바이샤우푸트는 로스챠일드 원안의 실천 계획서인 “일루미나티 수기 초안” 또는 “일루미나티 원본기록”을 외쳤다. 바이샤우푸트는 독립적인 독일지방 바바리아(Bavaria)에 빛의 교단 본부롯찌를 설치했으며, 당시 가장 강력한 2 개국 영국과 프랑스를 통제할 수 있는 계획을 안출해 냈다. 그는 자신의 실천계획서인 일루미나티 기록과 이념이 전 세계의 모든 카발리스트 롯찌로 확산되어 나아가기를 바랬다. 카발리스트들의 일루미나티 사명은, 물론 카발리스트들에 의해 통제되는 국제주의의 이념과 유일 세계정부의 필요성을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일루미나티 국제주의를 영국 프리메이슨 조직에 확산시키려는 시도가 에딘버러 대학의 철학교수이자 영향력 있는 프리메이슨인 죤 로빈슨(John Robinson)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바이샤우푸트에게 초대받아 국제주의자 계획들을 보았으며, 영국 전역의 롯찌에 그들을 확산시켜 줄 것을 요청받았다.  그는 그 요청을 거부했으며 그 계획들을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로빈슨은 1789년에 “음모의 증거들(Proofs of Conspiracy)"이라 부르는 바이샤우푸트의 계획에 대한 책을 썼다.

1784년, 바이샤우푸트가 쓴 글들의 일부를 옮기던 바이샤우푸트의 측근자 한 사람이 죽었다. 그의 시신은 바바리안 관리들에 의해 조사 받았으며 그 뒤에 바이샤우푸트의 기록들이 바바리안 정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바바리안 정부가 바이샤우푸트와 빛의 교단을 조사하기로 결정하자 그를 비롯한 추종자들은 프랑스의 카발리스트 선구자 쟈끄 드 몰라이의 운명을 피해 스위스로 줄행랑치기로 결정했다. 폰(Von Zwack)과 배론(BaronBassus) 2 명의 일루미나티 일원의 양 쪽 집은 도망가지 않았으며 1786년에야 적발되었다.

바바리안 정부는 그 사악한 계획을 검토한 후에, 유럽의 정부들을 접수한다는 카발리스트를 위한 바이샤우푸트의 계획을 1786년에 출판했다. 카피본들이 당시 대부분의 유럽 지도자들에게 보내졌다. 심지어 프랑스 여왕 마리 앙뜨와네뜨 마저 군주정치를 전복하려는 프랑스의 메이슨 롯찌의 음모를 눈치챈 그녀의 언니의 경고를 따라 바이샤우푸트 기록의 카피본을 받았다. 그녀와 그녀의 군주정치에게는 불행스럽게도, 그녀는 많은 경고들을 무시했다. 바이샤우푸트 계획은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성취되었다.

일루미나티에 대한 바바리안의 진압 뒤에, 바이샤우푸트와 대부분의 그의 추종자들은 스위스로 도망가서 카발리스트 도그마와 카발리스트 아래 통합된 세계정부의 목표를 확산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바이샤우푸트는 1830년 죽을 때까지 모든 종교와 정부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주도했다. 그의 자리는 제네바에서 태어나 뒤에 이태리로 옮겨간 마찌니(Giuseppe Mazzini)가 계승했는데, 마찌니는 1834년에 빛의 교단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1872년 그가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마찌니는 또한 “젊은 이태리(Young Italy)”라 부르는 또 다른 비밀사회 단체를 창설했다. 그는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애국적인 단체들을 통제하기 위해 바이샤우푸트의 비밀 침투와 지배이념들을 이용했다. 그는 가까스로 이탈리아 민족주의자 운동들을 장악할 수 있었으며 1849년에 로마에 이탈리아 공화국을 선포했다. 한 나라의 영도자로서, 그는 이제 유일 세계정부를 위한 바이샤우푸트 계획을 이행할 수 있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프랑스 혁명과 이탈리아 공화국을 탄생시킨 프리메이슨의 핵심조직 『일루미나티』의 실체를 알아보았다. 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다시 프랑스 혁명으로 되돌아 가보자.

프리메이슨 조직의 이념은 프랑스로 하여금 스스로 구 체제를 파괴하도록 유도했고, 구체제를 보호하는 모든 것을 전복하도록 했다. 당시 저명한 프리메이슨 인사로는 계몽주의 사상가, 백과전서 파로 알려진 달랑베르(D'Alembert), 디드로(Diderot), 엘베시우스(Helvetius), 돌바(D'Holbach), 볼테르(Voltaire), 꽁도르세(Condorcet) 등이 있었는데 혁명은 우선 이들에 의해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념적인 씨를 뿌려 급속히 발아되었다. 특히 볼테르는 폭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악마와 같이 거짓말을 해야 하며, 소심하게 하지 말고, 일시적으로 하지 말며, 대담하게 일관적으로 하도록 충고하고 있다. 심지어 콜로 데르보아(Collot d'Herbois)에 의한 일반원리는 “혁명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며 폭력을 정당화했다.

혁명개시를 지시한 비밀권력은 끔찍한 파괴적 무기임을 증명할 수 있는 외견상 고상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념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대중들에게 멋진 약속을 선물하는 듯이 보였고 높은 소리를 내는 말로 가득찬 어귀로 구성되어 판에 박은 묘한 분위기까지 연출했다. 바스티유가 점거되었을 때 프리메이슨 조직은 친밀하게 다듬어진 헌장을 인류에게 선물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갖게 되었다.

『사회에 살고있는 인간과 시민의 천부 인권선언』안(案)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바로 라파예트(Lafayette)였는데, 그것은 헌법의 첫 장을 삼기 위해 다듬어진 것이었다. 1789년 8월 25일,  300명 이상의 메이슨 출신 의원들이 참가한 제헌의회에서 그 동안 롯찌(Lodge:프리메이슨 집회)에서 오랫동안 가다듬은 인간의 불멸의 권리선언 교재는 심지어 단어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마침내 모두 채택됐다.

혁명을 조직적, 집중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메이슨 조직 유럽의회가 1784년 프랑크푸르트 인근 빌헬름스바드(Wilhelmsbad)에서 열렸는데, 『일루미나티(Illuminati)』조직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역할을 담당했다. 여기에서는 향후 따라야 할 방침을 결정했는데, 많은 의제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를 죽이는 방법이 논의되었다. 1822년 베로나(Verona) 의회에서 프러시아 공사였던 폰 하우그위츠(Count von Haugwitz)는 1977년, 프러시아, 폴란드, 러시아의 롯찌(Lodge)를 책임 맡은  적이 있으며, 많은 나라에서 메이슨 모임을 주선하도록 위임된 사람이었다.

그는 그러한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얻은 확고한 신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1788년 이후 프랑스 혁명과 모든 공포분위기 속에서 자행된 왕의 암살 등 프랑스에서 벌어진 모든 것이, 이미 그 때에 결정된 것일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준비하고 지시하는 메이슨 조직의 모임과 지시, 맹세와 암호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고 말한다.

꽁트 비리외(Comte de Virieu)는 리용의 메이슨 롯찌(Lodge) 『자비의 기사단(Les chevaliers Bienfaisants)』을 대표해 빌헬름스바드(Wilhelmsbad)에서 열린 유럽회의에 참가했는데,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가지고 온 비밀들을 말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믿는 것을 말한다면, 음모가 잘 꾸며지고 있으며, 아주 잘 고안되고 너무 뿌리가 깊어 종교나 정부가 굴복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바리아 외교사절의 아들 교부(敎父) 아벨(Abel)은 1898년 비엔나에서 행한 연설에서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내용을 언급했는데, 1784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절충주의의 그랜드롯찌>라는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하며 그 중의 한사람인 자기 할아버지가 프랑스 왕 루이 16세와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에 대해 사형선고 내리는 방안을 표결에 부쳤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아버지의 죽을 때까지의 소원은 아들인 자신이 그와 친척들이 행한 해악을 대속하도록 헌신하는 것이었다 하며, 만일 자신이 1870년 7월 31일에 있었던 아버지의 유언대로 행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일찍이 프랑스 왕 필립 4세 르 벨이 1307년, 템플기사단에 대해 압제의 조치를 취하고 싸운 이래, 카발리스트들은 프랑스 군주를 공적으로 간주한 적이 있다. 1700년대에 카발리스트들의 목적중의 하나는 프랑스 군주제도의 타도였다. 메이어 로스챠일드(Meyer Rothschild)는 프랑스 군주정치를 타도하기 위한 조직을 창설하기 위해 포루투갈 출신 카발리스트 유태인 마르티네즈 파스칼리스(Martinez Paschalis)를 신입회원으로 영입해 자금을 대기로 결정했다. 파스칼리스는 먼저 로스챠일드로부터 자금을 받아 다른 카발리스트 유태인을 신입회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빠리에서 “카발라 사제들의 교단”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파스칼리스는 2 명의 다른 카발리스트 유태인을 뽑았는데, 한 사람은 스페인 출신의 ‘코데를로스 라클로스(Choderlos de Laclos)’였으며 또 한 사람은 이태리 시칠리안 출신의 ‘구이세프 발사모(Guiseppe Balsamo)’였는데 뒤에 이름을 ‘카운트 알레싼드로디 카글리오스트로(Count Alessandrodi Cagliostro)’로 바꾸었다. 프랑스 귀족정치에서 카발리스트들에게 발판을 허용하는 기회는 왕실내부의 분쟁이었다. 오를레앙의 루이 필립 요셉은, 달리 오를레앙의 공작으로 알려졌는데, 스스로 프랑스 옥좌를 주장했다. 그 공작은 국왕 루이 14세의 동생이었다.

왕위계승이 공작의 조카에게 돌아간 이래, 그는 현재의 군왕과 함께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그는 못된 아이로 자라나, 대부분의 재산을 악행을 저지르는데 탕진했다. 그는 공작의 궁전과 소유지를 포함하여 그의 자산들을 로스챠일드와 멘델손으로부터 후원받고 있는 돈 많은 카발리스트 유태인에게 팔 결심을 했다. 로스챠일드와 멘델손은 공작의 궁전과 소유지를 경영할 대리인을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그 궁전과 소유지를 경영할 대리인으로 ‘코데를로스 라클로스(Choderlos de Laclos)’와 ‘구이세프 발사모(Guiseppe Balsamo)’를 전진 배치했다.

라클로스와 발사모는 그 궁전을 평판이 아주 안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 라클로스는 발사모가 방탕한 포르노 작품을 만드는 동안, 그 궁전 안에 공공의 음란시설을 조성했다. 그 의도는 모두 왕실가족을 불신하게 만들고 수치스럽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평민들을 자극하여 프랑스 왕실에 반란을 일으키게 한 다음 왕실에 악감을 갖도록 할 것이었다. 로스챠일드는 자신의 제휴자인 멘델손을 불러 혁명을 위한 바이샤우푸트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파스칼리스와 함께 일하도록 요청했다. 바이샤우푸트는 바로 자신의 지하운동을 돕기 위해 파스칼리스에게 자신이 쓴 많은 글들을 보내주었다. 파스칼리스는 자신의 운동을 행동 개시할 중류층 프랑스인들을 충분히 모집할 수 있었다.

로스챠일드와 멘델손으로부터 자금을 받은 파스칼리스는 카발리스트 운동에 비 유태 출신 프랑스 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쟈코뱅 클럽(Jacobin Club):프랑스 혁명 때 과격파 쟈코뱅당으로 유명, 도미니카 수도사를 쟈코뱅이라 하는데 도미니코회의 St. Jacob 수도원에서 회합을 열었다 해서 쟈코뱅 클럽이라 했다』을 창설했다. 파스칼리스가 그때 영입한 비유태 출신 프랑스인이 바로 유명한 “오노르 가브리엘 빅또르 리께띠 꽁뜨 드 미라보”, “막시밀리앙 후랑소와 마리 이시도르 로베스삐에르”, “죠르쥬 자끄 당통”, “쟝 뽈 마라” 등이다. 파스칼리스와 그의 쟈코뱅당 그룹은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돌격대를 조직했다. 바스티유 탈환 이후, 그의 측근자 그룹은 프랑스 군주로부터 권력을 몰수했다. 파스칼리스는 그 때 새로운 통치 엘리트의 새 지도자들로 자신이 영입한 로베스삐에르(Robespierre), 마라(Marat), 당통(Danton), 미라보(Mirabeau)를 전진 배치시켰다.

로베스삐에르와 그의 측근들은 국왕 루이 16세(Louis 16)와 왕후 마리 앙뚜와네뜨(Marie Antoinette)를 포함해 왕실가족 일원들을 체포해 처형시켰다. 로베스삐에르는 그때 공화국을 선언하고 군주정치를 폐지했다. 로베스삐에르는 이윽고 콩코드 광장에 기요틴(단두대)을 설치해 자신의 정적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테러통치를 수행했다.(물론 지금 이 자리에는 프리메이슨의 번식의 상징, 오벨리스크가 대신 들어서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수 천명의 사람들이 카발리스트의 지도 법규아래 즉석에서 처형되었다. 카발리스트들은 마침내 300년 보다 더 오래 전에 프랑스 국왕 필립 4세가 템플기사단의 지도자 쟈끄 드 몰라이(Jacque de Molay)와 그의 추종자들을 처형한 것에 대한 복수를 시작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상의 정보만 가지고도 독자 여러분은 세계사를 보는 안목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을 거라 믿는다. 새로운 안목을 틔워나가는 것은 이제부터가 본론이니 끝까지 탐독해 보자. 끙끙거리며 암기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프리메이슨 조직이 어느 정도로 서양사에 깊숙이 개입했는지 대국만 파악하면 된다. 그럼 이제, 함께 포루투갈, 스페인, 이태리, 터어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미국의 혁명과정으로 잠시 여행해 보자. 만약 읽기가 힘들면 미국 편과 러시아 편은 반드시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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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원전
2005/04/10 8898
88
 '만주는 우리 땅' 입증 유럽 古지도 대량 발견

안원전
2005/02/21 6158
87
 식민사관(植民史觀)의 계보

안원전
2005/02/15 6994
86
 우리의 역사는 이렇게 말살되었다

안원전
2005/02/15 7249
85
 백두산 정계비에 적힌 그 강… 토문강 찾았다 조선․청의 국경… 두만강과 별개의 강으로 드러나

안원전
2005/02/12 6313
84
 문헌에서 본 우리 겨레의 고대역사

안원전
2004/12/25 6937
83
  프리메이슨서양사15(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2]

안원전
2003/10/22 19420
82
  프리메이슨서양사14(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3]

안원전
2003/10/22 13651

 프리메이슨서양사13(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3/10/22 12771
80
 프리메이슨서양사16(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3/10/22 7799
79
 테마 : [역사의 진실] 심청전의 무대는 호남성 동정호 주위 [1]

안원전
2004/09/08 7551
78
 콜럼버스보다 71년 앞서 명나라 제독… 3천개 나라 10만리를 누빈 대항해

안원전
2004/08/31 7656
77
 일만년 대륙사를 꿰는 왕도-한민족 영적세계의 원형인 신교의 세계

안원전
2004/08/17 6063
76
 檀君은 神話아닌 우리國祖 - 원로 문헌 친일매국 사학자 이병도(李丙燾)씨 조선일보 특별기고 - 조선일보 1986년 10월9일(목)자〉 [1]

안원전
2004/08/01 6533
75
 방촌 임균택 박사 한경 서문 [1]

안원전
2004/05/22 8479
74
 원문:“영토제국주의 드러낸 허점투성이 논리”-쟁·점·별로 살펴본 국내 학계의 반·박(중국어로 번역)

안원전
2004/01/17 6607
73
 한국사의 인식과 환단고기-반도 고고학의 해독

안원전
2003/12/30 8215
72
 [동영상]대학가에 민족혼의 바람이 불고있다 [3]

안원전
2003/12/25 9674
71
 <개천절 방북기>과연 檀君이 單君임을 확인한 행사 학술토론회, 북측 `대동강 문화` 강조 [1]

안원전
2003/10/11 6369
70
비밀글입니다 (구) 홈페이지 소개글(기록용)

안원전
2003/08/04 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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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사의 여명과 역사의 수난 - 송호수,두계학파와 실증사학 -신복룡

안원전
2003/05/14 8414
68
 한민족의 뿌리와 미래(가장 쉽게 정립된 기초 강의안이므로 먼저 읽고 시작할것!),동방 한민족의 대도 세계와 민족사를 공부하는 정신자세에 대하여 [2]

안원전
2003/01/23 9345
67
 민족사의 맥을 찾아서 (박성수 교수)

안원전
2003/01/23 9720
66
 프리메이슨 서양사3(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2/07/12 1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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