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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의 인식과 환단고기-반도 고고학의 해독
■ 한국사의 인식과 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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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폐셜에 방영된 환단고기



1. 한국사의 현주소

   1) 한국인의 자아 상실증

한국사는 일인칭 주격 <나>를 잃어버린 머리 없는 역사이다. 남들이 들으면 우리 갯소리 같은 사실인데, 고등학교 한문 교과서까지도 夷를 <오랑캐 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바로 「나는 되놈이요」라고 하는 꼴이다.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보아도 우리나라 역사는 바로 대륙에 채이고 섬나라에 짓밟힌 꼴과 다를 바가 없으니, 어려서부터 이렇게 배운 사람들이 패배주의적이고 비관적인 국가관·민족관에 빠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스러울 것이다.

사학계도 만찬가지다. 어째서 삼국사기의 말보다 일본인이나 미국인의 말에 더 신빙성을 부여해야 되는 것일까? 바로 <나>를 잃어 버린 역사이기에, 삼국사기의 기록에 「…」라고 있다는 말보다 일본학자 ○○가, 예일대학의 무슨 무슨 박사가 이렇게 저렇게 주장했다는 말이 훨씬 믿음성 있게 들리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다 나라의 장래에까지도 심각한 병폐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들인데, 여기에도 치유의 방법은 있을 것이다. 옳고 바른 <역사><국사>의 인식이 곧 그것을 치유한다. 국사교육의 위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 국사교육의 허상이란 이제껏 한국의 자아상실증 즉, 일인층 주격의 상실증만을 초래해왔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의 현실을 보면 과거 사대주의 시대의 껍데기와 일제시대의 식민지사학을 벗어나지 못한 구태의연함이 잔뜩 도사리고 있다.

정치·경제·과학·문화등 온갖 분야가 8·15의 광복과 독립의 혜택을 받았건만, 사학만은 아직 광복 이전의 옛껍질을 벗어 버리지 못한 해방 이전의 상황이 계속되어, 일제시대의 학설과 史論이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학의 이론이라면 몰라도 한국사의 이론이나 사론 같은 것이 해방의 전후를 관통하여 두루 통설로 횡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황국사관(皇國史觀)에 시녀 구실을 했고, 한국민족 말살을 겨냥해서 정치 성향을 띠고 날조된 사학의 이론이 어째서 자연과학의 公理나 지동설·만유인력설 마냥 해방 광복과 관계없이 통설로 적용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사학을 두고 어떤 이는 말한다. 중국을 종주국으로 떠받들던 전근대의 사대주의 사관을 <중독(中毒)>이라 표현하고, 일본의 황국사관을 <왜독>이라 표현하고, 해방 후 서양학의 영향을 이룩된 사학을 <양독>이라 하여, 한국사의 구조식을 중독+왜독+양독의 <삼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 식민사학의 이른 바 조선사는 바로 중독+왜독이라는 복합 증상이지 결코 <왜독>이라는 단순 현상은 아닌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렇게 볼 적에 현대의 <양독>이야 말로 전 근대의 사학과 일본 식민사학을 복합한 현대의 괴물사학으로서, <양독=중독+왜독+양독>의 집대성이라고 극언할 수도 있을 터이니, 과연 그 주장처럼 한국사의 구조식은 바로 삼독이라 할만도 하다.



   2) 국사와 고고학

엄밀히 말해서 한국사의 현실은 그 지정학적 현실이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존립을 불가능하게 한다. 조국을 떠나거나 잃고 세계를 방랑하는 미국이나 소련 안의 히브리민족(곧 유태민족)에게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현장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니, 미국이나 소련 땅의 출토물이 히브리 역사의 실증 자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본토나 중동지방이 아니고선 이스라엘의 고고학은 지정학적인 한계성 때문에 성립될 수 없음은 굳이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터이다.

한국 고고학의 현실이 꼭 이와 같다. 한반도의 절반 곧 半 반도라는 제약된 지정학적 조건 밑에서는 고고학이 설 자리가 없다. 가끔 지상에 오르내리는 고구려의 광개토경호태열제의 훈적비 비분에 관한 논쟁도 현재로선 현장이 없는, 허공의, 관념적 논쟁이 되거나 고작해야 비문 해석상의 논쟁에 시종할 뿐, 제대로 고고학다운 연구나 논쟁이 되질 못한다. <현장이 없는> 고고학의 비애라 할 것이다.

한편 우리의 상고사는 <중국 대륙+몽고 대륙+시베리아 대륙+한반도+일본열도>에서 전개된 역사이지 결코 한반도만의 역사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한반도의 남쪽 반반도에만 학문적 연구와 고고학적 현장이 열려 있을 뿐이라는 엄청난 제약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약이 거의 없었던 광복 전의 일제시대에는 반대로 이를 연구할 학문적 주권이 또한 없었다.

때문에 현재 한국 고고학계가 하늘처럼 믿고 있는 학문적 자료 고고학적 자료들은 모두 지난날의 왜인들의 손에 의하여 이룩된 업적들 뿐일 수밖에, 심지어 고고학의 지표나 연표마저도 일본 사람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순수한 우리 학계의 힘만으로는 성립되질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왜색 자료들이 과연 정확한 것인가?>하는 문제는 별도로 생각키로 한다 해도, 현재 돈이라면 ○○도 팔아치울지 모르는 골동품 업계에서 저 낙랑 유물 와당 자기들이 어떤 푸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보면 한심하기 더할 바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

패전 후 또다시 경제대국으로 등장하여 값나가는 것이면 쓰레기라도 거둬가는 일본의 관광객들에 의해 한때는 에가미 나미오의 이른 바 기마민족설 때문에 서울 인사동의 말 그림이 어처구니 없는 고가로 팔리더니, 낙랑시대의 와당이나 도자기들은 거저 준다고 해도 가져가질 않는 푸대접을 받았다.

일본 식민사학이 날조한 낙랑·현도·진번·임둔의 이른 바 <한사군>의 범죄가 산산조각이 나서, 국사 시험지에 어김없이 오르내리며 어린 학생들의 뇌리에 처박히게 했던 소위 한사군 설이 이젠 원자폭탄의 낙진마냥 떨어지고 있는 것은 웃지 못할 현실이다. 그렇지만 「낙랑태수지장이라는 글이 들어간 낙랑봉니라는 진흙덩이가 저 일제시대에는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요즘 돈으로 아파트 열 개나 될 높은 보상금으로 매입되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낙랑와당이라고 해서 전가의 보물로 알고, 모서리 한곳 떨어져 나간 곳없는 완전한 와당을 해방 뒤에도 국보급 이상으로 아끼던 어느 골동품 애호가가 이를 처분코자 70년대에 인사동에 들고 나왔으나, 낙랑 유물은 값이 형성되지도 않았고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도 않는 한낱 진흙덩이로 취급되었다. 이에 한 업자의 충고로 작고한 모 박물관장을 찾아가 감정을 의뢰하니, 「낙랑 유물의 황금기는 지났다」고 하는 푸념 한마디로 감정조차 거부하는지라, 전래의 가보라 믿어 온 낙랑와당을 땅에 내어 던져 가루로 만드는 서글픈 촌극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한국 고고학이 일본의 고고학 자료를 믿을 것인가 불신할 것인가의 기준이 될 만한 일화이다. 한국 고고학의 현장이 없다는 이 소박한 공식을 믿을 일이지 결코 다른 구실을 찾을 수가 없다. 고고학의 현장을 찾기 위해서도 한국은 발전해야 한다. 한반도는 결코 고고학의 대상 강역이 아닌 셈이다.


일만년의 기나긴 역사 중 극히 일부분의 출토품밖에 나올 수 없는 반반도 안의 고고학의 현장을 고고학도들은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강연차 충북의 어느 대학엘 간 적이 있다. 나의 상고사 강의가 끝난 다음 그 지방 대학 박물관장이라 칭하는 모교수의 대접을 받으며 박물관의 진열실에서 돌덩이 하나를 기증받았다. 이 돌덩이가 단군 이전 수천년의 역사를 웅변하는데 임교수(필자)의 노력이 아깝다고 동정(?)한다.


나는 농지거리로, 「이 돌 어느 구석에 한웅천황의 신시개천의 역사가 적혔으며 천부경의 경문이라도 적혔는가?」고 했더니 「아니! 그런 것은 비석이고, 이 돌은 거금 만년전의 인간들이 살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지요」라고 한다. 「당신은 이 돌덩이를 보고서야 겨우 그걸 믿는가? 난 보질 않고도 믿는데 고고학과 학생들은 골이 좋지 않은 모양이군」이라고 대꾸했다. 사실 이 대학교수에게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고고학의 역할과 학문의 기능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한서> 지리지에는 산동반도에 <백지래왕지묘(百支萊王之墓)>라고 하는 고적이 있다고 했다. 단재 신채호의 추측으론 <백제 동성왕의 무덤>이라고 했다. 산동반도에 가서 이 무덤을 조사하여 그 사실 여부를 밝혀야 한다. 단재의 추측이 맞는지, 혹은 중국 어느 시대의 어떤 사람의 뼈인가를 밝혀야 한다. 바로 그것이 고고학의 사명이요, 또 고고학의 본분이다. 고고학의 사명은 거기에서 끝난다. 동성왕의 무덤이 사실이라면 그가 그곳에 묻히게 된 동기나 배경 및 역사는 역사학이 규명할 일이다.

또 양자강 남쪽 건강시 (지금의 남경) 교외에는 공주의 무령왕능보다 규모는 크면서 양식은 같은 무덤이 300여개가 있다. 한국 고고학 학자는 그것을 개발하여 정체를 밝혀야 한다. 과연 종래의 주장처럼 이들 무덤이 양(梁)나라의 무덤들인가, 아니면 백제의 무덤들인가를 밝혀야 한다. 백제인들이 양자강 남쪽에 무덤을 남겼으리라는 추정은 <북사(北史)>의 「백제 <···> 거강(據江) 좌우(左右) <···>」라는 글로써 가능하다. 이를 설명할 학자는 사학자이며, 고고학자가 물론 아니다. 고고학은 그 역할이 사학자의 주장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방계과학이다.

고고학은 그 학문의 출발점이 <사학의 방계과학>이라는 제약 밑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의 사학과 고고학은 그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 고고학이 자기 본분을 잊고 사학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 고고학의 때묻은 자료들을 빌미로 해서 현장 있는 학문이 아니라 관념적 고고학이라는 엉뚱한 방법론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교양국사>라는 인쇄물이 있어 내용을 훑어 보니 국사가 아니라 안압지의 출토물, 조선조 중기의 건축 양식등 고고학 일색의 책이었다. KBS라는 국영방송국이 편집자다 국사와 고고학의 역할을 이렇게 몰라도 되는 것인가? 공연히 짜증이 난다. 교양 고고학이라면 몰라도 교양국사라는 표절은 곤란하다. 이렇게 보면 한국사의 구조식은 <삼독+고고학의 횡포>라는 해독으로 요약되는 것이다.



                                                                     한단고기. 1986. 임승국. 정신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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