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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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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에서 본 우리 겨레의 고대역사


문헌에서 본 우리 겨레의 고대역사

10대 수난사 | 단군조선 이전 | 치우관련 자료 | 단군의 치세


우리 선조들께서 성스러운 땅에 신령한 기운과 능력을 펼쳐 나라를 열어 하늘민족의 밝은 지혜를 전해 온 지 일만 년이 지나는 동안 달이 차면 기울고 해가 중천을 밝히면 서산으로 쓰러지는 자연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으매 우리 겨레의 융성함이 어찌 한결 같을 수 있으리오만, 민족의 정기를 유지하고 혼을 붙들어 맬 숱한 우리 역사서의 소실은 참으로 안타깝고도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이 중국의 삼황오제와 메소포타미아문명을 이야기 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고대역사에 대하여는 이야기 할 수가 없게 되고, 한나라와 당나라의 문화에 대하여는 유창하게 말하나 고구려의 대무정신과 신라의 화랑도는 설명할 수 없게 되었고, 중국의 사서삼경은 능숙하게 외우나 사서삼경의 바탕이 된 우리 민족의 삼대경전-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말하라면 눈과 귀와 입이 다 같이 막히고 굳어 버리니 이 모두가 우리의 문헌이 보존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고대사료의 멸실을 가져온 가장 주된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정치적인 외세에 의한 사료의 타격(전쟁에 의한 방화, 탈취 등)을 들 수 있는데 대대적인 사료의 멸실을 가져 온 큰 사건만 추려서 흔히 <10대 수난사>로 정리하고 있는 실정이다.-아래 우리 고대사의 10대 수난사 참조
둘째 이유는 종교적 외세에 의한 핍박이니, 적어도 우리나라 사서의 십대수난의 틈바구니에서 잔존할 수 있었던 약간의 사료마져도 종교적 편견 때문에 사대적으로 곡필이 자행되었으며 특히 일제시대의 식민사관은 치명적이다.

옛날 단군조선에서는 신지고글이 편수한 <배달유기>가 있었다는 것이 단군세기에 명기되어 있고, 고구려에서는 유기 백권이 있었고, 그후 신라에는 <신라본기>, 백제에 <백제본기>등이 있었다는 것이 일본의 정사인 <일본서기>와 우리의 여러 고문헌이 전하고 있다.
애국적인 민족사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듯이 <삼국유사>는 독실한 불승인 보각국사 일연에 의해 불교적으로 윤색되었고, <삼국사기>는 사대성이 강한 유학자 김부식의 지휘하에 존화주의적으로 각색되었으니, 이렇듯 우리의 민족사론은 외래신교에 의해 한없이 천대, 삭탈 내지 박멸당하는 참담한 민족정신의 유린행위가 자행되어 오던 가운데서도 가장 치명적인 타격은 치밀한 계획아래 말살 조작된 일제의 식민사관이라고 하겠다.
이 식민사관에 의하여 우리 겨레의 역사는 삼국시대가 최초의 국가형태로 규정되는 반 동가리도 못되는 반의 반동가리 역사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아.. 주체성을 상실한 우리의 역사를 배우는 이땅의 어린 동량들이 지금도 우리 겨레를 지칭하는 이(夷)를 <오랑캐 이>라고 배우고 있고, 우리의 역사는 좁은 반도에 국한되어 대륙에 채이고 섬나라에 짓밟히면서 "조선놈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등의 패배주의적이고 비관적인 민족관을 배우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는 일을 젖혀두고 무엇이 이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다행이 생각이 깊은 어른들이 있어 우리의 사료들을 힘써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여 후세를 위하여 준비하여 두었으니 여기에 그 작은 조각들이나마 소개하여 유교와 불교와 도교가 우리 하늘민족의 교시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고 인도의 시성 '타골'이 증언하였듯이 "빛은 동방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하는 징검다리로 삼고자 함이다.

■ 우리 고대사의 10대 수난사

제1차 고구려 동천왕 18년 위나라 장군 유주자사 관구검이 고구려 수도 환도성을 공격하여 많은 사서를 소각함.
제2차 백제 의자왕 20년 나당 연합군에 사자성이 함락되면서 사고가 소진됨
제3차 고구려 보장왕 27년 당의 장군 이적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전적을 모두 탈취 함.
제4차 신라 경순왕 원년 후백제 견훤이 경애왕을 치고 신라 책을 전주로 옮겼다가 왕건에게 토멸 당할 때 방화 소각 됨.
제5차 고려 인종 4년 금나라에 서표(상국으로)로 바친 후 주체서적은 철수해 감.
제6차 고려 고종 20년 몽고난으로 홀필렬에 의해 소각됨. 삼한고기, 해동고기가 이때 없어짐.
제7차 조선 태종 11년 5부학당을 송제에 의하여 설치하면서 유교를 장려하고 비유교학 서적 일체를 소각함.
제8차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무수한 전적이 방화에 의하여 소실됨.
제9차 병자호란 때 아까운 사서들이 수없이 잿더미가 되어 버림.
제10차 일본강점 이후 일본이 식민지 교육정책으로 군경을 동원하여 탈거, 개조 혹은 소각해 버림.



■ 단군조선 이전

<삼성기 三成記> 全 下篇
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 처음 아만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사타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한(九桓)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
......
옛글에 이르기를,
[파나류산 밑에 한님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 동쪽의 땅이다. 파나류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그 땅이 넓어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여 리니 통틀어 말하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비리국 卑離國, 양운국 養雲國, 구막한국 寇幕汗國, 구다천국 句茶川國, 일군국 一群國, 우루국 虞婁國(혹은 필나국 畢那國), 객현한국 客賢汗國, 구모액국 句牟額國, 매구여국 賣句餘國, 사납아국 斯納阿國, 선비국 鮮裨國, 수밀이국 須密爾國이니 합해서 12국이다. .....]


신시역대기
배달한웅은 천하를 평정하여 차지한 분의 이름이다. 그 도읍한 곳을 신시라고 한다. 뒤에 청구국으로 옮겨 18세 1,565년을 누렸다.

1세를 한웅천황이라하며 또 거발한이라 하니 재위 94년에 120세까지 사셨다.
2세는 거불리항웅이니 재위 86년에 102세까지 사셨다.
3세는 우야고한웅이니 재위 99년에 135세까지 사셨다.
4세는 모사라한웅이니 재위 107년에 129세까지 사셨다.
5세는 태우의한웅이니 재위 93년에 115세까지 사셨다.
6세는 다의발한웅이니 재위 98년에 110세까지 사셨다.
7세는 거련한웅이니 재위 81년에 140세까지 사셨다.
8세는 안부련한웅이니 재위 73년에 94세까지 사셨다.
9세는 양운한웅이니 재위 96년에 139세까지 사셨다.
10세는 갈고한웅 또는 독로한이라 하니 재위 100년에 125세까지 사셨다.
11세는 거야발한웅이니 재위 92년에 149세까지 사셨다.
12세는 주무신한웅이니 재위 105년에 123세까지 사셨다.
13세는 사와라한웅이니 재위 67년에 100세까지 사셨다.
14세는 자오지한웅인데 세상에서는 치우천왕이라 하며 청구국으로 도움을 옮겨서 재위 109년에 151세까지 사셨다.
15세는 치액특한웅이니 재위 89년에 118세까지 사셨다.
16세는 축다리한웅이니 재위 56년에 99세까지 사셨다.
17세는 혁사세한웅이니 재위 72년에 97세까지 사셨다.
18세는 거불단한웅 혹은 단웅이라 하는데 재위 48년에 82세까지 사셨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한웅천황으로부터 다섯 번 전하여 태우의한웅이 계셨으니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기를 반드시 묵념하여 마음을 맑게하고 조식보정케 하시니 이것이야말로 장생구시의 법이다.
아들 열 둘을 두었으니 맏이를 다의발한웅이라 하고 막내를 태호라 하니 또는 복희씨라고 한다.

<밀기 密記>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의 자리를 세습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쳐 마침내 진에 옮겨 수인, 유소와 나란히 그 이름을 서방에 빛내었다. 후예는 갈리어 풍산에 살았으니 역시 풍을 성씨로 가졌다. 뒤엔 마침내 갈라져 패, 관, 임, 기, 포, 이, 사, 팽의 여덟가지 성이 되었다. 지금 산서성의 제수에 희족의 옛 거처가 있다. 임, 숙, 수, 구, 수유의 나라는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대변경 大辯經>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로부터 나와 우사가 되었다. 신용의 변화를 보고 괘도를 그리고 신시의 계해를 바꾸어 갑자를 처음으로 하였다. 여와는 복희의 제도를 이어받았다. 주양은 옛 문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육서를 전했다. 복희의 능은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 부산의 남쪽에 있다.
신농은 열산에서 일어났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다. 소전은 소호와 함께 모두 고시씨의 방계이다. 대저 당시의 백성들은 정착해서 생업을 이어갔으며, 차츰 크게 되자 곡마약석의 기술도 또한 점점 갖춰져서 낮에는 저자를 이루어 교역하고 되돌아갔다. 유망(신농)이 정치를 하면서 급하게 모든 읍의 두 백성들이 제휴하도록 했으나 떠나는 백성들이 많아져서 세상의 도가 매우 어지러워졌다..-여기서의 복희, 신농, 그리고 아래의 헌원 혹은 헌구라고 한 것은 중국고대사의 전설적인 삼황오제 중 삼황인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을 일컫는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제4
..... 웅씨가 갈라져 나간 자에 소전(少典)이라고 있었는데 안부련(安夫連)의 말기에 소전은 명을 받고 강수에서 병사들을 감독하게 되었다. 그의 한웅 아들 신농은 수많은 약초들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뒤에 열산으로 이사하였는데 낮에는 교역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편리하게 하였다. 소전의 별고에 공손이라고 있었는데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하였으므로 헌구로 유배시켰다. 헌원의 무리는 모두 그의 후손이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제5
<천부경 天符經>은 천제 한국에서 말로만 전해지던 글이니 한웅대성존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 현덕에게 명하여 녹도의 글로써 이를 기록케 하였다. 최고운(崔孤雲) 치원(致遠)은 역시 일찌기 신지의 전문을 옛 비석에서 보고 다시 이를 첩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 그렇거늘 본조에 이르러 뜻을 애오라지 유가(儒家)의 글에 두더니 다시 조의와 더불어 의논하여 보존할 것을 바라지 않으니, 이 또한 한스러운 일이라! 때문에 특히 표하여 이에 내어 뒤에 오는 자에게 보이고자 한다.

☞ 천부경(총 81자) 원문 및 해설보기

<삼일신고 三一神誥>는 본디 신시개천의 시대에 나와서 책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대저 하나를 잡아 셋을 포함하고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옴의 뜻으로 근본을 삼는다. 5장으로 나뉘어져 천신조화의 근원과 세상 사람들과 사물들의 교화를 상세히 쓴 것이다. ...... 세상에서는 혹은 <삼일신고>를 가지고 도가의 제사지낼 때 올리는 말씀이라고도 하지만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우리 한국은 한웅으로부터 개천하여 천신에게 제사지내고 신고를 조술하였으며, 산하를 널리 개척하였고 백성을 교화하였다.

☞ 삼일신고(총 366자) 원문 및 해설

<삼황내문경 三皇內文經>은 자부선생이 헌원에게 주어 그로 하여금 맘을 씻고 의에 돌아오게 한 것이다. 선생은 일찌기 삼청궁에 사셨으니 궁전은 청구국 대풍산의 남쪽에 있었다. 헌원이 몸소 치우를 배알했는데 가는 길에 명화를 거치게 되어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경문은 신시의 녹서로 기록되어 세 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 추연하고 주를 더하여 따로 신선음부의 설이라고 한 것이다.

<참전계경 參佺戒經>이 세상에 전해진 것은 을파소 선생이 전한 것이라 한다. 선생은 일찌기 백운산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고 천서를 얻으니 이를 <참전계경>이라 했다.
을파소가 덧붙여서 말했다.
「신시이화의 세상은 8훈으로써 경을 삼고 5사를 위로 삼아 교화가 크게 행해져 홍익제물하였으니, 참전이 이뤄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금의 사람들은 이 전계에 의해 더욱 더 스스로에 힘쓸지면, 백성들을 잘살게 하는 일이 어찌 어려운 일로 될까 보냐?」


■ 치우관련 자료

<태백일사> 신시본기
우리 치우천황께서는 신시의 옛 힘을 받으시사 백성과 더불어 제도를 새롭게 하시니, 능히 하늘에 제사지내 삶을 아시고, 땅을 여시사 삶을 도모하시고, 사람을 발탁하시어 삶을 숭상할 수 있으셨다.
온갖 사물의 원리는 빠짐없이 몸소 살펴보시니, 그 덕이 미치지 않는 곳 없었고, 지혜는 뛰어나지 않음이 없었으며, 힘 또한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셨다. 이에 백성과 더불어 범 무리들을 따로 떼어서 하삭에 살도록 하고는 안으로는 용감한 병사를 기르고 밖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셨다. 유망의 정권이 쇠약하여지니 군대를 보내어 정벌하셨다. 집안과 가문에서 장수될 만한 인재 81명을 골라 여러 부대의 대장이 되게 하고 갈로산의 쇠를 캐내어 도개, 모극, 대궁, 호시를 많이 만들어 한결같이 잘 다듬더니 탁록을 공격하여 함락시켜서 구혼에 올랐다. 연전연승하는 그 위세는 질풍과 같아서 만군을 겁에 질려 굴복케 하고 위세는 천하에 떨치더라.

한 해 동안에 대개 아홉 개 제후의 땅을 점령하고 다시 옹호산에 웅거하여 구야로써 수금과 석금을 개발하여 예과와 옹호의 창을 만들어 내고, 다시 군사를 정돈하여 몸소 이들을 이끌고 양수를 건너 출진하더니 재빨리 공사에 이르렀다. 공상은 지금의 진류이며 유망이 도읍했던 곳이다. 이해에 12제후의 나라를 점령하고 죽이니 쓰러진 시체가 들판을 그득 메우게 되었다. 이에 서토의 백성들은 간담이 서늘해 도망쳐 숨지 않는 자가 없었다. 때에 유망은 소호로 하여금 마주 싸우게 하였으나 대왕은 예과와 옹호극을 휘두르며 소호와 크게 싸우고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적의 장병으로 하여금 혼미케 하여 스스로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소호는 대패하여 변방으로 도망치더니 공상으로 들어가 유망과 함께 도망쳐 버렸다. 치우천왕은 즉시로 하늘에 제사지내 천하의 태평을 맹세하였다. 다시 군대를 진격시켜 탁록을 에워싸 일거에 이를 멸망시켰다. <관자>가 말하는 바의 "천하의 임금이 전장에서 한번 화를 내자 쓰러진 시체가 들판에 그득했다."는 대목이 이를 말함이다.

때에 공손헌원이란 자가 있었으니 토착 백성들의 우두머리였다. 처음 치우천왕이 공상에 입성해서 크게 새로운 정치를 편다는 말을 듣고 감히 저 혼자 즉위하여 천자가 될 뜻을 갖고 크게 병마를 일으켜 공격해 와 더불어 싸우려 했으므로, 치우천왕은 먼저 항복한 장수 소호를 보내 탁록에 쳐들어가서 에워싸 이를 전멸시켰다. 헌원은 그래도 스스로 굴복치 않고 감히 백번이나 싸워 오는지라 치우천왕은 구군에 명을 내려 네 갈래로 나누어 출동케 하고 자신은 보병 기병 3,000을 이끌고 곧바로 헌원과 탁록의 유웅이라는 벌판에서 계속해서 싸우면서 명령을 내려 사방에서 압축하여 참살하니, 그 숫자를 셀 수 없었고 세지도 않았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치 못하게하면서 싸움을 독려하니 적군은 마침내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켜 혼란을 일으키고 도망가 숨으며 달아나니, 백 리 안에 병사와 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연의 회대의 땅을 모조리 점령하고자 하여 곧 탁록에 성을 쌓고 회대지방을 점령하였다. 대저 당시의 서쪽에 살던 사람들은 함부로 활과 돌의 힘을 믿고 갑옷의 쓸모조차 알지 못했는데, 치우천황의 법력이 높고 강력함에 부딪쳐 마음에 놀랍고 간담이 서늘하여 싸울 때마다 매양 패햇다.
<운급헌원기>라는 책에 [치우가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알지못하고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라고 치우를 말한다]라고까지 썼으니, 역시 그 낭패한 모습이 대단했음을 상상해 알 것이다.

치우천왕은 더욱더 군대의 힘을 갖추고 사방면으로 진격했던 바 10년 동안 훤원과 싸우기를 73회였으나 장수는 피로의 기색이 없고 군은 물러설 줄 몰랐다. 뒤에 헌원은 여러 차례 싸웠으나 매양 졌으므로 원한은 더욱더 커졌다. 군대를 일으켜 우리 신시를 본따 크게 병기와 갑옷을 만들고 또 지남의 수레도 만들어 감히 싸움터마다 출전하는지라. 치우천왕은 불같이 진노하사 노여움에 부들부들 떠시더니 형제와 종당들로 하여금 감히 공격해 올 뜻을 품지도 못하도록 하였다. 더불어서 한 바탕 크게 싸움이 일어나자 한 무리를 마구 죽여 버린 후에야 비로소 멈췄으니 이 싸움에서 우리쪽 장수 가운데 치우비라 하는 자가 있어 불행하게도 공을 서둘다가 진중에서 죽게 되었다. <사기>에서 말하는 [치우를 잡아 죽이다]라고 기록한 대목은 아마도 이를 말하는 것인 듯하다.
치우천왕은 크게 화가 나시어 군을 움직여 새로이 돌을 날려 보내는 기계를 만들어 진을 치고 나란히 진격하니 적진은 종내 저항할 방도조차 없었다. 이에 정예를 나누어 파견하여 서쪽은 예탁의 땅을 지키고 동쪽은 회대의 땅을 취하여 성읍을 삼게하고, 헌원의 동쪽 침략의 길을 지키게 하였다. 치우천왕이 돌아가신 지 수천년이 된 지금 오히려 만장의 광열이 있어 능히 후인으로 하여금 흥분하여 떨쳐 일어나게 하는 듯하다.
지금 <한서> 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천왕의 능은 산동성의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높이가 7척으로 진나라와 한나라 때 주민들은 10월이면 늘 여기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반드시 붉은 기운이 있어 마치 필강 같은 것이 뻗는데 이를 치우의 깃발이라 한다고 한다. 그의 영걸스러운 혼백과 사내다운 기백은 스스로 보통 사람과는 매우 다른 바가 천년의 세월을 지나서도 오히려 없어지지 아니하는 듯하다. 헌원이 이로써 망연히 사라지니 유망도 이에 따라 영원히 떨어져 버렸다.

치우천황의 공덕은 세상에 전하여 능히 떨치고 그윽한 푸르름 속에 그 명성과 위엄은 떨어지지 않고 있음이라. 헌원 이래로 세상은 안정되지 못하였으니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안하게 베개를 베고 눕지를 못했다. <사기>에 이르되 [산을 뚫어 길을 내고 한번도 편안히 있은 적이 없다. 탁록의 강에 도읍하고 옮겨다니며 항상 거처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장수와 사병을 시켜 지키게 하는 전장에서 살았나니..]라고 한 것은 아마도 헌원이 살았을 때 전전긍긍하던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는 기록일 것이다.
또 <상서> 여형에서는 [고훈에 다만 치우가 난을 일으키다 라고만 적은 것은 그의 위엄이 무서워 기를 빼앗긴 탓]이라고 하였다. 세상에 그의 훈을 전하는 까닭은 이로써 후인을 위하여 계명으로 삼자는 뜻도 역시 깊다. 그 뒤 300년은 별일이 없었는데 다만 전욱과 한번 싸워 이를 이겼을 뿐이다.

<삼한비기 三韓秘記>에서 말한다.
또 몇 대 지나 자오지천왕 한웅에 이르다. 자오지한웅은 귀신 같은 용맹이 몹시 뛰어났고 그 머리와 이미는 구리와 쇠로 되었다.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고 구야를 만들어 주석과 쇠를 캐내어 무기를 만들고 돌을 날려 목표물을 맞추는 기계를 만들었다.
천하는 이를 크게 두려워하고 함께 떠받들어 천제의 아들 치우라 하더라. 저 치우란 말은 속어로 번개와 비가 크게 내려 산과 강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치우천왕은 신농씨가 쇠약해짐을 보고 마침내 뜻을 크게 품고 여러 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켜 진격하여 회대의 사이에 웅거했다. 헌원황제가 즉위함에 이르자 즉시 탁록의 벌판에 나아가 헌원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그를 신하로 삼은 다음에 오나라에 장군으로 보내 서쪽으로 고신씨를 공격하여 공을 세우게 하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제4
....... 계속하여 치우씨가 있었는데 구야를 만들어서 광석을 캐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들고, 또 돌을 날리는 기계도 만들었다. 이에 천하는 감히 그에게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 때에 헌구가 굴복치 않으니 치우는 몸소 군대를 인솔하고 출동하여 이를크게 정벌코자하여 탁록에서 싸웠다. 탁록은 지금 산서성의 대동부이다. 싸움이 있기전에 격문을 만들어 81종당의 대인을 소환했다. 먼저 치우의 형상을 그려 분포하더니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게 하고는 가로대,
[그대 헌구야! 짐의 고함을 밝히 들으렸다. 해의 아들이라 함은 오직 짐 한 사람뿐으로 만세를 위하고 공동생활의 옳음을 위해 인간의 마음을 닦는 맹세를 짓노라. 그대 헌구여! 우리의 삼신일체의 원리를 모독하고 삼윤구서의 행을 게을리 하였으니 삼신은 오래도록 그 더러운 것을 싫어하고 짐 한 사람에게 명하여 삼신의 토벌을 행하도록 하였으니 그대 일찌감치 마음을 잡아서 행동을 고칠 것이다. 자성은 너에게서 찾을 것이니 그대의 머리 속에 있음이로다. 만약 명령에 순응치 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진노하여 그 목숨이 제 목숨이 아닐 것이다. 네 어찌 두렵지 않은가?]
라고 했다. 이에 헌구가 평정되어 복종하니 천하는 우리를 기둥처럼 여기더라.


■ 단군의 치세

<단기고사> 제2세 단군 부루-재위 58년
임금께서 태자였을 때에 중화의 우(禹)와 더불어 친하다가, 임금께서 보위에 오르니, 우도 순의 자리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 때에 홍수가 9년동안 천하에 범람하여 중화는 우가 치수하는데 곤란을 겪고, 조선은 팽오에게 치수를 맡겨 치수가 완료되니, 우가 도산회의를 각 나라에 요청하였다. 임금께서 팽오를 특명대사로 삼아 우에게 보내어 치수하는 법을 설명하셨다.
......
38년 나염연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 해에 남염땅에 건너가서 범경빈을 만나 말을 들으니, 이쪽은 고해(苦海) 저쪽은 극락(極樂)인데, 고해에서 극락에 가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업흑계를 해탈한 후에야 거기에 이를 수 있다 하며, 이런 도를 알지 못하면 공연히 어지러운 생각과 망상이 일어난다 합니다. ...... 태어나고 늙고 병에 걸려 죽는 사고를 해탈하면, 이것이 더없는 올바른 깨달음이라 하였습니다. 제가 가만히 거듭 생각해 보니 이것은 진실한 공부인데, 마음이 곁길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 원하옵기는, 폐하께서 사자를 남염지에 보내시어 그 도덕과 정치를 사찰하고 와서, 나쁜 점은 버리고 좋은 점은 본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데 시행한다면, 나라가 문명하고 진보하는 데 좋은 길이 될까 합니다."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사람의 도에 있어서 진리는 하나이며, 두 점 간의 직선도 하나이다. 그 나라와 민족은 서로 달라도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바른 도리는 하나이다. 내가 일찌기 선제에게 지켜야될 바를 물으니, 유정(惟精)하고 유일(惟一)하여 그 중추(中樞)를 잡아야 하는 것은 바른 것(正)을 잃(失)지 않는 것이라 하셨는데, 하필이면 다른 나라의 도덕과 정치를 빌리겠는가. 새와 짐승은 땅에 살고 고기는 물에서 사는 것이니, 물고기를 육지로 옮겨 놓으면 오래 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를 본받고자 하면 반드시 나라가 오래가지 못하리라." 하시니, 모든 신하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단군세기> 제3세 단군 가륵-재위 45년
..... 경자 2년(B.C. 2181년), 아직 풍속이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이 있다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 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이 서로 이해키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





<단기고사> 제5세단군 구을-16년간 재위
15년에 감성관 황포덕이 임금께 아뢰기를 "제가 천문을 관측한 지 50년이 되므로 천체의 대강을 추측하였습니다. 천체 중에 제일 큰 것은 북극성 같은 항성입니다. 그 다음은 태양의 종류이며, 다음은 수성, 금성...같은 행성이 있어 태양을 중추로 삼아 회전하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역시 태양계의 하나인 행성입니다..... 지구의 외곽에는 붉은 막이 포위하고 있어, 지면의 각종 기체를 보전함으로써.... 태양의 뜨거운 빛을 받아 바람과 구름도 되고 우박도 되고.. 사계절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자연의 이치를 헤아리지 못하면 음양을 따라 사시를 쫓지 못할 것입니다. ..... 그러니 먼저 역법을 정하시어 우리나라 기후에 맞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인 줄로 압니다."하였다.
임금께서 그렇다 하시고 국력(國曆)을 새로 만드니, 이것이 조선 역서(曆書)의 시작이다.

<단기고사> 제9세단군 아술-35년간 재위
6년 봄에 을성문덕이 아뢰기를 "국가는 모든 백성의 국가이며, 임금 한 분의 사유가 아니므로 임금과 신하가 합의하여 국사를 정하는 것입니다. 매년 부와 군의 대표가 의사원에 모여 국사를 의논하여 결정한 후에, 천제의 허락을 얻어 정부 책임자로 하여금 실행하게 하면 임금과 백성이 합의하는 정치가 되는 것이니, 바라옵기는 회기를 정하시어 백성에게 참정권을 허락하옵소서."하였다.
임금께서 허락하시고 매년 8월 1일을 정기회의 날짜로 삼으니, 민권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단기고사> 제10세단군 노을-58년간 재위
이아한이 아뢰기를 "임금께서 부리지 않는 신하가 있어야 하니, 의논하고자 하시면 친히 찾아 물으시어 의문을 풀어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폐하께서 마땅히 설치하시옵소서." 하였다.
임금께서 그 말을 따라 자문기관을 만들었다.
5년에 각도의 고을에 신원함(伸寃函)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으로 하여금 이 함에 신원서를 넣어 억울함을 풀게 하였다.

<단기고사> 제15세단군 벌음-51년간 재위
29년에 임금께서 심양태수(瀋陽太守)를 불러 이르시기를 "경이 심양을 지키면서부터 오늘까지 헐뜯는 말이 끊이지 않으나 내가 사람을 시켜 심양을 살피니, 밭과 들이 크게 개발 되었으며, 백성은 잘 살고 소와 말이 많이 번식되었으니, 이것은 경이 내 좌우 신하에게 아첨하지 않은 까닭이라." 하시고 벼슬을 높이고 상을 주셨다.
청해(靑海)태수를 불러 이르시기를 "경이 청해를 지키면서 오늘까지 칭찬의 소리가 끊이지 않으나 내가 사람을 보내어 청해를 살펴보니, 밭과 들이 황폐해지고 백성은 가난하여 가축이 번식하지 않으니, 이것은 경이 내 주위 사람들에게 아첨하여 자랑했기 때문이라. 겉모양만 내는 사람은 세상이 다 미워하는데 하물며 군주된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내가 이미 경의 재능을 알았으니, 경이 일부러 한 일이 아니며 또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니, 다시 청해에 가서 백성을 선하게 다스리라." 하시고 청해로 보내셨다.
창해(滄海)태수를 불러 "경이 창해를 지키면서 오늘까지 칭찬도 헐뜯는 말도 없으니, 관원된 도리는 임금에 충성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데 있으니, 책임을 잊고 벼슬자리를 빼앗아 녹을 탐하는 자는 신하가 할 일이 아니다. 경은 명심하라." 하시고 창해로 보내니, 이때부터 모든 관직에 거짓 자리를 차지하고 먹고 사는 자가 없었다.

<단기고사> 제16세단군 위나-58년간 재위
45년에 풍년이 들었다. 임금께서 세우신 기왕(杞王)과 모든 제후들이 다 임금께 왔다. 제후들을 보시고 묻기를 "너희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민생형편은 어떠한가." 하시니, 제후들이 한결같이 대답하기를 "집집마다 잘 살고 있어 별다른 우려가 없고, 다만 하늘이 기울까 하여 우려할 따름입니다." 하니, 임금께서 웃으셨다. 후에 사람들이 우려할 것 없는 일을 가리켜 기우(杞憂)라 하였다.

<단기고사> 제19세 단군 종년(구모소)-55년간 재위
첫 해에 맏아들 고흘을 태자로 삼고, 아우 종선을 청아왕으로 삼으니, 청아왕의 증손은 서여인데, 이 분이 조선기자(朝鮮奇子)의 태조(太祖)가 된다.
3년에 국문서당을 세워 백성들에게 학습하게 하였다.
10년에 패엽전을 만들었다.
16년에 공창을 세워 닥나무껍질로 종이를 만들고 칡껍질로 베를 짜 옷감을 만들었다.
45년에 황운갑이 지남차와 목행마를 발명하니 임금께서 후하게 상을 내리셨다.
51년에 목아득이 우주원리론을 저술하였다.
54년에 지이숙이 태양력과 팔쾌상중론을 저술하였다.

<단기고사> 제 23세 단군 아홀-재위 76년
55년에 임금께서 영고탑을 친히 시찰하시고 정전법(井田法)을 가르치셨다.

<단군세기> 제 30세 단군 내휴-재위 35년
청구의 다스림을 둘러보시고 돌에 치우천왕의 공덕을 새겼다. 서쪽으로 엄독골에 이르러 제후국의 여러 한(汗)들과 만난 후 병사들을 사열하고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주나라 사람과도 수교를 맺었다.
5년에 흉노가 공물을 바쳤다.
28년에 주태보가 신주역서(新周易書) 13권을 임금께 바쳤다. 그 편집내용은 태양태음설(太陽太陰說)과 현공설(懸空說)과 복서(卜書)와 천문설(天文說)과 지수설(地水說)이다. 임금께서 훑어보시고 불쾌하여 이르시기를 "후세에 이글로써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자가 있으리라." 하셨다.(단기고사)

<단기고사> 제33세 단군 감물-재위 24년
4년에 황선문이 유황발사총을 만들었다.

<단기고사> 제36세 단군 매륵-재위 58년
25년에 오경박사 우문충이 토지를 측량하고 지도를 만들며 유성설(遊星說)을 저술하여 바쳤다.
30년에 우세숙이 성리학(性理學)과 심리학(心理學)을 지어 임금께 바쳤다.
52년에 단제께서 병력을 보내 수유의 군대와 함께 연나라를 정벌케 하였다. 이에 연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위금함을 알리자 제나라 사람들이 크게 일어나 고죽에 쳐들어 왔는데 우리의 복병에 걸려서 싸워 보았지만 이기지 못하고 화해를 구걸하고는 물러갔다(단군세기)
55년에 손숙문이 의학(醫學)과 화학(化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단군세기> 제 47세 단군 고열가-재위 58년
58년에 단제께서는 어질고 순하기만 하고 결단력이 없었으니, 명령을 내려도 시행되지 않는 일이 많았고 여러 장수들은 용맹만을 믿고 쉽사리 난리를 피웠기 때문에 나라의 살림은 시행되지 않고 백성의 사기는 날로 떨어졌다. 3월, 하늘에 제사하던 날 저녁에 마침내 오가들과 의논하여 가로대,
[옛 우리 선조 열성들께서는 나라를 여시고 대통을 이어가실 때에는 그 덕이 넓고 멀리까지 미쳤으며, 오랜 세월동안 잘 다스려졌거늘 이제 왕도는 쇠미하고 여러 왕들이 힘을 다투고 있도다. 짐은 덕 없고 겁 많아 능히 다스리지 못하니 어진 이를 불러서 무마시킬 방책도 없고 백성들도 흩어지니, 생각컨대 그대들 오가는 어질고 좋은 사람을 찾아 추대하도록 하라]
고 하시고 크게 옥문을 열어 사형수 이하의 모든 죄수들을 돌려 보내도록 하였다. 이튿날 마침내 왕위를 버리시고 입산수도 하시어 신선이 되시니, 이에 오가가 나라 일을 함께 다스리기를 6년이나 계속하였다.
이보다 앞서 종실의 대해모수는 몰래 수유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는 천왕랑이라 칭했다. 수유의 제후 기비를 권하여 번조선 왕으로 삼고, 나아가 상하의 운장을 지키게 하였다. 대저 북부여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니 고구려는 곧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역시 고구려라 칭하는 바라.

5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대를 이을 후사가 없으므로 종친 해모수가 옛 도읍지 부여에서 반기를 들어 나라를 세우니, 북부여라 하였다.
후단제는 이것으로 대가 끊기니, 전단조 1222년, 후단조875년 모두 2096년이다.(단기고사)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대변경 大辯經>에서 말한다. 단군 구물은 국호를 바꿔 대부여라고 하고 수도를 장당경으로 바꾸었다. 지금의 개원이며 역시 평양이라고도 한다. 삼조선의 칭호는 단군 색불루에게서 시작된다. 그렇더라도 아직 완전하지 못하더니 이에 이르러 갖추었다. 삼한이란 분조관경의 뜻이 있으니, 삼조선이란 분권관경의 제도가 있다는 말이다. 먼저 큰 가르침은 매우 복잡하였으니 사람들이 능히 행하지 못하였고 연나라의 침입이래 전화가 여러차례 있어 왔다. 해를 거듭하여도 일은 잘 풀리지 않으니 치화를 잃고 국력은 날로 약해져 갔다. 어느날 단제께서는 꿈에 천제의 가르침을 얻으셨다. 이에 다스림을 크게 바꾸려고 했다. 천제의 묘 마당에 큰 나무를 세우고 북을 매어 달도록 하고 3ㆍ7을 기한으로 하여 연령순으로 서로 마시면서 권화하여 성책하였다. 이를 구서의 모임이라 하고 항상 구서의 글을 사용했다.


구서의 글

한번 절한 뒤에 무리에게 말한다.
「너희들 집에서는 효孝함에 게으름 없을 지며, 집에 부모처자 있거든 곧 성심 성경誠敬하여 밀어줌에 우애로써 할지니라. 제사를 성심껏 받들어 이로써 하나의 근본에 보답할 지며, 손님을 경접하여 이로써 이웃과 사이좋도록 힘쓸 지며, 자제를 가르침에 게으름 없이 하여 영재를 기르면 이것이 모두 인륜 교화의 큼이라. 이것이 효도하고 자애롭고 순종하고 예의 바름이니 이를 감히 수행치 않겠는가?」
이에 무리는 일제히 소리로 응해 가로대
「그리하오리다. 못하겠다 하는 자는 이를 추방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 절하고 서약하여 말한다.
「너희들 형제엔 우애 있기를 힘쓰라. 형제는 부모가 갈라진 것이요, 형이 좋아하는 것이면 동생이 좋아하는 것이어야 하고, 동생이 좋아하지 않는 것이면 형도 좋아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물래物來의 좋아함 좋아하지 않음은 다른 사람도 나도 서로 같나니라. 몸으로부터 물건에 이르고 친함으로부터 서먹한 사이에 이르기까지라. 이러한 길을 가지고 이를 조국에 미치게 하면 조국은 흥융할 것이며, 이를 천하에 미치게 하면 곧 천하는 교화될 것이니라. 이것이 우애와 화목과 어진 것과 용서함이라. 이를 감히 수업하지 않겠다 하겠는가?」
무리는 소리로 응하여,
「그리하오리다. 아니라 하는 자는 내어 쫒으리이다.」라고 하다.

세번째 절하고 서약하였다.
「너희들 스승과 벗에 믿음 있기를 힘쓰라. 스승과 벗은 도와 법이 서는 곳이라. 덕과 의는 서로 연마하고 과실은 서로 경계하라. 학문의 세움과 사업의 성취는 모두 스승과 벗의 힘이라. 이것이 믿음과 진실함과 성실함과 근면함이라. 이를 감히 수행치 않을 수 있을까?」
이에 무리들 소리 맞춰,
「예 거부하는 자는 추방하오리다.」하였다.

네번째 절하여 맹세한다.
「너희들 나라에 충성하기를 힘쓰라. 나라는 선왕께서 세우신 것이라. 지금 백성들이 먹고 사는 곳이라. 국정을 쇄신하고 나라의 부를 늘리고 국토를 수호하고 국권을 회창하고 국세를 굳혀 역사를 빛나게 함은 모두 나라의 책임이라. 이것이 충과 의와 기개와 절개이니 이를 감히 연마할 수 없다 하겠는가?」
이에 무리는 소리 맞춰,
「지당한 말씀입니다. 아니라 하는 자는 추방하오리다.」하다.

다섯번째 절하며 맹세하기를,
「너희들 묻사람에게 겸손하기를 힘쓰라. 만인은 모두 천제의 백성이라. 나와 같이 모두 세 가지 참됨을 받아 주성의 바탕을 이룬 바이며 나라힘의 원천이 되는 바라. 위가 겸손치 않으면 밑이 떨어져 나갈 것이요, 바른쪽이 겸손치 않으면 왼쪽은 이탈하고 앞이 겸손치 않으면 뒤는 후퇴할지며, 아래가 겸손치 않으면 위는 싫어하고, 왼쪽이 겸손치 않으면 바른쪽은 떨어지고, 뒤가 겸손치 않으면 앞은 서먹해지리라. 이제 겸손하여 양보하고 서로 존경하면 군중이 화합하여 힘이 뭉쳐져서 외부로부터의 모욕 따위는 없어지고 안으로는 다스림을 이루리라.이것이 겸손과 겸양과 공경과 삼가는 것이라. 이를 감히 수행치 않으리오?」
하니 무리는 소리내어,
「옳소이다. 아니라는 자는 쫒아내리이다.」하다.

여섯번째 절하며 맹세하기를,
「너희들 정사를 밝게 아는 일에 힘쓰라. 정사는 난리를 다스리는 것에 관한 일이라. 풍백은 약속을 세우고, 우사는 이를 정무로 시행하고, 운사는 형을 행하여 각각 직권이 있어 서로 침범치 못할 것이다. 지금 지혜와 보는 눈은 고매하고 언로는 널리 열렸으며 기예를 잘 연마하였고 경험을 쌓아나가면, 즉 나라일은 균등히 될지며 백성들의 일은 열리리라. 이것이 밝음과 지혜와 통달과 살핌이라. 이를 감히 수행치 않겠는가?
하니 무리는 소리내어 가로대,
「옳습니다. 거부하는 자는 추방하오리다.」고 하였다.

일곱번째 절하여 맹세하여 말하길,
「너희들, 싸움터에서는 용맹할 것을 힘쓰라. 싸움터는 존망이 결정되는 곳이라. 나라 있지 않으면 임금도 아비도 떨어져서 나무 우상처럼 되리니, 주인이 서지 않으면 처저는 몰락하여 노예가 되느니라. 사람의 일이나 물건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의 길이 아님이 없고, 세상에 전하는 가르침도 역시 나의 일이 아닌 것이 없도다. 나라 없으며 살고 주인 없으면서 존재함이 차라리 나라 있을 때 죽고 주인이 있을 때 죽고 끝나는 것과 같겠는가? 이제 확연하게 자기를 비워 희생시키는 풍속있으니, 정숙하게 규제하여 잘 스스로 무리를 다스리고 상과 벌은 반드시 바르고 공평하게 할 것이다. 남과 내가 역시 믿음으로 서로 돕는다면 많은 사람들을 양육하고 능히 천만의 사람을 복되게 하리라. 이를 용기와 담력과 힘과 의협이라 하느니, 이를 감히 수행치 않겠다 하겠는가?
하니 무리 소리내어 가로대,
「옳습니다. 거부하는 자 그를 쫓으리다.」라고 하였다.

여덟번째 절하며 맹세하여,
「너희들 행동함에 있어서는 청렴하기를 힘쓰라. 청렴하지 않으면 양심은 절로 어둡고 능히 청렴하면 신명이 저절로 트이리라.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욕심을 내면 반드시 중풍을 앓을지며, 스스로 교만에 떨어지면 곧 반드시 부패하고, 예절없이 스스로 만족하면 스스로 해를 입고 남에게도 해를 끼치게 된다. 이런 일이 계속해서 쌓이면 구제 받지 못하는 곳에 빠지리라. 이것이 겸손함과 곧음과 깨끗함과 맑음이라. 이를 감히 수행치 않겠는가?」
하니 무리들 소리내어 가로대,
「수행하오리이다. 거부하는 자는 추방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아홉번째 절하며 맹세하여 말하길,
「너희들 직업에 있어선 의로움에 힘쓰라! 사람이 직업을 갖고 일을 행하면 반드시 책임이 있나니, 조금이라도 불의가 있거든 스스로 힘을 다하여 물리치지 못한다면 반드시 업신여겨 학대받고 무너져버릴 것이며, 만약 정의롭다면 백성들로 하여금 다 믿도록 하리니, 누가 있어 능멸하고 모욕하고 침탈하리오? 의는 단체의 힘이 샘솟는 곳으로서 바른 기운이 일어나는 곳이라. 이를 잘 갈무리하면 한몸에 간직할 수 있지만, 이를 확대하면 천지에 가득채운다. 이것이 바름과 옳음과 공평함과 도리이니 이를 감히 수행치 않을 수 있겠는가?」
하니 무리 소리내어 외치기를,
「옳소이다, 거부하는 자는 이를 추방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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