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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이인호 조부 "일본은 어진 나라라서 천하무적"

KBS 이인호 조부 "일본은 어진 나라라서 천하무적"

[게릴라칼럼] 일본에 바싹 붙어 승승장구한 '친일파' 이명세

14.09.03 17:42l최종 업데이트 14.09.03 19:19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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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9월 3일,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KBS 이사에 임명했다. 사진은 지난해 3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원로급 오찬 회동 때의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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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KBS 이사에 임명했다. KBS 이사회에서는 최연장자를 이사장으로 선출하기 때문에, 올해 79세로서 이사회 최연장자인 이인호 교수는 조만간 이사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KBS 이사회는 KBS의 의사결정기관이고 KBS 사장은 이사회의 결정을 집행한다. 따라서 이인호 교수가 이사장에 선출되면, 이 교수가 공영방송 KBS의 수뇌가 된다.

이 같은 인사조치로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인호 교수의 할아버지인 이명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명세는 일본이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을 일으키기 한 해 전인 1893년에 태어났다. 한학을 공부하던 중인 1910년에 국권 침탈을 겪은 그는 일제 치하에서 지금의 중학교 및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지방법원 여러 곳에서 서기 겸 통역생으로 근무했다. 자기 땅에서 자기 동족들이 재판을 받는 법원에서 자기가 왜 통역을 해야 하는지를 그는 곰곰이 생각해봤을까?

그 뒤 이명세는 일제 치하에서 탄탄한 출세의 길을 밟았다. 법원에서 나와 은행 지점장 등을 역임한 그는 30대 중반 때 지금의 광역의원인 도평의회 의원을 1년 반 동안 지낸 뒤 동일은행·남창사 같은 주식회사들에서 취체역(이사)을 지냈다.

일제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1939년에 이명세는 47세 나이로 조선총독부로부터 중요한 임무를 받았다. 조선 유교, 조선 유림의 간부라 할 수 있는 조선유도(儒道)연합회 상임참사가 된 것이다. 조선유도연합회는 사회지도층인 유림을 앞세워 한국인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총독부가 조직한 단체다. 2년 뒤 이명세는 이 연합회의 상임이사가 되었다.  

기고문 첫 문장에 그가 사용한 표현, '우리 일본'

유림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이명세는 적극적인 친일의 길을 걸었다. 그는 이 지위를 앞세워 일본의 세계 침략을 미화하고 침략전쟁에 동참할 것을 선동했다. 그는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방법으로 친일파 대열에서 두각을 보였다.

1942년이었다. 이때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대륙침략전쟁을 벌이는 것과 별도로 미국·영국을 상대로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까지 벌이고 있었다. 오늘날의 미국도 버거워하는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한층 더 전쟁에 광분하는 일본과 총독부를 지원하고자 이명세는 조선유도연합회 기관지인 <유도> 창간호에 '동아공영권, 유교의 역할'이란 기고문을 실었다. 이 글은 '우리 일본이 동아시아 공영권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유교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우리 일본'이란 표현은 기고문의 첫 문장에서 이명세가 사용한 표현이다. 그는 "나라를 세운 이래 만세일계의 천황을 받드는 빛나는 역사를 가지며, 세계 인류를 위해 최고 문화의 건설을 사명으로 하는 우리 일본은 이번 대동아전쟁을 계기로 동아 신질서 건설을 실현하고자 또 하나의 걸음을 내디뎠다"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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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침략전쟁으로 희생당한 중국인들의 시신.
ⓒ 위키피디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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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이명세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불의한 나라들을 응징하기 위해서라고 역설했다. 미국·영국 같은 서양 침략자들이 동아시아를 착취하고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지하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만주사변·지나사변과 이번 대동아전쟁도 그들의 죄악을 성토하고 응징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게 그의 외침이다. 참고로, 지나사변은 1937년에 일으킨 중일전쟁을 지칭한다.

일본이 서양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된 이 기회를 이용해서 일왕(이른바 천황)의 사상이요 정신인 황도(皇道) 정신을 전 세계에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것이 이명세의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황도 정신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황도 정신을 일본 국민만 독점하지 말고 전 세계에 널리 선전하여 세계 인류로 하여금 빠짐없이 황화(皇化)를 하도록 함으로써 공존공영이라는 황국 본래의 이상(理想)의 완수를 향하여 일로매진하는 것이 도의국(道義國)인 일본 전래의 사명"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전쟁을 이용해서 전 세계를 일왕의 나라 즉 황국으로 만들자는 게 이 부분의 핵심이다.

더 나아가, 이명세는 이 전쟁에서 일본은 이길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했을까? 이 대목에서 그는 유교 지식을 활용했다. 그는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문구를 인용했다.

'인자무적'은 어진 사람에게는 대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명세는 일본은 인의(仁義)를 추구하는 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누구도 일본을 대적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한마디로, 황군(皇軍, 일본군)은 천하무적이라는 것이다. "우리 황군은 인의를 위하여 싸우기 때문에 무적이다. '인자무적이라고 말한 선현의 격언이 현재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므로 적극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이명세의 논리였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명분을 봐도 훌륭하고 가능성을 봐도 유망하기 때문에 유림 전체가 일어나서 전쟁 수행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기고문의 끝에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유림이라는 사람들은 우선 우리 국체의 존경과 현대의 중대 시국을 인식하고, 종래부터 습득해온 유교 정신을 황도 정신에 합치시켜 황국신민으로서의 길을 실천궁행함으로써 국가적인 대(大)사업에 공헌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일본에게 잘 보이려고 무던히 애쓴 이명세

이명세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일본인이 아닌가 하는 같은 착각이 들 수도 있다. 그는 글 속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유난히 자주 사용했다. '우리 일본'이니 '우리나라'니, 라는 표현이 한둘이 아니다. 그가 말한 '우리'는 우리가 아니라 일본을 가리킨다.

1944년에 <유도>에 기고한 '정기가 해설'이란 글에서는 이명세의 그런 습관이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기가(正氣歌)는 나라에 대한 충성을 위해 호연지기를 기를 것을 촉구하는 글로서 후지타 도오코나 요시다 쇼인 같은 일본 유학자들이 지은 것이다.

정기가가 무엇인가를 해설하는 대목에서 이명세는 갑자기 '우리나라의 명유(名儒)"란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인 독자들은 "우리나라 명유"란 표현을 보면 대개 다 율곡 이이나 퇴계 이황 같은 저명한 유학자들을 떠올리기 쉽다. '정기가 해설'이란 글이 한국인들을 선동할 목적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한국인 독자들은 이이나 이황을 연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명세가 말한 '우리나라의 명유'는 한국이 아닌 일본의 유학자들이다. 그는 "정기가는 송나라 문천상의 창작물을 기원으로 하고, 우리나라의 명유인 후지타 도오코, 요시다 쇼인 같은 여러 선생들이 이것을 모방하여 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이명세가 일본을 자기 나라로 생각했거나 아니면 일본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무척 애썼음을 보여준다. 일본이 평범한 나라였다면, 이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를 침략하고 착취하려 한 일본을 자기 나라로 생각했거나 아니면 그런 일본에 잘 보이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도 남는 것이다.

'친일청산'을 "역사 잘못 이해해서"란 이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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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제 실시를 기념할 목적으로 1943년에 김인승·이봉상 등의 친일 작가가 일본 작가들과 함께 제작한 ‘조선 징병제 시행 기념 기록화.’
ⓒ 김인승·이봉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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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가 단순히 유림들을 상대로만 친일 선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본군 징병의 대상인 청년들이나 그 부모들을 상대로도 동일한 주장을 외쳤다. 1942년에 <유도>에 기고한 '축(祝)징병제실시'란 시에서 그는 이렇게 호소했다.

해마다 북벌에 또 남벌
이제야 반도의 병력을 새로이 징발하시니
내외(內外)가 한결같이 은혜를 입게 되었네.
……
나라 위해 죽는 것은 가벼이 여겨야 하리라.
……

시에서 나온 '내외'란 표현은 일본(內)과 식민지(外)를 가리킨다. 일본에 이어 식민지 조선도 징병제의 적용을 받게 되었으니 이제야 한결 같은 은혜를 받게 되었다고 감격한 것이다. 이 정도면, 이명세가 민족에 대해 얼마나 큰 죄악을 범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일제에 충성한 고등 친일 선동가였다.

그렇게 엄청난 죄악을 범했지만, 1945년 8월 15일 이후로 이명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도층의 삶을 살았다. 자기 입으로 천하무적이라고 칭송한 일본이 망했지만, 그의 신변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명세는 8·15 이전과 마찬가지로 8·15 이후에도 이 땅의 지배층이었다. 그는 1960년에는 유림의 최고 지도자인 성균관 관장에 올라 한국 유교를 이끌었다. 그리고 1972년에 편안히 눈을 감았다.

만약 이인호 KBS 이사장 내정자가 할아버지와 무관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KBS 수뇌가 되려고 하는 이 마당에 그의 할아버지를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인호 내정자는 할아버지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인물이다. 그는 친일 청산을 적극 반대해왔다.

일례로, 이인호 내정자는 2004년 11월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친일청산 주장을 두고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지요"라고 말했다. "그럼 친일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물론이지요"라며 "역사학자들이 친일청산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니, 학자들에게 맡겨둬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명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인호 내정자의 발언을 들으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했을까?' 하고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명세에 대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그런 발언을 듣게 되면, 의아함을 느낄 이유가 없어진다. 친일파 할아버지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친일파 할아버지로부터 정신적 영향을 받은 사람이 친일청산 반대를 외치다가 공영방송인 KBS의 수장이 된다는 사실. 그런 사람을 KBS 이사에 임명한 인물이 일본에 대한 절대 충성을 외친 친일 장교의 딸이라는 사실. 이 외에도 수많은 친일파 자손들이 조상의 지위와 재산을 그대로 보유한 채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이런 사실들은 '조선총독부의 통치와 대한민국의 통치가 과연 무엇이 다른 건가?'라는 의문을 우리 가슴속에 심어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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