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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Why? 은막 스타 신성일, 왜 생애 첫 파마를 했나
Why? 은막 스타 신성일, 왜 생애 첫 파마를 했나


“출감(出監) 다음날 곧바로 머리를 파마했어요. 이게 ‘베토벤’ 스타일이오. 감옥에 면회 온 백건우· 윤정희 부부가 ‘베토벤의 생애’라는 책을 넣어주고 갔어요. 악보나 이론 쪽은 전문적이라 그냥 넘겼고 베토벤의 머리 모습에는 정말 끌렸어요. 그래서 출감하고 다음날 바로 우리 엄여사(엄앵란)가 애용하는 미용실에서 ‘베토벤’ 스타일을 주문했지요.”

대구시 효목동의 사무실에서 만난 신성일(申星一)은 어두운 감방(監房)이 아니라 어디 볕 좋은 곳에서 휴양하고 돌아온 양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1937년생이니 나이로 치면 그는 칠순 노인이다. 이제는 입에 배인 “신성일”을 정정하고 흔한 ‘원로’나 ‘선생님’을 앞뒤로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물 날린 청바지 차림에다, 평생 처음 해봤다는 파마 머리나 자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목욕탕 거울을 들여다볼수록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정치인들은 짧고 단정한 머리를 합니다. 나도 그때는 그랬지만, 이제 다시는 정치를 안 할 거니 파마를 한 거죠. 젊어서도 이 좋은 파마를 못해봤어요. 눈만 뜨면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파마 스타일로는 출연할 수 있는 영화가 없잖소. 파마를 하고 나니 이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 줄서고 간 빼주고… 정치는 생리에 안맞아

신성일은 왜 정치를 했을까. 대구로 내려가는 열차 안에서 이런 잡념에 빠졌다. 10년 전 나는 그를 인터뷰했다. 저 멀리 떠있던 은막(銀幕) 스타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번이나 낙선한 뒤 3수(修)를 하고 있을 때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정치인 ‘강신성일’보다는 영화 속에서 만나는 신성일을 원한다”고 했을 때,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았다.





“원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지…. 영화배우가 무슨 정치를 하느냐고 그러지만, 한동안 군인들도 정치를 했어요. 이제는 민주화 투쟁한다고 거리에서 손만 뻗치던 친구들이 정치를 합니다. 남 모르게 공부했는지는 모르지요. 나는 한 분야에서 삼십 년 이상 확실히 했습니다. 그런데 내게 정치 자질을 문제 삼을 수 있나요.”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나는 TV화면에서 머리와 수염이 은백(銀白)이 된 그를 봤다. 특별사면으로 의정부 교도소를 나오는 장면이었다. “공짜밥 잘 먹었다. 정치는 생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식구들을 위해 조용하게 살겠다.”

정치는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처음 만난 뒤로 10년 만의 연락이었지만 그는 기억했다. 그는 “우리 엄여사가 기자를 만나지 말라고 했다”고 전하면서, 나를 만났다.

“출감 직후 ‘공짜밥 잘 먹었다’는 말은 솔직한 심정이었어요. 내가 대구의 아파트에 혼자 내려와 있으면 직접 밥하고 설거지 해야 하는데, 교도소에서는 제때 밥 세끼 주지, 교도관이 화장실에 가도 따라오지, 교통사고 날 일이 없지, 책 읽고 생각할 수 있지…, 어느 집엘 가도 이런 보호를 못 받아요. 의정부 교도소 안에서는 ‘떠난 사람 중에는 장세동, 지금은 신성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는 수감 생활을 잘 했어요. 그리고 정치를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도 평소 생각이었소. 정치는 정말 생리에 맞지 않는 것이었어요.”

―10년 전 제게 했던 답변을 기억합니까?

그는 “내가 그때 뭐라고 했소?”라고 반문한 뒤, “당시에는 그렇게 말 할 수 있었겠지. 그 쪽 세계를 몰랐으니까. 뛰어들어보니 생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깨달을 수 있는 것 아니오”라고 응수했다.

“누구 편에 줄서기를 하고 그래야 공천을 받으니, 정말 하기 싫었소. 삼류 짓이었소. ‘상생(相生)’정치를 자주 떠들지만, 정치인들 3분의 2가 법률 공부를 한 사람들이라 서로 잘 지내다가 자구(字句) 하나 틀리면 원수처럼 돌아서버려. 세상 사는 묘리를 모르고 인격도 부족한 것이오. 상인들은 오늘 당장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내일 이득 보면 되고, 서로 주고받을 줄 알아요. 그러니 자영업이나 중소기업을 하다가 부도를 겪고 좌절도 해보고 인생 쓴맛도 아는 사람들이 정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 권력이라는 것? 아무 것도 아니었어?

―대중에게는 이미 선망의 대상이었던 선생이 왜 정치에 끌렸지요. 권력에 대한 열망이었나요?

“내가 영화계 스타로 있는 동안 주변에 정치인들이 많았지요. 한때는 권력 1인자, 2인자들과 ‘형님’ 하면서 가깝게 어울리기도 했고. 그러나 나는 영화인일 뿐이고, 그(권력) 속에 들어가지 못하니, 뭐랄까, 관심과 선망이 있었지요. 영화계에서는 나도 남자답게 살아왔는데, 정치인들은 뭔가 더 큰 꿈을 꾸는 장부(丈夫)로 보였지요. 바로 그거요. 권력과 가깝게 있었지만 내가 가진 것은 아니었지. 그래서 뛰어들고 싶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국회의원 한번 한 걸로 족해요.”

―국회의원이 된 뒤 실제 그런 힘을 맛보기는 했겠지요?

“영화배우의 인기에다 권력의 날개를 하나 더 단 셈이었는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과거보다 더 위축됐어요. 정당인으로서의 의무를 해야 하고, 간(肝)도 다 빼주면서 지역유권자의 기분에 맞춰야 되고. 이건 내 생리에 맞지 않은 것이었어요.”

# 출감때 "공짜밥 잘 먹었다" 솔직한 심정

―그전에는 남의 비위를 맞추며 살 필요가 없었겠지요.

“요즘 송혜교·배용준을 보면 얼마나 이쁩니까. 그 나이 때는 나도 그랬던 것 같아요. 이후락(李厚洛) 실장이 부르고 박정희 대통령의 귀여움을 받았으니, 세상에 보이는 것 없이 얼마나 우쭐했겠어요. 박 대통령이 참석한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행사날에 보란 듯이 ‘무스탕’을 타고 부산까지 막 달렸을 정도였으니. 아마 내가 철없는 마누라와 살았더라면 벌써 오래 전에 내 삶이 망가졌을 거요. 엄앵란이는 나보다 한 살 위지만 사회 경험은 훨씬 더 많아 ‘어디서든 제발 나서지 말라’고 나를 말리곤 했지요.”

그가 수감되어 있는 동안, 엄앵란씨는 ‘남편은 일흔의 나이로 앞으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격이 못 미치더라도 처의 처지로, 가족으로서 감히 말씀 드리고자 한다’며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호소문을 돌린 적이 있었다.

그는 이 비감해야 할 대목에서도 “교도소에서 그게 유행됐어요. 나이든 수감자들끼리 말을 주고 받다가 ‘여보시오, 살 날도 많지 않은데 뭐 그런 소리를 하시오’라고들 했지”라고 껄껄거렸다.

# 엄앵란의 순발력은 별난 남편 만난 덕분

―젊은 날에는 한때 바람을 피워 부인을 속상하게 했고, 나이 들어서는 감옥에 갇혀 부인을 슬프게 만들었으니, 선생은 참으로 철없는 남편입니다.

“철없는 남편이라…” 그는 말을 되씹다가 “거부하고 싶지는 않소”라고 했다.

“그러나 엄앵란이가 방송에서 순발력을 발휘하고 많은 주부들에게 먹혀드는 것은 남들보다 변화무쌍한 별난 남편과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요. 남편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내가 있어 엄앵란이 존재하는 면도 있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에 출감하고서 우리 엄여사에게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TV프로그램 ‘6시 내 고향’에 나오는 지방 곳곳을 죽을 때까지 함께 다니자고 했어요. 사실 그 전에는 내 마음의 중심에서 엄여사가 조금 벗어나 있었지요. 내 다른 야망들로 인해. 그러나 이제 엄앵란이는 확실히 내 중심을 차지했어요.”

―두 번 낙선에 겨우 4년간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그 뒤 2년은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대차대조표로 보면 정치판에 뛰어들어 잃은 것이 많군요.

이제 그로부터 회한(悔恨)의 답변을 들을 시점이 됐다. 나는 기다렸다.





“아니오. 전혀 후회가 없어요. 난 나름대로 그 세계를 알고 나왔으니까. 그렇게 해보지 않았다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권력에 대한 선망이 남아있었지 않을까요. 또 늘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곳이 교도소였어요. 그런데 이제 사내장부로서 그런 두려움도 없어졌어요. 과거에 군(軍) 출신들이 선거유세에서 ‘중장’ ‘대장’을 자랑하면, 나는 그까짓 별 몇 개가 아니라 ‘은하수’를 가졌던 스타였다고 맞받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여기에다 진정한 ‘감옥별’까지 얻었지 않았나요. 스스로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는 2005년 국회의원 시절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 연장과 관련, 옥외광고물 업자로부터 1억 87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당시 같은 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열린우리당 배기선 의원은 여전히 재판에 계류 중이고 아직 단 하루도 옥살이를 하지 않았다.

“나는 내 행위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상응한 벌을 받겠다고 들어왔어요. 마음을 그 쪽에 두니 당당했어요. 감형(減刑)을 받으려면 적어도 3년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를 못 이기고 짜증내면 정말 형편없이 못난 사람이 됩니다. 게다가 멀리서 면회 오는 사람들에게 초췌한 모습으로 마음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콘크리트로 만든 역기를 들고, 3kg짜리 빗자루로 스윙연습을 했으며, 추운 감방 생활을 이기기 위해 냉수 샤워를 쭉 했어요. 그 안에서 읽었던 책만 열여섯 보따리였어요.

의정부 교도소에서는 권노갑(權魯甲) 고문과 함께 있었지요. 그분은 출감 후 동시통역사가 되겠다며 영어사전을 펴놓고 뉴스위크를 읽어요. 이번 사면에 나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분에게 ‘나는 한 해를 더 지내야 풀려날 것 같다. 앞으로 1년 동안 영어공부를 해볼 생각인데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어요. 출감 이틀 전에 이분이 ‘로먼 할리데이(로마의 휴일)’ 시나리오 책을 주면서 ‘고급영어와 대중영어, 엉터리영어가 섞여있으니 공부하라’고 줬어요. 그런 준비를 했는데 나도 같이 나오게 됐어요.”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드는 건 막을 수 없지요?

“나는 이전부터 나이를 초월했다고 생각해왔어요. 운동을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건강지수는 50대 초반으로 나와요. 체력이 따라가니까 마음이 젊어요. 나는 지금도 여인을 보면 즐거워져요. 요즘 젊은 여인들은 종아리가 다 예뻐요. 우리 동년배들이 무슨 자랑처럼 ‘20년 동안 여자 근방에도 안 가봤다’고 말하면, 나는 ‘여보시오, 그러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소. 여인에게 다가가 보려는 그런 마음이라도 있어야지’라고 한마디 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무슨 죄가 됩니까. 교도소에서 여인을 구경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까웠지요. 감방 안에 이신바예바(장대높이뛰기 선수), 샤라포바(테니스), 힝기스(테니스), 미셸 위(골프) 등 신문 스포츠면에서 오려낸 사진을 붙여두고 그 안타까움을 달랬어요. 나는 늘 여인을 사랑하고 생각해왔고, 그것은 내게 에너지를 줬어요.” 그러면서 “최형, 우리 얘기가 왜 이쪽으로 흘러가지요?”라며 씩 웃었다.

―이렇게 힘이 넘치면 앞으로 뭔가 일을 하셔야 될텐데.

# 권노갑씨, 교도소에서“영어공부 도와주겠다”

“나는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이 나이가 되자 내가 원하고 추구한 것이 무엇이었지는 깨달았소. 그건 자유스럽게 사는 것이었소. 이런 청바지와 캐주얼 복장이 얼마나 좋아요.”

―영화 쪽으로는?

“영화를 하지 않을 겁니다. 영화협회나 단체에 어떤 자리도 맡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미안한 점이 있어요. 내 아들(강석현)에게 너무 내 식으로 강요를 해왔던 것 같아요. 나는 18살 때 신필름(신상옥 감독)에 입사해 온갖 잡일을 하다가, 1960년 첫 출연한 영화 ‘로맨스 빠빠’로 내 기회를 잡았습니다. 난 삶을 개척해왔어요. 내게는 그런 힘이 있었지요. 나는 아들도 그럴 줄 알았는데…. 그래서 이제 나는 아들을 위해 얼마쯤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아들이 영화를 제작할 때 나를 필요로 한다면 꼭 한편만 영화에 출연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어떤 영화에도 결코 출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성일은

신성일이 지금껏 영화에 출연해‘남자 주연(主演)’을 맡은 횟수만 약 510회다. 이는 광복 이후로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그는 당대의 잘 나가는 여배우 118명과 공연했다고 한다. 전성기때는 한 해에 65편이나 주연으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같은 날 여러 영화에 겹치기 촬영하기 일쑤였다.

그는“내가 겹치기 출연함으로써 당시 영화에 출연할 수 없었던 피해자들이 있었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가끔 들 때 있었다”고 했다. 당시 관객동원 23만 명이라는 공전(空前)의 히트를 쳤던‘맨발의 청춘’(1964년)은 단 18일만에 찍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여전히 한국 영화사의 고전으로 남아있다.

1960년대 초 그의 출현으로 한국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사랑, 캠퍼스, 뒷골목 건달 이야기 등을 다룬‘청춘물’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형성됐다.

이제 중년(中年)을 훌쩍 넘긴 당시의 청춘 남녀들은 그의 모든 것에 열광했던 것이다. 잘생긴 외모에 짧은 머리, 반항적인 눈빛, 특유의 억양(성우 이창환씨의 더빙), 하얀 가죽점퍼와 청바지는 당시 젊음의 아이콘이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로맨스 빠빠’‘아낌없이 주련다’‘떠날 때는 말없이’‘안개’‘흑맥’‘만추’‘별들의 고향’‘겨울여자’‘도시의 사냥꾼’‘길소뜸’등이 있다.

[최보식기자 cong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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