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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역사상 가장 음탕한 자와 가장 순결한 자

세계 역사상 가장 음탕한 자와 가장 순결한 자|


 












1.가장 음탕한자-카톨릭교 역사상 최악의 교황 '알렉산더 6세'


(영화,미드 보르지아의 주인공 로드리고 보르지아)


 


※장문의 글이니 주요 행적(?)은 색상을 넣어 표시하니 귀찮은 분은 그것만 보세요^^


로드리고 보르지아)가 알렉산더 6세의 본명이고 세사레(체사레 보르지아)는 그의 아들,


루크레시아(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알렉산더 6세의 딸이며 세사레의 여동생


 


교황 알렉산더6세 (1492-1503) 는 1413년에 탄생한 스페인 출신이다.
그는 발렌시아의 대주교였던 알폰소 보르하와 그의 친여동생 호아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로서 이름은 로드리고였다.
로드리고의 어머니 호아나는 친오빠인 알폰소 보르하와의 사이에서 아들 로드리고를 낳았으니 로드리고의 친아버지는 부친이면서 외삼촌도 되는 셈이다.


 


로드리고는 어렸을때부터 난폭한 아이로 자라나 12세 때에 친구를 칼로 살해하였고
혼잡한 성관계로 젊어서 적어도 여섯 명 이상의 사생아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
.

그의 친아버지인 발렌시아의 대주교였던 알폰소 보르하는 후에 칼리스터스3세(1455-1458)로 불리어지는 교황이 된후,당시 25세에 불과한 젊은 아들 로드리고를 발렌시아의 대주교로 임명한다.


이때 로드리고는 스페인의 미인과부와 그녀의 두 딸까지 농락한후 과부가 죽자 큰딸을 강제로 수도원에 보내고 더 귀엽고 아름다운 어린동생을 데리고 살았다.


 


또 그는 1461년 로마에서 18세의 아름다운 소녀 로사를 자기여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로드리고는 교황을 두려워하여 로사를 베니스로 이주시킨후 약20년간 왕복하면서 그녀에게서 네 아이를 낳았다.
교황 이노센트8세(1484-1492)가 죽었을때,로드리고는 막대한 돈 궁전.성.보석.땅.등을 다팔고 그 돈으로 교황 자리를 사려고하였으나,마지막 한표가 모자랐다.


 


그는 한표를 돈으로 사려고 하였는데 그 한표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베니스의 한 수도사였다.
그 수도사는 5000크라운과 로드리고의 12살 된 딸 루크레씨아와 하룻밤만 자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로드리고는 그 조건을 받아들여 22명의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고 교황이 되었다.


즉 돈과 12살 된 자신의 어린 딸 루크레씨아를 하룻밤 빌려주고 로드리고는 드디어 교황자리에 오른것이다.
이렇게 하여 1492년에 교황이 된 로드리고,즉 알렉산더6세는 이제 로마에서는 더이상 무서운 사람이 없게 되어 그의 성생활은 더욱 문란해졌다.


 


플로렌스 출신인 15세의 소녀가 교황과 하룻밤에 11번의 성교를 하고난후 열을 내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교황은 뻔뻔스럽게도 그 장례식에 가서 소녀의 명복을 빌었다고한다.


뿐만 아니라 로드리고는 자기가 교황이 된직후에 로사와의 사이에 태어난 17세의 자기 아들 세사레를 발렌시아의 대주교로 임명하고 후일 15살된 둘째 아들 후안을 또 추기경으로 임명하였다.


교황이 된 로드리고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의 체면이나 성스러운 교황의 직책에 별로 관심 없이 바티칸 궁전으로 첩들과 딸 루크레시아를 불러 들였다.


 


그는 교황이 되기 위하여 쓴 많은 돈과 궁전 및 성들을 회수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수단과 벙법을 동원하였다.
몇가지 예를 들면 첫째 하루에 평균 14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살인범들을 사형에 처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받았다.
둘째 성직과 성물을 매매하였다.
셋째 돈을 받고 근친상간을 눈감아 주었다.
한귀족은 24000개의 금판을 주고 자기 여동생과의 성교를 허가받았다.


 


발렌시아의 추기경 피터 멘도자는 교황에게 돈을주고 미동을 입양할 수있는 허가를 받았다.
로사의 나이가 많아지자 교황은 또 미소녀로 이름난 15세의 귤리아 화르네스를 위조죄로 걸린 그녀의 오빠 알렛싼드로 화르네스를 용서해 주는 대가로 손에 넣었다.


교황 로드리고는 귤리아와 오르시노 오느시니의 결혼식 주례를 해주고 신부를 자기방으로 데리고 갔다.
교황이 초야권을 행사한것이다


 


그녀의 오빠가 교황과 사전에 합의한 변칙을 그녀의 남편 오르시노도 어쩔 수없이 받아 들였다.
그녀의 오빠 알렛싼드로는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는데 후일에 그는 교황 바오로3세(1534-1549)가 되었다.
귤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부 때로는 교황의 창녀로 알려진 절세의 미인이었는데 그녀를 한번이라도 본 로마사람들은 그녀의 미에 반한 교황을 이해할수있다고 했다.


 


교황과 귤리아 사이에 난 첫딸을 교황은 오르시노의 딸이라고 하였으나
그아이를 본 플로렌스에서 온 대사는 그 딸이 너무나 교황과 닮아서 그녀는 교황의 딸임에 틀림이 없다고 자기 집으로 보낸 편지에서 기록하였다.


 


귤리아는 자연히 궁중에 사는 교황의 딸 루크레시아와 친해졌다.
루크레시아는 아버지 덕택으로 12살때부터 남자를 알게 되어 자기 아버지 못지않게 남성 편력이 심했다.
두 미녀들이 다른남자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볼수없었던 교황은 딸을 결혼 시키기로 하였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수차의 약혼을 했으나 더 좋은 신랑감이 나타나면 교황은 주저없이 파혼하고 딸을 새로운 신랑감과 약혼시켰다.


 


일방적으로 파혼당한 스페인의 돈 가스파로는 이에 승복하지 않고 반격에 나섰다.
교황은 3000더컷금화를 주고 돈 가스파로를 설득한후 페사로의 귀족 출신 지오바니 스포르싸 와 결혼시켰다.
성대한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온 루크레씨아와 신랑을 교황과 오빠 추기경 세사레가 가세하여 온 가족이 보는데서 결합시키고 그것을 구경할 정도로 문란한 생활을 하였다.


 


결혼후에도 루크레시아는 신랑을 따라가지 않고 바티칸에 남아서 밤이고 낮이고 외출도 하지않고 아버지의 집에서 함께 살다가 얼마후 귤리아와 같이 남편의 집을 찾아갔다고한다.


그동안을 참지 못한 교황은 그들을 불러오기 위하여 교황령을 내렸다.


 


귤리아의 오빠와 사위는 군대에 가 있다가 잠시 귀가하였다.


교황은 자기 아내를 보고 싶어서 부른 귤리아 의 남편까지 협박하는소동을 벌였다.


교황은 자기 소유물이었던 두 미녀들,즉 귤리아와 딸 루크레시아가 새로운 애인들을 만난다든가 그들의 남편들고 재결합하는것을 용납할 수없었던 것이다.
그녀들이 돌아와서 교황과 결합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황은 일주일 이내에 또 다른 세여자를 불러들였다.


 


그중의 하나는 발렌시아에서 온 수녀였으며,또하나는 캬스틸에서 왔고 세번째는 베니스에서 온 15-16세의 소녀였다.
이때 프랑스왕 챨스8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로마의 성밖에 도착하여 교황을 간통,근친상간,살인및 기타의 죄로 퇴위시키고 교황청에서 쫓아내겠다고 협박하였다.
아들 세사레 추기경이 저항하다가 생포되자 어쩔 수없이 교황은 로마를 개방하고 프랑스군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챨스왕은 안전을 이유로 교황의 아들 세사레를 인질로 끌고 갔다.
이시대에 매독이 유럽 전역에 퍼져 1494년에는 교황청까지 침략하였는데 당시의 유럽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벌이라고 하였다.


 


교황과 교황의 젊은 아들 추기경 세사레는 물론 교황의 자족 및 첩들까지 총17명이 2개월 이내에 매독에 걸렸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수도사가 플로렌스에서 이것을 지적하고 교회와 성직자들을 비난하고 나서자 교황은 함구령을 내렸다.
지롤라모가 듣지 않자 교황은 그에게 추기경 자리를 주겠다고 설득하였다.


그것마저 거절당한 교황은 지롤라모를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하고,그의 죽음을 축하하면서 귤리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세례식을 가졌다.


 


또한 교황은 그동안 수녀원에 가있던 루크레시아를 교황청으로 불러들여 교황이 임명한 조사위원회에서 자기가 처녀라고 선서하게 하였다.


그런데 조사위원회의 대다수가 루크레시아의 아버지 즉 교황과의 근친상간이나 기타 많은 남성들과의 남성 편력을 잘알고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그러나 결국 교황의 압력에 이기지못한 위원회는 그 혼인을 무효처리했다.
그런데 그후 얼마 가지않아 루크레시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교황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것을 우려한 그녀의 오빠 세사레는 루크레시아를 임신 시킨것은 교황이 가장 아끼던 스페인에서 온 교황청내의 시종인 페롯도 칼데로니라고 믿고 그를 칼로 찔러 살해한후 시체를 티베르강에 던져 버렸다.


시종이 죽은후 1497년에 그 시종의 처는 교황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


 


또 4년후인 1501년에 루크레시아가 세살된 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오빠 세사레는 자기가 죽인 칼데로니가 여동생 루크레시아가 난 아이의 아빠라고 생각했겠지만
곧 두개의 교서가 그아이의 친부가 세사람중의 하나가 아니라 두사람중의 하나라고 제안했다.
하나의 교서는 아이의 아빠를 루크레시아의 오빠인 세사레로 기록하고있고,다른 하나의 교서는 교황 알렉산더6세로 기록하고있다.


(범인은 부자임이 딱 걸렸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은 루크레씨아가 아버지인 교황 알렉산더6세는 물론 추기경인 오빠 세사레와도 근친상간을 했다는 기록이라고 볼수있다.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알수없어서 부자가 서로 아버지라고 기록에 남긴 것이라고 밖에 볼수없다.


 


아마 DNA테스트가 가능한 시대라고 하여도 부자간이기 때문에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그아이가 교황,즉 자기 어머니의 아버지가 자기의 친부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이는 교황을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가 혹은 아버지라고 불러야하는가.


 


또 자기 어머니의 오빠가 즉 자기의 외숙부가 자기의 친부라면 그를 어떻게 불러야 옳은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을 것같다.
할아버지겸 아버지도 될 수있고 외숙부겸 아버지도 될수있기 때문이다.


교황과 세사레가 아버지라고 기록한 교황의 두개의 교서가 이를 한층 혼란스럽게 하고있다.


 


만일 교황이 소문처럼 아름다움 루크레시아와 근친상간을 했다면 3대에 이르는 한집안 여자들을 할머니에서 시작하여 큰이모 어머니그리고 딸까지 네여자를 범한 유일한 교황이 된다.


 


아무리 중세기라고 하여도 이얼마나 지독한 짐승과 같은 인간의 이야기인가.


아버지의 덕택으로 간디아 군주가 된 교황의 둘째아들 후안은 12살 되던해인 1493년에 스페인공주와 결혼했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후안은 자기의지위를 이용하고 또 아버지의 이름을 팔아서 미녀들을 모아 아버지에게 제공하였다


형보다 더 많은 미인들을 아버지에게 제공할뿐만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은 스레인의 귀여운 미소녀를 소개한것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점하고 후계자라가 되려던 형 세사레의 질투를 사고 말았다.


 


두 형제가 자기들의 어머니 집에서 있었던 파티에 참석하고 귀가하는 길에 동생이 살해 당했다.


그것도 목에 8번이나 칼에 맞아 죽은 시체로 나타났다.
귀가 길에 형에게 좀더 재미있는 곳에 들렀다가 간다고 헤어졌다는데 누가 그를 살해한후 손을 묶고 목에 돌을 달아 강에 던져 버린것이다.


 


로마 사람들은 질투심이 강한 세사레가 죽였을 것으로 추측했다고 한다
당시 플로렌스의 정치학자였던 유명한 마키아밸리 가 국가의 이익과 통치자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도덕한 수단 방법도 정당화되어야한다는 국가권력론,다시말하면 국가 통치에는 권모술수도 필요하다는 논리를 전개한 그의 유명한 저서 군주론에 나오는 무지비한 정치가는 세사레가 모델이었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로마 천주교와 그 성직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하는것을 보고 우리는 참다운 종교를 잃었으며 완전히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어느 나라든 로마 교화청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만큼 더 종교가 없다는것을 원칙으로 생각하는것이 좋다.


박카드의 기록에 의하면 피 보기를 즐긴 세사레는 자기의 용맹을 자랑하기 위하여 성 베드로 성당 앞에 울타리를 치게 하고 남녀 죄인들과 어린아이들까지 끌고 나오라고 한 후에 완전무장하고 말을 타고 질주하면서 칼로 찌르고 또 일부는 총으로 쏘고 그래도 모자라서 말로 짓밟았다.


 


이를 교황과 여동생인 루크레시아는 성당의 발코니에서 보면서 즐겼다고 한다.
세사레는 매독증세가 얼굴에 나타나서 검은 반점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러나 교황의 큰아들이며 또 군의 총사령관이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1499년5월12일 프랑스의 왕의 소개로 게인 이라는 작은 나라의 군주의 딸 샬롯(당시17세)과 결혼하였다.


 


세사레는 매독이 점점 악화되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여자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1501년 전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의 하나라고 소문난 미인을 납치했다.
그런데 그녀는 당시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던 베니스 왕국의 군장교의 부인이었다.
그녀를 가두고 성의 장난감으로 데리고 놀다가 2년후에 남편에게 돌려 보냈다.


 


그렇게 하는 와중에도 교황부자는 중부 이탈리아를 완전히 점령하여 교황청의 직할 영토로 만들려고 총력을 다하였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물 성직 가리지 않고 팔수있는것은 모두 팔아서 돈으을 모았으며 또 자기들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모두 암살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1503년8월에 교황 알렉산더6세가 죽었다


 


교황 부자는 자기들이 싫어하는 추기경을 저녁에 초대하여 독살하려고 하였는데 잘못되어 그 독약을 자신들이 먹게 되었다.


(ㅄ도 아니고 원...ㅋㅋㅋ)
세사레는 운좋게 살았으나 독약을 먹은 교황의 배는 불덩어리가 되고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었으며 피부색은 노랗게 변했다.
아무것도 마시지 못하고 몇시간을 누워있던 교황의 얼굴은 자줏빛으로 변하면서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얼마후에 배양쪽에서 출혈이 일어나면서 사망하였다.


 


누구도 죽은 교황의 명복을 빌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줄리어스2세가 교황으로 선임되자마자 로드리고는 그누구보다도 천주교회를 더럽혔다.고 하면서 그가 살던 방에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구제 받지 못할 영혼을 위하여 명복을 비는것은 모독죄에 해당한다고 교령을 내렸다.


그리고 앞으로 누구라도 두번 다시 로드리고의 이야기를 하거나 생각하면 파문시키겠다고 하며 그의 이름을 잊어버리라고 하였다.


이것이 짐승같은 방탕아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일생이다.



[출처] 교황알렉산더6세|작성자 내츄럴


이 섞어빠진 교황의 프로필


http://mirror.enha.kr/wiki/%EC%95%8C%EB%A0%89%EC%82%B0%EB%8D%B0%EB%A5%B4%206%EC%84%B8


 


 


2.가장 순결한 자- 한 평생 여자 한 번 보지 못하고 죽은 수도승 '미하일 톨로로스'


 


그리스의 수도승 미하일 톨로로스는 82세로 죽을 때까지 여자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은 직후 사망했으며 그는 그 다음날로 에토스 산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으로
보내진다. 그 후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 수도승들과 함께 거기서 일생을 보내게 된다.


당시는 9세기부터 실시되어 온 관습에 따라서 여자와 동물들의 암컷들마저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여자를 볼 수 있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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