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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산 회의’ …펑더화이 비극이 시작되다




59년 ‘여산 회의’ …펑더화이 비극이 시작되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06>


| 제307호 | 20130127 입력








한국전쟁을 계기로 펑더화이(앞줄 오른쪽 넷째)는 소련과 가까워졌다. 스탈린이나 후르쇼프도 펑더화이를 좋아했다. 소련을 방문할 때마다 환대를 받았다. 원수 예젠잉(葉劍英오른쪽 셋째) 등 중국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10월혁명 40주년 경축행사에 참석한 펑더화이. 1957년 11월 7일, 모스크바 붉은광장. [사진 김명호]
중국은 큰 나라다. 명산(名山)이 도처에 널려있다. 인재를 많이 배출한 집안이나 교육기관이 명문 소리를 듣는 것처럼, 산도 내로라하는 인물들의 체취와 사연이 배어 있어야 명산 대접을 받는다.

사연 많기로는 강서성 구강(九江)의 여산(廬山)을 능가할 곳이 없다. 요·순(堯·舜)과 함께 고대 중국의 통치자로 일컬어지는 우(禹)는 여산의 한양봉(漢陽峰)에 올라 천하의 물줄기를 살폈고, 남순(南巡)에 나선 한무제(漢武帝)는 자소봉(紫霄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삼국시대 동오(東吳)의 명의(名醫) 동봉(董奉)은 환자들에게 치료비 대신 살구나무를 심게 해서 10여만 주의 살구나무 숲을 후세에 남겼다.

위진 남북조 시절, 정국이 혼란해지자 문화인들이 여산을 찾기 시작했다.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는 금륜봉(金輪峰) 자락에서 붓과 씨름했고, 도연명(陶淵明)은 오로봉(五老峰) 언저리에 초막을 짓고 은거했다.

불교와 도교도 여산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중국 불교사상 최고의 미남인 혜원(慧遠) 법사가 창건한 동림사(東林寺)는 한때 남방불교의 중심지였고, 도교 교주 육정수(陸靜修)가 삼동경서(三洞經書)를 정리한 곳도 여산의 태허관(太虛觀)이었다. 수·당(隋·唐)시절 여산은 시인묵객들의 은거지로 변모했다. 장구령(張九齡), 맹호연(孟浩然), 안진경(顔眞卿),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등 당대의 초일류 예술가들이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몰랐다. 특히 이백과 백거이는 머문 기간이 가장 길었다. “산 전체에 문기(文氣)가 서렸다”며 여산국학(廬山國學)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전통은 송(宋)대에도 이어졌다. 왕안석(王安石), 주돈이(周敦頤), 소동파(蘇東坡), 황정견(黃庭堅), 주희(朱熹), 악비(岳飛) 등 유학(儒學)의 중진과 풍류객들이 줄을 이었다. 남송(南宋)의 대유(大儒) 주희가 세운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의 영향력은 아직도 여전하다.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지배하던 원(元)나라 말기 여산은 전쟁터로 변했다. 여산에서 대패한 주원장(朱元璋)이 진우량(陳友諒)에게 마지막 승리를 거둔 곳도 여산이었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여산에 은거하는 부류들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문인들은 피비린내와 거리가 멀었다. 간섭하기는 좋아해도 받는 건 싫어했다. 여산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중국문화에 정통한 영국인 선교사 한 명이 여산을 3개월간 여행했다. 산세가 가파르지 않고 온갖 초목이 무성한 고우령(牯牛嶺) 일대에 눈독을 들였다. 다른 곳에 비해 한여름에도 기후가 건조하고 상쾌했다. 관원들을 매수해 조차권(租借權)을 따냈다.

몇 년이 지나자 각양각색의 서구식 별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출현했다. 학교, 교회, 병원, 영화관, 도서관 등 공공시설도 들어섰다. 심산유곡에 도시 생활과 자연이 결합된, 공업화 시대의 무릉도원이 펼쳐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20~30년대는 여산의 전성기였다. 별장 1000여 동이 위용을 뽐내고 크고 작은 상점만 해도 200여 개에 이르렀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18개국의 외국인이 거주하던 여산은 이국(異國)이나 다름없었다.

1927년 장제스가 지휘하는 국민혁명군이 북벌에 성공했다. 조계를 회수한 국민정부는 여름만 되면 중요한 회의를 여산에서 열었다. 여름수도(夏都)나 다름없었다. 1937년 여름, 항일전쟁 선포도 여산에서 했다.

1959년 여름, 대약진운동을 놓고 불평이 많자 마오쩌둥은 여산에서 중앙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했다. 소련에서 환대를 받고 귀국한 펑더화이(彭德懷·팽덕회)도 총참모장 황커청(黃克誠·황극성)과 심복 시중쉰(習仲勳·습중훈)을 대동하고 여산행을 서둘렀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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