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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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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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론 특별기획 동이족의 영적문서를 빌어다가 개찬한 공자의 소작-나를 아는 자도 오직 「춘추(春秋)」요, 나를 죄줄 자도 그 오직 「춘추(春秋)」다
   <담론 특별기획>

동이족의 영적문서를 빌어다가 개찬한 공자의 소작-나를 아는 자도 오직 「춘추(春秋)」요, 나를 죄줄 자도 그 오직 「춘추(春秋)」다





공자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춘추」는 어떤가? 「춘추」는 총 1만 8천여 자로 이루어진 가장 오래된 편년체 사서로, 대대로 유가의 주요경전으로 여겨져 온 책이다. 이 책은 노(魯) 국 위주로 서술된 사관을 보여주는 춘추시대 역사를 기재한 책으로, 2천 수 백여 년 동안 학자들이 중시해온 책으로, 후대에 편년체 서술의 남상(濫觴)이 되었고, 중국 사학사(史學史), 경학사(經學史), 문화사(文化史)상 가장 빼어난 중요 지위를 차지한다.

사람들은  「춘추」를 논하면 왕왕 공자를 든다. 「춘추」는 과연 공자의 소작인가? 공자와 춘추는 어떤 관계인가? 이들 내력에 대한 대륙학자들의 논쟁은 그칠 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대륙학자들간에 객관적으로 3가지 관점이 있는데 우선 첫 번째는 이렇다.

전통적인 관점 그대로 「춘추」는 공자의 소작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옛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전통적인 설법으로 이는 맹자가 주장한 것으로 인해 굳어진 가장 오래된 학설이다. 맹자는 춘추시대를 사설(邪說), 폭행(暴行)이 수없이 출현하고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부친을 살해하는 사회난동의 시기로 여겼다.

  그리하여 「맹자」<등문공하(騰文公下>편을 보면, "공자가 이를 두려워 해 춘추를 지었다.....공자는 춘추를 짓고 난신적자를 두려워 했다!(이 말의 내면적 의미는 동이족의 적통역사를 견강부회해 존주사대로 역사를 왜곡한 자신의 유가정신에 대항할 동이 제족을 난신적자로 표현하여 공자가 이를 무서워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만일 맹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공자는 자신이 동이족의 혈통으로 동이족의 나라인 군자의 나라를 동경해 '나 공구는 은나라 사람이다-"이구야은인야(而丘也殷人也)", 나 공자는 동이족인 9이(夷)에 가서 살고싶다-자욕거구이(子欲居九夷)"라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륙에 밀어닥친 난동의 춘추시대 속에 휘말려 민족의 근본과 경사(經史)의 바탕자리를 잃어버려 이제 갓 피어나기 시작한 서하(西夏)를 춘추사관으로 틀을 잡고 공고히 해주어 화하(華夏)의 주구가 되었음이 틀림없다.*참고:임 혜상은 "금인(今人)이 고증하기를 은상(殷商)은 동이계에 속하며(今人考證 殷商屬夷系)", 라 하여 은상이 동이계라 고증했으니 은의 후예인 공자는 동이계임에 틀림없다.



< 사마천도 공자가 난동의 춘추시대를 두려워 해 「춘추(春秋)」를 지었다는 맹자의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며, 아울러 공자가 「춘추(春秋)」를 짓기위해 일찍이 동주(東周)에 가서, 왕실 소장의 도서를 열람한 이후, "역사기록으로 인해 춘추를 지었다(因史記, 作 「春秋」", 덧보태 쓰는 것은 덧보태 쓰는 것이고, 깎는 것은 깎는 것이다.(筆則筆, 削則削), 자하(子夏)의 추종자들은 능히 한마디 기리는 말도 아니했다."(「사기」:<공자세가>,<12제후연표>,<태사공자서>)

(참고로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에 의하면, 자하의 성명은 복상(卜商)으로 산시성[山西省] 출생이며 출생에 이설도 있다. 그는 공자의 제자로 공문10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이며, 공자가 죽은 뒤에 위나라 문후(文侯)에게 초빙되어 스승이 되었으나 공자의 죽음을 슬퍼하여 실명(失明)하였다고 한다. 그의 학문은 시와 예에 통하였으며, 공자의 《춘추(春秋)》를 전하여 《공양전(公羊傳)》과 《곡량전(穀梁傳)》의 원류(源流)를 이루었다. 주관적 내면성을 존중하는 증자(曾子) 등과 달리 예(禮)의 객관적 형식을 존중하는 것이 특색이다.)

이후 역대 학자들은 맹자와 사마천의 이러한 학설을 많이 좇았다. 현대에도 학자들은, 공자가 대량의 역사자료를 나름대로 정밀하게 뽑아 사용하다보니, 「춘추(春秋)」가 복잡한 역사사실을 뒤섞어 놓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일부 구절을 엄하게 필사해 짜 맞추는 과정에서 한 글자 사이로 모두 포폄(褒貶:칭찬하고 나무람의 뜻과 시비선악을 판단함) 일색의 아주 간략히 추려낸 「춘추(春秋)」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전통적 동이족의 터였던 산동성 곡부의 공묘(공자사당)의 공자 소상 7척 거구에 양손이 유방처럼 무릎아래로 내려왔으며 입술은 두툼하고 앞니는 서세원처럼 나왔다 한다(현지 가이드 설명)


또 이들이 지적하기로는, 소위 공자가 「춘추(春秋)」를 지은 이유중의 하나는 내란이라 지적한다. 당시 사회도처가 사회를 쓸어 없애는 동탕변혁의 소용돌이에 처해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옛날의 상하 존비의 통치질서는 사실상 어지러워졌다.

이에 공자는 「춘추(春秋)」를 지어 명분을 바르게 함으로써 제후, 대부에게 엄정한 시비선악의 판단(褒貶)을 제공해, 그들에게 심리적인 재갈을 물려 천하를 안정시키는 질서로써 주(周)의 정치권력을 회복시키려 했던 것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역시 공자는 대국적으로 당시의 춘추시대라는 어지러운 세상을 맞이해 참모의 도를 자처해 열국의 제후들에게 기꺼이 고개를 숙여 대동의 뜻을 펴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고 동이족의 영적 문서를 노나라 위주의 사관으로 개칠해 존주 사대의 터전을 굳건히 세웠다는 점에서 동이족 역사의 첫 이단자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가 나를 아는 자도 오직 「춘추(春秋)」요, 나를 죄줄 자도 그 오직 「춘추(春秋)」라고 고백한 대목에서도 이미 공자는 자신의 죄악을 알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하겠다.

대륙의 사학자들이 공자가 「춘추(春秋)」를 지은 2번째 이유로 드는 것은 바로 외환(外患)이다. 대륙사가들은 당시 다양한 종족들이 주(周)왕조의 통치구역으로 어지러이 진입해 들어와 첨예한 종족모순을 불러 일으켰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공자는  주(周) 왕실을 존중하고 주위의 이(夷)족을 배격하는 "존주양이(尊周攘夷)", 겨우 싹트기 시작한 제(諸) 서하(西夏:흔히 동이족 禹의 아들 啓를 시조로 본다)를 구심점으로 삼고 이적(夷狄)을 밖으로 내모는 "내제하이외이적(內諸夏而外夷狄)"이 담긴 「춘추(春秋)」를 지었다고 본다.

물론 여기에서 대륙의 사학자들이 소위 당시 다양한 종족들이 주(周)왕조의 통치구역으로 어지러이 진입해 들어와 첨예한 종족모순을 불러 일으켰다고 말하는 문제 제기는 상고대륙사의 원본들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모순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것은 임혜상과 서량지 양인의 주장이 서로 부합(符合)하고 있으며 환단고기 내용이 상합(相合)하고 있으므로 함께 연구해 보기를 권한다.)

학자들은 공자가 "나를 아는 자도 오직 「춘추(春秋)」요, 나를 죄줄 자도 그 오직 「춘추(春秋)」일찐저"(맹자 등문공하>라는 말을 사용한다. 만일 공자가 「춘추(春秋)」를 짓지 않았다면, 「춘추(春秋)」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공자가 맹자나 사마천의 말대로 「춘추(春秋)」를 지은 것이 사실이라면 공자는 동이의 혈통을 이은 자로 뿌리되는 동이족의 근본을 도륙해 이적(夷狄)으로 매도한 대동이사관의 공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하나의 관점은, 「춘추(春秋)」가 공자의 소작(所作)이 아니라는 학설로, 공자는 단지 정리만 했다는 학설이다. 학자들은 공자가 창안(創辦)한 지나 역사상 제 일의 사립학교 교육가라고 지적한다. 그는 강의를 하는데 필요한 내용을 노(魯), 주(周), 송(宋), 기(杞) 등의 고국(故國) 문헌을 수집해 재차 정리 편집해 사용하고, 이를 기반으로 <역(易)>, <서(書)>,<시(詩)>,<예(禮)>,<악(樂)>,<춘추(春秋)> 등 6종의 교본을 만들었다.

공자는 이들에 대해, 핵심을 없애고(盡管) 사건의 단락과 마디를 꺾아냈으나(刪節), 단 옛것을 믿고 좋아했다는 신이호고(信而好古)의 태도를 견지해 동이 제 족의 정신유산에 들어있는 원래 문자는 가급적 지켜, 원래 있었던 역사내용과 표달풍격(表達風格)은 고스란히 포괄시켰다.

공자는 노국(魯國)과 주(周) 왕실과 기타 제후국의 사관이 쓴 기록에 근거해, 이를 수정하고 개정해 일부 핵심만 간략히 추린 사서를 편집해 필사했다.「춘추(春秋)」가운데의 자구(字句)들은 공자가 쓴 것이 아니라, 이전의 동이족의 사가들이 쓴 것을 공자가 그대로 따라 연용(沿用)한 것에 불과하며, 공자가 창조한 것이 아니다.(幷非孔子的創造) 이것이 바로 「논어(論語)」<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술이부작(述而不作) 신이호고(信而好古)"라는 고백이다.

*-자왈 술이부작 절비어아노팽(子曰 述而不作 竊比於我老彭)  
자왈 묵이지지 학이불염 회인불권 하유어아재(子曰 默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논어 {述而篇})

(孔夫子가 이르기를 ‘傳述(전술)했을 따름이지 새로운 것을 창작하지 않았고 전통적인 것을 믿고 좋아했다. 구태여 비유한다면 나는 노팽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라고 했다. 孔夫子가 이르기를 ‘묵묵히 학식을 연마하고 배우기를 싫증내지 않으며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러한 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도 나에게는 없다’라고 했다.)

朱子는 ‘述’은 옛 것을 전하는 것이고, ‘作’은 새로운 것을 창시하는 것으로서, 作은 성인만이 할 수 있지만, 述은 賢者(현자)이면 가능하다고 풀이했다. 주자의 해석을 따른다면 孔夫子 자신도 스스로를 평하여 성인은 못되고 현자 정도로 인식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에서 ‘作’이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인식되는 많은 창작물들이,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따름이지 실제로는 이미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李敏弘 해석)

여기에 덧붙여 첨언을 하자면 중용에서 자사가 밝힌 대로 공자인 중니(공자)는 조술요순하고 헌장문무했다고 말한다(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中庸> 30章) 공자가 조술요순(祖述堯舜)했다는 것은 요순의 도를 傳述(전술)했을 따름이지 새로운 것을 창작하지 않았다는 말로 논어에서 고백한 전통적인 것을 믿고 좋아했다는 신이호고(信而好古)의 말과 서로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상고대륙을 석권한 동이 제 족

요순은 분명 동이족이었으니 대경대법한 동이족의 대륙사를 알면, 요는 분명 동이족 전욱고양의 후예로 모권제 하의 동이족 염제 신농의 7대 손녀 경도를 어머니로 두었으니, 이러한 요(堯)의 혈통과 동이족 혈통으로 명백하게 고증되고 있는 순(舜)의 도(道)를 그대로 서술해 전했다는 공자의 고백은 6경의 뿌리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자사는 「중용(中庸)」에서 공자는 단지 시류에 영합해 주(周)의 유행바람을 좇은 것일 뿐이며 동이족의 것을 흉내냈을 뿐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하(夏)의 예를 말할 수 있으나, 기(杞:하남성 기(杞)현 땅으로  하우(夏禹)의 동이족 조상을 제사하게 한 땅) 나라의 것으로는 고증하기에 부족하고, 나는 은(殷:95%가 동이족이었던 동이족 국가:임 혜상이 '금인고증(今人考證) 은상속이계(殷商屬夷系)'라 지적한 바와 같이 은나라는 동이계의 나라였다)의 예를 배웠으나, 오직 송(宋)나라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주(周)의 예를 배웠고, 세상이 그것을 따르므로, 나도 주를 따를 뿐이다.(子曰: 吾說夏禮, 杞不足徵也; 吾學殷禮, 有宋存焉; 吾學周禮, 今用之, 吾從周.)

-필자는 이 대목을 보면 이승만과 서재필 그리고 이완용이 생각이 난다. 왜냐하면 공자도 당시엔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하(夏)의 지나족에게는 노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존주사대의 기틀을 세운 불멸의 업적을 세운 당사자이지만 반대로 막상 우리 동이족에게는 반민족적 역사왜곡의 주범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이승만 서재필 역시 좁은 소견으로 보면 독립협회를 만들고(서재필) 이승만과 같이 미국땅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인해 독립지사로 추앙받고 있지만, 그 근본을 대국적으로 보면 이승만의 경우 구미위원회를 만들어 미국의 신탁통치를 미 국무부에 요청하고 상해 임정의 무력항쟁주의에 반하는 당시로서는 전혀 실익이 없었던 외교주의 노선으로 인해 막상 무력항쟁파의 임정 독립운동자금을 가로채는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립을 공식의제로 밝힌 카이로 회담을 성사시킨 것은 막상 서재필과 똑같이 미국물을 먹고 근대식 교육의 혜택을 입어 박사학위까지 딴 외교노선의 이승만이 아니라 근대적 신식교육 근처에도 가 본적이 없는 무력항쟁파의 김구가 당시 7-8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인민도 못한 쾌거를 일으킴으로써(윤봉길 의사 홍코우 의거, 이봉창 의사 왜왕 폭탄 투척 쾌거)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해 장개석을 감동시켜 이루어진 것임을 안다면 이승만과 서재필 외교노선의 허구를 잘 알 수 있다. 그러한 그였기에 해방 후 반공 친일파가 되어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6.25 때 보도연맹을 비롯 114만 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해한 역사적 살인마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승만이 미국 정계에서 직제에도 없는 임정 대통령직을 사칭하고 다니고 임정 공채까지 발행해 팔아먹고 다니는 등 물의를 빚자 임정에서는 이를 일단 추인한 다음, 그를 상해로 불러들여 탄핵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그의 마지막 해명을 듣고 탄핵을 하는 자리로 마련된 국무회의에서 신채호가 벌떡 일어나 한 말이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이라는 자는 없는 나라도 팔아먹을 매국노중의 매국노라며 화를 내고 회의석상을 박차고 나가 만주로 무장항쟁의 길을 떠났으며(이때 많은 애국지사가 임정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성대 초대 총장인 심산 김창숙 선생은, 이승만이놈은 외국에 나가 호사만 하며 외국년 엉덩이만 두들기다 온 놈이라고까지 욕설을 했으며, 3형제가 모두 무장항쟁을 벌인 대표적인 애국자 가문의 박용만은 하와이 독립운동 단체 재산을 가로채려한 돈에 눈먼 이승만에게 매국노라 하면서 멱살드잡이 육박전을 벌이고 만주의 신채호에게 달려갔으며(이승만의  박용만 독립운동단체에 대한  재산탈취 기도는 해방이후 하지군정하에서 일제가 남기고 간 적산가옥을 일제하 최대의 친일거두 인촌 김성수의 한민당 출신의 매판자본가 위주로 부를 분배하고 권력을 공유한것과 그 궤를 같이한다. 마찬가지로 반민족적 동이 대륙사의 첫 이단자는 바로 공자가 아닐것인가?) 이승만의 스승으로서 그를 비호했던 서재필마저 이승만을 가리켜 이씨 왕손을 빙자해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그 호사함과 사치함이 한도를 넘어섰다고 자신의 송재일기에서 고백했음을 기억하면 오늘날  미성숙아들의 본산인 정치판의 이단아들이 이승만 동상을 국회에 버젓히 세운 사실에 대해 단재 신채호 선생과  심산 김창숙 선생이  무어라 할지 송구스럽기만 하다. 우리의 헌법정신은 반독재, 반부패, 반무능의  4.19정신이 헌법 서문에 들어있다. 4.19 정신은 곧 압축해 말하면  반 수구인 반 이승만 정신이다.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수구라는 용어의 수구원조는 과연 누구인가.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이승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국회에는 골빈 국회의원들이 위원회를 만들어 이승만 동상을 버젓히 세워놓고 있다. 각설-이완용 역시 이미 20대에 국가의 동량으로 기용된 당대의 천재 엘리트로 고종을 협박해 나라를 넘기도록 도장을 찍으라 했을 때도 그 명분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덕자는 본야요, 재자는 말야"라  해서 덕이 재조보다 상위개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완용을 공자식으로 대입하면 이완용은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나는 일본의 예를 말할 수 있으나, 조선의 것으로는 고증하기에 부족하고, 나는 배달의 예를 배웠으나, 오직 지나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후꾸자와의 예를 배웠고, 세상이 그것을 따르므로, 나도 왜를 따를 뿐이다" 과연 그렇다면 동이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인류사적 천재 공자는 존주사대로 화하 지나의 주구로 자처한 것일까 아니면 세계주의자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사가 중용에서 고백하듯이 단지 동이족의 깊숙한 내막은 잘 모르지만 주나라의 것이 유행하므로 그냥 좇은 것일까? 그는 자신의 고백처럼 "조술요순하고 헌장문무했으며, 술이부작하고 신이호고했을 뿐"이라 한대로 육경을 창조하지 않고 동이족의 원시기록을 표절한 표절의 천재였을까 아니면 맹자와 사마천의 주장처럼 춘추를 창조해 쓴 이유로 동이족 대륙사의 뿌리를 송두리째 왜곡시킨  책임을 져야 하는 반 동이 대륙사의 주범일까.....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이승만을 제자로 둔 송재 서재필마저 자신의 송재일기에서 이왕가의 후손인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그 호사와 사치가 한계를 넘었다고 비판한다. 상해임정의 더러운 뒷골목을 거지헐랭이 옷을 입고 그  속에 윤봉길 의사의 거사에 쓰일 폭탄을 숨기고 다닌 김구(백범일지 참조)와는 천양지차로 미국에서 상해로 보내져야 할 독립운동자금을 가로채 물쓰듯 쓰며 당시로서는 미국 최고위층이나 최고 상류층 인사나 탈 수 있었던 최고가의 크라이슬러를 몰고다닌 이승만.이승만은 상해 임정 국채까지 발행해 물쓰듯이 썼다. 사진은 모 Auto 잡지에 소개된 희귀사진으로 이승만이 미국의 최고위층도 타기어려운 자신의 호화 크라이슬러 자동차를 세워놓고 폼잡고 있는 사진이다. 이와 반대로 백범일지를 보면 김구는 완전히 거지옷차림으로 상해임정의 뒷골목에 앉아 홍코우 공원 윤봉길의사 폭탄테러와 이봉창 폭탄투척 의거를 성사시켜 이에 감동한 장개석으로 하여금 카이로 회담 대한민국 독립의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할 것임을 약속받는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독립한 것은 이승만 외교주의 노선의 작품이 전혀 아니라 김구의 무장항쟁주의 노선의 결과이다. 이승만 인생의 종착역은 4.19혁명의 된서리로 인한 대통령 하야와 극비리 하와이 망명이었고 죽음 역시 그곳에서 맞이했다. 그것도 모자라 한민족은 그의 어두운 기억을 영구히 씻어내 반면교사를 삼고자 헌법전문에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반 이승만 정신인 반독재,반부패, 반무능의 4,19 정신을 계승한다고 못을 박았다. 어두운 질곡의 역사도 세월이 가면 파사현정, 사필귀정으로 돌아가는 엄정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사형선고가 내려진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사법심판으로 국보위와 민정당(민주정의당)은 역사적으로 불법화되었다. 따라서 민정당이 민정당-신한국당-00 당 등  당명 간판세척으로 수없이 위장해가며 그 본질을 흐리는 이단행각 역시 언젠가 파사현정, 사필귀정으로 역사에서 사라질 거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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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는 조상의 도인 동이족 혈통을 이어받은 요순의 도를 이어받아 서술하시고(祖述堯舜) 문왕과 무왕의 도를 본받아 명백히 하시며(憲章文武) , 위로는 천시를 본받고 아래로는 물과 흙을 따랐다.(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上律天時, 下襲水土.)- 그 주석에 祖述者, 遠宗其道. 憲章者, 近守其法. 律天時者, 法其自然之運. 襲水土者, 因其一定之理. 皆兼內外該本末而言也.)(참고:맹자에 문왕은 동이족 후손으로 서이(西夷)라 했으니 이는 그가 근본은 동이족임에도 불구하고 서하(西夏)의 머리인 주(周)를 세웠다 하여 이를 사적으로 가름하기 위해 맹자가 별도로 문왕을 서이라 칭한 것이니 맹자는 공자의 화하사관을 그대로 이은 것이다)-요, 순은 동이족임을 반드시 주지하고 읽을것


또 하나의 관점은, 공자는 근본적으로 저작(著作)이 없거나, 혹은 「춘추(春秋)」를 깎아내어 정정한 것(刪訂)으로 여기는 관점이다. "5.4운동"이후, 전현동(錢玄同)이 이 학설을 역설했다. 그는 공자와 시(詩),서(書),역(易),예(禮),악(樂),춘추(春秋)의 "육경(六經)"은 무관하다고 여긴다. 그는  「춘추(春秋)」를 "단란조보(斷爛朝報)"라고 설명하고 혹자는 "유수장부(流水帳簿)라 확실히 잘라 평가한다.

조보(朝報)는 조정의 일일관보를 일컬으며, "단란조보(斷爛朝報)"는 여러 조각이 난 조정의 기록이라는 뜻으로 왕안석(王安石)이 「춘추(春秋)」를 헐뜯어 한 말이다. 왕안석은 처음으로 춘추를 주해하여 천하에 펴려 했으나, 이미 손신로(孫莘老)의 <춘추경해(春秋經解)>가 나와 그에 견줄 수 없음을 깨닫고 춘추를 폄하해 헐뜯어 춘추란 본래 옛 동이족의 기록 이곳 저곳에서 얼기설기 끼워 맞춘 기록이라는 뜻에서 단란조보(斷爛朝報)라고 부른 바 있다. 또 학자들은 「춘추(春秋)」는 본래 일종의 원시기록을 그대로 베낀 조보(朝報)라고 지적한다.(「춘추(春秋)」原是朝報邸抄一類的原始記錄)

「예기(禮記)」<방기(坊記)> 및 「한비자(韓非子)」는 노(魯)나라 「춘추(春秋)」를 공히 4조(條) 인용 서술하고 있는데, 모두 지금의 「춘추(春秋)」와 더불어 동일하며, 가히 지금의 「춘추(春秋)」가 곧 노(魯)나라 「춘추(春秋)」임을 볼 수 있는데, 그 사이에 공자가 필삭(筆削)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춘추(春秋)」는 마땅히 노사(魯史) 구문(舊文)으로, 그 가운데는 "곽공(郭公)", "하오(夏五)" 류(類)에서와 같이, 모두 원래의 결함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나, 단 장기간에 걸쳐 필사 유전되는 와중에, 한 점의 뒤바꿈 없기를 면하기는 어렵다. 「논어(論語)」는 공자의 평생의 언행을 아주 자세히 싣고 있는데, 「춘추(春秋)」에서 한 글자를 물리쳐 사용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그 중에서 「시경(詩經)」을 논하는 것이 가장 많다. 공자시대의 「춘추(春秋)」는 아무래도 노(魯)나라가 비장(秘藏)한 국사로, 공자는 이러한 비장(秘藏)된 국사에 대해 필삭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았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학자들은 공자의 탄생한 해와 죽은 해가 「춘추(春秋)」에 기재된 것을 근거로, 공자가  「춘추(春秋)」를 찬수했다는 말이 성립되기 어렵다고 여긴다. 따라서 그가 자칭 공자(孔子)라고 했을 리 없으며, 또한 마땅히 어느 때 죽었는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공자와 「춘추(春秋)」의 관계는, 단지 공자가 일찍이 「춘추(春秋)」를 교재로 쓴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자가 한번 교재로 쓴 이후, 「춘추(春秋)」는 다시 한번 점점 민간 속으로 전해져서, 이후로 다시 공문(孔門) 제자 일대 일대로 말미암아 전술(傳述)되어 내려갔다.

「춘추(春秋)」는 일시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이는 노(魯)나라 사관들이 2백 수 년의 시간을 전해 내려오며 편찬한 것으로, 전후의 문맥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지방이 출현했다.  역사상 중요한 지위와 심원한 영향을 주고 있는 공자와 춘추를 생각해, 공자와 춘추가 필경 어떤 관계에 있는지 확실하게 밝히면, 장차 학술사상 문제 해결에 도움이 있을 것이다.

나를 아는 자도 오직 「춘추(春秋)」요, 나를 죄줄 자도 그 오직 「춘추(春秋)」라는 공자의 말은 마치 이승만이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며 해공 신익희에게 대항해 선거유세를 하던 수수께끼의 공안- 정체불명의 공안과도 비슷하다. 이 말은 친일파가 되었든, 친일 매국신문이 되었든, 친일 교육가가 되었든, 아니면 친일 매판자본가 세력이 되었든 다들  뭉쳐서 반공주의자가 되고 자유 언론창달자가 되고, 반공교육가로 변신해 이승만을 지원하기만 하면 모두 애국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속내와 동등하니, 오직 춘추를 통해 공자의 입김으로 변색된 경학으로 무장하여 유학도가 되면 모든 것을 사해 주겠노라는 공자의 배포가 들어있는 수수께끼같은 공안이며 이로 인해 공자는 춘추의 존주사대주의 사관 깊숙히 자신의 역사왜곡의 죄를 영원히 묻으려 했던 것이다.

 동이족의 한민족 대륙사관으로 보면 춘추는 공자의 양심을 묻은 무덤인 것이다. 공자는 그 변명을 "나는 주(周)의 예를 배웠고, 세상이 그것을 따르므로, 나도 따를 뿐이다.(子曰: 吾說夏禮, 杞不足徵也; 吾學殷禮, 有宋存焉; 吾學周禮, 今用之, 吾從周.)" "나를 아는 자도 오직 「춘추(春秋)」요, 나를 죄줄 자도 그 오직 「춘추(春秋)」다"라는 자위로 애써 회피하려 했으며 오직 춘추만이 자신의 역사적 비리를 알고 있다고 고백했다.

노나라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으며 주나라의 정통을 계승한 나라도 아니었다. 공자는 자기 조상의 사당이 모셔진 노나라가  중원대륙 전체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땅이라고 보았다. 공자의 제자들 역시 공자가 왜곡하고 은폐한 사건에 대해서는 춘추사관을 명분으로 입을 다물었으며  공자는 '존자(尊者)와 현자(賢者)와 친자(親子)의 허물은 말하지 않는 것이 예(禮)다'라는 말로 정당화했다.(안원전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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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고조선 사람들을 가리켜 [동이(東夷)민족] 이라 했다.동쪽에 사는 사람들이고 민족 이름은 [이(夷)]란 뜻인데 지금도 우리말에 보면 '지은이' , '가는 이' , '오는 이' 등으로 '이' 라는 말이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사실 고대 중국인들은 한(배달)민족 즉 동이(東夷)민족의 [배달문명]을  대단히 존경했다.
그 한 예로 현존하는 (지금 남아있는) 한자사전(옥편)중 가장 오래된 것이고 한자 사전 중 말하자면 "절대적 권위"를 가졌다고 하는 아주 유명한 책인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책에 보면
( " 설문해자" 는 후한(後漢)시대 의 허신(許愼 - 서기 30년 ~124년)이 편찬.)
"배달민족(동이東夷)"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夷]

【東方之人也 從大從弓】

[蓋在坤地頗有順理之性 惟東夷從大大人也
夷俗仁仁者壽有君子不死之國
按天大地大人亦大大象人形而夷篆從大
此與君子如夷 有夷之行降福
孔夷傳夷易也同意夷卽易之假借也
易亦訓平 故 夷爲易也
故孔子曰 道不行 吾欲之君子不死之國九夷 承孚 浮於海 有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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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이(夷)' 는 동방의 사람을 말한다. '동이(東夷)' 의 '이(夷)' 라는 글자는  

"大(대- 위대함)"에서 유래하였으며 또한 "弓(궁-활)"에서 유래하였다. 본래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땅의 품성을 닮게 되어 있다.오직 동이(東夷)만이 대인(大人 - 위대한 사람)들이다. [惟東夷從大大人也] 동이인(東夷人)의 풍속은 어질고, 어질면 장수하므로[夷俗仁仁者壽] 동이(東夷)에는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 (군자불사지국 - 君子不死之國) 이 있다.[有君子不死之國] 생각컨대, 하늘은 크고 땅도 크고 사람 역시 큰 것이다. "크고 존귀함"을 나타내는 "大"자는 사람의 형상(성인)을 본 뜬 것인데 "이(夷)"자도 "大"자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렇듯이 군자(君子)는 동이인(東夷人)들과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此與君子如夷]

동이인(東夷人)들처럼 행동하면 복(福)이 내린다. [有夷之行降福]
진리를 뜻하는 易(역 또는 이)자는 원래 夷(이)자에서 나온 같은 글자다. [夷卽易之假借]
동이인(東夷人)들이 진리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중국에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나는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인 동이(東夷)에 가고 싶다." 고 말하면서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간 것은 참으로 이유있는 일이라 하겠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위와 같이 나온다. <배달민족> 즉 <동이인(東夷人)>에 대한  그야말로 "극찬"이라 하겠다.게다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보면 '이(夷) 자는 원래 어질 인(仁)자와 같았다' [古文仁同] 고 나온다.원래는  동이(東夷)의 이(夷)자와  어질 인(仁)자가 같은 글자였다는 것이다.
어질 인(仁)자는 원래 사람인(人) 자가 두개 있는 모양이다. [人人]

그런데 원래 사람 인(人) 자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앞에 무릎 꿇고 않은 사람의 모습이다. 즉 '사람다운 사람' 을 뜻하는 글자가 사람 인(人) 자였다. '사람다운 사람' 이 다른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모습이  [人人] 자이고 이 글자가 어질 [인(仁)]자도 되고 동이(東夷)의 [이(夷)]자도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원래 큰 대(大) 자는 사람들에게 교화하는 성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인데
동이(東夷)의 [이(夷)]자는 큰 대(大) 자에서 나오고 사람 인(人) 자에서 나왔다고 하니
그러므로 원래는 '사람다운 사람' 은 동이(東夷)민족 뿐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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