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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론194.당황실의 미스테리-황제헌원, 진시황, 주문왕, 요,순,우,백이와 같은 동이족 혈통2




당황실의 미스테리


황제헌원, 진시황, 주문왕, 요,순,우,


백이와  같은 동이족 혈통2






*고요상(皐陶像).전설중에 동이족 수령 고요는 요순(堯舜)시기에  형법을 관장하는 관직인 대리(大理)직에 임명되어 마침내 관명(官名)족으로 "이(理)" 성(姓)이 되었다. 고자(古字)중에 이(理)와  이(李)는 상통했다.(傳說中東夷族首領 皐陶 曾任堯舜大理之職(管掌刑法的官 遂以官命族爲理氏 古字中理與李相通)
*노자백서(老子帛書), 곧 <도덕경(道德經)>이니 호남성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출토. 마왕퇴는 지나인에게 동이족 남월국의 소위 오랑캐국으로 회자되는 곳이니 동이족 노자의 도덕경 출토는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당황실 이(李) 씨 성의 뿌리를 찾아서-동이족  고요(皐陶)

이(李) 씨 성은 현재 한족(漢族)의 7.9%를 차지하는 대성(大姓)으로 가히 백가(百家)성(姓)의 머리를 차지한다. 이(李) 씨 성은 본래 동이(東夷)족의 한 갈래인 "조이(鳥夷) 부락"의 "고요(皐陶:화락하게 즐길 요)"가 "혈연의 시조"가 되는데, 요순(堯舜)시기에 형법을 관장하는 "이관(理官)"에 임명된 것으로 인해 이"(理)"가 성(姓)이 되었다.

상조(商朝)의 이관(理官)이었던 이정(理征)의 아들 이정(利貞)이 성(姓)을 얻어 시조가 되었으니, 노자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혁혁하게 이름이 드러났다. 이(李) 씨 당(唐) 왕조에 300년 간 국성(國姓)으로 위엄을 떨쳤으며, 12개 정권을 세웠으며, 칭제한 자가 58인이 되었다.

이(李) 씨 성의 이(李)는 처음에는 장미과에 속하는 오얏나무 식물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李) 씨 성의 직접적인 기원은 상조(商朝) 의 관명(官名)인 "대리(大理)"에서 비롯한 것이다. 갑골문에는 이(李)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李) 씨 성의 기원은 원시인류의 순박한 생활습관과 더불어 밀접한 관계가 있다.

최초의 "이(李)"는 <설문(說文)>에서 "이(李)"는 열매다" 오얏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며...씨는 구형으로 여름에 성숙해 홍색광택을 띠고 맛은 시고 달며, 식용으로 쓰이며, 일명 "가경자(嘉慶子)"라 한다" 하였다.

<통지(通志)·씨족략(氏族略)·관직으로 씨를 삼다(以官爲氏)>에 "이(李)씨는, 고요(皐陶)가 요(堯)의 대리(大理)가 되었는데, 이로 인해 이 관직에 부름받은 족을 이(理) 씨로 삼았다. 상조(商朝) 반년에 이정(理征)이 이(李)씨로 바꾸었다.


중국 성씨 발전사 가운데, 이(李) 씨 성은 주(周) 이후의 제 사적에 보인다. 「국어(國語)·정어(鄭語)」가운데의 축융(祝融)의 후에 8성(姓), 「진어(晋語) 4」가운데의 황제(黃帝)의 후에 12성(姓), 「좌전(左傳)」에 기재된 서주(西周)의 20성(姓) 모두에 이(李)씨 성은 보이지 않는다.

「성해(姓解)」에도 설명하기를, "주(周) 이전에 이(李)씨는 보이지 않는다.「사기(史記)」에 말하기를, "주(周)로부터 노담(老聃)이 있으니, 이(李)씨 성(姓)이다." 이후로 이(李)씨 성(姓)은 점점 증가한다. 이(李) 씨 성의 기원에는 다음의 5종이 있다.


첫째, 전설 가운데 동이족 수령인 고요(皐陶)는 일찍이 요순(堯舜)의 대리직(大理職:형법을 관장하는 관리)에 임명되니, 그 식솔 제족들이 이(理) 씨가 되었는데 고자(古字)중에 "이(理)"와 "이(李)" 자는 서로 상통해서 쓰는 글자였다.

둘째, 노자(老子)는 조상들이 이관(理官)이 되어, 이(理) 혹 이(李)로써 씨(氏)를 삼았다. 또 노자(老子)가 이(李)씨 여자의 소생이라는 설이 있다.

전설에 이(李)씨 모친이 81년 동안 뱃 속에 태아를 품고 있으면서, 오얏나무(李樹) 아래를 노닐다가 좌측 장부(腸腑)를 가르고 노자를 낳더니, "태어나면서 오얏나무(李樹)를 손으로 가리켜, 이로 인해 성으로 삼았다" 손으로 가리킨 나무를 성(姓)으로 삼아 불러왔다는 것은 망설(妄說)이다.

셋째, 춘추시대 조(趙)나라 장령(將領) 무안군(武安君)의 후대에 이좌거(李左車)가 있는데, 그 후예가 이(李)씨가 되었다.

네 번째, 북위(北魏)는 이(李)씨로 바꾼 것을 꾸짖었다.

다섯 번째, 당대(唐代) 서(徐), 병( ), 안(安), 두(杜), 호(胡), 홍(弘), 곽(郭), 마(麻), 선우(鮮于), 장(張), 아포(阿布), 아질(阿跌), 사리(舍利), 주사(朱邪), 동라(董羅) 등 의 씨(氏)가 건국에 공(功)이 있다는 이유로 인해 이(李) 씨 성(姓)을 하사 받았다.


이상에서 이(李)씨 성(姓)의 5가지 설명 가운데, 앞의 3종류는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중에 하나의 근원으로 합해지니, 고요(皐陶), 노자(老子), 이좌거(李左車) 동일 세계(世系)중의 인물이 된다.

이에 대해 일찍이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있으니, 「승암집(升庵集)」 권 50 <이씨성은 하나가 아니다(李姓非一)>는 자못 첨예하게 말하여, "농서( 西)의 이(李)와 당실(唐室)의 이(李)는 동족이 아니다"고 말하고,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는 왜곡 아첨된 설이라 하여 "부회왕찬(附會枉撰), 미시지설(媚時之說)"이라 했다.

진인각(陳寅恪)도 일찍이 당 고조 이연(李淵)의 조상 선조에 대해 고증을 진행해, 이연(李淵)의 조상 선조는 조군(趙郡) 이(李)씨의 후예로 여기고, 농서( 西) 이(李) 씨의 후예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로 인해 그 족(族)은 조주(趙州) 소경현(昭慶縣)(지금의 하북 융평현(隆平縣)에 장사지내졌다.

그러나 조군 이씨와 농서 이 씨는 그 근원이 하나임이 이미 밝혀진 상태다. 이상으로부터 가히 알 수 있듯이,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가운데 기록된 세계(世系)에 대해, 세인은 논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성씨학의 저작은, 고요(皐陶)가 이(李) 성(姓)의 조상이 된다는 것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다.

대당(大唐)의 종실(宗室)에 이르면 이(李)씨는 한(漢) 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적(夷狄)에 속한다.  이미 화하사관이 드러난 유가사관의 필법으로 이적을 금수시한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이적을 폄하해 설명하기를 "당(唐)은 이적(夷狄)에 원류(原流)를 두고 있어서, 생각건대 규문(閨門)이 예를 잃어버리는 일이 다르지 않다"라 했다.

당(唐) 초기의 왕실 세습 이전에는 문벌을 우선시하는 습속이 있어 분분히 소리 높여 자신이 세가(世家) 대족의 후예라 칭하곤 했는데 당 황실가인 이 씨 가문 역시 이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당조에 수정(修訂)된 「씨족지(氏族志)」를 보면 왕실에 불리한 씨족은 모조리 배척해 없앤 동시에 자기 혈통에 유리한 것은 가지와 잎을 보태어 이(李) 씨가 서량(西凉) 무소왕(武昭王) 이고(李暠)의 정통후예라 성칭(聲稱)한다.

왕실의 역사가 이같이 동이족의 혈통을 숨기고 가지를 보태는 형국인데 일반 서민의 혈통과 역사가 분식됨은 보통이었다. 「비급신서(秘 新書)」는 「성찬(姓纂)」 및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를 인용해 기재하기를, "이(李)씨는 제(帝) 전욱고양( 頊高陽)의 후예다. 전욱( 頊)은 대업(大業)을 낳고 대업은 여화(女華)를 낳고 여화는 고요(咎繇성 고 또는 허물구, 역사 또는 부역 요⇒ 皐陶)를 낳았다" 그럼 고요는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넘어가자.


중국 족보사료에 의하면 고요(咎繇:皐陶)는 동이부족 수령이 되어, 활동 중심지가 지금의 산동성 곡부(曲阜) 시(市)인 언(偃:奄)이었다고 말한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세기(世紀)>를 인용해 고요(皐陶)에 대해 설명하기를, "곡부(曲阜)에서 태어났다.


곡부(曲阜)는 언(偃) 땅인데, 고로 제순(帝舜)이 이로 인해 사성(賜姓)을 내렸으니 왈 "언(偃)"이다" 이는 「좌전(左典)」가운데 설명한 바 있는, "천자가 태어났으므로 사성을 내렸다(天子因生而賜姓)"이다. 고요(皐陶)는 요(堯)가 염황이(炎黃夷:염제, 황제) 연맹 수령이 되었을 때에 이관(理官)으로 임명되었으니, 곧 사법(司法)을 관장한 장관(長官)이다.

「사기오제본기(史記五帝本紀)」에는 그가 5종류의 형벌인 묵(墨:온몸에 먹을 그려넣는 형벌), 의( :코베는 형벌), 비( :발뒷굼치를 베는 형벌로, 잘린 사람을  "올자"라 부르는데 "올자"는 장자에 많이 보인다), 궁(宮:불알을 떼는 형벌), 대벽(大 :사형)을 제정해 책임을 맡아, 죄의 경중에 따라 형량을 다스리고, 또 5형을 쓰지 않는 죄인은 분류를 매기어 내보냄으로써 천하의 인심을 얻었다고 한다.

전설에, 고요(皐陶)는 선악의 진위(眞僞)를 가리는 일종의 특이한 외뿔 짐승 해태(  :論衡에 선악을 아는 외뿔짐승의 羊이라 하였다)를 길렀는데, 이 짐승의 판단으로 시비선악을 잘 내려 순이 정권을 이양 받은 후에도 대리(大理) 직에 있어 천하의 죄악을 잘 평정하여 사람들은 편안히 살면서 즐겁게 직업에 종사했다 한다.


*신화전설에 이(李) 씨 성(姓)의 시조인 고요(皐陶)는 바로 이 선악을 정확하게 아는 신령한 짐승 덕으로 옥리(獄理)를 잘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이 독각기수(獨角奇獸)에 힘입어 형옥(刑獄)을 잘 다스려 명예를 얻었다.-이 독각기수는 해태로 해태는 바로 무신인 치우의 귀면복사신앙에 기인한 것임을 알면 고요와 귀면복사의 대표 해태, 혹은 해치와의 결합은 더욱 동이족 고유의 민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할 수 있겠다. 헌법재판소에도 고요의 해태인 독각기수 상이 세워져 있다.



임직에 있는 동안 고요는 수 차례에 걸쳐 현명한 계책을 내놓았으며,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 반드시 삼가 그 몸을 닦도록 하여, 특별히 "지인(知人)"과 "안민(安民)"을 강조했다고 한다. 순(舜)은 고요(皐陶)를 최고의 현신(賢臣)으로 여겨 누구를 후계로 삼아야 할지 물으려 했다.

그러나 순(舜)은 미처 그럴 새도 없이 창오에서 우(禹)의 세력에게 쿠데타를 당하고 죽었지만 대륙의 사서는 순(舜)이 심지어 고요(皐陶)에게 선양하려 했지만 고요(皐陶)가 먼저 병들어 죽었다고 말한다. 아무튼 대륙사를 떠들어 보면 좁쌀만 한 반도식민사관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동이족이었던 고요는 대단한 인물이었음이 틀림없다.

고요(皐陶)의 아들이 바로 상고 대륙사에서는 고요(皐陶)보다 더 유명한 백익(伯益)으로 그는 우(禹)를 타도하고 제위(帝位)까지 올랐다가 다시 우(禹)의 아들 계(啓)에게 타도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고요(皐陶)가 죽은 후, "그는 육(六)에 장사지내졌다" 「사기(史記)」는 「괄지지(括地志)」를 인용해 설명하기를, "안휘 수주(壽州) 안풍현(安豊縣:合肥바로 위) 남쪽 130리에 옛 육성(六城) 동쪽에, 우(禹)는 그의 어린 자식을 육(六)에 봉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이를 기념해서인지 수주에 우왕묘(禹王廟)가 세워져 있다)  이후로 육(六)은 다시금 일개 "언(偃)" 성(姓)의 소국(小國)이 된다.

그러나 초(楚)국 목왕(穆王)이 이를 멸해 버렸으니, 계보가 없다. 고요(皐陶)에게는 장자 백익(伯益)이 있었는데, <제왕세기>에 설명하기를, "백예(伯 (益))는, 순(舜)왕을 위해 가축을 많이 길렀으므로, 가득 차 넘칠 "영( )" 씨 성(姓)을 사성  (賜姓) 받았다" 이로써 가히 알 수 있듯이, 백익(伯益)은 잘 훈련된 조수(鳥獸)로 인해 순(舜)으로부터  "영( )" 성(姓)을 사성(賜姓) 받았으며, "영( )" 성(姓)은 부락의 수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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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皐陶)의 둘째는 이름이 중견(仲甄)으로, 중언(仲偃)으로도 불렸는데, 거듭 언(偃)이 성(姓)이 되었다. 이후, 언(偃) 성(姓)은 고요(皐陶)를 조상으로 받들고 성(姓)으로 씨(氏)를 삼았다.

고요(皐陶)의 후예는 역우(歷虞), 하(夏), 상(商) 26세 기간에 이관(理官)이 된다. 고인(古人)이 관명(官名)으로 씨(氏)를 삼은 것에 따라, 고요(皐陶) 및 그 자손은 이(理) 씨가 되었다. 관(官)으로써 씨(氏)를 삼은 이(理)씨는 문제의 이정(理征)이라는 사람 때 이르러, 상(商)의 맨 마지막 왕인 폭군 주(紂) 왕의 이관(理官)으로 임명되어, 상(商) 주(紂)가 혼용혼용무도(昏庸無道)하여 여색에 빠지자, 여러 차례 나아가 간언하고, 법을 지켜 아첨하지 않았으나 이미 혼음(昏淫)해진 주(紂) 왕은 이를 용납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죽을 화(禍)를 만났다.

이정(理征)의 처자 설화(契和)씨는 어린아이 이정(利貞)을 데리고 도망 길에 올라, 지금의 하남(河南) 경내인 이후(伊侯)의 터로 달아났다. 굶주림을 참지 못하다가 나무 한 그루 위에 열린 과실을 보고, 곧 따먹으니 모자(母子)는 겨우 살 수 있었다.

그 후, 이정(利貞)은 주(紂) 왕이 추격해 잡힐 것을 두려워해 감히 이(理) 상(姓)을 칭하지 못하고, 목숨을 구한 은공으로 "목자(木子)", 이(李)씨로 개칭했다. 이것이 후일 "지수위성(指樹爲姓)"의 설이되었다. 이 설을 생각해 보면, 이(李) 성(姓)의 시원은 상말(商末) 주초(周初)에 해당된다.

이상으로부터 가히 알 수 있듯이, 이(李)씨 성(姓)은 고요(皐陶)가 혈연의 시조가 되니, 그는 언(偃) 성(姓)의 후예로, 일찍이 관(官)으로 씨(氏)를 삼아 이(理) 성(姓)을 칭했다. 청(淸)의 유학자 진가모(秦嘉謨)가 편집한 「세본(世本)」에 의거해 상고해 보면, 고리(古理), 리(里), 이(李) 3자(三字)는 함께 통한다. 「사기·오제본기(史記·五帝本紀)」에 고요(皐陶)가 대리(大理)가 되었다 기재하고,

「관자법법(管子法法)」에 기재하기를, 고요(皐陶)가 이(李<理>)가 되었다 하고, 「사기·위세가(史記·魏世家)」에는 "이극(李克)"이라 기재되어 있고,「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이극(里克)" 등등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리하여, 이(李) 씨 성(姓)은 이관(理官)이었던 고요(皐陶)가 혈연의 시조가 되었다는 설이 만들어진 것이니, 실제로 망령된 말이 아니다.

고요(皐陶)는 이(李) 씨 성(姓)의 혈연 시조가 되어 정직 과감하고 매우 창조적이었다고 전한다. 그의 공덕은 아주 깊어서 이(李) 성(姓) 자손의 본보기이자 동시에 교만이 된다. "지수위성(指樹爲姓)"의 설법에 따라, 강직하여 굽히지 않는 이정(理征)의 아들 이정(利貞)은 마땅히 이(李) 성(姓)이 성(姓)을 취득한 시조이다.

한편, 도교(道敎) 시조 노자는 이름이 이이(李耳)로 "정사(正史)"에는 이(李)씨 성(姓)의 제 1인으로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이성족(李姓族)의 계보는, 이(李) 당왕조(唐王朝)의 상세한 고증으로 인해서 가까스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혈맥은 번창해 넘친 나머지 가지치고 나간 지엽이 아주 많아졌다. 현재 「신당서(新唐書)·종실세가표(宗室世家表)」에 기재된 바에 의하면, 이정(理征)의 이(理)를 이(李) 성(姓)으로 고친 후의 종계(宗系)를 다음과 같이 찬술(撰述)하고 있다.



이정(理征)은 설화(契和)씨의 여식을 아내로 맞아 창조(昌祖)를 낳았는데, 창조는 진(陳)의 대부(大夫)가 되어, 고현(苦縣)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진(陳)은 서주(西周)의 진국(陳國)으로 옛터는 지금의 하남성 개봉(開封) 이동(印), 안휘(安徽) 박현( 縣) 이동(印)으로 춘추 말년에 동이족 초국(楚國)에게 멸망되었으며, 고현(苦縣)은 지금의 하남성 녹읍(鹿邑) 현(縣) 동쪽 10리에 있는 마을이다.


창조(昌祖)는 동덕( 德)을 낳고, 동덕의 증손 석종(碩宗)은 주(周) 강왕(康王)으로부터 고현(苦縣)에 있는 채읍(采邑)을 하사받았다. 5세손 건(乾:字는 元果)때에 이르러 주(周)대의 상어사대부(上御史大夫)를 맡았다. 그는 익수(益壽)씨의 여식 영부( 敷)를 아내로 맞아, 아래로 이이(李耳:字는 伯陽,老聃(노자)으로 칭한다)를 낳으니, 그는 주(周) 평왕(平王) 때에 태사(太史)로 임명된다.

「사기·노자한비열전(史記·老子韓非列傳)」에 설명하기를,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 역향(歷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라"했으니,  이 고현(苦縣)이 바로 초(楚)나라가 멸한 바 있는 바로 그 진(陳) 나라의 고현(苦縣)이다.

또 설명하기를, "성(姓)은 이(李) 씨로, 이름은 이(耳), 자(字)는 백양(伯陽), 죽은 뒤 임금이 내린 시호는 담(聃)으로, 주(周)의 수장지사(守藏之史:도서관장)를 지냈다" 이 기록은 정사(正史) 가운데 처음으로 이(李) 씨의 한 개인을 명확히 가리킨 것이다.

이후 「광운육지(廣韻六止)」는 「사기」의 설을 따온 「풍속통(風俗通)」을 인용해 "이(李) 씨가 이 백양(李伯陽:노자)의 후손"이라 여긴다. 이이는 고대의 성인으로 만사만물에 정통 박식하여 공자가 일찍이 그에게 가 예를 물으니, 유익함을 얻되 얕지않으니, 설명하기를, 내가 노자를 보니, 풍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형상이라 하였다. 노자의 학설은 후세에 전해져 「도덕경(道德經)」 상, 하 편 5천 자를 남겼다.

이이(노자)의 후대 이종(李宗:자는 尊祖)은, 본래 진(晋)국 사람인데, 전국시대 위국(魏國) 성읍(城邑) 단간(段干)에 봉해져 읍(邑)을 성(姓)으로 삼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간목(干木) 대부 또는 단간목(段干木)이라 불렀다. 위문후(魏文侯)가 매번 그 문앞을 지나갈 때면 반드시 수레에 내려서 걸어갔다.

그는 일찍이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로부터 배움을 구해 숨어서 벼슬하지 않았다. 위문후(魏文侯)가 그의 재능을 높이 사 그를 찾아보고 관작을 주려 했으나 단간목은 위문후를 피해 담장을 넘어 도망가 만날 수 없었다. 위문후는 더욱 존경하여 단간목의 집에 거마를 몰고가 집 앞에 내려  존경의 뜻을 표했다.

엎드린 측근들이 이해를 못하자 위문후는 단간목이 비록 누추한 곳에 살고 있지만 그 현덕한 명성이 천리밖에 가득하므로 내 어찌 그를 존경치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이후, 단간(段干)씨는 후대에 널리 각지에 유포되었으며 동이(東夷) 국가 산동성 제(齊)나라에도 단간붕(段干朋), 단간륜(段干綸)이 있으며, 같은 동이(東夷) 국가인 한(韓)나라에도 단간월인(段干越人)이 있고, <전완세가(田完世家)> 에 단간명(段干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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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담론 특별기획 동이족의 영적문서를 빌어다가 개찬한 공자의 소작-나를 아는 자도 오직 「춘추(春秋)」요, 나를 죄줄 자도 그 오직 「춘추(春秋)」다   안원전    2002/10/30  8671
N   동이 대륙상고사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안원전) 2002.8.16   안원전    2003/04/15  12420
432    안원전의 담론 391.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7 -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3부   안원전    2013/11/17  4197
431     안원전의 담론 390. NHK ‘료마전’의 료마와 요시다쇼인(吉田松陰)   안원전    2013/09/15  4555
430    안원전의 담론 389.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6 -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2부   안원전    2013/03/29  4104
429    *(특집)안원전의 담론 388. 대한민국 한류 디자인-대한민국을 새로 디자인하라!!   안원전    2012/09/07  4167
428   비밀글입니다  안원전의 담론 387.   안원전    2011/07/26  213
427    안원전의 담론 386.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5-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1부   안원전    2011/07/04  5796
426    안원전의 담론 385.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4-진나라 제왕의 위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위염(魏冉)   안원전    2011/06/07  4736
42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384. (漢字의 秘密) 한자(漢字)의 주인은 한겨레 韓민족이다.   안원전    2011/06/01  6943
424     안원전 담론 383. 소통(疏通)에 대하여   안원전    2011/05/24  2876
423    안원전 담론 382.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3-초인이 진나라를 섬기던 역사의 공헌 및 통일전쟁의 서막을 올린 감무(甘茂)   안원전    2011/05/17  3334
422    안원전 담론 381.약초를 널리 보급하여 질병을 치료한 다릉(茶陵:차릉)의 ‘세 가지 보물(三寶)’   안원전    2011/05/11  3019
421    안원전의 담론 380. 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 2   안원전    2011/05/09  2682
420    안원전의 담론 379.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1   안원전    2011/05/09  2797
419    안원전의 담론 378.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2- “진나라가 망하고 초나라가 보전되는(亡秦必楚)”의 문화 운명   안원전    2011/05/03  2617
418    안원전 담론 377.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1-초나라가 갑자기 쇠퇴한 원인은 음란과 방탕 그리고 모든 통치계급의 부패와 문란   안원전    2011/04/30  2568
417    동이 대륙상고사 답사를 마치고2(2002) 續원고   안원전    2011/04/30  2560
416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6. 거영신(巨靈神: 강의 신)   안원전    2011/01/10  3039
415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5. 황하(黃河)의 수신(水神) 하백(河伯)   안원전    2011/01/05  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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