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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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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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의 가장 위대한 영웅 호세 리잘을 대하고(2005.12.중순)





새로 밝혀진 우리역사에 의하면 20세기 초반 중국에서 발견된 백제 부흥운동의 주역 흑치상지 장군의 묘지명을 통해 백제가 흑치(黑齒) 땅을 통치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흑치가 바로  지금의 필리핀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필리핀과 태국을 미워하는 편이라 가 본적이 없었다. 그건 그러니까. 약 지금으로부터 15,6년전 뉴스위크지인지 타임지에서 태국의 에이즈 실태와 그들의 성모럴과 도덕적 해저드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한국인의 그릇된 보신관광 그리고 이에 덧붙여져 그들에 대한 본인의 정치관때문이었다.



전 세계 300여곳 이상을 둘러본 이후 난 의사들의 권유로 골프에 입문한 작년 여름에 비로소 태국과 친해질 수 있었고 이번이 필리핀의 첫 방문이었다. 태국과 필리핀을 좋아하지 않는건 특히 태국의 경우 국왕 일족이 국가 국영기업내지 공영기업의 대부분을 모두 말아먹고 서민들은 준 거지생활을 하는 비참함때문이었다.



즉 바람직한 중산층이 태국이나 필리핀에는 없다는 사실(인도도 마찬가지)이 발길을 떼지 못하게 했다.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을때 환영한다는 글귀와 함께 걸려진 아로요 대통령의 대형 사진과 필리핀이라는 국명이 오버랩되면서 한참을 묵상에 젖었다. 못사는 것은 못사는 것이고 어찌하여 이나라는 아직도 제 나라 국명하나 바꾸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해방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나라 친일 청산 문제하나 제대로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황을 비교하면서 카쓰라 테프트 밀약에 스며진 연민의 정과 함께 필리핀을 생각해보며 수속을 했다. 우리로 하면 아키히토의 애비인 히로히토(裕仁)에게 나라를 먹히고 해방이후 지금까지 히로히토로 국명을 삼고 있는 경우가 바로 마젤란을 후원한 스페인 필립2세의 필리핀이기때문이다. 필립이란 이름은 뉴테스터먼트(신약)의 예수 12제자중의 하나인 빌립보(필립)에서 기원한 것이다.

  


공항은 좁고 복잡했다. 우리는 짐을 찾는데부터 1시간 이상 지연을 하면서 적쟎이 지쳐갔다. 내 짐은 일찍 찾았는데 동행자들의 짐이 안나온다. 자세히 보니 짐이 나오다 말다를 되풀이하면서 벨트도 돌아갔다 섰다를 수없이 반복한다. 40-50분정도만에 드디어 내가 나서서 서있는 공항 직원에게 한마디 했다. 일류가 되려면 시정하라고....좌우간 우리는 짐을 찾아 출구를 나섰다.




우리를 맞이한 가이드는 엄청나게 키가 큰 대니보이 김보경이란 그레이스투어서비스의 청년이었다. 공항우측에 버스를 대놓고 우리를 맞이했는데 막아선 승용차뒤에는 넘버판을 누군가 떼어갔는지 넘버판을 찾는다고 흰 백지에 써 붙여놓았다. 순간 아! 15년전 구소련(지금의 러시아) 마스코우(Moscow)에 갔더니 경공업이 낙후된 러시아에서는 길가에 차를 세우면 브러쉬를 반드시 떼어 보관하지 않으면 모두 떼어갔던 일이 생각이 나는 것이 아닌가.



첨에 나는 190에 가까운 이 데니보이가 필리핀인인 줄 알았다. 나중에 보니 아주 똑똑하고 사회성이 된 친구였다. 이 친구는 열대성의 필리핀사람은 워낙 게으르니 빨리빨리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은 이곳에서만은 한 템포 늦추어 느긋하게 대처하라 신신당부한다. 그래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지. 중동의 회교국에 가면 손가락으로 카레밥 먹고 휴지없는 화장실에서 손으로 훔쳐내야겠지.



우리가 도착한 날은 바로 아세안 회의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이 온날이라고 해서 연도에는 필리핀기와 태극기가 같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 깃발 밑을 보니 한국전력공사라 써있다. 한전이 이곳 전력을 공사하는 연고로 환영하는 깃발을 세운듯 했다.



필리핀 돈 1페소짜리에는 필리핀의 민족운동가이자 구국영웅 호세리잘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마닐라의 중심 해변가에 마련된 호세리잘 기념 공원은(일명 루네따공원(Luneta Park)) 필리핀을 방문하는 모든 국빈이 처음들러 헌화하는 상징소이다. 물론 노무현대통령도 오늘 첫날 마닐라 중심지 해변가의 이곳에서 헌화할 것이다.  이 루네따라는 말은 옛날 스페인식민시대때 인트라무로스에는 7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그중 Puerto Real성문을 방어하기 위해서 초생달 모양의 보루를 쌓은데서 유래한다.



필리핀의 가장 위대한 영웅인 호세 리잘(1861~1896:35세의 나이에 반역죄라는 명목 아래 총살당함)의 유해가 1912년 이웃 파꼬공원 Paco Park으로부터 이장되어 이곳으로 안치되었다.  기념비 옆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호세 리잘이 1896년 12월 30일 총살형을 당했던 바로 그 자리에, 그이의 마지막 시 "미울띠모 아디오스" Mi Ultimo Adios를 새긴 청동 기념패가 박힌 대리석 석판과 함께 그가 독일에서 유학시절 금주를 했던 곳, 하이델베르그에서 조금 떨어진 울름(Ulm)에서 가져온 돌로 만든 오리지날 분수, 그리고 "내조국 필리핀" (La Madre Filipina)이라는 우화적인 조각이 같이 자리잡고 있다.



호세 리잘은 청년시절 의학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떠났다.의사,소설가,시인 등 다양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스페인 유학 중 민족 자주 의식에 눈 떠 "필리핀 민족동맹"을 결성했고,스페인의 혹정에 시달리는 필리핀 국민을 각성시키는 소설을 한 권 출간했다.마치 죤 오스본의 "성난얼굴로 돌아보라"가 연상되는 "나를 건드리지 말라(Don't touch me!)"는 지극히 저항적인 이 소설은 필리핀의 독립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스페인 치하 필리핀 정부에 의해 금서가 되었다.



호세 리잘 공원의 호세리잘 기념탑

리잘은 귀국 후에도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1896년 12월 30일 마닐라에서 처형당했다.처형되기 전날 유품 속에 몰래 남긴 70행 시 '조국에 바치는 마지막 고별'은 세계에서 가장 애절한 애국시의 하나로 남아 있다.(리잘이 처형당한 자리는 국립공원으로 성역화되어 있다.)




나는 그가 의사였다는 점에서 남미의 체 게바라와 같다고 보며 유럽에서 유학을 하며 식민지통치지배의 피해자로 갖가지 부당함을 경험한것은 필리핀의 간디와 같다고 보고있으며 단재 신채호 선생이나 안중근의사와 같은 강력한 무장항쟁을 전개하면서도 스페인군에 붙잡혀 처형당할때 처형당하는 순간 마지막 소원을 묻는 자리에서 앞으로 총살을 당하면 죽어서도 앞으로 쓰러져 스페인군에게 무릎을 꿇게 되니 뒤로 총살을 하게 해달라는 점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베드로와 같으며 동시에 이승만 당시 김창룡 특무대장(지금의 보안사령관:6.25당시 보도연맹 사건의 양민학살 책임자)을 사살한 허태영(許泰榮)대령이 총살당할때의 의연함과 같다고 본다. 의인 허태영은 지금 4.19묘지에 묻혀있다.

나는 호세리잘의 동상을 보면서 지금은 무척 못살지만 잘살려고 발버둥치는 베트남의 민족지도자 호치민시의 호치민 궁 광장의 호치민 동상을 떠올렸다. 어느나라건 그 민족을 있게 하는건 몇 안되는 빛나는 얼때문이다. 창조적 소수자.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똑똑한 몇 명이 수 천만을 먹여 살린다고 말한 적 있다.(정확히는 똑똑한 몇 명이 몇백만의 싱가포르를 먹여살린다) 크게 틀린말 아니다. 나는 뒤로 총살을 집행하라는 그의 말에서 의인 허태영이 생각나면서 속으로나마 눈물을 흘렸다. 스페인에게 4백여 년 얻어터지고 미국에게 채이고 일본에게 얻어맞은 불쌍한 이 민족에게 이런 빛나는 혼이 있다는건 얼마나 다행한 축복인가.


*1519년 포르투갈人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은 스페인 군주 필립2세의 후원을 얻어 세계 일주 항해를 시작,1521년 마침내 작은 함대(같이 출발한 네 척 중 두 척만 남았음)는 필리핀 세부 섬에 도착하여 마젤란은 섬이 스페인 영토임을 선언하고, 원주민들을 기독교도로 개종시켰다. 스페인 치하의 필리핀 독립운동은 격렬하여 100여번의 반란이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호세리잘의 처형이후 독립운동은 최고조에 달해 결국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다달았다. 그 결과  필리핀은 쿠바와 함께 스페인에서 떨어져 나와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총377년간을 스페인 치하에 있었던 셈이다.
일제하 35년간 안중근 장군 이등박문 암살 의거,윤봉길 의사 상해 홍코우 공원 폭탄투척 의거, 이봉창 의사 왜왕 폭탄투척 의거 및 해외의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 등 무장항쟁과 무저항 3.1 만세 사건과 비교하면  377년간 100여번의 무장반란은 필리핀의 민족정신이 절대로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4백여년의 스페인 식민지 과정속에서 혼혈의 아픔을 거치고 미국에게 착취를 당하고 일본에게 징용을당하고 총알받이로 나섰던 아픈 민족 따갈로그족이여! 나는 압제에 시달리며 못살디 못살던 우리 한민족에게 동방의 진주라 축복을 내린 인도의 시성 타고르처럼 타갈로그족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 호세리잘의 염원대로 필리핀이 동방의 새로운 희망이 되라 호세리잘 상에 축복하고 버스로 향했다. 가이드인 유학생 쥴리가 옆에서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는듯 나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다음은 처형을 앞두고 옥중에서 조국을 사랑하는 절절한 애국심을 표현한 불멸의 시로 호세리잘상에 동판으로 새겨져 있으며 필리핀 국민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시이다.

나의 마지막 작별


호세 리잘



잘있거라 내 사랑하는 조국이여


태양이 감싸주는 동방의 진주여


잃어버린 에덴이여


나의 슬프고 눈물진 이 생명을


너를 위해 바치리니


이제 내 생명이 더 밝아지고 새로워지리니


나의 생명 마지막 순간까지


너 위해 즐겁게 바치리



형제들이여, 그대는 한 올의 괴로움도


망설임도 없이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아낌없이 생명을 바쳤구나


월계수 백화꽃 덮인 전나무관이거나
교수대거나 황량한 들판인들


조국과 고향을 위해 생명을 던졌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랴



어두운 밤 지나고
동녘에서 붉은 해 떠오를 때


그 여명 속에 나는 이 생명 마치리라


그 새벽 희미한 어둠 속
작은 불빛이라도 있어야 한다면


나의 피를 흩뿌려
어둔 새벽 더욱 밝히리라



나의 어린 시절이나
젊은 혈기 넘치는 지금이나


나의 소망 오직
동방의 진주 너를 흠모하는 것


검고 눈물 걷힌 너의 눈
한 점 꾸밈도 부끄럼도 없는


티없이 맑고 부드러운 눈
동방의 진주 너를 바라보는 것이었노라



이제 나는 너를 떠나야 하는구나


모든 즐거움과 절실한 열망을 버리고


아 너를 위해 가슴 속에서 우러나
만세 만세를 부르노라


우리에게 돌아올 최후의 승리를 위해
나의 죽음은 값지리니


네게 생명을 이어주기 위해
조국의 하늘 아래 숨거두어


신비로운 대지에 영원히 잠들리니
아 행복하여라



먼 훗날 잡초 무성한 내 무덤 위에
애처로운 꽃 한 송이 피었거든


내 영혼에 입맞추듯 입맞추어다오
그러면 차가운 무덤 속


나의 눈썹 사이에
너의 따스한 입술과 부드러운 숨소리 느끼게 되리니


부드러운 달빛과 따스한 햇빛으로
나를 비쳐다오


내 무덤가에 시원한 솔바람 불게 하고
따스하게 밝아오는 새 빛을 보내다오



작은 새 한 마리
내 무덤 십자가에 날아와 앉으면


내 영혼 위해 평화의 노래를 부르게 해다오


불타는 태양으로 빗방울 증발시켜
나의 함성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게 해다오


너무 이른 내 죽음을 슬퍼해다오


어느 한가한 오후
저 먼 저승의 나 위해 기도해다오


아 나의 조국
내 편히 하늘나라에 쉬도록 기도해다오



불행히 죽어간 형제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죽어간 이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고난 속에 눈물짓는 어머니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감옥에서 고문으로 뒹구는 형제들
남편 잃은 여인들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
내 무덤가 십자가 비석도 잊혀져 가면
삽으로 밭을 일궈


내 무덤에서 시신의 재를 거두어
조국 온 땅에
골고루 뿌려다오



내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운 나라
필리핀이여


나의 마지막 작별의 말을 들어다오
그대들 모두 두고 나 이제 형장으로 가노라


내 부모, 사랑하던 이들이여
저기 노예도 수탈도 억압도
사형과 처형도 없는 곳


누구도 나의 믿음과 사랑을 사멸할 수 없는 곳
하늘나라로 나는 가노라



잘있거라, 서러움 남아 있는
나의 조국이여


사랑하는 여인이여
어릴 적 친구들이여


이 괴로운 삶에서 벗어나는 안식에


감사하노라. 잘있거라
내게 다정했던 나그네여


즐거움 함께했던 친구들이여
잘있거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아 죽음은 곧 안식이니……



* 위 번역은 1996년 민용태 교수님이 번역하여 인트라무로스 산티애고 요새에 있는 리잘 기념관 2층에 동판으로 전시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Last Farewell (마지막 안녕)




Jose Rizal
Farewell, dear Fatherland, clime of the sun caress'd,
Pearl of the Orient seas, our Eden lost!
Gladly now I go to give thee this faded life's best.
And were it brighter, fresher, or more blest,
Still would I give it thee, nor count the cost.



On the field of battle, 'mid the frenzy of light,
Others have given their lives, without doubt or heed;
The place matters not - cypress or laurel or lily white.
Scaffold or open plain, combat or martyrdom's plight,
'Tis ever the same, to serve our home and country's need.



I die just when I see the dawn break,
Through the gloom of night, to herald the day;
And if color is lacking my blood thou shalt take,
Pour'd out at need for the dear sake,
To dye with its crimson the walking ray.



My dreams, when life first opened to me,
My dreams, when the hopes of youth beat high,
Were to see thy lov'd face, O gem of the Orient sea.
From gloom and grief, from care and sorrow free;
No blush on the brow, no tear in thine eye.



Dream of my life, my living and burning desire,
All hail ! cries the soul that is now to take flight;
All hail ! And sweet it is for thee to expire,



To die for thy sake, that thou mayst aspire,
And sleep in thy bosom eternity's long night.



If over my grave some day thou seest grow.
In the grassy sod, a humble flower,
Draw it to thy lips and kiss my soul so,
While I may feel on my brow in the cold tomb below
The touch of thy tenderness, thy breath's warm power.



Let the moon beam over me soft and serene,
Let the dawn shed over me its radiant flashes,
Let the wind with the sad lament over me keen;
And if on my cross a bird should be seen,
Let it trill there its hymn of peace of my ashes.



Let the sun draw the vapors up to the sky,
And heavenward in purity bear my tardy protest;
Let some kind soul o'er my untimely fate sigh,
And in the still evening a prayer be lifted on high
From thee, O my country, that in God I may rest.



Pray for all those that hapless have died,
For all who have suffered the unmeasur'd pain;
For our mothers that bitterly their woes have cried,
For widows and orphans, for captives by torture tried;
And than for thyself that redemption thou mayst gain.



And when the dark night wraps the graveyard around,
With only the dead in their vigil to see;
Break not my repose or the mystery propound,
And perchance thou mayst hear a sad hymn resound;
'Tis I, O my country, raising a song unto thee.



When even my grave is remembered no more,
Unmark'd by never a cross or a stone;
Let the plow sweep through it, the spade turn it o'er
That my ashes may carpet thy earthy floor,
Before into nothingness at last they are blown.



Then will oblivion bring to me no care;
As over thy vales and plains I sweep;
Throbbing and cleansed in thy space and air,
With color and light, with song and lament I fare,
Ever repeating the faith that I keep.


My fatherland ador'd that sadness to my sorrow lends,
Beloved Filipinas , hear now my last good-bye !
I give thee all; parents and kindred and friends;
For I go where no slave before the oppressor bends,
Where faith can never kill, and God reigns e'er on high !



Farewell to you all, from my soul torn away,
Friends of my childhood in the home dispossessed !
Give thanks that I rest from the wearisome day !
Farewell to thee, too, sweet friend, that lightened my way;
Beloved creature all, farewell ! In death there is rest !




* 원래 이시는 스페인어로 쓰여진 것을 Charles E. Derbshire씨가 영역한 것을 옮겼다. 이 영역본이 현재 가장 많이 읽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영역된 것은 28개나 넘는다.
그리고 이시는 원래 시의 제목도 없고 작가인 호세리잘의 서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던 것을 필리핀인 신부이자 애국자였던 Mariano Decanay씨가 Ultimo Adios(Last Farewell)라는 제목을 붙였다. 일반적으로 Mi Ultimo Adios(My Last Farewell)라는 제목을 쓰기도 하나 여기서는 그냥 Ultimo Adios로 쓴다.



이 시는 1898년 9월 25일자 La Independencia(독립)이라는 신문에 맨처음 실렸다.
chera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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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리잘 공원에 들른 버스는 시간이 남는다 하여 바로 해변가로 사람을 내려 놓는다.마닐라는 아니 필리핀은 아직도 주민등록증이 없다. 그리하여 치안이 안좋아 특하면 살인사건이 난다. 얼마전 우리 골프 프로 한사람이 술자리에서 술집 경호원?하고 말싸움이 붙어 쏠려면 쏘라는 말에 진짜로 발사해 사망한 사건이 있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우리돈 6 만 원이면 청부살인이 가능한 치안부재의 나라. 우리돈 2 천 만원이면 살인자도 감옥에서 풀어내올 수 있는나라 불가사의한 나라! 4-5년전 마카오에서 돈을 잃고 그곳 마피아에게 돈을 빌린 한국인 한 명이 돈을 모두 잃고 필리핀으로 돌아와서 돈을 안주고 시간만 보내다가 필리핀 마닐라 교외에서 총맞아죽은 사건이 일간지에 보도된 것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메트로 폴리탄으로 세개의 도시가 하나로 엮인 마닐라. 주민등록증이 없어 국민의 정확한 집계도 사실상 힘든 나라 이제 주민등록증을 만들려 한단다. 지문채취를 안한 이유로 범인색출이 사실상 힘든나라 필리핀이 사건미제가 많은 이유다.

팀원 진영씨가 옆에서 일전에 투어왔을때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해안 저쪽 좀 더 화려한 다운타운상가쪽 호텔에는 연습장에서 직접공을 해안 바닷가로 쳐내는 곳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 공은 바다위에 뜨게 되어 있어 나중에 배를 타고 모두 수거한다고.....나는 외국인이 한 브론즈 동상옆에 앉아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관광용 역마차를 바라보았다.

버스안에서 나는 우리 무수 동생에게 우스개 소리로 한국에서 사업실패한 사람은 저거 하면 꽤 잘 될거라며 얘기해 준 바 있다. 로마나 피렌체를 가면 말에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사업이 꽤 잘 된다. 필리핀의 마차는 좀 더 멋지게 꾸며 놓았다. 아마 서울에도 경마장에서 퇴출되는 말을 경매로 사들여 멋지게 마차를 꾸며 관광사업을 하면 잘될거라 해준 터었다.

그나저나 퇴근시간이 되니 차가 엄청나게 막힌다. 막히고 할일 없으면 이야기를 낳는법. 우리의 화제는 한국의 자동차가 필리핀에 왜 일본을 제치고 우선적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로 돌아갔다.

86년도 미스코리아 출신의 이혜정씨를 며느리로 맞아들여 화제가 됐던 세계 최대의 화교재벌 FORBES 가 세계 제1의 화교재벌로 선정한 필리핀계 화교 정저우민(鄭周敏)이 이끄는 탄유그룹.


86년 신차 르망이 발표되었다. 87년부터 본격적으로 서울시내를 달리게되었다. 86년 미쓰코리아 르망에 신데렐라 이혜정이 당선되었다.

대만에 40% 필리핀에 60% 자본을 가진 필리핀 재벌 탄유그룹의 아들이 당시 동남아에서 사진촬영을 했던 이혜정의 늘씬한 각선미와 미모에 한 큐에 가버렸다. 안달이 난 탄유그룹의 2세는 각계로 손을 써 마침내 자신들과 같은 정씨로 필리핀에 일본의 토요타, 혼다에 이어 한국의 현대차를 상륙시키려 노심초사하던 현대 정주영 일가와 손이 닿게 된다.

탄유그룹을 통해 현대차를 필리핀에 상륙시키려던 정주영씨의 뜻과 정주영씨를 통해 이혜정씨를 며느리로 삼으려는 탄유그룹의 서로 원하던 만남. 일단 이혜정씨는 탄유그룹의 멋진 만찬장에 한 번 얼굴을 드러내 주는 것뿐이라는 정회장의 주선으로 참석을 결정했다. 그런데 탄유그룹은 공항에서부터 전세기에서 이혜정이 내릴때부터 빨간 주단을 비행기트랩에 깔아 줌으로부터 뭔가 VIP대접을 하면서 그야말로 올 프레스작전으로 들어갔다. 작전은 점입가경이라고나 할까.




이혜정씨가 한번 더 참여할 수밖에 없는 자리는 계속해서 만들어졌고 정회장은 국익을 위해 한 번 한 번 해가며 읍소를 했고.....이러는 사이 목하 정이들었는지 결혼은 90년대 초에 이루어졌다. 이 기사는 한국의 웬만한 월간지에는 다 나왔던 기사.

아!~ 흉노에게 시집간 왕소군,,북방의 황량한 초원속에서 중원대륙의 호사함을 못잊어 춘래불사춘-봄이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음을 노래한 왕소군,동탁때 북방으로 시집갔다 온 절세가인 채문희와 같은 심정임을 한 번 헤아려 본다.

채염은 동한말 진류 어 사람으로 자는 문희이다. 채염은 역사가 채옹(蔡邕)의 딸인데, 어려서부터 박학다식하여 변설에 능하고 음악적 재능을 갖춘 인재였다. 문희는 처음에 위중도(衛仲道)에게 출가했는데 얼마 안되어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그후 동탁의 난이 일어났고 그녀는 흉노족에게 납치되어 남흉노 좌현왕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여기서 좌현왕과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조조는 채옹과 절친한 사이였는데 채옹의 후손이 끊기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좌현왕에게 천금을 주고 채염을 데려와 동관 근처 남전 땅에 장원을 세우고 그곳에서 살도록 배려한다. 채염이 흉노에 잡혀간지 무려 12년만의 귀국이었다. 후에 동사에게 재가 시킨다. 채염의 대표작으로는 <비분시>, <호가십팔박>이 있다.

이혜정씨가 아무리 돈많은 탄유그룹이지만 이민족에게 시집가는 과정이 몇 년이 걸린 것은 국익을 외치며 읍소하는 정회장과 탄유그룹 2세의 구애 사이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마닐라에서 자녀를 네뎃 낳고 잘 살고 있다 한다. 다행이다. 행복하길 빈다. 정회장의 구국의 용단을 촉구한데 대한 개인적 희생. 역사는 아이러니다.

나는 그 이후 당시의 상황을 음미할만한 기사를 Recall해 보았다.




제 목 : [경제] 왕회장 ‘8개월 만의 외출’ 속뜻은?

발행일 : 95년 05월 17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5월 10~13일 2박3일간 필리핀을

방문했다. 당초 지난 4월로 예정했다 한달 정도 미뤄진 그의 외국행은

8개월 만의 일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그가 필리핀을 방문한 목적은 탄유그룹과 합작하여 필리핀 개발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11일 두 재벌 그룹은 필리핀 마닐라 만 해안매립지

51만4천여 평에 대규모 상업타운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지역에 호텔·쇼핑센터·스포츠센터를 건립하는 데 30억달러

정도가 투자될 이 사업은 합작법인을 설립해 추진하게 된다.


탄유그룹은 필리핀과 대만에서 사업하고 있는 화교 재벌이다. 이

그룹은 필리핀 개발사업을 위해 현대와 합작한 것 외에 대우그룹과도

인연이 있다. 탄유그룹은 대우그룹을 포함한 아시아권 재벌 그룹 4개

사와 공동으로 아시아월드국제그룹을 만든 것이다. 이 회사는 필리핀

루손 섬 바기오 시의 옛 미군 고급 휴양시설인 캠프 존 헤이를

경영하게 된다.


재계의 관심은 탄유그룹과의 합작 문제에 왜 정주영 명예회장이 직접

나섰느냐는 데 모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정주영 명예회장과

탄유그룹과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다. 탄유그룹 소유주는 화교인 鄭씨 일가로, 정주영 명예회장과

우연찮게도 성이 같다. 이 때문에 정명예회장은 탄유그룹의 현 회장인

엘레나 여사를 수양딸로 삼았을 만큼 의기투합하는 관계이다. 더구나

정씨 일가는 미스 코리아 출신 한국인 며느리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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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스크랩] 탄유그룹’ 후계자와 결혼한 86년 미스코리아 이혜정 이혼? | 함께 쓰는 게시판   2007/02/1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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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젤 샵  [본문스크랩] 탄유그룹’ 후계자와 결혼한 86년 미스코리아 이혜정 이혼? 대만에서 남편, 세 아이와 단란한 가정 꾸리고 있어”재벌가로 시집가는 모 아나운서의 결혼 소식이 연일 화제다. 15년 전, 86년도 미스코리아 출신 이혜정씨의 결혼 역시 만만찮은 화제를 낳으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시아 최고 부호로 꼽히는 필리핀 탄유그룹의 후계자와 결혼한 그녀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로맨틱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최근 몇몇 네티즌을 중심으로 이혜정씨가 재벌 남편과 이혼했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진상은 무엇인지 미스코리아 이혜정의 이혼설을 확인 취재했다.

세계적 재벌과 미스코리아의 만남
미스코리아 이혜정씨(38)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따금씩 그녀의 소식이 궁금했을 것이다. 이혜정씨는 세종대학교 무용과에 재학 중이던 1986년 당시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해 미스 르망 타이틀로 선발됐다. 그녀가 아시아 최대 화교 재벌인 필리핀 탄유그룹의 정위황(45·엘톤 시 탄) 사장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88년 대만에서 열린 미스원더랜드 대회에 참가했을 때다.

정위황씨는 대만과 필리핀에 있는 7개의 특급호텔 경영을 맡고 있었는데 미스원더랜드 대회가 열린 대만의 아시아월드호텔도 그의 소유였다. 대회의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정씨는 대회에 참가한 이혜정씨를 보고 한눈에 반해 사랑을 고백했고, 2년 간의 교제 끝에 약혼식을 거쳐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 두 사람의 결혼식은 한국, 필리핀, 대만 등지에서 세 차례 치러졌는데 이혜정씨는 그 세 번의 결혼식을 위해 디자이너 앙드레김에게 총 세 벌의 드레스를 맞춘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이혜정씨의 시댁인 탄유그룹은 필리핀과 대만에 본부를 두고 아시아와 북미 지역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국제적 재벌 그룹이다. 탄유그룹은 대만에 은행, 호텔, 쇼핑몰, 종합건설사 등 36개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들 기업의 소유 자산만도 당시 물가로 약 3조6천억원에 이르렀다.

필리핀에도 섬유업체, 종합개발건설, 호텔, 농장 등이 있으며 홍콩과 미국, 일본 등에도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탄유그룹의 총수는 정위황씨의 누나인 정면면씨(47·에밀리아 비엔비엔 로하스)로 그녀는 브루나이의 국왕 다음으로 손꼽히는 아시아의 부호다.

이혜정씨는 지난 1990년 3월 레이디경향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한 적이 있다.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그녀는 정위황씨와 결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미스원더랜드 대회가 끝난 직후 디너 파티가 있었는데 한 남자가 찾아와 명함을 주더란다.

당시 그녀는 입상에 상당히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의상상 수상에 머무른 터라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한국인 직원이 "이 사람이 이 호텔 사장이고 저분은 아버지인데 당신을 며느리 삼고 싶다고 한다”고 전해 주었다는 것.

나중에 알고 보니 정위황씨가 먼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있었고 부친 정주민씨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다소곳한 태도와 복스러운 얼굴(그녀의 시아비지는 그녀를 행운을 가져다주는 얼굴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에 놓은 점수를 줬다고 한다.

정씨 측의 갑작스러운 프러포즈에 이혜정씨 모녀는 당황했고, 생각해본 뒤 연락을 취하겠다고 말했지만 그쪽 집안의 간절한 만류로 이틀을 더 묵고 왔다. 그러다가 89년 9월 정위황씨 할머니의 95회 생신 때 초대받아 갔는데 정씨의 아버지가 친지 2천 명이 모인 가운데 그녀를 며느리로 소개했고 이혜정씨는 그때 비로소 결혼을 결심했다는 것.

두 사람이 결혼한 데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공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90년대 초 정주영 회장은 필리핀에 현대차를 수출할 계획을 가지고 탄유그룹 측과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었는데 같은 정씨를 쓰는 탄유그룹 측에서 이혜정씨를 탐내는 것을 보고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했다는 것.

세계적인 갑부인데다 민족도 다른 정위황씨에게 부담을 느끼던 이혜정씨를 설득해 탄유그룹 행사에 참석하도록 한 것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라고 한다. 정위황 사장은 당시 이혜정씨를 맞이하기 위해 도로를 통제하고 그녀가 입장하는 통로를 붉은색 카펫으로 장식하는 등 열렬한 구애 작전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90년 3월 25일 잠실 롯데호텔에서 있었던 두 사람의 약혼식은 초호화판이었다. 우리말과 중국어로 동시에 진행된 이날 약혼식에서 신랑 측은 수억원이 넘는 30캐럿짜리 다이어몬드를 비롯해 루비, 사파이어, 진주 등 10억원에 이르는 열두 가지 보석들과 중국 비단이 담긴 옷감 상자 등을 신부 측에 선물했다. 4백여 명의 국내외 거물급 인사들이 참석한 이날 약혼식에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도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결혼 3년 만에 헤어졌다는 이혼설 불거져
이혜정씨의 이혼설이 떠돌기 시작한 것은 올봄부터다. 모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몇몇 연예 사이트를 중심으로 그녀의 이혼설이 조금씩 제기되기 시작한 것. 결혼해서 필리핀과 대만을 오가며 생활했던 그녀가 결혼 3년 만에 남편과 이혼했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였다. 사실 확인을 위해 우선 그녀가 어느 곳에 거주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탄유그룹은 필리핀에서 일군 회사지만 탄유그룹 사람들은 대만 출신 화교이기 때문에 대만과 필리핀을 양대 사업 기지로 삼고 있었다. 우선 필리핀 한인회에 문의한 결과 이혜정씨는 필리핀 한인회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다시 대만 한인회에 도움을 요청한 뒤 몇몇 교민의 증언을 통해 이혜정씨가 남편과 아이 셋을 데리고 대만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혜정씨는 결혼 후 중국어를 금세 마스터했는데 그녀의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총명함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혜정씨는 둘째 딸을 낳은 뒤 약 1년 간 시아버지의 특별보좌 역을 맡아 일했고 그 후 아세국제발전공사 부사장 직을 맡았다. 아세국제발전공사는 부동산으로 유명한 탄유그룹의 부동산관리회사로 이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알려져 있다.

대만의 경우 아내는 자기의 성 위에 남편의 성을 합해 사용하는 복성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몇몇 교민은 이혜정씨를 정혜정씨로 부르고 있었다. 이혜정씨 부부는 최근까지도 세 아이를 데리고 한인식당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타이페이 시내에 있는 유명 한정식집 김이박과 서울곰탕집은 이혜정씨 내외가 특히 자주 찾는 단골집. 두 사람은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마다 이곳을 찾는데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가족이 함께 모여 식당을 찾는다고 한다.

김이박 식당의 히트 메뉴인 ‘대장금 한정식’을 특히 좋아한다고. 김이박 식당의 사장 김분주씨와 서울곰탕집 김영배 사장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해주며 두 사람의 이혼설에 고개를 저었다. 누가 봐도 단란한 가족의 모습일 뿐 아니라 이혜정씨가 자녀들을 한국식 교육법으로 예의 바르게 키우고 있어 아이들이 한 번도 식당에서 소란스럽게 행동한 적이 없다고 한다.

교민들에 따르면 이혜정씨는 여전한 미모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늘씬한 몸매에 긴 머리를 한 미인형으로 어디서나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눈에 띄는 미모라는 것.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지만 미스코리아 시절의 미모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세 자녀 역시 선남선녀인 부모의 외모를 골고루 섞어 닮아 귀티가 난다고 한다. 이혜정씨의 세 아이는 모두 타이페이 시내 복흥초등학교에 다니는데 복흥초등학교는 장개석의 부인인 송미령 여사가 설립한 고급 사립학교다.

이혜정씨의 친정어머니는 이혜정씨를 임신했을 때 화려한 국화꽃이 장식된 중국집으로 들어가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이혜정씨 자신도 정위황씨와의 결혼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미스코리아와 재벌의 만남, 그것도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이룬 두 사람은 세간의 소문이나 이목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며느리가 얼마나 지혜롭고 똑똑한지 보여주고 싶다”던 그녀의 다짐처럼 현명한 아내이자 어머니, 며느리로 단란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그녀를 언젠가 직접 만날 날을 기대해본다.

글 / 박연정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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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출신의 흑치상지

한반도에서 강력한 정복국가로 성장한 백제는 해상을 장악함은 물론 중국대륙까지 눈을 돌리게 된다. 백제는 먼저 황해의 많은 도서를 부속 영토로 하였다. 백제 왕실의 사냥터로 유명한 강화도는 물론이고, 한반도의 서남해안에 사람이 사는 15개의 섬은 모두 백제의 행정지배를 받으면서 기항지 역할을 했다.

이곳을 토대로 한 백제의 해외경영은 다양한 인종의 거주와 물산의 집중을 가져왔다. <수서>에서 『(백제에는)신라, 고구려, 왜인들이 나라 안에 섞여 있으며 중국사람도 있다』고 한 것이 바로 이를 가리킨다. 동아시아 세계에 있어서 백제는 해상교역활동의 중심지로 성장해 신라, 고구려, 왜, 중국인들이 잡거하는 국제화를 일찍부터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황해바다를 토대로 한 백제의 영역은 이후 더 확장돼 나간다.

『백제의 중이 중인도로 들어가 불경을 얻어 귀국했다』(조선불교통사)

『백제가 부남(扶南:지금의 캄보디아 지역)의 재물과 노비 2구를 왜에 주었다』(일본서기)

『백제 사인(使人)들이 (백제를 거치지 않고 왜와 독자교섭을 시도한) 곤륜(崑崙:남베트남, 캄보디아, 타이, 미얀마, 남부 말레이반도 등을 일괄한 동남아시아지역)의 사신을 바다에 던져버렸다』(일본서기)

위의 기록들은 백제가 대외적으로 활발하게 구축한 교역망의 범위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것만으로도 백제의 범위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뿐만 아니라 기원후 554년 백제가 왜에 보낸 물품 가운데는 「탑등(tapen,tapeten)」이 보이는데, 이것은 양모를 주재료로 하는 페르시아 직물로 북인도지방에서 산출되는 물품이다. 또 일본 나라시에 있는 백제계 후지노키 고분의 부장품 가운데는 남방 동물인 코끼리가 투조된 마안구(馬鞍具)가 있었는데, 이 마안구야말로 중국 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 및 동남아시아지역과 연결되는 6세기 백제 문화의 국제성을 압축해주는 물증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모두가 당시 백제의 광범위한 국제해상활동을 알려주는 단편들이다. 이도학씨는 『백제의 동남아시아 항로는 금강에서부터 서해안을 돌아 제주도와 오키나와를 중간 기항지로 하면서 대만해협을 통과, 중국 남부 연안의 복주와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쳐 인도에 이르는 해상실크로드』였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씨는 백제의 해상실크로드와 관련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존재가 백제 멸망 후 부흥운동을 펼친 흑치상지(630`~689년)라는 백제 장군이라고 말한다.

『1929년 10월 도굴꾼들이 허난성 낙양 북망산에 소재한 묘광을 파헤쳤는데, 거기서 흑치상지의 묘지석이 발견됐다. 거기서는 백제의 잃어버린 고대사를 밝혀주는 보물 같은 글귀들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학자들이 묘지석을 해석한 결과 흑치씨(黑齒氏)는 그 선조가 부여씨인데 흑치(黑齒)에 봉해졌으므로 자손이 그것을 성씨로 삼았다고 했고, 흑치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군도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최근 중국학자들은 흑치가 필리핀임을 증명한 바 있다』

여기서 백제가 부여씨의 왕족 중 누군가를 흑치(필리핀)에 봉했다는 것은, 흑치가 백제 해상실크로드의 한 거점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막강한 해상교역국가로 성장한 백제의 조선술은 당연히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일. 실제로 백제는 「방(舫)」이라고 표현되는 대형 선박을 이용하였고, 488~490년에는 막강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던 북위와의 해전(海戰)에서 북위 선단을 격파할 정도로 비상한 해상전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백제의 선박은 이미 국제적으로 이름나 있었다. 650년에 왜가 제작한 대형 선박 2척의 이름을 「구다라선(百濟船)」이라고 이름을 붙인 데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백제 선박을 가리키는 「구다라선」은 크고 튼튼한 선박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에는 또 하나의 백제가 있었다>-안영배 동아일보 기자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9711/nd971101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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