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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5. 황하(黃河)의 수신(水神) 하백(河伯)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375.



황하(黃河)의 수신(水神) 하백(河伯)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東明王:朱蒙)의 외조부.
[출처] 하백 [河伯 ] | 네이버 백과사전
전설상의 인물로, 본래 중국 수신(水神)의 이름이다. ‘모두루묘지명(牟頭婁墓誌銘)’에는 ‘河泊’으로 되어 있어 한국에서는 음가(音價)를 따라서 ‘해밝’, 즉 ‘태양의 광명’이라는 뜻으로 태양신을 말한 것 같다.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에 나타나는 하백의 설화는, “시조 추모왕(鄒牟王:朱蒙)의 뿌리는 원래 북부여(北夫餘)에서 나왔는데, 천제(天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여랑(河伯女郞)이다. 알[卵]에서 탄생하였는데, 성덕(聖德)이 훌륭하였다.”고 하였으며, 《주서(周書)》에 보면, 하백녀[夫餘神]와 주몽[登高神]을 수호신으로 신묘(神廟)에 제사하였다고 한다.
[출처] 하백 [河伯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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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기록에 중국 수신의 이름이라 하였으나 본 대륙향토신화에  원래 이름은 풍이(馮夷)라 한 점으로 보아 동이 9夷족의 하나로 보인다.월나라 대부 범려는 오나라를 멸한 뒤 동이족임을 말하는 치이자피(鴟夷子皮)로 이름을 바꾸고 숨는다. 같은 동이족 월족인 서시의 본명이 이광(夷光:서시 본명)역시 이름에 혈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하백 역시 원래 이름이 풍이(馮夷)라 했으니 夷族이 아니라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漢族은 楚나라 망명객 劉邦의 漢나라 武帝때 사마천의 史記에서부터 그 아이덴티티를 갖기 시작했으니 漢나라이전의 역사에 漢族은 있을리 만무. 게다가 초나라 굴원이 지금의 산동성 소재의 동이족 혈통국가 齊나라(관중이 래이족이고 주문왕 모친 간적이 새토템의 동이족이고 주나라 평왕과 결혼한 동이족 선조 강태공 딸만 보아도 주나라 왕실 절반은 동이족이지만 제나라 뿌리역시 동이족) 같은 동족이라 하여 외교적으로 서로 기댈 것을 주장하다가 반대파에 의해 내몰려 죽었으니 곰토템족(웅영족) 초나라의 본질을 알 수 있을 터.항우와 유방이 같은 초나라 망명객으로 굴원이 연대할 것을 주장한 동족 제나라가 있는 지금의 산동성 풍,패와(유방) 팽성(풍,패는 당시와 현재지명 동일, 팽성은 지금의 徐州인데 산동성에서 제일 큰 미산호 옆에 가까이 위치해 있다)으로 망명을 갔다.  범려역시 오나라 부차를 죽이고 부귀영화를 물리치고 서시와 함께 도망간 곳이 동이혈족의 나라 齊나라 팽성彭城 서주 부근의 정도定陶로 갔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신라 김유신의 선조가 되는 휴도왕 김일제 일행수 만 명이 동이족 근거지 산동성 하택에 똬리를 튼 사실이 역사적, 유물적으로 밝혀짐으로써 상고사 신라강역에 대한 파란이 예고되고 있으며 한걸음 나아가 신라뿌리가 초나라라는 주장까지 등장하고 있다. <“신라 뿌리는 초나라”…중국 소수민족 전문가 양완쥐안 교수 주장 target=_blank>http://www.cheramia.net/board/zboard.php?id=bbs1&page=10&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36>
  
-풍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황제헌원의 유웅씨와 단군이 즉위하는 신목과 웅상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황제헌원은 웅(熊) 도등(圖騰:깃발상징 토템)을 숭배하여 유웅(有熊)씨가 되고 그가 거주한 곳을 웅산(熊山)이라 불렀다 하며 높은 수레(高車)를 발명한 것으로 인해 헌원(軒轅)씨가 되었다 하니 황제 헌원의 유웅씨 역시 황웅씨(黃熊氏)의 태호복희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황웅족 곰족의 후예는 양자강 유역의 동이족 묘요(苗猺) 신화와 더불어 그 이동 경로를 짐작할 수 있지만 우리는 뒤의 담론부분에서 이들이 대륙의 다사다난한 동이 제 족간의 쟁패과정과 이합집산과정에 의해 양자강 유역의 회이족(淮夷族)-초민족(楚民族)인 웅영족(熊盈族)으로 변신해 나아갔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는 황제헌원의 유웅(有熊)씨가 그 한갈래였던 것 처럼 동이 제 족은 웅족으로 이미 그 날을 세우고 있었음을 뜻하며 단군신화중의 곰족과 호족의 쟁패신화 역시 환웅 배달국의 웅(雄)과 웅(熊)은 고대에 서로 통했기때문에 정통 웅족(배달환웅족)과 정체불명의 이족(異族)과의 한반도 간방위 유입시기의 쟁패과정을 가히 추정할 수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곰과 호랑이 신화가 배달국 웅족의 정통후예가 대륙으로부터 북만주로부터 백두산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유입되는 쟁패과정이 기록된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안원전 담론중 인용)-

2월부터는 초나라에 대한 국내사료가 전무해 우선 대국을 살펴볼 대륙향토사료를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중국이 東夷를 이적시하다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최근 신농 황제 치우  3祖論으로 물타기 하는 과정에서 미래의 함공모함 공모 1등 이름이 (夷族을 평정했다는 뜻에서) 平夷(平章夷族)라 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안원전)

*1963년 6월 28일 북한 과학원 대표단이 그를 방문하자 저우 총리는 한중 관계를 세 시기로 구분하면서 ‘두 민족의 역사적 관계’ 시기 중국 문헌 기록은 대국(大國) 쇼비니즘에 빠져 객관성이 결여된 불공정한 기록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역사 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 역사학자나 많은 사람이 대국주의, 대국 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가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먼저 양국 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의 일부 학자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이 아니었고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저우 총리는 고조선을 기자조선이라고 보고 조선민족을 기자의 후손이라고 보는 일부 봉건적 중국 학자들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했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반드시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의 머리 위에 조선족은 ‘기자지후(箕子之後·기자의 후손)’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당신들(조선민족)의 땅을 밀어붙여 작게 만들고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두만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중국의 이러한 대국 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朝貢)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 교류를 할 때도 그들은 알현(謁見)하러 왔다고 했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臣服)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 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들의 붓 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 -고(故)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 -

*주(周)나라 때에는 “무왕(武王)이 주(紂)를 멸망시키자 숙신(肅愼)이 와서 석노(石砮)와 고시(楛矢)를 바쳤다. 관(管).채(蔡)가 주(周)에 반란을 일으키자 이적(夷狄)들을 불러 회유를 하였다. 주공(周公)이 이들을 정벌하고 마침내 동이(東夷)를 평정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현대에도 군사력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에 무기를 판매하거나 기술을 전해주는 것처럼 숙신 즉 고조선이 주(周)나라에 강한 무기를 전해준 것을 저들은 마치 조공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신완수<'동이전'을 통해 본 고조선의 역사> ) ..고시라 함은 숙신의 호시,석촉을 말하는 것으로 참고해 보기바람.(안원전)
*1973년,진시황릉을 재조사한 바 있는 전 북경대 화춘구교수(당시62세)는 74년 중국 제1 언론사인 신화사통신 사회부 이귀형기자와 인터뷰에서,"진시왕은 동이족이었고, 유적은 모두 동이족 유적임을 확인하였다"고 인터뷰한 사실이 당국에 보고되어 74~75년 당국으로부터 당국에 먼저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간 감금되었다가 하남지방 관리직으로 전출된 후, 5년후인 80년에 폐암으로 사망한 바 있습니다. 79년4월, 이분이 삼우선생을 만나서, "중국대륙에서 우리 화하족역사는 천년이 안된다. 중국역사 4천년중에 조선(단조선)의 역사가 3분의 2가 넘으니 중국역사는 동이족의 역사다" 라고 하면서, "당국은 역사조작을 하려 하는데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이다." 라고 말한 사실이 육성녹음되어 있습니다.상투는 동이족만의 문화이며...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진시황릉과 시안의 피리미드들은 모두 발굴중단 된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쿠키지구촌=중국] ○…병마용은 진시황의 것인가 하는 내용의 기사가 중국 인민일보에 실리자 학술계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논란을 일으킨 주인공은 사학자도 아니고 고고학자도 아닌 건축학자 천징왠이다.올해 69세인 천징왠은 1957년 서안건축공정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후,진시황릉에 대해 끊임없는 연구를 했었고 퇴직전까지는 강소성 국토국에서 근무했었다.병마용에 대한 그의 의혹은 병마용과 진시황릉이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전차의 바퀴 간 거리를 똑같이 표준을 정해 통일했는데 갱내 어떤 전차들의 바퀴간 거리가 차이가 나는 점. 진시황시대의 사람들의 옷이 주로 검은 색이었는데 갱내 무사들의 전포가 칼라인 점. 또한 그 시대의 군대는 주로 보병과 기마병이었지만 갱내 군사진영을 보면 전차부대 위주로 편성된 점 등을 의혹으로 제기했다...... 1984년 천징왠이 ‘대자연 탐색’이라는 잡지사에 그동안 수집한 증거들을 내놓으면서 병마용의 진정한 주인은 진시황이 아니고,"기원전 306년에 죽은 진선태후" 라는 글을 발표했다... 병마용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그당시 소수민족을 닮았다고 하면 병마용이 초나라 사람인 진선태후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6826&table=forum1&level_gubun=onWasteful

하백(河伯)에 대하여
생몰년 미상.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 동명왕)의 외할아버지.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에는 하박(河泊)으로 표기되어 있다.수신(水神)으로 물 속의 궁전에서 살았다고 하며, 유화(柳花)·훤화(萱花)·위화(葦花)의 세 딸을 두었는데, 그 중 맏딸 유화가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의 유혹에 빠져 정을 통하자 몹시 화를 냈으나,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임을 확인하고는 이들의 혼인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유화가 해모수로부터 버림을 당하자 가문을 더럽혔다고 하여 유화를 우발수(優渤水)로 내쫓았다.이 유화가 후일 고구려 시조인 주몽을 낳았다고 한다.하백을 ‘해발’(태양의 광명이라는 의미)이라는 한국 고대어의 음차(音借)로 보아 태양신으로 풀이하는 견해도 있지만, 중국신화에 나오는 하백이 수신(水神)인 점이나, 그의 혈통을 이은 주몽의 탁월한 수계(水界) 지배능력에 대한 전승들로 미루어, 수신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견해도 있다.[참고문헌]三國史記 東國李相國集 朝鮮神話의 科學的 考察(金廷鶴, 史海 創刊號, 1948) 朱蒙硏究(李玉, 韓國史硏究 7, 1972)




하백(河伯)은 황하(黃河)의 수신(水神)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풍이(馮夷)로, 화음현(華陰縣) 동향(潼鄕) 제수(堤首)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황하를 건너다 풍랑을 만나 물에 빠져 죽었다. 천제(天帝)는 그가 가여워서 그를 하백으로 봉하였고, 그는 항상 백룡으로 변하여 물 속을 두루 돌아다녔다.

어떤 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풍이가 생전에 오로지 신선이 되기 위해 도를 배우고 닦다가 후에 한 신선을 만나 신선이 그에게 오곡을 먹지 말고 수선화(水仙花)만을 먹되 홑잎으로 된 수선화를 먹고, 수선 나무에는 수선화 액이 들어있기 때문에 수선 나무와 함께 먹으면 효과가 더욱 좋다고 알려 주었다. 풍이는 이 말을 듣고 그대로 믿어 도처에서 수선 나무를 찾아 이때부터 수선화와 수선 나무만 먹었는데 모두 800여 그루를 먹었다.

그는 도처를 돌아다니다가 한번은 수심이 매우 깊은 커다란 강에 도착하여 강바닥에 잠겨 이때부터 행방불명되어 결국은 정말로 ‘수선(水仙)’이 되었다.

하백과 관련된 전설은 매우 많아 일찍이 대우(大禹)가 치수하던 전설 속에도 하백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하루는 대우가 황하 변에서 강물의 상황을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앞의 출렁이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어떤 형체가 흔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대우는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집중시켜 보니 그 형체는 매우 신속하게 자신을 향해 떠 오더니 조금 뒤에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 한 사람이 솟아 나왔는데, 키는 매우 크고 얼굴색은 희고 깨끗했지만 다리가 없고 하반신이 마치 한 마리 물고기 같았다. 그는 수면에서 뛰어 올라 큰소리로 대우에게 말했다. “내가 바로 강의 정령이다.”

그는 말을 마치고 강의 지도를 꺼내어 이 지도는 복희씨(伏羲氏)가 제작한 것인데, 황하 상․하류의 각종 산세와 물길의 정황을 자세하게 그린 것으로 매우 진귀한 지도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대우의 치수에 대한 결심과 끈기에 감동하여 지도를 가져와 그의 치수를 도와주려고 한 것이다. 대우가 지도를 받고 감격을 표시하려고 하자 하백은 곧바로 올 때와 같이 물 속으로 신속하게 들어가 버렸다.

하백은 매번 바깥에 나와 순시할 때마다 매우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순백의 준마를 타고 날 듯이 질주하며 바람처럼 오고 갔다. 붉은 수염은 바람에 날리고 백색의 장포는 검은 모자를 더욱 돋보이게 하여 아주 훌륭했다. 가는 곳마다 강 속의 신선과 요괴들이 모두 나와 맞이했고 어떤 때는 강 속의 진귀한 보물을 그에게 바치기도 했다.

고대의 사람들은 수재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하백은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는 힘을 가진 것과 같아 그를 매우 경외하였다. 매번 황하에 수재가 나서 홍수가 창궐할 때마다 속수무책인 사람들은 하백에게 빌어 하백이 그들의 고난을 알고 이 재난을 평정해 줄 것을 희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음식물, 보석, 금은 재화를 강 속에 던지며 하백이 그들의 예물을 받고 홍수를 물리쳐 그들이 재난을 면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랐다. 하백이 아내를 맞는 이야기도 바로 여기서 나왔다.

과거에 황하 양쪽 기슭에 사는 사람들은 매년 하백을 위해 신부를 맞이하게 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매번 소위 하백이 신부를 맞는 길일이 되면 마을의 백성들이 모두 출동하여 밉살스런 무녀들이 우쭐대며 도처를 돌아다니며 예쁜 처녀를 보면 그녀가 하백의 신부가 되어야만 하며 하백에게 바치면 반드시 기뻐할 거라고 속인 후 강제로 데리고 갔다.

그들은 처녀를 깨끗이 씻기고 예쁘게 치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혀 강가에 그녀를 위해 마련해 놓은 집에서 혼자 머물게 한다. 10여일이 지나면 아주 화려하게 치장한 침대 위에 처녀를 놓고 물 위에 띄우면 처녀는 강물이 흘러가는 데로 떠가다가 물 속에 가라앉고 만다. 수많은 아름다운 처녀들이 이렇게 하여 죽어갔다. 이때 사람들은 하백에게 신부를 맞이하도록 해주지 않으면 하백이 화가 나서 큰 물결을 일으켜 모두가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비록 이렇기는 해도 고래로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서문표(西門豹)가 그 중의 하나다. 서문표는 전국시기의 위(魏)나라 사람으로, 업(鄴)이라는 지방의 현령으로 파견되었다. 업이라는 지역은 황하 근교로 매우 수재가 많이 나는 곳이라서 이곳에도 하백을 장가들이는 풍속이 있었다. 그곳의 관리들과 무녀들이 결탁하여 이를 빌미로 백성들을 괴롭혀 백성들은 매우 괴로웠다. 서문표는 이러한 악습을 타파하기로 결심했다.

하백이 신부를 맞이하는 날이 되어, 모든 현의 윗사람, 아랫사람,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강변에 모였고 서문표도 왔다.

우두머리 무녀는 나이가 매우 많아 이미 70세가 되었지만 요사스럽게 치장을 했고 열 몇 명의 젊은 무녀들도 제각기 꽃가지를 흔들며 그녀의 뒤에 일렬로 서 있었다. 서문표는 그들에게 하백의 신부를 불러오게 하여 아름다운지 보도록 했다. 신부가 걸어 나오자 서문표는 한번 보더니 무녀에게 말했다. “이 처녀는 너무 못생겨서 하백의 신부로 적합하지 않으니 수고스럽겠지만 무녀가 강 속으로 가서 하백에게 내일 더 좋은 신부감을 골라 오겠노라고 이야기 하구려.” 서문표는 수하의 사람들에게 무녀를 강 속으로 던지게 했다.

조금 지나서 서문표가 말했다. “이 무녀는 어찌 이리도 멀리 가서 아직까지 나오지 않는단 말이오? 다시 그녀의 제자에게 가서 보고 오도록 하시게.” 이리하여 무녀의 제자도 강 속으로 던지도록 명령했다. 또 다시 조금 지나자 서문표가 말했다. “어찌 둘 다 돌아오지 않지? 다시 한명을 더 보내야겠소.” 이렇게 하여 연달아 세 명의 제자를 던졌다.

또 다시 시간이 지나자 서문표가 말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란 말이오? 그녀들이 일을 하지 않는 모양이니 이 일을 주관하는 향관이 한번 가보는 게 좋겠소.” 또 다시 향관도 강 속으로 던지자 남은 사람들은 매우 두려워하며 모두 무릎 꿇고 서문표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간청했다. 서문표가 말했다.
“모두들 일어나시오. 보아하니 하백이 매우 정중히 그들을 맞느라 붙잡고 있나보구려. 여러분도 만일 가보고 싶다면 직접 하백을 찾아 가시오.” 이때 이후로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하백을 장가보내지 않았다.

하백이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재난을 가져오자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잔혹함을 매우 원망하였는데, 전설 속의 “예(羿)가 하백에게 활을 쏜”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을 대표하는 것이다.

한번은 전설의 신사수(神射手) 예가 유랑을 하며 화산(華山) 근처에 와서 무수한 백성들이 강물에 절하며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고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백성들이 예에게 대답하기를, 하백이 종종 이곳에 큰 홍수를 일으켜, 자신들에게 해를 주지 않기를 그에게 빌자 하백이 말하기를 “만약 백성들이 내게 금은보화를 빌려 주어 강 속에 화려한 궁전을 짓도록 도와주면 홍수를 멈출 수 있다”고 하였으나, 백성들은 이미 수재로 인해 매우 빈곤하게 되어 하백에게 보화를 줄 방도가 없으니 이렇게 그에게 애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 했다.

예는 이 말을 듣고 매우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럴 수가! 이런 세상에! 내가 반드시 그를 죽이고 말테다.”

예가 자신의 신전(神箭)을 가지고 강변으로 가서 조금 기다리니, 윙윙 바람소리와 철썩철썩 하는 파도 소리가 들리고 사람의 얼굴에 물고기의 몸을 한 하백이 나타났다. 예가 활을 당겨 하백을 조준하여 화살을 쏘자 비명을 지르며 급히 자신의 얼굴을 감쌌지만 그의 한쪽 눈은 이미 예의 화살에 적중하였고, 하백은 당황하여 도망쳤다.

하백은 예에게 맞아 눈이 멀자 하염없이 훌쩍거리며 천제에게 뛰어가 고자질하고 예를 죽일 것을 간청했다. 천제가 말했다. “이것은 바로 너의 죄니라. 네가 만일 수부(水府)에서 조용히 살았다면 예가 어찌 너를 해칠 수 있었겠느냐? 다 네가 사서 고생을 부른 것인데 예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 하백은 할 수 없이 의기소침하여 돌아갔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후에 용왕(龍王)은 중국 민간 신앙의 용신(龍神)과 결합하여 수신(水神)이 되었고 이후에 용왕이 체계적으로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어, 하백도 서서히 사람들에게 잊혀져 갔다.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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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담론 특별기획 동이족의 영적문서를 빌어다가 개찬한 공자의 소작-나를 아는 자도 오직 「춘추(春秋)」요, 나를 죄줄 자도 그 오직 「춘추(春秋)」다   안원전    2002/10/30  8671
N   동이 대륙상고사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안원전) 2002.8.16   안원전    2003/04/15  12419
432    안원전의 담론 391.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7 -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3부   안원전    2013/11/17  4197
431     안원전의 담론 390. NHK ‘료마전’의 료마와 요시다쇼인(吉田松陰)   안원전    2013/09/15  4555
430    안원전의 담론 389.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6 -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2부   안원전    2013/03/29  4104
429    *(특집)안원전의 담론 388. 대한민국 한류 디자인-대한민국을 새로 디자인하라!!   안원전    2012/09/07  4167
428   비밀글입니다  안원전의 담론 387.   안원전    2011/07/26  213
427    안원전의 담론 386.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5-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1부   안원전    2011/07/04  5796
426    안원전의 담론 385.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4-진나라 제왕의 위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위염(魏冉)   안원전    2011/06/07  4735
42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384. (漢字의 秘密) 한자(漢字)의 주인은 한겨레 韓민족이다.   안원전    2011/06/01  6942
424     안원전 담론 383. 소통(疏通)에 대하여   안원전    2011/05/24  2876
423    안원전 담론 382.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3-초인이 진나라를 섬기던 역사의 공헌 및 통일전쟁의 서막을 올린 감무(甘茂)   안원전    2011/05/17  3334
422    안원전 담론 381.약초를 널리 보급하여 질병을 치료한 다릉(茶陵:차릉)의 ‘세 가지 보물(三寶)’   안원전    2011/05/11  3018
421    안원전의 담론 380. 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 2   안원전    2011/05/09  2682
420    안원전의 담론 379.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1   안원전    2011/05/09  2797
419    안원전의 담론 378.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2- “진나라가 망하고 초나라가 보전되는(亡秦必楚)”의 문화 운명   안원전    2011/05/03  2617
418    안원전 담론 377.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1-초나라가 갑자기 쇠퇴한 원인은 음란과 방탕 그리고 모든 통치계급의 부패와 문란   안원전    2011/04/30  2568
417    동이 대륙상고사 답사를 마치고2(2002) 續원고   안원전    2011/04/30  2560
416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6. 거영신(巨靈神: 강의 신)   안원전    2011/01/10  3038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5. 황하(黃河)의 수신(水神) 하백(河伯)   안원전    2011/01/05  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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