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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의 담론 378.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2- “진나라가 망하고 초나라가 보전되는(亡秦必楚)”의 문화 운명
안원전의 담론 378.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2




“진나라가 망하고 초나라가

보전되는(亡秦必楚)”의 문화 운명




진시황 아방궁전 秦阿房宫殿(그림클릭!!)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다. 백성은 국가의 주체이자 문화의 창조자다. 국가간의 기량을 겨루는 것은 결국에는 문화간의 기량을 겨루는 것이다. 초와 진 양 국가의 공개적이며 필사적으로 투쟁은, 사실상 초와 진문화의 직접적이고도, 물과 기름처럼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충돌이었다. 국가간의 역량을 겨룰 때는 빈약함이 부강함을 이길 수도 있지만, 문화간의 역량을 겨룰 때는 항상 선진이 낙후를 이긴다. 국가 투쟁의 승패는 단지 일시적인 것이지만, 문화 충돌의 승패야말로 최종적인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초나라의 흥성이 의지한 것은 “만이를 보호하고,……제하를 종속하는(撫有蠻夷,……以屬諸夏)” 발전노선을 장기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이에 따라 흥성한 초문화는 물론 화하문화를 주도로 하며, 만이문화를 받아들이고 융합하여,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는 체계를 완비한 방대하고 조예가 깊은 문화이다. 초나라는 타국을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할 때, 무력으로 정복하는 것을 중시하여 전란을 통한 발전의 필요성에 적응했지만, 덕으로써 위엄을 보여 복종시키는 것을 더욱 중시하여 화하문화의 정치 전통을 발휘했다.

천하통일의 추세가 나날이 무르익던 전국시대에 이르러 제자백가는 통일을 이루고 천하를 통치하는 계획과 책략을 서로 다투어 설명했다. 초나라 지역의 도가학자들은 초문화의 정신을 더욱 발전시켜 백가학설의 정수를 추려내 그 정치 주장을 제기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이론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황로학파를 형성했다. 황로학설은 역사를 총결하고 현실을 명확히 관찰하는 기초 위에서 장래를 내다보며 덕을 숭상하면서 힘을 포기하지 않고 예를 극진히 하면서 법을 겸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것은 《문자(文子)》, 《황제서(黃帝書)》, 《갈관자(鶡冠子)》 등의 황로학파 저작 중의 정치사상에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새로운 역사의 조건 아래 초나라와 열국의 흥망의 경험을 결합하여 화하 정치문화의 발전에 대답했기 때문에 관동 6국이 처한 화하문화 구역에서 점차로 영향이 거대한 주도적인 사상이 되었다. 굴원이 회왕(懷王)을 위해 초안한 법령은 이미 초나라가 “삼왕의 덕을 숭상(尙三王(夏禹、商湯、周文王)只)”굴원(屈原)《대초(大招)》
하여 천하를 통일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확정했으며, 게다가 “훌륭한 교화가 백성에게 베풀어지고 나라의 은택이 밝히 드러나는(美冒衆流, 德澤章只)”굴원(屈原)《대초(大招)》
사회의 청사진을 생생히 묘사했다.

굴원의 정치 서정시가 반영한 것은 바로 황로학파가 명백히 논술한 것과 초나라의 현명한 통치자들이 신봉한 정치주장과 사회이상이었다. 후에 초나라에 거주하면서 책을 저술한 순황(荀況: 순자)은 황로학파의 사상을, 왕도를 숭상하고 패도를 겸용하는 사상으로 발휘하였다. 지금의 학자들이 말하는 “순황이 전국 말기의 황로학의 대표(荀況是戰國末期黃老之學的代表)”라는 말은 확실히 일리가 없지 않다. 초인의 정치 문화로 말하자면 왕도를 숭상하고 패도를 겸용하며, 인도정신을 풍부히 가지고 법치정신을 겸비한 왕도문화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유가의 왕도사상에 대한 흡수이자 개조이며 발전이다.

진나라의 흥성이 의지한 것은 무력 정복과 천하 쟁패의 발전노선을 장기적으로 신봉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형성된 진문화는 단지 본 지역문화를 고수하고 타 지역문화를 융합한 혼합체일 수밖에 없었다. 이사(李斯)가 《간축객서(諫逐客書)》에서 말한 것 같이 진나라의 부와 강대함은 직접적으로 타국의 영토를 겸병하고 타국의 재물을 약탈한 것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고고 자료가 반영하듯이 말기의 진문화는 여전히 진이 건립되기 전의 문화 요소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미 6국의 문화 요소가 대량으로 혼합되어 있었다.

진인은 융적(戎翟)에 대한 편견이 있었고, 외진 곳에 거하여 무지했으며, 급히 공적을 세우려는 욕망과 실용적인 선택으로 관동 화하문화를 대했기 때문에 관동 제하의 물질적 자원은 탐욕스럽게 약탈했지만, 관동 제하의 정신문화는 어리석게도 배척했다. 진인의 문화 건설은 시종 물질문화만을 중시하고 정신문화는 무시했다. 진문화의 발전도 시종 물질문화의 발전과 정신문화의 발전이 평행을 이루지 못했고, 후기로 갈수록 그 불평형성은 더욱 심각해져서 체계가 완비된 성숙한 문화를 이룰 수 없었다. 진문화의 비성숙은 인류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는 심오한 사상을 가진 학자를 배양해내지 못하고, 개인의 부귀를 추구하는 용맹하고 전쟁에 능한 장수만을 길러낼 수밖에 없었던 것에서 특출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무예를 숭상하고 문(文)을 버린 진인은 학자를 경시하고 배척했다.

진왕은 현명한 인재를 초빙하여 등용하는데 있어 단지 권모술수가 뛰어나면서도 진나라를 섬기는 책사만을 구하고, 오히려 식견이 탁월하여 천하를 위해 일할 학자는 용납하지 않았다. 순황은 진에 들어가 끝내 등용되지 않자 실망하여 할 수 없이 떠나갔다. 한비(韓非)는 진에 들어가 결국은 감금되어 죽임을 당하여 타향에서 죽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초문화가 학술의 권위자와 수많은 인재를 배양해 낼 수 있었으며 초인이 학자를 환영하고 초나라 땅에서 학술이 발전하기 좋았던 것과 선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게다가 “초 소왕(楚昭王)이 군대를 보내어 공자를 맞이하고(楚昭王興師迎孔子)”, 도가의 학설 및 유파가 초나라 땅에서 흥성했으며, 초 혜왕(惠王)이 묵자(墨子)를 즐겁게 맞이한 것 등의 사례는 말하지 않고라도, 순자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면 그는 비록 진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지만 초나라에서 편안히 거하며 생애를 마치며 초나라 땅에서 백가학술을 대성한 대작을 완성하였고 한비자, 이사 같은 현재 이름을 날리고 천고에 회자되는 제자를 배출했다.

진문화의 정치 특성은 역시 진인이 신봉하던 발전 노선으로 결정된 것으로 이것을 일종의 공리주의적 패도문화라고 칭할 수 있다. 효공(孝公)은 상앙의 왕도(王道)에 대한 말을 싫어하고 그 패도의 계략을 받아들여 “예의를 잃고 인애를 버리고(遺禮義, 棄仁恩)”《한서․가의전(漢書․賈議傳)》에 기록된 가의(賈議)의 말.
문화와 교육을 중지하고, 엄한 법을 행하고, 농사와 전쟁을 장려하며,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여 무력으로 패권을 잡으려는 진문화 전통을 발전시켜 전형적인 패도문화를 이루었다. 그 후의 6대 진왕은 줄곧 무력으로 제후를 병탄할 것을 더욱 맹신하여, 덕과 의로써 천하를 복종시키는 것을 단연코 거절했다.

순자는 진에 들어가 소양왕(昭襄王)을 알현하여 소양왕을 정면으로 보고 물었다. “선비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익한 사람이겠지요(儒無益于人之國)?”《순자․유효(荀子․儒效)》
진인의 편견과 고집이 매우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자가 유학자의 왕도 주장과 그 의의를 상세히 진술하고 난 후 소양왕은 입으로는 훌륭하다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진나라가 “종주(宗周)와 성주(成周)를 삼키고 제후들을 멸망시키고(呑二周而亡諸侯)” 이미 정착했을 즈음에, 관동에서 진으로 들어와 매우 유행한 6국의 황로학설의 영향을 받은 진의 재상 여불위(呂不韋)는 식객을 조직하여 황로학설의 기본사상을 근거로 해 《여씨춘추(呂氏春秋)》를 편찬하고, 화하문화의 발전 대세를 따라 초나라식의 왕도문화를 미래 진 제국의 치국이론으로 하였다.

그러나 진왕 정(政: 진시황)은 여불위를 파면하고 《여씨춘추》를 한쪽에 던져 놓고 예전처럼 패도문화를 추진했다. 진왕 정은 한비(韓非)의 저작을 읽고 깊이 찬탄하였으나 오히려 그의 ‘법으로써 가르치고(以法爲數)’, ‘관리를 스승으로 삼는(以吏爲師)’ 이론만을 취하고, 왕도와 패도의 합일을 제창하고 ‘패도의 도(道)를 행하라’는 주장은 무시하여 패도문화가 극단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진나라 식 패도문화는 초나라 식 왕도문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그 탐욕성, 잔학성, 배타성 그리고 비이성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오로지 공리만을 쫓아 무예를 숭상하고 문예를 배척했던 진인은 문화교육과 훈도를 받지 않아 인의 도덕을 중시하지 않고 인도정신이 조금도 없었으며,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기를 서로 겨누고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이사(李斯)가 말한 것처럼 “진나라는 사대에 걸쳐 싸움에 이겨 군대는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위세는 제후국들 사이에 떨쳐지고 있는데, 인으로써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편의를 따라 처리하였을 뿐이다(秦四世有勝, 兵强海內, 威行諸侯, 非以仁義爲之也, 以便從事而已).” 《순자․의병(荀子․議兵)》에 기록된 이사(李斯)가 손경자(孫卿子: 순자)에게 물어본 말.
사적에는 진이 ‘호랑이와 이리 같은 나라’로 전쟁에서 ‘참수’하는 것을 유쾌한 일로 여겨 이궐(伊闕)의 전쟁에서 벤 한(韓), 위(魏) 양군의 머리가 24만에 달하고, 장평(長平)의 전쟁에서 생매장한 투항한 병졸이 40만이었으며, 전혀 거리낌 없이 속이고 이간질하고, 이익을 미끼로 위협하고, 은밀히 암살하였으며 또한 재산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며 신하와 백성을 노예처럼 부리고 종묘를 불사르고 능묘를 파헤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관동 6국은 “진이 천하를 얻은 것이 의를 행함이 아니고 폭력을 행함이다(秦取天下, 非行義也, 暴也).”《사기․소진열전(史記․蘇秦列傳)》
라는 것을 깊이 느끼고 “진은 천하의 원수(秦, 天下之仇讎).”《사기․소진열전(史記․蘇秦列傳)》
라고 여겼다. 6국 합종운동은 단지 종횡가(縱橫家), 소진(蘇秦) 등이 그 용수철 같은 혀를 놀려 부추긴 것만은 결코 아니며, 그 근원은 아마도 왕도를 신봉하는 6국이 패도를 신봉하는 진나라에 대해 공동의 적에 대해 적개심을 불태운 것에 있을 것이다.

초 회왕(懷王)이 흔쾌히 종약장(縱約長)을 맡아 6국 연합군을 이끌고 진을 공격한 것은 단지 초나라가 당시에 가장 부유하고 강대하여 합종의 맹주로 천거된 것만은 결코 아니며, 그 심층의 원인은 아마도 초나라식 왕도문화가 이미 관동의 인사들을 설복시켜 초인이 공인된 합종의 우두머리가 된 데 있다. 기세도 당당하게 진을 공격한 행동은 일정 의의에서 보면 초인이 이끄는 의(義)를 위해 폭력에 맞서 싸운 행동이며 또한 초문화가 주도하는 왕도문화와 진문화를 대표로 하는 패도문화 간 충돌의 초절정이다.

그러나 연합군의 진 정벌은 비록 기세가 당당했지만 매우 경솔했다. 6국은 비록 공동의 적에 대해 적개심을 불태웠지만, 한마음 한뜻이 되지 못했다. 지도자는 비록 맹주의 야망은 있었으나 맹주의 능력은 없었다. 진을 공격하여 패하자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여 후에 합종의 실패를 초래했고 관동 6국의 멸망이 운명으로 정해졌다.

왜냐하면 왕도 자체는 좋았지만 당시에 성왕(聖王)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통일 조건이 이미 성숙하고 민중의 통일 염원이 매우 절박할 즈음, 진인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패도를 신봉하여 천하를 얻었다. 이는, 마음은 왕도를 향했지만 각각 근심을 가지고 각각 자신의 보호만을 추구하던 6국이 저항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역사는 진인에게 기회를 부여했고 진인 역시 기회를 장악하여 성공적으로 6국을 쓸어 천하를 통일했다. 이는 객관적으로 보면 역사의 조류에 순응했고 역사의 발전을 추진했으며 위대한 역사적 공헌을 한 것이다.

그러나 진인의 천하통일은 비록 백성들의 염원에 부합한 것이었으나, 오로지 폭력만을 행하고 의를 행함에는 무지하던 것은 오히려 백성들의 염원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힘을 숭상하고 의를 버리며, 무(武)는 있으되 문(文)은 없는 패도문화는 비록 일시의 기회를 얻어 강제로 천하에 보급할 수는 있으나 결국은 천하의 민중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천하를 오래 통치할 수 없었다. 그 폐해와 근심거리는 순자가 일찌감치 통찰하여 분명히 말했다. 진에 들어가 진나라의 사회를 직접 본 순자는 진의 재상 범저(范雎)의 질문에 답할 때 진나라의 “통치가 훌륭하다(治之至也).”고 찬탄하면서 동시에 따끔하게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진나라에는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몇 가지 요건들을 아울러 모두 지니고 있지만, 왕자의 공적과 명성에 견주어 보면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곧 진나라에는 유학자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雖然, 則有其諰矣. 兼數具者而盡有之, 然而縣之以王者之功名, 則倜倜然其不及遠矣. 是何也? 則其殆無儒邪.)


힘을 숭상하고 무예를 과시하며 유학과 문학이 없는 패도문화가 일찌감치 문명시대의 중국에 진입하여 오래 행해진다는 것은 확실히 상상하기 힘들다. 패도문화는 극단에까지 발전하여 곧 침몰할 불행을 필연적으로 조성했다.  

초나라가 멸망당하고 왕통은 이미 끝났지만, 민간 백성들의 정신은 아직 남아 있었고 문화도 여전히 두텁게 존재했다. 비록 “진이 해롭다고 여기는 나라 중에 초만한 나라가 없어” 진인이 초나라를 멸할 때 별의별 궁리를 다하고 강제적이고도 격렬하게 초문화를 타파했지만, 개방성, 수용성, 창조성과 인도정신, 법치정신을 풍부히 가지며 당시 화하문화 발전의 성취를 구현하던 초문화는 오히려 선진적이며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초, 진 양국간의 경쟁은 잠시 끝이 났지만, 초, 진문화 간의 경쟁은 이로 인해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경쟁은 초가 진에게 망한 후 40년 밖에 되지 않아 재차 강렬하게 전개되어 뜻밖에도 필연적으로 “진나라가 망하고 초가 보전되며(亡秦必楚)” 끝을 고했다.(*로마제국이 희랍문명을 먹어치운후 희랍문명은 로마제국의 심층부속에서 부활했듯이 진제국 역시 동이 제족의 하나인 문화대국 초나라를 먹어치웠지만 진제국의 속에서 씨를 터뜨려 초의 망명유민 한나라 유방과(유방은 물론이고 항우도 같은 楚人이 아니던가) 그의 휘하 번쾌류의 초나라인의 초문명 재건으로 완전히 부활하여 화샤(華夏)문명으로 대변되는 한(漢)의 중심문명으로 자리매김한다:안원전)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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