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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의 담론 379.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1



안원전의 담론 379.

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 1



염제 신농씨는 강(姜)씨 성이다. 공공(共工),치우(蚩尤),백이(伯夷), 봉백릉(逢伯陵)과 강태공은 모두 염제(炎帝)의 후예다. 그 중에서 공공은 가장 일찍 홍수와 더불어 항쟁한 사람이니, 그는 배(舟船)의 발명자이다. 치우(蚩尤)는 고대 역사상 병주(兵主) 혹 무조(武祖)로 전해져 칭해졌으니 무용(武勇)으로 천하에 위엄을 떨쳤다. 백이(伯夷)는 요, 순 시기의 사악(四岳)으로, 곧 사방 제후를 통괄하는 우두머리였으니, 그는 아국의 고대 형법과 "삼례(三禮)"의 창립자였다. 봉백릉(逢伯陵)은 상(商)나라 시대 제(齊) 나라 땅의 제후였다. 그들은 모두 강태공의 선조로 동이 제지(齊地)의 토착민으로 동이(東夷)문화 혹 제(齊)문화의 창조자였다. 곧바로 춘추시기로 넘어가 강(姜)씨 성 제국을 제외한 이외에도 래국(萊國), 순우국(淳于國), 향국(向國), 기국(己+其國), 기국(紀國) 등 강(姜) 씨 성 나라는 모두는 염제의 후예이니, 이는 거듭 동이 제지(齊地)의 주요 거주민이다. 태호복희씨와 염제 신농씨는 동이 제지(齊地)를 서로 계승해 일어났는데, 그들은 세세 대대 문화를 창조 발전했다. 고사(古史)에 "희농문화(羲農文化)" 혹 "희염문화(羲炎文化)"라 글을 써 칭하니 이는 제문화(齊文化) 혹 동이문화를 칭해 적은 것으로 이를 다시 "사령문화(四靈文化)"라고 적어 칭했다. <안원전의 21세기 담론중>
공공씨(共工氏)의 분포와 이주
전설의 염제후예 중에 공공씨도 중요한 한 분파다. 《국어․노어(國語․魯語)》에서는 “공공씨는 구유를 독점하였고, 그 아들은 후토인데 능히 구토를 평정하였으므로 사를 세워 제사지냈다(共工氏之伯九有也, 其子曰后土, 能平九土, 故祀爲社)”고 말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공공씨도 일찍이 치수를 했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치수에 성공을 거두어서 사신(社神)으로 받들어졌다. 이러한 전설은 분명 모두 토지, 농업과 관계가 있다. 곽말약(郭沫若)은 ‘구유(九有)’, ‘구토(九土)’는 문자의 표면상에 나타난 뜻으로 보면 아홉 개의 지역이므로 ‘백구유(伯九有)’는 바로 ‘구주를 독점한(覇九州)’것으로, 사실상 아홉 개 씨족이 아홉 지역에서 살았는데 공공씨가 그 중에 제일 중요한 위치에 거주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여겼다.곽말약(郭沫若) 주편 《중국사고(中國史稿)》제1책, 인민출판사 1976년판 제109쪽.
공공씨가 신화의 인물로 전설이 된 원인은 주로 그가 동이(東夷)의 치우(蚩友)와 유명한 전쟁을 했기 때문이다. 전쟁한 지역은 태행산(太行山)의 동측인데, 지금의 하남 북부에서 하북(河北) 남부에 이르는 한 지역으로 공공씨가 일찍이 황하 중류에서 활동했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들이 장기간 활동한 지역은 아마도 지금의 하남 서쪽인 이수(伊水)와 낙수(洛水)유역이었던 것 같다.
이 지역은 고대에 ‘구주(九州)’라 불렸으므로 아마도 공공씨의 아홉 씨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후에 예서(豫西) 일대의 산간지역 중에 또 ‘구주의 융(九州之戎)’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아마도 바로 공공씨의 잔여부락인 것 같다. 공공씨의 이 한 분파가 쇠망함으로 인해 그들의 역사에 관한 전설은 사악(四岳)의 분파보다 풍부하지 못하게 되었다. 곽말약(郭沫若) 주편 《중국사고(中國史稿)》제1책, 인민출판사 1976년판 제110쪽.
《좌전(左傳)》소공(昭公) 29년에 조목조목 기술하기를, “공공씨의 아들은 구룡이라 불렀으며, 후토가 되었다(共工氏之子曰句龍, 爲后土).”고 했다. 구룡씨 후토가 수분과 토양을 평정하여 백성들이 편안히 살며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토지의 주관자, 즉 사신(社神)으로 받들어져 후세의 숭배와 제사를 받게 되었다.
현대인의 연구에 따르면, 전설 속의 과보족(夸父族)과 상대(商代)의 토방국(土方國)은 모두 후토의 후예들이라고 한다.
(1) 현대인 하광악(何光岳) 선생은 《열자(列子)》, 《산해경(山海經)》에서 말하는 과보(夸父)는 바로 구룡씨 후토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과보족이 생활했던 시대는 아마도 무더위와 가뭄이 계속되던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과보가 태양을 쫓던 전설이 생겨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과복족이 아마도 위수(渭水) 상류에서 기원하여 이후에 위수유역을 따라 동천하여 지금의 하남 서부 보령(寶靈) 일대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후에 과보족은 황제족(黃帝族)과 충돌이 발생하였는데, 과보족이 대패하여 과보도 황제족의 후예인 응룡씨(應龍氏)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과보의 유족은 할 수 없이 잇달아 남천하였다. 그들이 이주한 노선은 예서(豫西) 산지에서 남양(南陽) 분지로 남하하였으므로 오늘날 하남 경내에 수많은 ‘과(夸(혹은 ‘跨’, ‘垮’)’자로 명명된 지명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내향(內鄕)의 과자영(跨子營), 무양(舞陽)의 과영(跨營), 동백(桐柏)의 과자충(垮子沖), 당하(唐河)의 과자영(夸子營), 정양(正陽)의 유과장(劉夸庄) 등이다. 과보족은 후에 다시 호북(湖北)의 거수(擧水)를 거쳐 호남의 원릉(沅陵), 영릉(零陵) 일대까지 남천했다. 당(唐)나라 사람 장작(張鷟)의 《조야첨재(朝野僉載)》권5에 기록하길, “과보산은 진주의 동쪽에 있으며 삼석(三石)의 품위이다. 예로부터 과보가 태양과 경주를 하여 이곳에 이르러 밥을 짓고 물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삼석은 과보가 솥을 지탱했던 돌이다(夸父山, 在辰州東, 三石品位. 古老相傳夸父與日競走, 至此炊飮. 三石者, 夸父支鼎石也.)”고 했다. 당대의 진주(辰州)는 바로 지금의 호남 원릉(沅陵)이다. 호남의 영릉(零陵) 일대에도 과보의 유적과 전설이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권388에 성홍(盛弘)의 《형주기(荊州記)》를 인용하여 말하길, “영릉현에 과보의 유적이 있다(零陵縣上有夸父迹).”고 했다. 또 《한당지리서초(漢唐地理書鈔)》에는 성홍의 《형주기》를 종합하여 “영릉현에 과보의 무덤이 있다(零陵縣上有夸父冢).”고 했다. 어찌됐든, 호남 원릉과 영릉에 과보의 전설과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물론 과보족이 남천한 증거이다.
절강(浙江)의 태주(台州)에도 과보에 관련된 유적과 전설이 있다고 전해진다. 《태평어람(太平御覽)》권 47에 《군국지(郡國志)》를 인용하여 “태주 복부산에……거대한 흔적이 있는데 과보가 태양을 쫓을 때의 발자국이라고 한다(台州覆釜山, ……有巨迹, 云是夸父逐日之所踐).”고 했다. 이 같은 말로 봐서 과보족의 한 분파가 아마도 절강의 태주로 동천했던 것 같다. 하광악(何光岳) 《염황원류사(炎黃源流史)》, 강서교육출판사 1992년판 제15장 참고.
(2) 후토의 또 다른 후예가 일찍이 북방으로 이주했다. 전하는 바로는 상대(商代) 시기에 상 왕조와 적이 되었던 토방국(土方國)이 되었다고 한다. 은․상(殷商) 무정(武丁)시기의 복사(卜辭)에는 토방이라는 나라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이 시기 토방의 확실한 위치에 관하여는 다수의 학자들이 지금의 내몽고 포두(包頭)일대라고 여긴다. 그러나 하광악(何光岳) 선생은 오히려 “토방은 산서(山西) 석루현(石樓縣)의 토군(土軍)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하광악(何光岳) 《염황원류사(炎黃源流史)》, 강서교육출판사 1992년판 제217쪽.
《초사․초혼(楚辭․招魂)》에 “혼이여 돌아오라, 그대는 땅속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려 하지 말라. 그곳에는 토지신이 있어 꼬리가 아홉이고, ……(魂兮歸來, 君無下此幽都兮. 土伯九約, ……)”라고 하였다. 왕일(王逸)이 주석하여 말하길, “유도(幽都)는 지하의 후토가 다스리는 곳이다. 지하는 어둡기 때문에 유도라고 칭하였다.”고 하였다. 사실 유도는 지금의 하북(河北) 북부와 북경 일대로 중원의 북방에 위치한다. 토백(土伯)이 동북(東北)․화북(華北)의 접경지대로 이주한 것은 아마도 상(商)말기인 것 같다.
지금의 요녕(辽寧)․내몽고(內蒙古) 접경의 노합하(老哈河)는 옛 명칭이 토하(土河) 혹은 도하(涂河)였다. 《요사․지리지(辽史․地理志)》에 기록하길, 중경(中京) 대정부(大定府)에 토하(土河)가 있고, 또 상경(上京) 도영주(道永州)에 동황하(東潢河), 남토하(南土河)가 있는데 옛날에는 사하(徙河)라 칭했다고 했다. 진한(秦漢)시기에 선비(鮮卑) 사하부(徙河部)가 거주하던 곳을 또 도하부(屠何部)라고도 했다.
《일주서․왕회해(逸周書․王會解)》에는 “불도하는 청웅이다(不屠何靑熊)”라고 했는데, 주석하면 “불도하는 동북의 오랑캐다(不屠何亦東北夷也)”라고 했다. 불도하의 ‘불(不)’자는 사실상 발음 접두사로 불제(不齊), 불주(不周), 불야(不夜), 불기(不其) 등과 같다. 도하(屠何)는 지금의 요녕(辽寧) 의현(義縣)에 있는데, 진대(晋代)에는 선비 모용부(慕容部)와 단부(段部)가 점거하던 곳이다.
의현(義縣) 북부의 부신(阜新)은 옛 명칭이 토묵특(土默特)이었는데 이것은 토백특(土伯特)의 음이 변한 것으로 토백부(土伯部)의 뜻이다. 후에 몽고인의 일부가 이곳에 거주하여 토백특부(土伯特部)라고 불리웠다. 주대(周代)에 이르러 토백족(土伯族)은 눈강(嫩江) 상류의 알선동(嘎仙洞) 일대까지 북천하여 선비족의 별부(別部)인 탁발부(拓跋部)가 되었다. 탁발은 토백(土伯)의 음이 변한 것이다.
소위 독발부(禿髮部) 역시 탁발의 다른 번역이다. 외몽고의 토랍하(土拉河) 및 토사도한부(土謝圖汗部)는 토백족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얻은 이름이다. 그 후에 몽고족의 한 분파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곧 그 거주지역의 이름으로 토사도(土謝圖)가 되었다. 토백족의 또 다른 한 분파는 지금의 러시아와 몽고의 접경지역인 도와(圖瓦)에 분포하여 도와족(圖瓦族)이 되었으며 돌궐족(突厥族)의 갈래에 속한다. 돌궐은 또 터키의 조상이 되며 바로 토백의 후예이다. 중국의 성씨 중에는 구룡(勾龍)과 토(土)씨 성이 모두 있다. 남송(南宋)의 어사(御史) 중승(中丞)이었던 구룡여연(勾龍如淵)은 도강인(道江人)이었다. 또한 구룡정실(勾龍廷實) 등의 사람이 있었다. 아는바에 의하면, 촉(蜀) 지역에 이러한 성이 많아 구룡씨의 후예로 여겨진다. 내몽고와 섬북(陝北)의 접경지역에는 또 토씨 성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안원전의 21세기 담론중>




숲의 요괴를 굴복시키고 화신(火神)으로 추앙받다.





숲의 요괴를 굴복시키고 화신(火神)으로 추앙받다.

불에는 천연의 불이 있는데, 즉 화산 폭발로 인한 불 혹은 장기적인 가뭄이 천둥과 번개를 만나 삼림과 초원에 불이 나는 경우 등이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출현한 불일 것이며 옛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발견한 ‘천화(天火)’일 것이다. 옛날에 인공으로 불을 만들었던 적도 물론 있다. 옛 서적인 《세본(世本)》에 기록하기를 “수인씨가 나무를 문질러 불을 얻었으니, 불을 만든 자는 수인이다(燧人氏鑽木取火, 造火者燧人也).”

수인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옛 서적 중에서 기록을 찾지 못하여 알 수가 없다. 고고학의 발견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70만 년 전의 원모인(元謀人) 화석 지층 속에서 대량의 석탄 부스러기가 발견 되었는데 그 중에는 연소된 뼈가 있어 이것이 아마도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 중 가장 빠른 불의 유적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염제(炎帝)가 아직 태어나지 전에 불은 이미 세상에 출현했던 세상의 일종의 자연속에 존재하는 ‘자재지물 (自在之物)’이었다.

염제가 세상에 나온 후에 끊임없이 이 ‘자재지물’을 ‘사람에 필요한 사물(爲我之物)’로 바꾸어 백성들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물품으로 바꾸었다. 즉,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했던 것이다. 《좌전․소공29년(左傳․昭公二十九年)》과 《좌전․애공9년(左傳․哀公九年)》의 기록에 의하면 염제는 ‘열산씨(烈山氏)’라고 불리었다. “염제는 화사(火師)가  되고 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그 후예가 되었다(炎帝爲火師, 姜姓其後也).” 열산은 바로 불을 놓아 산을 태우는 것이다. 속칭 ‘화전 경작’이라고 말한다.

즉, 상고 시대에는 식생이 풍부하였기 때문에 염제는 불을 놓아 산을 불살라 가시나무를 비료가 되는 재거름으로 바꾸어 파종하기 편하게 하였다. 이는 그가 상고시대에 백성들을 인도하여 농업을 창업하고 농업생산을 발전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여, 그를 높여 ‘불로써 덕을 행한 왕(以火德王)’, ‘그 덕을 불로 벼리(주장)를 삼았다(其德火紀)’고 하여 ‘화사’가 되었고, ‘화광(火光)’, ‘화상(火上)’, ‘중화(重火)’의 화염으로써 이름에 ‘화염(炎)’을 넣은 염제(炎帝)가 되었다.

농경의 창업을 응용하기 위해 염제는 “나무를 도끼로 패어 보습을 만들고, 나무를 휘어 쟁기를 만들었는데, 이 쟁기와 보습은 천하를 다스리는데 매우 유리했다.” (《역․계사(易․系辭)》); 또 “불을 다스려 이롭게 하였고(修火之利)”, “밭을 갈고 질그릇을 만들었다(耕而作陶).” (《예기․예운편(禮記․禮運篇)》).


섬서성 바오지(보계) 염제신농 능묘 염제대전에서


《관자․경중무편(管子․輕重戊篇)》에서 말하기를, “염제는 부싯돌로 불을 일으켜 음식을 익혀먹음으로써 비린내도 없애고 위장병이 없게 하여 천하를 변화시켰다(炎帝作鑽燧生火, 以熟勞臊, 民食之無玆胃之病, 而天下化之).”고 했다. 염제는 불을 이용하여 옛사람들이 동식물을 날로 먹던 것에서 동식물을 익혀먹는 단계로 진입하게 하여 옛 인류문명의 크나큰 진보를 촉진했다. 바로 이러한 발명이 인간들이 수인씨가 나무를 문질러 불씨를 얻은 것을 염제가 처음 창시했다고 간주하게 했던 것이다.

염제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는 매우 많이 있다. 예를 들면, 고대의 제전(祭典)에서 ‘납제(蜡祭)’가 가장 크다고 전해오는데, 《사기․보삼황본기(史記․補三皇本紀)》에 기록하기를, 염제 “신농씨가 납제를 만들었다(神農氏作蠟祭)”고 한다. 또 《예기․교특생(禮記․郊特牲)》에서 말하기를, “천자의 큰 납팔(蠟八)로 이기씨(염제)가 처음으로 초를 만들었다(天子大蠟八, 伊耆氏(炎帝)始爲蠟).”고 했다.

이 말은 야간에 불빛을 이용해서 조명하던 초를 염제가 처음으로 발명한 것이라는 거다. 그는 반딧불 꼬리가 야간에 불빛을 발한다는 것을 발견한 후에 대량의 반딧불을 동굴로 끌어들여 시험 삼아 조명을 시도하였고 이로부터 불빛을 이용하여 조명하는 초를 응용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또 그가 백성들을 인도하여 불로 음식을 익혀 먹도록 한 것은 번개가 치고 난 후 번개에 맞아 타죽은 동물을 먹고 “위장병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서 백성들이 음식을 불에 익혀먹도록 인도했다고 전해진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사물에 대한 통찰과 사고는 현재 인간들의 일반적인 관찰과 사색보다 훨씬 깊은 것이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은 염제가 어떻게 숲의 요괴를 굴복시키고 백성들을 위해 해를 제거했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염제가 생존해 있을 때 이미 신선의 반열에 선다는 “열선반(列仙班)”이라고 불렸으며 옥황상제는 그가 농업에서 이루어낸 크나큰 공헌을 생각하여 화신(火神)으로 봉했다.




섬서성 바오지(보계) 염제신농 능묘 염제대전 사배심고와 태을주 주송

하루는 옥황상제가 여러 신들을 이끌고 요지(瑤池:서왕모가 사는 선경)에서 경치를 감상하는데 홀연 구름이 열리고 인간계의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여러 신들이 인간계를 보았으나 대지 위에 높은 산이 죽 늘어서고 초목이 지나치게 무성하며 가시덤불이 뒤덮고 잡초들이 무성하여 황량하고 적막한 모습이었고, 백성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울부짖고 곤궁에 빠져 유랑하며 원망과 고통이 끊이지 않았다. 옥황상제는 자비로워 백성들의 괴로움을 보자 더 이상 선경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먼저 어가를 이끌고 궁으로 돌아갔다. 여러 신들도 흥이 깨져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다.

이번 유람으로 옥황상제는 문득 오랫동안 마음 속 깊이 있던 일을 생각나게 하여,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하고 식욕이 없고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하며 시름시름 병을 앓게 되었다. 의사를 찾아 진료하고 침을 맞고 약을 먹어도 모두 소용이 없었다. 이쯤 되자 서왕모는 몹시 초조해졌다. 그녀만이 옥황상제의 고민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여 옥황상제의 병이 마음에서 비롯된 병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옥황상제가 어떤 고민이 있는지는 알지 못하여 그의 침상 앞에 와서 물었다.

“페하께서 백성을 걱정하시어 이렇게 큰 병이 나셨는데, 폐하께서 도대체 어떠한 일을 마음에 품고 계시는지 신첩에게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옥황상제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서왕모를 바라보며 길게 탄식하고는 말했다. “짐의 근심은 바로 인간계에서 숲의 요괴가 재앙을 끼쳐 백성들의 생활을 매우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오. 내가 일찍이 몇 차례 하늘의 장수들을 인간계에 보내었는데, 숲의 요괴가 어찌나 오만하고 신통력도 강한지 제멋대로 날뛰고 잔학한 짓을 하여 하늘의 장수들이 몇 차례나 연거푸 패하였다오. 이 일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구려.”

서왕모가 말했다. “폐하, 걱정하지 마옵소서. 폐하의 병이 숲의 요괴의 짓으로 인하여 생긴 이상, 신첩에게 숲의 요괴를 처리할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폐하께서 신첩의 말대로 해주실지 모르겠습니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숲의 요괴를 다스릴 방법만 있다면 어찌 그 말대로 못하겠소?” 서왕모가 말했다. “흔히들 큰 상을 준다하면 있는 힘을 다한다 하지 않습니까. 폐하께서는 여러 신들에게 만약 40일 이내에 숲의 요괴를 물리치고 대지에 씨앗을 뿌리는 자는 연속하여 3등급을 올리고 그 땅을 그의 이름을 따 이름 지어 아름다운 명성을 후세에 남기게 할 것이라 효시하십시오. 폐하께서는 신첩의 생각을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호남성 주주시내의 대형 염제 동상 앞에서

옥황상제는 서왕모가 내놓은 계책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병이 조금 나은 듯 했다. 급히 모든 하늘나라에 천자의 조서를 내걸도록 명령하여 지용(智勇)을 갖춘 신들을 모집했다.

이날 천수신왕(千手神王)이 천자의 조서를 뜯어 몹시 흐뭇해하며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영소보전(靈霄寶殿)으로 달려가 옥황상제를 알현하여 말했다. “신 천수신왕이 옥황상제를 뵈옵니다. 신이 폐하의 근심을 함께 나누어 인간계로 내려가 숲의 요괴를 굴복시키고 천하에 씨앗을 뿌리고자 하옵니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하지만,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오! 자신이 있소?” 천수신왕이 말했다. “신이 사명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절대 천궁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경께서 이렇게 자신하니 짐도 안심이 되오. 성공하는 날 짐이 반드시 큰 상을 내리겠소.” 천수신왕은 옥황상제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기세도 당당하게 구름과 안개를 타고 하늘을 날아갔다.

천수신왕이 인간 세상에 내려왔을 때는 마침 일출 때였다. 숲의 요괴는 마침 산비탈에서 자고 있었는데, 천수신왕이 커다란 돌덩이를 들고 휙 던지니 바로 숲의 요괴 옆구리에 떨어져 가까스로 적중을 모면했다. 숲의 요괴는 몸을 돌려 일어나 화를 내면서 천수신왕을 쳐다보았는데 천수신왕의 모습은 정말로 괴이했다. 손은 천개나 되고 머리카락은 백 가닥밖에 안되었으며, 금붕어의 눈 한 쪽에다 톱니처럼 생긴 이빨이 두개 드러나 있고 흉악한 모습으로 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

천수 신왕도 숲의 요괴를 보니 역시 흉악하게 생겼는데, 남색 얼굴에 눈과 코가 구분이 되지 않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뒤엉킨 머리는 우산 모양이었으며, 그가 서 있는 곳은 찬바람이 살을 에는 듯 하여 살기가 사람을 엄습했고, 머리는 하늘을 닿을 듯 하고 손은 해를 가릴 듯 했다.

숲의 요괴가 말했다. “너는 뭐 하러 온 게냐?” 천수신왕이 말했다. “나는 옥황상제의 분부를 받들고 특별히 너를 굴복시켜 천하에 씨앗을 뿌리러 왔다.” 숲의 요괴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네가 무슨 능력이 있느냐?” 천수신왕이 말했다.

“능력이 있고 없고는 내 손이 몇 개인지만 보아도 될 것이다.” 숲의 요괴가 말했다. “손이 많은 게 대단한 능력이라고 자만하는군. 우리 그럼 내기 할까?” 천수신왕이 말했다. “어떤 내기?” 숲의 요괴가 말했다. “네가 만약에 하루 안에 내 손바닥에 있는 풀을 모두 뽑는다면 네게 굴복하지!” 숲의 요괴의 몸은 커다란 산과 같았으므로 손바닥도 당연히 작지 않았으나 풀 뽑기는 천수신왕의 장기였으므로 손바닥에 있는 것만 뽑아낼 것이 아니라 숲의 요괴의 온몸에 있는 풀을 뽑으라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터였다.

천수신왕이 말했다. “네 말에 책임질 수 있으렷다?” 숲의 요괴가 말했다. “당연하지. 어떠냐?” 천수신왕이 말했다. “내가 만약에 하루 안에 네 손바닥의 풀을 다 뽑지 못하면 바로 천궁으로 돌아가겠다.”

쌍방은 이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천수신왕은 그의 천 개의 손으로 부지런히 뽑기 시작했고, 숲의 요괴는 비웃으며 손바닥을 뻗어 그에게 풀을 뽑게 하고는 의연히 드러누워 잠을 잤다. 이상하게도 천수신왕이 필사적으로 뽑으면 풀도 역시 기를 쓰고 자라나 앞의 풀을 뽑으면 뒤의 풀이 다시 자라났다. 그가 뽑은 풀은 이미 산더미처럼 쌓였으나 숲의 요괴의 손바닥에 있는 풀은 오히려 갈수록 많아지고 두터워졌다.

일출 때부터 일몰 때까지 천수신왕은 힘들어 온몸에 땀을 줄줄 흘리고 숨을 헐떡거렸고 손에는 수천수만 개의 피망울이 맺혀 너무 쓰라려 견디기 힘들었다. 자세히 보니 한 손바닥은 고사하고 손가락에 있는 풀조차 다 뽑지 못한 게 아닌가! 천수신왕은 화도 나고 지쳐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숲의 요괴는 크게 한바탕 웃고는 일어나 말했다. “어떤가, 천수신왕. 이쯤 되면 항복해야 되지 않는가?” 천수신왕은 허리를 펴 땀을 닦으며 말했다. “항복이요! 항복!” 천수신왕은 한바탕 당하고 나서 자신이 숲의 요괴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창피한 얼굴로 천궁으로 돌아갔다.

천수신왕이 패하여 천궁으로 돌아간 후, 청룡태자(靑龍太子)도 부귀영화를 그리며 자진하여 인간계에 내려가겠다고 나섰다. 숲의 요괴는 오래전부터 청룡태자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더욱 진지해졌다. 청룡태자가 몸을 돌려 변하니, 천 개의 머리와 만개의 팔로 변하여 갖가지 병기를 휘두르며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숲의 요괴를 향해 공격했다. 숲의 요괴는 공격을 받아 이동하며 결코 반격하지 않았다. 청룡태자는 한나절을 공격했지만 숲의 요괴의 풀들만 좀 상하게 한 것 외에는 그의 피부에조차 닿지 않았다. 청룡태자는 힘들어 땀을 뻘뻘 흘리며 온 몸이 부어오르고 아팠다. 숲의 요괴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아, 네 꼴을 좀 보거라. 손이 갈수록 많아지니, 꼴이 그게 뭐냐?”

청룡태자는 이때서야 머리를 숙여 자신을 보았다. 보지 않았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보고는 너무 놀라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상하군, 이상해. 내가 원래 손이 만 개밖에 없었는데, 언제 2만개나 생겼지?” 숲의 요괴가 말했다. “자세히 봐, 그건 손이 아니고 네 몸을 물고 있는 독사다! 네 명이 길게 남지 않았으니 어서 돌아가 명의에게 치료나 받지 그래!” 청룡태자가 자세히 보니 과연 수많은 독사들이 몸에 붙어있었다.

그가 미친 듯이 그것들을 몸에서 떼어내는 순간에도 그 뱀들은 언뜻 보기에 마치 팔뚝 같았다. 청룡태자는 이때 적잖이 놀라 어디 더 싸울 마음이 들었겠는가. 급히 몸에 붙은 수천수만 마리의 독사를 흔들어 떨어뜨리며 넘어져 기며 허겁지겁 천궁으로 돌아갔다. 후에 태상노군(太上老君)이 금단으로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하늘의 장수가 연달아 두 차례 패하자 옥황상제는 자신감을 잃고 병이 또 도졌다. 서왕모는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신첩이 인간계에 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가 숲의 요괴를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어째서 그를 불러오지 않으십니까?” 옥황상제가 말했다. “또 꿈같은 말을 하는 구려. 하늘의 장수도 몇 차례 출정하여 백성들만 괴롭게 하고 헛고생만 하며 아직 승리하지 않았소. 하물며 일개 범인이 어찌 숲의 요괴를 이기겠소?” 서왕모가 말했다. “이 사람은 비록 범인이지만 능력이 지극하여 폐하께서도 그를 얕보실 수 없을 겁니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그게 누구요?” 서왕모가 말했다. “바로 화신 염제입니다.”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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