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TOTAL : 449 , PAGE : 1 / 13 , CONNECT : 0 회원가입 로그인
   안원전
   http://www.cheramia.net
   안원전의 담론 389.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6 -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2부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6

-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2부






이사(BC280-208),진왕조 승상,저명한 정치가,문학가, 서법가, 진시황 통일천하에 협조. 진시황 통일후, 진왕조의 법률을 제정하는데 참여했고 진왕조 제도를 완전히 갖추었다. 대중이 주장하는 의견을 힘으로 물리치고 군현제를 실행하고, 분봉제를 폐지해 없애고, 아울러 문자, 차궤, 화폐, 도량형을 통일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진시황이 죽은 후, 환관 조고와 합작 모의하여 어린 아들 호해를 2세 황제로 세웠으며, 후에 조고가 질투시기하여 시중에서 요참(허리를 잘려 죽는 형벌)당해 죽음을 당했다. 그가 실시한 정치적 주장으로 인해 중국과 세계에 대해 심원한 영향을 주었으며,  중국 이천년 역사의 정치 제도적 기본 격국의 기초를 다졌다.
李斯(约前280年-前208年),秦朝丞相,著名的政治家、文学家和书法家,协助秦始皇统一天下。秦统一之后,参与制定了秦朝的法律和完善了秦朝的制度,力排众议主张实行郡县制、废除分封制,提出并且主持了文字、车轨、货币、度量衡的统一。秦始皇驾崩后与宦官赵高合谋立少子胡亥为二世皇帝,后为赵高所忌,腰斩于市。因其政治主张的实施对中国和世界产生了深远的影响,奠定了中国两千多年政治制度的基本格局。


천하는 천하인의 천하지 일인의 천하가 아니다.-<육도삼략>과 <여씨춘추>에 처음 나온 말이다.
天下乃天下人之天下,非一人之天下也 这句话是中国古代政治史上的名言,它代表了中国古代朴素的民主思想和儒家的政治理想。

它首先出于《六韬》和《吕氏春秋》。这两部书,究竟谁前谁后,有着争论,主要是《六韬》的写作年代尚没有确定。根据传说,这部书为姜太公吕望所著。经历代学者考证,都认为无论就书中内容及文字结构而论,都不是殷周之际的作品,而是后人所依托。但《汉书。艺文志》已经有记载曰::“《周史六韬》六篇。”下注:“惠襄之间,或曰周显王时,或曰孔子问焉。”1972年山东临沂银雀山汉墓出土的了竹简《六韬》,其内容虽然不全,但已有《文韬》、《武韬》、《龙韬》等。由此,基本可以断定《六韬》的成书年代,上限不早于周显王时,下限不晚于秦末汉初。以最晚的时间算,和《吕氏春秋》差不多。《六韬》中关于这句话的原文是

姜子牙.姜太公在他著作的《六韜》一書中說:「天下非一人之天下,乃天下人之天下也。」(

文王乃斋三日,乘田车,驾田马,田于渭阳,卒见太公,坐茅以渔。 
文王劳而问之曰:“子乐渔也?” 
太公曰:“臣闻君子乐得其志,小人乐得其事。今吾渔甚有似也,殆非乐之也。” 
文王曰:“何谓其有似也?” 
太公曰:“钓有三权;禄等以权,死等以权,官等以权。夫钓以求得也,其情深,可以观大矣。” 
文王曰:“愿闻其情。”太公曰:“源深而水流,水流而鱼生之,情也。根深而木长,木长而实生之,情也。君子情同而亲合,亲合而事生之,情也。言语应对者,情之饰也;言至情者,事之极也。今臣言至情不讳,君其恶之乎?” 
文王曰:“惟仁人能受至谏,不恶至情,何为其然!” 
太公曰:“缗微饵明,小鱼食之;缗调饵香,中鱼食之;缗隆重饵丰,大鱼食之。夫鱼食其饵,乃牵于缗;人食其禄,乃服于君。故以饵取鱼,鱼可杀;以禄取人,人可竭;以家取国,国可拔;以国取天下,天下可毕。呜呼!曼曼绵绵,其聚必散;嘿嘿昧昧,其光必远。微哉!圣人之德,诱乎独见。乐哉!圣人之虑,各归其次,而树敛焉。” 
文王曰:“树敛若何而天下归之?” 
太公曰:“天下非一人之天下,乃天下之天下也。同天下之利者,则得天下;擅天下之利者,则失天下。天有时,地有财,能与人共之者,仁也。仁之所在,天下归之。免人之死,解人之难,救人之患,济人之急者,德也。德之所在,天下归之。与人同忧、同乐、同好、同恶者,义也;义之所在,天下赴之。凡人恶死而乐生,好德而归利,能生利者,道也。道之所在,天下归之。” 
文王再拜曰:“允哉,敢不受天之诏命乎!”乃载与俱归,立为师。
http://blog.naver.com/hhs0203?Redirect=Log&logNo=120045614683
▣ 낚시에 숨은 이치/ 文王曰 何謂其有似也(문왕왈 하위기유사야): 문왕이 말하기를 낚시 놓는 것과 흡사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太公曰 釣有三權(태공왈 조유삼권): 태공이 말하기를 낚시에는 세 가지 뜻이 있나이다.   祿等以權(녹등이권): 녹을 주는 것은 여러 분야의 인재를 발탁하여 쓰는 것과 같으며  死等以權(사등이권):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은 그 녹을 받아 열심히 일하는 것과 같으며  官等以權(관등이권): 벼슬을 주는 것은 그 능력에 따라서 주는 것과 같사옵니다. 夫釣以求得也(부조이구득야): 낚시를 하는 뜻은 이러한 것을 구하는 데 있사옵니다. 其情深 可以觀大矣(기정심 가이관대의): 그 깊은 정의 이치를 알게 되면 가히 큰 뜻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情(정)이란 무엇인가/ 文王曰 願聞其情(문왕왈 원문기정): 문왕이 물었다 바라건대 그 정의 이치를 들려 주십시오. 太公曰 源深而水流(태공왈 원심이수류): 태공이 말하기를 샘이 깊으면 물이 잘 흐르고 水流而魚生之 情也(수류이어생지 정야): 물이 흐르면 물고기가 살게 되는 것이  이것이 정입니다. 根深而木長(근심이목장): 뿌리가 깊으면 나무가 잘 자라며  木長而實生之 情也(목장이실생지 정야): 나무가 잘 자라야 열매를 맺히듯이 이것이 정의 이치입니다. 君子情同而親合(군자정동이친합): 군자가 그 뜻이 맞으면 가깝게 화합하며  親合而事生之 情也(친합이사생지 정야): 마음이 화합하게 되면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 이것이 정입니다. 言語應對者 情之飾對也(언어응대자 정지식대야): 말로 대하는 것은 진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言至情者 事之極也(언지정자 사지극야): 말이 진정에 이르면 일이 지극하게 되는 것입니다. 今臣言至情不諱(금신언지정불휘): 지금 신이 숨김없이 지극한 정에 대하여 말 하였습니다. 君其惡之乎(군기오지호): 군주께서는 그러한 지극한 정을 싫어하시겠습니까.    

《吕氏春秋》中关于这句话的原文是:

昔先圣王之治天下也,必先公。公则天下平矣。平得於公。尝试观於上志,有得天下者众矣,其得之以公,其失之必以偏。凡主之立也,生於公。故《鸿范》曰:“无偏无党,王道荡荡。无偏无颇,遵王之义。无或作好,遵王之道。无或作恶,遵王之路。”天下,非一人之天下也,天下之天下也。阴阳之和,不长一类;甘露时雨,不私一物;万民之主,不阿一人。伯禽将行,请所以治鲁。周公曰:“利而勿利也。”荆人有遗弓者,而不肯索,曰:“荆人遗之,荆人得之,又何索焉?”孔子闻之曰:“去其‘荆’而可矣。”老聃闻之曰:“去其 ‘人’而可矣。”故老聃则至公矣。

到司马迁作《史记》,又让汉大夫谷永说出了这番话:

臣闻天生蒸民,不能相治,为立王者以统理之,方制海内非为天子,列土封疆非为诸侯,皆以为民也。垂三统,列三正,去无道,开有德,不私一姓,明天下乃天下之天下,非一人之天下也。王者躬行道德,承顺天地,博爱仁怒,恩及行苇,籍税取民不过常法,宫室车服不逾制度,事节财足,黎庶和睦,则卦气理效,五征时序,百姓寿考,庶草蕃滋,符瑞并降,以昭保右。失道妄行,逆天暴物,穷奢极欲,湛湎荒淫,妇言是从,诛逐仁贤,离逖骨肉,群小用事,峻刑重赋,百姓愁怨,则卦气悖乱,咎征著邮,上天震怒,灾异屡降,日月薄食,五星失行,山崩川溃,水泉踊出,妖孽并见,茀星耀光,饥馑荐臻,百姓短折,万物夭伤。终不改寤,恶洽变备,不复谴告,更命有德。 

相關語錄
섵부른 지식이 교만하고 오만하다. 익은지식은 겸손하다. 고로 속빈 벼이삭은 고개를 쳐들고 익은 벼이삭은 자신의 모친 논바닥에 고개를 숙인다.
◦微小的知識使人驕傲,豐富的知識使人謙遜。故,空心的禾穗高傲地舉頭向天,而充實的穀穗,則低頭向著大地,向著它的母親。
◦若無德,則雖體魄智力發達,適足助其為惡。
◦具有偉大的理想,出以堅定的信心,施以努力的奮鬥,才有驚人的成就。
◦即使是不成熟的嘗試,也勝於胎死腹中的策略。
◦有了母親在身邊,我們不必去尋求別人。她對我們的教誨是非常寶貴的:和善友愛體貼別人居於首位;不要傷害別人;決不乞求;決不佔別人的便宜。與之相反的做法在我們家都是罪過。她總是要我們給予,但她從不要我們索取或乞求。她就是這樣的人。
◦芳菲歇去何須恨,夏木陰陰正可人
◦世界上那些最容易的事情中,拖延時間最不費力。
◦所謂活著的人,就是不斷挑戰的人,不斷攀登命運峻峰的人。
◦生活是一種極可怕的苦役
◦慎重則必成,輕發則多敗
◦老柴好燒,老書宜讀
◦要是看不到底,就不要涉水
◦眼睛會洩露心中的秘密
◦胸中書富五車,筆下句高千古
◦人生不發行往返車票,一旦出發了就再也不會歸來了。
http://hi.baidu.com/mwwuecuivgbluwd/item/d1a013cbb9602a09c610b25f
http://tieba.baidu.com/p/1057336446
이사(李斯)는 왜 조고(趙高)에게 패하였는가?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3mJp&articleno=15814258&_bloghome_menu=recenttext#ajax_history_home






李斯 / 網路圖片
【簡體版】  李斯是一個可憐可恥的悲劇性人物。他當初輔佐秦始皇,統一天下,位至丞相,在一人之下,萬人之上,聲威赫赫,卻沒有為百姓做好事;在後來,一瞬之間,被腰斬,滅三族。作為丞相,遭遇這種結局,在中國歷史上實屬罕有。從李斯的人生軌跡中可以看出,他的結局,是他的人生觀的必然結果,講得具體一點,是他的「老鼠哲學」 的人生價值觀,牽引導致出他的下場頭




한(韓)왕은 겁을 먹고 한비(韓非: 약 기원전280―기원전233)와 진나라를 약화시키고 한나라를 보존하는 방법을 공모했다. 따라서 한비는 진왕 정에게 상서를 올려 이사의 한나라를 취하려는 계략을 비난하고, 한나라는 진나라를 섬기니 공격당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진왕에게 군대를 돌려 조(趙)나라를 칠 것을 권했다.

진왕은 상서를 읽고 가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이사에게 보여주고 상의했다. 이사는 한비의 말에 크게 반대하며 과격한 말로 한나라의 속셈을 폭로하여 재차 한나라 정벌의 필요성을 천명하고 친히 한나라로 가서 한비의 말이 진심에서 나온 말이 아님을 증명하여 마침내 진왕이 한나라를 칠 결심을 하게 했다. 한비가 진나라에 와서 유세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을 뿐 아니라 반대로 감금되어 죽임을 당했다.

《사기(史記)》에 기록하길, 진왕 정이 일찍이 한비의 문장을 읽고 극찬하며 다음과 같이 감탄했다고 한다.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그와 사귈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寡人得見此人與之遊, 死不恨矣!)《사기․노자한비열전(史記․老子韓非列傳)》” 한비를 얻기 위해 “진나라는 급히 한나라를 공격했다. 한왕은 처음에는 한비를 등용하지 않았으나, 상황이 급해지자 한비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했다.(秦因急功韓. 韓王始不用非, 及急, 乃遣非使秦.)《사기․노자한비열전(史記․老子韓非列傳)》”

한비는 진나라에서 비록 진왕의 사랑을 받았으나 아직 신임 받지는 못했으므로 결국은 이사와 요고(姚賈)가 중상모략하여 하옥되었고 이사가 보낸 독약을 먹고 자살하고 나니 진왕은 후회막급이었다. 역대 학자들은 이 때문에 모두들 이사의 인품이 낮아 자신보다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시기했다고 질책한다.

확실히 이사의 행동은 한비의 재능이 그보다 높은 것을 시기하고 진왕이 한비를 좋아하여 그를 등용할 것을 염려했던 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구속을 받는 신하의 신분으로 만약에 “막 자신을 등용했던” 진왕 정의 묵인을 얻지 못했다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의도를 알리지 않았다면, 짐작컨대 절대로 겁 없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에 따르면, 한비의 “진왕에게 올리는 상서”에는 “한나라가 진을 30여 년간 섬겨온 것”을 강조했고 “군대는 흉기이므로 심사숙고해서 쓰지 않으면 안 된다(兵者, 凶器也, 不可不審用也)”고 지적하였으며, 거병하여 “근심거리인 조나라를 남겨두고 신하인 한나라를 배척(釋趙之患而攘內臣韓)”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어질지 못하며 강자임을 믿고 약자를 깔보는 행위라고 질책하는 뜻이 명확히 담겨 있어, 공리만을 추구하는 진왕 정이 이 상서를 읽고 매우 불쾌했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비의 상서는 말이 조리 있고 이치가 마땅했고 또한 진왕의 의도를 잘 알고 명백히 말했기 때문에 진왕으로 하여금 대답할 말이 없게 하여 이사에게 의견을 논의하도록 했다. 이사는 진왕이 설명은 안했지만 약간의 불만이 있는 마음을 짐작했기 때문에, 그 의미를 근거로 제시하여 한비가 상서에서 한 말에 대해 심하게 비난할 수 있었다.

한비가 진에 들어온 후에 진왕에게 유세한 말은
《한비자․초견진(韓非子․初見秦)》참고. 고금의 많은 학자들은 이 문장이 한비의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근거는 바로 문장 중의 ‘한나라를 멸망시키고(亡韓)’라는 말이 한나라의 공자인 한비의 입에서 나올 리가 없고 게다가《존한(存韓)》문장의 견해와 《사기(史記)》의 기록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문장의 ‘조나라를 공격하여 취하고 한나라를 멸망시키라는(擧趙亡韓)’ 말과 《존한(存韓)》편의 “두 나라(조나라, 제나라)의 일을 마치면, 한나라는 서찰을 보내어 안정시킬 수 있다.(二國(趙、齊)事畢, 則韓可以移書定也)”는 말과 일치하며, 이는 모두 한비의 진나라를 약화시키고 한나라를 보존하려는 계책으로, 소위 이사가 말했던 “그의 변명은 속이려는 계획을 감추어 진나라에서의 이익을 탐하려는 것(辯說屬辭, 飾非詐謀, 以鈞利于秦)”이다.



이사의 모략에 겨누어 또 달리 진나라를 위해 계획한 것으로 “조나라를 공격하여 취하고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형, 위를 신하로 삼고, 제, 연과 친하여 패왕의 이름을 얻는 것이 사방의 이웃나라인 제후국을 향한 도(擧趙亡韓, 臣荊、魏, 親齊、燕, 以成覇王之名, 朝四鄰諸侯之道)”라는 패업의 청사진이었는데, 이것은 분명 진왕의 뜻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한비는 여전히 진왕이 우선 조나라를 공격하여 취하고 난 후 한나라를 멸망시킬 것을 견지하였는데, 그 속셈은 이사가 이미 진왕에게 지적했던 것처럼 진나라가 만약에 국력이 강하고 제나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조나라를 먼저 공격한다면, “한나라는 반드시 마음속 깊은 곳의 병을 드러내어 한나라와 형(荊)이 계략을 짜고 제후들이 이에 응하면 진나라는 필히 다시금 효산 요새의 근심을 얻게 될 것이었다.(則韓必爲腹心之病而發矣, 韓與荊有謀, 諸侯應之, 則秦必復見崤塞之患)《한비자․존한(韓非子․存韓)》”

더구나 한비는 진나라가 제후들을 수매하고 합종(合縱)의 성공을 훼손하여 진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상경(上卿) 요고(要賈)를 비난한 속셈은 진나라의 군신을 이간질하고 진나라의 책사를 제거하려는 데 있었다. 진왕은 요고를 질책하여 그 해명을 듣고 난 후에 진나라를 약화시키고 한나라를 보존하려는 한비의 속셈을 더욱 명확히 알았다.

한비가 진나라에 체류하며 유세할 때, 진왕은 그의 사상 주장에 대해 틀림없이 더욱 깊이 이해했을 것이다. 즉, 법치를 추앙하고 집권을 주장하는 동시에 나라에 이익을 준 백성에게는 후한 상을 주며 “법은 귀족을 봐주지 않는다(法不阿貴)”는 것을 강조하고, 군주가 법을 버리고 사사로이 처리하는 것을 반대하며, 심지어 “명군은 위에서 무위할 것(明君無爲于上)《한비자․주도(韓非子․主道)》”을 요구하고 또한 진왕이 혹독한 법치로 백성을 부리고 고도 집권을 빌어 사사로이 처리하려는 욕구에 찬성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따라서 진왕은 비록 그의 재능을 좋아했지만 “신임하지 않았다.” 진나라 통치자의 문인을 대하는 일관적인 태도는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에 맞으면 등용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맞지 않으면 버리는 것이었다. “교만하여 남을 믿지 못하던(怚而不信人)《사기․백기왕전열전(史記․白起王翦列傳)》에 기록된 왕전(王翦)의 말” 진왕 정은 더더욱 자신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자신에게 거역하는 자는 망하게 했다. 이사는 마침 진왕이 한비에게 진실한 태도로 대하는 것을 살피고 진왕이 마음속으로 미심쩍어하는 “결국 한나라를 위하지 진나라를 위하지 않으리라(非終爲韓不爲秦)”는 마음을 들춰내며 “예전의 방법으로 그를 처형할 것(以過法誅之)”을 건의했다.

“진왕은 그 말을 그럴 듯하게 여겨 관리에게 한비를 넘겨 처리하도록 했다.(秦王以爲然, 下吏治非)《사기․노자한비열전(史記․老子韓非列傳)》” 한비는 진리를 탐색하고 진리를 탐구하고 견지하던 학자였으며, 원칙을 버리고 아부하여 순조롭게 위로 올라간 정객(政客)이 아니었으므로 진왕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이용해 부귀영화를 얻는데 뛰어들지 않았고, 따라서 진나라에서 살해되는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그러나 《전국책․진책(戰國策․秦策)》에 기록하기를, 한비는 진왕이 요고(要賈)의 해명을 듣고 난 후 요고가 주살하라고 명령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사실 이사가 독약을 보내 자살하게 했건 아니면 요고가 주살했건 간에 한비가 살해된 가장 중요한 책임자는 여전히 진왕이다.

심층적인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분석해 보면, 한비의 죽음은 한비의 사상 주장이 진문화의 필요와 완전히 투합 될 수 없던 데서 온 필연적인 결과이며, 진문화의 배타성과 전제성이 극단적으로 발달했다는 충분한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상앙(商鞅), 순황(荀況), 이사(李斯), 한비(韓非)가 모두 진에 들어왔으나 상앙은 진왕의 의견에 영합하여 등용되었고 순황은 자신의 의견을 견지하여 떠나갔으며, 이사는 진왕에 영합하여 권세를 누렸고 한비는 자신의 의견을 견지하여 목숨을 잃었다.

진문화의 같은 것은 받아들이고 다른 것은 배척하는 이러한 특징은 그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으며, 갈수록 더욱 강렬해져서 마지막에는 극단적인 전제주의로 발전했다. 한비가 진나라에서 만난 불행은 그의 스승 순황보다 훨씬 비참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진문화가 극단적인 전제주의로 발전한 하나의 상징이다.

진나라 당시의 정치적 수요에서 보면, 한비를 제거한 것은 확실히 사상의 방해를 제거하고 전략의 인식을 바로잡고 통일하는데 잠재해 있던 병을 소멸시키며 6국 제후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일시적인 효과를 보았다. 이때부터 진나라는 굳건하게 이사의 계책을 따랐고, 군신이 한마음이 되어 상하가 힘을 합쳐, 수레를 몰아 동진(東進)하여 게으름 피우지 않고 분투해서, 그 짧은 20년 안에 잇달아 한나라를 얻고 위나라를 멸했으며, 초나라를 병합하고 조나라를 삼켰고, 연나라를 강점하고 제나라를 얻어 마침내 6국 연합을 소탕하고 4해를 포괄했다.  

진나라가 정식으로 6국을 병탄하고 천하통일의 전면전을 전개한 과정을 쭉 살펴 전체적인 전략의 계책과 중대 전역(戰役)의 지휘에 대해 말하자면, 어느 정도 진나라를 섬긴 초인 감무(感茂)가 그 서막을 열고 위염(魏冉)이 그 승세를 굳혔으며 이사(李斯)가 그 모든 공적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사가 진 왕조의 개국공신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진왕 정은 처음 천하를 병합하고 나서 스스로 득의양양하여 군신들에게 호칭을 논의하도록 명령했다. 이사 등은 그 뜻을 받들어 존경의 뜻으로 상고시대의 가장 고귀한 칭호인 ‘태황(泰皇)’을 올렸으나, 진왕 정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태(泰)’자를 없애고 ‘황(皇)’자를 취하고, 상고시대의 ‘제(帝)’라는 호칭을 채택하여 ‘황제(皇帝)’라고 칭하였다.(去‘泰’著‘皇’, 采上古‘帝’位號, 號曰‘皇帝’)《사기․진시황본기(史記․秦始皇本紀)》”

‘황제’로 스스로 칭하며 자신을 “시황제라 칭하고 후세에 그 수를 세어서 2대, 3대에서 만대에 이르기까지 길이 전해지도록 한 것(始皇帝, 後世以計數, 二世三世至于万世, 傳之無窮)《사기․진시황본기(史記․秦始皇本紀)》”은 그의 천하를 일인일가(一人一家)의 천하로 만들려는 사욕을 충분히 드러낸 것이며, 천하를 독재하려는 사욕을 충분히 표현한 것이다. 그 당시 진의 재상 여불위(呂不韋)는 그의 오늘과 같은 날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근심스런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천하는 한사람의 천하가 아니며 천하의 천하입니다.(天下非一人之天下也, 天下之天下也!)《여씨춘추․귀공(呂氏春秋․貴公)》” 진나라를 섬기는 위요(尉繚)도 명백히 예언했다. “진실로, 진왕이 천하를 얻는 뜻을 이루면 천하는 모두 노예가 될 것이다.(誠使秦王得志于天下, 天下皆爲虜矣!)《사기․진시황본기(史記․秦始皇本紀)》” 지금 그는 공공연히 천하의 ‘황제’로 스스로 칭하고 천하를 독재할 사욕으로 집권을 부추기고 다스렸다.

사적에 기록하길 그는 “직접 문장을 짓는 일을 행하고, 낮에는 소송사건을 판결하고 밤에는 문서를 처리하여 스스로 일을 결정하고 날마다 120근의 무게를 달아 읽었다.(躬操文墨, 昼斷獄, 夜理書, 自程決事, 日縣石之一)《한서․형법지(漢書․刑法志)》. 복건(服虔) 주(注): “縣은 무게를 다는 것이고, 石은 120근이다. 시황제가 읽어야할 문서가 하루에 120근 정도가 되었다.(縣,稱也.石,百二十斤也.始皇省讀文書,日以百二十斤爲程)”” 진 왕조는 “천하의 일이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모두 황제에 의해서 결정되니 황제가 읽어야 할 문서의 중량을 저울질해야 할 지경이며 밤낮으로 정량이 있어서 그 정량에 이르지 못하면 휴식을 할 수가 없으니 권세를 탐하는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天下之事無小大皆決于上, 上至以衡石量書, 日夜有呈, 不中呈不得休息, 貪于權勢之如此)”

진시황의 사람됨을 매우 잘 알고 그 욕구를 잘 살피는 이사는 자신의 사욕을 만족시키고 자신의 번영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연히 여불위의 결말을 본보기로 하여 더욱 전전긍긍하며 진시황을 섬겼다.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

왕부지의 이사(李斯)평가    
글쓴이 : 이윤화  조회 : 2,562    
왕부지의 『독통감론(讀通鑑論)』卷1  진시황(秦始皇) 이세(․二世)條 사론(史論)에 보이는 이사(李斯)평가

李斯는 일찍이 二世에게 말하기를 “현명한 군주는 당연히 인의의 속박을 없애야 하고 대신들의 諫爭하는 말들을 끊어야 하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구속받지 아니하고 분명히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현명하거나 어리석은 자를 막론하고 군주에게 이와 같이 말한 경우가 없었는데 李斯가 큰 소리로 거리낌없이 이야기하고 있으니 어찌 이러한 지경에 이른 것인가. 李斯는 일찍이 荀子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아울러 秦始皇과 더불어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계략을 의논하여 통일을 이루었다. 그런데 어찌 商 紂王의 아첨꾼이었던 飛廉․惡來 같은 사람도 차마 하지 못하던 말을 李斯는 거침없이 한 것인가. 설마 李斯가 확실하게 君主가 그렇게 여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겠는가. 만약 秦 2세 같이 어리석지 않더라도 곧 秦始皇 같은 교만 방자한 군주 역시 이 같은 말을 받아들이고 견책하지 않았겠는가. 혹 李斯가 생각하길 후세 천하가 자신을 禍를 주도한 사람으로 삼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아무런 염려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이 같은 원인은 모두 아니다. 원인은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실패를 근심하는 심리가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내몰았던 것이다.
李斯之對二世曰:⌈明主滅仁義之塗,絶諫爭之辯,犖然行恣睢之心.⌋盡古今槪賢不肖,無有忍言此者,而昌言之不忌.嗚呼!亦何至此哉!斯亦嘗學於荀卿氏矣,亦嘗與始皇謀天下而天下幷矣.豈其飛廉ˎ惡來之所不忍言者而言之不忌,斯之心其固以爲然乎?苟非二世之愚,卽始皇之驕悖,能受此言而不譴乎?斯抑謂天下後世之不以己爲戎首而無所恤乎?無他,畏死患失之心迫而有所不避耳.

무릇 죽음이란 것이 두려워 할 것이 아니고 실패 또한 근심할 것이 아니라면 왜 李斯는 하필 그런 잘못을 했겠는가. 앞에서 시작하면서 正道가 아닌 길을 가게 되면 뒤따른다해도 역시 功을 세워 自效할 수 없게 되며 후에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여도 적당한 계략이 없게 되고 물러나 스스로 있고자 하여도 적당한 방법이 없게 된다. 그리되면 반드시 실패가 걱정되고 죽음 또한 두렵게 되는 것이다.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찌 차마 하기 싫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함께 얻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반드시 죽어야 할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듯 요행만을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일찍이 뜻을 바르게 세우면 후일 마지못해 하는 바가 없게 되며 자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하지 않아도 될 말이나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일찍이 바르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게 되면 곧 필연적으로 실패와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일단 이 같은 지경에 이르게 되면 비록 이 같은 말을 하기 싫다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그리되면 처형당하기 전 아들들에게 했던 上蔡의 東門에서의 추억을 되살리며 탄식한 것을 기다릴 것도 없이 두려움에 肺肝이 먼저 自裂했을 것이다.(和案:『資治通鑑』 p. 278-280 참조 ) 李斯라고 하여 어찌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지니지 않았겠는가. 易에 이르기를 “서리를 밟고 걸어봐야 곧 엄동설한이 닥쳐옴을 안다(履霜堅冰至)”고 했으니 이로써 비유하여 사람들이 일을 함에 있어서 일찌감치 그 방비책을 세워 경계토록 하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결과를 보고 가리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가리는 것만 못한 것이다.
夫死亦何不可畏也.失不可患,而亦何必於失也.前所以自進者非其道,繼所以自效者非其功,後所以自保者非其術,退所以自置者無其方,則失果可患而死果可畏,欲無畏無患ˎ以不言其所不忍言,又奚得乎!天下無必死之塗,而亦無可幾幸之得.正志於早而後無所迫,則不忍不敢之心以全.早之不能圖度於正,迨其後失有形ˎ死有機,雖欲不爲此言而不得.不待上蔡東門之嘆,肺肝先已自裂.斯豈果無人之心哉?易曰:⌈履霜堅冰至.⌋辨人於早,不若自辨於早也.

(和案: 이 구절은 『資治通鑑』卷7 ⌈秦紀⌋3 二世皇帝 2年條에 대한 논평이다. 二世는 각지에서 반란이 더욱 기승을 부리자 여러 차례 李斯를 견책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사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爵祿을 중히 여기고 있었던 지라 결국 二世에게 아부할 수 밖에 없었다. (司馬光은 특히 이 부분을 강조함)그리하여 상소하여 응답하길 “현명한 군주는 반드시 신하에 대하여 능히 督責之術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申不害는 말하길,‘천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천하를 질곡으로 여긴다‘고 하는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고 신하에 대하여 督責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천하의 백성을 위하여 힘을 쓰는 것을 말한다. 즉 堯․禹가 그러하였다. 따라서 이를 ’桎梏‘이라 일렀다.’ 申不害․韓非의 高明한 法術을 익혀 督責之術을 시행함으로서 오로지 천하를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하여 백성을 위해 고생한다면 이는 마치 백성의 노복이 되는 것과 같아 천하를 통치하는 군왕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니 존숭하기에 족하지 않다.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능히 督責之術을 시행함으로서 위에서 독단해야 하고 이러한 권력이 신하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을 때 비로소 仁義를 시행하는 길을 막을 수 있고 諫說의 논변을 끊을 수 있고 자기 마음 스스로 하고 싶은대로 하여도 누구도 감히 어길 수 없는 것이다. 이리하면 群臣과 백성들이 자기의 과실을 구하려 하여도 할 수 없을진대 어찌 감히 변란을 꾀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어서 『資治通鑑』에는 二世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였고, 이 후 더욱 엄한 督責을 시행하고 백성으로부터 더욱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들인 자를 明吏라하고 많은 사람을 죽인 자를 忠臣이라 하여 결국 거리에 반은 刑을 받은 이요 죽은 사람의 시체가 거리에 쌓여 있어서 진의 백성은 더욱 두려움을 갖게되고 反亂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資治通鑑』 p.267) 이하 二世 三에서도 이와 관련한 논평이 전개되고 있다)  (和案: 李斯의 평가와 관련하여서는 田靜,⌈司馬遷筆下的李斯⌋,  『司馬遷與史記論集』,陝西人民出版社, 1995, pp.533 참조할 것)      

                         三. 李斯肄責之術導諛勸淫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노하더라도 범할 수 없고 뭇 사람에게 원망을 받는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그러나 申不害와 商鞅의 말은 어찌 지금에 와서도 단절되지 아니하고 있는가. 뜻이 바르고 義가 분명한 것은 예컨대 제갈량이 그 좋은 모범이 되었고, 학식과 의지가 두루 넓은 것은 예컨대 王安石이 그 의도를 본받았다. 그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申不害와 商鞅의 사상으로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잠시 힘들더라도 오랜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계책을 펼 수 있었기 때문이다. 申․商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다만 그들의 계책만을 이용한 사람은 제갈량이었고, 그들의 실질을 이용하면서도 이름을 회피한 사람은 왕안석이었다. 그러나 李斯는 조금도 숨기거나 꾸미지 않고 그것을 더욱 드러나게 하였다. 李斯는 말하기를 “군주가 신하에게 대하여 매우 엄한 督責의 방법을 시행하면  諫爭의 길을 막을 수 있다”고 하였고, 申不害는 말하기를 “군주에게 천하가 있으나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명하여 천하를 桎梏으로 여긴다는 것이다”하였으니, 신하의 諫爭을 끊고 질곡을 벗어나게 되면 군주는 그저 매일 刑名의 문건을 처리하는데 골몰하지만 아울러 주색과 游樂에 빠져 줄곧 그것을 즐기며 지내게 된다. 향락을 잊지 못하는 군주에 대하여 말하자면 어찌 이것을 兩得의 계책으로 쓰지 않겠는가.
人皆有不忍人之心,而衆怒之不可犯,衆怨之不可任,亦易喩矣.申ˎ商之言,何爲至今而不絶邪?志正義明如諸葛孔明而效其法,學博志廣如王介甫而師其意,無他,申ˎ商者,乍勞長逸之術也.無其心而用其術者,孔明也;用其實而諱其名者,介甫也;乃若其不容掩之藏,則李斯發之矣.李斯曰:⌈行督責之術,然後絶諫爭之路.⌋申不害曰:⌈有天下而不恣睢,命之曰以天下爲桎梏.⌋諫爭絶,桎梏脫,則雖日勞於刑名文籍之中,而眈酒嗜色ˎ佚游驕樂,可晏享而不輟.苟未忘逸豫之情者,惡能不以此爲兩得之術哉!

엄한 법을 집행하여 나라를 다스리면 군주는 편안하지만 천하는 고통을 받게 된다. 道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천하는 편안해지지만 군주는 많은 힘이 들게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계략이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천하의 안정된 통치를 추구하는 군주가 아니더라도 편안히 만민의 위에 자리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제갈량은 욕심 없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정사에 임하였고 왕안석은 꾸밈없고 好學深思하면서도 名法을 기꺼이 받든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견문을 통해 검소하고 부지런함으로서 내심 편안함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어진 사람이 이럴진대 하물며 唐의 令狐綯이나 明의 張居正처럼 권세를 쥐고 있던 사람들이야 어떠했겠는가. 만약 그들이 李斯의 말을 읽고 그 말이 아첨과 음란함을 가져오게 한 것 인줄 알았더라면 면목이 없어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任法,則人主安而天下困;任道,則天下逸而人主勞.無一切之術以自恣睢,雖非求治之主,不能高居洸瀁於萬民之上,固矣.以孔明之淡泊而盡瘁也,以介甫之土木其形而好學深思也,然且樂奉名法者,何也?儉以耳目.勤以耳目,而心思從其康逸也.賢者且然,況令狐綯ˎ張居正之挾權勢者哉!使讀李斯之言,知其爲導諛勸淫之術也,能勿靦然而汗下與?
http://www.chinahistorio.com/bbs/board.php?bo_table=wangbugi02&wr_id=4


독이사전(讀李斯傳)-이업(李鄴)
고문진보/오언고풍단편(五言古風短篇) 2012/06/19 20:59 파우스트
欺暗常不然 (기암상불연)어늘
欺明當自戮 (기명당자륙)이라
難將一人手 (난장일인수)하야
掩得天下目 (엄득천하목)이라

※ 暗 謂人所不知而已獨知之者
※ 明 謂人所皆知之者

어둠을 속이는 것도 오히려 그렇지 못한데
밝음을 속이니 마땅히 제손으로 죽어야 하지
어렵도다! 장차 한사람 손으로
천하의 눈들을 가림이야

斯는 楚人이니 入秦相始皇하야 罷侯置守하고 焚詩書峻刑法하니 天下怨毒이라 始皇死에 不發喪하고 矯詔殺太子扶蘇하고 立胡亥러니 天下大亂에 斯夷三族하니라

이사는 초나라 사람인데 진나라에 들어가 진시황을 도와서, 제후를 파하고 수령을 두고, 시와 서를 불태우고 형법을 준엄하게 하니, 천하 사람들이 원망하고 해독으로 여겼다. 진시황이 죽자, 상을 발하지 않고, 조칙을 위조하여 태자 부소를 죽이고, 호해를 세웠는데,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이사는 삼족이 멸되었다.

謂李斯壅蔽以欺其君하야 自取刑禍하니 能欺天下니라

이르되, 이사가 눈을 막고 귀를 가려 써 군주를 속여서, 스스로 형화를 입었으니, 능히 천하를 속였다,는 것이다.

[참조]

이업은 당나라 때 시인이다. 당예종의 아들이며, 할아버지는 당고종이며 할머니는 측천무후이다. 당현종의 동생이니, 양귀비를 형수로 두었었다. (출처:인터넷)http://blog.ohmynews.com/worldandme/470921

정치가 청명하면..
http://blog.ohmynews.com/syung/365975








N   한겨레 비난한 글을 읽고-이승만 동상 국회건립과 세종로 충무공자리 및 (당시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남산 81척(56년 이승만 81회 생일을 기념) 동상   안원전    2003/03/06  16910
N   안원전의 21세기 담론.한나라당 조중동의 노무현욕은 민주주의의 업그레이드 상으로 증정하는 꽃다발같은 것   안원전    2007/01/27  13707
N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사천성 성도에 있는 전촉왕 왕건의 영릉은 고려개국왕 왕건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안원전    2008/06/16  14434
N   참고;5월들어 글을 못올리고 있는 이유(삭제예정) [17]   안원전    2004/05/19  14722
N   필리핀의 가장 위대한 영웅 호세 리잘을 대하고(2005.12.중순)   안원전    2006/02/22  17759
N   상고사학회에 올려져 있는 안원전 선생님의 글을 인용 소개합니다(송준희)   안원전    2006/01/12  14113
N   담론195. 당황실의 미스테리-황제헌원,진시황,주문왕,요,순,우,백이와 같은 동이족 혈통3   안원전    2002/11/20  16915
N   담론194.당황실의 미스테리-황제헌원, 진시황, 주문왕, 요,순,우,백이와 같은 동이족 혈통2   안원전    2002/11/20  16086
N   담론 193.당황실의 미스테리-황제헌원, 진시황, 주문왕, 요,순,우,백이와 같은 동이족 혈통1   안원전    2002/11/20  18379
N   "푸코의 진자"라는 책을 보고 프리메이슨에 대해 쉬운 설명 부탁드립니다."에 대한 답변 [1]   안원전    2005/01/10  20804
N   특집기획. 웅장한 동이 대륙사 홍산문화(紅山文化) 대문구(大汶口) 문화 및 용산(龍山)문화의 놀라운 고고학적 실체 국내 최초 완전 공개! [4]   안원전    2003/05/12  18657
N   담론 특별기획, 속 장량의 미스테리-공명지정대와 자방지종용&한신의 미스테리, 유방이 한신을 버린 것인가 한신이 유방을 배신한 것인가.   안원전    2002/08/26  9987
N   담론 특별기획 장량의 미스테리를 파헤친다.장량은 어디로 갔는가? 또 왜 한의 조정을 떠났는가?   안원전    2002/08/23  9766
N   담론 특별기획, 황제의 동이족 부인 누조(女+累,祖)의 양잠(養蠶) 고사와 양잠시조 동이족 조상 태호복희 천제   안원전    2002/09/16  8902
N   담론 특별기획, 잠사기원 속편-동이족의 주 전공 잠사의 개관   안원전    2002/10/01  7697
N   담론 특별기획 동이족의 영적문서를 빌어다가 개찬한 공자의 소작-나를 아는 자도 오직 「춘추(春秋)」요, 나를 죄줄 자도 그 오직 「춘추(春秋)」다   안원전    2002/10/30  8622
N   동이 대륙상고사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안원전) 2002.8.16   안원전    2003/04/15  12311
432    안원전의 담론 391.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7 -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3부   안원전    2013/11/17  4030
431     안원전의 담론 390. NHK ‘료마전’의 료마와 요시다쇼인(吉田松陰)   안원전    2013/09/15  4266
   안원전의 담론 389.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6 -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2부   안원전    2013/03/29  3973
429    *(특집)안원전의 담론 388. 대한민국 한류 디자인-대한민국을 새로 디자인하라!!   안원전    2012/09/07  4045
428   비밀글입니다  안원전의 담론 387.   안원전    2011/07/26  213
427    안원전의 담론 386.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5-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1부   안원전    2011/07/04  5665
426    안원전의 담론 385.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4-진나라 제왕의 위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위염(魏冉)   안원전    2011/06/07  4569
42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384. (漢字의 秘密) 한자(漢字)의 주인은 한겨레 韓민족이다.   안원전    2011/06/01  6559
424     안원전 담론 383. 소통(疏通)에 대하여   안원전    2011/05/24  2830
423    안원전 담론 382.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3-초인이 진나라를 섬기던 역사의 공헌 및 통일전쟁의 서막을 올린 감무(甘茂)   안원전    2011/05/17  3278
422    안원전 담론 381.약초를 널리 보급하여 질병을 치료한 다릉(茶陵:차릉)의 ‘세 가지 보물(三寶)’   안원전    2011/05/11  2958
421    안원전의 담론 380. 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 2   안원전    2011/05/09  2633
420    안원전의 담론 379.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1   안원전    2011/05/09  2720
419    안원전의 담론 378.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2- “진나라가 망하고 초나라가 보전되는(亡秦必楚)”의 문화 운명   안원전    2011/05/03  2575
418    안원전 담론 377.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1-초나라가 갑자기 쇠퇴한 원인은 음란과 방탕 그리고 모든 통치계급의 부패와 문란   안원전    2011/04/30  2516
417    동이 대륙상고사 답사를 마치고2(2002) 續원고   안원전    2011/04/30  2509
416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6. 거영신(巨靈神: 강의 신)   안원전    2011/01/10  2989
415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5. 황하(黃河)의 수신(水神) 하백(河伯)   안원전    2011/01/05  3554
1 [2][3][4][5][6][7][8][9][10]..[13] [NEXT]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Cheram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