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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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담론20. 무장항쟁주의 김구의 상해임정의 외교승리인 카이로 선언과 이승만 외교노선의 허황됨


독립 외교노선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식민지 제국시대의 첫 장을 열던 구한말로   이미 증명된 바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같은 제국주의 시대의 연장선 위에서 이미 식민지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나라를 독립시키기 위해 외교론을 들고 나온 이 승만을 옳다고 여길 학자는 아무도 없다.

일본의 힘을 빌려 개혁을 하려했던 개화주의자 김 옥균이 일으킨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자, 그토록 믿었던 일본마저 등을 돌려 옥균은 소위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어 천하를 유랑하다 비참하게 유인 암살 당해 시신마저 저자거리에 확인,효수 당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갑신정변 실패후, 일본이 나 살려라 하고 꽁지를 감추며 인천을 떠나갈 즈음 억지춘향으로 나도 좀 살려주소 하는 애걸복걸 신세가 되어 마지못해 일본의 천세환 호의 배 밑창에 개구리 신세가 되어 일본 근대화의 대부 후꾸자와의 집에 머물러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일본 조야로부터 버림받은 몸으로, 일본이 조선정부로부터 유리한 조약을 얻어내는 대가로 조선정부의 김 옥균 암살을 묵인한 사실을 모른 채 싸구려 여관신세로 전락하면서 마침내는 남해의 고도 오가사와라에 강제 추방되었다가 다시 수 년 뒤 홋카이도에 강제 추방된 끝에 고종이 밀파한 한국 최초의 빠리 유학생 홍 종우에게 상해로 유인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일본에 의해서도 강제 추방된 그는 하루에도 수없이 외세를 믿고 조정을 개혁하려 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으며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나를 뼈저리게 되뇌였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 옥균의 몰락과 비참한 최후 및 대한제국의 몰락과정은 제국주의 시대에 외세의존주의가 초래한 개인적, 국가적 비극의 한 전형으로 외교 독립론에게 던지는 산 교훈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구한말 고종을 위시한 고위 관료들이 벌인 헤이그 고종 밀사사건 같은 독립 외교론의 실패와 이 승만이 상해 임정을 업고 무장항쟁파 중심의 독립운동가들을 몰아내고 벌인 독립 외교론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봉창, 윤 봉길 의사와 이를 진두지휘한 김 구 선생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안 중근 의사는 대한의군 참모 중장의 신분으로 동양 평화론을 외치며 민족의 이름으로 이등박문을 사살했던 것이며, "간도 독립군", 일천 구백 삼 사십 년대 초반의 "조선 혁명군"과 장백산의 "항일 무장군",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무장독립운동의 주류는 일천 구백 이십 년대 "의열단 "과 "다물단" 그리고 일천 구백 삼십 년대의 "애국단"과 함께 무장 독립운동의 구심점을 이루었던 것이다.

심지어 "의열단"을 이끌던 김 원봉은 일제의 침략으로 조선인은 전체적으로 무산자화 되었고, 일제하에 조선의 발전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민족해방운동은 일본 유산자에 대한 조선 무산자들의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여 민족 개조론이나 개량주의 또는 타협적 점진주의를 배격하고 일체의 외교론을 도외시했다.

단재가 독립운동에 있어 무장항쟁주의의 사상적 정통성을 쥐고 있었다면 의열단을 비롯한 만주의 모든 무장항쟁주의자와 상해의 김구는 그의 사상을 현실화시켜 나아간 애국적 실천가들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백암 박 은식도 "외국과의 교제는 좋지만 외국에 의부(依附:의탁해 기댐)해서는 안되며 외국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좋지만 절대 세력을 빌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무력 항쟁주의 노선을 천명했던 것이며 한말의 대표적 번역 사학자 현 채도 <미국 독립사>에서 "우리 나라가 독립의 이름은 있으되, 독립의 실상이 없는 까닭은 남에게 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독립 외교론을 경계했다.

오죽하면 외세를 이용한 독립이 열강들의 제국주의 속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백범 김 구 선생이 "유생들은 주자의 방귀까지 향기롭다고 여겼고, 사회주의자들은 레닌의 똥까지 달다고 한다. 주자도 좋고 마르크스도 좋으나 항상 자기를 잊지 말자.

우리의 역사와 민족성과 환경에 맞는 나라를 생각하자."고 하면서 <한인 애국단>을 결성해 이 봉창 의거, 윤 봉길 의거를 몸소 진두지휘하며 무장항쟁주의만이 독립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겠는가.

필자는 20 여 년 전 읽고 감동을 받았던 <백범일지>를 20 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으면서 민족혼이란 역시 이래야 한다고 다시 한번 반추해 본다. 비감 어린 윤 봉길 열사의 민족혼과 특히 말로 형용키 어려운 뜨거운 조국애를 지닌 열혈남아 이 봉창 열사의 준비과정은 다 떨어진 거지 털랭이 옷을 걸친 채 이 교포 저 교포한테 문전걸식하면서도 독립을 위한 초지일관된 혈심으로 무장된 김 구 선생의 일편단심과 함께 영화 <새벽의 7인>이나 <쉰들러 리스트> 이상의 눈물어린 뜨거운 감동을 주었었다.

한국 독립 운동사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한 가장 결정적인 카이로 선언을 이끌어 낸 것은 정작 외교지상주의자 이 승만의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무장항쟁주의 노선을 견지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교의 승리였다.

이러한 외교적 승리는  실로 이 승만 외교노선의 허황됨과 함께 임정의 무장항쟁주의자 김구가 같은 노선을 걸었던 장 개석을 설득시켜 이루어 낸 열매로 이 승만에 비교하면 무장항쟁주의와 외교지상주의 사이에 만들어진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의  임시정부를 전공한 국내외 8명의 학자가 연구논문을 발표한 보도 내용은 학계가 이제서야 이런 입장을 반영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독립 보장은 임정 외교 노력 때문”
독립운동의 중추적 위치에 서 있던 임시정부는 당시 한반도 정세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중국, 소련, 미국 등 열강과 밀접한 국제관계 속에 서 적극적으로 독립의 방도를 모색했다. 선언적이나마 카이로 선언에 서 한국 독립이 보장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외교적 노력의 결 실이었다.” 그 동안 학계로부터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 국제적 위상과 국외 독립운동’에 관한 입체적인 연구 논문들이 쏟 아져 나왔다. 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을 기념, 지난 4월 8~9일 세종문화 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를 통해서였다.
이번 세미나엔 임시정부를 전공한 국내외 8명의 학자가 연구논문을 발 표하고 또 다른 8명의 소장파 학자가 중심이 돼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청중 가운데는 고희(古稀)를 넘긴 광복회 회원 등이 적지 않아 여느 세미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첫날, 서울대 신용하 교수는 미·영·소 열강으로부터 한국 독립을 보 장받을 수 있었던 바탕에는 중국의 지원과 더불어 임시정부의 완강한 투쟁과 외교활동이 뒷받침됐다고 주장했다. 대만국립정치대 호춘혜 교 수는 중국의 입장에서 임시정부와 중국의 상호의존관계를 시대 변화에 따라 설명했고 재미학자 방선주 교수는 유고슬라비아, 체코, 폴란드의 망명정부와 임시정부를 비교, “한국 임시정부는 미주에 ‘국민’을 소유하고 있었던 ‘나라’였다”고 정의했다
최근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 중인 만주 독립군과 임시정부의 역학관계 는 둘째날, 원로학자인 인하대 윤병석 교수에 의해 규명됐다. 윤 교수 는 임시정부 수립을 전후해 서북간도를 중심으로 한 만주지역에는 약 70여 개의 독립군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나 이들 대부분은 임시정 부의 권위를 인정하고 지지했으며 또한 이 단체들에 임시정부의 통솔 력이 미쳤다고 발표했다. 이밖에 임정의 변천사를 중심으로 한 임정과 중국 본토지역 독립운동 세력의 역학관계는 김희곤 안동대 교수가, 독립운동사 연구의 중요한 과제인 독립운동자금의 실체는 포항공대 고정휴 교수가 정밀하게 추 적, 그 동안 산발적으로 거론되던 독립운동자금 연구의 교두보를 마련 했다.
“최근 러시아의 기밀문서 등이 잇따라 공개돼 일제의 관헌자료에 의 존했던 독립운동사 연구가 새로운 차원을 맞고 있습니다.” 정부기록 보존소 전현수 박사는 “앞으로도 임시정부와 관련, 주목할 만한 연구 가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연 기자) 원문확인click here!


'카이로 선언' 속의 한국 독립에 대한 언급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대한민국의 운명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임시정부의 찬란한 외교적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요청에 의해 1943년 7월 26일  김 구 주석을 포함 홍진(洪震), 조 소앙(趙素昻), 김 규식(金奎植), 김 원봉(金元鳳) 등 임정요인은 중국 국민당 수뇌 군사위원장 장 개석을 회견하고 "한국은 전후(戰後)에 독립될 것이며, 이것은 중국정부의 결정된 정책"이라는 약속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장개석은 카이로 선언에 당면해 영국 측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하여 전후 한국독립에 대한 언급을 확실히 명문화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장개석 총통은 동부인한 채 1943년 11월 18일 중경을 출발해 21일 카이로에 도착,

23일부터 26일까지 열린 회담에서 루즈벨트 대통령 및 처칠 수상과 회담하면서 영국 외무차관 알렉산더 캐도건(Cadogan)의 선언서 내 한국독립 명문화 반대를 일축시키고 만찬회담에서 루즈벨트를 설득 마침내

"중국, 영국 및 미국은 전후에 한국의 독립 승인에 마땅히 합의해야 한다. 한국 독립 승인에 관한 본 합의에 소련이 동참하는 것은 어느 때나 환영한다"라는 명문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7-8억을 가진 중국인민도 일본 제국주의에 어육지경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안 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사살에 이어 김구에 의한 윤 봉길 열사 의거와 이봉창 열사 의거를 보고 한국인의 열혈 애국심에 감복한 장개석이 김 구 주석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굳이 상해 임정시절 이 승만이 단재 신 채호, 백암 박 은식, 심산 김 창숙, 우성 박 용만, 도산 안 창호 등 대부분의 독립운동가에 의해 매국노로 지탄받고 끝내 상해임정에 의해 탄핵받아 대통령 직에서 쫓겨난 사실을 차치한다 해도 이 승만 시절에는 제도적, 구조적 언론 탄압이 없었으며 한술 더 떠 언론이 가장 자유롭던 때였으므로 이 승만이 독재자가 아니라는 풋내기 간필(奸筆) 조선일보 이 한우 기자의 주장은 역사관 부재와 무지를 떠나 얼마나 사회의 공인으로서 무책임하고 치졸한 주장을 한 것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고 굳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그는 해방 후 이승만의 반공 이데올로기 우산의 혜택으로 덕을 본 일제 하 친일 매국노 집안 출신이거나 왜곡되고 짓이겨진 근대사의 파행 사를 비집고 들어가 민족혼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하는 또 하나의 피라미 사적(史賊)에 다름 아니다.  

김 성수, 방 응모의 입장으로 보아도 당시 제일 서슬이 퍼렇게 칼날을 들고 이제나저제나 자신들을 눈 부릅뜨고 지켜보던 『반민특위』를 대통령 강권으로 해산시킨 것은 물론, 따뜻한 권력외투 안으로 그 동안 일제 천황에게 향했던 충성을 싸안아 가려 준 결초보은의 은인에게 비판을 가한다는 것은 천만부당한 일이며 일제 잔재청산의 살벌한 당시 분위기 속에 오직 기댈 곳이 이 승만 밖에 없는 그들이 충성을 다짐하면서 품속으로 파고드는 상황에서 그들을 탄압한다는 것은 실로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이 승만 정권 시절 내내 반공 이데올로기의 치마 아래서 서로 엉덩이를 두들겨 주며 호시절을 보낸 것이다. 이런 찰떡 궁합의 관계가 서로 헐뜯고 탄압한다고? 또 탄압을 안 해서 독재자가 아니라고? 오히려 결초보은을 해도 모자랄 조선, 동아는 마땅히 자자손손 이승만 높이 세우기를 하며 경배하지 않으면 그나마 세인들에게 의리마저 없다는 소리마저 듣게 될지도 모른다.

장자가 말하기를 만일 착하지 못한 일을 해서 세상에 이름을 낸 자는 비록 사람이 해하지 못한다 해도 하늘이 반드시 도륙한다 했고(天必戮之), 공자는 획죄어천(獲罪於天)하여 하늘에 죄를 지으면 무소도(無所禱)라 해서 빌 곳조차 없다고 했다. 어두운 방에서 남을 속이고 역사를 기만할 수는 있어도 귀신의 눈은 번개와 같아 춘추필법의 역사 혼은 역사를 기만하고 속이려 한 그 마음까지 드러내어 반드시 단죄해 바로잡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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