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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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담론28. 성균관대 초대 총장 심산 김창숙의 이승만 비판과 이승만 동상건립
  
                                                   
 심산 김 창숙이라는 애국선혈이 한 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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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숙 金昌淑 1879∼1962 유학자·독립 운동가. 호는 심산(心山)이다.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워 문장에 뛰어났다.  곽종석과 이승희에게 수학하였다. 조국독립과 반외세, 반분단, 민주주의 수호 운동에  앞장선 유림출신 민족운동가이자 성균관대 설립자. 선생은 1879년 음력 7월 10일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사월리에서 부친 김호림(金頀林)과 모친 인동(仁同) 장씨(張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양친으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으며 16세 때에는 부친으로부터 노비해방과 계급타파 등에 관한 가르침을 받고 새로운 국가관을 갖게 되었다.
   1905년 매국오적을 성토하고  영남 유학자인 이승희(李承熙)와 함께 서울로 가서 조약에 참가한 을사5적을 목벨 것을 상소하였다. 하지만 광무황제(고종)의 회답이 없자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통곡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합일합방 때에는  '한일합방론'을 제창한 매국노 송병준(宋秉畯).이용구(李容九) 등을 성토하는 건의서를 중추원에 제출 토역(討逆)하였다. 1910년 초에는 향리의 청천서당(晴川書堂)에 사립 성명학교(星明學校)를 세워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고투에도 불구하고 1910년 나라가 일제 침략하에 들어가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음주로 세월을 보내다가 모친의 교훈에 따라 각종 경서와 서적을 섭렵하는 등 학문에 매진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3.1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영남 및 충청도 유림을 규합하여 137명의 연명으로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유림단의 진정서를 작성하여 휴대하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우편으로 우송하였다. 그 해 4월 임시 정부 의정원이 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내부의 파쟁조정에도 힘썼으며,  1924년에는 만주와 몽고 접경지대에 황무지를 빌려 개간한 후에 새로운 독립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추진하였으며 1925년에는 그곳에 군정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와 독립운동자금 모금을 전개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후 선생은 항일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수차에 걸쳐 수감생활을 하고 혹독한 고문을 받기도 하였으나 옥중에서도 투쟁을 계속하여 일제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 의연한 자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감옥에서 나온 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신채호 등과 함께 독립 운동지 <천고>와 <사민일보>를 만드는 한편 '서로군'을 조직, 쑨원(孫文)과 교섭하여 운동 자금을 원조받기도 하였다. 단재 신채호 등 민족주의자들과 이승만을 매국노로 규정 탄핵한 후, 1925년 임시 정부 의정원 부의장에 당선된 후 일본 관헌에게 체포 압송되어 고문 받던 중 두 다리 마비로 형 집행정지를 받아 출옥하였다. 출옥 뒤에도 창씨개명을 거부하였고 다시 대전 형무소에서 복역 중 광복을 맞았다. 해방이 되자 선생은 신탁통치 반대투쟁과 남한만의 단독선거 반대투쟁을 주도하였으며,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맡기도 하였다. 한때 민주의원의 의원에 선출되었으나 정치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육영사업에 힘썼다. 그리하여  광복 후에는 1946년 9월 유림의 지원을 토대로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을 맡아 교육운동에 투신하고  1946년 유도회 총본부위원장으로 선출되고, 성균관장을 겸임하였으며 이승만의 부정과 부패에 항거하다 모든 공직에서 추방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이후 부패한 이승만 정권과 이승만 독재주의 반대 운동을 벌여 싸우면서 유교계를 이끌어 나갔다.  대한 민국 건국 공로 훈장 중장(지금의 건국 훈장 대한 민국장)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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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김 수환 추기경이 참배하면서 큰절을 올렸다고 신문에 보도된 바 있는 이 사람은 독립운동을 하다 일경에게 잡혀 모진 고문 끝에 앉은뱅이가 된 애국자이다.

성균관대 출신은 모두 잘 알고 있겠지만 그는 해방 후 미국노 매국 배 이 승만이 정권을 잡자 망연자실해 교육에 매두몰신하려고 1953년 전국의 향교재단을 규합해 성균관 대학을 인가 받고 초대 총장에 취임했다가 이승만의 정치보복으로 총장직에서 쫓겨난 애국자이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불리는 그는 일찍이 3.1 운동 뒤 '제 1차 유림단 사건'의 원인이 된 「파리장서(134명의 유림대표 서명)」를 작성한 바 있으며, 상해 임시정부를 만드는데 참여하기도 했고, 김 구가 윤 봉길, 이 봉창 사건을 배후 조종해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 때 <의열단원> 나 석주를 시켜 동양 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게 한 장본인으로 나 석주 의거 자금을 모으기 위해 일제의 감시망을 뚫고 단신으로 압록강을 건너 국내에 잠입하기도 한 열혈 무장 항쟁주의자였다.

김 창숙은 신 채호, 박 은식과 함께 이 승만의 독단행위를 규탄하는 내용의 성토문을 내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이 박사가 스스로 조선민족 대표라 일컬으면서 미국의 노예 되기를 원했음은 그 광복 운동 사상에 치욕 됨이 크다. 이것은 방치할 일이 아니므로 문책하지 않을 수 없다."(『벽옹 73년 회상기』)

고 통박하기도 했으며 1946년 민주의원 사회를 맡은 이 승만에 대해

"슬프다. 저 이 승만이라는 자는 미국에 아첨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독재 정치를 하려는 수법의 징조를 여기서 보겠구나. 국가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이니 통탄할 일이다."

라며 통분해 했다.

정부수립 후 이승만의 실정(失政)이 도를 더하는 가운데 6.25가 터지고 국민 방위군 사건이 벌어져 수십만 장병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죽어갔다. 서울을 사수한다고 국민을 감쪽같이 속이고 부산으로 내 뺀 이승만은 부산 임시수도에서도 국난극복과 국민안위보다는 권력유지에만 연연해 온갖 권모술수를 다 부렸다.

이에  김 창숙은 1951년 이 승만 하야 경고문을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정치보복을 당해 부산 형무소에 구금되었다.

이 승만이 이 기붕과 함께 정치사기 행각을 하며 부정부패가 극에 달리자 그는 1956년 신 익희 , 조 봉암과 합작해 평화적 정권교체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신 익희의 돌연사로 물거품이 되기도 했다.

1958년 12월에 이승만은 4선 재집권을 위해 국회에서 경위권을 발동하여 자유당 단독으로 2.4 보안법 파동을 일으키면서 야당과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신 국가보안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이에 김 창숙은 경찰국가로 전락시킨 이 승만에게 하야하라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남들 피 흘리고 싸울 때 외국 여자하고 놀다 온 게 무슨 대통령이냐"며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물론 4.19 혁명후 대법원에 승소함으로써 이 승만의 박해에 의해 더럽혀진 그의 모든 명예는 무죄로 회복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역사는 김 창숙 무죄, 이 승만 유죄로 준엄하게 판결 내렸다.
  
전 두환, 노 태우, 김 영삼 등 가난하고 불쌍한 백성들의 국록을 도둑질하고 국가재정을 파산시킨 예 등을 지켜본 지금의 시민들은 대통령직이 위에서 백성을 희롱하고 억압하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라는 것을 이제서야 참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깨달았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지만 만일 상해 임정의 정통성이 있는 김구나 단재 신 채호 또는 박 은식(임정 대통령 역임)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민족사를 바로잡고 일제잔재 청산을 하여 민족정기 하나는 확실히 바로 잡았을 것이며 오늘날 사회 곳곳에 널려있는 이기적인 인간이 양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구는 해방후 미군정에 의해 원천 배제되었고 신채호나 박은식은 해방 전 타계했다. 사회정의에 대한 건국정부의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지지 않은 원죄 아닌 원죄로 민족의식이 좀 슬어 시민의식이 이기적으로 변한 것이다.

프랑스 빠리 앵발리드 전사박물관 서관 2 층엘 가면 2차 대전 중 드골을 비롯해 독립운동을 한 레지스땅스들에 대한 자료 전시관이 있다. 이 곳에는 드골을 비롯 프랑스의 자랑스런 독립운동가들의 유품, 사진 등이  독일인들의 낙서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는 무장항쟁 민족주의자 드골이 집권했기 때문에 과감하게 200 만 명을 대대적으로 숙청해 사회기강이 바로 잡히고 사회정의가 일사분란하게 잡혀있다.

비록 왕조 도시인 빠리의 거리가 서울보다 좁아도 어지간해서 끼어 들기, 새치기를 보기 어려우며 막히지도 않는다. 설혹 독일에 의해 재차 점령되는 불상사가 있어도 해방이 되면 중형으로 처벌된다는 것을 전례로 경험했기 때문에 함부로 처신하기는 매우 어려울 터이다.

그러나 일제잔재 청산을 안한 한국은 이와 반대로  새로운 권력자 밑에 고개 숙이고 있으면 만사 오케이라는 역사적 관례를 해방 이후로부터 수많은 파행적인 정치사를 통해 보아왔기 때문에 시세에 기민하고 시류에 영합하는 약싹 빠르고 치졸한 인간군상만 양산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인 인간들이 또 다시 북한이나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면 일본의 주구로 변해 동족을 괴롭히거나 6.25 때 그랬던 것처럼 붉은 완장 둘러메고 동족을 학살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에서는 전후청산이라는 확실한 전례를 만들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그 같은 비극이 일어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

그런 면에서 동상하나 세울 수 없는 아니 세워서는 절대 안 되는 건국 대통령 이 승만을 둔 대한민국과 전후 청산을 깨끗이 해 전 국민의 추앙을 영원히 받는 대통령 드골을 둔 프랑스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그리하여 이 승만처럼 동상건립 하나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빠리의 관문인 세계적인 공항이름까지 드골 공항이라 할 수 있었던 프랑스는 우리에게 얼마나 부러운 나라인가. 박정희 공항은 만들 수 있어도 그 누구도 4.19 정신인, 반 이승만 정신을 담은 헌법정신으로 이 승만 공항이라 이름 지울 순 없을 것이다.

     '어린왕자'의 작가 앙뜨완느 드 생떽쥐뻬리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2000년 6월 29일 고향인 리용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는데 거리이름을 앙뜨완느 드 생떽쥐뻬리 거리로 명명함과 동시, 동상 제막식을 갖고, 70년대에 문을 연 '사톨라스' 공항을 '리용- 생떽쥐뻬리' 공항으로 재 명명하는 행사를 가졌다.

사고의 폭이 다양하고 패러다임이 다양한 그들 프랑스가 아니면 우리로선 엄두도 못 낼 행사임에 틀림없다. 그 뿐이 아니다. 세계적인 비틀즈의 탄생지인 영국의 리버풀 시는 '리버풀 공항'을 2002년 초부터 비틀즈 탄생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존 레넌' 공항으로 이름을 바꾸어 부르기로 최종 확정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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