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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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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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22.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작자는 손무(孫武)인가?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작자는 손무(孫武)인가?










《손자병법(孫子兵法)》은 보통 《손자(孫子)》라고 칭하며 《오손자병법(吳孫子兵法)》이라고도 한다. 일찍이 중외 인사들이 병서의 비조(鼻祖)로 삼았으며 춘추(春秋)시기 오(吳)나라 장수 손무(孫武)가 편찬한 것이라 전해진다. 이는 중국고대에 군사가가 반드시 읽어야 할 병법의 경전에 해당하는 저작이다.

송대(宋代)에 정부에서 정한 군사 교과서인 《무경칠서(武經七書)》 중 첫째로 꼽힌다. 무릇 병역에 복무하고 군사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손자》를 숙독하여 시험에 합격하여야만 무관직을 얻을 수 있었다. 《손자》가 서양으로 전해진 것도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나폴레옹이 워터루 전쟁에 실패한 후 이 책을 보고 무릎을 치며 감탄하고 일찍 이 책을 읽었더라면 실패를 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후회했다고 한다. 오늘날 일본과 서양의 기업가 중 《손자》를 유용하여 공상기업을 경영하는 자들이 저마다 기이한 공훈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손자》의 작자가 누구인지, 오나라의 장군 손무가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한 차례 논쟁이 있었다. 전국시대의 제자서인 《상군서(商君書)》, 《한비자(韓非子)》 등은 모두 “손 오의 서적(孫吳之書)”를 언급한 바 있는데,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손자병법》과 《오자병법(吳子兵法)》이지만, 작자가 손무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한대(漢代)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손무열전(史記 孫武列傳)》에서야 정식으로 손무의 사적을 기록하면서 《손자》‘13편’이 손무의 저작임을 명확히 말했고, 손무가 이 13편의 병법을 가지고 오나라 왕을 배알하여 모든 군대를 정돈하고 군비를 정비하는 것을 도와 부국강병하고 서쪽으로는 강초(强楚)를 정벌하고 북으로는 제진(齊晋)을 위협하여 중원을 쟁패하였다고 말했다.

《사기》의 말은 나오자마자 천년 동안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송대(宋代)부터 《손자》가 정말로 손무의 저작인가 혹은 역사상 손무라는 사람이 정말로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이 말을 꺼낸 사람으로는 송나라 사람 진진손(陳振孫)(《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과 엽괄(葉适)(《습학기언(習學紀言)》)이 있고, 청나라 사람 요제항(姚際恒)(《고금위서고(古今僞書考)》) 역시 이 말에 찬동하여 《손자》를 위서라 단정하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첫째, 《사기》에 손무가 오왕(吳王) 합려(闔閭)를 도와 초나라를 정벌한 일을 기록한 것은 비록 그 말이 명확하지만, 《좌전(左傳)》에서 합려의 일을 기록할 때 손무라는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춘추시대에 손무라는 사람은 없었으며 그의 이름과 사적은 태사공(太史公)이 잘못 전해들은 것이거나 심지어는 조작이다.

둘째, 《손자》에는 손무가 살았던 시대에 출현할 수 있는 몇몇 단어(名詞)나 사건, 상황들이 맞지 않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1) 춘추시대에는 오로지 대부(大夫)만 ‘주(主)’라 칭하였고 신료들이 국왕을 ‘주’라 칭한 것은 진(晋)이 삼분된 이후의 일인데, 《손자》에는 누차 국왕을 ‘주’라 칭하고 있다.

(2) 춘추시대에는 장군과 재상이 아직 명확히 분업되지 않아 보통 경대부(卿大夫)가 조정에서 정사를 돌보고 병사를 이끌고 출정할 때는 국왕이 명령을 내리고 장수가 출정하는 일은 없었다. 초나라를 정벌할 때 오왕 합려와 오자서(伍子胥)가 모두 전방에서 직접 지휘하였다. 따라서 《손자》에서 언급한 “장수가 밖에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국왕의 명령도 듣지 않을 수 있는(將在外, 君命有所不受)” 상황은 존재하지 않았다.

(3) 춘추시대에는 비록 전쟁이 빈번했지만 각 국의 국토가 작고 경제적 역량이 떨어졌기 때문에 전쟁의 규모가 크지 않아 제 진(齊晋), 진 진(晋秦), 진 초(晋楚) 등 나라 간의 몇 차례 유명한 전투도 전차가 몇 백대에 지나지 않았는데, 《손자》에 누누이 언급한 “천 대의 사두마차가 질주하고……갑옷으로 무장한 병사가 십만이었다(馳車千駟……帶甲十萬)”는 이러한 규모의 전쟁은 전국시대에 가서야 출현하였다.

(4) 오나라와 월(越)나라가 서로 미워하여 전쟁한 것은 합려가 월나라를 정벌한 이후의 일인데, 손무는 합려를 처음 보자마자 오월의 전투를 언급하여 말하길, “월나라의 군대가 많은들 무엇에 쓰겠습니까!(越人之兵雖多, 亦奚以爲!)”라고 한 것은 아마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다.

(5) 《손자》에는 ‘화살과 쇠뇌(矢弩)’의 명칭이 나오는데, 쇠뇌(弩)는 전국시대에 가서야 발명되는 병기이다.

(6) ‘알자(謁者)’, ‘문자(門者)’, ‘사인(舍人)’ 등등은 모두 전국시대의 관직명으로 춘추시대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인데, 《손자》에는 이러한 명칭이 출현하는 것 등등이다.

셋째, 《사기》에는 이와 동시에 제(齊)나라 장수 손빈(孫臏)의 사적에 병법이론이 있다고 기록하였는데 《손빈병법(孫臏兵法)》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는 태사공이 같은 책을 두 개의 다른 책으로 잘못 알았거나 같은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오해한 것이 아닐까?

따라서 그들 중에 어떤 이는 《손자》가 춘추, 전국시대 세간의 산촌 선비들이 지은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손빈이 편찬한 것이라고도 하며 어떤 이는 진한(秦漢)시대의 사람의 위작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진손과 엽적(葉適)의 회의론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명대(明代) 송렴(宋濂)의 《제자변(諸子辨)》, 청대(淸代)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의 편찬자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태사공은 엄숙하고 진지한 사학가로 그 일의 기록과 입언은 상세하고 확실하여 믿을 만하고 열전 중에 서술된 손무와 손빈의 일이 명명백백하며 《한서 예문지(漢書 藝文志)》에 고대 병법에는 《제손자(齊孫子)》(손빈)와 《오손자(吳孫子)》(손무)가 있다고 분명히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본래 다른 두 사람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좌전》으로 말하자면 그 자체가 완전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우연히 빠뜨릴 수도 있는 일이므로 그 중에 우연히 빠뜨린 기록에만 근거하여 《사기》의 문장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손자》의 원문은 예전의 우아한 풍모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 춘추시기임이 드러나며 그 중의 몇몇 후세 사물의 이름이 출현한 것은 바로 후대 사람이 끼워 넣은 것이다. 선진의 고적에는 종종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좌전》도 예외는 아니며, 이는 그 핵심 내용의 진실성, 역사성과 손무의 저작권에 영향을 주기에는 부족하다.

또 한 가지 의견이 있는데, 《손자》가 손무와 그 제자들의 공동 저작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의견은 《손자》의 주요 사상체계는 분명히 손무에게 속하며 그 편찬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손무와 오자서가 합려의 사업을 완성하는 것을 도와준 후에 오자서가 백비(伯嚭)에게 내쫓기고 손무는 곧 기회를 보아 관직에서 물러나 전쟁의 경험을 총괄하여 체계적인 군사이론을 정리한 후에 학술강연을 하며 제자를 받아들여 군사 학술을 전수했다.

그 제자들은 귀로 들은 것을 기록하여 대대로 전해져 마지막에 춘추전국 시대에 점차로 이 풍부하고 비교적 완전하고 체계적인 병법 저작이 형성되었다. 이 사이에 문장은 비록 다소간의 첨삭이 있을 수 있지만 손무의 핵심사상은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손무의 저작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할 것이다.

1972년 산동(山東) 임기(臨沂) 은작산(銀雀山) 한(漢)나라 고분에서 죽간본(竹簡本)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의 출토는 이러한 논쟁을 해결하고 몇몇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으며 역사에 가려져 있던 짙은 안개가 걷히고 한 줄기 광명을 가져왔다. 고분의 연대가 서한(西漢) 초년이라는 것이 이미 고증되었고 죽간 《손자병법》이 마침 13편이었으므로 다음과 같은 것을 증명할 수 있다.

1. 《손자》는 최소한 서한 초년에 이미 존재했고 그 편명 내용과 지금의 것은 기본적으로 일치하며 조조(曹操)가 정리한 《손자》는 크게 바뀐 것이 없다.

2. 《손빈병법》이라는 책은 진짜로 존재했다.

3. 손무와 손빈은 다른 사람임이 분명하다.

4. 《손자》는 결코 손빈의 저작이 아니다.

5. 《사기》는 확실히 믿을만한 역사서이며 그 기록은 기본적으로 믿을 만하다.

따라서 《손자》의 작자에 대한 논쟁은 여기까지 일단락되어야 하며 작자는 손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 의견이 있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는데, 이들은 죽간본의 출토가 확실히 수많은 의문을 해결해주긴 했으나 모든 의문을 해결한 것은 아니며 그 의의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죽간본으로 《손자》가 바로 손무의 저작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없고 《손자》가 편찬된 구체적인 시간을 증명할 수도 없으며 《손자》의 편찬부터 죽간본으로 전사되기까지 중대한 수정작업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의견이 조금도 일리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요컨대, 《손자》의 작자에 얽힌 수수께끼를 철저히 풀려면 금후의 진일보한 고고학적 연구가 필요하다.(자미(子微))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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