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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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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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124.단재 신채호, 김부식의 대대적인 사료수거와 소각이 일제하 20만 부 사서의 수탈 소각보다 크다,지나족의 노예화 꾀한 태조, 태종,세종 3부자의 사서수탈 소각이 김부식 못지않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민족사의 허리가 잘려나간 몇 개 안 되는 마디 중의 하나가 바로 김부식의 대대적인 사료수거와 소각이며 김부식의 사료인멸이 일제하 20만 부의 민족정사를 수탈 소각한 조선사편수회의 이마니시류(금서룡)보다 더욱 심하다 했으며 김부식과 맞먹는 사료인멸이 바로 태종 이 방원에 의해 저질러졌다 지적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방원은 최영의 북벌주의를 옹호할 만한 대륙사관에 대한 사서를 모두 불 쳐 사르고, 친 명 사대주의로 고려를 거꾸러뜨리고 세운 조선왕조에 대해 새로운 명분을 세우라는 숙제를 아들 세종에게 남긴 것이다.

해방이후 우리가 성군으로만 알고 있는 세종이 만약 태조 이 성계, 태종 이방원과 함께 역사인멸의 트로이카 주범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과연 납득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러한 기록이 제 얼굴에 침뱉기 식으로 같은 왕실에서 기록된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에 자세히 나올 리 없다.
  
하다 못해 퇴계 이황도 「大明爲天下宗主國」이라 하여 조선보다 대명제국이 천하의 종주국이라 하여 명 제국을 본조로 여겼고 율곡 이이도 명의 군주를 황조, 황상이라 칭하고, 명의 국토를 신주(神州), 서울을 신경(神京) ,경화(京華)라 칭하고,

명 제국을 천조(天朝) 내지 성조(聖朝)라 하고 명의 황실을 옥황가(玉皇家)라 하여 극존칭으로 일관했으니 조선 유학의 태두가 이러했으므로 그들의 뒤를 이은 유학자와 정부관리들의 태도는 말할 것도 없이 대 중화사상의 족쇄에 묶여버렸던 것이다.

백암 박 은식은 이들 썩은 존화 사대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격을 가한다.
"조선의 유생이 주창하는 존화양이(尊華攘夷)는 무엇을 말함인가?

세계 만국의 모든 사람이 모두 자기 나라를 존중함으로써 의리를 삼는 까닭에 중국인은 존화양이(尊華攘夷)를 주장하거니와, 오늘날 조선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즉 중국을 존중하는 것으로 일대 의리로 생각하니 이는 자국의 정신을 소멸케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유가에서 공자의 춘추의 의(義)에 근거하여 존화양이를 주창하는데, 공자의 춘추의 의로 말하자면 오랑캐가 중국에 들어가면 중국으로 대우하고 중국이 오랑캐가 되면 오랑캐로 대우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니 어찌 그 땅의 내외(內外)로써 존양의 의가 있겠는가.

만일 땅의 내외로써 구별이 있으면 어찌 성인의 대공무편(大公無偏)주의라 할 수 있겠는가?

설령 공자의 춘추에 존화양이의 뜻이 있을지라도 공자는 중국사람이라 그 뜻을 지속함이 오히려 가하다고 하겠으나 동방 해외의 사람으로 그 의(義)를 지니고 있음은 무슨 연유인가?"  

1679년 숙종조에 발간된 북애자의 「규원사화(揆園史話)」를 볼 것 같으면 김부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혹평해 놓았다.

"괴이하다 김부식은 2000년간의 성적(聖跡:단군조선)을 전혀 쓰지 아니하고 해동 삼국의 것만을 기록하였다. 그는 「고기(古記)들이 거칠고 무디며 사적(事迹)을 많이 잃어 없어져 옛일이 아득하고 어지럽다" 하므로써 그 책임을 모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세조(1455-68)가 사적(史籍)을 널리 구할 때에 조대기, 고조선 비기, 지공기, 삼성밀기 등이 함께 나타났거늘 김씨의 연대에 없었을 리 만무하였을 것이다.

묘청이 난을 일으켰을 때에 그를 토멸한 자 또한 김 부식이다. 그러한 김 씨는 묘청의 난을 미워하여 그들의 주장하는 바 설을 깊이 가리지 아니하고 붓대 끝에서 빼버렸다.

발해사를 문유(問遺:안부물음을 뜻하니 언급하지 않은 것)하지 아니한 것은 이 또한 김씨의 허물이다. 김씨가 이미 한(漢)의 전적에서 취하고 또한 주체성이 없고 그 처음과 끝을 모르는 등 무능할 따름이다. 우리나라 역사의 화가 그 유래한 바 이와 같이 오래다. 이제 길이 탄식한들 아무 이익이 없으니 이것을 장차 어떻게 할 것이냐."

단재는 「조선사 연구초」과 「조선 상고사」에서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선 조선사 연구초의 비판을 현대식 표현으로 고쳐 보면 다음과 같다.

-김부식은 조선 고사가 결망(없어짐)된 까닭에 호랑이 없는 곳의 삵괭이같이 조선사가들의 비조가 되었지만, 그가 「삼국사기」를 지을 때에 송(宋)인의 책부원구(冊府元龜) 1천 권을 사다가 자신의 수하 일파에게 참고하도록 제공하고는, 내각(內閣)에 깊이 감추어 타인의 열람을 불허하여, 자신을 비롯한 일파들이 유일한 박학자의 명예를 독식하는 동시에 「삼국사기」가 자신들의 명예를 드날릴 수 있도록 희망하였다.

그의 악랄하고 용렬한 수단이 참으로 통탄할뿐더러 그 사학적 두뇌가 비상히 결핍하여, 즉, 근세의 발달된 역사에 비해 모지람이 있을 뿐 아니라 동양고대의 인물중심주의의 역사의 저울로 달아볼지라도 「삼국사기」는 몇 푼어치가 못되는 역사다.

「삼국유사」,「점필재집」등에 흩어져 보이는 천 년 사상계의 지배자인 영랑, 술랑, 부예랑 등 위인을 쓰지 아니하며, <문무왕서> 「당서」,「일본서기」등 여기 저기 전하는 백제 말일의 유일한 영웅 인물인 부여복신의 열전을 짓지 아니하며,

무공이 강한 많은 동성왕 시대를 미약하게 잘못 증거하며 신기한 공을 세운 양만춘을 누락시키며, 민족의 계열을 말하려면 왕검씨의 정통인 부여를 삭제해 제거해 버리며, 지리를 기록하려면 고구려의 후계인 발해를 배척하였으므로 삼국사기」는 문화사로 보나 정치사로 보나 가치가 전무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본래의 「삼국사기」는 그 서책의 이름이 「삼국사」로 김부식이 금 희종을 위해 써 바친 책이지만 일제의 기기(紀記)사관에 의해 범엽 「후한서」의 소위 기(紀)는 제왕의 역사요, 기(記)는 제후의 역사라는 문구에 의해 삼국사기(三國史記)로 고착화되어 버렸지만,
그 원본은 실전되어 사라진지 이미 오래고, 후일 조선 세종이 삼국사의 이본(異本)으로 춘추관에서 만들었으나 반포(頒布)하지 않았는데, 일찍이 양성지는 이 삼국사기를 보고 삼국을 논한 바 있으나 삼국사와 삼국사기가 위서(僞書)인 줄은 몰랐다.
물론 양성지의 삼국사기도 실전되었다. 이 양성지의 삼국사기를 중종 때 간행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니, 오늘날 전하는 삼국사기는 바로 양성지의 삼국사기이지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근본 틀이 김부식의 춘추노예사관을 틀을 벗어난 것도 아니다)

그가 중국서적에서 얻은 박학도 너무 창피하여, 「사기」<조선열전>의 글을 인용할 때에 왕지(王之)를 아래 문장에 붙여 왕지도왕검(王之都王儉)이라 하여 그 구절을 옳게 떼지 못하였으며,

「송서」 <고구려열전>의 연(璉)을 왕(王)으로 고치면서 "래(來)"는 그대로 두어 장수왕이 평양에 앉지 않고 절강에 앉아 하는 말이 되었으며 <수(隨)서>의 "고려오만불공 제장토지(帝將討之)"를 "아(我)오만불공 제장토지"라 개서하여 허리 부러질 아(我)를 찾았으며

「책부원구(冊府元龜)」의 성은 모요, 이름은 진이라 한 '성모(姓募) 명진(名秦)"을 베껴 신라 박, 석, 김 3 성 이외에 턱없는 모씨 제왕을 인사하게 되고, 이밖에도 맹인 밤길 가는 기사가 많으니, 아아 선택 없는 박학은 박학 아닌 선택만도 못하다.

최근의 구암(한백겸), 순암(안정복) 등 제 선배 유학자는 탄복할 만큼 아주 정밀하고 상세함을 가져 김씨의 착오를 발견한 것이 적지 아니하나 다만 중국 서적에 대한 신뢰가 너무 지나쳐, 지리를 논하려면 진위가 뒤죽박죽된 「수경(水經)」을 마구 인용하며, 연대를 표하려면

속석(束晳:晋대 학자. 발굴된 죽서기년을 해독) 이후에 위작한 「죽서기년」을 그대로 존경해 믿고, 저 소위 경사(經史)는 글자 한자 한자를 금옥으로 보아 그 위증(僞證)과 오증(誤證)을 발견하려는 생각조차 없었다.「조선사 연구초」-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이미 한문 저작인즉, 이두문자로 쓰인 명사(明使)나 방위(防衛)같은 것을 모두 개정치 않은 것은 어떤 이유인가. 김 씨는 황조맹랑(황당함으로 돌돌뭉친)한 사가(史家)라,

발기(發崎)와 발기(拔奇)는 한 사람의 이름을 두 가지로 번역한 것이거늘 김씨가 하나는 고구려사에 기대어 쓰고 다른 하나는 중국사에 기대어 잘못 나누어 씀으로써 두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살수(薩水)는 3국 시대 가장 유명한 전장인데도 김씨가 이를 잘 알지 못하는 땅으로 분류했으며, 이 밖에도 이러한 호도가 한 둘 뿐이 아니다.

김씨가 이두문에 무식하므로 모든 알기 쉬운 국어의 관명(가령 이벌찬 이찬에 대해) 우리나라말로 그 말을 하게 된 뜻을 알 수 없다고 하였으며,

게다가 이두문 배척에 격렬하여 신라 3대에 끼친 시가(詩歌)-「삼국유사」에 적힌 시가를 「삼국사기」에는 한 짝도 쓰지 아니하였으니,

만일 김 씨가 인명, 지명, 동서(東西) 등이 이두문의 것인 줄 알았더라면 모두 배척하고 거두어 쓰지 아니하였을지니 어찌 개정여부가 있으리오.

「삼국사기」의 지리서에 "가슬라 일명 하서량(迦瑟羅 一名 河西良)"이라 하였다.

가슬은 '가시'요, 가시는 포동(浦東)의 뜻이니 고구려는 혼춘 등지를 '가시(迦瑟)'라 하고, 신라 경덕왕 이후에는 지금의 강릉이 '가시(迦瑟)'라 한 자(者)니,

그러면 고려의 가시는 고구려 동북의 지명이요, 신라의 가시는 신라 동북의 지명인즉, '가시'를 '하東량'이라 하지 않고 '하西량'이라 함은 東의 뜻을 취하지 않고 西의 음을 취함이니, 이것이 이두문의 동(東)자를 서(西)자로 바꾸어 쓴 실례가 아니냐.

고구려에서 제천대회를 한맹(寒盟)이라 칭한 바, 한맹의 일명이 동맹(東盟)이니 한맹은 그 음이 '한몽'이 될지며 '한몽'은 대회(큰 모임)의 뜻이니, 한몽의 한을 음으로 쓰면 한(寒)이 되려니와 뜻으로 쓰면 서(西)가 될 터인데

이제 서맹이라 하지 않고 동맹이라 함은 이두자의 서 자를 동 자로 바꾸어 쓴 실례가 아니냐. 그러면 「삼국사기」에 바뀐 동서 등의 글자의 존재는 누가 집어넣은 것이냐.

고려 초의 문사 혹은 승려들이 각종의 고기를 한문으로 지을 때에 모든 이두글자의 역사책을 번역해 내는 동시에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가운데서 우연히 빠뜨려 몇 개 바뀐 동서 양 글자가 남아있음이라.「조선사 연구초」-







167    담론161.부 사년(傅斯年)의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과「환단고기」의 맥과 같이 하는 서 량지(徐亮之)의 대륙이동사&김병모 교수의 수로왕비 허황옥  안원전   2002/06/13  4643
166    담론160.낙빈기가 말하는 좆(祖:남근신앙)과 황실을 잇는 혈통의 중심으로 최고의 존칭으로 칭한 자지(自持), 다음 임금자리를 이을 태보(太保:왕자)를 잉태하는 존귀한 여자라는 뜻의 보지(保地)에 대한 금석문학적 해석  안원전   2002/06/13  4869
165    담론159.낙빈기 금문신고의 핵심,호북에서 태어난 신농은 지금의 섬서성 천주산(天主山:岐山) 아래 강수(姜水)에서 살다가 성년이 되자 유웅(有熊)씨 집안의 딸 즉, 황제의 아버지와 자일급 부인 사이에서 낳은 임사(妊巳)씨에게 장가들어 서방님(西方任)이 된다. [1]  안원전   2002/06/13  4534
164    담론 158.순은 모계제도를 부계제도로 혁신하려다 실패한 혁명군주로 요의 어머니이자 순임금에게는 왕고모인 종규를 주축으로 한 곤의 딸 간적과 그녀의 아들 우,또 우임금의 부인이자 곤의 딸 사모무, 또 순임금의 딸 사모신 등 모계세력들이 똘똘 뭉쳐 우임금을..  안원전   2002/06/13  4961
163    담론157. 낙빈기의 상고사 핵심, 금천(金天)의 금(金)은 쇠라기보다는 새(鳥)와 태양을 뜻하여 신농족의 불족, 밝은족(火族), 태양족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천(天)에는 장인인 신농이 들어있어 소호금천이라는 이름 속에 직계와 외가가 모두 담겨있다.  안원전   2002/06/13  5037
162    담론156.낙빈기의 조선 선(鮮) 자의 금석문학적 유래& 중국사학자들은 모계사회, 특히 3황5제시대의 외가가 실권을 쥔 특수한 모계사회 제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고 역사의 단추가 아예 처음부터 잘못 끼워져 왜곡되었음을 강조  안원전   2002/06/13  4778
161    담론155.신역사학자에 대한 낙빈기의 비판과 복수결혼제도인 모권제의 대우혼(對偶婚) 제도의 속성 &"夏왕조 개국은 기원전 2070년" 中, 古代 3왕조 연표확정  안원전   2002/06/13  4678
160    담론154. 낙빈기의 금문신고의 핵심은 동이 제 족이 모권제적 대우혼 제도 아래에서 대륙을 말아먹은 것을 갑골문의 금석문학적인 차원에서 입증하고 있다.  안원전   2002/06/13  4684
159    담론163.(중복삭제예정)파촉(巴蜀) 땅은 일찍이 이들 복희씨의 사(蛇) 도등(圖騰) 족이 웅거하여 상고시절에 이름을 얻은 지역이니 파촉의 파(巴:大蛇)는 큰 뱀을 의미하여 「설문(說文)」에 '파(巴)는 충(蟲:동물의 총칭), 혹은 코끼리를 먹는 뱀'  안원전   2002/05/17  4327
158    담론162.(중복삭제예정)노자가 내몽고를 경유하여 이르렀다 한 아유타(阿踰 )가 김 병모 교수가 언급하고 있는 사천성의 아유타인지, 아니면 별개의 것인지 제천금인(祭天金人)인 소호금천씨의 부처신앙과의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지고증하면 미궁에 빠진 대륙사를  안원전   2002/05/17  3875
157    담론153.중화(中華)족이 화(華)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은 햇빛을 상징하는 엽(曄)이 간체화 된 것이며 화족(華族)의 뿌리 역시 태양과 광명을 숭배하는 민족이었다.  안원전   2002/05/17  4266
156    담론152.「규원사화」의 "단군사관신지(檀君史官神誌) 작진단구변국도(作震檀九變局圖)"&「신교총화(神敎叢話)」의 「진단구변국도(震檀九變局圖)」  안원전   2002/05/17  4566
155    담론151.삼국유사는 불교의 허탄(虛誕)한 이야기로 고려의 역사 왜곡을 미화한 것&복희,신농,요,순,우로 본 대륙사의 실루엣  안원전   2002/05/17  4581
154    담론150.은상(殷商)의 기원은 바로 동이족 설(契),동이족인 은인(殷人)은 신교의 입장에서 신정정치의 유습을 승계  안원전   2002/05/17  4173
153    치우능 탐사&답사기-산동성(현 하남성) 태전현 문화국 마광김(馬廣金)의 치우능묘에 대한 비망록 보고서&유방(油坊)에 치우(蚩尤)의 머리를 매장했다<文史花絮)> 현술귀(玄述貴). [1]  안원전   2002/05/04  5099
152    담론 144. 정현은 「사기」<오제본기> 황제편에서 치우가 천하를 제패했음을 말한다.(鄭玄云 蚩尤也覇天下)  안원전   2002/05/04  5107
151    담론149."개국호조선(開國號朝鮮) 여고동시(與高同時)",환인천제는 풍주에서 개국해 풍이(風夷)의 시조가 되고, 배곡(倍谷)에서 개국하여 배달나라(倍達那羅)가(임승국),복희여와도의 복희  안원전   2002/04/06  5227
150    담론 148.「괄지지(括地志)」에 호북 수현에서 태어나, 하남(河南) 회양(淮陽)에 도읍을 정하고, 산동반도 곡부로 천도해서, 호남(湖南) 차릉(茶陵)에서 죽은 동이족 신농씨, 바이칼에서 출발한 복희의 후예들이 신농때에 이르러 이미 중국대륙 전체를 말아먹음  안원전   2002/04/06  4544
149    담론147.서량지는 시베리아(西佰利亞)란 이름은 동이 제 족의 부족들이 살던 곳을 의미하는 직피리아(織皮利亞), 선비리아(鮮卑利亞)였던 것이 잘못 기록된 것, 「산해경(山海經)」에 3황5제 모두(常先八代帝於此取之) 숙신(조선)에서 배출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안원전   2002/04/03  4856
148    담론146. 은나라 주도핵심세력 치우천왕 후예 묘족과 묘족과 밀접하게 잡거한 동이족 라라면전(羅羅緬甸)계,북탄계와 12제후와 9이 겨레를 거느린 양자강유역의 천자국였던 동이족 월나라와 제후중 패자인 초 장왕  안원전   2002/04/03  8480
147    담론145.치우능 탐사(蚩尤陵 探査) &답사기(踏査記)  안원전   2002/04/03  7483
146    담론143.임 혜상은 오늘날 일컫고 있는 묘족이 과거 동이계열의 민족이 아님을 말하고 있으나 상고의 묘요가 동이계 민족임은 분명히 했다  안원전   2002/03/28  8376
145    담론142.몽고계는 흉노, 동호(東胡), 돌궐 등 (북방 동이) 계열의 혼합적 산물,용(庸), 촉(蜀) 두 지파가 있는 동이족 저강(羌)의 저족이 세운 전진(前秦), 후량(後凉), 구지(仇池), 전촉(前蜀) 왕조와 저강의 강(羌) 족이 세운 후진(後秦),서하(西夏)왕조  안원전   2002/03/27  5478
144    담론141.흉노의 영향을 받은 세력이 철기문명을 구가하면서 전차부대를 이용해 중동과 이집트를 정벌한 구약 속의 헷족속 힛타이트족& 힛타이트족의 계약을 흉내낸 모세10경  안원전   2002/03/27  4868
143    담론140. 3세 가륵단군 때 열양(列陽) 욕살(褥薩) 색정(索靖)이 흉노의 조상,회족(回族) 제1의 근간민족이 흉노,3대에 걸쳐 험윤, 훈죽, 귀방(鬼方), 견융(犬戎), 북적(北狄)이 됨,흉노 후예가 돌궐로 우리 동이족 [1]  안원전   2002/03/27  4617
142    담론139.지나족의 사관을 보여주고 있는 논문-"고구려의 귀속문제에 관한 몇 가지 논쟁의 초점(關於高句麗歸屬問題的畿個爭議焦點)"-서길수(徐吉洙) 번역  안원전   2002/03/27  4159
141    담론138.문화인류학적 종족의 이합집산과 그 혼혈과정-동이족에서 수를 불린 화하족 한족과 동이족의 곁가지를 대국적으로 보는 법  안원전   2002/03/24  4587
140    담론137.대륙사를 대국적인 문화인류학적 변천과정으로 읽는 법,지나 한족은 우선 화하(華夏)계를 한(漢)족의 주요 줄기(主幹)로 해서 다양한 주변 동이 구려족을 끌여들여 혼합한 것  안원전   2002/03/24  4501
139    담론136.황제는 우리 동이족인 곰족 출신 유웅씨,무왕이 은나라를 칠 때 말린 고죽국(孤竹國)의 백이숙제는 동이족,주무왕은 과도기적 서이(西夷)인,맹자-순은 서이(西夷)화된 동이인 [1]  안원전   2002/03/21  4333
138    담론135.벨루스(Belus), 벨(Bel), 바알(Baal)은 모두 동일한 신으로 구스(Cush),야누스는 구스(Cush)의 로마적 표현,구스(Cush)의 칼데아적 의미는 "케이오스(Chaos)"  안원전   2002/03/19  4517
137    134.슈메르 시대의 신의 계보와 마르두크 ,구스-벨과 니누스- 니무롯,헤르메스와 구스  안원전   2002/03/19  5237
136    담론133.가시마 노보루의 일역 환단고기 간행사를 쓴 오향청언(吾鄕淸彦)-일본 고대문자의 하나인 아히루 문자의 원형인 프로트 한글(원시언문)이 「환단고기(桓檀古記)」에 기록되어 있다  안원전   2002/03/19  4527
135    담론132.김지형-한국어를 형성하는데 관여한 언어집단과 중국어를 형성하는데 관여한 언어집단은 아주 밀접한 계통적 연관성이 있다,신대시대 문자인 아히루문자의 기원 원시언문(한글)  안원전   2002/03/19  4677
134    담론131.신시(神市)에 녹서(鹿書)가 있었고, 자부(紫府)에 우서(雨書)가 있었으며, 치우(蚩尤)에 화서(花書),부여인 왕문(王文)의 부예(符隸:예서체),왕차중(王次中)의 해서(楷書),가륵단군때 한자(漢字)가 있었고 국호를 조선(朝鮮)  안원전   2002/03/19  5067
133    담론130.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가나문자의 원류는 고대 한국에서 사용됐던 구결(口訣)&‘동문선’원문을 거꾸로 해석해 국민을 기망한 복거일의 주장  안원전   2002/03/18  5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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