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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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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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27. 불을 관리하는 화정관(火正管) 려(黎) 축융(祝融)


불을 관리하는 화정관(火正管)


려(黎) 축융(祝融)


1.월왕(越王) 구천(勾踐)은 그 선조 우(禹)의 후예(苗裔)로 하후제(夏后帝) 소강(小康)의 서자(庶子)이다. 회계(會稽)에 봉해져 우(禹)의 제사를 받들어 지켰다 월 구천의 도읍지였던 샤오싱(소흥) 회계산의 대우릉의 대우릉 행사전경과 범려(范黎)가 인물평을 했던 대로 그려진 목이 긴 새 주둥이 장경오훼’(長頸烏喙) 구천 모습. 범려는 자신을 대신할 인물로 천거해 후배 대부가 된 문종에게 오나라를 멸한뒤 그의 천한 관상을 말하며 고난은 같이 해도 영화는 같이 못하는 인물로 같이 도망가자고 했다. 문종이 정중히 반대하자 범려(范黎)는 서시를 데리고 산동성(山東省) 정도(陶: 定陶縣)로 가서 대부호가 된다(도주공(陶朱公)) 범려가 제나라 노나라 등 동이족 주 웅거지 산동성으로 도주은거하면서 개명한 치이자피(올빼미치,鴟夷子皮)의 이자와 서시의 본래 이름 이광(夷光)의 이 자가 동이 이(夷) 자임을 안다면(범려의 黎도 동이9려(黎)를 증명함) 상고 대륙사의 주요 등장 인물들의 면면이 모두 동이 한겨레 혈통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안원전의21세기 담론 중)
2.오왕부차와 환락을 함께 하면서도 연인 범려의 대의를 받들어 늘 우울했던 서시가 부차와 함께한 오나라 궁전(현 강소성 쑤조우(소주) 소재)&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 구천을 피해 숨어들은 궁궐 바로앞의 석호. 범려는 이곳에서 서시와 재회해 동이족의 주거처 산동성 정도로 숨어들어가 도주공으로 거부가 된다. 이름도 동이족임을 말하는 치이자피(鴟夷子皮)로 숨긴다.( 동이족 월족 이광(夷光:서시 본명)의 이(夷)와 같다) 이후 서시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어 둘째 아들 살인사건  구명운동 사건이 대부 장생을 통해 벌어진다 .(안원전의21세기 담론 중)

이로 보면 려 축융 역시 고대 동이혈통의 계보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하겠다(이상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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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黃帝)의 시대에 화정관(火正官)이 있었는데 이름은 축융(祝融)이었다. 그의 어렸을 때 이름은 려(黎)로 한 부락의 수령의 아들이었다.

려는 천성적으로 붉은 얼굴에 체구가 크고 훤칠했고 또 총명하고 영리했다. 그러나 그는 성질이 불같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는 화를 머리끝까지 냈다.

그 당시는 수인씨(燧人氏)가 막 나무를 문질러 불을 얻는 법을 발명했던 때였지만, 그다지 불을 잘 보존하거나 이용하지는 못했다.

려는 불과 가까이 하는 것을 특히 좋아하여 십여 세에 벌써 불을 관리하는 데 능수가 되었다. 불이 그의 손에 들어가면 오랫동안 보존이 되었다.

려는 불을 관리하는데 수많은 전문적인 능력이 있었다. 그는 불을 이용하여 요리를 만들고 밥을 지을 줄 알았으며, 또 불을 이용하여 따뜻하게 하고, 밝게 비추고, 야수를 쫓고, 모기를 쫓아버릴 줄 알았다. 이러한 능력은 그때 당시에는 매우 대단한 것이어서 모두들 그를 존경했다.

한번은 려의 아버지가 모든 부락 사람들을 이끌고 매우 먼 지방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려는 불씨를 가지고 가면 매우 불편하다고 생각하여 나무를 문질러 불을 만들어 낼 뾰족한 돌을 몸에 지니고 갔다.

어느 날 오후에 부락은 막 야영하려고 짐을 풀고, 려는 뾰족한 돌을 꺼내고 큰 나무를 하나 찾아 석산 아래에 앉아 ‘헐떡헐떡’거리며 문질러 불을 지폈다. 문지르고 또 문지르고 3시간을 꼬박 문지르고도 아직 연기가 나지 않자 려는 매우 화가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매우 불쾌해했다.

하늘은 점차 어두워져오고 불이 없으면 안 되었으므로 그는 할 수 없이 또 다시 문질렀다. 문지르고 또 문질러 연기는 피어오르기 시작했는데 아직 불꽃이 나오지 않았다. 려는 화가나 얼굴이 벌게져서 ‘후’하고 일어서 뾰족한 돌을 석산 위로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이미 문질러 뜨거워진 돌멩이가 석산 위에 부딪히자 ‘파팟’하는 소리를 내며 몇 방울의 눈부신 불꽃을 피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려는 이것을 보고 즉시 영감을 얻었다. 그는 볕에 말려진 갈대를 몇 개 따 와서 두 개의 뾰족한 돌멩이를 가까이 대고 ‘탁탁탁탁’ 몇 번을 두드리니 불꽃이 갈대 위에 튀어 ‘치직’하고 하얀 연기를 피워내자 다시 가볍게 후후 불었더니 불길이 위로 번졌다.

려가 돌멩이로 불을 얻는 방법을 발견하고 나서 더 이상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불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힘들게 불씨를 보존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불을 취하는 새로운 방법을 부락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주었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불을 얻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돌을 두드려 불을 취하게 되어 매우 편해졌다.

중원(中原)의 황제는 려가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그를 불러 전문적으로 불을 관리하는 화정관(火正管)에 임명했다. 황제는 그를 매우 신임하여 말했다. “려야, 내가 너에게 큰 이름을 하나 지어주려고 하는데, 축융이 괜찮겠구나. 네가 천하를 영원히 밝게 비추길 바란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모두들 려를 축융이라고 불렀다.

황제가 재위하고 있을 때 치우(蚩尤)라고 불리는 한 씨족의 수령이 있었는데 그가 자주 중원을 침범하여 소요를 일으켜 중원의 백성들이 생활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황제는 병사를 이끌고 치우를 토벌하러 갔으나 치우를 이기지 못했다.

치우 수하에는 병장들이 매우 많았는데 특히 그의 여든 한명의 형제는 저마다 몸에는 짐승의 가죽을 걸치고 머리에는 소뿔을 쓰고 입 속에서는 짙은 안개를 뿜어내어 매우 위풍이 있었다. 황제의 부대가 치우와 싸움을 할 때 짙은 안개를 만나자 방향을 잃고 부대간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치우의 부대는 여세를 몰아 맹렬히 돌진해 와 황제의 부대는 대패하여 북쪽의 탁록(涿鹿)까지 도망가서야 겨우 그쳤다. 후에 지남차(指南車)를 발명하여 황제의 부대는 더 이상 짙은 안개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황제는 치우를 철저히 이기기 위해서 중원을 호령하는 사람들을 연합하여 축융이 이들을 이끌고 치우를 토벌하러 갔다.

축융은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도착하여 치우의 부하들이 모두 짐승의 가죽을 걸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교묘한 계책을 생각해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각자 횃불을 피워 사방에 불을 놓게 하여 치우의 부하들이 모두들 온몸이 데어 당황하여 허둥지둥 남쪽으로 도망갔다.

이때 황제는 지남차를 타고 부대를 이끌고 승세를 타 추격하였다. 황하(黃河)를 지나고 장강(長江)을 지나고 계속 추격하여 여산(黎山) 아래까지 쫓아 결국은 치우를 죽였다.(치우관련기사는 본 글이 왜곡된 지나대륙의 향토사료임을 감안하고 읽을것)





축융이 화공(火攻)의 방법을 발명하여 큰 공을 세우자 황제는 그에게 토지와 작위 등의 상을 크게 내렸고 그는 황제의 중요한 대신이 되었다.

축융의 공적은 천상의 옥황대제의 눈에 분명히 들어 축융을 불을 주관하는 신으로 봉하려고 했고, 축융이 남방에 남아 남방의 적제(赤帝)가 되게 하도록 명하였다. 이리하여 옥황상제는 두 명의 천신을 보내어 축융을 방문하게 했다.

어느 날 밤에 축융이 마침 달게 자고 있는데 홀연 두 신선이 그의 꿈속으로 들어왔다. 한 신선이 그에게 물었다. “남방에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 이름이 무엇인가?”
축융이 대답했다.

“형산(衡山)입니다.”

또 다른 신선이 물었다. “이 산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가?”

축융이 또 대답했다.

“옛날에 천지가 혼돈상태로 마치 달걀과 같았지요. 반고씨(盤古氏)가 천지를 개벽하고 난 후에야 백성들이 생겼습니다. 그는 일만 팔천년을 살았습니다. 죽고 난 후에 중원 대지 위에 누워 머리는 동쪽을 향하여 태산(泰山)이 되고 발가락은 서쪽에 있어 화산(化山)이 되고 복부는 튀어나와 숭산(嵩山)이 되고 오른손은 북쪽을 향하여 항산(恒山)이 되었으며 왼손은 남쪽을 향하여 형산이 된 것입니다.”

말이 막 끝나자마자 한 신선이 또 물었다. “왜 이름을 형산이라고 했지?”

축융이 바로 대답했다.

“이 산은 운몽(云夢)과 구의(九嶷) 사이에 가로로 누워있어 마치 저울처럼 천지의 경중을 측량하고 인간 도덕의 고저를 헤아릴 수 있다고 하여 이름을 형산이라고 지었습니다.”

두 신선은 축융이 유창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하하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옥황대제께서 그대에게 중임을 맡기고자 하시어 그대를 인간의 화신(火神)이자 남방의 적제로 봉하시었네. 이에 지금 우리를 보내시어 성지를 내리시는 걸세.” 말을 마치고 축융의 꿈을 떠나 승천하여 하늘로 갔다.

다음날 축융은 어제 밤의 꿈을 생각하니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침 사색에 빠져 있을 때 황제가 수하의 고급장교를 보내어 축융을 불렀다.

축융이 황제 앞으로 가 알현하니 수많은 부락의 수령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황제는 자신이 직접 지은 노래인 함지지악(咸池之樂)을 연주했다. 황제의 비인 누조(嫘祖)도 박자를 밟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모두들 이를 보고 황제를 둘러싸고 춤을 추었다.
한바탕 통쾌하게 춤을 추고 난 후, 황제는 모두를 조용히 시키고 말했다.

“내가 즉위한 이래로, 치우를 죽이고 역법을 제정하고 문자를 발명하고 음률을 창조하고 의서를 엮었으며, 또 누조에게 양잠하여 실을 뽑고 의상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도다. 지금 천하가 통일되어 오악(五岳)―동악의 태산, 서악의 화산, 남악의 형산, 북악의 항산을 안정시키려 하도다. 오늘부터 축융이 형산을 진수하겠다.”

모두들 이를 듣고 좋다고 외치며 잇따라 지지하고 찬성했다. 축융은 이때서야 어제 밤 꿈의 성지가 정말로 하늘의 뜻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황제가 가고 나서 축융은 형산에 남아 정식으로 남방의 사무를 관리했다. 그는 형산의 최고봉에 거주하며 항상 각처의 백성들을 순시했다. 그는 남방의 백성들이 항상 날 것을 먹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불을 취하는 것을 알려주어 음식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남방의 백성들이 밤에 모두 암흑 속에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횃불과 관솔불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는 장독(瘴氣)이 심하고 모기가 많아 백성들이 병에 잘 걸리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불을 피워 연기를 내어 모기와 장독을 쫓아버리라고 알려주었다. 백성들은 모두 그를 매우 존경하여 매년 8월 추수가 끝난 후에 무리를 지어 그를 알현하러 왔다. 모두들 말했다.

“축융님, 우리는 인구가 번창하고 닭과 오리가 떼를 이루고 오곡이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우리들에게 이리도 많은 좋은 점을 가져다 주셨으니 우리는 감사하여 당신을 군주(帝)로 모시려고 합니다. 당신이 불로 이들을 베푸셨고 불은 적색이니 당신을 적제라고 부르겠습니다!”

이때부터 모두들 축융을 적제라고 칭하였다.

남방의 축융이 다스리는 곳은 생활이 갈수록 좋아졌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천둥 번개소리가 들리더니 중원 지역에서 하늘을 진동시키고 땅을 뒤흔드는 고함소리가 전해져 왔다. 백성들은 매우 놀라 축융에게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축융이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공공(共工)과 전욱(顓頊)이 제위를 놓고 다투어 싸우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참을 싸워도 승부가 가려지지 않자 공공은 아주 화가 나서 몸을 훌쩍 날려 뛰어 곧장 부주산(不周山)으로 돌진해 갔다. 이 부주산은 원래 범상치 않은 산으로 이 산이 하늘을 떠받쳐 하늘이 무너지지 않게 했고, 대지를 단단히 묶어 기울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공공은 곧장 돌진하여 ‘우르릉 쾅’하는 거대한 소리를 내며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져 하늘의 반쪽을 밝게 비추며 하늘을 받치고 있던 기둥이 끊어지고 대지를 묶고 있던 돌 밧줄이 끊어졌다.

이리하여 하늘은 동남쪽으로 기울었고 강과 하천의 물들도 모두 동남쪽으로 흘러갔다. 남악 형산 쪽의 하늘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이 보였고 이쪽의 땅도 계속 흔들려 곧 갈라질 것만 같았다. 백성들은 저마다 커다란 나무를 안고 암석에 달라붙어 놀라 울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축융은 급히 자신의 전신의 능력을 다해 하늘을 떠받쳤다. 이때 옥황대제가 축융을 도우러 와서 축융의 몸이 순식간에 하늘을 떠받치고 땅 위에 우뚝 서게 되었다. 마치 커다란 기둥처럼 하늘을 떠받쳐 형산을 움직이지 않게 받쳐주었다. 이렇게 하여 형산의 하늘과 땅이 비로소 보존될 수 있었다.

축융은 남악 형산 위에서 백여 세를 살고서야 신선이 되어 하늘로 갔고 백성들은 그의 육체를 남악 형산의 산봉우리 위에 묻고 이 산봉우리를 적제봉(赤帝峰)이라고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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