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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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링크 #1    http://www.muhupin.x-y.net/cj15.htm
제 목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9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황제의 민간전설
*여기에 보이는 황제는 황제 헌원이 아닌 황제헌원의 후손이며 염제 역시 염제신농이 아니라 염제신농의 후예인 염제유망으로 보인다(안원전)
*「산해경」<대황서경>)이 되었다 하고, 「국어」에 여(黎)가 (제곡)고신(高辛)씨가 되었다고 한다. 오회는 그 형과 함께 처음에 또한 중려(重黎)의 정사를 나누어 장악한 연고로,  전욱의 자손이 사는 숙사국(淑士國)의 율(栗) 광야에는 10명의 신이 있어 이름을 여와지장(女媧之腸)이라 하는데 복희와 결혼해 혼례를 제정하고 생황을 처음 제작했으며 여와보천신화가 의미하는 것처럼 지나족의 창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여와(女媧)가 죽어 숙사국의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음은 전욱의 후예인 숙사국이 배달민족임을 확인시키고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앞 담론중)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황제의 민간전설






구름다리를 건축하고 비를 내리게 빌며, 악마를 물리쳐 백성들을 기쁘게 하다.

염제(炎帝) 신농(神農)은 일생동안 포부가 크고 사사로움에 이끌리지 않았으며 두려움이 없었다. 민간에는 염제가 ‘구름다리(天橋)’를 건축하여 황제(黃帝)와 통하고, 기우사(祈雨師)로서 백성들을 도왔으며, 신령한 거문고(神琴)을 제작하여 요귀를 물리치고 백성들을 기쁘게 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염제의 관대하고 인과 덕을 갖춘 품격과 비할 데 없이 출중한 지혜를 통쾌하게 표현한 것이다.

염황교(炎黃橋)

염제와 황제의 전쟁 후의 염․황간 사이에 관한 이야기는 중원 일대의 또 다른 일종의 민간전설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중원의 대지 위에서 염제와 황제는 일찍이 몇 차례의 큰 전쟁을 치루었는데 염제가 남쪽으로 쫓겨난 후에 쌍방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각각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이 강의 너비는 십리였고 물살은 사납고 깊이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양안 사이에는 원래 커다란 다리가 있어 서로 왕래를 했었지만 전쟁 중에 이 다리가 불살라 끊어져 이때부터는 양안의 왕래가 없어졌다.

염제는 이 전쟁에 대해 매우 마음 아파했는데, 이는 형제간의 상잔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모친이 살아계실 때 염제에게 당부하여 말씀하셨다. “형제간에 잘 단결해야 한다!” 염제는 자기가 모친의 말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음을 생각하고 모친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어 창공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하늘아, 내게 가르쳐다오. 왜 형제간에 서로 용납할 수 없고, 벽을 맞대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왜 한 집안끼리 창을 겨누고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거지? 나와 황제는 모두 한 나무에서 열매 맺은 과실이나 다름없이 모두 한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난 사이가 아닌가! 우리의 혈관에 흐르는 피는 모두 같은 피가 아닌가!”

염제는 남방으로 퇴각한 후에 늙고 야위어 보였고 이마의 주름살도 더 깊숙이 패었다. 그는 때때로 길고 짧게 탄식하고 한탄했으며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봄이 왔다. 염제는 강가에 서서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며 우울하고 실의에 찬 모습이었다. 그는 얼마나 그 기러기를 불러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신이 얼마나 그를 그리워하는지 알려주고 싶을 것인가!

가을이 왔다. 염제는 여전히 강가에 서서 남쪽으로 날아온 기러기를 홀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는 또 얼마나 기러기가 편지를 가지고 찾아왔기를 바랄 것인가! 그러나 날은 하루하루 지나갔다. 푸른 하늘의 구름과 강가의 가을바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염제는 고민하면서 배회하며 생각했다.

“형제와 동포가 왜 친밀하게 왕래하지 못하는 거지? 우리가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강물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지! 언제나 양안이 서로 통하여 형제가 한자리에 모일 것인가?” 그는 물결을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하느님, 어째서 우리를 갈라놓으시는 겁니까?”

세월은 유수처럼 흐르고 염제는 정말로 늙어 여러 가지 병에 걸려 스스로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기에 형제가 서로 모이기를 희망하는 심정도 하루하루 절박해져만 갔다. 공교롭게도 이때 어떤 천신이 이곳을 지나다가 염제의 이러한 심정을 알고 나서 그를 매우 동정하여 그들 형제지간에 화해를 중재할 것을 약속하고 황제에게 이러한 소식을 전했다.

황제는 그 전쟁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여러 해 동안 염제가 외지에서 받은 고통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도 괴로웠다.

전욱(顓頊)이 황제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이로 인해 염제를 받아들이는 결정이 내려질까 두려워 말했다. “존경하고 위엄스런 황제시여! 절대로 한때의 동정심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는 우를 범하면 안 됩니다. 염제는 교활한 인물로 속셈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당시 염제가 자기네 군사력이 강한 것을 믿고 폐하와 열 차례의 전쟁을 할 때 어디 이렇게 아첨하며 동정을 구하던 모습을 보였습니까?

그때 그는 기세등등하여 안하무인이었잖습니까! 지금 그가 패하여 남쪽으로 쫓겨 가 그토록 전염병과 기근이 창궐하는 지역에서 살기가 힘드니까 이제 와서 폐하께 애원하여 권토중래하여 다시 옛 땅을 회복하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의 속셈이 음흉하기 그지없는 걸 폐하께서 설마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만일 폐하께서 연민과 관용의 마음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신다면, 그는 마지막에 폐하의 보좌를 찬탈할 것이고 그때 가서는 후회하셔도 이미 늦은 겁니다.”

황제는 이 말을 듣고서 길게 탄식하고 말했다. “자네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네. 그렇지만 이번에는 천신이 직접 와서 화해를 중재하는데 내 어찌 천신의 뜻을 거를 수 있겠나.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 반드시 불상사가 생긴다!’고 하지 않는가. 하늘이 큰 재앙을 내린다면 그 어찌 자업자득이 아니겠는가?” 전욱이 말했다. “황제께서 그리도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신다면, 제게 염제의 속임수에도 속지 않고 천신에게도 죄를 짓지 않을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말을 해 보시오. 그게 어떤 방법이요?” 전욱이 말했다. “천신에게 양안을 소통하게 하여 형제가 한자리에 모이게 하겠다고 허락하시고 세 가지 조건을 제기하여 하나라도 행할 수 없다면 그만 두겠다고 하십시오. 이 세 가지 조건은 첫째, 태산을 옮기고 둘째, 황하를 맑게 하고 셋째, 무너진 다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염제가 말했다. “이 세 가지 일은 너무 어렵지 않소?” 전욱이 말했다.

“황제께서는 어찌 잠시 어리석어지셨습니까? 조건은 좀 가혹하기는 하나 염제를 곤란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염제가 천신의 지혜를 가졌다고는 하나, 귀왕(鬼王)의 능력으로도 이 세 가지 일은 해내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천신에게도 죄를 짓지 않고 염제의 음모도 실현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염제는 생각을 좀 해보다가 승낙을 했다. 천신은 황제가 일부러 염제를 곤란에 빠뜨리려는 것임을 알았지만 황제는 지금 나이도 많고 고집이 세서 더 이상 말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이 황제의 말을 염제에게 전했다.

염제는 듣고서 마음이 매우 무거워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호진관(胡眞官)이 말했다. “황제는 정말 너무 심하군요. 우리는 성심성의껏 천하통일을 이루고 골육 간에 다시 모이기를 바라는데 그는 도리어 이런 어려운 문제로 우리를 골탕 먹이다니.” 성격이 솔직하여 직설적인 식양(息壤)이 소리쳤다.

“이럴 수가! 정말 참을 수가 없군. 아예 그와 전쟁을 죽기 살기로 한판 더 붙는 게 낫겠습니다.” 염제는 식양을 한번 노려보고 말했다. “지금이 어느 때요? 그런 말일랑 더 하지 마시오.” 식양이 여전히 굴복하지 못하고 떠들었다. “그러면 우리가 눈 벌겋게 뜨고 모욕과 압박을 당하란 말입니까?” 염제가 말했다. “도량이 넓지 않아 큰 인물이 못되겠구려. 이러한 일도 참지 못하면 어찌 천하의 대업을 창설한단 말이오?”

호진관이 말했다. “이 일을 어찌 처리하실 겁니까?” 염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황제가 제기한 세 가지 조건을 전부 들어줄 것이오.” 호진관이 말했다. “이것을 모두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염제가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하지 않았소. 이전에 더 어려운 일도 우리는 해냈는데 오늘은 어찌 우리의 성심과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오?”

호진관이 말했다. “30년 전이라면 당연히 폐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지요. 하지만 지금 폐하께서는 늙으셨습니다.” 염제는 팔을 굽혀 힘을 줘 알통을 보이며 말했다. “난 아직 90여세밖에 안되었는데 내가 늙었다고?” 염제의 이러한 굳은 의지와 자신 있는 모습을 보며 어느 누가 무슨 말을 더 하리오?


다음날, 염제는 적송자(赤松子)를 중원 대지로 보내었는데, 그는 총명하고 능력 있으며 말재주가 아주 뛰어나 그를 보내는 것은 아주 적절한 조치였다.

적송자는 태산에 올라 황제를 알현했다. 황제가 물었다. “염제가 조건을 모두 받아 들였소?” 적송자가 말했다. “모두 받아들이셨습니다.” 황제가 물었다. “그는 어찌 할 생각이오?” 적송자가 말했다. “우선 태산을 남쪽으로 옮기려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염제의 천만 명의 일꾼이 동원되어 깃발을 나부끼며 북을 울리고 피리를 불며 이 곳을 향해 출발할 것입니다.” 황제는 천만 명의 일꾼이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 매우 놀랐으나 겉으로는 애써 매우 차분하게 물었다.

“남쪽에 그렇게 많은 일꾼이 있단 말이오?” 적송자가 말했다. “이것은 열 손가락 중 새끼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것에 불과하지요. 남쪽의 일꾼은 하늘의 별과 같이 많고 큰 산의 나뭇잎과 같으며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우람한 체격의 장사들로 장대한 기골을 자랑하며 힘은 산을 받쳐 들 수 있을 정도여서 이렇게 많은 일꾼들이 한번 소리 지르면 태양도 놀라 떨어질 것입니다. 각 사람이 작은 돌멩이를 던져 북해를 막아 그들이 곧 도착할 것입니다. 염제께서 저를 사령관으로 먼저 보내시어 황제께 대량의 일꾼들의 군량과 마초 및 묵을 곳을 준비할 것을 통지하도록 하셨습니다.”

황제는 속으로 그 많은 군량과 마초와 묵을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남방에서 정말로 이렇게 많은 군사들이 온다면 이전에 내가 너무 그들을 얕잡아 본 것이 아닌가, 내가 만약 군대를 풀어 남쪽을 정벌한다면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닌가? 적송자는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근심스러워 하는 얼굴을 보고 물었다.

“황제께서는 군량과 마초와 묵을 곳 때문에 걱정하십니까?” 황제가 황급히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본래 황제가 걱정하는 것은 “염제가 만약에 그렇게 많은 인력을 이끌고 온다면 그때는 어찌 저항할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적송자는 황제의 마음을 간파하고 한 술 더 떠 심리전으로 사기를 꺾으며 말했다. “지금은 마침 6월의 무더운 여름인데 이 곳의 날씨는 정말 선선하여 상쾌하군요!” 황제가 말했다. “이곳의 환경은 여름에는 태산이 있어 병풍처럼 폭염을 막아주고, 겨울에는 태산이 있어 찬 바람을 막아주어 사계절의 기후가 사람이 살기에 좋다오.” 적송자는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정말 좋은 곳이군요. 그야말로 봉래산(蓬萊山)의 선경과 비교할 만 합니다.”

황제가 물었다. “그곳은 어떻소?” 적송자가 말했다. “남쪽은 이곳과 비교도 안 되죠. 여름은 화로처럼 뜨겁고 겨울은 빙실처럼 춥지요. 저희도 마침 이것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이제 걱정을 좀 덜었습니다.” 황제가 물었다. “그건 어째서이지요?”

적송자가 말했다. “황제께서 자애로움을 베푸셔서 태산을 주시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저희 천만 일꾼이 와서 머지않아 태산을 남쪽으로 옮기면 남쪽은 봉래산의 선경이 되겠지요. 단지 애석하게도 이곳은…….” 황제가 물었다. “이곳이 뭐 어떻단 말이요?” 적송자가 말했다. “이곳은 예전의 남방처럼 변하겠지요.”

황제는 이 말을 듣고 놀라고도 두려웠다. 내가 아마도 정말 늙어서 쓸모없게 되었나? 어찌 이 지경까지 어리석어졌단 말인가? 이리도 어처구니없이 보물을 옮겨 가라고 인사까지 하며 기증하다니? 아니야. 이것은 전욱이 나를 해한 것이야. 그는 마음속으로 전욱이 원망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적송자가 또 말했다. “태산을 옮겨가는 것 외에도 제가 이곳에 온 것은 황제의 명칭을 바꾸기 위함입니다. 황제께서는 이후에 더 이상 중앙의 천제로 불릴 수 없습니다.” 황제가 놀라서 물었다.

“그건 어째서요?” 적송자가 말했다. “황제께서는 당연히 태산이 중앙천제의 보좌라는 것을 알고 계실 테지요. 기왕 태산이 남쪽으로 옮겨가게 된 이상 염제께서 자연적으로 중앙의 천제로 불리셔야지요.” 황제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이럴수가! 태산을 옮기지 않겠소. 난 그렇게 미련하게 태산을 기증할 순 없소.”

적송자가 말했다. “황제께서 이리 번복을 하시니 태산을 옮기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첫째 조항은 어떻게 하지요?” 황제가 말했다. “이런 조건이 없었던 걸로 치구려. 돌아가서 염제에게 두 번째와 세 번째 조항만 완수하라고 전하시게!” 적송자는 이 말을 듣고 희희낙락하며 남방으로 돌아갔다.

전욱은 당시에 일이 있어 외출을 했다가 돌아와 염제가 제 1조항을 포기했다는 말을 듣고 황제에게 왜 그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제 1조항을 쉽게 포기했는지 책망하며 물었다. 황제는 마침 그를 원망하고 있던 차라 그 김에 그의 따귀를 몇 대 때리니 전욱은 맞아서 귀밑머리까지 빨개졌고, 황제는 전욱을 호되게 욕했다.

“이런 미련한 놈 같으니라고. 공연히 내게 보물을 기증하게 해? 그러고도 모자라 내 중앙 천제의 존칭을 빼앗기게 하려 하다니, 도대체 속셈이 무엇이냐? 네가 평소에 내게 충직하게 대했던 걸 생각지 않았다면 이번에 넌 내 손에 죽었을 거다. 어서 내 눈에서 꺼져버려. 이후에 다시는 태산을 옮기는 일을 거론하지 말라.”

전욱은 애꿎게 황제에게 얻어맞고 욕을 먹고 하마터면 그의 목숨까지 잃을 뻔 했으니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말도 못하였으니, 이 일을 어찌 감히 다시 거론하겠는가.

적송자는 남방으로 돌아와서 황제의 말을 염제에게 전했고, 염제는 이 말을 듣고 아주 기뻐하며 즉시 황하를 다스리는 일에 착수했다. 그는 많은 민중들에게 황하 양안에 광범위하게 토양을 개척하여 화초와 나무를 심게 하니 몇 년 안 되어 황하의 물이 과연 맑아져 바닥이 보이게 되었다. 남은 일은 양안을 연결할 수 있는 커다란 다리를 가설하는 것이었다.

원래의 다리는 옛날 천신이 가설한 것이라 전해지는데, 염제와 황제의 전쟁 때 이미 불타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이렇게 큰 물건을 강바닥에서 건져 올린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 했고, 또한 어차피 이미 불에 타서 심하게 파괴되어 다시 가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물결이 세차게 용솟음치는 광활하고 넓은 강 위에 커다란 다리를 놓는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러나 염제는 안 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괴벽스런 힘이 있어 말했다. “옛사람이 했던 일은 우리도 감히 할 수 있고, 옛사람이 못했던 일이라 해도 감히 할 수 있소.” 천하통일과 형제가 한데 모이는 일을 위해서 염제는 남은 목숨을 내걸고 결심했다. 그는 우선 청사진을 다 그린 다음 확실하게 행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웠는데, 전해지는 바로는 이 계획은 천신을 놀라 자빠지게 했다고 한다. 그의 지혜와 능력이 천신과 견줄 만했기 때문이다. 계획이 서자 염제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는 민중을 동원하여 나무를 베는 사람은 나무를 베고 돌을 채취하는 사람은 돌을 채취하며, 백성은 부족의 통일 사업을 위해 전력으로 행동하여 노인, 부녀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하였다. 염제는 사람들의 열정에 매우 감동하여 그의 자신감을 더욱 굳혔다.

염제는 젊음을 되찾은 듯이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젊은 청년들과 함께 노동하였고 온종일 몸을 물 속에 담그고 있어 몸의 근육이 짓무르고 피고름이 흘렀다. 사람들은 염제가 힘이 들어 저렇게 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그에게 뭍에 가서 쉴 것을 간절하게 권했다. 하지만 염제가 어디 들으려 하는가? 그가 말했다.

“나도 민중의 한 사람인데 민중이 하는 대로 나도 해야지요. 민중이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내 어찌 고통을 두려워하겠소?” 민중이 염제가 이렇게 괴로움을 견디며 노력하는 것을 보고 어찌 남몰래 쉬고 숨어서 게으름 피우며 움츠러들겠는가. 모두들 의욕이 넘쳐 모든 작업 현장이 열기로 가득했다.

대중이 모두 뜻을 모아 협력한 덕에 공사는 매우 빨리 진전되고 곧 한데 합칠 것을 보니 모두들 매우 기뻐했다. 이 결정적인 시기에 요귀가 출현하여 소란을 피웠다.

알고 보니 전욱이 염제가 곧 일의 완성을 눈앞에 둔 것을 보고 화가 나고 다급하여 이 일을 요귀에게 알린 것이다. 염제와 황제의 전쟁은, 이 요귀가 원흉이자 장본인으로 그가 염제와 황제 두 형제간의 증오와 다툼을 일으켰고, 그가 이 몇 차례의 전쟁의 불길을 야기했으며, 대지의 분열을 초래했던 것이다. 지금 염제와 황제간의 장벽이 제거되고 양안이 서로 왕래하며 부족이 통일 될 것이 눈앞에 이르자, 그는 당황하고 초조하여 온몸의 힘을 다 발휘하여 이를 방해할 것을 결심했다.

이리하여 요귀가 직접 출정하여 벼락을 이용하여 필사적으로 다리를 공격하여 큰 물결이 홍수를 이뤄 결국은 사람들이 온 힘과 정성을 다해 건축한 다리를 무너뜨렸다.

염제는 천신만고 끝에 건축한 다리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마음에 비통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는 강한 사람이었고 태어나서 이제까지 이러한 큰 재난과 어려움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허리를 펴고 눈물을 닦으며 사람들을 인도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사람들은 홍수 속에서 나무와 큰 돌을 끌어내어 전보다 더욱 크고 좋은 다리를 만들었다. 요귀는 물론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다시 와서 파괴할 것을 기도했으나 천신이 요귀가 이렇게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하는 것을 보고 이 일을 옥황상제에게 아뢰었고, 옥황상제는 탁탑천왕(托塔天王)을 보내어 요귀를 체포해 갔다.

다리가 마침내 다 건설 되고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세차게 굽이쳐 오르는 강 위에 우뚝 솟았다. 사람들은 다리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웃으며 며칠을 족히 기뻐하고 즐겼다. 오래지 않아 염제와 황제는 다리 위에서 만났고, 두 노인은 뜨거운 눈물을 눈에 그득 담고 감격에 마지않았으며 이때부터 과거의 개운치 못했던 감정은 모두 버리고 대지는 다시 통일되었다. 이 다리가 부족의 통일대업에 쏟은 위대한 공헌을 기념하기 위해 두 노인은 친히 이 다리를 ‘염황교’라고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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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탁탑천왕(托塔天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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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을 지키는 신塔神 보탑이란 파고다 산스크리트어의 스투파는 인도에서 유래도었으며 사리(舍利)가 묻혀 있는 곳을 표시하는데 사용되는 보관소라는 의미이다. 보탑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별난 신앙행위의 대상물로서 상서로운 징조로써 기념하기위하여 또는 단순히 관측탑으로서 세워졌다. 불타가 입적하신 후 화장한 다음 그재를 84,000 등분으로 나누어, 그것들 하나하나를 동방의 각처에 안치하였는데 바로 그 성스러운 곳을 표시하기 위하여 보탑을 하나씩 세웠다. 신체의 어떤 기관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 에서도 손상되지 않아 그대로 붇었다고 한다. 중국에선 3세기에 최초로 세워졌다. 보통 9층 혹은 7층을 선호하며 원형이나 팔각형의 벽돌 구조물로 세워졌다.그에반하여 인도에서는 지금도 물론 불타를 숭배하긴하나 비쉬누가 아홉번째로 화현한 것으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9층 보탑은 이러한 사정과 어떤 관련 있는 것으로 추측되어질뿐 그 숫자적의미가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다. 흔히 보는 보탐은 7층 석탑이며 이 숫자는 다른 시기에 존재했었다고 하는 일곱불타에 대해 신비적으로 암시하는 의미이다. 때때로 주변 지역에 좋은 토점적 효과를 얻기 위해 보탑이 세워지며, 한 지방의 풍수를 호전시키기 위해 간혹 중국인의 붓의 형식으로 만즌 작은 석탑(文筆塔)이 세워지기도 한다.


이러한 보탑을 지니고 있는 신을 탁탑천왕(托塔天王)이라고 하는 것이다.이 신은 인도인들의 바이랴파니와 일치하며 신이 손에 쥐고 있는 톱니 모양의 번개를 중국인들은 탑으로 잘못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 신은 보통 탑을 휘두르고 있는 것처럼 표상되고 있다.


중국신화에서 가장 자주 언급도는 영웅의 하나가 바로 탁탑천왕(托塔天王)이다. 그는 이천왕(李天王), 즉 탁탑(托塔)이라고 불렸던 이청(李靑)의 아들이었다. 이청은 전제 군주 주원장 휘하의 장수였다. 그후 신격화되어 하늘의 승상으로 임명도었다. 나질(口+那叱)은 오른쪽 팔목에 금팔찌를 차고 태어났으며 금빛 찬란한 붉은 비단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 아이는 영주자(靈珠子)의 화신이었다.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그의 키는 6척 장신이 되어 있었다. 나질이 마술팔찌의 도움으로 많은 기적과 영웅적인 행동을 감행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는 이 금팔찌를 늘어나게 할 수도 있었고, 용왕을 공격하고, 황제를 지키는 등의 무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창을 들고 다녔고 불수레 바뀌가 있어 이것을 타고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점숙가 유백온(劉伯溫)은 5행과 오장빛 나질의 신체의 여러부분들의 상호작용에 맞추어 북경의 건물을 설계하고 나질의 머리를 상징적으로 남쪽으로 배치하였다고 한다. 영락제(永樂帝)는 점성가의 설계를 아주 정확하게 따랐다고 믿어지고 있다.


托塔天王 名靖,歷史上却(去대신 谷)有其人。他是陜西人,是唐初名將,唐太宗時任兵部?書,因爲他戰功顯赫,故死後封爲「衛國公」,又因死後經常顯靈,爲百姓救危解厄,百姓爲其建廟供奉,於是道?唐時候,李靖漸漸被神化了。在《封神演義》中,托塔李天王是陳塘關的總兵,生子口+那咤,因口+那咤鬧海,李靖爲息事寧人,逼口+那咤自殺。那炸死後,以蓮花復生,尋李靖復仇,李靖不敵,幸遇燃燈古佛贈玲瓏寶塔,將口+那咤?在塔內,而被熊熊的佛光所攝。李靖有此寶塔,便成爲「托塔李天王」。在中國的佛門中,北方的多聞天王,就是「托塔李天王」的前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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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80. 송 태조 조광윤(趙匡胤)과 교유한 ‘태식(胎息)’ 수면법의 대가 진단노조(陳摶老祖)  안원전   2004/10/07  10193
31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9.독초에 중독되면 차(茶)로 해독한 신농(神農)과 차경(茶經)의 저자 다신(茶神) 육우(陸羽)  안원전   2004/10/04  5126
31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8. 2500년 이전의 동주(東周) 시기 하남(河南) 낙양(洛陽) 주신(酒神) 두강(杜康)신화  안원전   2004/09/24  4617
31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7.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용뇌석(龍腦石)과 용조석(龍爪石)&장례식 장면 전설《염제릉사화(炎帝陵史話)》  안원전   2004/09/13  4873
31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6.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4-신비로운 녹원(鹿原) 백로가 조문하다 [1]  안원전   2004/09/02  4523
31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5.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3-머리를 써서 청와(靑蛙)를 단죄하다.  안원전   2004/08/26  3668
31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4.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2-태씨(駘氏), 태악(太岳)의 아내 원강(元姜)과 간통하여 의형제 태악(太岳)을 죽인 사건을 교묘히 판단하다.  안원전   2004/08/23  3876
31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3.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1-간신 영신(佞臣)을 제거하다  안원전   2004/08/17  4060
31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2.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장강(長江:양자강)문명의 기치  안원전   2004/08/10  6275
31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1. 요귀 수괴 흑풍괴를 물리친 동이족 신농(神農)의 거문고  안원전   2004/07/26  5047
30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0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적송자(赤松子)의 민간전설 [1]  안원전   2004/07/19  483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9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황제의 민간전설  안원전   2004/07/15  4422
30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8 《천금요방(千金要方)》과 《천금익방(千金翼方)》의 저자 약신(葯神) 손사막(孫思邈)  안원전   2004/07/13  4877
30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7 신필 마량(神筆馬良)의 일심 경지  안원전   2004/07/09  4536
30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6. 도가소설 봉신연의(봉신방)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진 나타 [1]  안원전   2004/07/06  4787
30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65 상(商) 주왕(紂王)의 독량관(督梁官)에서 주왕(周王)의 장수가 되어 상 주왕(紂王)을 친 흥하의 두 장수(哼哈二將) 정륜(鄭倫)과 진기(陳氣)  안원전   2004/06/19  4914
30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4 지행선(地行仙)  안원전   2004/06/19  4323
30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3. 공평무사 하고 시비가 분명한 정의의 화신 오누이 염라왕(閻羅王)  안원전   2004/06/14  4740
30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2 밤에 나돌아 다니며 사람들의 선악을 조사한다는 전설 중의 야유신(夜游神)  안원전   2004/06/14  4126
30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1 갈홍의 부인 포고(鮑姑)와 포고정(鮑姑井)  안원전   2004/06/09  4227
29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0《포박자(抱朴子)》의 저자 신선 갈홍(葛洪)이 가난뱅이 아들에서 대학자가 된 이야기  안원전   2004/06/08  4355
29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매트릭스와 현대문명(By 강정석 동아제약)  안원전   2004/04/20  8409
297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004,4.15총선에 부치는 글(수도명상코너에서 옮김)  안원전   2004/04/16  4401
29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9-동이 9려,한겨레 핏줄 회이(淮夷)족 후예 월족(越族)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안원전   2004/04/07  14928
29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8-문신(門神) 진경(秦琼)과 위지공(尉遲公)(한반도도 조선말까지 이 풍습이 전해짐)  안원전   2004/03/29  6265
29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7-남북조 시기의 북방 소수민족의 한 아가씨 마고(麻姑)에 얽힌 “마고가 장수를 준다(麻姑獻壽)”는 이야기 [2]  안원전   2004/03/25  4594
29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6-변소의 신(神) 자고신(紫姑神)  안원전   2004/03/25  4967
29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5-상원부인(上元夫人)과 종요  안원전   2004/03/22  4791
29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4-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들 토지신(土地神)과 주원장  안원전   2004/03/22  5417
29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3-조왕신(竈君)의 기원,삼국시대 위(魏)나라 세양(細陽) 사람 장단(張單)  안원전   2004/03/16  4316
28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2-남송(南宋) 항금(抗金)의 영웅인 악비 수하의 맹장 우고(牛皐)와 성황신(城隍神)  안원전   2004/03/16  5533
28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1-도신(濤神)이 된 절강성 항쪼우(항주) 전단강의 오자서  안원전   2004/03/15  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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