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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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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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35. 《국어(國語)》의 작자는 좌구명(左丘明)인가?

《국어(國語)》의 작자는 좌구명(左丘明)인가?


*<<국어(國語)>>는 책이름으로 춘추시대에 좌구명(左丘明)이 찬했으며 21권으로 구성되었다. 주(周)、노(魯)、제(齊)、진(晉)、정(鄭)、초(楚)、오(吳)、월(越) 등 8국의 사적을 분별해 기록했다.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일어 날 때로부터 노나라의 도공(悼公)에 이르기까지 공히 500여년의 역사를 다루되 나라의 벼리가 되는 역사를...혹 칭하기를 <춘추외전(春秋外傳)>이라고도 한다.[書名。春秋時左丘明撰,二十一卷。分別記載周、魯、齊、晉、鄭、楚、吳、越等八國的事蹟,自周穆王起,至魯悼公止,共歷五百餘年,為一分國紀事之史。或稱為 ‘春秋外傳’。]
*우리나라 청주 좌씨(淸州左氏:채시라 어머니가 좌씨라 함);좌씨(左氏)는 중국(中國) 노(魯)나라 때의 태사(太史) 좌구명(左丘明)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좌구명은 유명한「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주석(註釋)한 대학자(大學者)이자 유학자(儒學者)로 후배인 공자(孔子)도 그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우리나라 청주 좌씨(淸州左氏)는 원(元)나라 때 중국(中國) 변경( 京)에 살다가 고려 말(高麗末)탐라(耽羅) 목마장(牧馬場)의 감목관(監牧官)으로 건너와 정착(定着)하게 된 좌형소(左亨蘇)를 시조(始祖)로 합니다. 제주도(濟州島)가 발상지(發祥地)인 좌씨는 형소(亨蘇)가 죽음에 이르러 "사람은 그 뿌리를 잊어서는 안된다."하며 대대로 살아오던 중국(中國) 산동성(山東省) 청주(靑州)를 본관(本貫)으로 할 것을 유언으로 남겨 후손들이 청주(靑州)를 관향(貫鄕)으로 삼았으나, 1922년 조선 호적령(戶籍令)에 따라 청주(靑州)라는 지명(地名)이 한국에 없어 음(音)이 같은 청주(淸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습니다.그후 후손들은 제주도(濟州島)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으며, 고려 때의 명의(名醫) 자이(自以)는 고려 왕후의 중병을 완쾌시켜 이에 탄복한 왕으로부터 그가 살던 한동리(漢東里)일대의 토지를 하사(下賜)받았는데 지금도 그 곳은<좌가장(左哥場)>으로 불린다고 합니다.후손 시우(時祐)는 한말(韓末)의 철종(哲宗)과 고종대(高宗代)에 걸쳐 유학(儒學)으로 학명(學名)을 떨쳤으며, 향교(鄕校)에서 많은 후진을 양성하여 훌륭한 가문을 빛냈습니다.







《국어(國語)》는 중국 최초의 국별사(國別史)로 총 21권이고 서주(西周) 말년과 춘추(春秋)시기 주(周), 노(魯), 제(齊), 진(晋), 정(鄭), 초(楚), 오(吳), 월(越) 8국의 역사가 각각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인물의 언론의 기록과 대화를 위주로 하는데, 그 중에는 인구에 회자되는 역사 고사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소공(召公)이 려왕(厲王)에게 간하여 백성의 원망을 그치게 한 일(《주어(周語)》), 구천(勾踐)이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결국에는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일(《월어(越語)》), 관중(管仲)이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패권을 잡은 일(《제어(齊語)》) 등등은 대대로 후세 사람들의 입으로 전송되었다.

《국어》는 춘추전국 시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생동적이고 해학 넘치는 언어 역시 후세 문학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국어》의 작자가 누구인지는 긴 세월동안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양한(兩漢)의 대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은 “좌구명은 실명을 했음에도 《국어》를 지을 수 있었다(左丘失明, 厥有《國語》)”고 말했다.(《보임안서(報任安書)》)  동한(東漢)의 역사가 반고(班固)도 말하기를, 좌구명이 《좌전(左傳)》을 지은 후에 “또 다른 이야기를 편집하여 《국어》를 편찬하였다(又纂異同爲國語)”고 했다.(《한서 사마천전찬(漢書 司馬遷前贊)》)

삼국시대 오(吳)나라 사람 위소(韋昭)가 《국어》에 주석을 달 때도 서문에서 좌구명이 《국어》를 지었다고 여겼다.  당대(唐代)의 역사가 유지기(劉知幾) 또한 같은 견해를 지지하며 “《국어》학파는 가장 먼저 좌구명에게서 나왔다(《國語》家者, 其先亦出于左丘明)”고 했다. (《사통 육가(史通 六家)》)

그러나 유지기 이후의 당대(唐代) 대 문학가인 유종원(柳宗元)은 처음으로 상반된 의견을 제기하였는데, 그는 《비국어(非國語)》2편을 지어 좌구명이 《국어》의 작자라는 것을 부정했다.

이후로부터 송나라 사람 유세안(劉世安), 여대광(呂大光), 주희(朱熹), 정초(鄭樵)에서 청나라 사람 우동(尤侗), 피석서(皮錫瑞) 등에 이르기까지 좌구명이 《국어》를 지었다는 전통적인 견해에 대해 의심을 제기했다.

현대 학자들 중에도 이러한 의견의 불일치는 여전히 존재한다. 서중서(徐中舒)는 《좌전》, 《국어》 “이 두 책 중의 대부분 사료는 모두 좌구명의 입에서 나왔음이 분명하다. 고대의 학술은 전통적인 체계를 가장 중시하므로 최초의 전수자가 바로 작자인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좌전〉의 작자 및 그 출판 연대(〈左傳〉的作者及其成書年代)》참고)

장맹륜(張孟倫)은 “《국어》는 좌구명이 편찬한 것이다. 사마천은 이를 《사기》의 자료로 썼을 뿐 아니라 《자서(自序)》에서도 ‘좌구명이 실명하였으나 《국어》를 집필할 수 있었다(左丘失明, 厥有《國語》)’고 말한바 있다. 이는 우리에게 《국어》가 좌구명이 편찬하였을 뿐 아니라 그가 실명한 후에 ‘분발하여 지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려주므로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의심을 할 필요가 없다. "

“고대와 비교적 가까운 한(漢)과 위(魏)의 저명한 학자들이 《국어》를 깊이 연구하여 정밀한 주석 작업을 펼쳐 모두 《국어》가 좌구명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의심하지 않았고, 송대 유학자 송상(宋庠) 역시 《국어보음(國語補音)》을 지어 이러한 견해가 매우 정확하다고 생각하였다.”고 하였다.(《중국사학사(中國史學史)》상책 참고)

이종업(李宗邺)도 “한대(漢代)는 춘추(春秋)시기와 매우 가까우므로 한나라 사람이 《국어》가 좌구명이 지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믿을 만하다고 여겨진다”고 하였다.(《중국역사 주요 서적 소개(中國歷史要籍介紹)》참고)

그러나 역시 상술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왕수민(王樹民)은 “《국어》와 《좌전》은 기본적으로 같은 기간의 역사적 사실을 다른 형식으로 서술하였는데, 이 점은 세인들이 매우 중시하였다. 《좌전》을 경학가들이 떠받들면서부터 이에 따라 《국어》 역시 《춘추외전(春秋外傳)》으로 칭해지며 좌구명의 작품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사실 근거가 없다.”

“《국어》는 총괄하여 편집한 책으로 한 시대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이는 이 책의 형식과 내용에서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각 편의 작자와 전체 서적의 편집자는 이미 현재로서는 조사할 도리가 없으며 또한 무리하게 찾아낼 필요도 없다.”고 했다.(《사부요적해제(史部要籍解題)》참고)

고지화(顧志華)는 “《국어》는 총괄하여 편집한 책으로 이는 단지 춘추시기의 여덟 국가만을 반영하며 기록된 각 국가의 역사적 사실의 상세함과 간략함이 서로 다르며 서법 역시 달라 한 사람이 쓴 문장이 아닌 것처럼 보이며 당시 각국의 사관이 역사의 사실을 기록한 후에 누군가가 이러한 자료의 기초 위에서 정리, 가공, 윤색을 가하여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최후에 원고를 마무리한 자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국어》의 출판 연대도 이미 확실히 고증할 수는 없으며 대략 전국(戰國) 초년으로 각 편마다 약간씩 다르다.”고 하였다.(《중국사학명저제해 국어(中國史學名著題解 國語)》참고)

이렇게 볼 때, 어느 방면에서 상대를 설득시키려 하던 간에 반드시 좌구명의 확실한 생활 연대 및 사적에 대해 더욱 깊이 고증하여야만 하며 또한 《좌전》, 《국어》의 시간의 범위한도, 서법의 체제, 언어의 풍격, 사상 관점 등을 포괄하는 역사 기록 방면의 차이점에 대해서 더욱 상세히 분석하여야 하겠다. 《국어》의 작자가 누구인가를 탐구하는 것은 의미 없는 논쟁이 아니라 《좌전》과 《국어》의 연구수준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일환이다.
(유려(劉麗))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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