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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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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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3-천신(天神)의 아수(啞水: 마시면 벙어리가 되는 물)-동물이 말을 못하게 된 기원 [이족(彝族)]

천신(天神)의 아수(啞水: 마시면 벙어리가 되는 물)





  -동물이 말을 못하게 된 기원 [이족(彝族)]




이족(彝族)은 오만의 후예 중 하나이다. 오만(烏蠻)은 중국 남방의 오래된 부족으로 유웅족 황제 헌원씨(軒轅氏) 집단에서 갈려나간 호씨족(虎氏族)을 기원으로 한다.(이로 보면 웅족과 호족은 황제헌원이전인 환웅 배달국 개국시절 있었던 것이지만<곰과 호랑이 신화가 단군개국때 처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황제헌원 이래의 웅족과 호족의 분파만 본다 해도 사실은 그 근원이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춘추시기에 호씨족은 초인의 공격을 받아 대거 남쪽으로 이주하였고 그 중 한 갈래는 사천(四川)․운남(云南)․귀주(貴州) 등의 지역으로 진입하여 현지의 강인(羌人)과 결합하여 오만을 형성했다. 오만의 활동상황과 관련하여 당대(唐代)의 사학자 번작(樊綽)의 《만서(蠻書)》에 약간의 기록이 있다. “서찬은 백만이고, 동찬은 오만이다.(西爨, 白蠻也; 東爨, 烏蠻也)” 당(唐)말에 오만의 일부가 북쪽으로 이주하여 지금의 검동북(黔東北)․상서(湘西)지역으로 진입했다. 이 오만의 한 갈래는 지금 토가족의 기원 중 하나를 형성했다. 오만이 지금의 토가족 지역에 진입하여 활동한 상황 및 오만과 토가족의 관계에 대해서 왕승요(王承堯) 등이 작품에서 상세하게 논술하였는데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동이 토쟈쭈(토가족) 선민의 일부분이 된 오만(烏蠻) 문화는 토쟈쭈(토가족) 문화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고, 오만문화 중의 몇몇 요소는 토가족을 계승한 것이다.  오만(烏蠻)이 백호(白虎)를 경시하는 것과 토쟈런(土家人)이 백호를 쫓아냄이 그것이다/ 오만(烏蠻)의 선민은 ‘호방(虎方)’의 민족이지만, 오만의 후예 중 하나인 이족(彝族)은 오늘날에 이르러서 오히려 흑호(黑虎)를 토템으로 하고 백호를 경시하여 백호를 쫓는 습관이 있다. 유요한(劉堯漢)․양화삼(楊和森) : *《이족과 토가족이 모두 호(虎) 복희에서 기원하다.(彝族與土家族同源于虎伏羲)》에서 《토쟈쭈(토가족) 역사토론회 문집(土家族土會文集)》(내부자료)에 기재됨.  상서북의 일부 토쟈런(土家人) 역시 백호를 쫓아내는 신앙습관이 있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백호는 상서롭지 않은 동물이었다. 아래에서 이족이 동이족임을 알 수 있는데 호남성 장쟈지에(장가계)와 무릉원 도원현의 토가족은 그 뿌리가 동이족인 오만(烏蠻)이다. 또 이족은 같은 호족 계열인 바이쮸(백족)과 그 근본이 같기때문에 동이족인데 지나대륙의 소위 55개 소수민족은 모두 똥이쮸(동이족)이라고 보면 99% 맞는다. 이러한 사관이 정립되어야 지나사가들이 꽁쯔(공자)의 춘추사관과 쓰마치엔(사마천)의 사기 이후 왜 대륙을 석권한 동이족을 각개격파하여 분리해 별도의 민족으로 대하여 그 아이덴티티를 없애고 지나한족의 정통성을 정립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필자는 아래 김병호 박사가 서술하고 있듯이 이족 속에 김치와 고추장이 있다는 것 만으로 이들이 서남이족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동이족이라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필자는 옛 월나라 수도였던 절강성 샤오싱(소흥)에 엄채동순탕과 고추장이 있는 것 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족 속에 고추장 김치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민족증거의 실물이라 생각한다.

이족인은 성격이 호탈하고 소박하고 민족풍습도 독특하여 높은 산과 비탈에 저택을  만들고 몸에는 차으르와라는 탄자를 걸치고 다닌다. 이족인은 외형이 마치 날개를 핀 독수리와 같아서 예로부터 "량산의 독수리" 라는 미칭이 있다. 이족의 복장은 풍부하고 다채롭다. 여성은 꽃을 수놓은 소매가 긴 저고리와 주름이 많은 치마를 입는데 치마의 가는 여러 색깔로 된 천으로 만들어 놓아 색채가 서로 어울리고 보기에 아름답다.이족의 젊은 부녀들은 머리에 꽃을 수놓은 기와모양의 수건을 쓰고 있으며 수건의 앞부분은 이마를 가리고 있어 마치 모자의 앞부분과 같다. 어떤 이족의 부녀들은 흑색의 수건을 쓰고 귀걸이를 걸기도 좋아한다. 이족의 남녀들은 집을 나설 때 모두 "차르와"라는 옷을 입는데 마치 이 옷의 모양은 마치 키작과도 같다.

호씨족(虎氏族) [이족(彝族)] Click here! 백의민족 백족(白族) 늑묵인(勒墨人)이 전하는 웅족과 호족의 신화전설Click here! 이족(彝族) Click here!


*원(元)나라 때에는 뤄뤄[羅羅], 명(明)·청(淸)나라 때에는 만쟈[蠻家]·이쟈[夷家] 등으로 불렸다. 중국에서의 공식명칭은 이족(彛族)이다. 인구 약 485만(1978). 쓰촨[四川]·구이저우[貴州]·윈난[雲南] 등의 산지 및 하곡(河谷) 사면(斜面)에 거주한다. 쓰촨 남서부에서 꿰이저우 서부 및 윈난 동부에 걸쳐 사는 이족 총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동부 이족거주권에서는 노스 또는 니라고 자칭한다. 또한 윈난 서부일대의 서부 이족거주권에서는 로로포라고 한다. 이족 최대의 집단 거주지인 쓰촨성 량산[凉山] 이족자치주(自治州)에서는 주 총인구의 67%에 해당하는 69만 명의 이족이 살고 있다
*  라라면전(羅羅緬甸)계에 대해서, -라라(羅羅)는 어쩌다가 과라(  :긴꼬리원숭이 과, 오랑캐이름 라)등의 이름을 창작했다. 무릇 서장면전(西藏緬甸) 및 라라가 합해 서장면전족이 되었다고 보는 학자가 있으나, 임혜상은 장(藏)족을 하나의 독립된 종족으로 보고, 라라 및 중국에 있는 면전족을 합해서 한 종족으로 보았다.라라는 옛날부터 중국 서남부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천의 남쪽, 운남의 북쪽에 많이 살고 있다. 이 종족은 한(漢)대에 서남부 만(蠻)족의 일부분이 되었다. 삼국시절의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한 적이 있는데 그 가운데는 또한 바로 이 종족이  있었으며, 남북조 시대 이후에는 양찬만(兩 蠻:불땔 찬, 부뚜막 찬), 송대는 오몽(烏蒙)이 되었으며 원(元) 이후 라라(羅羅)가 되었다.라라는 본 줄기를 제외하면 율속(栗粟), 라무(羅 :별이름 무), 와니(窩泥:움집와, 진흙니,왜에 와니족이 있음이 밝혀져 서래설의 명분이 됨) 등의 부족이 있었다. 중국에 있는 면전족은 운남 서쪽 변경에 있어, 아창, 라해, 마라, 아계, 객흠의 제 부족이 있다. 라라의 체질은 대략 백인종의 특징이 있는데, 이는 거듭해 혼혈함으로써 백인종의 성분이 서서히 스며들어간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이족(彛族)은 주로 운남성(云南省),사천성(四川省),귀주성(貴州省),광서성(廣西省)에 분포되어 살고 있으며,인구는 약 5,453,5 00명이다.(1982년 통계)이족은 자칭 지역에 따라서 『눠수』,『미사』,『라수』,『뤄뤄』,『사니』,『아씨』라 불리웠으나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이족(彛族)"으로 통칭하게 되었다.이족은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다. 언어는 한장어계(漢藏語系) 장면어족(藏緬語族) 이어지(彛語支)에 속하며 6개의 방 언으로 구분된다. 1975년에는 사천 <이문규범시행방안(彛文規範試行方案)>을 제정하고,819개의 규범이족문자(規範彛族文子 )를 제정했다.해방전 거주지가 분산되고 역사,지리 조건이 바뀜에 따라 경제가 균형있게 발전하지 못했으며 사회 경제 구조면에서도 봉건제 도와 노예제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사천의 대량산(大凉山)과 운남의 소량산(小凉山) 지역은 장기간 비교적 완전한 노예제 도를 유지하고 있다.이족은 농업을 위주로 하며 대부분이 산지에 살고 있다. 기온이 낮은 고산지역에서는 메밀,감자,콩류 등을 재배하며 도시 부근 에서는 벼농사를 위주로 하고 산잣나무,가문비나무,녹나무,목면 등의 경제작물도 생산하고 있다.(문화예술):이족의 문화예술은 오랜 역사를 가지며,문자로 기록된 역사,문학,의학 등의 작품과 민간 구전된 문학은 그 내용이 다양하다. 특히 문답형식으로 자연관을 설명한 <우주인문론(宇宙人文論)>은 이족 철학사상을 나타내는 중요한 작품이다. <서남이지(西南夷志)>는 이족의 원천,발전,부락분포,족보와 풍습,습관 및 철학,과학기술 등에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장편 서 사시인 <아스마(阿詩瑪)>,<아씨안의 노래(阿細人的歌)>,<매이거(梅葛)> 등은 짙은 생활 속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각 지역마다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이족 책자들이 남겨져 있으며 이미 수 천 종류를 발견하고 점차적으로 번역,정리,출판되고 있다. 또한 <주동이문(鑄銅彛文)>이라는 비석에 새긴 이족 문자도 있다. 가무 역시 이족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이다. 이족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 모습들을 늘 시나 노래 로 표현한다. <판사>는 결혼이나 연회석 등의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서로 화답하는 것으로 이족의 독특한 가요에 속한다. 이족의 가무는 민족적 특색을 나타내며 무도는 늘 노래를 동반한다. 무도 동작은 대체로 같고 통상적으로 피리,삼현(三弦),월금( 月琴) 등 악기로 반주한다. 오래된 무도 동작은 동물의 동작을 모방한 <떠우양(斗羊)> 등이 있고 전쟁을 상징하는 <따 우우(刀舞)> 등이 있으며 풍수를 경축하는 <따구우(大鼓舞)>가 있다. 전통 공예예술은 칠회(漆繪),자수,조각,회화 등이 있다. 회화(繪畵)는 구름(雲紋),파도(水波),소의 눈(牛眼),말의 이(馬齒) 등의 무늬가 많으며 이족 여성의 옷에 수놓은 화초,나비,새 등의 무늬는 정교하고 산뜻한 아름다움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풍속습관 주거형태): 양산(凉山)지역의 건축은 토목구조로서 지붕이 양쪽으로 경사졌으며 작은 나무 판자 를 넣고 돌로 눌렀 다. 이것을 <와반우(瓦板)>라고 한다. 운남의 중부 및 동남부는 지붕이 흙으로 된 토장방(土掌房)이다. 광서 이족 지역에는 <간란(干欄)>식의 주택도 있다. (깐란식은 동이족의 주거형태)동이족의 간란식 주거형태Click here! (음 식) : 대부분 옥수수,메밀,감자를 주식으로 하며,벼의 생산량은 많지 않다. 큰 덩어리 고기 를 먹기 좋아하는 데 그것을 <퉈퉈육>이라 한다. 시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술,차를 즐겨한다.(복 장): 남자는 검정색상의 옷을 입는데,상의는 소매가 좁고 앞단추가 왼쪽으로 경사졌으며, 하의는 가랭이가 넓고 긴 치마를 입으며,앞치마와 허리띠,머리를 싸매는 수건도 있 다. 남녀가 외출시 몸에 <차얼와>를 걸치 는데 이것은 망토와 같은 것으로서 무릎까지 오는 긴 술을 단다. 양털실로 짰으며 대부분이 검정색이다. (혼인풍속): 대부분의 젊은 남녀가 자유스럽게 교제하며 법적으로도 혼인 자유권이 주어진다.(장례의식): 양산지역은 화장(火葬)을 하고 운남지역 일대는 토장(土葬)을 행한다.(주요절기): 이족 제일의 큰 전통 절기는 횃불절 훠바지에(火把節)이다. 이 횃불절(火把節)은 양력 6월 24일 전후로 열리는 데 양산지역에서는 매 횃불절 때마다 대부분이 마을을 단위로 해서 집회를 갖는다. 사람들은 횃불을 손에 들고 주택과 논밭을 돌며 횃불을 논뚜렁에 꽂아 벌레를 쫓아낸 다. 다 돌고난 후에는 온 마을이 밤새도록 함께 술을 마시며 노래와 춤을 추며 즐긴다.(예 절): 이족은 열정적이고 손님을 좋아하며 술로 손님을 대접한다. 술이 없으면 경의가 없다 는 말도 있다. 만 약 주인이 권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주인을 무시한다고 여긴다.(금기사항): 집에서 휘파람 혹은 큰 소리를 금하며,발로 화로불을 끄지 않고 손으로 화로불 위에 있는 삼각형 선반 을 만지지 않는다. 남자는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을 가장 금하고 있는데 만일 그것을 어기면 최대의 모욕으로 여긴 다. 일부 지역에서는 말,당나귀,노새 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기도 한다.(종교신앙):양산지역의 종교신앙은 주로 자연신과 조상을 숭배한다. 자연숭배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정령과 귀신의 신앙이고,조상숭배는 주로 부모의 영혼의 안녕과 송령(送靈)으로 부계 씨족 혈통을 유지하는데 생겨난 조상숭배의 성대한 의식으로 표현한다. 운남,귀주 지역은 도교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세기 말 천주교와 기독교가 이 지역에 전해졌지만 현재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족(彝族)1Click here!이족(彝族)2Click here!김치,된장이 있는 이족(彝族)3김병호Click here!



  
아주 먼 옛날, 인간 세상의 모든 동물이 말을 할 줄 알았고, 어떤 일에도 모두 의견을 내놓아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 시기의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총명해져 세상에 대한 의견이 더욱 많아지고 더욱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천신 은제고자(恩梯古玆)는 세상의 동물이 어느 날 한데 뭉쳐 그에게 반대할 것이 두려워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동물이 모두 말을 못하게 해 논쟁을 할 수 없게 할 방법을 하나 생각해 냈다.

   얼마 안 있어, 그는 마시기만 하면 벙어리가 되는 아수(啞水)를 아주 많이 만들고, 또 지수(智水)를 아주 조금 만들어 이것을 마시고 난 후에야 말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아수와 지수를 토이산길(土爾山吉)에 놓고, 맨 위는 금 쟁반을 놓고 중간은 은 쟁반을 놓았으며 아래는 단순하고 보기 싫은 나뭇잎 쟁반(木葉盤: 이어(彝語)의 이름은 소차(蘇且)로, 나뭇잎으로 만들어 잠시 물을 담는 그릇)을 놓았다.

금 쟁반 은 쟁반에는 아수를 담고 양이 적은 지수는 나뭇잎 쟁반에 담은 다음 세상의 동물은 모두 가서 물을 마시도록 명령했다. 그는 동물들에게 말했다.

“내가 ‘지혜로워지는 물’을 만들었으니 마시고 나면 더욱 총명해질 것이다. 모두들 빨리 가서 마시거라!”

   천신의 명령이라 세상의 동물은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마시고 나면 더 총명해진다는 말을 듣고 뒤질세라 앞다투어 이 물을 마시러 갔다.  이때 사람은 소식을 늦게 들어 뒤쪽에 걸어갔다. 개구리가 가장 영리해 천신의 비밀을 알고 일부러 늦게 걸어가다가 앞다투어 가는 동물에게 밟혀 다치는 바람에 혼자 길가에서 기고 있었다.

   사람이 이 모양을 보고 그에게 물었다.

“개구리 선생! 당신은 어쩌다 뒤로 밀려났어요?”

말하면서 손으로 살짝 개구리를 받쳐들고 입으로 호호 불어 안 아프게 해줬다. 개구리는 이렇게 잘해주는 걸 보고 몰래 알려주었다.

“마음씨 좋은 형, 정말 고마워요! 제가 마땅히 좋은 일을 해 보답을 해야겠군요!”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개구리 형님, 당신은 상처를 입었으니 제가 마땅히 도와드려야지요. 누가 보답을 바라고 하겠어요!”

   개구리가 말했다.

“아니에요,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니 꼭 알아야 되요. 사실 난 일부러 천천히 걷는 거예요. 나는 오늘 마실 물이 ‘지혜로와지는 물’이 아니고 바로 ‘벙어리가 되는 물’이니 절대 마셔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거든요. 마셔야 한다면 절대로 아름다운 금 쟁반과 은 쟁반에 있는 물은 마시지 말고 보기 싫은 나뭇잎 쟁반의 물을 마셔야만 해요. 조금이라도 안 마시면 안되니까 제 것도 좀 남겨주세요.”

   사람은 개구리의 말을 듣고 즉시 현장으로 갔다. 모든 동물이 금 쟁반과 은 쟁반의 물을 마시려고 다투고 있었고 마지막의 나뭇잎 쟁반의 물은 마시는 동물은 없었다. 사람은 즉시 가서 마셨다. 이 물은 맛이 좋고 입에 맞았지만 많지 않아 그가 막 한 모금 마시고 나니 거의 안 남았다. 그는 황급히 나뭇잎 쟁반을 내려놓고 남은 것을 개구리에게 남겨주려 했다.

   그가 막 내려놓자마자 구관조와 까마귀가 날아와 나뭇잎 쟁반의 물을 빼앗아 마시려고 했고 사람은 개구리에게 남겨주기 위해 급히 가로막았다. 까마귀는 막았지만 구관조는 막지 못해 돌연 물을 땅에 뿌려 다 쏟을 줄이야. 구관조가 나뭇잎의 물을 조금 마셨기 때문에 구관조는 오늘날에도 불완전한 몇 마디 말을 할 줄 아는 것이다.

까마귀는 마시지 못해 할 수 없이 은 쟁반의 물을 한 모금 마셨고 마시자마자 이게 아니라는 걸 알고 ‘틀렸다’는 뜻으로  다급히 ‘까악’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로 인해서 지금의 까마귀는 ‘까악, 까악, 까악’(틀렸다, 틀렸다, 틀렸다)하고 부르짖을 줄만 알고 말은 못하게 되었다.

   개구리가 물을 마시러 갔을 때 사람이 남겨놓은 물을 이미 구관조가 마셨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은 쟁반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때부터 개구리도 말을 못하게 되었다.

   개구리는 말을 못하게 된 것에 매우 불만을 품고 저녁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줄곧 떠들썩하게 울며 말을 배우고 싶어했지만 아무리해도 다시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소숭소(蕭崇素) 기록․정리, 사천(四川) 이족(彝族) 지구에 전래됨. 정리한 자 공동 원고.(안원전)



태양족인 동이족의 공통적 행사로 자리매김한 이족 횃불제인 훠바지에(火把節). 양자강 하류의 하모도 고고학 유적지는 바로 이족(彝族)의 본류 월족의 중심무대인데 태양신을 섬긴 유적지라 말하고 있다. 염제 신농과 태호복희의 후예인 월족과 월족에서 가지치고 나아간 이들이 바로 횃불제인 훠바지에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염제도 불꽃 염의 태양을 상징하고 태호도 크게 밝은 호 자에서 보듯이 태양을 상징한다)
안원전의 담론중
*하모도 1
*하모도 2
*하모도3
*하모도4
*하모도5
*홍산문화1*홍산문화2*홍산문화3
*홍산문화4*홍산문화5*홍산문화6
*홍산문화7*홍산문화8
*홍산문화9


이것으로 국내 최초로 소개한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 소개를 마칩니다.





31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8. 2500년 이전의 동주(東周) 시기 하남(河南) 낙양(洛陽) 주신(酒神) 두강(杜康)신화  안원전   2004/09/24  4983
31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7.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용뇌석(龍腦石)과 용조석(龍爪石)&장례식 장면 전설《염제릉사화(炎帝陵史話)》  안원전   2004/09/13  5222
31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6.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4-신비로운 녹원(鹿原) 백로가 조문하다 [1]  안원전   2004/09/02  5018
31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5.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3-머리를 써서 청와(靑蛙)를 단죄하다.  안원전   2004/08/26  3974
31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4.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2-태씨(駘氏), 태악(太岳)의 아내 원강(元姜)과 간통하여 의형제 태악(太岳)을 죽인 사건을 교묘히 판단하다.  안원전   2004/08/23  4191
31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3.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1-간신 영신(佞臣)을 제거하다  안원전   2004/08/17  4404
31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2.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장강(長江:양자강)문명의 기치  안원전   2004/08/10  6717
31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1. 요귀 수괴 흑풍괴를 물리친 동이족 신농(神農)의 거문고  안원전   2004/07/26  5386
30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0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적송자(赤松子)의 민간전설 [1]  안원전   2004/07/19  5202
30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9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황제의 민간전설  안원전   2004/07/15  4786
30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8 《천금요방(千金要方)》과 《천금익방(千金翼方)》의 저자 약신(葯神) 손사막(孫思邈)  안원전   2004/07/13  5368
30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7 신필 마량(神筆馬良)의 일심 경지  안원전   2004/07/09  4882
30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6. 도가소설 봉신연의(봉신방)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진 나타 [1]  안원전   2004/07/06  5177
30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65 상(商) 주왕(紂王)의 독량관(督梁官)에서 주왕(周王)의 장수가 되어 상 주왕(紂王)을 친 흥하의 두 장수(哼哈二將) 정륜(鄭倫)과 진기(陳氣)  안원전   2004/06/19  5267
30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4 지행선(地行仙)  안원전   2004/06/19  4659
30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3. 공평무사 하고 시비가 분명한 정의의 화신 오누이 염라왕(閻羅王)  안원전   2004/06/14  5142
30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2 밤에 나돌아 다니며 사람들의 선악을 조사한다는 전설 중의 야유신(夜游神)  안원전   2004/06/14  4465
30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1 갈홍의 부인 포고(鮑姑)와 포고정(鮑姑井)  안원전   2004/06/09  4564
29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0《포박자(抱朴子)》의 저자 신선 갈홍(葛洪)이 가난뱅이 아들에서 대학자가 된 이야기  안원전   2004/06/08  4684
29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매트릭스와 현대문명(By 강정석 동아제약)  안원전   2004/04/20  8867
297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004,4.15총선에 부치는 글(수도명상코너에서 옮김)  안원전   2004/04/16  4740
29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9-동이 9려,한겨레 핏줄 회이(淮夷)족 후예 월족(越族)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안원전   2004/04/07  15517
29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8-문신(門神) 진경(秦琼)과 위지공(尉遲公)(한반도도 조선말까지 이 풍습이 전해짐)  안원전   2004/03/29  6634
29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7-남북조 시기의 북방 소수민족의 한 아가씨 마고(麻姑)에 얽힌 “마고가 장수를 준다(麻姑獻壽)”는 이야기 [2]  안원전   2004/03/25  4949
29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6-변소의 신(神) 자고신(紫姑神)  안원전   2004/03/25  5323
29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5-상원부인(上元夫人)과 종요  안원전   2004/03/22  5140
29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4-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들 토지신(土地神)과 주원장  안원전   2004/03/22  5801
29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3-조왕신(竈君)의 기원,삼국시대 위(魏)나라 세양(細陽) 사람 장단(張單)  안원전   2004/03/16  4641
28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2-남송(南宋) 항금(抗金)의 영웅인 악비 수하의 맹장 우고(牛皐)와 성황신(城隍神)  안원전   2004/03/16  5871
28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1-도신(濤神)이 된 절강성 항쪼우(항주) 전단강의 오자서  안원전   2004/03/15  5241
28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0-탑을 받쳐 들고 있는 이천왕(李天王)  안원전   2004/03/12  4120
28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49-서왕모(西王母) [1]  안원전   2004/03/12  5326
28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48 남천문 현판과 왕희지 시절에 만들어진 옥황대제 신화  안원전   2004/03/11  4740
284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7 동이족 복희(伏羲)와 여와(女媧)가 낳은 딸 낙신(洛神) 신화  안원전   2004/03/11  5294
283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6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8-한족 문화의 영향  안원전   2004/03/11  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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