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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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35.상고 대륙사에 있어 동이 한겨레의 봉황(鳳凰) 토템(圖騰)에 대해 말한다

*상아 나비형 그릇(象牙蝶形器);동이족 유적지인 양자강 하류 샤오싱(소흥)의 하모도(河姆渡) 조기의 생산 공구 가운데 적지않은 접형기(蝶形器)에 혹은 표창두(標槍頭) 혹은 모두(矛頭) 꼬리부분(尾端)의 정향기(定向器)에 있는 것으로, 이는 일종의 수렵공구의 부속물이다. 봉황과 아침의 태양(朝陽)이 그려있다. 하모도 유적지의 동이족 상징은 바로 봉황과 조양(朝陽)이다 마왕퇴 심족오 용, 봉황 관련Click here!





상고 대륙사에 있어 동이 한겨레의 봉황(鳳凰) 토템(圖騰)에 대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봉황신앙이 상고시대 동이 제 족의 웅거지인 양자강가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실로 적지 않은 민족사적 가치를 가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서 6경이(사서삼경은 그중에서도 간추려 번역한 것) 동이족의 영적문서였던 것을 공자가 개칠했다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니 다음 글귀의 의미를 이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卷阿> 편을 보면 “봉황우비(鳳凰于飛), 홰홰기우(翽翽其羽:날개칠 홰)-봉황이 날라 날개를 친다”라는 글귀가 있다.

<대대례(大戴禮) 역본명(易本命)>에 의하면 “날개 짓하는 360 짐승 중에 봉황의 날개가 가장 길다(有羽之虫三百六十而鳳凰爲之長)” 대륙에 웅거한 동이 제족의 조상은 새(鳥)를 토템 도등(圖騰)으로 정하고 그 중에 봉황을 숭배하여 봉황을 길조(吉鳥)로 보았다. 이에 대한 글은 서량지의 고증으로 이미 앞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남조(南朝)의 송대(宋代)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3마리의 봉황이 남쪽 경성(京城:金陵 지금의 南京으로 손권의 建業.양자강 자락으로 전통적 동이족 터전) 서남각(西南角)에 있는 산 위 한 자리에 당도하니 허다한 새들이 그들을 따라왔다. 훗날 한 사람이 이 곳 산 위 누대에서 수도를 하며 이곳을 “봉황대(鳳凰臺)”라 칭하니 이로 인해 이 산의 이름 또한 “봉황산(鳳凰山)”이 되었다.

당대(唐代) 시인 이백(李白)은 천보(天寶:당현종 연호) 연간에 장안(長安)에서 추방되어 이 곳 남쪽 금릉(金陵)에서 노닐다가 인구에 회자하는 <登金陵鳳凰臺(등금릉봉황대)>라는 시를 지었다.  다음은 이완근, 이학준의 홈페이지 seelotus.com의 登金陵鳳凰臺(등금릉봉황대) 해석을 인용해 소개한다.

登金陵鳳凰臺(등금릉봉황대)

이백
鳳凰臺上鳳凰遊 봉황대상봉황유
鳳去臺空江自流 봉거대공강자류
吳宮花草埋幽徑 오궁화초매유경
晉代衣冠成古丘 진대의관성고구
三山半落靑天外 삼산반락청천외
二水中分白露州 이수중분백로주
總爲浮雲能蔽日 총위부운능폐일
長安不見使人愁 장안불견사인수
봉황대 위에 봉황이 노닐었다더니,
봉황은 가고 누대도 비고 강물만 흐르네.
오나라 궁궐의 화초는 오솔길을 뒤덮고,
진나라 귀인은 옛언덕의 무덤이 되었구나.
삼산은 청천 밖으로 반쯤 걸렸고,
이수는 백로주로 가운데로 나뉘었네.
이제 모든 것은 뜬구름이 해를 가렸으니,
장안은 보이지 않고 사람을 근심케 한다.

요점 정리

형식 : 칠언율시
주제 : 어지러운 국가의 장래를 근심함

내용 연구

금릉 : 지금 강소성의 남경
봉황대 : 육조의 송대에 남경성 서남쪽 산에 아름다운 새들이 많이 와 깃들여, 그때 사람들이 봉황이라 부르고, 이곳에 높이 대를 쌓아 올려 '봉황대'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삼산 : 남경 서남에 있는 산
부운 : 뜬구름으로 천자의 총명을 어둡게 하는 간신들을 암유한 것으로 해는 천자의 상징이다.
강자류 : 강물이 저절로 흐른다.
매유경 : 그윽한 오솔길을 뒤덮다.
성고구 : 옛언덕의 무덤을 이루다.
부운능폐일 : 뜬 구름(간신)이 해(임금)를 가리다.
사인수 :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케 하다.
이해와 감상
어지러운 국가의 장래를 근심하는 작품으로 작품에 나라를 염려하는 우국의 정신이 담겨  있다.



-다음 이백에 대한 설명은 hanja.net 자료다.

▶ 李白 : (701-762) 盛唐의 詩人. 字는 太白, 號는 靑蓮 또 스스로 酒仙翁이라했다. 中宗 長安 元年(701, 신라 효소왕 10년) 사천성에서 났다. 10살에 벌써 詩書에 통하고 百家書를 탐독했다. 고향에서 소년시대를 보내고, 뒤에 각지로 방랑, 襄州 漢水로부터 洞庭湖로, 다시 長江으로 내려가 金陵을 거쳐 楊州로 가 호방한 생활을 하고, 35살때에는 太原에 놀고, 산동성 任城에서 孔巢文·韓 準·裵 政·張淑明《 沔등과 만나, 이른바 竹溪六逸의 교유를 맺고, 742년 42살 때 翰林院에 들어갔다. 시와 술로 명성이 높았으나, 결국 술이 원인이 되어 744년에 실각, 陳留에 이르러 道士가 되고, 8578년에 江南에서 玄宗의 아들 永王의 모반에 가담한 죄로 옥에 갇혔다가 이듬해 夜郞에 유배되어 가다가 도중에서 풀렸다. 代宗이 즉위하자 拾遺에 배명, 11월에 當塗에서 62살로 죽었다. 李 白은 自然兒였다. 喜悲哀歡을 그대로 노래에 옮겨, 그의 작품은 한껏 자유분방하여 天衣無縫의 神品이라고 하거니와, 당시 그와 아울러 일컬은 杜 甫가 새로운 詩風을 일으킨 것과는 달리, 李 白은 漢魏 六朝이래의 詩風을 集大成했다. 모랄에 민감하고 정치에 관심을 보인 杜 甫와는 달리, 현실을 떠난 감정의 소유자였다. 그는 당나라 문화의 爛熟期에 生을 받아, 그 퇴폐적 기풍에 젖은데다가 불우했기 때문에 술과 여자에 憂愁를 잊으려 했다. 詩文集 <李太白集> 30권이 있다.

▶ 登金陵鳳凰臺 : 금릉의 봉황대에 올라, 金陵은 지금의 南京, 長江 絶景을 끼고 있는 데다 江山이 秀麗하여, 三國時代의 吳, 六朝時代의 晉·宋·齊·梁·陳 모두가 이곳에 都邑을 두고 '建業'이라 칭하였다. 鳳凰臺는 南京 西南에 있다. 六朝時代의 宋의 元嘉十六年(439년), 五色의 깃을 가져 孔雀처럼 아름다운 새가 날아와서 群舞를 추었다. 그것을 본 當時의 사람들이 이것은 鳳凰 靈鳥임에 틀림없을 거라 생각하고, 그 자리의 산꼭대기에 記念을 위하여 臺를 쌓고 鳳凰臺라고 이름하였다. 이 시는 宮廷으로부터 追放된지 얼마 안되어 不運의 유랑을 하다가 지은 작품으로 본다. 흔히 崔顥(최호: ?∼754)의 「黃鶴樓」詩體를 模倣하여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臺空 : 봉황대에는 지금 아무 것도 없고 텅비어 적막감만 감돌 뿐이다. ▶ 江 : 揚子江, 一名 長江이라고도 함.  ▶ 自流 : 예나 다름없이 自然대로 흐르고 있음.  ▶ 吳宮 ; 三國時代 吳의 孫權이 세운 宮殿.  ▶ 埋幽徑 : 幽徑은 사람이 다니지않는 호젓한 작은 길, 사람이 찾아오지않아 궁전의 작은 길까지도 花草가 덮고 있다는 뜻이다.  ▶ 晉代衣冠 : 晉은 東晉(동진)으로 金陵에 都邑하였다. 衣冠은 조정에 나갈 때 입던 예복으로 여기서는 그것을 着用한 官吏 혹은 貴人들을 말한다.   ▶ 成古丘 : 화려한 衣冠을 입던 高官들도 지금은 죽어서 옛무덤을 이루었음. 찬란한 과거가 모두 허무하다는 감회를 표현한 것이다.   ▶ 三山 ; 金陵의 서남쪽에 솟아 있는 산으로 揚子江을 굽어보고, 세 개의 봉우리가 南北으로 이어져 있다.  ▶ 半落 : 반은 구름 속에 잠겨 보이지않고, 반만 하늘 저쪽에 떨어진 듯이 보임. 金陵에서 바라보면 희미하여 윤곽이 똑똑하지 못한데다 흰 구름이 산허리에 감돌아치면 三山이 마치 땅에 우뚝 솟은 산이 아니라 하늘 공중에 둥둥 떠있는 봉우리로 보인다고 했다.  ▶ 二水中分白鷺洲 : 금릉을 흐르고 있는 秦水와 淮水(회수), 揚子江이 금릉의 市外에서 두 줄기로 分流되어 城內로 들어오고, 다른 하나는 성밖을 돌아 함께 하나의 섬(白鷺洲)을 끼고 흐른다. 秦淮는 다시 합쳐져 揚子江으로 들어간다. 본래 한 줄기의 강이 섬에 依하여 分流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中分이라고 한 것이다.  ▶ 總爲浮雲能蔽日 : 總은 모두, 어쨌든, 사악한 무리들이 임금(日)의 총명함을 흐리게 하고 있음. 浮雲은 조정의 권신들인 李林甫(이림보), 楊國忠(양국충), 高力士(고력사), 楊貴妃(양귀비) 등을 가리킨다.   ▶ 長安不見使人愁 : 장안이 보이지않아 사람으로 하여금 시름만 솟아나게 한다. 人은 작자 자신을 나타낸다. 長安에 대한 未練의 情을 은근히 나타내고 있다.

參考 : 李林甫는 唐玄宗 때의 宰相으로서 웃음 속에 칼을 품었다는 말로 당시 사람들이 그의 됨됨이를 평가했으니 그야말로 그는 음험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이백은 친구의 추천으로 皇宮에 들어온 후 滿朝百官이 李林甫 앞에서 서리맞은 호박잎처럼 풀이 죽어 꼼짝 못하는 꼴을 보고 한 번 李林甫를 혼내주리라 작정했다. 사실 그 때 이백은 유명무실한 翰林(한림)에 불과했다. 이백이 李林甫와 통성명할 때 자기는 "무지개를 낚싯줄로 삼고 웃음 속에 칼을 품은 자를 미끼로 삼아 바다거북을 잡는 신선"이라고 하자 李林甫가 혼비백산했다는 일화가 있다.  일전에 이백은 권고에 못 이겨 明經科(명경과)에 참가한 일이 있다.  일필휘지하여 답안지를 제일 먼저 바쳤으나 당시 시험관으로 나왔던 楊國忠과 高力士가 "너따위는 남의 먹이나 갈아주고 신이나 벗겨 줄 심부름 구실이나 하겠다"면서 빌미를 잡아 내쫓는 바람에 복시에 참가할 자격도 없이 낙방되고 말았다. 후에 이백이 입궁하여 翰林供奉이 된 후 현종을 대신해 國書를 쓸 때 술에 취한 것을 빙자하여 楊國忠에게 먹을 갈게 했다.- (이상hanja.net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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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豊都) 성(城)의 뒤 장강(長江:양자강) 중간에는 작은 도서(島嶼)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봉미파(鳳尾巴)” 도(島)라 부른다. 봉미파(鳳尾巴)는 풍도(豊都) 성(城)과 더불어 아득히 서로 바라보고 있어 서로 간에 광채를 발한다. 장강(長江:양자강)의 홍수는 봉미파(鳳尾巴)를 범하지 않는데, 전설에 의하면, 봉미파(鳳尾巴)가 수면위에 떠 있어서 물이 불어나면 섬도 높아진다고 한다.

장강 유역의 어민과 뱃사공은 특별히 뱀을 숭배하여, 봉황이 상서롭고 길하여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장강 양안(兩岸)에 있는 어민과 뱃사공 사이에는 봉황과 봉미파(鳳尾巴)에 대한 기이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평도산(平都山) 기슭 아래 왕(王)씨 성(姓)을 가진 장가인(庄稼人)의 집이 있었는데, 부모가 돌아가시자 단지 남은 형제 둘이 서로 의지해 살고 있었다. 여름철 어느 날, 둘째 왕소이(王小二)가 나무를 하러 산에 올랐는데 홀연히 와와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 그가 가까이 달려 가 보니 수많은 갈가마귀들이 아주 작은 봉(鳳)을 쪼아대고 있었다.

그가 갈가마귀 떼에게 달려가 몸 전체 비늘이 상한 어린 봉(鳳)을 세워 일으키니 마음이 심히 아팠다. 그는 약초를 바르고 아랫도리 옷깃을 찢어 잘 감싸준 뒤 숲 속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어린 봉(鳳)은 단지 그를 따라 올 뿐 쫓아내도 가지 않았다. 어찌하는 수 없이 왕소이(王小二)는 어린 봉(鳳)을 데리고 집으로 와 대바구니에 넣어 먹이를 주며 기르려 했다.

눈깜짝 할 새에 일년이 지나자, 어린 봉(鳳)은 엄청나게 커져서 대 바구니에서 자랄 수 없어 그는 보다 큰 대나무 광주리로 바꾸어 주었다. 다시 1년이 깜짝할 새 지나 어린 봉(鳳)은 더욱 엄청나게 자라서 대나무 광주리에서 자랄 수 없게 되었으므로 왕소이(王小二)는 난처해 하여 봉(鳳)에게 말했다. “나의 친한 친구야, 이제 너는 장대해졌구나. 나의 작은 띠집(茅屋)으로는 너를 살게 하기가 어렵구나. 큰 산이 바야흐로 네가 진정으로 살 곳이란다.” 소봉(小鳳)은 머리를 끄덕였다. 왕소이(王小二)는 소봉(小鳳)을 숲 속에 풀어 주었다.

또 몇 년이 지났다. 소봉은 더욱 커져서 장중하고 아름다웠으므로 숲 속에서 수많은 새들이 추천해 새들의 왕이 되었다. 산에서 나무하는 나뭇꾼도 그를 아주 공경하고 귀중히 했다. 하루는 풍도현(豊都縣) 관리가 병이 들어 의원을 청해 진료를 받았는데, 허다한 약을 복용해도 모두 효험이 없었다.

의원이 말하기를 “이 병은 봉(鳳)의 쓸개(膽)을 먹어야 가까스로 호전될 수 있다” 하는지라. 현관(縣官)은 ‘누가 능히 봉(鳳)의 쓸개를 얻어오는 자 있으면 은 백냥의 상을 내린다’고 고시문을 붙였다.

현아(懸衙) 심부름꾼인 왕소이(王小二)의 형 왕노대(王老大)는 이 사실을 알고 기뻐서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여 일찍이 소봉(小鳳)을 길렀던 동생에게 달려가면 봉의 쓸개를 가지고 갈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왕소이의 띠집(茅草房)에 도착하여 동생에게 하릴없이 가련한 말을 했다.

“소봉(小鳳)은 너의 친한 친구다. 내일 너는 그에게 가서 쓸개 덩이 하나를 가지고 오너라.”

왕소이는  한편으로는 형이 무서워 단지 그러마고 대답했다. 이튿날, 그는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산에 올라 소봉(小鳳)을 만났다.



그는 정에 이끌려 차마 말하기 어려워 머리만 숙인채 말을 하지 못했다.

“ 은인이여, 그대는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나는 항상 당신을 돕겠습니다.”

왕소이(王小二)는 이곳에 온 뜻을 말하니, 소봉(小鳳)은 강개(慷慨)하여 말하기를, “나의 쓸개를 취해 가지십시오” “네 몸을 베는 것은 내 마음이 아파,  차마 내 손으로는 못하겠다.” “그리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다시 몸을 펼 수 있습니다.”  그는 땅위에 누워 왕소이로 하여금 쾌히 손을 움직이라 재촉했다.

왕소이(王小二)는 담이 떨리고 마음이 슬픈 채 한 움큼의 봉담(鳳膽)을 떼어 형에게 주었다. 현관(縣官)이 봉담(鳳膽)을 먹자, 과연 병세가 호전되었다. 왕노대(王老大)는 은 백 냥을 상으로 받았다. 며칠이 지나, 현관(縣官) 부인이 또 병이 들었는데, 허다한 약을 모두 들었으나 모두 효험을 보지 못했다.  의원이 말하기를, “이 병은 오직 봉담(鳳膽)을 먹어야만 비로소 나을 수 있다.”

현관(縣官)은 ‘누가 능히 봉(鳳)의 쓸개를 얻어오는 자 있으면 은 천 냥의 상을 내린다’고 고시문을 붙였다. 왕노대(王老大)가 돈벌이를 할까 하여 또 왕소이를 찾아갔다. “동생, 너는 우리 형제 정분을 생각해 내일 다시 소봉(小鳳)에게 가서 봉담 한 덩어리를 얻어와!”

“형, 형은 소봉(小鳳)에게서 얻을 만큼 넉넉히 얻었습니다. 그는 방금 한 덩어리의 담을 도려내어 지금 앓고 있습니다.‘동생, 너는 수족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이번에도 다시금 바삐 나를 도와주게.” 왕노대(王老大)는 길에서 동생의 옷소매를 끌며 말했다. 소봉(小鳳)은 왕소이(王小二)가 온 것을 보고 열정적으로 환영하러 나와서 그 둘의 표정을 보고  추측해 말하기를, “은인, 당신은 나의 담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왕소이(王小二)는 입을 열지 못하자, 왕노대가 급히 서둘러 말했다. “소봉, 나의 동생이 너를 구해주지 않았나.”  소봉은 머리를 굽신거렸다. “현관(縣官)이 명령을 내려 그로 하여금 봉담을 얻어오라 했는데 만일, 얻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구요?” “그의 해골을 자를 것이다” 소봉은 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청컨대, 배를 가르십시오” 왕노대(王老大)가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칼을 꺼내 봉의 배를 자르고 한 개의 큰 봉담을 얻어 현아(縣衙)로 돌아와,  현관(縣官) 부인의 병을 치료하여 천 냥의 은(銀)을 상으로 받았다.

며칠이 지났다. 현관(縣官)의 딸이 병이 나 약을 먹어도 효험이 없어 의원이 또 말하기를, “이 병은 오직 봉담을 먹어야 가까스로 고칠 수 있다”

현관(縣官)은 ‘누가 능히 봉(鳳)의 쓸개를 얻어오는 자 있으면, 그에게 짝을 맺어 혼인을 시키겠다’고 고시문을 붙였다. 왕노대(王老大)가 고시문을 높이 들고 일심으로 딸과 혼인하고자 했다. 그는 왕소이가 딸을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하여 마침내 혼자 산에 올랐다.

소봉이 왕노대(王老大)가 오는 것을 보고 예를 갖추어 맞이하여 말하기를, “나의 은인은 왜 오지 않았습니까?” “그는 지금 병이 났다” “무슨 병?” “봉담(鳳膽)을 먹고자 하는 병” “다른 말로 그는 봉담 곧 봉간(鳳肝)을 먹어야 하는데, 봉심(鳳心)은 나도 그에게 제공했다.”고 말하며 소봉은 급망(急忙)하게 하산했다. 왕노대는 그에게 “너는 따로 가라”하므로, “왜?” “너희 둘은 좋은 친구인데, 그가 네 신체의 일부를 어떻게 먹겠는가”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내가 잘라 갖고 가서 먹이면 되지” “좋아”

왕소이(王小二)는 현관(縣官)이 봉담(鳳膽)을 필요로 한다는 고시문을 펼치는 것을 보고 형이 또 소봉(小鳳)에게 음모의 손을 뻗친다고 생각, 급히 산위로 쫓아 올라갔다. 그가 막 산에 오르자 형이 바로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고 봉담을 자르려는 순간이었다. 급히 그 앞으로 달려가 그의 손에 있는 칼을 빼앗았다.

왕노대(王老大)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말하기를 : “너는 무얼 하려고 하느냐?”  너의 이러한 만족하지 않는 탐심을 가진 집안가족이여, 나는 소봉(小鳳)에게 음모를 꾸미는 너의 계획를 따르지 않는다.” “당신은 병에 걸리지 않았습니까?” 소봉(小鳳)은 기어와서 왕소이(王小二)에게 물었다. “그의 얼토당토 않는 말은 그가 너의 쓸개를 떼어가 현관(縣官)의 딸과 노파와 바꾸려는 것이다”

소봉(小鳳)은 몇 번 속은 경험이 있으므로 던져 왕노대를 미파(尾巴) 강물 속에 버려 왜왜어(娃娃魚) 먹이로 만들었다. 현관(縣官)은 왕소이(王小二)가 왕노대(王老大)로 하여 봉의 쓸개를 얻지 못하게 저지했음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잡아오게 했다. 소봉(小鳳)은 왕소이(王小二)가 중과부적임을 보고 황망히 짐을 싣고 물가에 날아 도착했다.

손을 내저어 강변에 어지러이 화살을 쏘아대며, 겨우 미파(尾巴)를 벗어나 왕소이(王小二)를 미파(尾巴) 위에 안돈(安頓)케 하고는, 해변으로 날아가 거대한 부리로 쪼아대니, 수하들이 황망히 도망갔다. 이로부터 양자강(長江 중간에는 봉미파도(鳳尾巴島)가 출현하게 되었고, 왕소이(王小二)는 그 위에 안거(安居)하여 편안하고 즐겁게 살았다.

따라서, 장강 유역의 뱃사공과 어민은 배가 봉미파도를 지날 때면, 서로 주목해서 바라보고, 은혜를 알고 반드시 보은한다는 지은필보(知恩必報)의 소봉황(小鳳凰)을 무한히 숭배하는 공경의 뜻이 내심으로부터 용출한다.

지금도 운남성은 동이족의 후예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런데 운남성(云南省) 이원현(洱源縣)의 백족(白族:Click here!)은 금봉황(金鳳凰)을 숭배하여, 매년 조조산(鳥弔山)에서 백조회(百鳥會)를 거행한다. 그들에게는 금봉황(金鳳凰)을 숭배한다는 아름다운 일 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사람얼굴 : 무공(武公) 정(郑)씨의 조기 주나라 유적출토지, 그때의 주나라 사람의 본래의 형상이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사람얼굴은 도자기 병 입구 (陶壶口沿)에 있었으며 머리 부분은 이미 손상되어 떨어져나갔다. 좌안보다 우안이 크고 높게 조각되어있다
*청옥조(青玉鸟) : 서주(西周)에서 유행된 옥패장식 중에, 많은 생동감과 활발함을 지닌 초색의 옥기이고, 그 중 새 모양의 옥패가 가장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제작방법이 간결․ 세련되고, 가지런하고,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새 깃털의 조각 그림이다. 봉황새 무늬 또한 매우 풍부하여, 이 시기의 주류 무늬 장식이 되었다.(은나라가 동이족 국가였고 옥문화가 동이족 문화였으며 주나라 역시 그 중심무대가 은허주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안다면 동이족의 조 도등(토템상징)인 새 문양 옥조각은 동이족 문화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새 깃털의 조각 그림으로, 세심함이 마치 실이 날리는 것과 같다. (羽毛的刻畵~) 원문Click here!

*봉조문옥식(鳳鳥紋玉飾): 전해오는 말에 문왕(文王)때에 “봉명기산(鳳鳴岐山)”을 흥왕의 징조로 보았다. 서주(西周) 때에 많은 종류의 새 모양 옥장식이 있었을 뿐 아니라 청동기 가운데 유행한 봉조문(鳳鳥紋)은 가히 “봉명기산(鳳鳴岐山)”의 전설과 관련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이는 상(商)의 조상 선조가 제비로 도등(圖騰)을 삼아 제비 문양 장식이 성행한 것과 구별된다. (결국 동이족의 조도등(鳥圖騰)의 연장선위에 상(商)나라의 제비(燕) 도등과 주(周)나라의 봉황 도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고 화샤(華夏)족이 존주대의(尊周大義)의 중심으로 삼은 주(周) 마저 동이족 국가임을 이러한 고고학적, 문화사적 증거를 토대로 알 수 있다) 원문Click here!

진월인(秦越人), 편작을 통해 본 산동성과 동이족의 관계(조 도등(토템깃발상징:휘장)봉황과 동이족 고유의 잠사와 연관된 뽕나무, 도가적 의학 눈여겨 볼 것)Click here!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아주 오래 전에 이원현(洱源縣) 풍습패(風習壩:방죽패)  대토사(大土司) 하안왕(何顔旺)의 노예 가운데, 춘생(春生)이라 불리는 일개 일개 백족(白族)청년과 계화(桂花)라 하는 동 백족 또래 처녀가 있었는데, 하(何) 토사(土司) 집안에 함께 오랫동안 살다보니 서로 간에 정이 들었다.

양춘 3월의 맑은 어느 하루, 춘생(春生)은 말을 달리고 계화(桂花)는 양(羊)을 방목하며 천마산(天馬山)에 도착해, 두 사람은 서로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그들의 노랫가락 소리는 천마산 공중에 쩌릉쩌릉 울려퍼지니 돌연 백조(百鳥)가 운집해 즐겁게 춤을 추니, 마치 작조(雀鳥)의 세계로 변한 것을 방불케 했다.

이로부터, 춘생(春生)과 계화(桂花) 두 사람의 정분이 투합되어 마음과 마음으로 굳게 언약을 했으나, 앞일을 누가 생각했으랴, 그 해 중추가절 늦은 밤, 하(何) 토사(土司)는 술에 대취해 홀로 뒤에 있는 화원(花園)으로 나와 방금 마굿간에 도착해 계화(桂花)를 보고 한 손에 그녀를 잡아 안으려 했으며 계화(桂花)는 크게 비명을 질렀다.

이 때, 말에게 밤참의 풀을 먹이고 있던 춘생(春生)이 계화(桂花)가 구원의 비명 소리를 듣고 뛰쳐나가니 바로 하토사(何土司)임을 일견에 알아보고 주먹으로 때려눕혔다. 하토사(何土司)는 갑자기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더니 춘생(春生)을 향해 휘두름에 춘생(春生)은 전광석화같이 한 쪽 발을 날리니, 하토사는 일순간에 나동그라지며 꽈당하는 소리만 남겼으며, 칼은 계화의 발밑에 떨어졌다.

계화(桂花)는 아침 달빛을 빌어 후문으로 뛰어가려고 막 후문을 나서는데, 하토사의 관리인(大管家) 흑필마(黑必摩)가 토사병(土司兵)을 데리고 쫓아왔다. 8월 15일의 밝은 달은 분외로 둥글고 밝았다. 춘생(春生)과 계화(桂花)는 앞에서 뛰어가고, 이를 쫓는 추격병은 뒤에서 분명히 볼 수 있었으니, 눈으로 보면 곧 잡힐 형국이었다.

이 때 홀연히 거대한 작조(雀鳥)들이 나타나 빽빽이 시야를 가리고 달빛을 차단하는지라, 춘생(春生)과 계화(桂花)는 추격병을 따돌리고 천마산(天馬山)으로 달아났다.

이튿날, 추격병들이 천마산으로 올라옴에, 춘생(春生)과 계화(桂花)는 돌로 싸우고 나무를 잘라 치며 싸웠으나 필경 중과부적이어서 점점 산 정상에서 밀려나 한 조각 송림이 무성한  숲 속으로 쫓겨가게 되었다. 송림 속의 길은 미끄럽고 지름길은 어두웠으며, 기암괴석이 가파르고 깊숙해 음기가 가득했다.

추격병은 대낮까지 지키고 있다가 다시 춘생(春生)과 계화(桂花)를 찾았다. 하토사(何土司)는 불을 질러 산을 태우라고 명령을 내렸다.  불길은 점점 커져 울창한 송림은 급기야 불바다로 변했다. 춘생(春生)과 계화(桂花)는 불길이 더욱 거세져 불에 타죽을 것을 목도하고,  거칠고 거대하게 자란 높은 소나무 위로 기어 올라 거센 불길을 물리치는 노래를 드높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홀연히 하늘가에 일대 작조군(雀鳥群)이 나타나 하늘 가득 어지러이 날더니, 마침내 해를 가리고 5가지 색채가 어지러이 빛났다. 그들은 우거진 산(蒼山) 18 계곡의 물을 머금고, 이해(洱海:河南省 발원의 강)의 물을 머금고, 자벽호(茈碧湖:지치,패랭이 자)의 물을 머금고, 천 만 방울의 물을 불타는 송림 숲에 뿌리니, 바야흐로 맹렬한 불길이 박멸(撲滅)되어 춘생(春生)과 계화(桂花)를 구출하려 는 중이었다.  

그러나, 불붙은 저 거대한 소나무에는 미치지 못하는데다, 바람은 더욱 더 긴해지면서 바람은 불길을 더욱 부추기니, 불은 바람의 위세를 이용해 곧 맹렬한 화염이 하늘을 찌르는 소나무를 집어삼킬 듯 하며 나무가 쪼개지고 서로 부딪치는 어지러운 소리가 들렸다.춘생(春生)과 계화(桂花)의 노랫 소리도 사라져 갔다.

이때, 저 한 편의 불바다 가운데, 거대한 소나무 위에서 금(金) 봉황(鳳凰) 한 마리가 화염 속에서 뛰쳐나오더니 하늘로 솟구쳐 올라 천마산(天馬山) 후면에서 멀지 않은 고산(高山) 한 자리에 날개를 펼치고 날아 앉았다.

이로부터, 이 금봉황이 자리 잡고 앉은 고산(高山) 위에 그들은 자유자재로  1,2,3년... 행복하게 살다가 종내에는 어느 해 가을, 고산(高山) 이 자리에서 죽었다. 백조(百鳥)들은 무성한 꽃잎과 녹엽을 채집해 그들의 시체를 덮어 매장했으며, 그들이 편안히 죽은 상공에에서는 수많은 새들이 무리를 지어 슬피 울고, 하늘을 빙빙 선회했다,

백족인(白族人)은 이 고산(高山) 자락을 조조산(鳥弔山)이라 부르고, 백조(百鳥)가 춘생(春生)과 계화(桂花)를 애도한 날을 “백조회(百鳥會)”라 부른다.

임혜상은 양자강 유역의 요족(瑤族)과 묘족(苗族)은 동이족이라 단언하고 이들은 본래 하나이므로 묘요족(苗瑤族)이라 결론짓는다. 『南齊書 顧歡傳 夷夏論』을 보면 “鳥王獸長 往往是佛, 无究世界  聖人代興-새를 짐승중의 으뜸인 부처로 여겼으니, 동이족의 나라는 이상세계로 성인이 대를 이어 흥성했다 ”고 나온다.(안원전의21세기담론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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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빈기가 추적하는 문화인류학 속에는 항상 태양신이 들어있다. 여영의 글자인 금문 언(방 속에日아래女))은 도랑 언이지만 금문에서는 기러기( ), 큰 새 안(雁)으로 하나라로 가면 제비 연(燕)으로 격하되고 주나라로 가면 동이족의 봉황마저 제비 을( )로 격하되었다고 말한다.
*전설 가운데의 복희, 황제는 모두 용의 신화와 함께 연관되어 있으며 염황(炎帝,黃帝) 자손은 한결같이 용의 자손임을 알 수 있다.(용봉일치) 서량지는 화하의 용과 동이의 봉황이 그 근본은 하나임을 말하고 있다. 뿌리는 동이족의 문명이라는 것이다.(담론234)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노(魯)나라 임금인 소공(昭公)이 소호 임금 때의 관직에 대해 물으니 이웃 산동성 남부 해안 담국( 國)의 임금 담자( 子)가 소호는 자신의 조상이므로 잘 알고 있다며 조(鳥) 도등(도등:상징휘장)으로 이루어진 관직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러한 문답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은 공자는 담자를 찾아보고 옛날 일들에 관해 논한 다음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중국에 옛 법이 없어져도 이(夷)의 나라에는 그대로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 말이 옳다.' 라 했다. 「논어」 공야장(公冶長 章)에서 도불행(道不行)이라 승부부우해(乘  于海)하리니'라 하여  도가 행해지지 않아 뗏목을 타고 동이족의 나라로 항해하고 싶다 한 그였고, 「논어」 자한(子罕 章)에서 자욕거구이(子慾居九夷)라 하여 동이족의 나라에서 도를 펴고 싶다했던 그였다. 지나족이 이상세계에만 찾아온다고 말한 봉황이 두렵다고 말한 기록은 역설적이긴 하지만 조 도등의 동방족이 그만큼 무서웠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가령, 「산해경(山海經)」<대황서경(大荒西經)>을 보면, 현단(玄丹)산이 있어 5가지 색깔의 새가 있는데 사람의 얼굴에 머리털이 난 인면유발(人面有髮)이라 하고 이곳에 청문, 황오라는 새가 있어 청조, 황조이며 이것들이 모여드는 그 나라는 망한다(其所集者其國亡)고 했다.(담론168)
* 담자가 말하기를 '우리 선조니까 내가 알고 있다. 옛적에 황제는 구름(雲)으로 관명을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백관(百官)과 사장(師長)을 모두 구름으로 이름지었고 염제씨는 불로 본을 삼았다. 그러므로 백관을 화(火)로 이름지었고, 공공(共工)씨는 물(水)로 기본을 삼았으므로 백관을 수(水) 자로 이름지었고, 태호씨는 용(龍)으로 기틀을 잡았으므로 백관을 용자로 이름하였다. 우리 고조 소호지(少 摯)는 즉위할 때 마침 봉조(鳳鳥)가 날아왔으므로 새(鳥)에 기틀을 두어 새로써 백관 사장의 이름을 붙였다....봉조(鳳鳥) 씨는 봉황이 천시를 알므로 역정(歷正)의 관명을 삼은 것이고, 현조씨(玄鳥) 씨는 제비가 춘분에 왔다가 추분에 감으로 이분(二分)을 관장하는 관명으로 삼은 것이다. (담론157)
* 「역림(易林)」에 말하기를 "황제가 용을 부리고 봉에 올라타니 동쪽으로 태산에 올라 남쪽으로 제와 노에 순유하니 나라 전체가 함께 기뻐했다(駕龍乘鳳 東上太山 南遊齊魯 邦國咸喜)"고 했다. 서량지는 이 말은 용봉 이원적 연맹인 동이, 서하 연맹이 상서로움을 가져다 주어(龍鳳呈祥) 나라전체(邦國)가 함께 즐거워했으며 후일 이하일가가 일체화되어 중국민족 구성에 있어 정통문화 탄생의 원시기초라 말하고 있다.(後來東西一體 夷夏一家 中國民族構成 正統文化誕生的原始基礎) 이러한 중국인의 역사관으로 보면 평화를 선사한 동이족 봉황이 상서롭다 한 것과 봉황이 태평성대에만 등장한다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또한 동이 족에서 가지치고 나아간 당시의 서하(西夏) 족과 지금의 지나족의 방계역사를 알 수 있다. (담론136)
*지나족의 뿌리가 동이 한민족에 있다 함은 수없이 말 한 바 있거니와 「시경」<상송(商頌)> 현조(玄鳥)편을 보면 보다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하늘이 제비에게 명하시어 내려가 은의 조상 낳게 하시와(天命玄鳥 降而生商) 넓은 은 땅에 살게 하시다. 탕왕에 이르니 옛 임검(단제)께서는 사방 넓은 곳 영유케 하사 모든 임금에 내리신 분부 9주의 주인으로 받들라시다(宅殷土芒芒 古帝命武湯 正域彼四方 方命厥后 奄有九州)'   고신은 은(상)나라를 연 탕 임금의 14대조 시조 설(契)의 아버지이다. 설(契)의 모친 간적(簡狄)은 동이족의 난생신화의 첫 출발점인데, 그녀는 바로 고신씨의 차비로 현조(玄鳥)가 떨어뜨린 알을 먹고 설을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앞서 서량지가 고주몽의 난생설화와 축출 그리고 고신씨의 후예를 칭한 것이 바로 동이족의 정치 사회적 난생설화의 분위기를 설명해 준다 했듯이 막상 현조씨는 조(鳥) 도등(봉황, 용같은 깃발상징)의 동방족 임금 소호의 사관이었음을 이해한다면 난생신화로 얽혀진 진시황의 진나라도 우리 동방족이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소호금천씨의 후예 휴도(休屠)왕의 아들로 한무제 때 표기장군을 지낸 김 일제의 원손(遠孫) 김 알지로부터 시작되는 신라 김씨의 유래와 또한 한(漢)을 멸망시키고 신(新) 제국을 세운 김 일제의 증손 왕망(王莽)이 후한 광무제에게 망한(AD25) 17년 뒤 김해 6가야를 접수한 알 사건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조 도등(圖騰:깃발등 휘장 상징)인 봉 도등을 가야왕관과 신라왕관의 상징휘장으로 삼은 것은 바로 소호금천씨가 봉으로 도등을 삼았기 때문이다. 서량지는 소호가 왕위에 오르니 봉황이 와 춤을 추어 새를 상징으로 하게 되었다는 담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88년 경남합천에서 발굴된 금동제 환두대도에 새겨진 용봉무늬는 동서방족의 용봉도등적 부락맹의 영향이 한반도 남쪽까지 미친 것이라 해서 한국의 상고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고고학계의 주장이 제기된 바 있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김수로의 난생설화는 대륙 내에 있었던 조(鳥) 도등의 동방족이 새로이 유입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담론100)
* 요순의 도는 황제 헌원의 도가 그 연원이고 황제헌원의 도는 배달국의 도를 전해 받은 것이다. 「서전」에 등장하는 홍범 9주 자체가 창수 사자인 2대 부루 단군이 단군왕검의 명으로 도산의 구려 회의에서 전수한 5행 치수의 법인 금간옥첩이었고, 북면이조(北面而朝)하고 사근동후(肆覲東后)했다는 말로 미루어 사마천이 이상세계로 설정해 놓은 요순시절의 초기 지나족은 사실상 동이 제국의 변두리 소국-제후국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서전」에 소위 황기천리(皇畿千里)라 표현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천자의 땅은 사방 천리에 불과한 소국인데 「회남자(淮南子)」<본경훈(本經訓)>을 볼 것 같으면 왕자(천자)는 사방 천리인 일기(一畿), 제후는 사방 백리인 일동(一同)에 있으면서 각기 그 근본을 지켜 서로 침범치 아니했다는 구절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회남자(淮南子)」<남명훈(覽冥訓)>을 보면 황제가 스승인 역목(力牧)과 태산계(太山稽)의 도움으로 일월의 운행을 다스리고, 음양의 기운을 헤아리고, 사시의 도를 조절하고, 율력의 수를 바로잡으며, 봉황이 물에 와서 놀고, 기린이 교외에 와서 놀고, 청룡이 멍에를 메고, 천년을 산다는 비황(飛黃)이 우리에 와 엎드릴 정도의 이상세계를 건설했으나 복희씨의 도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하면서 여와씨의 덕을 칭송하는 것을 보면 비록 사마천에 와서 황제가 지나족의 시조로 떠받들어지고 공자의 뒤를 이어 요순의 덕을 칭송했지만 실제로는 동이족의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이상적 치세만은 못했던 것이다. 인두사신으로 전해지는 복희, 여와의 신앙형태가 동이 제 족 속에 얼마나 뿌리깊은지 잠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산해경(山海經)」<해내경>에 "묘민(苗民:동이족)이라는 백성이 있어 이 곳에 인수사신(人首蛇身)의 신이 있는데 키가 수레의 바퀴 통만 하고 좌우에 머리가 있으며 자주색 옷을 입고 털로 된 관을 쓰고 있다. 이를 연유(延維:곽박은 위이(委蛇)라 함)라 하며 임금이 이 신을 잘 접대해 먹이면 천하를 제패하게 된다."고 했다. 그 주석에 곽박이 말하기를 제환공이 큰 늪에 사냥을 나갔다가 이것을 보고 마침내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했으며 이 기록은 「장자」에도 보인다."고 했다.(담론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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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gend of the White Snake


  


The brief story of the Legend of the White Snake.


      

With 12 Yangliuqing woodcut paintings


      



"Good old man, please give us a ride!" Lady White shouted to the
boatman from the bank. The young man asked the boatman to stop and let
them go aboard. They thanked the young man and Xiaoqing asked him
his name. He replied,"Xu is my surname. I am told that I once met an
immortal near the Broke Bridge when I was a child so my father
gave me the name Xian." (Xian means immortal in Chinese.)

And so Lady White's wish was fulfilled. The handsome young man
was indeed the little boy who had always stayed in her heart.






Because of the downpour, Xu Xian lent Lady White his umbrella
to carry home. Late, whenever she looked at it, she felt a longing for
Xu Xian.  Xu Xian also felt hemself falling in love with Lady White.
On the day he went to get back his umbrella, he asked Xianqing to
act as go-between to arrage a match between Lady White and himself.
Xianqing did her job well and the pair married.







After their marriage, the couple and Xiaoqing moved to Zhenjiang and set
up a herbal medicine store. Lady White wrote out the prescription
while Xu Xian and Xiaoqing gathered and dispensed the herbal medicine.
Patients unable to pay ere given free treatment and medicine. The store
quickly became well known and popular.





At the time of the Dragon Boat Festival, it was the custom for every
household to fasten plants such as calamus and Chinese mugwort on
the ground to drive away spirits. These were of course dangerous to
Lady White and Xiaoqing, since there were spirits after all.
Lady White was by now pregnant so she had even more reason for staying
at home. Xu Xian decided to spend the day at home with his wife.  He
prepared a pot of old wine with realgar, for realgar not only drove
away evil spirits but was also considered benificial to pregnant
women.  Under her husband's coaxing, Lady White could not find a
reason to refuse the drink and she took a sip, thinking that her
superior magic skills would make her immune to the power of relgar.
But she immediately was stricken ill and barely managed to get
to bed. Xu Xian rushed to the bed and drew aside its curtain.
Lady White was no loger there. In her place was a large white snake
coiled on the bed. So great was Xu Xian's shock that he fell to
the floor and died.





When the power of realgar's power faded, Lady White resumed her
human form. She was heartbroken to find Xu Xian lying dead beside the bed.
But she knew that the glossy ganoderma, a clestial herb on the Kunlun
Mountain, could restore him to life. She flew to the Kunlun Mountain
to steal the celestial herb but encountered the white crane and
heavenly guards responsible for looking after the glossy ganoderma.
They fought to prevent her from taking the herb and Lady White was
losing the battle, when suddenly a voice commanded them to stop.
It was the voice of the Immortal of the Southern End. Lady White
begged him in tears to help her. Impressed by her sincerity and
perseverance, he granted her the glossy ganoderma.





Lady White ground the herb and fed it to Xu Xian who soon came
back to life. But he was still frightened at the memory of the snake
that had appeared in his wife's place.

Lady White made up a story
to set his mind at rest. The snake he saw, she told him, was in fact
a dragon descending from heaven. The sight was a good omen.  She
regretted that she was unconcious at that time, otherwise, she
would have burnt some incense to the dragon.

Xiaoqing added she
also had seen something white resembling either a snake or a
dragon and that it flew from the bed to the window and disappeared.
Xu Xian's suspicions were allayed by this colorful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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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6-우(禹)의 탄생 신화[동이족)]  안원전   2003/09/19  5382
258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5-하우의 부친 곤왕(鯀王)의 치수  안원전   2003/09/19  4855
257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4-황제 후계 선출의 신화 ,태수(溙水), 유수(洧水)가 합해지는 쌍려하(雙洎河) [한족(漢族)]  안원전   2003/09/18  6147
256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3-신석기 맹주 황제(黃帝)가 철기시대 맹주인 황금사목(黃金四目)의 무신 치우(蚩尤)와 싸우다. [한족(漢族)]  안원전   2003/09/16  4824
255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2-동이족 한 혈통 황제와 염제(黃帝和 炎帝)의 대륙신화 [한족(漢族)]  안원전   2003/09/15  5707
254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1-용건과 니입의 천둥번개-하늘 눈을 다시 뜨다(天眼重開) She(셔로 발음)[써족(畬서族)]  안원전   2003/08/25  7296
253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0-상제님의 효유(가르침)와 장백산(백두산) 요괴를 없앤 소녀 일길납의 천지(天池) 신화 [만주족(滿族)]  안원전   2003/08/22  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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