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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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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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37.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참배 및 향토사료 2




옛 성인 염제(炎帝)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는 중국 역사(대륙상고사:현재 대륙내 55개 소수민족의 근본뿌리는 동이, 9려족으로 염제 신농의 부친 소전은 동이 배달 환웅국(9대 안부연 환웅)때 지금의 섬서성 바오지(寶鷄)시 강수(羌水)의 감병(監兵)이었다)에서 전해 내려오는 부족의 영수였다. 역사서 기록과 민간전설에 의하면 염제(炎帝)는 지금으로부터 약 팔천 년 전, 모계(母系)씨족 말기와 부계(父系)씨족 시작(開始) 단계에서 태어났다.

성(性)은 강(薑)씨며 호(號)는 열산씨(烈山氏)이고 혹은 려산씨(厲山氏)라고도 말하는데, 호북(湖北) 수현(隨縣) 려향(厲鄉)에서 태어났다. 화덕왕(火德王)이기 때문에, 본래 염제(炎帝)라고 불렀으며, 또한 전해지는 바로는 불로써 관직에 이름을 붙이고, 쟁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켜 신농씨(神農氏)라고도 부른다. 역사상에서 말하길, 염제(炎帝)의 출생연대는 중국 상고적 신화전설의 복희(伏羲) 여와(女媧氏) 이후이고, 수 백년 동안 통일한 군주(君主) 없이, 각 지역 제후(諸侯)가 균등히 독립적으로 자치를 하고 있었는데, 염제(炎帝)는 바로 제후(諸侯) 소전씨(少典氏)의 장자였다.

염제(炎帝) 계통은 원래 강수유역(薑水流域 : 지금의 섬서陝西 보계寶雞)에 살았는데, 후에는 동쪽으로 발전하여 중원(中原) 지역까지 이르러, 일찍이 황제와 고천의 땅(지금의 하북탁록(河北꟔鹿)에서 전쟁한 후 패하였다. 염황(炎皇)의 전쟁은, 중국 고대 상고 주민의 다른 종족간의 사이에서의 왕래․전쟁 및 융합을 대표하며, 이러한 전쟁의 결과는 최종적 으로 화하민족(華夏民族)을 형성하였다. 이리하여 염제(炎帝)와 황제는 나란히 중화민족 공동의 선조로써 후세의 숭배를 받는다.



*화하족(華夏族)이란 용어 자체는 황허강의 섬서성 우하변의 화산(華山)에 살던 화족(華族)과 황허의 지류가 흘러나가는 소위 요(堯),순(舜)이 살던 산서성 임분지역의 하(夏)족에서 기원하여 소위 화샤(華夏)족이라는 지금의 한(漢)족의 기원민족을 칭하는 용어를 후대에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는 원래 대만의 심건덕이 지적하는대로 그 실체가 없는 것이다. 지나족이 소위 중화 한(漢)족의 시조로 삼은 황제헌원 역시 동이족 신농의 부친 소전의 동부이모의 자식인 동시에 환웅배달국과 단군조선의 웅호(熊虎)신화에서 보듯이 황제가 그 연장선 위에 있는 동방 유웅족(有熊族)출신이었다는 사실이 황제헌원의 출자가 동방 동이족의 바운더리를 넘어설 수 없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황제헌원의 칭호출자를 제외하고 현실적적으로 한족(漢族)이 칭호된 것도 진시황의 진나라와 유방의 한(漢)나라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면 진시황이 본래 동이족 신농씨의 후예 강씨족 여불위 친자였고, 유방이(항우도 초나라 출신) 전통적 동이족 국가였던 초나라 유민임을 안다면 가히 한족(漢族)의 정체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증명하는 기록이 「사기 5제 본기」의 '황제는 소전의 아들(黃帝者 少典之子)이라는 대목과 동기록 '황보익이 말하되 황제는 수구에서 태어나서 희수(姬水)에서 성장하였으며 헌원에서 거주했다'라는 대목, 그리고 「제계사기」의 '황제는 백민(白民)으로 태어나서 스스로 동이에 속했다(自屬東夷)'는 대목, 황제는 백민 출신으로 동이에 속한다는(黃帝生於白民...自屬東夷:『楚史』) 대목에 잘 드러나고 있으니 소위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사를 지나족의 역사속에 편제하려는 시도는 자신들의 역사서에 명백히 드러나 있듯이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안원전)
*現在,中國人的血統,在中華民國稱爲中華民族,而在中華人民共和國爲中國民族。不管如 何稱呼,兩種名稱都只有政治意義而無血統意義。根據以上的分析,漢族名存實亡,中國人的血 統不是屬滿、蒙、藏、回、苗等五個主要族群,就是屬其他48個少數民族。實際上,中國大陸30 幾省的土地,自古就是這53族的固有領土,中國統治下的各民族不但應該仔細尋根,更應知道土地的歷史,向統治者討回本族的固有領土和民族尊嚴,因爲漢族的固有領土只有洛陽盆地。中國 民族、中華民族都是虛構的族名,都經不起歷史、血統的檢驗,閩客是越族,不是漢族。本網站爲 了遷就卽有的錯誤,才把?客也稱爲漢人。 현재 중국인의 혈통은 중화민국에 있으면 중화민족이라 부르고, 중화인민공화국에 있으면 중국민족이라 부른다. 이 두 가지 명칭은 무어라 칭하든 상관없이 단지 정치적인 의미일 뿐, 혈통상의 의미는 없다. 이상의 분석에 근거하면, 한족이란 이름은 있으나 실제로는 없다. 중국인의 혈통은 만, 몽, 장, 회, 묘 등 5개 주요 족군에 속하지 않으며, 그 밖의 48개 소수민족에 속한다. 실제상, 중국대륙의 30여 개 성(省)의 땅은 자고이래 53개 소수민족의 고유영토였다.한족(漢族)의 고유영토가 단지 낙양분지였을 뿐이었던 연고로 인해, 중국통치하의 각 민족은 마땅히 자신의 조상뿌리와 더 나아가  토지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찾고 있을뿐 아니라, 통치자에게 해당 본족의 영토와 민족존엄을 마땅히 알도록 요구하고 있다. 중국민족, 중화민족은 모두 허구의 족명으로, 역사에는 등장한 적도 없고 혈통적으로도 검증된적이 없는 이름으로  민객(閩客)은 월족(越族)이지 한족(漢族)이 아니다.(作者:沈建德,留美企管博士,前中興大學企管系副敎授。現在自費專職硏究台灣主權,及相關 的史地、政治、文化、血統等問題)


*「桓檀古記」『太白逸史』에 의하면 소전(少典)은 소호(少昊)와 함께 고시(高矢)씨의 방계자손이라 했으니 곧 태호 복희의 후손이다. 복희의 후손들인 풍(風)씨들이 세운 나라가 바로 「춘추」에 보이고 있는 임(壬)국, 숙(宿)국, 수구(須句)국, 전유( 臾)국이다. 이 나라들의 위치를 보여주는 기록은 「산해경(山海經)」 <해내동경>에 인두용신(人頭龍神)의 뇌신(雷神)인 이들이 오(吳) 땅의 서쪽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사천성에서 호북성,호남성 그리고 그 외곽인 귀주성에 이르는 양자강 유역임을 알 수 있다)

순이 살던 부하는 곡부에서 30리 떨어진 연주에 있는데 수구는 바로 연주에 있다고 하니 이 곳은 바로 황제의 탄생지(수구)이면서도 바로 치우천왕의 세력근거지(연주)다. 중국사서는 황제를 지나족의 시조로 삼다보니 근원을 숨기려 했지만(곡부위 태안시의 태산이 세력 근거지라 주장하여 가급적 치우천왕의 세력근거지인 연주를 벗어나게 기술하려 했다) 산동성 자체가 바로 동이족의 근거지임과 동시에 맹자 왈 순은 동이족이라 못박은 것같이 황제헌원이 부처님 손바닥 위를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동이족 소호가 바로 이 곳 곡부사람이므로 곡부에 묻혔고 황하강 바로 옆인 동평군 수장현(양산박 부근 현 양곡인근 태전현)치우능 옆 호수가에 동이족 후예인 한(韓)인 장자방의 무덤도 있다. 장가계에 대해서 현지에서 필자는 이런 말을 들었다.

즉, 우리는 초한지나 역사를 통해 장자방이 유방으로 하여금 천하제패를 하게 하고 장생술로 도를 닦기 위해 은거한 것으로 나오고 또 그렇게 알고 있지만 실은 장자방은 마치 범려가 오를 멸망시킨 후, 월나라의 후배 대부인 문종에게 구천에 대해 간난은 같이해도 영화는 같이할 수 없는 인물이라 반드시 토사구팽당해 죽을 줄 알고 같이 도망갈 것을 권한뒤, 문종이 합류하기를 거부하자 급히 서둘러 자신의 배려로 부차의 왕궁 옆에 있는 석호에 평민으로 숨어 은신중인 서시를 데리고 산동성 정도(정할 정 도자기도로 양산박 아래 유방의 고향 풍,패 왼쪽)로 숨었듯이 장자방 역시 유방과 여후를 피해 양자강 일대를 덮고있는 묘족과 형오,백월족 및 동이 9려 토가족들 속으로 숨어들었는데(한신의 운명도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이 곳이 바로 장가계라는 엄청나게 산수풍광이 아름답고 깊은 곳이다.

현지에 가면 이곳은 중국대륙에서 가장 산이 깊고 아름다운 무릉원이라는 도시임을 알 수 있고 그 밑에 도원원이라는 도시가 있어 도연명의 무릉도원이라는 말이 예에서 나왔음을 깨닫는다.

나중에 여후와 유방이 잡아죽이려 했지만 동이 묘족과 동이 토가족의 강력한 연대와 반대로 잡을 수는 없었다고....그런 그가 결국은 자신이 젊은 시절 진시황을 살해하려 급습한 적이 있는 박랑사가 가까운 자신의 핏줄인 동이족의 고향 산동성으로 와 묻혀있다. 참 대단한 역사의 진실이 묻혀있다고 필자는 느꼈다. 중앙정부의 권력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해도 향토사학은 생생히 살아남아 사실을 증거한다. 수 백년이 넘도록 탄압받아도 신화나 전설로 방향을 틀어 전하는것이 바로 역사적 진실이다. 계엄하의 폭도 전두환때에 종파적 차원에서 역사사관이 경도된 일부 그릇된 기독교 목사 몇 놈과 야합해 군부의 힘으로 밀어부쳐 구정을 없앤다 하여 민속의 날이라 어쩌고 하여 강제로 민족혼을 말살하고 문화전통의 맥을 끊으려 했지만 구정은 절대로 없애지 못했던 거와 같다.

일본 학자 오향청언 (吾鄉淸彥)이 한 말처럼 "사마천의 '사기'(史記) 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의 漢이라는 국호 자체도 옛날 3한 조선의 한(韓)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빌려 간 것에 불과하다"한 것 처럼 춘추전국시절의 진,초,연,제,한,위,조의 대부분 국가는 한(韓)이라 노골적으로 밝힌 나라처럼 대부분 동이족의 혈맥을 타고 성립된 나라이며 한신마저 장자방과 같은 동이족 한(韓)인으로 장자방은 같은 동포핏줄 한신을 천거해 당시대륙의 천하쟁패무대위에 등장시킨 것이다. 현재 해방이후 강단사학계는 겨레를 대상으로 일제하 식민사관을 주입해 진리와 권위를 빙자한 차도살해 범죄집단으로 전락한 지 이미 반세기가 넘었다. 최태영 옹 말대로 해방이후 한국 상고사는 불모지 상태인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고대사를 접하면 대륙사를 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진다.(안원전 21세기 담론중)

*위소(韋昭) 주(注)에 이르기를 신농은 3황이라 황제 전부터 있어 황제가 염제를 멸하고 그 자손을 멸했을 뿐이니 신농이 아님을 가히 명백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정 강성(鄭康成)이 5경을 논박해 이의를 제기해 말하기를 황제의 희(姬) 씨 성은 염제가 하사한 것이라 했다. 황보밀(皇甫謐)이 「제왕세기」에서 말하기를 황제는 유웅(有熊)씨인 소전(少典)의 아들 희(姬)씨 성이라(헌원의 후예로 황제헌원이다), 그 선조는 곧 염제의 어머니 집안인 유교(有喬)씨의 장녀로 소전의 가문과 혼인한 고로 「국어(國語)」에서 병칭했다.

이에 신농씨 말기에 유웅씨로부터 나라를 받아 헌원의 땅에 살았다. 「죽서기년」의 황제헌원 파트를 서술한 뇌학기는 이를 근거로 하여 황제는 신농의 모제(母弟)의 후예 소전의 임금 자손이며, 후일 염제(炎帝)대에 유웅(有熊)에 봉해져 희(姬) 씨를 사성 받았다고 말한다. 이위(耳韋)의 주(注)에 이르기를 제(帝)가 염제와 그 자손을 멸했다 하고, 시자(屍子)는 신농씨의 역대가 천하에 70 세를 이어 군림했다(神農氏七十世有天下)고 말한다. 사마천이 지나족의 시조로 삼은 황제는 70세의 역대를 이어 천하에 군림한 우리 조상 신농씨의 혈통을 이어받아 이에 기대어 살았으며 그나마 신농씨의 국가는 배달 환웅국의 번(藩:울타리)국에 불과했다.

「여씨춘추」는 신농씨의 역대가 천하에 17세 동안 군림했다고 말하고, 「사기」<5제본기>는 헌원의 때에 신농의 역대가 쇠약해져 색은(索隱:사기의 주석)에 이르기를 치세가 쇠함은 신농씨 자손의 도덕이 쇠진하고 박덕해진 것을 이르는 것이니 곧 반고(班固)가 이른 삼로(參盧)와 황보밀(皇甫謐)이 이른 유망(楡罔)이 바로 그 증거라 했다.(삼로는 참려라고도 하여 병칭해 참려유망, 삼로유망이라고 함) (안원전 21세기 담론중)

*전욱고양은 말할 것도 없이 동이족이지만 사마천이 화하의 시조로 내세운 황제마저 산동성의 수구에서 백의 민족(백민)으로 태어났음을 밝히고 있는 바다. 수세기에 걸친 부권에서 모권사회의 대립을 통해 지나족의 시조로 일컬어지고 있는 동방족의 후예 황제헌원이 서방족의 모권사회 속에 데릴사위의 형태로 흡수되어 들어간다. 이를 증명하는 기록이 「사기 5제 본기」의 '황제는 소전의 아들(黃帝者 少典之子)이라는 대목과 동기록 '황보익이 말하되 황제는 수구에서 태어나서 희수(姬水)에서 성장하였으며 헌원에서 거주했다'라는 대목, 그리고 「제계사기」의 '황제는 백민(白民)으로 태어나서 스스로 동이에 속했다(自屬東夷)'는 대목, 황제는 백민 출신으로 동이에 속한다는(黃帝生於白民...自屬東夷:『楚史』) 대목이다. 사마천의 「사기」『5제본기』에 3 황 5 제시대가 5 백 년인데, 황제는 100여 년 재위했으며 황제는 유웅국(有熊國) 소전(少田)의 아들로 소전은 인명이 아니라 (환웅국의) "제후국 이름"이라 하였다.(안원전 21세기 담론중)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염제(炎帝)는 성이 이(伊)이며, 이름은 석년(石年)이고, 그 어머니는 유씨(有氏이)며, 이름은 여등(女登) 또는 임이(任已)라고도 불리는데, 소전(少典)의 정부인(正妃)가 되었다. 하루는 그녀가 화산(華山)에서 노는데, 신농(神農)의 머리가 느껴져 상양(尚羊:즉 열산烈山, 지금의 호북湖北수현隨縣)의 한 석실(石室)에서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를 낳았다. 염제(炎帝)는 비록 신화의 인물이지만 오히려 상고 시기 인류 문명의 시작을 진실로 반영한다.

염제(炎帝)의 출생지역에 근거하여 열산(烈山)은 즉, 현재 호북(湖北)수현(隨縣) 서북쪽 려향(厲鄉)이라고 고증된다. 《형주기(荊州記)》에서는 “수(隨)지역에 려산(厲山)이 있고, 아래에 동굴이 있는데, 신농(神農)이 태어난 곳이다.”라고 말한다. 《수경 류수주(水經 謬水注)》에서는 더욱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류수(謬水) 서쪽 려향(厲鄉)으로, “물 남쪽(水南)에 큰산이 있는데 즉 열산(烈山)이라. 산 아래에 굴이 하나 있는데 동네 나이가 많은 어른께서 전해주길 신농씨(神農氏)가 태어난 장소라 하였다. 고로《예(禮)》에서는 열산씨(烈山氏라) 일컫는다.

물 북쪽(水北)에는 아홉 개의 우물이 있는데, 제자백가(子書)에서 말하기를, 아홉 개의 우물을 있었는데, 위수(渭水)이다.” 《무풍구여지(無豊九域志)》에서 또한 “수주(水主) 신농(神農)의 무덤은 려산촌(厲山村)에 있다. 려산(厲山)은 신농(神農)이 태어난 곳이다. 려산(厲山) 사당은 염제(炎帝)가 일어난 곳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염제(炎帝) 시기는 인류 역사 발단의 신화 전설의 시기에 속하기 때문에, 고로 그 출생은 민간에 전해지는 수많은 전설이 있다. 염제(炎帝)의 원래 이름 “석년(石年)"의 유래가 있다. 염제(炎帝)에게는 세 명의 모친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매우 진실에 가까운 염제(炎帝)는 태양이 잉태했다는 것과 태양신이 속세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옛 서적《백호통(白虎通)》에는  더더욱 “염제(炎帝)라는 자는 태양이라”라고 말하고 있다.
  염제(炎帝)의 모친은 여등(女登)이라고 전해지는데, 매우 아름답고 선량하다고 한다. 어느 날 저녁, 꿈에 하늘의 태양이 자기의 품안으로 떨어졌는데, 깨자마자 바로 임신을 했고, 일년 팔 개월을 잉태한 후, 그 다음해 오월 이십오일 태양같은 붉은 구슬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사람들이 놀라고 의아스러워 할 때 그 붉은 구슬은 갑자기 구르더니 둘로 나누어지고 중간에는 생김이 훌륭하고 통통한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여등(女登)은 보고 마음으로 매우 기뻐 황급히 그를 품안에 안고 가죽으로 감싸안았다.

  태양은 사람들에게 광명과 따뜻함을 주었고, 대지에 푸르름을 베풀어주었으며,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였으니, 먼 고대가 시작했을 때부터 태양은 옛날 사람들의 보편적인 숭배를 받았다. 아마도 염제(炎帝)가 창조한 업적은 마치 태양과 같이 찬란하여, 이로 인해 염제(炎帝)를 태양에 비유하였고, 이것에서 나온 높고 먼 이상이 전해져 내려오는 데에는 이상하게 여길 수 없다.

  신화는 말하길, 여등(女登)이 염제(炎帝)를 낳았을 때, 어떠한 연유인지 모르게 집 문 앞에 아홉 개의 우물이 생긴 후, 더하여 서로 연결되어 통하였고, 그 물은 맑게 흩뿌려지며 감미로웠으며, 단지 하나의 우물의 물을 길어도 각 우물의 물이 모두 출렁거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데, 어떤 이는 말하길, 이 아이는 태양이 잉태하였으니, 자라서는 태양과 똑같이 될 거라고 하였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길, 아들을 낳고 아홉 개의 우물이 나타나, 문 앞에 물이 많아 사람을 빠트리기 쉬우니, 이는 길조가 아니라고 하였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아이가 태양을 낳아 기르니, 불의 상징이고 또한 아홉 개의 우물의 물은 서로 반려가 되니, 좋은 것이 더욱 좋아, 아이는 자라서 반드시 성과가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 하였다. 여등(女登)은 듣고 난 후에 묵묵히 말이 없다가, 그녀가 생각하기에 불과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단지 바위 밖에 없어 아이가 바위같이 평안히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아이에게 “석년(石年)”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상고(上古)시대 사람들은 금수(禽獸)의 고기와 초목(草木)과실(果實)을 먹는데 의지하며 생활하였으니, 여등(女登)은 낳은 아이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먹을 것을 찾았는데, 어느 큰 산 앞에 이르게 되었다. 멀리 보이는 산 절벽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크고 붉은 과일이 자라있어 곧 따려고 결심했다. 그녀는 석년(石年)을 꽃과 풀이 만발한 외진 지역에 안전히 놓은 다음, 그를 큰 바위에 눕혀 재운 후, 자신은 절벽 쪽으로 기어올라가는데, 이 때 외진 지역에 있던 석년(石年)이 배가 고파 울부짖자, 이 소리는 곧추 하늘 끝으로 날아가 구천(九天)의 현녀(玄女)가 듣게 되었다.

그녀는 급히 하늘을 헤치고 세상을 내려다보니, 원래 속세로 내려간 “태양신(太陽神”)이 외치고 있었다. 구천(九天)의 현녀(玄女)는 신변의 흰 암사슴에게 분부하여, 서둘러 속세로 내려가 석년(石年)에게 우유를 먹이라고 하였다. 또한 신매(神鷹)로 하여금 석년(石年)에게 찬 습기와 비를 막아주게 하고, 여등(女登)이 식물을 구해 돌아올 때서야, 비로소 선록(仙鹿 신령스런 사슴)과 신응(神鷹:신령스런 매)을 떠나게 했다.

이렇게 석년(石年)은, 곧 세 명의 모친이 있었다. 여등(女登)은 그를 낳은 어미이고, 선록(仙鹿)은 그에게 우유를 먹인 어미(奶娘:유모)이며, 신응(神鷹)은 그를 기른 어미(養母)이다. 석년(石年)은 이리하여, 신선의 양육아래 삼일만에 곧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오일만에 걸을 수 있었으며, 일년이 되자 성인으로 자라, 키가 8척(尺) 7촌(寸)이나 되었다. 이마는 넓고 어깨가 둥글했으며, 허리는 굵고 몸체는 건장했다. 또한 선록(仙鹿)의 영리함을 닮고 신매(神鷹)의 씩씩함과 힘참 모습을 닮아 사고가 민첩했으며, 총명하기가 사람을 뛰어 넘어 세 살이 되었을 때에는 파종과 수확의 일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선록(仙鹿)과 신응(神鷹)이 홀연 사람의 말을 하며, 석년(石年)에게 말하였다. “아이야, 우리들은 본래 구천의 현녀(玄女) 여신 곁에 있는 신선이란다. 현녀(玄女) 여신의 뜻을 받들어, 속세로 내려와 너를 돌보아 주었던 것인데, 지금 너는 이미 커서 어른이 되었으니, 후일에는 인간세상 백성의 일을 많이 생각해, 백성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말을 마치자, 선록(仙鹿)은 입에서 한 개의 영지(靈芝)를 토해내어 흔들더니, 홍갈색의 채찍으로 변하였다.

선록(仙鹿)은 “이 채찍은 후일 백성을 위해 좋을 일을 하는데 쓰라고, 너에게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때 신매(神鷹)가 날개를 펴서 한번 치자, 신속하게 하늘에서 한 마리 유리 사자개가 내려 왔다. 석년(石年)의 앞에 끌어와서는 “ 이것은 현녀(玄女)님께서 백성을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것을 너에게 주는 것이다.” 유모와 양모가 떠나가는 소리를 들은 석년(石年)은 너무 아쉬워, 바로 붙잡고는 놓아주지 않자, 선록(仙鹿)과 신매(神鷹)가 말하길, “인간 세상에는 네가 해야하는 수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일을 이루는 날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치자, 천천히 움직이며 공중으로 뛰어 오르더니 가버렸다.

이것에 근거하여 송(宋) 태조(太祖)는 염제릉(炎帝陵)에 사당을 세웠을 때에, 특별히 능묘(陵墓) 옆에 선록(仙鹿)과 신응(神鷹)을 위해 “이선암(二仙庵)”을 지었으며, 또는 “애선암(靄仙庵)”이라고도 불렀다. 후세 사람들은 선록(仙鹿)과 신매(神鷹)가 여등(女登)을 도와 염제(炎帝)를 기른 은덕을 잊지 않고, 지금 염제전(炎帝殿) 내에도 역시 선록(仙鹿)과 신응(神鷹)을 조각해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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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7.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용뇌석(龍腦石)과 용조석(龍爪石)&장례식 장면 전설《염제릉사화(炎帝陵史話)》  안원전   2004/09/13  5222
31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6.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4-신비로운 녹원(鹿原) 백로가 조문하다 [1]  안원전   2004/09/02  5018
31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5.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3-머리를 써서 청와(靑蛙)를 단죄하다.  안원전   2004/08/26  3974
31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4.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2-태씨(駘氏), 태악(太岳)의 아내 원강(元姜)과 간통하여 의형제 태악(太岳)을 죽인 사건을 교묘히 판단하다.  안원전   2004/08/23  4191
31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3.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1-간신 영신(佞臣)을 제거하다  안원전   2004/08/17  4404
31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2.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장강(長江:양자강)문명의 기치  안원전   2004/08/10  6717
31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1. 요귀 수괴 흑풍괴를 물리친 동이족 신농(神農)의 거문고  안원전   2004/07/26  5386
30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0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적송자(赤松子)의 민간전설 [1]  안원전   2004/07/19  5202
30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9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황제의 민간전설  안원전   2004/07/15  4786
30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8 《천금요방(千金要方)》과 《천금익방(千金翼方)》의 저자 약신(葯神) 손사막(孫思邈)  안원전   2004/07/13  5368
30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7 신필 마량(神筆馬良)의 일심 경지  안원전   2004/07/09  4882
30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6. 도가소설 봉신연의(봉신방)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진 나타 [1]  안원전   2004/07/06  5177
30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65 상(商) 주왕(紂王)의 독량관(督梁官)에서 주왕(周王)의 장수가 되어 상 주왕(紂王)을 친 흥하의 두 장수(哼哈二將) 정륜(鄭倫)과 진기(陳氣)  안원전   2004/06/19  5267
30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4 지행선(地行仙)  안원전   2004/06/19  4659
30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3. 공평무사 하고 시비가 분명한 정의의 화신 오누이 염라왕(閻羅王)  안원전   2004/06/14  5142
30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2 밤에 나돌아 다니며 사람들의 선악을 조사한다는 전설 중의 야유신(夜游神)  안원전   2004/06/14  4465
30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1 갈홍의 부인 포고(鮑姑)와 포고정(鮑姑井)  안원전   2004/06/09  4564
29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0《포박자(抱朴子)》의 저자 신선 갈홍(葛洪)이 가난뱅이 아들에서 대학자가 된 이야기  안원전   2004/06/08  4684
29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매트릭스와 현대문명(By 강정석 동아제약)  안원전   2004/04/20  8867
297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004,4.15총선에 부치는 글(수도명상코너에서 옮김)  안원전   2004/04/16  4740
29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9-동이 9려,한겨레 핏줄 회이(淮夷)족 후예 월족(越族)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안원전   2004/04/07  15517
29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8-문신(門神) 진경(秦琼)과 위지공(尉遲公)(한반도도 조선말까지 이 풍습이 전해짐)  안원전   2004/03/29  6634
29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7-남북조 시기의 북방 소수민족의 한 아가씨 마고(麻姑)에 얽힌 “마고가 장수를 준다(麻姑獻壽)”는 이야기 [2]  안원전   2004/03/25  4949
29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6-변소의 신(神) 자고신(紫姑神)  안원전   2004/03/25  5323
29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5-상원부인(上元夫人)과 종요  안원전   2004/03/22  5140
29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4-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들 토지신(土地神)과 주원장  안원전   2004/03/22  5801
29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3-조왕신(竈君)의 기원,삼국시대 위(魏)나라 세양(細陽) 사람 장단(張單)  안원전   2004/03/16  4641
28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2-남송(南宋) 항금(抗金)의 영웅인 악비 수하의 맹장 우고(牛皐)와 성황신(城隍神)  안원전   2004/03/16  5871
28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1-도신(濤神)이 된 절강성 항쪼우(항주) 전단강의 오자서  안원전   2004/03/15  5241
28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0-탑을 받쳐 들고 있는 이천왕(李天王)  안원전   2004/03/12  4120
28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49-서왕모(西王母) [1]  안원전   2004/03/12  5326
28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48 남천문 현판과 왕희지 시절에 만들어진 옥황대제 신화  안원전   2004/03/11  4740
284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7 동이족 복희(伏羲)와 여와(女媧)가 낳은 딸 낙신(洛神) 신화  안원전   2004/03/11  5294
283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6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8-한족 문화의 영향  안원전   2004/03/11  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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