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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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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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4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6-동이 초문화의 영향








동이  초문화의 영향




초인은 고신씨(高辛氏)의 후예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는 “ 동이족 전욱 고양(高陽) 황제의 묘족 후예다.”라고 말하고 있다. 춘추전국시기에 토가족 지역은 초파(楚巴) 두 나라의 교차 지대였다. 비록 파인이 토가족 지역에서 세력이 비교적 컸지만, 토가족 지역에 초인도 진입했다. 게다가 토가족의 여러 부족 중에 초인이 부분적으로 있었다. 다시 말해서, 초인도 토가족의 한 몫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문화의 토가족에 대한 영향은 주로 두 가지 방면에서 실현되었다. 첫째는 토가족이 되었던 초인의 문화 인자가 직접적으로 토가족에게 전달된 것이고, 둘째는 초문화와 토가족을 형성한 파인 문화가 밀접하게 왕래하여 파문화 중에도 초문화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1. 파초(巴楚)문화의 교류 상황



파, 초간의 교류는 비교적 빨랐다. 기원전 703년(노항공(魯恒公) 9년), 파는 등(鄧)과 친분관계를 맺고 싶어 초에게 사신을 파견하여 파의 사신과 함께 등나라로 갈 것을 요청했다. 이 전에 이미 파와 초간에 왕래가 있었다. 이후에 파와 초는 때로는 동맹을 결성했고 때로는 서로 공격하기도 하여 문화교류도 더욱 빈번했다.

초문화의 중심지 강릉(江陵) 기남성(紀南城) 부근의 형남사(荊南寺) 유적지에서 상대(商代) 문화유물 중 파, 초 두 민족 문화의 내용에 상당하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당양(當陽) 이가호(李家湖) 초성(楚城) 유적지에서는 또 초인이 사용하던 술잔―도격(陶鬲)이 출토되었고, 상당한 수량의 파인 기물(器物)인 원저기(圓底器: 밑이 둥근 도기) 원저부(圓底釜: 밑이 둥근 가마)도 출토되었다. 이가호 동쪽으로 기남성에서 35킬로미터 떨어진 초의 심장부에 속하는 곳에서 대량의 초 문화 유형의 유물이 출현했다.

   초인의 악장(樂章)은 파인의 적극적 문화 요소를 흡수했다. 형문시(荊門市)의 전국시기 초 고분에서 명문(銘文) ‘대무  병(大武  兵)’ 네 글자가 새겨진 동도끼(銅戚) 한 점이 출토되었다. 이 도끼는 대략 파식창(巴式戈)과 비슷하다. 그 정(正)과 반(反) 양면에 같은 도안이 주조되어 있다. 즉, 머리에는 긴 깃털이 꽂힌 모자를 쓰고 몸은 비늘로 덮인 신인(神人)인데, 두 귀에는 뱀으로 귀걸이를 하고 왼손에는 용 한 마리를 쥐었고 오른손에는 머리가 둘 달린 괴수(怪獸)를 쥐었으며 왼발은 달을 밟고 오른발은 해를 밟고 있으며 가랑이 밑에 용 한마리를 타고 있다.

이러한 도안은 초기(楚器)에서는 보이지 않는데다가 같은 묘에서 파식검(巴式劍)이 출토되어 묘 주인이 파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묘의 옆에 있는 몇몇 같은 시기 초 묘의 주인은 초인이다. 따라서 초나라에 파인과 초인이 공존했음을 알 수 있다. 대무지악(大武之樂)은 주 무왕이 상(商)을 점령한 후 파인의 춤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초나라의 대무지악은 파인이 연출한 것으로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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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명(張正明): 《초문화사(楚文化史)》제 282-283쪽; 《초문화지(楚文化志)》제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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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의 병기(兵器)도 초인이 사용한 것이다. 하남 석천하사(淅川下寺) 초묘에서 나온 검은 두 점뿐인데 모두 파식검과 비슷하다. 양양산(襄陽山) 만춘추(灣春秋) 초묘에서 나온 것도 두 점뿐인데, 그 중 한 점은 유엽형단검(柳葉形短劍)으로 역시 파식검이다. 호남 숙포(淑浦) 마전평(馬田坪)에서 파인묘와 초묘가 공존하는 8곳을 발견했다. 몇몇 초묘에서도 역시 파식 병기(兵器)와 도기가 있었다. 이상은 모두 초의 세력범위 내에 파 초 문화가 공존한 현상을 밝혀주는 것이다.






2. 토가족문화 중의 초문화 요소



토가족 거주지는 고대에 남초강역(南楚疆域)에 속했고 또한 초문화의 근원이 된 지역으로, 설사 파나라 시기였을지라도 초와 이웃하고 있었으므로 초 파문화의 교류가 매우 빈번하여 토가족 문화가 농후한 초문화 색조를 띠게 되었다. 초나라가 멸망한 후 중원과 접경 지대에 있는 초나라 백성들은 한문화를 많이 포용하였고, 오직 토가족 등의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무릉(武陵), 대파산(大巴山)산맥의 중간 지대에 산세가 높고 험하고 교통이 막혀 있으며 사람들이 초문화를 심히 그리워하는 등의 원인으로 인해 여전히 대량의 초문화 유풍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특히 원시 신앙 무풍(巫風) 방면에서 더욱 특출하게 표현되었다. 초문화의 수많은 요소가 토가족 문화 속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1) 초인의 불 숭배, 적색 숭상과 토가족 사람들의

태양신, 불의 신 숭배



초인은 축융(祝融)을 그 시조로 삼는다. 《국어 정어(國語 鄭語)》에는 “부려(夫黎)는 고신씨(高辛氏)의 화정(火正)이 되어 순박하고 빛나며 성실함과 하늘의 밝음과 제왕의 덕으로써 빛이 사해(四海)에 비추니 ‘축융’이라 하였고 그 공이 매우 컸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축융은 실제로 태양신(日神)이었고 축융은 또 고신씨의 화정(火正), 즉 화관(火官)이 되었으며 죽은 후의 영혼은 불의 신(火神)이 되었다.

《국어 주어(國語 周語)》에는 또 “옛날에 하(夏)나라가 흥성하여 융(融)이 숭산(崇山)에 내려왔는데 그 멸망 후에 회녹(回祿)은 영수(聆隧)를 믿었다.” 회녹(回祿)은 불의 신의 별칭이다. 인간에게 복을 주는 불의 신은 축융이라고 불렀고 인간에게 화를 내리는 불의 신은 회녹이라고 불렀다. 이것으로 초인의 원시 신앙 중에 시조 축융은 사실 태양신과 불의 신을 합해 한 몸으로 담당하는 대신(大神)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양과 불은 원시 인류가 의지하던 생존의 주요 조건이었고 이것들은 인류에게 따스함과 광명을 가져다주었다.

초인이 축융을 시조로 하는 것은 자신이 태양과 불의 계승자라는 것을 굳게 믿어 자연히 태양과 불의 신을 숭배하게 된 것이었고, 또한 더 나아가 붉은 색을 숭상하게 되었다. 초인의 불 숭배와 적색 숭상은 토가족 지역에 연속될 수 있었고 태양신 숭배와 불의 신 숭배로 변천하였다.

토가족 사람들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태양에게 탄신을 축하하고 노동생산 중에 태양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남아 있다. 상서 용산현 보정현(保靖縣) 및 악서(鄂西) 투동(渝東)의 토가인은 음력 11월 19일을 태양의 생일로 하여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토사(土司)시대에, 토사(소수민족의 세속 족장)는 이날에 수령을 함께 소집하여 가옥 앞의 동쪽에 신안(神案)을 놓고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우고 지전(紙錢)을 태워 태양에게 제사 지냈다. 집단 농사 생산시기에(예를 들어 흙을 퍼내고, 풀을 뽑는 것과 같은 일) 사람들은 가수에게 태양의 공적을 찬양하는 사(詞)를 부르게 했는데, ‘태양을 맞이하며(迎太陽)’, ‘태양을 축하하며(祝太陽)’, ‘태양을 보내며(送太陽)’ 등의 제사찬양의 사(詞)가 있었으며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기도한 후에야 노동 생산의 진행을 시작했다.

토가족 사람들은 불의 신의 숭배에 대해 주로 불의 신을 조상신으로 여기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기피 풍속으로 나타난다. 토가족 지역에는 집집마다 화당(火塘: 방바닥의 흙을 파서 만든 화로)이 설치되어 있고 화당의 정 가운데 삼발이(三脚架)를 놓았는데 그것은 불의 신의 상징이며 조상신의 상징이었다. 어떠한 사람도 발로 밟을 수 없었고 그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을 수도 없었으며 침을 뱉어서는 더더욱 안되고 심지어는 삼발이 위에서 신발과 양말, 기저귀, 바지를 태워서는 안되었는데, 이것들이 모두 조상신과 불의 신에게 매우 불경한 것이라 여겼다.

또 다른 방면에서 토가족은 불은 악마를 쫓아낼 수 있어 사람들을 사악한 귀신의 교란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토가족 사람들은 ‘횃불로 신부를 맞이하는(火把迎親)’, 불로써 역병을 쫓아내고 불더미가 교살(轎煞: 가마의 악령)을 막아주고 불타서 빨개진 돌멩이를 물 속에 담가 아기의 나쁜 귀신을 쫓아내는 등등 옛날 불의 신 숭배의 풍속이 있었다.

붉은 색의 숭상은 토가족 지역에 매우 보편적이다. 모든 혼사와 장례, 생일과 가옥을 짓는 등 모든 대사(大事)에 반드시 붉은색 종이를 예품(禮品) 위에 붙여야 했다. 경사를 표시하기 위해 신부의 가의(嫁衣: 혼례 때 입는 옷) 가장(嫁妝: 혼례 때의 화장) 신생아의 희단(喜蛋: 좋은날 먹는 케이크) 연회 상의 대 젓가락 등에 모두 붉은 색으로 물들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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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병장(胡炳章) 저 《토가족문화정신(土家族文化情神), 민족출판사 1999년 판, 제 19-2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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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인의 봉새(鳳鳥) 토템과 토가인의 봉새 숭배


*상아 나비형 그릇(象牙蝶形器);동이족 유적지인 하모도(河姆渡) 조기의 생산 공구 가운데 적지않은 접형기(蝶形器)에 혹은 표창두(標槍頭) 혹은 모두(矛頭) 꼬리부분(尾端)의 정향기(定向器)에 있는 것으로, 이는 일종의 수렵공구의 부속물이다. 봉황과 아침의 태양(朝陽)이 그려있다. 하모도 유적지의 동이족 상징은 바로 봉황과 조양(朝陽)이다

초인은 봉새를 토템으로 했다. 《백호통 오행편(白虎通 五行篇)》에는 “그 신 축융은, ……그 정신은 새가 되고 분리되어 난새(鸞)가 되었다.”고 되어 있다. 난(鸞)은 곧 색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봉새다. 이 말은 초인이 봉새를 존경하고 숭배하였으며 시조 축융의 화신으로 보았던 것으로 실제로 초인의 토템물이 되었다. 《산해경(山海經)》에 이것에 대해 매우 많은 기록이 있다. “남방에서는……난새가 절로 노래하고, 봉새가 절로 춤추며……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온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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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 해내경(山海經․海內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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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산(女床山)에는……새가 있는데 그 형상이 꿩(翟: 꽁지가 긴 꿩)과 같고 오색무늬가 있었으며 그 이름을 난새라 했고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평안해진다.” *《산해경 해내경(山海經 海內經)》  “단혈산(丹穴山)에는……새가 있는데 모양은 닭과 같고 오색의 무늬가 있으며 이름은 봉황(鳳凰)이라 했다.……이 새는 먹고 마시는 것이 자연의 절도에 맞으며 절로 노래하고 절로 춤추는데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평안해진다.” *《산해경 해내경(山海經 海內經)》   

이상 서술한 ‘서산(西山)’, ‘남산(南山)’은 그 지역이 초나라 지역에 많으며, 난새와 봉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평안해진다,’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은 사실 봉새의 초인에 대한 보호 기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원시관념 속에서 토템 신은 그 부족의 자손에 대해 이러한 보호 작용을 한다. 호북 강릉 초묘에서 출토된 화살통과 비단에 그려진 도안 중의 봉새 형상은 그 주요한 도안이 되어 빈번히 등장하는데, 이는 모두 봉새가 초인의 토템이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토가족 사람들도 봉새를 숭배했다. 토가족 사람들은 ‘파수제조(擺手際祖)’ 의식을 거행할 때 용과 봉새가 수놓인 깃발을 높이 들고 ‘파가틈당(擺駕闖堂)’을 진행한다. 틈당(闖堂)할 때 용과 봉새 양 팀의 기수가 먼저 깃발을 이용해 서로 뒤엉켜 상대하여 상대방 수중의 깃발을 가지고 달아나면 승리하는 걸로 하여 승자는 먼저 신당(神堂)에 들어가 조상에게 제사 지낼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청옥조(青玉鳥) : 서주(西周)에서 유행된 옥패장식 중에, 많은 생동감과 활발함을 지닌 초색의 옥기이고, 그 중 새 모양의 옥패가 가장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제작방법이 간결․ 세련되고, 가지런하고,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새 깃털의 조각 그림이다. 봉황새 무늬 또한 매우 풍부하여, 이 시기의 주류 무늬 장식이 되었다.(은나라가 동이족 국가였고 옥문화가 동이족 문화였으며 주나라 역시 그 중심무대가 은허주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안다면 동이족의 조 도등(토템상징)인 새 문양 옥조각은 동이족 문화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새 깃털의 조각 그림으로, 세심함이 마치 실이 날리는 것과 같다. (羽毛的刻畵~)
- 눈이 크고 생기가 있고, 중요한 지위에 올라 있고, 봉황새의 심령한 현상을 나타낸다. (眼睛大~~~)


*봉조문옥식(鳳鳥紋玉飾): 전해오는 말에 문왕(文王)때에 “봉명기산(鳳鳴岐山)”을 흥왕의 징조로 보았다. 서주(西周) 때에 많은 종류의 새 모양 옥장식이 있었을 뿐 아니라 청동기 가운데 유행한 봉조문(鳳鳥紋)은 가히 “봉명기산(鳳鳴岐山)”의 전설과 관련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이는 상(商)의 조상 선조가 제비로 도등(圖騰:토템)을 삼아 제비 문양 장식이 성행한 것과 구별된다. (결국 동이족의 조도등(鳥圖騰)의 연장선위에 상(商)나라의 제비(燕) 도등과 주(周)나라의 봉황 도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고 화샤(華夏)족이 존주대의(尊周大義)의 중심으로 삼은 주(周) 마저 동이족 국가임을 이러한 고고학적, 문화사적 증거를 토대로 알 수 있다)


호병장(胡炳章) 선생은 이 민속의 상황은 옛날 다른 토템부락이 회합과 주조과정 속에서 대립하고 충돌하던 일종의 문화 흔적일 가능성이 높고, 이는 아마도 뱀 토템 부락인 파인과 봉새 토템 부락인 토저(土著) 민족의 원시 충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토가족 파수무(擺手舞)의 주요 목적은 조상과 신에게 제사지내는 것, 특히 시조와 원조(遠祖: 먼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데 있는데, 이러한 제사의식 중에서 용과 봉새 토템의 표지 깃발을 높이 드는 것은 토가족 사람들의 옛 토템 신이 ‘파사(巴蛇)’와 ‘봉새(鳳鳥)’에 대한 일종의 아련히 추억하는 의미를 나타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이는 결국 조(특히 봉황, 제비)도등의 동이족의 족원을 방증하는 사료가치를 담고있다고 하겠다:안원전)



(3) 초의 풍속과 토가족의 풍속





민속문화의 방면에서 부분적으로 초의 풍속은 토가족 민간에 전승되고 발전할 수 있었는데, 그 중 초문화의 색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초인의 정월에 자고를 맞이하고(迎紫姑), 5월에 액을 막고(避邪), 용주 시합(塞龍舟)을 하는 풍속이 이에 속한다. 양(梁)나라의 종늠(宗懍)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정월 15일에 콩죽(豆糜)을 만들어 그 위에 유고(油膏)를 첨가해 사당의 문에 붙였다. 그 날 저녁에 자고(紫姑)를 맞음으로써 장래의 농사를 점치고 여러 일을 점쳤다.”

또한 “5월 5일에……쑥을 캐서 사람의 형상이라 생각하여 문에 걸어 독기(毒氣)를 물리치고 창포나 실이나 가루를 술에 띄웠다. 이 날은 용주 경기를 하고 각종 약초 캐기 시합을 한다.” 고대 초인의 ‘자고를 맞이하는 것(迎紫姑)’은 ‘장래의 농사를 점치고 여러 일을 점치는데’ 목적이 있었으며 5월에 쑥을 캐어 문에 걸고 창포를 술에 띄우는 것은 액을 막으려는데 뜻이 있으며 용주 시합을 하는 풍속은 주로 굴원(屈原)을 애도하고 제사하기 위해서다. 초인이 보기에 5월은 사악한 기운이 충만한 재난의 달이었다.

《형초세시기》에는 “5월은 속칭 악월(惡月), 다금(多禁)이어서 ‘쑥을 문에 걸어 놓고 창포를 술에 띄웠다.” 혹은 “각종 약초 캐기 시합을 했다.”고 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악기(惡氣)를 쫓음으로써 평안과 길함을 기도하기 위한 것이다. 초인의 이런 풍속은 토가족 지역에 전승되었을 뿐 아니라 그 풍속이 내포한 뜻도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토가족 사람이 부르는 자고(紫姑)는 ‘칠고낭(七姑娘)을 모시는 것’이다. ‘칠고낭’은 실제로 ‘자고(紫姑)’의 잘못된 발음으로, 후에 헛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 다시 옥황상제의 딸 ‘칠선녀(七仙女)’가 되었다. ‘칠고낭을 모시는’ 과정 중에는 우선 시집 안간 여자 한 명을 선택하는데 10세 전후가 가장 좋았고, 안채의 한 가운데 방에 단정히 앉은 다음 한 사람이 신을 공경하는 향을 쐬게 한다. 이 여자가 혼미하고 미친 듯한 상태가 되면 여러 향촌의 부녀들은 그녀가 이미 칠선녀의 분신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혼사며 앞날의 일과 농사에 대한 것들을 잇달아 물어본다. 이 풍속은 오늘날에도 매우 자주 볼 수 있다.

초인의 5월 피사(避邪)와 용주 시합의 풍속은 토가족 지역에서 비교적 보존이 잘될 수 있었다. 동치(同治) 《래봉현지(來鳳縣志)》에는 “5월 5일에 쑥과 창포를 문에 걸고, 창포와 웅황주(雄黃酒)를 마시고 웅황 방울을 어린아이 이마 및 손과 발의 중앙에 묻혀 역병을 물리친다고 했다. 백초(百草)를 캐서 탕을 달여 목욕을 하여 부스럼과 옴을 피한다고 했다. 찧은 마늘과 웅황수를 문과 벽에 두루두루 뿌려 뱀과 살무사를 피한다고 했으며,……모든 용주 경기는 15일에 특히 성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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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同治):《래봉현지(來鳳縣志)》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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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同治) 《직례풍주지(直隷灃州志)》에는 “5월 ‘단오’에는 쑥을 캐서 문에 걸고 독을 물리친다고 했다. 혹은 나뭇잎을 호랑이 형태로 잘라 착용하면 먹은 귀를 뚫리게 한다고 말한다. 또 목란을 캐서 목욕한다. 용주 경기의 표지는 다섯 가지 색깔로 나누어지는데 배가 가벼워 ‘비부(飛鳧)’라고도 한다. 세인들은 굴원이 강에 뛰어들었으므로 배와 노를 저어 다투어 그를 구하고 또 종자(粽子)에 오색실을 달아 강물에 던져 제사지냈다. 여러 가지 풀을 캐어 약초로 저장하여 강한 질병을 제거했다.”
‘칠고낭을 모시는 것’이든지 아니면 5월에 용주 경기를 하고 독한 질병을 피하는 것이든지 간에 토가족 지역의 이러한 풍속은 모두 기본적으로 초인의 유풍을 이어온 것이다.

그 민속 상황의 형식과 내용 및 동기로부터 볼 때 역시 모두 초인의 풍속과 매우 근접한데 이것은 토가족의 풍속문화가 확실히 일정한 초문화의 기인(基因)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주는 것이며, 토가족 문화가 그 자신의 형성 과정 중에 확실히 어느 정도 초 문화 전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종합적으로 서술하면, 토가족은 파인(巴人), 복인(濮人), 월인(越人), 오만(烏蠻), 한인(漢人), 초인(楚人) 등 여러 부족이 융합되어 형성된 한 민족이기 때문에 그 문화의 원천은 다원적이다. 파문화, 월복문화, 초문화, 오만문화, 중원문화는 모두 토가족 문화에 영향을 주었고, 토가족문화 속에 상술한 부족의 문화 인자가 들어 있다. 이 밖에 토가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내원이 된 파인 또한 그 기본 문화 역시 하나의 복합체다.

선진시기의 파문화는 이미 중원 이리두(二里頭)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동주(東周)시기에 이러한 파문화의 복합성도 역시 중원문화의 강렬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우선 표현되었다. 이와 동시에 파문화와 월, 복문화의 사이에는 빈번한 교류 뿐 아니라 더욱 많은 공통성을 가지고 있었고, 파문화와 초문화도 서로 흡수했으며, 파인 중의 한 갈래도 일찍이 저강(氐羌)과 문화 접촉을 했었다. 그리하여 파문화가 장강 중상류의 독특한 풍격의 고대 민족문화를 이루게 했다. 토가족 문화는 바로 이러한 다원문화의 혼합 상태 아래 형성되었다.
* 이리두(二里頭)문화1* 이리두(二里頭)문화2* 이리두(二里頭)문화3
*웅장한 동이 대륙사 홍산문화(紅山文化) 대문구(大汶口) 문화 및 용산(龍山)문화의 놀라운 고고학적 실체-대륙에 지나 한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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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65 상(商) 주왕(紂王)의 독량관(督梁官)에서 주왕(周王)의 장수가 되어 상 주왕(紂王)을 친 흥하의 두 장수(哼哈二將) 정륜(鄭倫)과 진기(陳氣)  안원전   2004/06/19  5267
30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4 지행선(地行仙)  안원전   2004/06/19  4659
30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3. 공평무사 하고 시비가 분명한 정의의 화신 오누이 염라왕(閻羅王)  안원전   2004/06/14  5142
30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2 밤에 나돌아 다니며 사람들의 선악을 조사한다는 전설 중의 야유신(夜游神)  안원전   2004/06/14  4465
30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1 갈홍의 부인 포고(鮑姑)와 포고정(鮑姑井)  안원전   2004/06/09  4564
29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0《포박자(抱朴子)》의 저자 신선 갈홍(葛洪)이 가난뱅이 아들에서 대학자가 된 이야기  안원전   2004/06/08  4684
29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매트릭스와 현대문명(By 강정석 동아제약)  안원전   2004/04/20  8867
297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004,4.15총선에 부치는 글(수도명상코너에서 옮김)  안원전   2004/04/16  4740
29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9-동이 9려,한겨레 핏줄 회이(淮夷)족 후예 월족(越族)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안원전   2004/04/07  15517
29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8-문신(門神) 진경(秦琼)과 위지공(尉遲公)(한반도도 조선말까지 이 풍습이 전해짐)  안원전   2004/03/29  6634
29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7-남북조 시기의 북방 소수민족의 한 아가씨 마고(麻姑)에 얽힌 “마고가 장수를 준다(麻姑獻壽)”는 이야기 [2]  안원전   2004/03/25  4949
29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6-변소의 신(神) 자고신(紫姑神)  안원전   2004/03/25  5323
29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5-상원부인(上元夫人)과 종요  안원전   2004/03/22  5140
29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4-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들 토지신(土地神)과 주원장  안원전   2004/03/22  5801
29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3-조왕신(竈君)의 기원,삼국시대 위(魏)나라 세양(細陽) 사람 장단(張單)  안원전   2004/03/16  4641
28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2-남송(南宋) 항금(抗金)의 영웅인 악비 수하의 맹장 우고(牛皐)와 성황신(城隍神)  안원전   2004/03/16  5871
28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1-도신(濤神)이 된 절강성 항쪼우(항주) 전단강의 오자서  안원전   2004/03/15  5241
28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0-탑을 받쳐 들고 있는 이천왕(李天王)  안원전   2004/03/12  4121
28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49-서왕모(西王母) [1]  안원전   2004/03/12  5327
28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48 남천문 현판과 왕희지 시절에 만들어진 옥황대제 신화  안원전   2004/03/11  4740
284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7 동이족 복희(伏羲)와 여와(女媧)가 낳은 딸 낙신(洛神) 신화  안원전   2004/03/11  5294
283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6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8-한족 문화의 영향  안원전   2004/03/11  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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