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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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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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6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8-한족 문화의 영향




(2) 한족 문화의 영향


토가족 지역에는 매우 일찍부터 한인(漢人)이 생활했다. 역사의 발전에 따라 토가족지역에 진입한 한족의 인구는 갈수록 많아졌고, 이러한 토가족 지역에서 정착한 한족 인구는 토가족인구의 일부분이 되었고 토가족 사람과 장기간의 공존 중에서 서로의 문화는 점차 비슷해졌으며 게다가 일종의 높은 위치에너지를 가진 문화가 되어 한문화는 토가족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한문화의 수많은 요소를 토가족이 받아들였다.

다른 시기 한족의 토가족 지역에서의 생활 상황에 대해서는 각종 사적에 고르게 기록되어 있다.
위진(魏晉)시기는 중국의 전란의 시기였고 또한 중국인구가 대이동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적지 않은 북방 지역의 전란을 피해 온 사람들이 잇따라 토가족 지역으로 진입했다. 이 때문에 《수서 지리지(隋書 地理志)》에 이 시기 토가족 지역의 풍속에 대해 기록할 때 풍습이 단일하지 않다고 말한다.

당송시기에 토가족 지역에 진입한 한인은 매우 많았다. 바로 한족의 인구가 대량으로 진입한 이유 때문에 《은시현지(恩施縣志)》에 이시기 토가족 지역의 풍속에 대해 기록하여 말하기를, 시주(施州)는 “화도 아니고 이도 아닌 중간.(不華不夷間)”에 처해 있다고 했다.

명청 시기에 특히 으로 정착한 후 한족인구가 토가족 지역으로 대규모 진입했는데 이와 관련된 기록은 역사서에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명사 토사전(明史 土伺傳)》은 “시주(施州) 의상의 자원은 시의 외지에 있고 상인은 객지에서 살았고 강서(江西), 황주(黃州), 무창(武昌), 사천, 귀주보다 많았다.” 개토귀류(改土歸流)로 정착한 후 한인은 토가족 지역에 진입하여 아래의 표와 같은 반영을 얻었다.



개토귀류(改土歸流)로 정착한 후 영순부(永順府) 인구 구성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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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순부(永順府)  영순(永順)  보정(保靖)  용산(龍山)  상식(桑植)

총 호구수 85942        34187         12597        18417         20741
총 인구수 385165       185021        52435       95117         52592
토민 호구수46311      20346         7952         9982          8031
토민 인구수22034      113765        34497        50555         21219
묘민 호구수9440        4686          3227         1364          163
묘민 인구수 45210      25133        12386        7155         536
타지에서 온  
사람 호구 수                           30191      9155        12547
타지에서
온 사람 인구 수                      119921      46123       3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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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건륭(乾隆) 《영순부지 호구(永順府志 戶口)》권4



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개토귀류이후에 대량의 한족 인구가 토가족 지역으로 진입했고또한 이 지역에 정착하여 토가족지역의 인구 구조에 변화가 발생했다. 예를 들어 영순현(永順縣)은 “초의 지극히 변두리에 속하는데 토인, 한인, 묘민이 함께 살았다. 토인이 40%, 한인은 30%, 묘인은 30%밖에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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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同治): 《영순부지 풍속지(永順府志風俗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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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과 토가족이 한 지역에 함께 거주하여 생활이 ‘피차간에 서로 익숙해지는’ 현상이 나타나 한족문화는 토가족문화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한족문화의 토가족에 대한 영향은 주로 네 가지 방면에서 표현된다.

첫째는 토가족은 장기간의 한족과 공존을 통해서 한족의 선진적인 농경 생산방식을 받아들였다.
둘째는 토가족은 점차 한족 언어를 받아들여 자신의 언어는 점점 소실되었다.
셋째는 한족의 일련의 풍속습관이 토가족에게 수용되었다.
넷째는 토가족 사람들은 점차 한족의 몇몇 가치 관념을 받아들였다.


한족과 묘족 외에도 토가족지역에는 동족(侗族), 요족(瑤族), 이족(彛族) 등의 소수민족이 생활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소수민족 중에 어떤 민족은 옛날부터 토가족 지역에 거주해왔고 어떤 민족은 후에 타 지역에서 이주해 왔다. 예를 들어 동족(侗族)은 대대로 토가족 지역에서 거주해온 것 외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개토귀류 후에 외지에서 이전해 온 사람들이었다. 지금의 은시(恩施)의 동족 양씨(楊氏)는 건륭 병오년(丙午年)(1786년)에 호남 지강(芷江)에서 시남부(施南府)로 이주해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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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성(胡北省) 은시(恩施): 《양씨족보(楊氏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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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利川)의 동족 요씨(姚氏)는 청나라 건륭 연간에 이천으로 이주해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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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胡北) 이천시(利川市): 《요씨족보(姚氏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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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宣恩)의 동족 황씨(黃氏)는 “건륭 연간에 호북 시남부(施南府) 선음(宣邑) 동향리(東鄕里) 이갑(二甲)으로 이주해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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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道光) 17년 호북(胡北) 선은현(宣恩縣) 《황성승음부(黃姓承蔭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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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시(恩施) 성가패(盛家壩) 마찰구(麻札溝)의 동족 오씨(吳氏)는 강서(江西) 길안(吉安)에서 이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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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胡北) 은시(恩施) 성가패(盛家壩) 마찰구(麻札溝) 《오씨족보(吳氏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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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문화도 역시 토가족 문화에 영향을 주었고, 토가족의 발전 과정 중에 그들의 문화 요소 역시 흡수되었다. 다른 민족이 한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함께 생활하면 문화 풍속이 필연적으로 상호간에 익숙해져서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네가 있는 상황을 형성했다. 토가족 지역의 ‘대소장인(大小章人)’이 바로 그 전형의 대표격이다.

토가족 지역에는 ‘대소장인’ 생활이 있다. “대소장자(大小章者)는 토사의 유민으로 흘요(仡佬)라 했고 용맹스럽고 웅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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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 엄여익전(淸史稿 嚴如熤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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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장인의 다원 문화적 특징에 대해 혹자는 ‘       ’특징이라 말하며, 역사서에도 기록이 있다. “대소장자는 흘요(仡佬)로 건주(乾州), 호계(滬溪)의 변방에 흩어져 거주하고 장씨(章氏) 형제가 공동으로 단련(團練: 민간의 자위 집단)하여 이곳에 거주하였는데, 그 자손은 만(蠻)의 풍속을 배우고 묘족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토가족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또 다른 종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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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여익(嚴如熤): 《묘방비람 요략(苗防備覽 要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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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장인은 장사하고 무역하는 사람으로 타지 말(客話)을 할 줄 알아 외지인과 다름이 없었으며, 촌락에 거주하고 아직 도시에 가본 적이 없는 자는 본토 말(土語)에 능통했고,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말은 모두 타지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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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여익(嚴如熤): 《묘방비람 풍속(苗防備覽 風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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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몇몇 묘족은 장기간 토가족과 함께 거주하여 비교적 농후한 토가족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묘강풍속고(苗疆風俗考)》에 기록하기를 “영보(永保)의 묘인과 영수(永綏) 건주(乾州)는 인접해 있고 각 마을에서 현(縣)으로 가기에는 먼 곳에 묘족이 생활하며 보정현(保靖縣)으로 가는 것은 고장평(古丈坪)과 조금 가까웠는데, 예를 들어 홍홍(哄哄) 마을은 비록 묘 부락이지만 동화된 날이 길어 별칭을 토만(土蠻)이라 했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토가족 지역은 춘추시기부터 다민족 잡거구역(多民族雜居區域)이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문화 생태는 토가족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토가족 문화로 하여금 성장 과정 중에서 이러한 민족(주로 묘, 요, 한, 동족)의 문화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도록 하여 토가족 문화는 이러한 민족이 몇몇 문화적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토가, 묘족, 한족 등이 동일한 구역에서 생활하였는데, 장기간의 공존과 특히 서로 통혼(通婚)함으로 인해 언어가 비슷해지고 풍속을 서로 배워 피차의 문화 간에 공통점이 생겨,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네가 있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사람들이 자주 볼 수 있는, 갑 민족의 어떤 풍속이 을 민족 속에도 존재하고; 을 민족의 어떤 풍속이 갑 민족 속에도 존재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이다.

오늘날 토가(土家), 묘가(苗家), 동가(侗家) 등이 공유하는 풍속과 관련 문화 사항에 대해 어떤 것이 토가족의 것이고 어떤 것이 묘족의 것이며 어떤 것이 동족의 것인지 명확히 구분 짓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며 또한 정확히 구분 짓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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