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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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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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4-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들 토지신(土地神)과 주원장


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들

토지신(土地神)과 주원장





고대에는 천신과 지신을 ‘황천후토(黃天后土)’라고 불렀는데, 후토(后土)는 바로 대지를 주관하는 신으로 대영웅―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들이다. 그는 젊었을 때 몸집이 아주 튼실하고 체구가 우람했으며 눈이 세 개가 있었다.

후토는 사람에 대해서 겸허하고 온화해서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겉치레를 따지지 않았으며, 또한 큰 소리로 고함치는 수행원들도 없었고 말이나 가마도 타지 않았다. 그는 이미 나이가 들었지만, 지팡이 하나만 짚고 길을 걸었다.

후토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은 매우 적었고, 전심으로 백성들을 위해서 일을 처리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 대해서는 전심전력을 다했다.

손오공(孫悟空)이 당승(唐僧: 현장법사)을 보호하며 서방정토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후토는 손오공 일행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어, 당승이 불경 구하는 것을 성공하자 손오공은 후토에게 감사하며 그에게 콩을 가리키면 금으로 변하고 고양이를 가리키면 쥐로 변하는 마법 막대기를 선물했다.

후토는 부자가 되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을 희롱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팡이로 사용했다.

하루는 후토가 강남에 가서 그곳의 농작물이 잘 자라는지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한 작은 산비탈을 지나는데 양을 치는 아이가 그곳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게 보였다. 물어보니 이 아이는 방금 나뭇가지로 땅 위에 그림 그리기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잠깐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관목 숲에서 이리가 한 마리 튀어나와 양떼들 틈에서 양 한 마리를 물고 달아난 것이었다.

이 양은 지주의 것이라 잃어버리고 나서 배상할 수가 없었다. 후토는 이리가 달아난 방향을 자세히 물어보고는 아이를 위로하며 말했다. “얘야, 걱정 말거라. 내가 너를 도와 찾아 줄게.” 후토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니 과연 작은 길에서 이리 한 마리가 양을 입에 물고 있는 걸 발견하고 재빨리 가서 빼앗았다. 그 이리는 분명 후토의 적수가 되지 못하여 양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러나 양의 뱃속의 오장육부가 이미 이리에게 물려서 엉망이 되어 보아하니 살아남기 힘들었다. 후토는 매우 화가나 그 이리를 쫓아가 지팡이로 한번 찍으니 이리가 순식간에 양으로 변했다.
후토는 양을 아이에게 건네주고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마량(馬良)Click here!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여서 그를 부양해 교육을 시켜줄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이 매일 지주의 양을 치며 입에 풀칠을 했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였지만 붓과 종이를 살 돈이 없어 매일 양을 치다가 쉬는 시간에 나뭇가지를 이용해 땅에다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후토는 이 말을 듣고 마량을 매우 동정하여 마량이 부주의한 틈을 타 지팡이를 붓으로 바꾸어 말했다. “나한테 붓이 하나 있으니 너에게 선물하마. 너는 그림 그리는 것을 잘 연습해서 선한 사람이 되고 가난한 사람의 능력을 보여주렴.”

마량은 눈앞의 할아버지가 토지신인 줄 몰랐지만, 할아버지의 말을 뚜렷이 기억했다. 후에 그는 이 신필(神筆)을 이용해 화가로 명성을 날려 ‘신필 마량의 이야기’를 남겼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옥황대제는 후토에게 농민의 일을 전문적으로 관여하도록 했고, 후토는 전심을 다해 이를 수행하여 기본적으로 해마다 때맞춰 비가 오고 바람이 고르게 불어 오곡이 풍성하게 하여 농민들이 휴양하여 예기를 기르고 평안하게 살면서 즐겁게 일하도록 했다. 대체로 농민에게 유리한 일은 그가 모두 기꺼이 행했다.    

원대(元代) 말년에 봉양(鳳陽)사람 주원장(朱元璋)이 농민을 이끌고 거병하여 원에 대항했다. 한번은 주원장이 전투에서 패하여 부상을 입었는데, 뒤에는 원나라 군사가 추격하고 있었고 앞에는 커다란 강이 있어 도망갈 곳이 없었는데 다행히 부근에 토지신의 사당이 있어 그는 급히 사당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얼마 후 원나라 군대의 관병들이 손에 칼과 창을 들고 토지신의 사당으로 뒤따라 들어왔다. 주원장은 속으로 이번엔 완전히 끝이구나 생각하고 원군의 손에 포로로 잡혀 모욕을 당할게 뻔하므로 검을 뽑아 자살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원군 관병은 사당 안으로 성큼 들어오더니 마치 그를 못 본 듯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추격하러 가버렸다. 주원장은 이제야 생명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주원장은 자신의 군영으로 돌아와 자기가 토지신 사당에서 겪었던 신기한 일을 수하의 대장군 서달(徐達)과 책사 유기(劉基)에게 들려주었다. 서달이 말했다. “원수님의 명이 길어 본래 하늘의 보호하심이 있으셨던 겁니다.”

유기가 분석하여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원수님이 농민을 이끌고 싸우시기 때문에 토지신 할아버지께서 마땅히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계실 겁니다. 관병이 원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했다면 분명 토지신이 속임수를 쓰신 것입니다.”

주원장은 그제서야 크게 깨달아 즉시 사병을 불러 돼지, 소, 양을 잡아 준비하게 해 직접 토지신의 사당에 가서 참배하고, 한편으로는 토지신―후토의 구원해 주심을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토지신에게 그의 보잘 것 없는 힘에 도움이 되어 달라고 빌었다. 그들이 군영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바람에 따라 누런 종이 한 장이 날아 왔다. 주원장이 주워 보니 종이 위에는 다음의 두 마디가 적혀 있었다.

소신(小神)은 이따금 하찮은 재주를 보일 뿐, 원수께서는 자신의 힘으로 성공하실 겁니다.
주원장과 수행원들은 종이 위의 문장을 보고 모두 감탄해 마지않아 원 왕조를 무너뜨리려는 결심을 더욱 굳혔다.

몇 년 후에 주원장은 정말로 천하를 공략하여 명대(明代)의 개국 황제로 등극했다. 그러나 이때 그는 이미 그와 함께 힘들게 창업했던 농민 형제들을 더 이상 믿지 못하고 공신들을 마구 주살했다. 후토는 이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기회를 엿봐 주원장을 설득하려 했다.

어느 날 밤, 주원장이 대신들이 올린 상주문을 심사하고 있었는데 글을 계속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조금 지나서 어떤 사람이 궁 문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그가 다시 자세히 보니 바로 토지신 후토가 아닌가, 무슨 일을 물으러 온 것인가?

후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폐하, 공신들은 이전에 당신과 함께 생사를 넘나든 사람들인데, 이제 와서 오히려 그들을 주살하시면 폐하는 천하의 사람들에게 어찌 설명하시렵니까?”

주원장은 그의 질책에 대답하지 않고 후토에게 반문했다. “나는 귀한 천자의 몸이고 넌 일개 토지신에 불과하거늘, 너무 과하게 참견한다고 생각지 않느냐?”

후토는 주원장을 살려줬던 일을 떠올리며 그에게 경고했다. “폐하께서는 제 말을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폐하의 명성에는 반드시 손해를 끼칠 것입니다.”

주원장은 매우 화가 났다. “황제가 바로 가장 좋은 명성이다. 알겠느냐? 내 화를 돋우지 말고 썩 물러가거라.” 이렇게 말하며 시위를 불러 후토를 황궁에서 내쫓았다. 그는 이미 후토가 그의 생명을 구해준 일을 전부 잊어버렸다.

다음날 주원장은 어제 밤 꿈을 다시 떠올리고 노기가 가라앉지 않아 토지신의 지위를 강등하라는 조서를 한 장 꾸몄다. 이때부터 후토의 지위는 더욱 낮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농민들은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하려 하여 후토를 잊지 않고 매년 음력 2월 2일 그의 탄생일에는 이 토지신의 사당에 향불이 특히 왕성했고 농민들은 돼지, 소, 양을 들고 와 그에게 참배했다. 농민들과 함께 즐길 수 있으므로 역시 후토가 1년 중 가장 기뻐하는 날이었다.

수확할 계절이 되면 그는 논밭에 나와 농업의 수확을 순시하는데, 이때 농민들은 그가 나이가 많은 것을 감안하여 지팡이를 만들어 논밭에 꽃아 두어 그가 걸어 다니기 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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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이성계



풍수에서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말이 있다. 무릇 인물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풍수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의 인물이 있는데 바로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와 중국 명나라 태조 주원장(1328∼1398)이다.

전남 목포 앞바다에 왕이 나온다는 자리가 있었다. 우이도라는 섬이 바로 그 자리인데,섬밑 바다 속에 혈자리가 있어서 시신을 바닷물속에 안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이도의 바다 속 명당자리는 소 귀의 형상을 한 섬으로 왼쪽은 천자(天子),즉 중국의 황제가 나오는 자리고 오른쪽은 조선의 왕이 나오는 자리였다.

때는 고려말엽. 이성계의 조부되는 이춘(李椿)은 자기 손자대에 중국 황제가 나오게 하려고 산소자리를 물색하던 중 이 우이도 대명당을 발견하고 즉시 이장을 추진했다. 그런데 물속에 시신을 안치하는 수장(水葬)을 하려니 물질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수소문해 보니 근처에 주씨(朱氏)라는 사람이 제일 잘한다고 하여 곧장 만나러 갔다. 그 주씨는 바로 후일 중국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조부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저 물질이나 하던 평범한 어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춘은 주씨를 만나 속이야기를 털어놓은 뒤 우이도 밑의 오른쪽 왼쪽 두 곳에 대명당이 있는데 나와 당신 두 집안이 한 자리씩 쓰자고 제의했다. 그는 천자 나올 자리는 주씨에게 쓰라고 하고 왕이 나올 자리는 자신이 쓰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춘은 이미 속셈이 있었기 때문에 진짜 천자자리를 왕자리라고 하고 왕자리는 천자자리라고 속여 알려 주었다. 이런 기막힌 얘기를 듣자 주원장 조부도 선뜻 동의하며 자신이 물질하여 바다 속 수장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침내 두 집안의 수장작업을 끝마치고 주씨가 물속에서 나왔다. 이춘이 주씨에게 수장을 잘했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영감께선 미천한 저에게 천자자리를 쓰라고 하였으나 생각해 보니 자리를 알려주신 것도 감사한데 주제넘게 무슨 천자자리까지 바라겠습니까. 그저 왕자리로도 과분합니다. 그래서 저는 쓰라고 하신 천자자리에 안 쓰고 왕자리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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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씨(共工氏)의 분포와 이주

전설의 염제후예 중에 공공씨도 중요한 한 분파다. 《국어․노어(國語․魯語)》에서는 “공공씨는 구유를 독점하였고, 그 아들은 후토인데 능히 구토를 평정하였으므로 사를 세워 제사지냈다(共工氏之伯九有也, 其子曰后土, 能平九土, 故祀爲社)”고 말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공공씨도 일찍이 치수를 했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치수에 성공을 거두어서 사신(社神)으로 받들어졌다. 이러한 전설은 분명 모두 토지, 농업과 관계가 있다. 곽말약(郭沫若)은 ‘구유(九有)’, ‘구토(九土)’는 문자의 표면상에 나타난 뜻으로 보면 아홉 개의 지역이므로 ‘백구유(伯九有)’는 바로 ‘구주를 독점한(覇九州)’것으로, 사실상 아홉 개 씨족이 아홉 지역에서 살았는데 공공씨가 그 중에 제일 중요한 위치에 거주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곽말약(郭沫若) 주편 《중국사고(中國史稿)》제1책, 인민출판사 1976년판 제109쪽.

공공씨가 신화의 인물로 전설이 된 원인은 주로 그가 동이(東夷)의 치우(蚩友)와 유명한 전쟁을 했기 때문이다. 전쟁한 지역은 태행산(太行山)의 동측인데, 지금의 하남 북부에서 하북(河北) 남부에 이르는 한 지역으로 공공씨가 일찍이 황하 중류에서 활동했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들이 장기간 활동한 지역은 아마도 지금의 하남 서쪽인 이수(伊水)와 낙수(洛水)유역이었던 것 같다.

이 지역은 고대에 ‘구주(九州)’라 불렸으므로 아마도 공공씨의 아홉 씨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후에 예서(豫西) 일대의 산간지역 중에 또 ‘구주의 융(九州之戎)’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아마도 바로 공공씨의 잔여부락인 것 같다. 공공씨의 이 한 분파가 쇠망함으로 인해 그들의 역사에 관한 전설은 사악(四岳)의 분파보다 풍부하지 못하게 되었다.
곽말약(郭沫若) 주편 《중국사고(中國史稿)》제1책, 인민출판사 1976년판 제110쪽.

《좌전(左傳)》소공(昭公) 29년에 조목조목 기술하기를, “공공씨의 아들은 구룡이라 불렀으며, 후토가 되었다(共工氏之子曰句龍, 爲后土).”고 했다. 구룡씨 후토가 수분과 토양을 평정하여 백성들이 편안히 살며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토지의 주관자, 즉 사신(社神)으로 받들어져 후세의 숭배와 제사를 받게 되었다.

현대인의 연구에 따르면, 전설 속의 과보족(夸父族)과 상대(商代)의 토방국(土方國)은 모두 후토의 후예들이라고 한다.

(1) 현대인 하광악(何光岳) 선생은 《열자(列子)》, 《산해경(山海經)》에서 말하는 과보(夸父)는 바로 구룡씨 후토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과보족이 생활했던 시대는 아마도 무더위와 가뭄이 계속되던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과보가 태양을 쫓던 전설이 생겨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과복족이 아마도 위수(渭水) 상류에서 기원하여 이후에 위수유역을 따라 동천하여 지금의 하남 서부 보령(寶靈) 일대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후에 과보족은 황제족(黃帝族)과 충돌이 발생하였는데, 과보족이 대패하여 과보도 황제족의 후예인 응룡씨(應龍氏)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과보의 유족은 할 수 없이 잇달아 남천하였다.

그들이 이주한 노선은 예서(豫西) 산지에서 남양(南陽) 분지로 남하하였으므로 오늘날 하남 경내에 수많은 ‘과(夸(혹은 ‘跨’, ‘垮’)’자로 명명된 지명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내향(內鄕)의 과자영(跨子營), 무양(舞陽)의 과영(跨營), 동백(桐柏)의 과자충(垮子沖), 당하(唐河)의 과자영(夸子營), 정양(正陽)의 유과장(劉夸庄) 등이다.

과보족은 후에 다시 호북(湖北)의 거수(擧水)를 거쳐 호남의 원릉(沅陵), 영릉(零陵) 일대까지 남천했다. 당(唐)나라 사람 장작(張鷟)의 《조야첨재(朝野僉載)》권5에 기록하길, “과보산은 진주의 동쪽에 있으며 삼석(三石)의 품위이다. 예로부터 과보가 태양과 경주를 하여 이곳에 이르러 밥을 짓고 물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삼석은 과보가 솥을 지탱했던 돌이다(夸父山, 在辰州東, 三石品位. 古老相傳夸父與日競走, 至此炊飮. 三石者, 夸父支鼎石也.)”고 했다. 당대의 진주(辰州)는 바로 지금의 호남 원릉(沅陵)이다. 호남의 영릉(零陵) 일대에도 과보의 유적과 전설이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권388에 성홍(盛弘)의 《형주기(荊州記)》를 인용하여 말하길, “영릉현에 과보의 유적이 있다(零陵縣上有夸父迹).”고 했다. 또 《한당지리서초(漢唐地理書鈔)》에는 성홍의 《형주기》를 종합하여 “영릉현에 과보의 무덤이 있다(零陵縣上有夸父冢).”고 했다. 어찌됐든, 호남 원릉과 영릉에 과보의 전설과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물론 과보족이 남천한 증거이다.

절강(浙江)의 태주(台州)에도 과보에 관련된 유적과 전설이 있다고 전해진다. 《태평어람(太平御覽)》권 47에 《군국지(郡國志)》를 인용하여 “태주 복부산에……거대한 흔적이 있는데 과보가 태양을 쫓을 때의 발자국이라고 한다(台州覆釜山, ……有巨迹, 云是夸父逐日之所踐).”고 했다. 이 같은 말로 봐서 과보족의 한 분파가 아마도 절강의 태주로 동천했던 것 같다. 하광악(何光岳) 《염황원류사(炎黃源流史)》, 강서교육출판사 1992년판 제15장 참고.

(2) 후토의 또 다른 후예가 일찍이 북방으로 이주했다. 전하는 바로는 상대(商代) 시기에 상 왕조와 적이 되었던 토방국(土方國)이 되었다고 한다. 은․상(殷商) 무정(武丁)시기의 복사(卜辭)에는 토방이라는 나라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이 시기 토방의 확실한 위치에 관하여는 다수의 학자들이 지금의 내몽고 포두(包頭)일대라고 여긴다. 그러나 하광악(何光岳) 선생은 오히려 “토방은 산서(山西) 석루현(石樓縣)의 토군(土軍)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하광악(何光岳) 《염황원류사(炎黃源流史)》, 강서교육출판사 1992년판 제217쪽.

《초사․초혼(楚辭․招魂)》에 “혼이여 돌아오라, 그대는 땅속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려 하지 말라. 그곳에는 토지신이 있어 꼬리가 아홉이고, ……(魂兮歸來, 君無下此幽都兮. 土伯九約, ……)”라고 하였다. 왕일(王逸)이 주석하여 말하길, “유도(幽都)는 지하의 후토가 다스리는 곳이다. 지하는 어둡기 때문에 유도라고 칭하였다.”고 하였다. 사실 유도는 지금의 하북(河北) 북부와 북경 일대로 중원의 북방에 위치한다. 토백(土伯)이 동북(東北)․화북(華北)의 접경지대로 이주한 것은 아마도 상(商)말기인 것 같다.

지금의 요녕(辽寧)․내몽고(內蒙古) 접경의 노합하(老哈河)는 옛 명칭이 토하(土河) 혹은 도하(涂河)였다. 《요사․지리지(辽史․地理志)》에 기록하길, 중경(中京) 대정부(大定府)에 토하(土河)가 있고, 또 상경(上京) 도영주(道永州)에 동황하(東潢河), 남토하(南土河)가 있는데 옛날에는 사하(徙河)라 칭했다고 했다. 진한(秦漢)시기에 선비(鮮卑) 사하부(徙河部)가 거주하던 곳을 또 도하부(屠何部)라고도 했다.

《일주서․왕회해(逸周書․王會解)》에는 “불도하는 청웅이다(不屠何靑熊)”라고 했는데, 주석하면 “불도하는 동북의 오랑캐다(不屠何亦東北夷也)”라고 했다. 불도하의 ‘불(不)’자는 사실상 발음 접두사로 불제(不齊), 불주(不周), 불야(不夜), 불기(不其) 등과 같다. 도하(屠何)는 지금의 요녕(辽寧) 의현(義縣)에 있는데, 진대(晋代)에는 선비 모용부(慕容部)와 단부(段部)가 점거하던 곳이다.

의현(義縣) 북부의 부신(阜新)은 옛 명칭이 토묵특(土默特)이었는데 이것은 토백특(土伯特)의 음이 변한 것으로 토백부(土伯部)의 뜻이다. 후에 몽고인의 일부가 이곳에 거주하여 토백특부(土伯特部)라고 불리웠다. 주대(周代)에 이르러 토백족(土伯族)은 눈강(嫩江) 상류의 알선동(嘎仙洞) 일대까지 북천하여 선비족의 별부(別部)인 탁발부(拓跋部)가 되었다. 탁발은 토백(土伯)의 음이 변한 것이다.

소위 독발부(禿髮部) 역시 탁발의 다른 번역이다. 외몽고의 토랍하(土拉河) 및 토사도한부(土謝圖汗部)는 토백족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얻은 이름이다. 그 후에 몽고족의 한 분파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곧 그 거주지역의 이름으로 토사도(土謝圖)가 되었다. 토백족의 또 다른 한 분파는 지금의 러시아와 몽고의 접경지역인 도와(圖瓦)에 분포하여 도와족(圖瓦族)이 되었으며 돌궐족(突厥族)의 갈래에 속한다. 돌궐은 또 터키의 조상이 되며 바로 토백의 후예이다.

중국의 성씨 중에는 구룡(勾龍)과 토(土)씨 성이 모두 있다. 남송(南宋)의 어사(御史) 중승(中丞)이었던 구룡여연(勾龍如淵)은 도강인(道江人)이었다. 또한 구룡정실(勾龍廷實) 등의 사람이 있었다. 아는바에 의하면, 촉(蜀) 지역에 이러한 성이 많아 구룡씨의 후예로 여겨진다. 내몽고와 섬북(陝北)의 접경지역에는 또 토씨 성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안원전의 21세기 담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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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8. 2500년 이전의 동주(東周) 시기 하남(河南) 낙양(洛陽) 주신(酒神) 두강(杜康)신화  안원전   2004/09/24  5107
31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7.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용뇌석(龍腦石)과 용조석(龍爪石)&장례식 장면 전설《염제릉사화(炎帝陵史話)》  안원전   2004/09/13  5337
31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6.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4-신비로운 녹원(鹿原) 백로가 조문하다 [1]  안원전   2004/09/02  5124
31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5.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3-머리를 써서 청와(靑蛙)를 단죄하다.  안원전   2004/08/26  4087
31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4.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2-태씨(駘氏), 태악(太岳)의 아내 원강(元姜)과 간통하여 의형제 태악(太岳)을 죽인 사건을 교묘히 판단하다.  안원전   2004/08/23  4308
31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3.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1-간신 영신(佞臣)을 제거하다  안원전   2004/08/17  4529
31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2.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장강(長江:양자강)문명의 기치  안원전   2004/08/10  6855
31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1. 요귀 수괴 흑풍괴를 물리친 동이족 신농(神農)의 거문고  안원전   2004/07/26  5493
30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0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적송자(赤松子)의 민간전설 [1]  안원전   2004/07/19  5311
30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9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황제의 민간전설  안원전   2004/07/15  4899
30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8 《천금요방(千金要方)》과 《천금익방(千金翼方)》의 저자 약신(葯神) 손사막(孫思邈)  안원전   2004/07/13  5520
30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7 신필 마량(神筆馬良)의 일심 경지  안원전   2004/07/09  4997
30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6. 도가소설 봉신연의(봉신방)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진 나타 [1]  안원전   2004/07/06  5292
30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65 상(商) 주왕(紂王)의 독량관(督梁官)에서 주왕(周王)의 장수가 되어 상 주왕(紂王)을 친 흥하의 두 장수(哼哈二將) 정륜(鄭倫)과 진기(陳氣)  안원전   2004/06/19  5390
30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4 지행선(地行仙)  안원전   2004/06/19  4763
30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3. 공평무사 하고 시비가 분명한 정의의 화신 오누이 염라왕(閻羅王)  안원전   2004/06/14  5255
30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2 밤에 나돌아 다니며 사람들의 선악을 조사한다는 전설 중의 야유신(夜游神)  안원전   2004/06/14  4574
30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1 갈홍의 부인 포고(鮑姑)와 포고정(鮑姑井)  안원전   2004/06/09  4675
29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0《포박자(抱朴子)》의 저자 신선 갈홍(葛洪)이 가난뱅이 아들에서 대학자가 된 이야기  안원전   2004/06/08  4789
29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매트릭스와 현대문명(By 강정석 동아제약)  안원전   2004/04/20  8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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