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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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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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8 《천금요방(千金要方)》과 《천금익방(千金翼方)》의 저자 약신(葯神) 손사막(孫思邈)




약신(葯神)  손사막(孫思邈)  


산시성[陝西省] 사람.  손사막은 수나라 때 태어나서 당나라 때 102세로 타계했다고 전해진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즐기며 노장백가(老莊百家)의 설(說)에 조예가 깊었다. 수(隋)나라의 문제(文帝),  당나라 태종(太宗)·고종(高宗) 등에게  자주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사양하고 벼슬을 받지 않았다.   명산에 은퇴하여 저작에만 몰두하여  의서(醫書) 이외에 많은 책을 저작하였다.  또한 불교와 도교도 연구하였다고 한다.  당나라 시대의 대표적 의서(醫書)인 비급천금요방(備急千金要方 650∼659?) 30권과 천금익방(千金翼方) 30권이 그의 저작으로 전하여지고 있다. '익방'은 '요방'에서 서술된 문제의 보충, 전개로서 이 두 저서를 합하여 두 날개를 이룬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 속에서 의가(醫家)의 윤리(倫理)를 논설하고 있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육조(六朝)시대부터 불로장수(不老長壽) 약(藥)이라고 하던 오석산(五石散)의 해독(害毒)을 해설한 것을 비롯하여, 그의 실증적(實證的)인 태도가 돋보인다.

    


중국 섬서성(陝西省) 요현(耀縣) 동쪽에는 높고 험한 산이 땅위에 우뚝 솟아 있다. 아주 오래전에 산 중턱에는 누추하기 짝이 없는 손가원(孫家源)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후에 약신(葯神)이 되는 손사막(孫思邈)은 바로 이 마을의 보통 농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체질이 허약하고 병이 많았지만, 매우 총명하고 영리했다.

일곱 살에 학교에 입학할 때는 하루에 천여 자의 본문을 외울 수 있어 선생님이 그를 무척 좋아했다. 10세 정도 되었을 때 손사막의 고향 일대에 전염병이 돌아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손가는 비록 요행히 재난을 면할 수 있었으나 환자들이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모양과 죽은 자의 가족들이 비통해하며 울부짖는 모습은 소년의 손사막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따라서 그는 자신은 질병의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또 무수한 백성들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서 의술과 ‘장수의 비방’을 열심히 학습할 것을 결심했다. 20세 때, 손사막은 노자와 장자의 학설에 정통하였고 양생과 의학 지식을 독학하여 사람들을 위해 질병을 치료해주고 약을 처방해주었다. 후에 그는 태백산(太白山:이 태백산은 환웅이 삼위태백했다는 바로 그곳으로 섬서성의 대표적으로 산으로 서안에서 감숙성의 바오지(보계)로 가는 도중에 있으며 굽이굽이돌아 들어가는 그 웅장함은 가히 중국정부가 지정한 국립공원 풍광지구답다 할 수 있다)에 와 은거하면서 수도하고 기공을 연마하고 심혈을 기울여 의약학을 연구했다.

이 태백산은 섬서 대 산맥의 주봉우리 중 하나로 봉우리가 높이 우뚝 솟아 구름 끝까지 닿았다. 산에는 나무가 무성하여 도처가 모두 보물이었고 각종 동식물이 1200여종이 되는 그야말로 천연의 약재의 보고였다. 산 정상에는 천지(天池)라 불리는 세 개의 큰 저수지가 있었고, 신천(神泉)이라 불리는 온천이 있었는데, 그 투명한 샘물은 여러 가지 피부병과 류머티즘 등의 질병을 고칠 수 있었다. 손사막은 태백산에서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힘든 것도 모르고 매일 깊은 산과 수풀 속에서 약초를 채집하고 그 채집한 것의 약효를 시험하고 효용 가치를 연구하여 기록했다.





중국 4대 약재시장  하북성 안국시(河北省安國市) 약재시장 안구어(안국)의 약왕(사진 상). 안국 Click here!중국의 약재시장 안구어는 한조(漢朝)때에는 안구어청(安國城)이 건립된 이후, 송대(宋代)시대부터 약재시장의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사진 중,하).  명조(明朝) 영락(永樂) 2년에는 송대에 절강성 항조우(浙江-抗州)에 있는 약왕묘를 이곳 안구어(安國)에 건립을 하게된다.

그가 저술한 의학서에는 800여 종의 약초를 기록하였는데, 대부분 그 자신이 직접 연구한 성과이다. 그는 전대(前代)의 명의 편작(扁鵲), 장중경(張仲景), 갈홍(葛洪), 도홍경(陶弘景) 등의 저작을 연구하여 체계적으로 학습했으며, 이러한 기초 위에서 그 자신이 연구한 단약을 만들어 먹고 양생 장수하는 방법을 총결했다. 손사막은 민간의 전해 내려오는 처방과 효력이 있는 처방을 매우 중시하여 천리도 멀다 않고 찾아가 광범위하게 수집했다.

이러한 다년간의 노력을 거쳐 손사막은 마침내 의학의 대작인 《천금요방(千金要方)》과 《천금익방(千金翼方)》을 완성했는데, 두 책은 모두 6천5백여 처방을 기록하여 후대 의학가들이 경전으로 받들게 되었다. 손사막은 의술이 훌륭하고 선행을 베풀고 덕을 쌓아 도가(道家)에서는 이러한 사람은 반드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과연 민간에는 이 의약의 신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손사막은 온 산을 모두 돌아다니며 약초를 채집하여 무수한 서민 백성의 질병을 치료했다. 하루는 길에서 장례를 하는 무리를 만났는데, 그 중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좌우의 부축을 받으며 반죽음이 되도록 울었다. 손사막은 급히 앞으로 나아가 물어보니 관 속에 안장된 사람은 노파의 외동딸로 난산으로 인해 방금 죽었다고 한다. 손사막은 관을 자세히 둘러보며 관찰하니 관의 틈에서 피가 한 방울씩 떨어져 나왔다. 사람이 죽으면 피가 응고되기 마련인데 어찌된 일인가?

그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관을 열고 경혈을 정확히 짚어 침을 놓고 뜸을 떠 이미 ‘죽은’ 임산부가 놀랍게도 살아나 순조롭게 아이를 낳았는데 모자가 모두 평안했다. 이러한 기적에 대해 모든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그 노파는 자연히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사례를 하며 감격해마지 않았으며 신의가 인간계에 내려와 딸의 목숨을 구했다고 여겼다.

또 한번은 손사막이 한 산촌을 지나는데 초가집에서 어떤 사람이 매우 슬프게 울고 있는 것을 듣고 들어가서 보니 10여세 된 여자 아이가 넘어져 다리를 다쳐 있었다. 이 집에는 부부 둘만 있었는데 40여세 때야 이 여자 아이를 낳아 아주 사랑스럽게 자라 부모의 보물이었다. 여자 아이가 이날 혼자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잘못하여 넘어져 오른쪽 다리를 다쳐 절룩거렸다. 가난한 집은 한 끼 먹고 나면 또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데 어디에서 돈이 나서 아이를 치료하겠는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아이는 절름발이가 될 텐데 이후에 누구에게 시집을 가겠는가? 그래서 부부는 걱정으로 아이를 끌어안고 한바탕 울었다. 지금 이들 부부는 손사막이 약초 광주리를 등에 지고 의사노릇을 하는 것을 보고 급히 그를 붙잡고 부탁했다. “의사 선생님, 은혜를 베푸셔서 제 딸을 살려주세요!” 손사막은 약초 광주리를 내려놓고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다리를 고칠 수 있기는 하지만 아이가 괴로워하면 마음이 아프실 겁니다.” “다리가 낫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선생님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이 병은 약을 먹고 침을 맞을 필요 없이 제 뒤를 따라서 뛰기만 하면 됩니다.”

손사막은 곧 땅 위에 둥근 원을 그리고 아이에게 자기의 분부를 따라서 하도록 했다. 그는 자루가 긴 담뱃대를 들고 들이 마시면서 원을 따라 걸었고 아이는 절름거리며 뒤를 따랐다. 손사막은 갈수록 빨리 걸으며 담뱃대의 대통도 들이 마실수록 빨개졌다. 아이는 따라 걸을수록 힘이 들어 머리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손사막은 아예 슬슬 뛰기 시작했고 대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이의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니 부모는 마음이 아파 눈물을 줄줄 흘렸다. 갑자기 손사막은 몸을 돌리더니 빨던 시뻘건 대통을 아이의 다친 다리 위로 힘껏 대었다. 아이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 이쪽으로 피하고 저쪽으로 피하다 다리가 낫고 절름거리는 것이 나았다. 가족들은 너무 기뻐하며 약도 먹지 않고 침도 맞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신의를 만났다고 했다.

신의의 명성은 갈수록 멀리 퍼져 마침내 황궁 안에까지 전해졌다. 하루는 황태후가 갑자기 두통이 생겼다. 바람을 맞지도 않았고 감기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어화원에서 돌아올 때부터 머리가 심하게 아팠다. 앉아도 안 되고 누워도 안 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황제는 조급해 어의란 어의, 명의란 명의는 다 청해 와서 진맥을 한 후에는 모두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무슨 병인지 몰랐다. 황제는 손사막을 생각해 내고 급히 그를 황궁으로 불렀다.

손사막은 맥을 짚어보고 말했다. “이는 화향병(花香病)이라고 하는데, 화원의 꽃향기를 너무 오래 맡아서 두통이 온 것입니다.” “그러면 치료할 방법이 있겠소?”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실례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이 혹 군주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황제는 손사막의 요구를 승낙했다. 그는 치료 방법을 이야기 했다. 황태후가 변소에서 100일 동안 있으면 두통이 사라질 것이라 했다. 비록 황제가 반신반의하기는 했지만, 황태후의 두통이 너무 심해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할 수 없이 신속히 황태후를 변소 안으로 옮겨 100일 동안을 꼬박 자고  나니 악취는 났지만 두통은 과연 좋아졌다.


수 당대의 약의 손사막을 모신 약왕사와 약왕묘 전경

손사막은 사람을 치료할 뿐 아니라 교룡과 호랑이도 치료한 적이 있다. 그가 산에 올라 약초를 캐는데 산중턱에서 물통 굵기의 교룡이 풀숲에 누워 있었다. 교룡은 손사막을 보고 머리를 높이 쳐들었다. 손사막이 물었다. “너는 머리를 그렇게 높이 들어 사람을 잡아먹으려하는 것이냐?” 교룡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물었다. “아니면 병이 난 것이냐?” 교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사막이 보니 비늘이 찢어져 있어 누런 물이 흘렀다.

그는 교룡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산에 올라 약초를 캐어 교룡에게 발라주려고 했다. 약초를 캐어 와 석판 위에 놓고 호미로 두드려 약초가 말랑말랑해지자 누런 물이 흐르는 곳에 발라주었다. 손사막이 교룡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내가 다시 와서 약을 바꿔주겠다. 3일이면 나을 것이니 그때는 하늘로 날아 갈 수 있다.” 손사막은 각종 약초가 가득 든 바구니를 등에 메고 산을 내려갔다. 산기슭에 다다라 호랑이 한 마리가 길을 막았다. 호랑이는 세숫대야 같은 입을 벌리고 침을 뚝뚝 떨어뜨렸다.

손사막이 물었다. “너는 입을 이렇게 크게 벌리고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것이냐?” 호랑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다시 물었다. “병이 난 게냐?” 호랑이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손사막이 자세히 보니 호랑이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호랑이의 입을 가볍게 받치고 보니 가느다란 뼈가 목구멍에 걸려 있어 대략 사슴이나 노루, 토끼 같은 종류를 먹어 뼈가 걸린 것 같았다. 그는 광주리 속을 뒤져 약초를 꺼내어 호미로 다져 화골단(化骨丹)이라는 약을 만들고 삼일 간 약을 발라 뼈를 녹였다. 그는 하는 김에 등나무 두개로 호랑이의 입을 지탱하고 손을 받쳐놓은 등나무 속으로 넣어 화골단을 그 뼈 위에 넣었다.

호랑이는 등나무가 있으니 입을 다물고 싶어도 다물 수가 없었다. 손사막이 말했다. “내일 내가 다시 와서 약을 갈아주면 아프지 않을 거다.” 손사막은 연속해서 3일간을 교룡과 호랑이에게 약을 바꿔주며 치료를 해주어 교룡과 호랑이는 모두 살아났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후에 용왕이 손사막에게 감사하기 위해서 그에게 의학서를 선물하여 손사막이 받아 《천금요방(千金要方)》속에 수록하고 ‘용궁험방(龍宮驗方)’이라 했다 한다.

호랑이는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매일 그를 태우고 온 산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캐었다. 입속에 괴었던 등나무는 한 쌍의 방울로 바뀌어 대개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손에 이것을 들고 다니며 길을 걸을 때마다 흔들려 딸랑딸랑 소리가 울리게 했는데, 이 방울은 호탱(虎撑)이라 부르며 손사막이 호랑이를 치료해 준 것이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민간에는 또 한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는데 손사막이 이전에 산에서 약초를 채집할 때 나귀가 전문적으로 그를 대신해 약초를 실었다고 한다. 하루는 나귀가 야수에게 잡아 먹혔다. 손사막은 매우 분노하여 신령스런 부적을 하나 그려 태우고 온 산의 표범 이리 호랑이 등을 전부 모아 그의 분부를 듣게 했다. 손사막은 여러 야수들에게 나의 나귀를 먹은 놈은 남고 그렇지 않은 놈들은 돌아가라고 말했다. 이때 여러 야수들이 흩어져 돌아갔는데 얼룩 호랑이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손사막은 그에게 기왕 네가 약초를 싣는 나귀를 먹었으니 그를 대신해 약초를 실으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호랑이는 손사막의 뒤에서 그를 따르며 약초를 실었는데 손사막은 그의 이름을 반아(斑兒)라 하였다. 한번은 손사막이 약초를 캐기 위해 절에서 등반을 금지한 산에 들어갔는데 그 곳의 중이 못된 중들을 이끌고 다가와 죄를 물었다. 손사막이 어찌 그들의 적수가 되겠는가?

그러나 그는 크게 소리쳤다. “반아, 어디 있니?” 그러자 한 마리 얼룩 호랑이가 어흥 하고 소리치며 내려와 못된 중들을 덮치자 그들은 놀라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약신(葯神) 손사막은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였으므로 백성들은 자연히 그를 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중국의 수많은 지방에 약왕(葯王)의 사당을 세워 손사막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중 가장 크고 유명한 것은 약왕의 고향인 섬서성 요현의 약왕이 살던 산 위이다. 약왕 사당의 대전은 높이가 22미터이고 길이가 57미터 넓이가 24미터이며 남향으로 매우 웅대하며 장관을 이룬다. 안에는 채색 흙 인형으로 된 커다란 손사막의 상이 있는데 적홍색의 둥근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고, 기다란 검은 수염은 가슴까지 늘어뜨렸으며, 표정과 태도가 자애롭다. 옆에 있는 와호(臥虎)는 바로 반아이다.

약왕전의 서쪽에는 깊이가 2미터 정도 되는 큰 석갱(石坑)이 두개 있는데 바로 약왕이 그 당시에 “약초를 씻던 저수지(洗葯池)”이다. 사당의 동남쪽에는 평지가 있는데 약왕이 약초를 말리던 장소였다고 전해진다. 산 위에는 또 승선대(升仙臺)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손사막은 101세를 살고 당시에 단정히 앉아서 이곳에서 신선으로  승천했다고 한다.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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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만약 병이 들어 치료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빈부귀천이나, 나 이의 많고 적음이나, 얼굴의 곱고 미움이나, 원한 관계가 있는 사이 거나 친한 사이거나, 같은 민족이거나 아니거나, 어리석거나 똑똑한 것에 관계없이 모두에 대해 부모, 형제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앞뒤로 두리번거리며 딴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길흉(吉凶)을 헤아려 환자의 몸과 생명을 소중히 여겨, 그의 고뇌가 자신의 것인 양하여 깊이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고 험하고 가파른 길이나, 낮과 밤, 더위나 추위, 배고픔과 목마름과 피로함을 가리지 말고 한마음으로 달려가 구해 주되, 능력을 자랑하거나 공적을 남기겠다는 마음을 갖 지 말도록 할 것이다.

질병을 진찰할 때는 지극한 뜻과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 털끝만큼도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며, 처방을 하고 침을 놓으며 약 을 씀에 있어 모두 고르게 하고, 병을 신속히 치료함이 마땅하다고 해도 일에 닥쳐 헷갈려 헤매는 일 없이 자세히 살펴 깊이 생각할 것 이며, 자기의 본분 이상으로 경솔하게 재주를 자랑하거나 명예를 먼 저 생각하면 이는 심히 어질지 못한 일이다.

무릇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여 희롱하거나, 농지 거리하거나, 시끄럽게 떠들거나, 말다툼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자신의 명성을 뻐기거나, 다른 의사를 비방하거나, 자기의 덕을 자랑하지 말며, 우연히 어떤 병을 낫게 했다고 해서 머 리를 곧추 세우고 자만심에 찬 모습으로 천하에 자기가 제일이라는 식으로 다닌다면 이는 의사 중의 고황(膏):전부터 내려오는 고치기 어려운 오류)이라고 할 것이다.

귤정(橘井)

옛날 중국에 소탐(蘇眈)이라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해 준 후 치료비 를 받지 않고 대신 각자 자기집 우물 곁에 귤나무를 심게 했다고 한 다.

소탐의 인술(仁術)이 해를 거듭함에 따라 훗날 귤나무가 여러 집 우 물 곁에서 크게 자라나 그 뿌리가 물이 솟는 근원에 이르러 귤나무의 맑은 기운이 우물물에 우러나오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 고 각종 질병을 예방·치료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도 의사들을 존칭해서 ‘귤정’이라고 한다. 치료비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사에 대한 답례의 뜻을 공익(公益)을 위한 일에 돌리게 한 이 뜻이야말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서양의 의사 누구가 어떤 미덕을 베풀었다는 건 알아 도 한의학에 이런 미담이 있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행림(杏林)

신선전(神仙傳)등의 책에 이와 관련된 고사(故事)가 실려 있다. 옛 날 중국의 삼국 시대 오(吳) 나라에 동봉(董奉)이라는 의사가 있 었는데, 뛰어난 의술로 많은 환자들의 병을 고쳐 주었으나, 병이 다 나아서 환자가 사례를 하고자 하면 결코 돈을 받지 않고, 대신 집 뒤 에 있는 동산에 살구나무[행:杏]를 심게 하였다. 중병을 앓던 사 람은 살구나무 5그루를 심고, 가벼운 병을 앓던 사람은 1그루를 심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집 뒤의 동산이 살구나무 숲 즉, 행림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살구로써 건강을 지키고, 동봉은 많은 살구 를 수확하여 이것을 곡식으로 바꾸어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그 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이 숲을 ‘의사 동봉 신선의 살구나 무 숲[행림:杏林]’이라고 부르면서 동봉을 기리게 되었다.

이후로 행림은 의원이나 의학계에 종사하는 사람, 또는 의학계를 일 컫는 말이 되었다. 지금 우리 나라 한의과 대학생들의 축제를 대부분 행림제(杏林祭)라고 부르며, 대한한의사협회의 공식 마크도 살구꽃 모양으로 한 점은 바로 이 일화에서 연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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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4.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2-태씨(駘氏), 태악(太岳)의 아내 원강(元姜)과 간통하여 의형제 태악(太岳)을 죽인 사건을 교묘히 판단하다.  안원전   2004/08/23  4308
31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3.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1-간신 영신(佞臣)을 제거하다  안원전   2004/08/17  4529
31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2.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장강(長江:양자강)문명의 기치  안원전   2004/08/10  6856
31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1. 요귀 수괴 흑풍괴를 물리친 동이족 신농(神農)의 거문고  안원전   2004/07/26  5493
30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0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적송자(赤松子)의 민간전설 [1]  안원전   2004/07/19  5311
30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9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황제의 민간전설  안원전   2004/07/15  489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8 《천금요방(千金要方)》과 《천금익방(千金翼方)》의 저자 약신(葯神) 손사막(孫思邈)  안원전   2004/07/13  5520
30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7 신필 마량(神筆馬良)의 일심 경지  안원전   2004/07/09  4998
30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6. 도가소설 봉신연의(봉신방)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진 나타 [1]  안원전   2004/07/06  5292
30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65 상(商) 주왕(紂王)의 독량관(督梁官)에서 주왕(周王)의 장수가 되어 상 주왕(紂王)을 친 흥하의 두 장수(哼哈二將) 정륜(鄭倫)과 진기(陳氣)  안원전   2004/06/19  5390
30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4 지행선(地行仙)  안원전   2004/06/19  4763
30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3. 공평무사 하고 시비가 분명한 정의의 화신 오누이 염라왕(閻羅王)  안원전   2004/06/14  5256
30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2 밤에 나돌아 다니며 사람들의 선악을 조사한다는 전설 중의 야유신(夜游神)  안원전   2004/06/14  4574
30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1 갈홍의 부인 포고(鮑姑)와 포고정(鮑姑井)  안원전   2004/06/09  4676
29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0《포박자(抱朴子)》의 저자 신선 갈홍(葛洪)이 가난뱅이 아들에서 대학자가 된 이야기  안원전   2004/06/08  4789
29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매트릭스와 현대문명(By 강정석 동아제약)  안원전   2004/04/20  8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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