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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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7.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용뇌석(龍腦石)과 용조석(龍爪石)&장례식 장면 전설《염제릉사화(炎帝陵史話)》


염제 신농씨는 강(姜)씨 성이다. 공공(共工),치우(蚩尤),백이(伯夷), 봉백릉(逢伯陵)과 강태공은 모두 염제(炎帝)의 후예다. 그 중에서 공공은 가장 일찍 홍수와 더불어 항쟁한 사람이니, 그는 배(舟船)의 발명자이다. 치우(蚩尤)는 고대 역사상 병주(兵主) 혹 무조(武祖)로 전해져 칭해졌으니 무용(武勇)으로 천하에 위엄을 떨쳤다. 백이(伯夷)는 요, 순 시기의 사악(四岳)으로, 곧 사방 제후를 통괄하는 우두머리였으니, 그는 아국의 고대 형법과 "삼례(三禮)"의 창립자였다. 봉백릉(逢伯陵)은 상(商)나라 시대 제(齊) 나라 땅의 제후였다. 그들은 모두 강태공의 선조로 동이 제지(齊地)의 토착민으로 동이(東夷)문화 혹 제(齊)문화의 창조자였다. 곧바로 춘추시기로 넘어가 강(姜)씨 성 제국을 제외한 이외에도 래국(萊國), 순우국(淳于國), 향국(向國), 기국(己+其國), 기국(紀國) 등 강(姜) 씨 성 나라는 모두는 염제의 후예이니, 이는 거듭 동이 제지(齊地)의 주요 거주민이다. 태호복희씨와 염제 신농씨는 동이 제지(齊地)를 서로 계승해 일어났는데, 그들은 세세 대대 문화를 창조 발전했다. 고사(古史)에 "희농문화(羲農文化)" 혹 "희염문화(羲炎文化)"라 글을 써 칭하니 이는 제문화(齊文化) 혹 동이문화를 칭해 적은 것으로 이를 다시 "사령문화(四靈文化)"라고 적어 칭했다. <안원전의 21세기 담론중>

중국의 문헌에서 찾은 동이족에 대한 고증

▒ 중국민족의 조상은 바로 동이족이다. <중국 고사변>
▒ 삼황오제의 8대 임금들은 숙신(조선의 옛이름)에서 나왔다. <산해경>
▒ 순임금은 동이족이다. <맹자(孟子) 8편> 또 순임금의 선조인 황제도 동이족이 되는 것이다.
▒ 태호복희의 성은 風이며, 고대 동이족이다. <'98년판 중국상해출판사, 역대제왕록>
▒ 은나라는 이(동이족)의 나라이고, 주나라는 화(華 : 중국 漢족)의 나라이다. <사마천의 사기>
▒ 은나라는 동이족이다. <고사변, 현재 홍콩대학의 임혜상교수, 대만대학의 서량지교수>
▒ 중국 고대사는 모두 동이족의 역사다. <중국 북경대 고고학과 엄문명 주임고수 증언>
▒『동이東夷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太호, 제준帝俊, 제곡帝곡, 제순帝舜, 소호少호, 그리고 설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如太호之卽帝俊帝곡帝舜少호之卽설 近人기得明證<고사변古史辯>
▒ 특히 은나라는 그 시조가 알에서 깨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를 갖고 있는데, 고구려.신라.가야의 예에서 보듯이 난생설화는 동이족의 공통된 특징이다.  중국의 정사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 사마천의 <史記>도 삼황오제는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황제黃帝로부터 순임금.우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일한 성姓이며, 그들이 세운 나라의 호칭만 달랐을 뿐이다.』   自黃帝至舜禹 皆同姓而其國號 인용Click here!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용뇌석(龍腦石)과 용조석(龍爪石)&


장례식 장면 전설《염제릉사화(炎帝陵史話)》







염제의 묘지는 그야말로 신의 솜씨처럼 정교한 용의 집결지라고 할 수 있다. 용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전설 속의 비늘이 있고 수염이 있으며 구름과 바람을 부릴 줄 아는 신기한 동물로 인충(鱗蟲) 중의 으뜸이다. 민간 가요에서는 “소의 머리에 사슴뿔이 있고 눈은 새우 같으며, 매의 발톱에 뱀의 몸, 사자의 꼬리를 하고 온몸은 비늘 갑옷,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본 사람은 없다네.”라고 노래한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용은 성인이 있을 때에야 출현한다고 하는데, 황제(皇帝)가 바로 용이 파견되어 와 세상을 주재하는 성인이라고 한다. 따라서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군권신수(君權神授)’ 통치를 유지하고 모두 스스로 진정한 용이요 천자라고 뽐내었다.

녹원피(鹿原陂)에서 외곽 몇 십 평방미터 안으로 동, 서, 남, 북 사방에 많은 산이 우뚝우뚝 솟아 있는데, 남쪽으로는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한 기세가 마치 표범 같은 참자요산(磣子坳山), 황양산(黃陽山)이 있고, 북쪽으로는 모습이 마치 수사자 같은 사형리산(獅形里山)과 모습이 마치 세 마리의 큰 코끼리 같은 삼상산(三象山)이 있어 위풍당당한 기개로 염제의 묘지 남북을 수호하는 것 같다.

동쪽에 높이 솟은 해발 2115미터의 호남 제일봉―영봉(酃峰)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거대한 용과 같았고 그 산맥이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모양은 용의 몸과 꼬리 같았으며 기복이 녹원피의 서쪽까지 이어져 있다.

기복이 녹원피의 서쪽까지 이어진 많은 산의 기슭에는 기다란 용처럼 구불구불한 미하(洣河)가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염제의 능묘 앞을 영회하여 지나가 마침 녹원피를 사방 산수의 품속에 두고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면서 장식하여 전체 능묘 지역이 마치 하늘을 향하면 구름과 안개를 부려 날아오르고, 물에 들어가면 강과 바다를 뒤엎는 용이 겹겹이 빙 둘러 에워싸는 듯 기세가 대단한 커다란 뜰이 되었다.

뜰 안, 염제 능묘의 좌측에는 반고(盤古)가 천지를 개벽할 때부터 하늘의 조화로 홀로 빚어진 석룡(石龍)이 있는데, 매우 생동감 있는 용뇌석(龍腦石)은 미수 강가에 엎드려 있고, 용 몸뚱이 형태의 바위에 마치 미수의 강 속에서 꿈틀대며 도약하여 두개의 발톱을 드러내는 것 같은 모양의 바위가 있어 때때로 강물 속에서 수면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천지와 함께 태어난 석룡은 오천년 동안 봄과 여름의 우기에 강물이 멈추지 않고 세차게 흘러 용뇌석을 부딪혀 물보라가 튀면 마치 용이 입을 벌리고 뺨을 볼록하게 하여 구름과 안개를 뿜어내는 것처럼 기세 높고 웅장한 용의 기운을 드러내었다.

물고기는 물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고 용은 구름이 없이는 다닐 수 없다. 뜰의 안팎은 곳곳의 산수가 모두 맑고 아름다우며 날이 맑을 때나 비가 올 때나 아주 신비로웠다. 신비로운 것은 이곳의 기후가 변화무쌍하여 금방 밝은 태양이 높이 비춰 산룡(山龍), 수룡(水龍), 석룡(石龍)의 기이하고도 특이한 빛을 과시하다가도 눈 깜짝할 새에 여러 산의 산꼭대기, 산허리에 안개가 약동적인 기세로 갑자기 내뿜어져 마치 교룡 한 마리 한 마리가 용솟음쳐 서로 쫓고 쫓기며 밀치락달치락하며 한곳에 모이는 것 같고, 용이 하늘을 다스리는 것 같았다.

옛 사람들은 《녹원피(鹿原陂)》라는 시에서 설명했다. “천 개의 봉우리와 만 개의 계곡이 노하여 큰 물결이 솟구치니 놀란 용이 바다에서 나와 살피네(千峰萬谷怒濤涌, 驚龍出海來相窺).” 용은 천천히 숨을 내쉬어 구름을 만들어 구름을 따라 온다. 만약에 용이란 것이 옛 사람들이 물과 구름과 비 등의 자연현상에 대해 신격화시켜 탄생한 것이고, 그 원시의 정취가 저절로 나부끼는 구름의 형상에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이곳이 바로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천상의 용과 지상의 용이 모이는 세계일 것이다.

이는 대략 옛사람이 용을 창조한 용의 근원이 이곳에서 여전히 보존되어 온 일대 원인일 것이다.
염제릉의 묘지는 그야말로 자연적으로 이루어져 더 이상 다듬을 필요가 없는 용의 뜰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산간이 광활하고 드높으며 산들은 밀봉한 것 같고 뜰은 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 용은 도약하다가 멈추고 다시 도약하여 염제릉 묘지의 용 문화의 해박한 내포를 드러내며 지구와 만물 간의 상호 의존적인 깊고 신비한 관계를 기묘한 형상으로 반영한다.

그 이채롭게 잇달아 드러나는 용은 어떤 것은 멀리서 바라보아야 하고, 어떤 것은 가까이서 보아야 하며, 가까이서 그 모양을 관찰하고 멀리서 그 형상을 바라보면 각기 그 정취가 있고 묘미가 극에 달한다. 이곳은 따사로운 태양이 공중에 걸려있을 때나 흐린 비가 끊임없이 내릴 때나 항상 그 매혹적인 풍광을 잃지 않았다.

청나라 때의 학자인 당시승(唐時勝)의 《염릉회고(炎陵懷古)》라는 시에서 노래하길,

“명승고적이 어디에서 모이는가, 자산은 아름답기 그지없구나. 그 해 천자가 붕어하시어 영원히 녹원피에 잠드셨네(勝迹何方萃, 玆山得秀多. 當年龍馭地, 終古鹿原陂).”

이렇게 기기묘묘한 용의 뜰은 천하에 매우 드문 것이며 아마도 유일무이할 것이다.



염제가 하늘이 내린 훌륭한 지역인 녹원피에서 잠들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민간에서는 전해진다. 《염제릉사화(炎帝陵史話)》에는 아래와 같은 기묘한 정취의 기록이 있다.:

-염제가 서거한 후 사람들은 비통에 젖어 가장 좋은 곳에 안장하여 그를 편안히 쉬게 하려고 결심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49일간을 찾고 또 찾다가 인간이 보기에 아주 이상적인 곳을 찾아냈는데, 그 곳은 탕변(湯邊)이라는 곳으로 지금의 호남(湖南) 자흥시(資興市)의 탕시(湯市) 마을이었다.

그 곳은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초록빛 물로 둘러싸여 있고 새소리와 향기 나는 꽃 그리고 자연적으로 생긴 탕호(湯湖)가 있어 온천이 계속 흘러나와 흡사 봉래(蓬萊) 선경과 같았다. 사람들은 염제를 이곳에 안장하기로 결정했다.

장례식 날 백성들은 슬피 통곡하며 세상에서 제일 좋은 목재인 침향목으로 만든 관에다 염제의 유해를 염하여 넣고 야광주로 테를 가득 두른 용선(龍船)에 싣고 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길을 따라 장례를 영접하는 사람들이 미하(洣河)의 양쪽에 늘어서 있었는데 그 수를 다 헤아리지도 못할 정도였다.

성대한 장례식은 천상의 궁정까지 시끄럽게 하여 천신이 수많은 신선을 인간계에 잇따라 보내어 관람하였는데, 세간의 사람들이 염제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추대하는 것을 보고 모든 신선들이 감동을 받아 모두들 염제의 안장을 위해 좀 거들어주려고 했다.

그들은 천고(天鼓)를 두드리고 신의 위력을 떨치면서 인간들이 염제를 장례할 때 산을 만나면 길을 열어주고 물을 만나면 물결을 잔잔하게 해주었고, 염제의 유해를 실은 용선이 도착하는 곳마다 높은 산은 양쪽으로 비키고 강의 험난한 여울은 잔잔한 연못으로 바뀌게 했으며 용선이 미하에서 순탄하게 7일 밤낮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어느 날 정오에 용선은 녹원피의 아래에 도착하였는데, 탕변의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을 때, 녹원피 앞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피석(皮石)이라고 불리는 지방의 사람들이 북을 힘껏 두드리며 장례를 맞이할 때, 하늘에서 갑자기 신기한 광채가 출현하더니 높은 산은 더 이상 양쪽으로 비키지 않고 강물의 물결은 더욱 세차져 용선을 모는 사람이 아무리 힘을 써도 용선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순식간에 하늘에 먹구름이 밀려오고 땅이 움직이고 산이 흔들리더니 염제의 관을 실은 용선이 천둥번개 속에서 한줄기 금빛을 발사하고는 천천히 강 속으로 가라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잠잠해지더니 하늘이 갑자기 다시 맑아지고 강의 섬이었던 녹원피가 용모양의 산으로 바뀌었다. 이때서야 사람들은 염제가 이미 용담(龍潭)에 안장된 것을 알았다. 따라서 녹원피는 후에 염릉산(炎陵山), 천자분산(天子坟山)이라고 불리었을 뿐 아니라 용형산(龍形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늘날까지 염릉현(炎陵縣)과 자흥시의 접경지역인 피석 지방에는 산간의 평지에서 북소리가 울렸고 그 곳에 비고(鼙鼓: 옛날 군대에서 쓰던 작은 북)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마다 사람들은 어렴풋이 산간 평지 위에서 북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자흥시에는 돌사람(石人)의 행렬이 있어 돌이 마치 사람들이 엄숙하고 경건하게 줄줄이 서있는 모습과 똑 같았는데, 사람마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공손히 드리운 것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같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고, 수천 수백 년 동안 계속해서 우두커니 서서 눈비와 바람서리를 얼마나 맞고도 그 기색과 면모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피석 지방의 괴석(怪石)인 비고(鼙鼓: 옛날 군대에서 쓰던 작은 북)는 바로 그 당시 사람들이 북을 울리며 장례를 맞이하던 것이 변한 것이고, 탕시(湯市)의 돌사람 행렬은 바로 그때 그것을 구경하던 사람들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이 신화는 《염제와 염제릉(炎帝與炎帝陵)》이라는 책에 대략 비슷한 기록이 있다.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염제의 관을 뗏목에 싣고 장사지내는 사람들이 이를 호송하여 미수(洣水)를 따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백성들은 길을 따라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애를 이끌며 길 양쪽에 줄을 서 맞이하며 모두 기세등등하게 피리를 불고 북을 치는 등 소란을 피우며 곧장 탕변을 향해 달렸다.

관의 행렬은 녹원피 앞까지 늘어서고 장례의 예포소리는 미하 속의 황금색 뿔이 난 창룡(蒼龍)을 놀라게 했다. 이전에 염제가 녹원피에 와서 약초를 캘 때 일찍이 창룡의 병을 치료해준 적이 있었는데, 창룡은 장례의 예포소리를 듣고 기뻐하며 수면 위로 뛰어올라 맞이하였다.

그가 한번 뛰어 오르니 강 물결은 세차게 용솟음치고 하늘에는 삽시간에 먹구름이 갑자기 몰려오고 번개가 번쩍번쩍하며 교란되었다. 창룡은 염제의 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며 염제의 신령을 용궁으로 모시고 가 대접을 했다.

이 찰나에 강물에 돌연 거대한 급류가 소용돌이 쳐 염제의 관을 물밑 용궁으로 말려들어가게 했다.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은 저마다 대경실색했다. 옥황상제가 이를 알아차리고 크게 노하여 창룡의 경거망동을 나무라며 천신을 인간계에 내려 보내어 벌로 금룡을 석룡으로 변하게 하고, 용의 머리는 미수 강가의 용뇌석이 되고 용의 발톱은 용조석이 되어 영원히 염제의 관이 손상되지 않게 보호하도록 했다.

백성이 염제의 무덤에 제사지내고 참배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염제의 신령을 녹원피에다 모시고 의관총(衣冠冢: 죽은 사람의 의관을 묻은 무덤)을 만들었다. 장례를 행하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장거리를 돌아다니며 고생한 공이 크므로 옥황상제가 그들 모두를 신으로 봉했다.

염제의 장례에서 공이 가장 컸던 호진관(胡眞官)은 토지신으로 봉하여 염제의 무덤가에 호진관 사당을 지어 그가 영원히 염제의 길동무가 되도록 했으며, 관을 호송하던 36명의 장사들은 복주신(福主神)으로 하여 마을을 각기 나누어 지방의 안녕을 돕도록 했다.

장례의 잡일을 하던 수많은 단관(壇官)과 매산(梅山)들에게는 편한 지역을 골라 쉴 것을 명하였는데(逢安就落) 그 의미는 몸을 편히 쉴 수 있는 지역에 가서 안정을 취하라는 뜻이었는데, 당시에 그들은 놀라 허둥지둥하던 때여서 부근의 (호남) 안인(安仁) (현)에 가서 정착하라는(落脚) 소리로 잘못 알아듣고 모두들 안인으로 갔다.-

오늘날 안인현 경내의 논두렁과 가옥의 끝머리, 나무그늘과 모래톱 그리고 도처에 단관과 매산사당(梅山廟)이 있다. 당시에 염제의 관은 본래 녹원피에서 육로로 탕변까지 운송하기로 되어 있어서 누런 양산을 받치고 징을 울려 길을 열던 사람들은 먼저 뭍에 올라 앞쪽의 참자요(碜子坳)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염제가 이미 녹원피의 강 밑바닥 용궁에 매장되었는지 모르고 참자요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나중에는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산 위의 돌로 변하여 현재까지 줄곧 산 위에 우두커니 서서 염제릉 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다.

전설은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믿을 만한 것은 이러한 전설의 전고로 현재 실로 염제릉 묘지가 특별히 고아하고 예스러운 아름다운 경관을 지니고 있어 그 매력에 사람들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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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65 상(商) 주왕(紂王)의 독량관(督梁官)에서 주왕(周王)의 장수가 되어 상 주왕(紂王)을 친 흥하의 두 장수(哼哈二將) 정륜(鄭倫)과 진기(陳氣)  안원전   2004/06/19  5390
30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4 지행선(地行仙)  안원전   2004/06/19  4763
30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3. 공평무사 하고 시비가 분명한 정의의 화신 오누이 염라왕(閻羅王)  안원전   2004/06/14  5256
30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2 밤에 나돌아 다니며 사람들의 선악을 조사한다는 전설 중의 야유신(夜游神)  안원전   2004/06/14  4575
30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1 갈홍의 부인 포고(鮑姑)와 포고정(鮑姑井)  안원전   2004/06/09  4676
29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0《포박자(抱朴子)》의 저자 신선 갈홍(葛洪)이 가난뱅이 아들에서 대학자가 된 이야기  안원전   2004/06/08  4789
29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매트릭스와 현대문명(By 강정석 동아제약)  안원전   2004/04/20  8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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