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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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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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90. 요(堯)시절의 팽조(彭祖)와 팽성(彭城:산동성 바로 아래 경계 江蘇城 徐州市로 항우가 기두한 곳 大彭氏國의 수도), 무이구곡의 유래

요(堯)시절의 팽조(彭祖)와 팽성(彭城:江蘇城 徐州市


항우가 기두한 곳 大彭氏國 수도), 무이구곡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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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묵객이 굽이굽이 무이구곡을 노래한 무이산(武夷山)은 팽조아들에서 기원.무이산은 대만과 마주보고 있는 <복건성> 무이산맥 북단 동남쪽에 자리잡고있는데 면적은 70㎢가 되는 중국의 유명한 명산이다. 산의 특색은 천연적인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시내골짜기, 봉우리, 바위, 폭포, 동굴 등의 모습이 기이하다. 무이산의 이름은 당나라 때 장수노인 팽조고(彭祖 )가 이곳의 폭포수를 마시고 이 산에서 은거 생활을 하다가 아들을 둘 낳았는데 큰아들을 武라고 하고 작은 아들을 夷라고 하였다.(서시의 원명 이夷광의 이夷 자와 범려의 려黎 그리고 범려가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산동성으로 은거해 개명한 치이자피의 이夷 자, 서경을 해석한 서전서문을 쓴 무이夷 채침의 이夷자가 그렇듯이 팽조의 아들이름은 동이 이夷자를 쓴다. 동이족이라는 얘기다) 사진은 무이구곡 계곡입구와 과 무이구곡의 굽이굽이 절경풍경과 무이구곡계곡의 대나무배 선착장과 대나무배.또 당시에 무이산은 홍수로 재난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에 이 두 아들들이 산을 뚫어 물을 흐르게 하여 후세의 사람들은 그들을 기념하여 이 산을 무이산 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그 후에는 주변에 연계된 산들을 이어서 무이 산맥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360일 동안 구곡18만(灣)을 뚫어 치수(治水)를 하였고 720일간을 파헤쳐 땅을 일구었다고 한다. 이들이 후대에 팽씨의 선조라고 한다. 또 하나의 다른 전설에 의하면 고대 민월( 越)족이 있었는데 그 수령의 이름이 무이군(武夷君)이어서 이산의 이름을 옛날 월인(越人월인이 동이족인 이유Click here!)들이 무이산 이라고 하였다고 한다.주요 풍경으로는 구곡계곡, 삼삼수, 산환 육육봉이 있는데 그 중에도 구곡계곡은 전장 약 60km가되는 계곡인데 물이 산을 따라 흐르고, 양쪽에는 많은 봉우리와 바위가 있으며 말 그대로 만만곡곡(彎彎曲曲)이다. 이 계곡을 따라서 대나무 배를 타고 가면서 대왕봉, 옥녀봉, 회선암 등등의 수많은 산봉우리를 감상하는 것이 이 계곡의 백미이다. 이 대나무유람 요금은 지금은 430위안인데 이제는 100위안으로 낮아진다고 한다. 무이산은 1979년 중국정부에서 제 5대 명승지구로 지정될 정도로 일찍부터 경관이 아름답다.지금은 세계환경 보호구로 정해져있으며 그 이유는 곤충이 31개 종류에 5000종이나 되고 보호식물이 28종이나 되며 국가 1, 2급 동물이 58종이나 되고 수십 종의 특유 세계 희귀식물이 있다는 것이다. 풍경구는 대부분 평균 해발 350m에 있으며 벽수단산(碧水丹山) 또는 기수갑동남(奇秀甲東南)의 아름다운 명예를 가지고 있다.무이산은 또한 수렴동과 응취석 등의 명승이 있다.수렴동(水簾洞)은 천심암 북쪽에 자리잡고있는데 17㎢ 의 넓이에 무이산의 최대경관이다. 천심암 북쪽 1km에 위치한 이 동굴은 무이산 최대의 동굴이다. 동굴 앞에 약 100여m높이에서 떨어지는 마치 물의 커튼과도 같아서 수렴동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에서 용이 목욕을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동굴안은 암벽에 많은 글자들이 새겨져있는데 그 중에도 "活水"라는 두 글자가 사람들의 눈을 끈다.

*화하족(華夏族)이란 용어 자체는 황허강의 섬서성 우하변의 화산(華山)에 살던 화족(華族)과 황허의 지류가 흘러나가는 소위 요(堯),순(舜)이 살던 산서성 임분지역의 하(夏)족에서 기원하여 소위 화샤(華夏)족이라는 지금의 한(漢)족의 기원민족을 칭하는 용어를 후대에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는 원래 대만의 심건덕이 지적하는대로 그 실체가 없는 것이다. 지나족이 소위 중화 한(漢)족의 시조로 삼은 황제헌원 역시 동이족 신농의 부친 소전의 동부이모의 자식인 동시에 환웅배달국과 단군조선의 웅호(熊虎)신화에서 보듯이 황제가 그 연장선 위에 있는 동방 유웅족(有熊族)출신이었다는 사실이 황제헌원의 출자가 동방 동이족의 바운더리를 넘어설 수 없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황제헌원의 칭호출자를 제외하고 현실적적으로 한족(漢族)이 칭호된 것도 진시황의 진나라와 유방의 한(漢)나라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면 진시황이 본래 동이족 신농씨의 후예 강씨족 여불위 친자였고, 유방이(항우도 초나라 출신) 전통적 동이족 국가였던 초나라 유민임을 안다면 가히 한족(漢族)의 정체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증명하는 기록이 「사기 5제 본기」의 '황제는 소전의 아들(黃帝者 少典之子)이라는 대목과 동기록 '황보익이 말하되 황제는 수구에서 태어나서 희수(姬水)에서 성장하였으며 헌원에서 거주했다'라는 대목, 그리고 「제계사기」의 '황제는 백민(白民)으로 태어나서 스스로 동이에 속했다(自屬東夷)'는 대목, 황제는 백민 출신으로 동이에 속한다는(黃帝生於白民...自屬東夷:『楚史』) 대목에 잘 드러나고 있으니 소위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사를 지나족의 역사속에 편제하려는 시도는 자신들의 역사서에 명백히 드러나 있듯이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안원전)
*現在,中國人的血統,在中華民國稱爲中華民族,而在中華人民共和國爲中國民族。不管如何稱呼,兩種名稱都只有政治意義而無血統意義。根據以上的分析,漢族名存實亡,中國人的血統不是屬滿、蒙、藏、回、苗等五個主要族群,就是屬其他48個少數民族。實際上,中國大陸30 幾省的土地,自古就是這53族的固有領土,中國統治下的各民族不但應該仔細尋根,更應知道土地的歷史,向統治者討回本族的固有領土和民族尊嚴,因爲漢族的固有領土只有洛陽盆地。中國 民族、中華民族都是虛構的族名,都經不起歷史、血統的檢驗,閩客是越族,不是漢族。本網站爲 了遷就卽有的錯誤,才把?客也稱爲漢人。 현재 중국인의 혈통은 중화민국에 있으면 중화민족이라 부르고, 중화인민공화국에 있으면 중국민족이라 부른다. 이 두 가지 명칭은 무어라 칭하든 상관없이 단지 정치적인 의미일 뿐, 혈통상의 의미는 없다. 이상의 분석에 근거하면, 한족이란 이름은 있으나 실제로는 없다. 중국인의 혈통은 만, 몽, 장, 회, 묘 등 5개 주요 족군에 속하지 않으며, 그 밖의 48개 소수민족에 속한다. 실제상, 중국대륙의 30여 개 성(省)의 땅은 자고이래 53개 소수민족의 고유영토였다.한족(漢族)의 고유영토가 단지 낙양분지였을 뿐이었던 연고로 인해, 중국통치하의 각 민족은 마땅히 자신의 조상뿌리와 더 나아가  토지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찾고 있을뿐 아니라, 통치자에게 해당 본족의 영토와 민족존엄을 마땅히 알도록 요구하고 있다. 중국민족, 중화민족은 모두 허구의 족명으로, 역사에는 등장한 적도 없고 혈통적으로도 검증된적이 없는 이름으로  민객(閩客)은 월족(越族)이지 한족(漢族)이 아니다. (作者:沈建德,留美企管博士,前中興大學企管系副敎授。現在自費專職硏究台灣主權,及相關 的史地、政治、文化、血統等問題)
무이구곡 해설Click here!

*「桓檀古記」『太白逸史』에 의하면 소전(少典)은 소호(少昊)와 함께 고시(高矢)씨의 방계자손이라 했으니 곧 태호 복희의 후손이다. 복희의 후손들인 풍(風)씨들이 세운 나라가 바로 「춘추」에 보이고 있는 임(壬)국, 숙(宿)국, 수구(須句)국, 전유( 臾)국이다. 이 나라들의 위치를 보여주는 기록은 「산해경(山海經)」 <해내동경>에 인두용신(人頭龍神)의 뇌신(雷神)인 이들이 오(吳) 땅의 서쪽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사천성에서 호북성,호남성 그리고 그 외곽인 귀주성에 이르는 양자강 유역임을 알 수 있다)
*《좌전 희공이십일년(左傳 僖公二十一年)》: 임(任), 숙(宿), 수구(須句), 전유(顓臾)는 풍씨로 실제로 태호와 유제(有濟)의 제사를 주관하여 제하(諸夏)를 모셨다. 주인(邾人)이 수구를 멸망시켰다. 이에 수구의 아들이 도망 와 계승하여 풍씨가 되었다.
두씨가 주석하길, “수구는 동평(東平) 수창현(須昌縣) 서북쪽에 위치한다.”고 했다. 양백준이 주석하길, “전유의 옛 성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비현(費縣) 서북쪽으로 80리 즉, 평읍현(平邑縣)의 동쪽”이라고 했다. 《논어 계씨》에는 “전유로 말하면, 옛날에 선왕이 동몽(東蒙)의 제주(祭主)로 삼았고 또한 우리의 영토 안에 있다.”고 했다. 양씨가 또 주석하길, 전하기는 네 나라는 대호의 후예이므로 그 제사를 주관하였다고 했다. 도 두씨의 주석에 따르면 수구는 풍씨의 친정이 되었다고 했다.(任、宿、須句、顓臾, 風姓也, 實司太皞與有濟之祀, 以服事諸夏. 邾人滅須句. 須句子來奔, 因成風也. 杜注: 須句吊平須昌縣西北. 楊伯峻注: 顓臾故城在今山東省費縣西北八十里, 卽平邑縣東. 《論語 季氏》: “夫顓臾, 昔者先王以爲東蒙主, 且在邦域之中矣.” 又楊注: 相傳四國爲大皞之後, 故主其祭祀. 又据杜注, 須句, 乃成風母家.) (《춘추좌전주(春秋左傳注)》중화서국 1981년판 제392쪽.)
*中国古族名。东夷族的自称为“人”,夷从人从弓,“弓”古意为穹。夷即天底下的人或天底下的大人,本与炎黄同祖,战败后,与华夏族融合,被歧视所以成为古代华夏族对住在东方和东北方以鸟为图腾的各少数民族的贬称,为夷。广义的东夷还包括住在东北方的肃慎系诸部。(徐夷)、莱夷、玄兔、乐浪、高骊、满饰、凫夷、索家、束屠、倭人等。九夷又分为畎夷、于夷、阳夷、方夷、黄夷、白夷、赤夷、玄夷、风夷等。“九”是言其多,实为许多东方族类相近的民族的统称。商代时的人方为商所灭,后来大部分淮夷小国均被鲁所灭。莱夷为齐所并。太昊就是远古东方地区夷族的一个大酋长。是伏羲第四代居陈(今河南睢阳县)。其后裔分支最著者,有任(今山东济宁市),宿(今山东东平市),须句(在今东平县境),颛臾(在今山东费县)等,均在洛水流域。少昊、舜、皋陶出自东夷,少昊的后裔著名的有郯氏、莒氏、莱夷等,以上均在今山东,商的远祖也是东夷。以后的淮夷、南夷、徐夷均为东夷南迁后之别称或其支系。传说蚩尤亦属东夷族远古时之首领,战败后,一部分被迫退居南方,留北方的曾建立过黎国,后亦被炎、黄两族消灭,被俘之民在两周时称“黎民”。汉时,又把西南各少数民族统称西南夷。



순이 살던 부하는 곡부에서 30리 떨어진 연주에 있는데 수구는 바로 연주에 있다고 하니 이 곳은 바로 황제의 탄생지(수구)이면서도 바로 치우천왕의 세력근거지(연주)다. 중국사서는 황제를 지나족의 시조로 삼다보니 근원을 숨기려 했지만(곡부위 태안시의 태산이 세력 근거지라 주장하여 가급적 치우천왕의 세력근거지인 연주를 벗어나게 기술하려 했다) 산동성 자체가 바로 동이족의 근거지임과 동시에 맹자 왈 순은 동이족이라 못박은 것같이 황제헌원이 부처님 손바닥 위를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동이족 소호가 바로 이 곳 곡부사람이므로 곡부에 묻혔고 황하강 바로 옆인 동평군 수장현(양산박 부근 현 양곡인근 태전현)치우능 옆 호수가에 동이족 후예인 한(韓)인 장자방의 무덤도 있다. 장가계에 대해서 현지에서 필자는 이런 말을 들었다.

즉, 우리는 초한지나 역사를 통해 장자방이 유방으로 하여금 천하제패를 하게 하고 장생술로 도를 닦기 위해 은거한 것으로 나오고 또 그렇게 알고 있지만 실은 장자방은 마치 범려가 오를 멸망시킨 후, 월나라의 후배 대부인 문종에게 구천에 대해 간난은 같이해도 영화는 같이할 수 없는 인물이라 반드시 토사구팽당해 죽을 줄 알고 같이 도망갈 것을 권한뒤, 문종이 합류하기를 거부하자 급히 서둘러 자신의 배려로 부차의 왕궁 옆에 있는 석호에 평민으로 숨어 은신중인 서시를 데리고 산동성 정도(정할 정 도자기도로 양산박 아래 유방의 고향 풍,패 왼쪽)로 숨었듯이 장자방 역시 유방과 여후를 피해 양자강 일대를 덮고있는 묘족과 형오,백월족 및 동이 9려 토가족들 속으로 숨어들었는데(한신의 운명도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이 곳이 바로 장가계라는 엄청나게 산수풍광이 아름답고 깊은 곳이다.

현지에 가면 이곳은 중국대륙에서 가장 산이 깊고 아름다운 무릉원이라는 도시임을 알 수 있고 그 밑에 도원원이라는 도시가 있어 도연명의 무릉도원이라는 말이 예에서 나왔음을 깨닫는다.

나중에 여후와 유방이 잡아죽이려 했지만 동이 묘족과 동이 토가족의 강력한 연대와 반대로 잡을 수는 없었다고....그런 그가 결국은 자신이 젊은 시절 진시황을 살해하려 급습한 적이 있는 박랑사가 가까운 자신의 핏줄인 동이족의 고향 산동성으로 와 묻혀있다. 참 대단한 역사의 진실이 묻혀있다고 필자는 느꼈다. 중앙정부의 권력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해도 향토사학은 생생히 살아남아 사실을 증거한다. 수 백년이 넘도록 탄압받아도 신화나 전설로 방향을 틀어 전하는것이 바로 역사적 진실이다. 계엄하의 폭도 전두환때에 종파적 차원에서 역사사관이 경도된 일부 그릇된 조용기, 한경직을 비롯한 기독교 목사 몇 놈과 야합해 군부의 힘으로 밀어부쳐 구정을 없앤다 하여 민속의 날이라 어쩌고 하여 강제로 민족혼을 말살하고 문화전통의 맥을 끊으려 했지만 구정은 절대로 없애지 못했던 거와 같다.

일본 학자 오향청언 (吾鄉淸彥)이 한 말처럼 "사마천의 '사기'(史記) 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의 漢이라는 국호 자체도 옛날 3한 조선의 한(韓)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빌려 간 것에 불과하다"한 것 처럼 춘추전국시절의 진,초,연,제,한,위,조의 대부분 국가는 한(韓)이라 노골적으로 밝힌 나라처럼 대부분 동이족의 혈맥을 타고 성립된 나라이며 한신마저 장자방과 같은 동이족 한(韓)인으로 장자방은 같은 동포핏줄 한신을 천거해 당시대륙의 천하쟁패무대위에 등장시킨 것이다. 현재 해방이후 강단사학계는 겨레를 대상으로 일제하 식민사관을 주입해 진리와 권위를 빙자한 차도살해 범죄집단으로 전락한 지 이미 반세기가 넘었다. 최태영 옹 말대로 해방이후 한국 상고사는 불모지 상태인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고대사를 접하면 대륙사를 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진다.(안원전 21세기 담론중)

*위소(韋昭) 주(注)에 이르기를 신농은 3황이라 황제 전부터 있어 황제가 염제를 멸하고 그 자손을 멸했을 뿐이니 신농이 아님을 가히 명백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정 강성(鄭康成)이 5경을 논박해 이의를 제기해 말하기를 황제의 희(姬) 씨 성은 염제가 하사한 것이라 했다. 황보밀(皇甫謐)이 「제왕세기」에서 말하기를 황제는 유웅(有熊)씨인 소전(少典)의 아들 희(姬)씨 성이라(헌원의 후예로 황제헌원이다), 그 선조는 곧 염제의 어머니 집안인 유교(有喬)씨의 장녀로 소전의 가문과 혼인한 고로 「국어(國語)」에서 병칭했다.

이에 신농씨 말기에 유웅씨로부터 나라를 받아 헌원의 땅에 살았다. 「죽서기년」의 황제헌원 파트를 서술한 뇌학기는 이를 근거로 하여 황제는 신농의 모제(母弟)의 후예 소전의 임금 자손이며, 후일 염제(炎帝)대에 유웅(有熊)에 봉해져 희(姬) 씨를 사성 받았다고 말한다. 이위(耳韋)의 주(注)에 이르기를 제(帝)가 염제와 그 자손을 멸했다 하고, 시자(屍子)는 신농씨의 역대가 천하에 70 세를 이어 군림했다(神農氏七十世有天下)고 말한다. 사마천이 지나족의 시조로 삼은 황제는 70세의 역대를 이어 천하에 군림한 우리 조상 신농씨의 혈통을 이어받아 이에 기대어 살았으며 그나마 신농씨의 국가는 배달 환웅국의 번(藩:울타리)국에 불과했다.

「여씨춘추」는 신농씨의 역대가 천하에 17세 동안 군림했다고 말하고, 「사기」<5제본기>는 헌원의 때에 신농의 역대가 쇠약해져 색은(索隱:사기의 주석)에 이르기를 치세가 쇠함은 신농씨 자손의 도덕이 쇠진하고 박덕해진 것을 이르는 것이니 곧 반고(班固)가 이른 삼로(參盧)와 황보밀(皇甫謐)이 이른 유망(楡罔)이 바로 그 증거라 했다.(삼로는 참려라고도 하여 병칭해 참려유망, 삼로유망이라고 함) (안원전 21세기 담론중)

*전욱고양은 말할 것도 없이 동이족이지만 사마천이 화하의 시조로 내세운 황제마저 산동성의 수구에서 백의 민족(백민)으로 태어났음을 밝히고 있는 바다. 수세기에 걸친 부권에서 모권사회의 대립을 통해 지나족의 시조로 일컬어지고 있는 동방족의 후예 황제헌원이 서방족의 모권사회 속에 데릴사위의 형태로 흡수되어 들어간다. 이를 증명하는 기록이 「사기 5제 본기」의 '황제는 소전의 아들(黃帝者 少典之子)이라는 대목과 동기록 '황보익이 말하되 황제는 수구에서 태어나서 희수(姬水)에서 성장하였으며 헌원에서 거주했다'라는 대목, 그리고 「제계사기」의 '황제는 백민(白民)으로 태어나서 스스로 동이에 속했다(自屬東夷)'는 대목, 황제는 백민 출신으로 동이에 속한다는(黃帝生於白民...自屬東夷:『楚史』) 대목이다. 사마천의 「사기」『5제본기』에 3 황 5 제시대가 5 백 년인데, 황제는 100여 년 재위했으며 황제는 유웅국(有熊國) 소전(少田)의 아들로 소전은 인명이 아니라 (환웅국의) "제후국 이름"이라 하였다.(안원전 21세기 담론중)





4,5천년 전에 중국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이 나왔는데 그가 바로 후세 사람들에게 수성(壽星)이라고 불리는 팽조(彭祖)다.

팽조는 하대(夏代)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그 날은 상운(祥雲)이 감돌고 상서로운 기운이 자욱하여 상서로운 분위기가 드러나던 날이었다. 팽조의 부친 육종(陸終)은 기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안팎으로 돌아다니며 매우 바빴다. 원래 육종은 아내를 얻으면 곧 아들을 품에 안게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내의 배가 하루하루 불러가도 분만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1년이 지나도 아이가 나오지 않고 2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 이쯤 되자 육종은 너무 초조하여 많은 의사를 불러왔지만 그들은 그 이상하게 커진 배를 보고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어요.”

3년이 지나자 육종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직접 아내의 배를 가르고 아이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그는 작은 칼을 날카롭게 갈아 아내를 침대에 눕힌 다음 손을 덜덜 떨면서 그녀의 왼쪽 옆구리를 갈랐다. 선혈이 콸콸 흘러나오자 육종은 조금 당황하여 급히 약을 묻힌 천으로 상처를 틀어막았다.

이때 그는 두 눈을 꼭 감은 아이 셋이 뱃속에서 굼실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육종은 조심스럽게 그들을 하나하나 안아서 끄집어내어 탯줄을 끊었다. 이어서 다시 칼로 오른쪽 옆구리를 열어 같은 방법으로 세 아이를 꺼냈다. 피 얼룩을 깨끗이 씻어 내고 보니 놀랍게도 모두 아들이었다.

아들들의 우는 소리를 듣고 그때서야 지쳐버린 모친이 미소를 띠었고 조금 뒤에 그녀는 달콤한 꿈나라로 들어갔다. 이 여섯 명의 아들 중에 바로 훗날 유명한 인물이 되는 팽조가 있었다.

불행히도,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그들의 부친 육종이 피로가 쌓여 병이 되어 일찍 세상을 떴다. 모친은 힘겹게 혼자서 여섯 아이들이 세 살이 될 때까지 고생하며 키우다가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세상을 떴다.

속담에 가난한 집 아이들이 일찍 철이 든다고 했던가. 부모를 잃은 팽조와 다섯 형제들은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다른 아이들 보다 더욱 사리분별이 깊고 성숙하게 변했다. 친지와 이웃의 도움과 관심 아래 그들은 힘든 날들을 다 지내고 마침내 성인이 되었다. 여섯 형제 중에 팽조의 품행이 제일 특출하여 그는 총명하고 영리하며 사람의 기분을 잘 이해했으며 동정심이 풍부하여 하는 일마다 가는 곳마다 타인을 배려했다.

이때는 마침 중국 역사상 가장 현명한 제왕의 하나인 요(堯)가 다스리던 시대였다. 요는 높은 이마에 가느다란 몸매를 하고 있었고, 국가의 대사를 세심히 처리하느라 항상 초췌한 모습이었다. 요의 생활은 매우 검소하여 그가 거주하는 집의 지붕은 들쭉날쭉한 띠풀로 덮었고 대들보와 기둥은 모두 투박한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그가 마시는 것은 들나물 탕이었고 먹는 것은 조미(粗米)였으며 입은 것은 거친 삼베옷이었다. 날이 추워지면 요는 겉에다 사슴 가죽으로 만든 저고리를 걸쳐 추위를 견디며 세월을 보냈다. 요는 모든 정력을  국가를 다스리고 백성들을 위해 복리를 도모하는 데 집중하였으므로 자신의 생활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요의 이러한 사심 없는 마음은 천지의 귀신들을 감동시켰을 뿐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감동시켰다. 나이어린 팽조까지도 요의 생활에 대해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는 요의 초가집에 가서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전환을 하는 걸 매우 좋아하여 시간이 지나자 요와 못할 얘기가 없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나중에는 요가 가장 잘 먹는 것이 무엇이고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무엇인지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하루는 그가 요의 식욕이 부진한 것을 보고 산에 올라 꿩을 한 마리 잡아서 가장 좋은 조미료를 골라 맛있는 꿩탕 한 솥을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이 탕은 초가집에 아직 가지고 들어가지도 않아서 맛있는 냄새를 계속 풍겨 냄새를 맡는 사람들이 침을 줄줄 흘리게 했다. 그 맛을 한번 보면 그 맛은 비할 데 없이 좋았다. 요 임금은 꿩탕을 마시고 과연 입맛이 크게 돌아왔고, 정신까지도 맑아진 듯 했다. 그는 기뻐 팽조에게 8백세의 수명을 주고 팽조를 대팽씨국(大彭氏國)의 국왕으로 봉하였는데, 영토는 팽성(彭城)으로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서주시(徐州市)이다.

시간은 날듯이 빨리 흘러 눈 깜짝할 새에 은대(殷代) 말년이 되었다. 이때 팽조는 이미 7백여 세의 노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귀가 먹지 않고 눈도 침침하지 않았으며 허리도 굽지 않았고 긴 수염은 허리까지 드리우고 흰 머리에 얼굴은 동안이어서 척 봐도 선인의 풍채와 도사의 골격을 하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7백여 세 된 고령의 팽조는 정치에 열중하지 않았고, 그는 천성이 평안하고 고요하여 전심으로 수도했다. 팽조의 생활은 매우 검소했고, 사람을 대할 때는 매우 사근사근했다. 주(周) 목왕(穆王)이 그의 높은 명성을 앙모하여 그에게 산에서 나와 관직을 맡을 것을 청했으나 팽조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완곡히 거절했다.


무이산의 겨울



팽조의 명성은 어찌된 일인지 은왕(殷王:東夷國)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은왕은 팽조처럼 장수하여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리하여 그는 약초 캐는 여인을 보내어 산에 올라가 팽조를 찾아 팽조에게 장수하는 비결을 배워오도록 했다. 그 여인은 고생 고생하여 여러 지역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비밀스런 지역에서 팽조를 찾았다.(<신선전>에 "은왕의 신변에는 채녀(採女)라고 불리는 여자가 있었다. 2백 70살 되는 사람이 도리어 15, 16세 되는 소녀처럼 젊었다. 은왕은 채녀를 파견하여 팽조에게 도술을 가르쳐 줄 것을 청하였다. 채녀는 팽조에게서 정요(精要:방중술로 팽조의 방중술은 <소녀경>에 자세히 나온다)를 배워서 은왕에게 다시 가르쳐 주었다. 은왕이 시험해 보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이에 은왕은 사심이 생겨 다른 사람도 알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는 명령을 내려 어떠한 사람이 만약 팽조에게서 도술을 전수 받으면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심지어 팽조에게 가해할 염두까지 생겼던 바 화근을 철저히 없애려고 하였다. 팽조는 일찍이 그의 심사를 알아채고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다."고 전한다)

팽조는 찾아온 이유를 물은 후에 하하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비밀이 어디 있단 말이오?! 나 역시 불행한 사람으로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는지 모른다오. 단지 다른 사람보다 넓게 생각하는 것뿐이라오. 나는 아주 일찌감치 부모를 여의었고, 후에는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서역을 백여 년 동안 떠돌았다오.

다만 수년에 걸쳐 49명의 아내와 54명의 아들이 잇달아 죽은 것을 기억하지. 이 일들은 나의 원기를 많이 상하게 하여 내 수명에 이미 영향을 미쳤다오. 나는 아마도 얼마 더 살지 못할 거요. 내게 오래 사는 비결을 물었는데, 이 방면으로는 정말로 별다른 경험이 없어 이야기 해줄 게 없소. 그만 돌아가시오!”

그는 말을 마치고 길게 탄식을 하더니 표연히 떠나갔다.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무도 알 수 없다.

몇 십 년 후에 어떤 사람이 사막의 서쪽 변경에서 흰 수염에 눈썹이 흰 팽조를 보았는데, 그는 혼자서 피골이 상접한 늙은 낙타를 타고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팽조는 자신이 장수하는 비결을 말하려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속으로 추측해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팽조가 장수한 것은 계지(桂芝)라는 약물을 항상 복용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수정, 운모(雲母)가루, 녹각 등으로 단약(丹葯)을 만들어 보양을 하기 때문에 용모가 마치 소년과도 같이 혈색이 좋은 것이라고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팽조가 심호흡 운동을 견지하여 청춘을 유지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예부터 지금까지 중국인들은 모두 팽조를 장수의 상징이라고 여겨 장수를 비는 시문 중에는 항상 팽조의 이름을 넣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팽조는 일찌감치 장수의 신으로 새겨졌다.(범사(范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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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장자의 매미와 거북

옛날 팽조(彭祖)란 사람은 8백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사람으로서는 가장 장수했다고 전해지는데....
하루살이란 벌레는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죽는다. 따라서 하루살이는 `한달'이 무엇인지 모른다. 또 매미는 봄에 태어나 여름에 죽고 만다. 그러므로 매미 역시 `4계절'을 모른다. 그런데 초(楚)나라 남쪽바다에 사는 큰 거북에겐 5백년이 `한차례의 봄'에 불과하고 또 5백년이 `한차례의 가을'에 지나지 않았다. 그 옛날 동백나무에겐 8천년이 곧 봄.가을의 한 철이나 다름없었다. 하루살이와 매미는 `짧은 생명'이고 거북과 동백나무는 `긴 생명'이니`긴 생명'에겐 `짧은 생명'이 이해되지 않는다.팽조 또한 거북이와 동백나무에 비하면 `짧은 생명'이 아닌가?세상 사람들은 팽조가 장수했다고 하지만 그 또한 슬프게도 `짧은 생명'이 아닌가?


중국 열선전전(列仙全傳)에는 기원전 976년경 서주의 목왕(穆王)의 명을 받은 채녀가 팽조에게 방중술의 비법과 아울러 '음중(陰中)의 대추'라는 강정약을 전수받 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진(東晋)시대의 습유기에는 선녀계의 원로인 서왕모가 50세에 왕위에 오른 목왕이 동쪽지방을 둘러볼 때 하늘에서 내려와 목왕과 잠자리를 같이했다고 전한다. 이 때 음중에 말린 대추를 자신의 속살집에 삽입해 놓았다가 그것을 목왕에게 먹였는데 이 여성의 애액으로 불린 남성용 방중비약은 로얄제리 1백배 이상의 효과를 가진 명약중의 명약으로 기록돼 있다. 불린 대추는 現代醫學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대추는 쇄약해진 내장을 고치고 노화를 방지하며 利尿의 기능을 원활히 하는 한편 정신 안정제로서 즉효가 있다.

방중술(房中術)에는 여러 가지 기원설이 있는데, 소녀(素女)나 현녀(玄女) 그리고 팽조(彭祖) 등이 그 시초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소녀나 현녀는 소녀경(素女經) 등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을 테지만 팽조는 좀 낯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팽조는 장자(莊子)라는 책의 처음에 잠깐 등장하는 인물인데, 800세를 살았다는 고대의 선인(仙人)이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아주 간소한 삶을 즐겼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명성을 듣고 은나라 왕이 신하로 쓰고자 했을 때도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후에 은나라 왕이 선인에는 선인이 통한다고하여 270세나 되는 여자를 팽조에게 보내 그 장수 비법을 배워오라고 지시했다. 팽조는 그녀를 보자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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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이 되어 한 낮에 하늘에 오르기 위해서는 금단(주1)을 먹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러한 방법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으므로 왕에게 권할 것이 못된다. 정신을 수양하고 약을 먹으면 도깨비나 귀신을 마음대로 부릴 수는 없으나 장생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도 남녀 교접의 방법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수양하고 약을 먹어도 소용없다. 그것은 음양을 기르는 도리를 생각해 보면 어린애도 알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을 내가 가르쳐 준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각종 전란을 겪으며 방랑생활을 하며 흘러 다니다가 그 사이에 49인의 처와 54인의 자식을 잃었다. 그러는 중에 신체의 기가 손상되어 선인이 되는 과정을 다 익히지 못하였다. 만약 장생의 방법을 꼭 듣고 싶거든 대완산(大宛山)에 있는 청정선생(靑精先生)에게 가서 듣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꾸만 졸라대며 가르침을 원하므로 복기(주2)의 방법과 도인(주3)의 방법 등을 가르쳐 준 뒤에 남녀 교접에 대하여 말하여 주었다. 그는 지금 세상에는 교접의 도를 금하는 사람도 있지만 남녀가 있는 것은 천지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이를 금하는 것은 자연의 법에 위반하는 것으로 해가 있을 따름이라 하고 다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하게 되면 신체에 손상이 오게 된다고 말하였다.

결국 팽조의 말을 되 짚어 본다면 섹스는 하되 정(精)을 보존하며 테크니컬하게 하라는 소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말이야 쉽지 어디 그렇게 간단한 일인가? 우리는 앞으로 어렵더라도 이러한 것을 하나 하나씩 배워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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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金丹: 신선이 되기 위해 만들어 먹는 약
주2) 服氣: 단전에 기를 쌓음
주3) 導引: 몸을 단련 시키고 기를 쌓는 수련법


채녀가 묻는다.교접에 대한 것은 이제 많이 들었으므로 다른 것을 묻겠습니다. 약을 복용하자면 어떤 것이 효과가 있습니까? 팽조는 이렇게 대답한다. 인간을 강장케 하여 늙지 않게 하며 교접에도 지치지 않게 하고 기력과 안색도 축나지 않게 하는 데는 녹각 이상으로 좋은 약은 없다. 그 처방은 녹각을 깎아 분말 10량(약 150그램)에 팔각형의 생부자 1개를 섞어 한 치 되는 숟갈 하나의 분량을 하루에 2회 복용하면 매우 효과가 있다. 또 미각을 불에 약간 그을려 노랗게 되면 이것만을 복용해도 좋다. 이것도 노쇠를 방지해 준다. 그러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더디다. 또 이것에 부자를 넣은 것을 복용해서 20일이 지나면 매우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 또 농서(甘肅省)에서 산출되는 복령을 가해도 좋고, 같은 양을 배합해서 가루로 만들어 한치 숟갈로 하나 정도의 분량을 하루에 3 회 복용한다. 이렇게 하면 오래 살 수 있고, 방사도 쇠퇴해지지 않게 된다.

<해 설>-소녀가 바뀌어 다시 채녀가 등장하여 강장제의 설명이 시작된다. 미각은 중국 북방에서 서식하는 사슴의 뿔로서, 연한 뿔은 이미 설명한 녹용이며, 성장한 것을 녹각이라고 한다. 녹용이 더 효과가 있다. 사슴은 고기·피·대아·근·꼬리·양구(陽具: 鞭 이라고 한다) 어느 것이나 강정 강장약 으로 쓰이지 않은것이 없다. 중국 역대의 황제는 모두가 사슴을 귀하게 여겼다. 전한의 고조는 아침 저녁으로 사슴의 밥주머니를 먹었다. 이것을 먹고 출전을 하게 되면 반드시 싸움에 이겼기 때문에 고조에게는 사슴의 밥주머니가 강장제와 같은 역할을 하여 싸움터 에서는 무적과 같은 것이었다.

녹편이라는 것은 사슴의 생식기를 뿌리에서 잘라 건조시킨 것으로서 칼로 깎아서 술과 함께 마신다. 녹혈은, 달인 인삼을 100일 동안 마시게 한 암사슴의 콧잔등을 삼릉침으로 찔러, 피를 그릇에 받아서
술과 함께 매일 한번씩 마시면, 아무리 방탕하더라도 허약해지지 않는다. 녹혈과 고기를 사용하여 매일 밤 두 번씩 사정해도 피로를 느끼지 못하여, 11명의 처첩을 차례로 말라 죽게 한 정력 절륜의 사냥꾼의 이야기도 있다. 앞에서 말한 생부자는 매우 독하기 때문에, 복령을 배합한 산제(散剖)로 대체한 것이다. 중국의 방중술에는 자력 갱생을 존중하여 방중술 때문에 생긴 병은 방중술로 고친다고 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팽조가 말했듯이 때로는 약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될 경우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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