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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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97. 청수조사(淸水祖師)

청수조사(淸水祖師)





달리 부르기를「마장상인 麻章上人」,민남(閩南) 일대에서는 흔히「오면조사 烏面祖師」,대만에선「조사공 祖師公」、「조사야 祖師爺」라부른다。중국전역에서 약 백좌의 청수조사묘가 있다,조사야의 분신이며,별칭으로는「삼대조사 三代祖師」、「봉래조사 蓬萊祖師」、「현응조사 顯應祖師」、「조응조사 照應祖師」、「휘응조사 輝應祖師」、「보암조사 普庵祖師」가 있다。전하는 바에 따르면 청수조사의 속성은 진(陳)이며,이름은 응(應, 일설에 의하면 진소陳昭 혹은 진소응陳昭應)이라한다,법명(法名)은 「보족 普足」이다,송인종 4년(宋仁宗慶曆四年正月初六)에 복건성 영춘현(福建省永春縣小姑鄉)에서 태어났다。진응(陳應)은 어렸을대 대운원(大雲院)에서 출가하였다,이때문에 사원에서 많은 학대(虐待)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자라서는 고태산(高太山)에서 모축암(茅築庵)을 짓고,폐관정좌(閉關靜坐)의 수련을 쌓았다,후에 대정산 명송선사(大靜山明松禪師)의 가르침은 받았다,불교경전을 삼년가 참독(參讀)한여후,종내는 도를 얻었다(悟道)。명송선사의 의발을 전수받고,아울러 계를 남겼는데(告誡他):「我佛最大功德,就是行仁,是故要捨棄萬緣,以利物濟世為職責」,陳應便在麻章施醫濟藥,普救貧病,麻章人士尊他為「麻章上人」。

「우리 부처님의 최대공덕은,인을 행한 일이다,옛날의 모든 인연을 버린 것입니다,이것이 세상의 이로움을 위한 책임입니다」,진응은 마장에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약도 지어주어 가난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었는데 마장인들은 이후로「마장상인 麻章上人」이라 불렀다。송신종(宋神宗) 원풍6년(元豊六年)에 청계(淸溪, 福建安溪)의 영춘(永春) 일대에 큰 한발이 들었는데 그 지역사람들은 그를 청하여 기우제를 열게하였는데 즉각적으로 장마때처럼 널리 비가 내렸다고한다,이로 인하여 그를 칭하길「청수조사 淸水祖師」라 부르기 시작하였다。청계의 인사들은 다시 봉래산(蓬萊山)에 한채의 정사를 지었는데,이곳에 마장상인이 거주케하였다,그리고 그곳을 일컬어「청수암 淸水嚴」이라 불렀다。마장상인은 이곳에서 19년간을 수행하였으며,혼자힘으로 모화(獨力募化)하여,다리를 고치고 도로를 보수하였다,이러한 선행이 사람사람마다 전해져 창주(漳州)、청주(汀州) 일대의 사람들에게 십분 숭상의 대상이 되었다。송휘종9년(宋徽宗靖國九年)에 설교하던 도중에 5월 19일 좌화하였다,향년 65세의 나이었다。지방인사들은 그의 덕을 기려 조정에 상주하였고 조정에서는 「소응대사 昭應大師」라 봉호를 내렸다。

대만의 삼협조사묘(台灣三峽祖師廟)에있는 설명에의하면,청수조사는 북송의 서울이었던 개봉(開封府) 상부현(祥符縣人, 今河南開封)사람으로,송의 승상이었던 문천상(宋丞相文天祥)이 의거할제,원병(抵抗元兵)에 저항하여 대강남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등 항원활동을 하였던 민족영웅으로 알려졌다。청수조사 생전에는 복건성의 청수암에서 은거하였는데,사후에는 명태조에 의하여「호국공 護國公」에 소명(昭命)되어 복건성 안계현(福建省安溪縣)에 청수암이 건립되어 사당에 숭사(崇祀)되었다,복건 안계인들은 그를 칭하여「조사공,祖師公」이라하였고,달리「조사묘 祖師廟」라고 불렀다。
又稱「麻章上人」,閩南一帶多稱為「烏面祖師」,臺灣則稱為「祖師公」、「祖師爺」。全省近百座的清水祖師廟中,祖師爺的分身,別稱「三代祖師」、「蓬萊祖師」、「顯應祖師」、「照應祖師」、「輝應祖師」、「普庵祖師」。相傳清水祖師俗姓陳,名應(一說為陳昭或陳昭應),法名「普足」,宋仁宗慶曆四年正月初六誕生於福建省永春縣小姑鄉。陳應自幼在大雲院出家,因不堪寺院的虐待,於是到高太山結茅築庵,閉關靜坐,後經大靜山明松禪師指點,參讀佛典三年,終於悟道。明松禪師授他衣缽,並告誡他:「我佛最大功德,就是行仁,是故要捨棄萬緣,以利物濟世為職責」,陳應便在麻章施醫濟藥,普救貧病,麻章人士尊他為「麻章上人」。 宋神宗元豐六年,清溪(福建安溪)永春一帶大旱,鄉人請他去祈雨,立刻甘霖普降,因此被尊稱為「清水祖師」。清溪人士便在蓬萊山上築一精舍,延請麻章上人居住,並稱此為「清水嚴」。麻章上人在此修行十九年,獨力募化,修橋鋪路,人人稱便,漳州、汀州一帶的人都十分崇信他。宋徽宗靖國九年,五月十三日在說教中端坐而逝,享年六十五歲。地方人士感念其德澤,奉報朝廷,敕賜「昭應大師」封號。另根據台灣三峽祖師廟說明,清水祖師是北宋京都開封府祥符縣人(今河南開封),曾追隨宋丞相文天祥義舉勤王,英勇抵抗元兵,轉戰大江南北,是抗元扶宋的民族英雄。清水祖師生前隱居於福建清水巖,死後明太祖追念他功在國家,敕封為「護國公」昭命於福建省安溪縣清水巖建立祠堂崇祀,因此福建安溪人稱他為「祖師公」,其廟宇稱為「祖師廟」。

三峽淸水祖師廟 대만 삼협의 청수암(淸水岩)
청수암은 안계현(安溪顯)에서 17㎞ 떨어진 안계봉래향(安溪蓬萊鄕)에 위치해 있으며 복건성의 명승지이다. 청수암은 높은 산등성이에 있으며 사면에 괴석이 많고 나무가 무성하며 반령정(半嶺亭), 각정(覺亭), 암도부조비(岩圖浮雕碑), '지지조북(枝枝朝北)' 대장숙, 천년라한(千年羅漢) 소나무 등이 있다. 청수암은 1083년에 건설한 것으로 3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호천구(昊天口), 2층은 청수조사(淸水祖師)을 모시는 조사전(祖師殿), 3층은 역가루(譯迦樓)이다.
청수암에는 청수조사를 모시고 있는데 청수조사의 신앙이 역대로 내려오면서 전해져 대만과 동남아 각지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청수조사 봄맞이 민속활동은 제를 지내러 오는 사람과 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다.









중국의 보물섬이라 할 수 있는 대만(臺灣) 사람들은 청수조사를 매우 숭배한다. 청수조사를 모시는 사당 앞에는 온종일 향불이 꺼지지 않고 사람들의 물결이 끊이지 않는다. 청수조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선량하고 사람을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우상으로 자리 잡았다.

청수조사는 복건(福建)의 한 진(陳)씨 가문의 농가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 울지 않았고 산파가 그의 작은 엉덩이를 때리자 그는 오히려 웃는 얼굴을 했다. 자라난 후에 다른 사람이 그를 때리면 그는 울지 않았고 욕을 해도 울지 않고, 더욱이 맞받아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잘 웃는 아이는 본래 많은 어른들에게 귀여움을 받아야겠지만, 청수조사는 너무 못생겨서 얼굴이 새까맣고 작은 코와 작은 입에 웃는 것이 우는 것보다 보기 싫어 집안의 어른들이 모두 그를 싫어했다.

또 하나의 원인은 바로 그가 너무 착해서 항상 집안의 양식과 솜이불, 옷 등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기 때문이었다. 사방 10리 안의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진씨 집안에 아주 마음씨 고운 아이가 하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는 진씨 집 문 앞에 구걸하는 한 노파가 왔는데, 낡은 홑옷을 입고 손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말했다.

“자선을 베푸시어 제게 먹을 것을 좀 주세요. 배가 고파 죽겠어요.”

그는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고 흰쌀밥을 한 그릇 손에 받쳐 들고 노파에게 갖다 주었다.

“마음씨 고운 아이야 너는 반드시 보답을 받을 거야.”

노파는 감격하며 그에게 말했다.

“뭘요.”

그는 몸을 몰려 막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노파가 입은 옷이 너무 얇은 것을 보고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는 바로 돌아가 노파가 입을 만한 옷을 찾았다. 그가 옷 한 벌을 찾아 노파에게 갖다 줄 채비를 하는데 부친이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났다.

“넌 또 뭘 하려고 하느냐? 어째서 내 솜저고리를 들고 있지?”




삼협의 청수조사묘.  창건은 청 건륭 34년(乾隆三十四年,1769年). 광서25년(光緖二十五年,1899年)에 다시 중건되었다


“아버지, 문 밖에 한 노파가 배고프고 추워해서 이 솜저고리를 그녀에게 갖다 드리려고 해요.”

부친이 그에게 말했다.

“안돼. 넌 이미 집안의 물건을 수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갖다 줘버렸어. 이런 집안을 망칠 놈 같으니라고.”

부친은 솜저고리를 냉큼 뺏었다.

“썩 꺼져. 남한테 줄 수 없어.”

그가 꼼짝 않고 서 있자 부친이 그의 따귀를 한대 후려쳐 눈앞에 별이 왔다 갔다 했지만 그는 오히려 웃는 얼굴을 했다. 부친은 극도로 화가 났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어 할 수 없이 그의 방으로 되돌아  갔다. 이날 밤에 그는 부친이 깊은 잠에 든 때를 틈타 몰래 부친의 방에 들어가 솜저고리를 손에 넣었다.

그는 반드시 그 노파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솜저고리를 가지고 집을 나섰다. 뜻밖에도 구걸하던 노파는 아직 가지 않았다. 노파는 그를 보고 말했다.

“얘야, 드디어 왔구나. 따뜻한 옷을 한 벌 가지고 온 게지?” “

추워서 떨지 마시고 어서 입으세요.” 그가 대답했다. 노파는 솜저고리를 입으며 말했다.

“아주 따뜻하구나. 그런데 너희 집 어른이 분명 널 때릴 텐데 어떻게 할래?”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때는 나를 찾아오려무나. 이 작은 길을 따라 18개의 산을 넘으면 날 찾을 수 있을 거야.”

노파는 말을 마치고 덜덜 떨면서 갔다.

과연 이튿날 부친이 잠에서 깬 후에 솜저고리가 없는 걸 발견하고 그를 피부가 찢기고 터져 선혈이 마구 흐르도록 흠씬 두들겨 팼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저는 맞아서 이미 피가 흐르고 피부가 찢겼으니, 이것으로 제가 다른 사람에게 준 물건을 상환한 셈 치세요. 저는 떠나겠어요.”

그는 몸에 묻은 혈흔을 지우고 상처투성이 몸을 이끌고 집을 떠났다. 그는 노파가 가르쳐준 방향을 따라서 산을 하나하나 넘었다. 그가 17번째 산을 넘고 있을 때 맞은 상처와 피로 때문에 계속 앞으로 갈 기운이 없었다. 이때 한 음성이 그의 귓가에서 들려왔다.

“너는 돌아가서 다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건을 주지 마라. 그러면 부친도 너를 때리지 않을 거야.”

그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아니, 난 그렇게는 못해.”

그는 계속해서 산을 넘어 마침내 17번째 산을 다 넘었다. 그의 눈앞에는 아직 마지막 산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는 더 이상은 기력이 없어 나약하게 18번째 산 아래에 누웠다.

“돌아가라.”

그 음성이 또 다시 그의 귓가에서 울렸다.

“너는 이 산을 넘지 못해.”

그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지만 산을 넘을 힘을 내지 못했다. 산 아래에 누워 있은 지도 6일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은 이렇게 있기 힘들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얼어 죽거나 굶어죽기 십상으로, 유일한 방법은 마지막 산 하나를 넘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손과 발을 병용하여 느릿느릿 엉금엉금 이동하여 마침내 산 정상에 도달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어 둘러보고 멀지 않은 곳에 사당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산의 안개 속에서 유난히 신비스럽고 장엄하며 기세가 웅장함이 드러났다.

보고 또 보다가 그는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미끄러져 넘어져 산으로 굴러 사당 문 앞에 쓰러졌다. 한 늙은 승려가 나와 어린 아이를 보고 그를 사당 안으로 안고 들어가 그에게 약을 발라주고 죽을 먹여 주었다. 날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정신이 들어 자기가 어느 곳에 누워있는지 몰랐다.

“여기가 어디예요?”

늙은 승려가 걸어왔다.

“깨어났구나. 잘됐다. 이곳은 대운원(大雲院)이란다. 이제부터 여기서 묵거라.”

그는 이 목소리가 약간 귀에 익었다.

“어, 당신이 바로 그 구걸하던 노파세요?”

“나는 줄곧 너를 찾았단다. 그래서 구걸하는 노파로 분장을 하고 네가 소문의 그 착한 아이가 맞는지 시험해본 거란다.” 늙은 승려는 온화하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사당에서 지내면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늙은 승려를 곁에서 모시며 그의 가르침을 배웠다. 그러나 그가 18세가 되던 해에 대운원에 큰 불이 나 다 타버려 그는 할 수 없이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가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자신도 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틀림없는 것은 계속 경전과 불경을 암송하여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그가 고태산(高泰山)이라는 곳에 왔다. 이곳은 소나무와 잣나무가 우거지고 샘물이 맑으며 산과 들판이 짙푸른 아주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초가집을 하나 짓고 그 속에서 수련했다. 동시에 의사노릇을 시작하여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여 주위의 산민(山民)들을 치료해주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산민들은 고태산에 선량한 승려 한 사람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잇달아 아이들을 산에 올려 보내어 그를 스승으로 삼게 했다. 그는 그들에게 선량한 일을 하여 세상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가르쳤고 엄격한 계율을 정하여 제자들에게 지키도록 했다.      

오랜 기간이 흘러, 그는 자신의 수련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더욱 향상되려는 마음에 고태산을 떠날 것을 결심하고, 대정산(大靜山)에 가 명송선사(明松禪師)를 스승으로 모시고 계속 깊이 연구했다.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경전을 암송하고 계율을 엄히 지켜 3년의 시간을 들여 마침내 대도(大道)를 깨달아 높고 깊은 학문에 정통하여 고태산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가기 전에 사부가 그에게 훈계했다.

“너는 반드시 계속해서 인(仁)을 행하고 세상을 구제하고 계율을 엄히 지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는 사부에게 고마움의 절을 하고 99일을 걸어서 고태산으로 돌아왔다.

그는 계속해서 산간지대에 사는 백성들에게 좋은 일을 했다. 이 해에 고태산의 사방 수백 리에 가뭄이 들어 토지가 말라 갈라지고 농작물이 모두 말라 죽어 백성들이 하늘에 비를 내려주어 중생을 제도할 것을 갈망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보고 산을 내려가 백성들과 함께 하늘에 비를 내려줄 것을 기도했다.

진실한 마음이 신통력을 발휘하여 그가 하산하여 비를 내려줄 것을 기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에서는 큰 비를 내려주어 빗물이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농작물도 새 생명을 얻었다. 백성들은 노래 부르며 춤추며 매우 즐거워했고 그는 더욱 사람들의 존경을 얻었다.

후에 백성들은 오로지 그만을 위한 ‘청수암(淸水岩)’이라는 사원을 지어 그가 이 사원 안에서 수행하게 했다. 청수조사는 이렇게 하여 국내외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반대명(潘大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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