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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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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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211.「죽서기년」에 「초어(楚語:초나라가 동이 9족의 국가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에 이르기를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우리 동이족)의 덕을 거듭 실천하고, 요(堯)가 다시 중려(重黎)의 후예를 길렀는데 옛사람을 잊지 못했다
  
전욱고양은 말할 것도 없이 동이족이지만 사마천이 화하의 시조로 내세운 황제마저 산동성의 수구에서 백의 민족(백민)으로 태어났음을 밝히고 있는 바다. 수세기에 걸친 부권에서 모권사회의 대립을 통해 지나족의 시조로 일컬어지고 있는 동방족의 후예 황제헌원이 서방족의 모권사회 속에 데릴사위의 형태로 흡수되어 들어간다. 이를 증명하는 기록이 「사기 5제 본기」의 '황제는 소전의 아들(黃帝者 少典之子)이라는 대목과 동기록 '황보익이 말하되 황제는 수구에서 태어나서 희수(姬水)에서 성장하였으며 헌원에서 거주했다'라는 대목, 그리고 「제계사기」의 '황제는 백민(白民)으로 태어나서 스스로 동이에 속했다(自屬東夷)'는 대목, 황제는 백민 출신으로 동이에 속한다는(黃帝生於白民...自屬東夷:『楚史』)  대목이다. 사마천의 「사기」『5제본기』에 3 황 5 제시대가 5 백 년인데, 황제는 100여 년 재위했으며 황제는 유웅국(有熊國) 소전(少田)의 아들로 소전은 인명이 아니라 (환웅국의) "제후국 이름"이라 하였다. 「한서(漢書)」 <왕망전>에 왕망은 전한을 찬탈한 뒤 고구려를 폄하해서 하구려(下句驪)라 했다. 후한 광무제에게 망한 그들 일족이 평소 냉대하고 박대한 고구려로 가지 못하고 바다 건너 가야, 신라로 간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량지는 고구려의 고(高)가 높고 낮음의 고(高)가 아니라 그 선조가 고신(高辛)씨였기 때문에 이를 상징하는 성씨라 말하고 있다. 「사기오제본기」에 고신의 제위 하의 수도인 박( :박은 殷의 수도이기도 하다)에 대해 황보밀(皇甫謐)의 말을 인용한 집해(集解)에서 지금의 하남(河南) 언사현(偃師縣)이라 말하고 있다.

「제왕세기」에 "제곡은 70년 재위하여 105세에 붕했다. 동군돈구(東郡頓丘) 광양리(廣陽里)에 장사지냈다."고 나온다. 또 「산해경(山海經)」<대황남경>을 보면 "제요, 제곡, 제순을 악산(岳山)에 장사지냈다."고 나온다. 황람(皇覽)의 말을 인용한 「역사(繹史)」에는 "제곡의 무덤이 동군(東郡) 복양( 陽) 돈구(頓丘) 성남(城南) 대음(臺陰)의 들판에 있다."고 했다. 돈구는 지금의 하남(河南) 준현(濬縣) 서쪽으로 고신, 전욱고양의 무덤이 서로 인접한 장지다.(是高辛高陽葬地正相隣接) 「산해경(山海經)」<대황북경>을 보면 "대황(大荒)의 한 가운데 황하의 사이에 부우(附 )산이 있는데 전욱 임금과 아홉 명의 후궁을 이 곳에 장사지냈다"고 했다

앞서 밝힌 바 있듯이, 우리는 황제헌원의 뿌리가 한국인의 직계조상인 소전과 유웅국의 딸이 결혼해 낳은 자식임을 알고 있다. 요(堯)의 뿌리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 또한 모두 우리 한국인 조상이 바로 그 뿌리이다. 공자도 사마천도 이 사실만은 속이지 못했다.

  이 부분을 밝히려 해도 많은 지면이 필요할 터이므로 몇 명 만 간단히 언급하고 「환단고기」의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을 소개한다. 공자가 이상시대로 거짓 설정한 요,순 시대는 단군조선의 역사시대와 맞물리면서 그 분치 제후국으로 많은 교류가 있었고, 요, 순을 둘러싼 모든 인물이 바로 요, 순 자신의 혈통이 그러하듯이 우리 한민족의 혈통이었다.

  필자가 구구 절절히 어려운 한문원본을 들이대면서 장황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숨기지 못할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해방이후 단 한번도 상고사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해방이후 세대는 접해본 적이 없다.

「서전」<요전>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한글세대 독자를 감안해 그냥 읽는 식으로 기술하면 내명희화하사 흠약호천하고 역상일월성신하여 경수인시하니라. 이 말은 희, 화에게 명하여 호천(昊天)을 삼가 공경해 따르며 역(曆)은 일월성신을 본받아(象)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때를 일러주라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죽서기년」에 「서전」과는 다르게 이 말 다음에 뭐라 했냐 하면 「초어(楚語:초나라가 동이 9족의 국가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에 이르기를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우리 동이족)의 덕을 거듭 실천하고, 요(堯)가 다시 중려(重黎)의 후예를 길렀는데 옛사람을 잊지 못했다고 나온다.

  중려는 소중하고 귀중한 구려라는 뜻이며, 옛 사람을 잊지 못했다는 불망구자(不忘舊者) 역시 자신의 뿌리인 구려인이다. 청나라 누루하치의 애신각라(愛新覺羅)가 신라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었음과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우리 동이족)의 덕을 거듭 실천하고, 요(堯)가 다시 중려(重黎)의 후예를 길렀는데 옛사람을 잊지 못했다”는 뜻임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동이족의 뿌리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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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전」<순전>을 보면 요(堯)의 신하들이었던 공공(共工)이 순(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가고, 환두(驩兜)가 숭산(崇山)에 갇히고, 삼묘(三苗)가 삼위(三危)로 쫓겨나고, 곤(鯀)이 우산(羽山)에 종신형으로 유폐된다.

사람 이름으로 나오는 삼묘라는 신하는 아마 양자강 유역의 동방 9이(夷)족 중 하나인 묘요(苗猺)계 삼묘(三苗)족 출신인 듯 한데, 임 혜상은 구려(九黎) 삼묘(三苗)를 하나로 묶어 설명한 바 있다.


  이 부분은 역사의 핵심을 모르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해석하기 쉬운 부분이다. 한겨레의 대륙사관의 본질이 정립되지 않으면 사서삼경을 수없이 본 사람일지라도 결코 제대로 알 수 없다. 도올 김용옥이 사서삼경을 강의하기에 앞서 이러한 대륙사관의 본질과 공자에 의한 동이족 사관의 왜곡 및 동이족 영적 세계의 말살기도에 대해 언급했어야 의당 옳지 않았을까.

  왜냐면 이제는 이러한 사실이 밝혀질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공자에 의해 네다바이 당하고 사마천에 의해 뒷통수 얻어맞았으며,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야구방망이로 난타 당해 오랜 기간 병상에 혼수상태로 혼과 넋을 잃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사막의 야훼 신에게 짓밟혀 조상신을 부인당하고도 반벙어리가 된 것이 우리역사라면 안으로는 공자에 의해 사기 당한 존주 사대주의 부유(腐儒)에게 천제의 나라를 포기하고 일개 제후국을 오히려 천자로 받들어 모신 것이 우리역사의 실체이다.

비록 이들을 모두 언급한다는 것이 기대무망이라 해도 공자사관의 왜곡만은 말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는 그렇게 못했다. 왜냐고? 그는 한민족 대륙사관의 실체는 감도 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집과 편견 그리고 학자적 오만으로 너무 자존 자대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각설

  또 곤과, 단주, 삼묘, 공공, 환두(제요 밑에서 공공을 임금으로 천거했을 정도로 막역했다) 등을 제거한 순이 늘그막에(80세) 막상 죽은 곳은 바로 동이 9족의 중심무대였던 광서성 창오현의 삼묘족 근거지였다.(무덤은 江南 九薿)

  「서전」<순전>을 보면 삼묘족이 순에게 내어 쫓겼는데, 순에 의해 부친 곤(鯀)을 잃은 우(禹)와 제위를 빼앗긴 단주는 동이 제 족의 힘을 빌려 창오에서 순을 시해하여 복수하고 우(禹)의 하(夏)나라를 열게 된다. 요는 제위를 순에게 물려준 지 28년 만에 죽었고, 순은 나이 30에 제위에 올라 50년 동안 집정했다.

놀라운 사실은 「사기」<정의>& 「사기」<집해> 그리고 왕동령(王棟齡)의 「중국민족사」를 보면 14대 치우 천왕의 강역을 보여주는 기록이 보이는데 특히 양자강 유역의 삼묘족이 구려(九麗;九黎)국으로 군장은 치우라 하여 환웅 배달국의 강역이 전 대륙을 아우르고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러한 명백한 역사기록을 매도하는 무지한 보도의 한 예를 보자.

-우리 민족의 역사가 5천년이라 하지만 민족신앙으로서의 檀君을 역사적 존재로 인정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를 인정할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 역사를 9천년 또는 1만년 이상이라거나 우리 민족이 東아시아 전체를 지배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국수주의의 극단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이같은 주장을 담은 책이 유행처럼 나오기 시작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부쩍 더 심해졌다.「처음으로 밝혀진 한民族史」「천부경」이니「圓方角문화」니 하는 책들이 그것이다. 또한 이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정기 간행물「한」「한배달」이란 잡지도 이 방면의 글들을 비중있게 싣고 있다. 이밖에 이에 대한 학술대회도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책이나 글들은 나름대로 그 근거하는 바가 있다. 바로「桓檀古記」란 책인데 이들은 이 책의 내용을 신앙처럼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제작 연대나 전래과정, 그리고 내용 및 문장형태로 볼 때 결코 믿을만한 史料로 인정되기 어려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일반 史書를 제대로 해독하지도 못하면서 그 내용을 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재야 사학계의 중진으로 꼽히는 李重宰씨가 쓴「처음으로 밝혀진 한民族史」는 그 좋은 예가 된다. 李씨는 5백여 쪽의 방대한 이 책에서 1백30쪽까지「三苗族」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三苗族」은 옛날 중국에 있었던 민족으로 바로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李씨는 그 증거로「三國史記」百濟本紀 義慈王篇에 나오는「則三國祖先豈古聖人之苗裔耶」(그런즉 삼국의 조상은 아마 옛 성인의 후예일 것이다, 라는 구절을 들고 있다.「苗」자를「苗族」으로 해석하여「三國의 조상이 묘족의 후예」라고 풀이했다)을 기상천외하게 해석하고 있다.

「西州縣」을 따로 떼어내고는 중국에「西州」라는 지명이 있으므로 三國의 무대는 중국이라고 강병하고 있는 것이다.(묘예라는 말 자체가 후예라는 뜻이므로 苗裔耶에 대한 이중재의 견강부회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삼묘족이 우리 민족이라는 사실은 이미 지나 학자의 상고사 고증에 수없이 확인 된 진부한 문제이다.(임혜상 중국민족사 참고) 그러나 이를 견강부회한 것은 분명히 문제지만 그렇다 해서 삼묘족이 우리 조상이 아니라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역사왜곡임을 기자는 모르고 있다. 한 어린애가 과자를 입에 물고 아빠에게 와서 이게 사탕이야? 하고 묻는다. 아빠는 이해하기 쉽게 그래 사탕이란다 했더니 그 옆에 있는 잔머리 굴리기에 능한 사람이 과자를 사탕이라 했다 해서 네 아빠가 하는 말은 모조리 거짓말이라 주장하는 예와 같다고 본다. 필자는 묘예야라는 구절을 이중재가 알고도 독자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랬으리라 본다:안원전)

이와 같은 책들은 학술적으로도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일반서적의「역사」코너에 버젓이 꽂혀 일반독자를 현혹하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책들이 범람하는 까닭은 70년대 이후 북한의 고대사 연구자료가 들어오면서 고대사연구 유행이 일어난 데다 거기에 과도한 민족주의 감정이 개입되면서 갈수록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해 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고대사학자 L교수는『학술적인 증거와 논리 없이 상상력과 감정만으로 역사를 연구하겠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말했다.<洪光勳 기자>-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한민족 대륙 상고 역사에 대한 일면식도 없는 듯한 피라미 기자가 한민족의 대륙사를 학술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다는 둥 일반독자를 현혹하고 있다는 등의 무책임한 보도는 해방이후 갓 피어나려 하는 민족 상고사학의 새싹을 송두리째 짓밟는 반민족 패악이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한서지리지」에 치우천왕의 무덤이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에 있다 하고, 「사기」 <집해(集解)>에는 치우의 총(塚)이 동평군(東平郡) 수장현(壽張縣) 함향성(鬫鄕城) 가운데 있으니 높이는 7장으로 백성들이 늘 10월에 제를 올린다 했다.(見「실증 환단고기」 92,93쪽 이 일봉 著)

「서전」을 보면 4방(方)의 제후를 통솔하는 수상 격인 사악(四岳)이라는 직책을 맡은 사람이 요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있는 희화의 자식으로 나온다. 요실의 최고 귀족가문이 바로 「서전」<요전>에 내명희화(乃命羲和)라 한 바로 그 희(羲)씨와 화(和)씨이다.

  이 두 가문은 「죽서기년」에 “蓋羲和二氏皆顓頊裔子吳回之後”라 하여 대개 희화 양 씨는 모두 전욱의 후예 자식인 오회(吳回)의 후손이라 했으니 전욱이 한민족 혈통이므로 오회(吳回)의 후손인 희화 양 씨는 당연히 모두 한민족의 혈통이다.(전욱이 한민족인지 모르고 있다면 「산해경」을 비롯해 수많은 사료가 동방 한민족임을 귀 따갑게 고증하고 있음을 본서의 곳곳에 밝혀 놓았음을 참조하라.)  

「춘추좌전」에 소위 전욱씨에게 자식이 있으니 려(犁:쟁기 려, 얼룩소 리)로 축융(祝融:축융은 죽어 남방을 지키는 火의 신으로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여 두 마리의 용을 타고 있다. 축융의 동생 회록(回祿)은 이름이 오회(吳回)로 형과 같이 불을 관장한다.



12세때 소호를 보좌하고 20세때 제위에 오른 전욱. 후일 상구(商丘)로 천도하여 공자의 고향이 된 곡부를 용비지지((龍飛之地)로 삼았으니, 성 밖 동북 모퉁이에 구 전욱사당터가 남아있다.
「산해경」<대황서경>)이 되었다 하고, 「국어」에 여(黎)가 (제곡)고신(高辛)씨가 되었다고 한다. 오회는 그 형과 함께 처음에 또한 중려(重黎)의 정사를 나누어 장악한 연고로,  전욱의 자손이 사는 숙사국(淑士國)의 율(栗) 광야에는 10명의 신이 있어 이름을 여와지장(女媧之腸)이라 하는데 복희와 결혼해 혼례를 제정하고 생황을 처음 제작했으며 여와보천신화가 의미하는 것처럼 지나족의 창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여와(女媧)가 죽어 숙사국의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음은 전욱의 후예인 숙사국이 배달민족임을 확인시키고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산해경」 <대황서경>에 전욱이 노동(老童)을 낳고, 노동이 축융을 낳고, 축융이 태자장금(太子長琴)을 낳았다 하고, 또한 노동이 중(重)과 여(黎)를 낳았는데, 제(帝)가 중(重)에게 명하여 하늘을 들어올리게 하고, 여(黎)에게 명해 땅을 억누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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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 <대황서경>: 전욱의 자손이 사는 숙사국(淑士國)의 율(栗) 광야에는 10명의 신이 있어 이름을 여와지장(女媧之腸)이라 하는데 복희와 결혼해 혼례를 제정하고 생황을 처음 제작했으며 여와보천신화가 의미하는 것처럼 지나족의 창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여와(女媧)가 죽어 숙사국의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음은 전욱의 후예인 숙사국이 배달민족임을 확인시키고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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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에 제곡고신이 중(重)을 주살하고 오회에게 전권을 주었으므로, 오회가 중려(重黎)의 이름을 겸하고 자손들이 그 직책을 이었다. 고신의 말년에 중려가 관직을 잃자, 요(堯)가 오회(吳回)의 옛 후손들을 잊지 못해 그 4명의 자식들을 천거해 그들로 하여금 4시(時)를 맡아 천하 사를 맡아보게 하였으니 이들이 바로 「서전」<요전>에 보이고 있는 희화(羲,和)의 자식들이다.

희화(羲和)는 본래 황제헌원 치하에서 날씨를 점치는 천문관직이었는데, 요(堯) 왕실에 즈음해 천지 4시의 일을 아울러 관장하는 일가가 되었으므로 이 이름을 취한 것이다.

또한 임금의 총애에 따라 둘로 쪼개어 하나는 희(羲)로 다른 하나는 화(和)로 만들었으니, 오히려 제곡(帝嚳)은 오회(吳回) 형제를 축융(祝融)이라 불렀으며 희화(羲和)라 이름하여 중려(重黎)의 정사를 장악하게 했으니, 이것이 바로 또한 혹 희화를 중려(重黎)로 칭한 이유이다.







태공망 여상의 목야 출전도. 태공은 본래 문왕의 아버지이고 태공이 기다린 사람이라 해서 태공망이다. 필자가 2002년 산동성 임치시에 있는 강태공 신궁에서 촬영

「여람(呂覽)」이 살펴 전하기를, 순(舜)이 중려(重黎)로 하여금 후기(后蘷)를 천거하게 하니 전악(典樂:음악을 맡은 관직)을 맡은이가 바로 그다.

한진(漢晋) 이후로 설명하는 자 많으나 혼효분란(混淆紛亂:혼란의 원말. 뒤섞여 흐리고 어지러움)이 많다.<두주(杜注)>에 이르기를 태악(太岳) 신농의 후예가 요(堯)의 사악(四岳)이라 했다. 「주어(周語)에 사악국(四岳國)에게 명해 후백(侯伯)이 되기를 명하고 강(姜)씨를 사성(賜姓)했다.

<가규(賈逵) 주(注)에 사악은 관명(官名)으로 대악(大岳)이라, 4악(岳)의 제사를 주관했다. 염제 신농의 성씨인 강(姜)은 뒤에 요 때의 사악(四岳)에 이르러 바뀌었다.

그러나 요(堯)가 다시 조상의 성인 강(姜) 씨 성을 사성(賜姓)해 염제의 후사를 잇게 했다.<위(韋)> 주(注)에 이르기를 종손 곤제(昆弟)의 자손이라 했다.(「좌전」정의 3)  앞서 강태공 여상과 여불위를 설명하면서 강씨 성 종족이 여(呂) 땅에 봉해져 살았다고 한 적이 기억날 것이다.

  바로 백이(伯夷)가 우심여(虞心呂)가 되어 여(呂) 땅에 봉해졌는데, 이가 바로 사악(四岳) 곧 백이(伯夷)이니 후토(后土)의 후사(後嗣)이다.




  <가규(賈逵) 주(注)에 공(共)은 공공(共工)이라, 공(共) 곧 술기(術器)는 <전욱기>에 상세히 보인다. 「산해경」 <해내경>에 이르기를, 축융이 강수(姜水)에 내려와 살면서 공공을 낳고, 공공이 술기 및 후토를 낳고, 후토는 열명(噎鳴:시간의 신)을 낳았으니, 열명은 일년 열 두 달을 낳았다.

  술기가 쳐들어와 자리를 차지해 아버지의 직책을 참칭해 난을 일으켰으므로 「주어(周語)」에 이르기를, 공공(共工)이 모든 하천을 막으려 했으나(壅防百川), 제곡(帝嚳)이 이를 멸하고, 후에 그 동생으로 하여금 앞선 직책의 후사를 잇게 하여(承嗣先職) 후토(后土)의 관직과 함께 겸해 맡도록 하니, 백이(伯夷) 사악(四岳)은 곧 후토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는 제 요(堯) 50년 이전의 일로, 뒤에 곧 강(姜)씨 성 가진 자로 이를 대신해 사용했다.





217    담론163.파촉(巴蜀) 땅은 일찍이 이들 복희씨의 사(蛇) 도등(圖騰) 족이 웅거하여 상고시절에 이름을 얻은 지역이니 파촉의 파(巴:大蛇)는 큰 뱀을 의미하여 「설문(說文)」에 '파(巴)는 충(蟲:동물의 총칭), 혹은 코끼리를 먹는 뱀' [1]  안원전   2003/02/25  4767
   담론211.「죽서기년」에 「초어(楚語:초나라가 동이 9족의 국가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에 이르기를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우리 동이족)의 덕을 거듭 실천하고, 요(堯)가 다시 중려(重黎)의 후예를 길렀는데 옛사람을 잊지 못했다 [1]  안원전   2003/02/21  5058
215    담론213.대륙의 지나사학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요순(堯舜) 선양(禪讓)의 실체-  안원전   2003/02/18  6332
214    담론212.악사(樂師)였던 고수(瞽瞍) 「죽서기년」 원본과 「환단고기」<태백일사>의 요순 선양실체-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니 순이 (요를) 가둔 바 되었다.(昔堯德衰爲舜所囚也  안원전   2003/02/12  5201
213    담론210.왕성강(王城崗) 유적지의 발굴을 하(夏) 문화 탐색의 중요 수확으로 여기고 있다.  안원전   2003/01/27  5011
212    담론 209.우 임금 시절에 대한 실루엣-서쪽으로 하남(河南) 서부와 산서(山西) 서남부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지금의 하남(河南), 하북(河北) 산동(山東) 3성(省)의 경계지방에 이르렀으며, 남쪽으로 호북(湖北)에 접하고 북으로는 하북(河北)으로 들어가-  안원전   2003/01/27  4563
211    담론 208. 한무제 유철과 황후가 된, 요(堯)의 고향이자 도읍지 산서성 임분 출생의 일개 기녀, "위자부(衛子夫)"의 러브로망  안원전   2003/01/27  5225
210    담론207. 제요 방훈시기는 원시사회의 부계씨족 사회 말기단계로, 도처에 부락 규모의 국가가 숲처럼 가득 들어찬“부락방국임립지시(部落方國林立之時)”의 시기  안원전   2003/01/21  4789
209    담론 206. 서량지의 동이족 전욱의 출자& 사마천의 역사왜곡에 대한 정강성과 왕숙, 장자의 직필, 요의 혈통적 배경과 모친 경도로부터의 신비화 작업  안원전   2003/01/13  4858
208    담론205요(堯)의 어머니는 바로 동이족 염제 신농씨 가문 진봉(陳鋒)씨의 따님인 경도(慶都)라는 아가씨로 동이족 염제의 7세손  안원전   2003/01/13  4879
207    담론 204. 요의 웅거지 산서성 임분:「묵자」 절용중편, 「한비자」 십과편 및 「순자」 왕패편, 양(楊) 주(注) 시자(尸子),5적(狄)은 하나 왈, 월지(月支), 둘 왈, 예맥(濊貊), 셋 왈, 흉노, 넷 왈, 선우(單于), 다섯 왈, 백옥(白屋)이라 하였다.  안원전   2003/01/08  6414
206    담론203.<제왕세기>에 요(堯)의 도읍지는 산서 임분현(臨汾縣) 남쪽평양(平陽),「죽서기년」 요(堯)가 지금의 섬서성 오른쪽 산서성 기(冀)에 거함  안원전   2003/01/07  5234
205    담론 202. 채도문화와 황제 도읍지 및 제요(帝堯) 도당(陶唐)의 활동공간/’왕래하여 옮겨다니되 일정한 곳이 없으니, 군사들로 에워싸 지키면 곧 도읍지였다(遷徙往來無常處 以師兵爲營衛)‘ 좁아터진 분치 제후국 제요  안원전   2002/12/30  6215
204    담론201.홍도와 회도문화는 한가지로 패가리호(貝加爾湖:바이칼호)에서 나와 구석기 말기에 대륙으로 나누어 들어가 발전한 동이족 부족,“야랑자대(夜郞自大)”의 고사  안원전   2002/12/26  4875
203    담론200.강(姜), 희(姬) 족의 혼구(婚媾:혼인으로 화친) 체결에서 비롯한 홍도문화와 우 도등(牛圖騰)을 숭배한 모계사회 &대륙상고사의 핵심고갱이를 송두리째 캐고 벗겨보니 그 뿌리는 바로 동이 한겨레로  안원전   2002/11/28  5415
202    담론199.신농의 부족이 남부로 스며들어갔을 때는 홍도시대의 일로, 세석기 문화인은 홍도문화인과 더불어 이미 목축, 교역, 건축, 의약을 알고 있었다(서량지)  안원전   2002/11/28  5102
201    담론198.「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에 “소전(少典)의 비(妃)는 안등(安登)이니, 화양(華陽)에 유(遊)할쎄, 「예기」 <제법정의>에 이르기를 여산(厲山)씨는 염제라&중동지역이나 이집트의 도자기가 기원전 4-5천년 이전의 중국대륙의 도자기보다 뒤진다  안원전   2002/11/28  6329
200    담론197.동이(東夷), 서하(西夏)적 용봉 2원 연맹-이하(夷夏)일가의 중국민족 구성과 전통문화 탄생의 원시적 기초&화샤(華夏)족의 형성  안원전   2002/11/28  5787
199    담론196.동이혈족이 대륙을 석권한 흔적&「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神農亦世及之君末帝楡罔時同姓黎君蚩尤作亂’이라 해서 14세 환웅인 치우천왕이 신농씨의 나라와 성씨(姜)가 같음을 말하고 있다.  안원전   2002/11/28  4870
198    담론 192. 주나라 시대의 동이족 강방(羌方)족의 정체에 대해  안원전   2002/11/11  5334
197    담론191.정현과 맹자의 동이족 귀방과 죽서기년 기록&주(周)와 귀방(鬼方)과의 전쟁규모& 환단고기 단군세기 속의 귀방과 정벌  안원전   2002/10/25  5261
196    담론190. 지나(支那) 중심 사관으로 동이제족을 비튼 춘추사관&갑골문에서 말하는 이 4위(圍)의 정체&주나라와 단군조선을 겹겹이 싸고 있는 동이 제 족의 강력하고도 방대한 문화  안원전   2002/10/25  7150
195    담론 189 앙소문화 유적지 반파 유적지와 강채문화 및 임혜상과 서량지 사관의 연계성과 상고시대 우리 겨레의 활동영역  안원전   2002/10/14  5384
194    담론 188 "환웅과 신농의 비밀"(최종철)-임혜상의 몽고리아(蒙古利亞) 종의 발원지-세석기 문화부족의 바이칼  안원전   2002/10/14  4644
193    담론 187 임혜상의 문화인류학적 개관과 대륙사관 논지3  안원전   2002/10/14  4325
192    담론186. 임혜상의 문화인류학적 개관과 대륙사관 논지2  안원전   2002/10/01  4706
191    담론185. 한민족의 상고사의 정체를 알기위한-임혜상의 문화인류학적 개관과 대륙사관 논지1  안원전   2002/10/01  4849
190    담론184.가시마 노보루의 일역「환단고기」서문 전문공개 3  안원전   2002/08/20  5947
189    담론183.가시마 노보루의 일역「환단고기」서문 전문공개 2  안원전   2002/08/20  5732
188    담론182.가시마 노보루의 일역「환단고기」서문 전문공개 1  안원전   2002/08/20  9093
187    담론181.임혜상은 동이계를 구성성분으로 하는 민족을 한(漢)족과 만주족이라 말함-우리 동이 피붙이 선조가 지나족의 뿌리라는 사관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실마리&상고사 재정립의 신호탄을 일본인 가시마 노보루가 쏘아올린 아이러니  안원전   2002/07/12  7445
186    담론180.소주와 항주는 오나라 월나라 수도로 오 월은 바로 전통적인 동이족 묘요계의 근거지 양자강의 나라들&실크로드는 우리 조상이 개척한 거고 실크는 양자강 유역의 우리조상 동이9족 래이족과 단군조선이 생산한 것이 시초  안원전   2002/07/12  5549
185    담론179.북방초원문화 경주황남대총의 의미& 김씨 일족의 종족계보가 흉노족의 알타이 혈통과 연관된다(김병모)&YTN취재팀-흉노에서 화북,중국문화를 거쳐 한족+스키타이형태로 유입  안원전   2002/07/03  5658
184    담론178.대륙사관을 지향하는 문명서래설의 박용숙 교수의「지중해 문명과 단군조선」&히타이트 제국의 지배층 아리안 언어, 크레타어,골족어, 이태리 원주민 에투루리아어, 피레네 반도 태고주민 바스크어,코카서스 원주민어,크루지아 어의 비밀  안원전   2002/07/03  5452
183    담론177.태양신인 복희와 달의 여신 여와는 니므롯과 세미라미스 그리고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모델 을 만들어냄&텅빈 황무지로 만든 한국 상고사학계의 범죄자 이병도휘하의 식민강단사학자  안원전   2002/07/03  4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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