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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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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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164.동이족 신농씨는 이곳 호북 수현에서 태어나, 하남(河南) 회양(淮陽)에 도읍을 정하고, 산동반도 곡부로 천도해서, 호남(湖南) 차릉(茶陵)에서 죽었고, 배달국 동이 조상 태호복희씨는 바로 오나라 서북쪽인 사천성에 있었으니




다시 말하거니와 「桓檀古記」『太白逸史』에 의하면 소전(少典)은 소호(少 )와 함께 고시(高矢)씨의 방계자손이라 했으니 곧 태호 복희의 후손이며 치우천황의 후손이다.

복희의 후손들인 풍(風)씨들이 세운 나라가 바로 「춘추」에 보이고 있는 임(壬)국, 숙(宿)국, 수구(須句)국, 전유( 臾)국이다. 이 나라들의 위치를 보여주는 기록은 「산해경(山海經)」 <해내동경>에 인두용신(人頭龍神)의 뇌신(雷神)인 이들이 오(吳) 땅의 서쪽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中国古族名。东夷族的自称为“人”,夷从人从弓,“弓”古意为穹。夷即天底下的人或天底下的大人,本与炎黄同祖,战败后,与华夏族融合,被歧视所以成为古代华夏族对住在东方和东北方以鸟为图腾的各少数民族的贬称,为夷。广义的东夷还包括住在东北方的肃慎系诸部。(徐夷)、莱夷、玄兔、乐浪、高骊、满饰、凫夷、索家、束屠、倭人等。九夷又分为畎夷、于夷、阳夷、方夷、黄夷、白夷、赤夷、玄夷、风夷等。“九”是言其多,实为许多东方族类相近的民族的统称。商代时的人方为商所灭,后来大部分淮夷小国均被鲁所灭。莱夷为齐所并。太昊就是远古东方地区夷族的一个大酋长。是伏羲第四代居陈(今河南睢阳县)。其后裔分支最著者,有任(今山东济宁市),宿(今山东东平市),须句(在今东平县境),颛臾(在今山东费县)等,均在洛水流域。少昊、舜、皋陶出自东夷,少昊的后裔著名的有郯氏、莒氏、莱夷等,以上均在今山东,商的远祖也是东夷。以后的淮夷、南夷、徐夷均为东夷南迁后之别称或其支系。传说蚩尤亦属东夷族远古时之首领,战败后,一部分被迫退居南方,留北方的曾建立过黎国,后亦被炎、黄两族消灭,被俘之民在两周时称“黎民”。汉时,又把西南各少数民族统称西南夷。

  오(吳)나라 수도가 어디인가 양자강 유역의 소주 주위다. 소주 좌측이면 양자강 중, 상류인 사천성이다. 또 14대 자오지 환웅이신 치우천왕은 신농씨의 아버지 소전(少典)이 강수(姜水)인 대릉하(大凌河) 지역에 살아 강(姜)씨라 했듯이 대릉하 지역에 연고를 두고 그 곳에 사는 자족들을 강(姜) 씨 성을 내렸다.(「桓檀古記」『太白逸史』<神市本紀>)  

그럼 중국에서 다링강(Daling)이라 부르는 대릉하는 어디인가. 대릉하는 랴오닝성[遼寧省] 서부의 강줄기를 합쳐 랴오둥만[遼東灣]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랴오닝· 허베이[河北] 2개성(省)의 경계를 이루는 다칭[大靑] 산맥에서 발원하여 누루얼후[努魯兒虎] 산지와 쑹링[松嶺] 산지 사이에 협곡을 이루면서 동류(東流)한 뒤 베이퍄오[北票] 부근에서 핀뉴강[牡牛河]과 합류하고 다시 남류하여 랴오둥만으로 흘러드는 강이 바로 전한시대에는 백랑수, 요나라 때에는 대령하(大靈河)라고 부르다가 원나라 이후 오늘날의 대릉하로 굳어졌으며 어느 중간에는 양하(梁河)라고도 부른 적이 있는 강수(姜水)다.

대릉하 유역은 선사시대 이래 우리 민족의 터전으로, 동이권, 고조선의 세력 근거지로써 선사시대 이래의 많은 유적,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결집하여 동북쪽 동모산(오늘의 돈화 동쪽)에 옮겨 진국을 세운 터전이 바로 여기다.

고구려가 망하고 나자 많은 사람들이 당나라에 의해 강제 이주 당했는데 그 일부는 바로 이곳 대릉하 유역의 영주(요녕성 조양)에 머무르게 되었으며 당나라의 지배에 예속된 대동강 이북, 만주에 잔류한  고구려 유민들에 의해 지속적인 투쟁이 있었다.

또 「제왕세기(帝王世紀)」를 볼 것 같으면, 신농씨가 본래 열산(烈山)에서 일어났으며 염제 또한 괴외(魁 )씨, 연산(連山)씨, 열산(列山)씨로 부른다"고 했으며, 「예기(禮記)」<제법정의(祭法正義)>에 말하기를 "여산( 山)씨는 염제로 여산( 山)에서 일어났는 바 혹 열산(烈山)씨로 말한다"고 했다.

「괄지지(括地志)」에 여산( 山)은 지금의 호북(湖北) 수현(隨縣)의 북쪽을 가리키며, 신농씨는 이곳 호북 수현에서 태어나, 하남(河南) 회양(淮陽)에 도읍을 정하고, 산동반도 곡부로 천도해서, 호남(湖南) 차릉(茶陵:차릉 또는 다릉인데 현지에서는 차링이라 해서 차릉으로 통용됨을 확인함)에서 죽었다고 했으니 대략 신농씨의 안마당이 호북성, 산동성, 호남성이고 치우천왕은 산동, 산서성 및 하북성, 만주 대릉하 등이 본 그라운드였고 태호복희씨는 바로 오나라 서북쪽인 사천성에 있었으니 양자강 유역의 9이족이라든가 북방 흉노, 숙신을 제외하고도 한민족의 텃밭이 중원천지 대륙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정밀지도Click here!
 
<환단고기> 신시본기 제3(神市本紀 弟三)에 환웅천왕으로부터 다섯번 전하여 태우의 환웅이 계셨으니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반드시 묵념하여 마음을 맑게하고 조식보정케 하시니 이것이야말로 장생구시의 술이다.아들 열둘을 두었으니 맏이를 다의발환웅이라 하고 막내를 태호라 하니 또는 복희씨라고 한다. 어느 날 삼신이 몸에 내리는 꿈을 꾸어 만가지 이치를 통철하고 곧 삼신산으로 가서 제천하고 괘도를 천하에서얻으시니, 그 휙은 세번 끊기고 세번 이어져 자리를 바꾸면 이치를 나타내는 묘가 있고 삼극을 포함하여 변화무궁하였다.

<<밀기>>에서 말한다.'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의 자리를 세습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처 마침내 진에 옮겨 수인,유소와 나란히 그 이름을 서방에 빛내었다. 후예는 갈리어 풍산에 살았으니 역시 풍을 성씨로 가졌다. 뒤엔 마침내 갈라져 패관임기포이사팽의 여덟가지 성이 되었다. 지금 산서성의 계수에 희족의 옛 거처가 있다. 임 숙 수 구 수유의 여러나라는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대변경>>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로부터 나와 우사가 되었다. 신용의 변화를 보고 괘도를 그리고 신시의 계해을 바꾸어 갑자를 처음으로 하였다. 여와는 복희의 제도를 이어 받다. 주양은 옛 문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육서를 전했다.복희의 능은 지금 산동성 어대현 부산의 남쪽에 있다.

신농은 열산에서 일어났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다. 소전은 소호와 함께 모두 고시씨의 방계이다. 대저 당시의 백성들은 정착해서 생업을 이어갔으며, 차츰 크게 되자 곡마약석의 기술도 또한 점점 갖춰져서 낮에는 저자를 이루어 교역하고 되돌아갔다. 유망이 정치를 하면서 급하게 모든 읍의 백성들이 제휴하도록 했으나 떠나는 백성들이 많아져서 세상의 도가 매우 어지러워졌다.'








227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6213
226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5902
225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6350
224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6320
223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5440
222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4661
221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8355
220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6006
219    담론215(속)요순선양,「한비자(韓非子)」 <식사(飾邪)>에 방풍(防風)씨의 군(君)이 늦게 도착하자, 우(禹)가 그를 참(斬)했다”  안원전   2003/02/28  5530
218    담론214.(속)요순선양. “요순선양(堯舜禪讓)”설이 실은 전국시대 초기의 묵가(墨家)가 창조한 것  안원전   2003/02/28  5958
217    담론163.파촉(巴蜀) 땅은 일찍이 이들 복희씨의 사(蛇) 도등(圖騰) 족이 웅거하여 상고시절에 이름을 얻은 지역이니 파촉의 파(巴:大蛇)는 큰 뱀을 의미하여 「설문(說文)」에 '파(巴)는 충(蟲:동물의 총칭), 혹은 코끼리를 먹는 뱀' [1]  안원전   2003/02/25  5260
216    담론211.「죽서기년」에 「초어(楚語:초나라가 동이 9족의 국가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에 이르기를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우리 동이족)의 덕을 거듭 실천하고, 요(堯)가 다시 중려(重黎)의 후예를 길렀는데 옛사람을 잊지 못했다 [1]  안원전   2003/02/21  5611
215    담론213.대륙의 지나사학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요순(堯舜) 선양(禪讓)의 실체-  안원전   2003/02/18  6846
214    담론212.악사(樂師)였던 고수(瞽瞍) 「죽서기년」 원본과 「환단고기」<태백일사>의 요순 선양실체-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니 순이 (요를) 가둔 바 되었다.(昔堯德衰爲舜所囚也  안원전   2003/02/12  5726
213    담론210.왕성강(王城崗) 유적지의 발굴을 하(夏) 문화 탐색의 중요 수확으로 여기고 있다.  안원전   2003/01/27  5474
212    담론 209.우 임금 시절에 대한 실루엣-서쪽으로 하남(河南) 서부와 산서(山西) 서남부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지금의 하남(河南), 하북(河北) 산동(山東) 3성(省)의 경계지방에 이르렀으며, 남쪽으로 호북(湖北)에 접하고 북으로는 하북(河北)으로 들어가-  안원전   2003/01/27  5121
211    담론 208. 한무제 유철과 황후가 된, 요(堯)의 고향이자 도읍지 산서성 임분 출생의 일개 기녀, "위자부(衛子夫)"의 러브로망  안원전   2003/01/27  5691
210    담론207. 제요 방훈시기는 원시사회의 부계씨족 사회 말기단계로, 도처에 부락 규모의 국가가 숲처럼 가득 들어찬“부락방국임립지시(部落方國林立之時)”의 시기  안원전   2003/01/21  5283
209    담론 206. 서량지의 동이족 전욱의 출자& 사마천의 역사왜곡에 대한 정강성과 왕숙, 장자의 직필, 요의 혈통적 배경과 모친 경도로부터의 신비화 작업  안원전   2003/01/13  5314
208    담론205요(堯)의 어머니는 바로 동이족 염제 신농씨 가문 진봉(陳鋒)씨의 따님인 경도(慶都)라는 아가씨로 동이족 염제의 7세손  안원전   2003/01/13  5412
207    담론 204. 요의 웅거지 산서성 임분:「묵자」 절용중편, 「한비자」 십과편 및 「순자」 왕패편, 양(楊) 주(注) 시자(尸子),5적(狄)은 하나 왈, 월지(月支), 둘 왈, 예맥(濊貊), 셋 왈, 흉노, 넷 왈, 선우(單于), 다섯 왈, 백옥(白屋)이라 하였다.  안원전   2003/01/08  6929
206    담론203.<제왕세기>에 요(堯)의 도읍지는 산서 임분현(臨汾縣) 남쪽평양(平陽),「죽서기년」 요(堯)가 지금의 섬서성 오른쪽 산서성 기(冀)에 거함  안원전   2003/01/07  5745
205    담론 202. 채도문화와 황제 도읍지 및 제요(帝堯) 도당(陶唐)의 활동공간/’왕래하여 옮겨다니되 일정한 곳이 없으니, 군사들로 에워싸 지키면 곧 도읍지였다(遷徙往來無常處 以師兵爲營衛)‘ 좁아터진 분치 제후국 제요  안원전   2002/12/30  6773
204    담론201.홍도와 회도문화는 한가지로 패가리호(貝加爾湖:바이칼호)에서 나와 구석기 말기에 대륙으로 나누어 들어가 발전한 동이족 부족,“야랑자대(夜郞自大)”의 고사  안원전   2002/12/26  5364
203    담론200.강(姜), 희(姬) 족의 혼구(婚媾:혼인으로 화친) 체결에서 비롯한 홍도문화와 우 도등(牛圖騰)을 숭배한 모계사회 &대륙상고사의 핵심고갱이를 송두리째 캐고 벗겨보니 그 뿌리는 바로 동이 한겨레로  안원전   2002/11/28  5891
202    담론199.신농의 부족이 남부로 스며들어갔을 때는 홍도시대의 일로, 세석기 문화인은 홍도문화인과 더불어 이미 목축, 교역, 건축, 의약을 알고 있었다(서량지)  안원전   2002/11/28  5648
201    담론198.「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에 “소전(少典)의 비(妃)는 안등(安登)이니, 화양(華陽)에 유(遊)할쎄, 「예기」 <제법정의>에 이르기를 여산(厲山)씨는 염제라&중동지역이나 이집트의 도자기가 기원전 4-5천년 이전의 중국대륙의 도자기보다 뒤진다  안원전   2002/11/28  6801
200    담론197.동이(東夷), 서하(西夏)적 용봉 2원 연맹-이하(夷夏)일가의 중국민족 구성과 전통문화 탄생의 원시적 기초&화샤(華夏)족의 형성  안원전   2002/11/28  6315
199    담론196.동이혈족이 대륙을 석권한 흔적&「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神農亦世及之君末帝楡罔時同姓黎君蚩尤作亂’이라 해서 14세 환웅인 치우천왕이 신농씨의 나라와 성씨(姜)가 같음을 말하고 있다.  안원전   2002/11/28  5387
198    담론 192. 주나라 시대의 동이족 강방(羌方)족의 정체에 대해  안원전   2002/11/11  5815
197    담론191.정현과 맹자의 동이족 귀방과 죽서기년 기록&주(周)와 귀방(鬼方)과의 전쟁규모& 환단고기 단군세기 속의 귀방과 정벌  안원전   2002/10/25  5760
196    담론190. 지나(支那) 중심 사관으로 동이제족을 비튼 춘추사관&갑골문에서 말하는 이 4위(圍)의 정체&주나라와 단군조선을 겹겹이 싸고 있는 동이 제 족의 강력하고도 방대한 문화  안원전   2002/10/25  7647
195    담론 189 앙소문화 유적지 반파 유적지와 강채문화 및 임혜상과 서량지 사관의 연계성과 상고시대 우리 겨레의 활동영역  안원전   2002/10/14  5861
194    담론 188 "환웅과 신농의 비밀"(최종철)-임혜상의 몽고리아(蒙古利亞) 종의 발원지-세석기 문화부족의 바이칼  안원전   2002/10/14  5118
193    담론 187 임혜상의 문화인류학적 개관과 대륙사관 논지3  안원전   2002/10/14  4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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